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란 무엇인가?


흔히 근본주의의 시조라고 불리워지는 메첸(Machen)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붙여진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호칭을 거부했다. 그는 “왜 교회의 위대한 신앙이 하나의 주의(-ism)라고 불리워져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우리는 마찬가지 이유에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칭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칭을 선택한 이유는 복음적 정신이 곧 기독교 정신의 핵심임을 믿기 때문이다. 실로 “복음적 정신없는 기독교는 역사적 실체를 가진 운동이 될 수 없다.”(Kenneth S. Kantzer)


복음주의 신앙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시작된다. 다드(C. H. Dodd)는 복음의 케리그마에 대하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새 시대가 도래한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그의 재림에 의하여 심판주와 구속주 되심,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성령과 구원의 선물이 수여됨“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복음의 정신은 마틴 루터(M.Luther)에 의해 점화된 종교개혁에 의하여 1) 오직 은혜 (Sola Gratia) 2) 오직 믿음(Sola Fide) 3)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4)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us)라는 고백으로 나타났다.


바울은 로마서 1:2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5:1-4에 의하면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심”의 사건을 뜻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까닭이다(롬4:25).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의 좌익은 그리스도의 인격(Person of Christ)을 강조하였고, 반면에 우익은 그리스도의 사역(Work of Christ)을 더 많이 강조하였으나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역사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신앙의 공통분모를 찾았다.


때때로 복음주의 신앙은 근대적 신앙운동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하나 복음 주의 신앙의 중요성은 현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 비역사적 신앙을 지닌 복음주의자들은 피상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버나드 램(Bernard Ramm)의 지적에 우리는 동의하며, “고대교회와 중세교회에 대한 무관심은 복음주의의 역사를 16세기 이후로 밀어 낸다”고 경고한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의 충고에 우리는 공감한다.


복음주의의 역사적 전통은 신비주의적 동방교회보다 교의주의적 서방교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은 단순한 로마 카톨릭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복음적 케리그마에로의 회복운동이었다고 믿는다. 개혁자 칼빈(Calvin)은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프랜시스 1세에게 헌납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쟁이 교부들의 권위에 의해 판명된다면 대부분의 논쟁에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고 천명하였다. 개혁자들은 대체로 말씀이 교회보다 선행한다고본 성서론,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한 이신득의에 근거한 구원론, 은혜의 분배자나 관리자가 아닌 은혜의 도구로써의 교회론에 근거하여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다.


20세기 초의 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에 발흥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신앙의 본질을 성서나 신앙고백에서가 아닌 신께 대한 절대의존감정에서 찾은 슐라이어마허(Frede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① 종교의 절대성이나 초자연성을 회의하고 ② 자연과 은총의 구별을 제거하고 ③ 기독교 계시의 유일성을 포기함으로,리출(Ritschl, 1822,1899)에 이르러서 보편구원론(혹은 만인구원론)의 길을 열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1909년에 “The Fundamentals”라는 책이 출판되어(1917년 Los Angels Bible Institute에 의하여 재판) 오늘날의 근본주의 신학운동이 출범됐는데, 이 운동은 당시에 ① 성경의 무오성 ② 신뢰성 ③ 진정성 ④ 충족성을 변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 후의 근본주의자들은 대체로 ① 성경의 무오류 ②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③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④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 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신앙고백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근본주의는 그 전투적 성격 때문에 적지 않은 문화적, 윤리적 과오를 범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① 개인 경건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② 신앙을 강조한 것에 반하여 전통을 포기한 것 등을 비판하였다. 자신이 복음주의자인 케네스 칸저(Kenneth S. Kantzer)는 ①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 ② 한사람이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식으로 기독교 윤리를 단순화한 점 ③ 종말론에 대한 좁은 해석으로 분리주의와 패배주의를 가져왔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근본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분파를 살펴 보면 ①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②세대주의적 복음주의 ③ 보수주의적 복음주의 ④ 개혁주의적 복음주의 ⑤ 오순절적 복음주의 ⑥ 웨슬리안적 복음주의 ⑦ 전통적 복음주의 ⑧ 진보적 복음주의로 대별할 수 가 있을 것이다. 1942년에 형성된 NAE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 o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 의하면 ①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신학사상의 대립을 첨예화하지 않으며 ② 종말론에 대한 교의적 입장을 이슈화하지 않고 ③ 비본질적 교리문제에 대하여 자유할 것 ④ 자유주의 신학을 거절 ⑤ 성경해석에 있어서 융통성 있는 이해를 촉구하고 ⑥ 현대학문의 결과를 적극 수용하고 ⑦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사회윤리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2차대전후 에드워드 카넬(Edward Carnell), 해롤드 오켕가(Harold Ockenga), 해롤드 린셀(Harold Lindsell), 윌버 스미스(Wilbur Smith), 칼 헨리(Carl Henry),케네스 칸저(Kenneth Kantzer) 등 신학자들은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과 함께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를 중심으로 소위 자유주의를 경계하고 근본주의를 반성하면서 신복음주의로 일컬어진 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소극적으로는 세속화를 극복하면서 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의 성숙한 사회적 표현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들이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앙의 현대적 특성으로는 ① 성경의 무오성과 복음정신의 수호 ② 비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 ③ 학문과 사회에 대한 관심 ④ 교회의 역사성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이 대표하는 가장 최근의 신앙고백은 1974년도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던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채택한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역사적 토양에서 자라난 복음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적 크리스찬(World Christian)과 한국 크리스찬(Korean Christian)의 이상을 함께 간직하며 로잔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