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너희에겐 세 가지 자유가 없다. 첫째 자유, 둘째 행동할 자유, 셋째 웃을 자유!”

1983년 초여름, 삼 사단 백골부대 신병교육대에 도착하자마자 매섭게 생긴 교관이 던진 서리에 찬 말이다. 눈썹까지 내려온
모자를 눌러쓴 조교의 검게 그을린 얼굴 때문인지, 그 밑에 겨우 보이는 하얀 눈은 마치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빛처럼 매섭게 빛났다.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말이 떨어지자마자 30여명의 신병은 연병장을 구르기 시작했다. 조교는 뙤약볕 무더위에 아랑곳 않고 어리벙벙한 신병들의 사회티를 벗겨내기 위해 군기를 잡는데 혈안이었다. 소금을 먹지 않으면 쓰러져 거품을 정도였다. 2시간 넘도록 연병장을 뛰고, 구르는 동안 문득 이제 나는 이상 마음껏 자유를 누릴 있는 사회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자리에 있었던 30여명의 신병은 이제 사회와 격리된 군인인 것이다. 그래서 이등병으로 입대한 모든 대한한국 남자는 사회에서 가졌던 모든 지위, 출신, 배경, 교육, 신분을 떠나군인이라는 새롭고 동등한 지위로 바뀐다. 그래서 장관의 아들이건, 시골 농부의 아들이건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이 훈련받고, 기합 받고, 차례를 받는다. 

예배의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 가치가 동등하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건 공사판에서 흘려 일하는 막노동 일꾼이건 상관없다. 대기업 최고 경영자이건 이십대 비정규직 사원이건 상관없다. 사성장군이건 환경미화원이건 상관없다. 순간 모두가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다. 이것이 예배의 힘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그려주신 예배의 그림이 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_ 4:23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예배에 대해서 가장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예배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에 어떤 대상이 따로 없다. 있다면 가지이다. 그것은 아버지께 드릴 있는 성도의 지위이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 말이다. 그래서 예배자의 조건은 하나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_ 1:12

예배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 이외에 지위와 학력이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이상 예배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사회적 능력과 부가 사람을 차별한다면 이상 교회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를 향해형제자매라고 부르는가? 예수를 머리로 몸을 이룬 지체들의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결코 상상할 없는 평등의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예배는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권력투쟁, 빈부격차, 상하계급, 인종차별의 검은 파워를 일순간 지워버린다. 모든 관계, 모든 입장, 모든 스타일, 모든 인종, 모든 형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한다. 그래서 땅에서 회중 예배 현장만큼 감사와 기쁨, 사랑과 평화, 치유와 회복, 자유와 해방, 신뢰와 소망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곳은 없다.

예배는 어떤 지위, 계급, 빈부, 종족의 사람이라도 담아낼 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그릇이다. 예배의 넓이는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넓이이다. 예배의 높이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신 예수님의 높이이다. 예배의 깊이는 모든 진리를 꿰뚫는 성령님의 깊이이다. 예배 현장에 살아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지혜를 뛰어넘으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_ 55:8,9

가슴 벅차지 않은가? 통쾌하지 않은가? 세상의 어떤 허울도 통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본질 자체가 인정되는 현장, 모든 가식과 껍데기, 위장과 술수가 통하지 않는 준엄한 정의가 살아 있는 , 모든 미움과 시기, 분쟁과 갈등, 경쟁과 시비가 힘을 잃고 섭씨 수천 도의 십자가 용광로 사랑으로 녹아버리는 , 연금술의 지존인 아버지 하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을 빚으시는 신비의 현장이다. 바로 그곳이 예배의 현장이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배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