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한빛지구촌교회 예배사역 7년 만에 4개월 안식을 가졌다. 지쳤던 심신도 회복하고 지난 사역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예배 공부를 위해 도미한지 10년, 한 분야에서 10년 집중하면 맥이 뚫린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예배의 맥이 보였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 진행될수록 예배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눈이 뜨였다. 예배공부 4년에 전임 예배목사 7년 된 자가 예배에 무지하다면 문제 아닌가? 그러나 예배를 몰라서가 아니다. 지식과 정보가 없어서도 아니다.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예배의 본질에 목숨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 반성했다. 예배보다 예배드리는 일에 더 열심을 냈다. 비본질적인 것에 바빴다. 일 때문에 가정도 희생시켰다. 아내가 수없이 지적했는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완벽주의, 일중독이란 말도 들었다. 뒤늦게라도 깨달은 것을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예배 행위자체를 예배로 착각한다. 예배 세미나에서 만난 찬양팀원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주일 날 찬양 봉사에 대한 의무감, 책임감 하나 때문에 교회 나올 때가 많아요.” “찬양하고 단에서 내려오면 예배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 내 할 일 다 했다는 안도감만 남아요.” 일반 성도들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은 일종의 책임감이죠.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만난다는 거룩한 기대감보다는 솔직히 집사로서 마땅히 성수주일 해야 하는 의무감이 앞섭니다.”

하나님은 일꾼보다 예배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찾으신다. 예수님께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랑의 열병에 빠진 자를 찾으신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눅 10:27)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는 행위로 끝내고,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에게 마음을 다 빼앗긴다. 하나님을 배제한 사랑은 우상숭배로 빠진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길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적 사랑이 넘쳐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능력이 생긴다.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눅 10:27)

이것이 예배자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즉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가 예배할 때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시대는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 A. W. 토저의 말처럼 ‘예배자보다 일꾼이 많은 시대’이다. 하나님을 ‘일손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공사판의 감독’[footnote]A. W. 토저, 이것이 예배이다 (서울: 규장, 2006), p. 66.[/footnote]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일한다. 심각한 착각이다. 하나님은 일꾼보다 예배자를 원한다.

예배자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삶의 현장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성경공부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자꾸 예배라는 것을 어떤 행위로 규정하려고 한다. 예배는 행위 이전의 문제이다. 마음의 문제요 본질의 문제이다.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예배행위는 껍데기다. 예배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사는 것이다. 가정에서 설거지를 하는 주부, 직장에서 커피를 타는 사무원, 길거리의 청소부 등 어떤 직종,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행하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평범한 주방 일을 하면서 당대의 영적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로렌스 형제(Br. Lawrence)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좋은 모델을 보여준다. ‘주방성자’로 불리는 로렌스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았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체험할 수 없으며, 반복되는 연습을 통한 삶의 습관이라고 했다. 즉 임재란 하나님이 언제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만 영혼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footnote]로렌스 형제, 하나님의 임재연습 (서울: 좋은씨앗, 2008), p. 18.[/footnote].

오늘날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 없이 ‘내’가 팔팔하게 살아있다. 내 관심사가 하나님보다 우선한다. 교육도, 훈련도, 전도도, 선교도, 심지어 예배조차도 하나님 임재 없이 ‘일’로 행해진다. 예배자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일만 하는 사람은 나무, 풀, 짚을 쌓아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불로 심판할 때 다 타버릴 것들이다. 하나님은 일꾼보다 예배자를 찾으신다. 그 예배자를 통해 하나님 자신이 일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다.

– 이유정 목사(한빛지구촌교회 예배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