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6년 2월


2004년 초가을에 불청객 태풍 아이반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저는 워싱턴DC에서 노스 케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그린스보로를 향해 막 출발하던 46인승 United Airline 여객기 속에서 아이반 때문에 2시간 이상 이륙을 못하고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무더위가 지난 초가을임에도 엄청난 태풍이 올라온다는 경고를 뉴스에서 들었기에 다소 긴장이 되었습니다. 창 밖에는 어마한 검은 구름비가 비행장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상층의 거대한 검은 구름으로부터 공항에 흩어져 있는 여객기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시커먼 빗줄기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마녀의 날카롭고 갈라진 혀가 비행기들을 핥고 지나가는 듯 음산한 모습이었습니다. Dulles International Airport내에 막 이륙하려던 40여대의 비행기가 꼼짝없이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태풍 아이반(Ivan)의 영향권이 북버지니아까지 미친 것입니다.


비 행기 안에 있는 승객들은 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며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며 핸드폰으로 연락하고 사진을 찍는 등 다소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내 옆의 한 미국 아줌마는 “내 평생에 이렇게 심각한 상황은 처음”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전화에 여념이 없었지요. 조종사의 안내 방송에 따라 승객들은 때론 한숨을, 상황이 조금 좋아지면 환호성을 지르는 등 초조한 기다림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3시간가량 지나서야 감금상태는 풀어졌으나 안타깝게 비행기 운항은 취소되었습니다. 도착지의 성가대 수련회에서는 예정된 강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난리였습니다. 담당 목사님은 만약을 대비해 다음날 프로그램을 당겨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공항 대합실에서의 또 다른 4시간 대기상태 끝에 새벽 1시에서야 그린스보로를 향해 출발했고 새벽 3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 중에 확인해보니 태풍 아이반의 규모는 역대의 어떤 태풍보다 위협적이었습니다. 시속 250㎞가 넘는 최고등급 허리케인입니다. 뉴스에 의하면 루이지애나 등 4개주 주민 190만여 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특히 해수면보다 3미터 낮은 저지대인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지역에 40년만의 최대 피해를 우려해서 120만 명에 대한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태풍이 도심을 정면으로 강타하면 5만 여명이 익사하고 도시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개의 시신용 백을 마련하기도 했답니다. 1년 후 작년 여름 태풍 카트리나가 이 우려를 재현했지요. 만일 아이반 당시만큼만 재해대책본부가 준비했어도 뉴올리언스가 그토록 처참해지지는 않았겠지요.


아 이반 태풍으로 인해 공항에 갇혀 보낸 7시간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40여대 안에 갇혀 있는 수천여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약속과 스케줄들이 대자연의 심술로 인해 한 순간 깨져버린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 약속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뜨려 버린다면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천재지변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수용적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합니다.


로 마서 1장 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대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는 일종의 경외감을 갖습니다. 어렴풋이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경험합니다. 단 1시간이건, 10시간이건 자연의 힘 앞에 선 인간은 잠시 자신의 능력, 경험, 삶의 패턴을 일시적으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저 넋 놓고 그 초월적인 힘(power)앞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맡기게 됩니다.


그 런데 하나님은 이 초월적인 자연보다 더 초월적인 분입니다. 아이반의 영향권은 북미 동남부지역에 국한합니다. 제 아무리 큰 태풍이라도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와 비교하면 바닷가의 모래 한 알에 있는 원자 하나도 안 되는 미미한 것입니다. 우리 은하계가 태양과 같은 별들이 약 1천억 개 모여 만들어진 별들의 집단이며, 다시 우리 은하계 같은 은하들이 1천억 개가 모여 전체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상상 해보세요. 현대 천문학의 연구결과 빛의 속도로 150억년을 달려가야 우주의 끝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인간의 작은 두뇌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예 배야 말로 바로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갑자기 닥친 초월적인 존재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진행 결과에 자신을 내어 맡기듯, 주일마다 예배 가운데 나아가는 회중들은 대 자연의 그 어떤 초월적인 힘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전능하심을 높이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 되신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대자연의 심술의 결과는 파괴요, 상처요, 엄청난 피해이지만, 초월적인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는 구원과 치료, 어마어마한 하늘의 축복임을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