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영주권 분실로 귀국 일정이 한 두주 늦춰진 붕뜬 상황에서
사랑하는 교회와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을 떠난 10년의 세월이 주는 단절감에 어디를 가나 낮선 건물과 도로,
새로운 시설들이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방문 2주째 화요일, 대사관에서 기대했던 출국 일자 답변을 듣지 못해 낙망해 있던
날…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2주 만에 저녁 약속 전 두 시간 넘는 여유가 있었고
허탈한 제 발걸음은 인근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 제목들이 눈에 띄었으나 다 바람 같았습니다.
 
무엇을 볼까 10여 분간 씨름하다가 표사는 줄에도 섰지만
결국 마음이 내키질 않아
포기하고 바로 옆에 있는 영풍문고로 향했습니다.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아주 작은 책 하나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인재연습”이라는 고전입니다.


17세기 프랑스, 주방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수 많은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로렌스 형제의 편지 내용입니다.
이 책을 들고 서점 안에 있는 작은 커피전문점 구석에 앉아 읽어 내려갔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보통 삶이 최고조에 있을 때나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만
분주한 집안 일, 지친 사회 활동,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심지어는 교회 사역이라는 종교적 활동 속에서도
일에
파뭍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 한구석에 있는 허접한 주방일을 십 수년 하면서
바로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주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 시간이 다른 시간과 다르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나 일상의 모든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읽어 내려가다 제 마음을 때린 구절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영적 생활을 시작할 때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철저하게 살피고
돌아보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모든 멸시를 받아 마땅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도 없으며
온갖 불행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당해도 마땅한 존재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건강을 잃고 내적, 외적으로 몹시
괴롭겠지만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차후에 사람들로부터 괴로운 일이나 유혹, 반대

그리고 반박을 당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오히려 순수하게 그 일들을 감수하고 감당해야
한다.” (p. 52,53)
 
허탈감에 정신줄 놓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선택한 영화관람 발걸음…
한국 오면
영어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편하게 한국 영화 하나 보고 싶었던 작은 바램…
그것 마저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제 영혼에 맺혔던 앙금
하나를 풀어주셨습니다.
 
지난 10여일간 한국 땅의 예배회복을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면서 드러난 열매들을 보면서

제 안에 의로운 삶, 거룩한 삶에 대한 일종의 영적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주께 헌신하는 나름 ‘의인’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하시고
왜 이런 고통의 시간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로렌스 형제의 이 평범한 문구 하나에 제 마음이 녹아
내렸습니다.
높아졌던 제 마음을 겸손케 하시는 성령의 깊은 터치를 경험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추구처럼, 소란스럽고 복잡한 일상의
한 커피전문점 공간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진 눈물의 은혜를 겸험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바쁘고 급한 일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색다른 은혜의 시간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유정(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CCM 듀엣 좋은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