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창 밖으로 물감들인 나뭇잎들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책이 고프다고 느낄 때 그때 볼만한 책 좀 없을까요? 글쎄요… 그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내용을 다룬 책들을 몇 권 짚어볼까 합니다. 딱딱하게 말해 소위 기독교세계관 관련 서적이랄 수 있겠습니다만 세계관이란 말이 하도 딱딱해서 이런 책들은 잘 팔리지도 않고 읽히지도 않는 듯합니다. 그래도 굳이 세계관 책 들을 소개하겠다는 건 단순한 아집만은 아닙니다. 그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중심에 이 ‘세계관’이란 것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란 얘깁니다.


아 주 쉽게, 개인적인 차원으로 말해서 기독교세계관이라는 것은 예수라는 분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그래서 그분처럼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하나의 생각의 틀, 행동의 틀이랄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끼어들어오는 차를 향해 욕을 하려다가 ‘나의 큰 죄도 용서를 받았는데 이 정도는 참아주자. 저 사람도 죄인, 나도 죄인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웃어넘긴다면 그건 바로 기독교세계관이 바탕이 된 반응이랄 수 있습니다. 굳이 세계관을 통해 복잡하게 분석해서 결정한 행동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유학이나 직장을 결정하는 대사에서부터 하루하루의 작은 의사결정의 순간까지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까’와 같은 틀을 갖고 임하는 것이 바로 기독 교세계관에 따르는 삶입니다.


이 런 생각의 틀, 행동의 틀이 저절로 갖춰지는 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가장 좋은 책은 바로 예수평전입니다. 유명한 예수평전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마가나 누가가 쓴 예수평전이 아주 좋습니다. (흔히 마가복음, 누가복음이라고 하죠) 전기를 읽듯, 길지도 않은 마가의 예수평전을 죽 읽어가면서 예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제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저자는 예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를 물어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한두 문단에 대한 집중적인 성경공부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예수평전을 독서하는 것이 바로 세계관 공부의 기본이 됩니다. 한글개역성경의 표현들이 익숙해서 식상하다면 영어판 예수평전을 읽는 것도 적극 추천합니다.


인 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관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을 넘어서는 좀 더 복잡한 얼굴을 갖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지, 낙태와 여성의 권리, 혹은 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등, 우리의 삶에는 다양하고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합니다. 그리고 분명 이런 이슈들에 대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이 이런 문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속 시원히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원리들에 기초해서 생각하는 틀, 행동하는 틀을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 세계관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훈련된 기독교세계관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기 독교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 잘 다니던 홍길동이라는 학생이 대학에 갑니다. 그리고 첫 학기부터 쏟아지는 무신론과 상대주의의 공격에 그리고 자기와는 다른 다양한 믿음들을 갖고 살아가는 친구들과 교수들에게 충격을 받으며 점점 신앙을 잃어갑니다. 남 얘기가 아니지요. 저도 대학에서 이런 혼란을 겪었고 지금도 겪는 중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세상에 눈감아버리는 것도 하나의방법이겠지만 그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를 규범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원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홍길동, 대학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제임스 사이어의 책은 여러 명의 대학신입생들이 겪는 혼란을 소설처럼 다루면서 중간 중간 다양한 세계관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얇은 책에 스토리를 따라 쉽게 읽히는데다가 캠퍼스를 무대로 유학생들이 겪는 문제랑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흥미가 더합니다. 원서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대학의 명칭까지도 의미를 담고 쓰여 져 숨은 재미가 있는데 번역서도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습니다. 대학시절의 방황과 낭만을 생각하면서 기독교세계관을 점검해 볼 일독을 권합니다. 제임스 사이어의 세계관 책으로는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이 잘 알려져 있는데요, 다양한 세계관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방식의 카탈로그라 하겠습니다. 70년대에 출판되었고 80년대에 개정되어서 조금 해묵은 감이 있지만 사전식 정리를 해보기에는 좋을 겁니다. 그 책의 원서 제목, ‘the Universe Next Door’도 의미심장합니다.


그 런데 기독교세계관이 정말 필요한 걸까요? 그것을 잘 역설한 책으로 송인규의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 가’라는 소책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입각해 이 세계와 인생과 문화 전체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삶의 자세 (구원과 직접 관련된 것이든 일반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든)를 확립 하는 기독교적 안목의 부재”, 그러니까 기독교세계관의 부재를 강조하면서 세계관 정립을 위한 지침들을 제안합니다. 세계관에 관련된 문제의식을 갖는데 좋을 것이고 소그룹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누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물론 책값도 저렴하고요.


자 신과 여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기독교세계관을 잘 다룬 책으로 폴 마샬의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라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의 원제목은 사실 ‘천국은 내 집이 아닙니다(Heaven is Not My Home)’인데 한국에 번역되면서 천국을 좋아하는 한국기독교에 맞게(?) 책제목이 약간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토론토의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가르치고 있는 폴 마샬은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명한 저술가, 강연가로 정치에 관련된 기독교세계관 책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야기중심으로 전개되는 책들을 통해 자극이 되었다면 좀 더 체계적인 세계관 책들을 읽어봅시다. 기독교세계관은 예수의 공생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기독교 안에 다양한 신앙의 칼라가 있듯 신학적 배경에 따라 세계관의 깊이와 내용에도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소개되어 세계관 운동을 불러일으킨 기독교세계관은 칼빈주의 계열 화란학파의 세계관이랄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고전을 꼽자면 라챠드 미들톤과 브라이완 왈쉬의 ‘그리스도인의 비전’을 들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경의 세계관을 채택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성경의 세계관을 창조-타락-구속의 세 가지 틀로 정리하면서 타락한 세상을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켜갈 것인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도 같은 맥락의 기독교 세계관의 틀을 잘 제시한 책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입니다. 이 두 책은 입문서로 소그룹에서 네댓 번에 걸쳐 스터디 하기에 좋은 교재이지요.


이 렇게 큰 틀을 제시하는 총론을 다루는 책들로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답을 얻기는 물론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세계관이 구체적으로 세워지는 각론들이 읽히고 쓰여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화라든지 컴퓨터게임이라든지 복제연구라든지 공교육이라든지 사회의 구석구석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성경의 원리에 맞게 답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씨름할 그리스도인들이 써가야 할 몫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 기본적인 세계관의 훈련을 지금부터 쌓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생각의 틀이 명확히 확립되었다고 해서 행동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쉽게 경험하듯이 보통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무엇이 옳은지 모른다면 아예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집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세상을 섬겨야할지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에 가을이 오면 성숙한 잎들로 물든 저 나무들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일 수 있을까요?


-  홍길동 대학에 가다, 제임스 사이어, 김성현 옮김, IVP


-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 폴 마샬, 김재영 옮김, IVP


-  죄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 송인규, IVP


-  그리스도인의 비젼, 리차드 미들톤 & 브라이언 왈쉬, 황영철 옮김, IVP


-  창조 타락 구속, 알버트 월터스, 양성만 옮김, IVP


-  기독교세계관과 현대사상, 제임스 사이어, 김헌수 옮김, I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