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


코스타 연차 수양회가 있는 여름이 지나간다. 코스타 준비와 마무리에 바쁜 여름, 유난히 책을 읽기에는 쉽지 않은 시기인 것 같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읽은 몇 권을 책을 짧게 나누고자 한다.


“바울의 공동체 사상”, Robert Banks, IVP, 2007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자주하는 질문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이 책에서 로버트 뱅크스가 그 일을 해 준 것 같다. 로버트 뱅크스는 공동체에 대한 여러 저작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나 가정교회에 대한 저술은 탁월하다. 건강한 공동체에 대한 기본 자료로써 탁월하다 하겠다. 하지만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딱히 새로운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 부흥과개혁사, IVP, 2007
‘부족한 기독교’를 논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한 책인지 싶다. 방향과 의도는 참 좋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자료면에서 많이 아쉬웠다. 현대 기독교는 저자가 지적하듯이 심리학에 많이 오염되어 있고, 자기 최면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지적이 꼭 필요한 시점임도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가 심리학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심리학이 아무리 훌륭한 과학이라고 할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보다 그 어떤 것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저자가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는 논리 전개는 보기에 안스럽기까지 하다. 현대 학문의 흐름을 전혀 읽어 내지 못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대한 평가를 비롯한 여러 건강한 접근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저자가 약속한 두번째 세번째 책을 기대해 본다.


“십자가와 칼”, Gregory A. Boyd, 한언, 2007
“The Myth of a Christian Nation: How the Quest for Political Power Is Destroying the Church (기독교 국가에 대한 공상 – 정치 권력에 대한 추구가 어떻게 교회를 파괴하는가)” – 이 책의 원 제목이다. 제목 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설교하면서, 저자의 교회에서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교회를 떠났단다. 미국 대선을 통해 들어난 기독교인들의 기독교 국가에 대한 환상을 성경적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기독교 국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힘은 십자가의 섬기는 힘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부제에는 ‘위에 서는 힘, 아래에서 섬기는 힘’이라고 되어 있다. 기독교 평화주의의 색깔이 많이 배어 있는 건강한 책이라고 하겠다.
Gregory Boyd는 ‘Letters from skeptic’에서 무신자 아버지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서, 그의 신앙을 가볍게 나마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책의 논리에 참 많이 동의했었다. 그의 건강한 생각을 다시 접하며, 그의 다른 책을에 대한 호기심이 정말 커진다.


“공감적 책읽기”, 김기현, SFC 출판부, 2007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또 그런 책을 만나는 일은 늘 반갑다. “공격적 책읽기”라는 책이 더 어울리는 듯한 김기현 목사의 ‘책 권하는 책’이라는 “공감적 책읽기”이다. 괴물과 계속 싸우다 보면 스스로 괴물이 되어 있을 수 있다며, 좋은 책을 소개해 주어 고맙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지 않는 한, 어떤 책이 자신의 마음에 꼭 들 수 있을까. 책을 권하고자 쓰여진 이 책이었지만, 중간 중간 보이는 날카로운 비판들은 나로 하여금 유쾌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 이야기”, 조은숙, IVP, 2006
결혼에 관한 좋은 책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을지 싶다. 결혼이란 것이 워낙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그런 모습을 일일이 다 묘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런 결혼 생활의 공통분모만 모아서 이야기하자면 너무 이론적이고 피상적이 되기 쉬우니까 말이다. 결국, 결혼에 대해 말하려면 자신의 생활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풀어가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런 용기를 가지고 진심 어린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 바로 조은숙씨의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 이야기”이다.
물론 나와는 사뭇 다르기에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저자의 진실이 배어 있는 고백들을 그렇게 가볍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래리 크랩의 ‘결혼 건축가’를 이론서로 함께 보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안의 죄 죽이기”, 존 오웬, 브니엘, 2007
17세기 청교도인 존 오웬은 어떻게 ‘내 안에 있는 죄’를 죽일 방법을 보여줄까. 혹시 색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닐까? – 이 책을 손에 들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하지만, 죄를 죽이는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자신 안의 죄에 대해 더 민감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신앙의 선배의 모습을 통해, 내 자신이 얼마나 죄의 부분에 대해 스스로 너그러웠었는지 깨닫게 해 주는 귀한 책이었다. 결국 죄에 대해 민감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의지하고 깨어있어야 함을.


“교리공부가 즐거운 네가지 이유와 삼단계 방법”, 백금산, 부흥과개혁사, 2007
1000원!! 소책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부들 다니던 90년대 초반, 주일 성경공부를 마치고나서 교회 주변의 서점을 찾아 선배들에게 책을 소개받고 읽고 토론하던 일이 하나의 일상이었던 시절, 서점의 한편에는 소책자만을 위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었다. 작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담고 있어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던 책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송인규 목사의 ‘죄많은 이세상으로 충분한가’, 마이클 위베의 ‘소그룹을 인도하려면’같은 소중한 소책자들이 있었다. 이 책은, 흔히 생각하듯이 교리가 그저 머리로만 끝나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됨을 강조하는데, 일전에 읽었던 맥그래스의 책 ‘기독교 교리 이해’와 비슷한 면이 많은 책이다.


“주기도문 강해”, 김세윤, 두란노, 2000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요약해 놓았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요구는, 그 당시 새로운 흐름이 된 예수님의 운동을 정의해 달라는 요구였고, 그에 대해 예수님은 대단히 간략한 기도문으로 자신의 방향을 정리해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짧은 기도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이 농축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청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화되는 것이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청원과 죄 용서의 청원, 그리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원이고 말이다.
주기도문에 관해서 여러 책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김세윤 박사의 책을 읽고는 주기도문만으로 깊은 기도가 될 수 있었다. 꼭 읽었으면 하는 책.


“바울신학과 새관점”, 김세윤 두란노, 2003
꽤 예전에 사놓았던 책이다. 하지만 읽어야겠다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아서인지 책꽂이에만 꽂여 있었던 책이다. 하지만, 이번에 김세윤 박사가 이 책을 통해 반박하는 바울의 새관점 (New Perspective)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또 이 책을 읽을 강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저자에 의하면 최근 신학계에서는 바울의 New Perspective와 제 3 역사 예수 운동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두가지의 주제에 공히 N T Wright가 있는데, 이제 N T Wright의 책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쉽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면 한가지 의문만 크게 되었다. 정말 유대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정말이지, 내가 아직까지 배워온 것과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 계속 공부를 하면 알 수는 있게 될까?


“바울의 생애와 선교”, William Barclay, 종로서적
정말이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어 읽었다. 대학 3학년 시절 처음으로 맡았던 성경공부가 바울의 생애를 따라 읽는 바울서신이었으니, 그 당시 존 드레인의 ‘바울’이라는 책과 바클레이의 ‘바울의 생애와 선교’는 내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다시 읽어 보지만, 역시 바클레이는 역사적 배경과 흐름 속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는데는 탁월한 듯 하다. 자신이 자서전에서 이야기하듯이 새로운 신학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게르하르트 로핑크, 분도출판사, 1985
“세상 안에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메시야가 왔단말이냐?” – 유대교에서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부인하며 묻는 질문이란다. 이사야 2장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메시야가 오신 이후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나온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교회가 바로 이 세상에 대한 ‘대조 사회’로서 폭력과 전쟁이라는 세상의 방법에 대항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는 공동체로 존재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교회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예수님으로부터 바울, 그리고 고대교회의 교부들에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이 책은 출판사 (분도출판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천주교에서 나온 책이고, 저자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독일의 신부다. 이책을 알게 된 것은 김기현 목사의 ‘공감적 책읽기’에서였지만, 직접 구입하게 된 동기는 2007 KOSTA/USA에서 김도현 교수의 ‘공동체’ 세미나의 추천도서 목록에서였다. 평소 적잖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인지, 공동체에 관해 추천되는 책들은 제법 많이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건 나의 나이브한 착각이었나 보다.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못볼 수 있단 말인지. 그저 개인주의화된 현대교회에 대해 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에 두신 참 의미를 조리있게 설명하고, 그 너머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난 천주교회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천주교의 책에서 평화주의에 대한 내용을 본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