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 브라질

I. 수평성  


지난달 28일 밤,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날아 다음날 아침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이번 방문은 상파울로의 선교공동체인 쿰(대표 박지웅 선교사)이 후원하고 남미 찬양선교단 램프(LAMP)가 주최하는 ‘램프 예배세미나’ 강사로 섬기기 위함이었다. 이 세미나는 브라질을 비롯해서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에서 60여 명이 모여 남미 한인교회 처음으로 예배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는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브라질은 참 독특한 나라이다. 대한민국과 지구의 정반대에 위치한 브라질, 그곳에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40년 이상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우연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 브라질》이라는 책을 쓴 박영진 씨를 만나서 사인한 책을 구입했다. 그는 세계 일주를 두 번이나 한 사람으로서 브라질에 마음이 꽂혀 아예 이곳에서 살고 있다. 관계 중심적이고, 음식 좋고, 시간 많은 나라. 일본·한국·볼리비아·페루·유대인 등 백인에서 동양인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를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공존하는 나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내는 나라가 바로 브라질이다.

필자가 느낀 이 나라의 특징은 한마디로 수평성이다. 일례로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나 서민층이 먹는 음식의 질이 거의 차이가 없다. 한번은 LAMP 찬양단을 섬기는 박지범 선교사, 미국 달라스의 예배공동체 Kings Region을 섬기는 김재우 선교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상파울로의 중심가인 쎄 광장에 나갔다. 한 초라한 버거 판매점을 방문해서 브라질식 핫도그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반으로 자른 오렌지 30개를 하나하나 직접 기계에 넣어서 즙을 짰다. 3컵의 주스가 나왔다. 가격은 불과 1불 50전, 문화충격이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맥도날드를 뺀 미국의 모든 프랜차이즈 업체가 브라질에서 맥을 못 추고 철수했단다.

세미나 기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 강사 2명에 현지 강사 1명으로 진행되는 단촐한 세미나이지만, 지역교회 예배의 활성화를 위해 준비한 주제를 모두 다루기에는 2박 3일도 부족했다. 그런데도 점심 식사는 3시간이나 지속된다. 처음엔 식사 시간을 왜 그렇게 길게 잡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음식을 나누면서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사역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의와 찬양인도 외에도 식사하고, 교제하고, 상담하고, 늦은 밤까지 대화하는 모든 시간들이 중요한 사역이었다.

컨퍼런스 마치고 램프 스태프들과 별장으로 이동했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이 그저 먹고 쉬는 줄만 알았다. 인터넷도 안 되는 외진 곳에서 그렇게 2박 3일을 지낸다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 넉넉한 시간에 더 깊은 만남들이 이어졌다. 식사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깊은 속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임재가 있었다. 마치 오랜 가뭄에 생수를 대하듯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예배와 사역에 대한 질문, 갈등, 꿈을 나눌 때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답과 은혜를 부어주셨다.

오후 늦은 시간에 시작한 족구, 운동화가 없어서 반바지에 구두와 검은 양말을 신고 뛰었다. 군대시절, 족구리로 통했던 실력을 오랜만에 발휘하느라 좀 무리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통했나보다. 그때까지 나를 강사로만 여겼던 스태프들과의 거리감이 단번에 좁아졌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내 안의 수평적 자유함을 마음껏 분출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깊은 교제의 과정을 통해 연결된 관계의 결실이 바로 램프선교단이다. 이들은 남미 각지에 흩어져 살지만 사역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무서운 결속력으로 뭉쳐있다. 이것이 관계의 힘이다. 노는 것을 시간낭비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질타 받을 수도 있는 쉼, 하지만 이를 건강하게 개발할 때 사역의 든든한 기초가 된다. 관계가 형성되면 사역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계속)

이유정(한빛지구촌교회 예배 목사, 좋은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