최근 7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14일간 수도권, 부산, 대구 등 빡빡한 일정을 뒤로하고 지독한 목감기를 휘감고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도 달라진 고국의 모습에 거대한 도시 속의 서투른 이방인처럼 모든 것에 어리둥절했지요. 인천공항에 1시간 일찍 입국해서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거의 30분을 허비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같은 화면에 전화 이외에도 각종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의
전화기인 모양인데, 나 같은 이방인들이 그 사용방법을 익히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해야 하는 한국의 공공문화가 무척 낯설었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원색의 색감과 엄청난 양의 광고와 표지판으로 쏟아지는 정보들, 공간이란 공간은 온갖 고층 빌딩으로
채워버린 서울의 비 환경 친화적인 발전상, 서울을 중심으로 위성도시를 잇는 모든 곳마다 가득한 수 십층의 고층 아파트들, KTX 고속열차로
서울-부산을 3시간 반 만에 잇는 전국의 일일생활권화, 거미줄처럼 서울과 외곽도시들을 잊는 지하철의 위용과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쏟아내는
TV화면의 뉴스와 프로그램들, 빨강, 파랑, 초록으로 새롭게 규정된 도시 내, 도시 간 버스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들, 어느 곳을 가도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 그 속에서 어디론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들 모두가 생소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진 작금에 서민 계급의 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신성한 공교육 현장을 무너뜨리고 무리한 사교육을 부추기는 부모들의 열기로 전국이 들끓는
현상을 보면서, 이곳이 불과 9년 전에 내가 숨 쉬고, 익숙하게 살던 바로 그 나라였나 싶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개척교회로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가운데 위성도시인 평촌, 산본을
중심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고 한때 제가 음악전도사로 섬겼던 새중앙교회(박중식 목사), 부산 해운대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강남 이남에서는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한 수영로교회(정필도 목사), 분당과 수지에서 수평이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불신자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하고 있는 지구촌교회(이동원
목사)를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살아있는 교회성장의 생동감을 느끼면서, 다른 한 편 한국교회가 위성도시 초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신음하는 한국 사회에 미치는 교회의 영향력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불과 3년 안팎으로 한국교회 영적 거인들인 1세대 목회자들이 대거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교회성장이란 영적 유산이 다음 바톤인 386세대에게로 넘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선배들이 본보인 희생과 공로를 인정하고, 후세를 위한
역사적 평가를 남기며,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지만, 더불어 풀어야할 숙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성장이라는 게토에 갇혀 세상과의 접촉점을 잃고
땅에 떨어진 기독교 리더십을 회복하는 일, 바로 다음세대의 역할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봅니다. 즉 우리 세대의 영적 리더십은 몇 명의 영적
거인을 재편하는 형태를 지양하고,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는 가교역할을 감당할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 사역자들이 건강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할 일이 아니지요. 이것이 하나님 나라 회복의 진정한 모델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거대 기독교 유산의 기득권 세력다툼에 휘말리지 않도록 겸허함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2주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7년의 간격을 일순간 없애버린 고밀도 농축된 만남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감사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일가친족들, 찬양사역계의 선후배들, 디지털 컨텐츠로의 재편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크리스천 음반
비즈니스계와 일반 출판사에서 기독 출판물을 기획하는 후배들, 갑작스런 연락으로 만난 대학동창들, 중소형 교회에서 경험한 따스한 사랑과 예배의
깊이들, 그 무엇보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고이 잠든 어머니의 묘소 방문과 그분께서 평소에 좋아하셨다던 음식점 방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남들이
아직도 가슴 가득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남이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만남의 영향력을
회복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그날이 뼈에 사무치게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