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라는 올해의 코스타 주제 때문인지, 지난 달에는 유독 복음주의와 그에 대항하는 사조에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다. 쉽지 않게 읽었지만 그만큼 도움이 되었던 책들을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Alister McGrath, IVP, 1997
‘미래’에 대해 논한 책을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읽는 일은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Alister McGrath가 2005년에 ‘기독교의 미래’라는 비슷한 이름의 책에서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들어선 기독교의 미래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는 20세기를 지나온 복음주의의 특징들을 정리하고, 이제는 기독교의 주류가 되어버린 복음주의의 매력과 잠재된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10년이란 세월은 한 저자가 사용한 ‘미래’라는 단어가 ‘과거’ 혹은 적어도 ‘현재’가 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저자는 복음주의의 특징을 정리하고 많은 장점들을 이야기한 후에 (이 정의는 이 책 이후에 출판된 많은 책들에서 복음주의의 정의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복음주의가 미래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성’을 개발해야 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파주의를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고 보면, 최근 10년간 유진 피터슨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계열에서 영성을 그토록 강조한 배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와 대항하면서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이론화하고 지성화하면서, 기독교의 영적인 부분을 소홀히 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 중의 하나가 영성신학이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서 복음 자체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던 복음주의.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의 주류가 되어 너나없이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진정 복음주의는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Lesslie Newbigin, IVP, 2005
작년,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열흘남짓 머무는 짧은 기간동안 기를 쓰고 기독서점을 다녀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핀잔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서점에서 눈에 띄어 구입해온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레슬리 뉴비긴의 ‘포스트모던시대의 진리’이다.


‘영국 국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라는 호칭이 늘 붙어 다니는 레슬리 뉴비긴의 책은 현대 다원주의와 기독교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늘 읽기 쉽지 않아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적은 분량과 김기현 목사의 깔끔한 번역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한 역자의 표현이 탁월하여 그냥 빌려본다.


“선교사로서의 현장성과 학자로서의 학문적 분석과 적용이 탁월한, 영국 국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의 지도자인 레슬리 뉴비긴은 번뜩이고 탄탄한 논리로, 현대와 탈현대 세계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권위의 원천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현대사회가 이성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권위에 관한 모든 주장을 의심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그는 교회가 성경, 전통, 이성, 경험을 신적 권위에 대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뉴비긴은 이것의 올바른 사용 방법과 서로의 관계를 모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이야기로서 성경을 말하며 그 이야기의 일부분으로 살아갈 때에야 현대 사회에서 복음의 적실성을 주장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 뒤 표지에서>


다소 이론적인 글에 이어지는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포스트모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갈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말이지 나도 이렇게 하고 싶어졌다.)


“최종적인 요점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만약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예, 물론입니다. 그건 당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 이야기를 믿어야 합니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우이는 복음 이야기를 인증할 수 있는 것에 기초하여 몇가지 더 근본적이고 좀더 신뢰할 만한 진리를 제안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분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 이야기가 다른 것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가 그 이야기의 일부분일 때에만 확실해진다. 결국 우리가 그 질문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내 공로와 무관하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이 이야기를 말構? 이 초대를 전하도록 부름받고, 위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내 이야기도, 내 초대도 아닙니다. 강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자신을 주신 분의 초대입니다.” 그 초대가 만약 구세주의 은혜가 역사하는 공동체로부터 온다면, 매력적으로 다가 올 것이다. 받아들여질 지의 여부는 우리 능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염려하고, 안달하는 것은 믿음 없음의 표시다. 우리가 아니라 오직 초대하는 분에게 통솔권이 있다.”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Alister McGrath, IVP, 2001
책을 읽고 나서, 관련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 있다. Alister McGrath의 복음주의에 관련된 또 한 권의 책인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지성’이 바로 그런 류의 책이 아닌가 싶다.


– 이 책의 원제이다. 제목으로만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복음주의의 지적인 토대와 정합성, 학문적 타당성을 비판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방향에서 고찰함으로써, 복음주의가 전통적으로 학계에서 보였던 부정적, 소극적 태도를 극복하고 주복할 만한 사상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저자는 복음주의의 신학의 지적 정합성을 다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권위를 이야기하고는, 현대에 복음주의와 경쟁 선에 있는 후기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 등을 다룬다. 하지만, 내공이 많이 부족한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후기 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저자도 ‘지켜보자’고 했지만, 그들의 사상을 왜 후기 자유주의라고까지 불러야 하는 걸까? 그저, 스탠리 하우워어스를 후기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언급한 것에 조금 놀랐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눈에 띈 한가지는, ‘계몽주의가 복음주의에 미친 영향’에서, 현재 내가 하고 있을 법한 성경공부를 계몽주의의 영향에 의한 ‘다소 냉랭하고, 초연하며, 합리적으로 성경게 접근하게 만드는 영성관’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성경을 읽으면서 감정을 개입시키거나 인간의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고, 본문에서 주제를 뽑으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상당히 계몽주의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늘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내용은 눈으로 확인한 기쁨을 누렸다고나 할까. 그나 저나, 이런 배경에서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먹으라’같은 책들이 나오게 되었지 않을까 싶다.


“축복의 혁명”, 박철수, 뉴스앤조이, 1990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말은 기독교적 축복관을 갖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축복,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주시는 복과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성경이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축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무엇보다도 회개는 복의 내용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뀌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사도바울을 지금까지 자신이 자랑으로 여기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회개한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중에서)


기독교 서적 사이트에 들러 베스트셀러 순위를 둘러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몇년동안 그 현상이 더 두드러지지 않았나 싶다. 성경적인 복과 세상의 복을 구분해 내지 못하는 책들이 지속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 상황 속에서, 그런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책들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기쁨도 더 커지는 웃지 못할 일도 경험한다. ‘축복의 혁명’은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어쩌면 작금의 한국과 미국의 주류 기독교에는 더 필요한 메세지인지도 모르겠다. 물질주의의 물든 기독교, 종교화하여 교회 건물과 목회자를 신성시하는 왜곡된 기독교의 문제점을 대단히 쉬운 필체로 이야기한다. 논조가 다소 강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꼭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