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


2003년 9월 어느 날 저녁을 잊을 수가 없다. 뉴욕의 어느 집에서 6명의 형제들과 둘러 앉아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 세계관’, ‘성경적 물질관’, ‘교회론’ 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런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한가지는 ‘내가 참으로 아는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미 성경공부 리더로 섬긴지 10년이 훌쩍 넘어선 시점이었고, 그것도 성경을 귀납법적으로 연구하고 연구 문제를 직접 만들며 지내온 10여년 이었다. 더구나, 나름대로는 책도 ‘꽤’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 만남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 만남 후 1년간, 1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 100여권이 책 중에 꼭 읽었어야 했던 책은 사실 몇 권 없었던 터였다. 그렇게 독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그 후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정당량의 책을 소화하고 있다. ‘읽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하고 생각하는 책의 선택도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이젠 책을 선택하는 일에 대해 조금의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 는 한국의 한 대형교회 대학부 출신이다. 그 곳에서 귀한 선후배를 만났고, 아내를 만났다. 나를 키워준 리더들 중 한 명은 본 회퍼의 책을 가장 좋아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대천덕 신부의 책을 선호했다. 두 분은 좋아했던 저자들만큼이나 색깔이 분명하게 달랐지만, 지금까지도 귀한 동역자로 서로를 섬기고 계시다.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일요일 성경공부를 마치고는 선배들을 좇아 서점에 가서 책을 소개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기를 지나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독교 출판이 그렇게까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며 지내왔는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연구가 여전히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고, 예배학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의 기독서적의 교과서로 여겨지던 리차드 포스터, 송인규의 책들을 소개 받았고, 기도에 관한 고전인 오 할레스비의 ‘기도’와, 여전히 성경공부 가이드로써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고든 디 피의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를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읽었다. 그렇게 큰 흐름을 좇아 지내오던 시기가 지나고, 미국으로 유학을 나오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과는 달리 다양한 책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서점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책을 소개 시켜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 놓이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베스트셀러를 기웃하며 책을 구입하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계속해서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여겨진다. 책을 읽기를 원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는 후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나 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작은 회사를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크리스천이며, 개구쟁이 두 아들의 아빠이기도 하다. 기독교 책 읽기에 관한 내공도 정말 보잘 것 없다. 이런 평범한 사람의 책 읽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깊이 있는 서평이 되지도 못할 것이고, 감동적인 독후감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그저 지난 달에 읽었던 책들을 선택하게 된 동기와, 책을 읽은 느낌들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한다. 투박한 나눔 가운데서도, 서로 주고 받는 도전과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글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