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라는 주제로 모였던 2004년 코스타 강사로 참가하셨던 신 국원 교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다소 늦게 게재되지만, 신 교수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집필 중이라고 언급하신 책 ‘변혁과 샬롬의 대중문화론’은 이미 출판되어, 2005년 학원복음화협의회 추천도서에 선정되는 등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신 교수님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신 국원이라고 하구요. 총신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과 기독교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이하 ‘기윤실’)과 문화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그 결과로 정보통신 윤리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바나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연구원 자격으로 와 있구요. 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문화 연구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2004년 9월부터는 다시 한국에 가서 교직에 복직할 예정입니다.


교 수님의 프로필을 보면 1990년부터 1994년에 미시간 대학에서 지역교회 목회를 하셨고 총신대 신학과의 철학과 교수를 하고 계시고 기윤실 문화 소비자 운동 위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걸어온 길이 다양할 것도 같습니다. 교수님의 걸어온 길이 궁금합니다.


저 는 일관적인 관점으로 공부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면서 그때 논문이 ‘사회학적인 문화론’이었습니다. 웨스트 포인트 신학교를 다니면서는 문화 신학 쪽에 관심이 있었고 졸업 논문으로 ‘일반 은총론의 문화적 의의’였는데 신학하면서 문화적인 것을 했고 철학하면서도 현대 철학을 했고 해석학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해석학의 문화적 의의를 했습니다. 목회는 전도사로 15년 가까이 했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앤아버에 있는 교회에서 전도사 신분으로 섬기다가 목사 안수를 받고 4년간 목회를 했고 한국에 되돌아가서도 본교회에서 청년부 섬겼구요. 지금은 분당 중앙교회에서 협동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문화 일반론에 대한 관심이 있고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협동 목사를 하고 기윤실 문화 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통해 대중 문화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는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코스타 여러 번 오셨다고 하시는데… 코스타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시나요?


처 음부터 올 수 있었는데 유럽에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캐나다에 있었는데 거리도 멀고 돈 없어서 못갔죠. 그러다 한국에 되돌아오면서 그 때부터 다시 참여하게 되었죠. 내년에도 일리노이 대학과 연구를 계속하기 때문에 학회 참석하면서 참석할 것 같습니다.


2004년 코스타 세미나 때 ‘기독교 지성’이라는 주제를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10 여 년 전에 왔을 때 한국가기 전에 코스타 왔을 때 했던 것이 그런 주제였어요. 관심가지고 있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철학이고 해서 택하게 되었고요. 예전에는 아무게 철학의 기독교적 의의,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기독교 지성에 대해서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택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지성화 되는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있는 것에 대해, 코스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기 독교 지성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 하면 일반적으로 어렵고 재미없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아서 코스탄들의 호응도도 낮고 관심이 별로 없는데요. 특별히 코스탄들은 하나님께서 공부할 수 있는 많은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이 어떤 영역이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지성의 제자도의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세미나에서는 제 방법과 생각도 같이 나눌 것이고 그 고민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어땠는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참석한 분들 생각도 듣고 할 계획입니다. 결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공부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그런 취지죠.


교수님 하면 떠오르는 것이 세계관입니다. 그 연장선 상에서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신 어떤 계기가 있나요?


세 계관 하면 문화인데 세계관을 기초로 해서 문화가 생기는 것이고, 문화가 세계관을 기초로 반영을 하고 있거든요. 세계관은 신앙에 기초한 가치관, 세상을 보는 안목이잖아요. 세계관은 두 가지 면이 있는데 ‘World View’는 ‘View of the World’인 동시에 ‘View for the World’가 있죠. 복음에 기초해 세상을 보면서 계속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배우면 각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모습이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는데 저의 경우는 그것을 문화 운동으로 하고 있고요. 문화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명에 입각해서 대중 문화를 바라보니까 그렇지 않고 퇴폐 문화를 조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화 비판이 아니라 건전한 문화.. 하나님 기뻐하시는 문화로의 회복을 위해서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문화와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문화 운동을 통해서 문화가 건전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말로 하는 이론가가 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 문화는 대중의 것이고 대중들의 책임입니다.


기 윤실에서 문화 소비자 운동을 하시면서, 영화 평가 관련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하나하나에 대해 솔루션을 달라고 하지는 말아라 그것은 개개인이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세계관 훈련을 하면서 얻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십니까?


그 런 쪽에 관심을 가지면서 결론으로 나온 것을 책을 쓰게 되었는데, 영화를 바라보면서의 일관된 기준이 필요해요. 영화도 예술인데 예술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하겠다. 하나의 예술로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대중 문화는 사회적인 맥락,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죠. 그럴 때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세계관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친 대중 문화의 경우 용기있는 실천적인 비판, 반대 운동을 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건전한 대안 문화를 생각해볼 수 있죠. 비평에는 심리적 비평, 사회 정치적 비평, 윤리적 비평이 있는데 이것들은 따로 따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이론이고.. 이것을 통합하는 통합적인 비평이 필요한데 그걸 저는 세계관적인 비평이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세계관은 학문과 달리 분석되지 않은 가운데 이 작품이 도대체 나에게 인격적으로 무슨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주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을 통해 통합적인 비평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요?


좋은 질문인데요. 비평을 크리스찬 비평, non-크리스찬 비평이 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다른 사람의 비평을 여러 편 먼저 본 후에 영화를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많이 틀립니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들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부분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거짓말’을 고발할 때에, 섹스가 너무 많아서 고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흔히 그렇게 알고 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저희들이 굉장히 오해도 많이 샀는데,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영화 수입에서, 검열의 단계가 철폐되고 다음 단계로 가는 단계에서 파격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 제일 큰 의미이거든요. 그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더 심한 쪽으로 당연히 가는 것이고 그 영화가 가지는 그 당시의 사회적인 파장은 음란물의 기준과 영화 구도를 잡는데 영화계가 독단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 영화 감독이 그것을 의도하는 면도 있었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적어도 사회의 대화자로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공적인 채널로 얘기할 수 없었고.. 그럴 때 운동이 필요합니다. 사회 의식도 환기하고 영화계로 하여금 이런 영화가 문제가 될 때는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시민 의식이 우리나라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전략으로 하는 것이지.. 영화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 몇 편 보고 음란물이다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먼저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구요.


다 음으로 영성과 도덕성 비판을 하기에 앞서서, 결국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서 폭력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거룩함에 대한 회복이 없이는 결국 도덕성에 대해서 비판할 수 없습니다. 기초 없이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죠.


교수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 서서 한 알의 복음을 위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인데 그러면 그런 채널은 있나요?


채 널은 만들어 가야죠. 방향의 측면에서 교회만큼 그것을 하는데 인프라가 충분한 곳이 없습니다. 구역 예배 있고 새벽 기도회도 있으면서 많이 모이고 많이 공부하고 그런 곳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게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인프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식, 비전이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 의식은 세계관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깊이 있는 신앙, 성숙한 신앙이 한국 기독교 성장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다음 질문은 기윤실의 문화 소비자 운동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오해도 많이 있는데 전달 방식에 대한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 윤실 운동이 오해를 나을 소지가 있어요. 반성할 부분도 있는데.. 이론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도 상대가 있기 때문이죠. 예술을 하시는 분들도 깊이 있는 삶을 통해서 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인데, 정치적인 함축도 우발적이거나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자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윤실이 교회를 대상으로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시민 양식에 부합한 운동을 하는 것인데 사실 그런 쪽이 좀 부족했습니다. 기윤실 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나라 시민 운동 전체가 시민들이 이해를 하는데 못하도록 했다면 그 때 그 때 대처를 해야 하겠죠. 즉 설득력 있는 시민 의식을 제시하고 홍보하고 시민들과 같이 움직여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하셨던 ‘대중 문화 이해와 비평’이라는 책은 언제쯤 접하게 되나요?


2004년 8월이나 9월쯤에 IVP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어려운 책입니다. 한 500페이지가 넘구요. 기독교에서 대중문화를 볼 수 있는 아주 기초 이론적인 책입니다.


책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1 장에서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특별히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기윤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상식에 입각한 집합이고 신앙에 입각한 정의의 집합이 기초가 되었다고 봐요. 제가 느낀 것은 상식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중 문화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거나 소박한 생각은 아니기 때문에 그 뒤에 숨어있는 대중 문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해요. 처음에 시작은 기윤실을 비롯해서 상식에 입각한.. 기윤실도 상식에 입각한 문화 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류의 딱 보면 안다는 식의 비판에 대한 반성을 위해서 적어도 형식이 미국 쪽이 앞서가니까 미국 안에서도 기독교인들이 대중 문화를 비판해 온 자세가 있거든요. 무조건 안 된다. 딱 보면 알고 틀려먹었다. 그런 입장이 있고 대중 문화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도 있어요. 영화는 접할 수 있으면 개혁적이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소개했습니다.


2 장부터는 대중 문화 이론입니다. 본격적인 대중 문화 이론이 시작되는 19세기 말 부터를 살펴보면서 대중 사회란 무엇인가? 엘리트들이 대중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반발하고 어떻게 비평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심리적으로 예술로서 대중 문화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이죠. 예로 대중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한다는 비판이 있구요. 또 대중 문화의 거대 경향성 때문에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고요. 이 관점은 기독교인들의 비판이 아니고 실제 대중 문화 연구가들의 비판이거든요. 그것을 소개하고 나서 결국에는 기독교인들이 대중 문화를 볼 때 공평하게 볼 수 있도록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죠.
두번째는 정치적인 비판인데, 그것이 오늘날 대중 문화 이론의 주류죠. 맑스 이론에 근거하거나 포스트 모던에 근거하거나 그렇죠. 아주 어려운 이론이에요. 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현실 대중 문화 이론의 주류로 한 장을 썼습니다.
세번째는 대중 문화의 윤리적인 비판입니다. 아직도 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기독교 이론이 아니고요. 대중 문화 비판을 할 때 윤리적인 차원에서 집중하는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참고를 하는거죠.
그 다음에 이 세 가지 부분들이 따로따로 노는 경향이 있어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세 가지가 합쳐지고 않고 따로 따로 논다구요. 이것을 철학의 해석학적인 안목에서 종합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영화를 볼 때 전체 메세지가 중요하잖아요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영화 같은 경우는 분석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 평을 몇 편 정도 찾아서 읽어 보구요.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애기해보고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도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러다가 이것은 도대체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할 때는 같이 운동도 할 수 있는 거죠. 사실 입 소문이라는 것이 영화를 흥행하는데 굉장히 많이 작용하거든요.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친구가 친구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실제 영화의 흥황은 일주 후의 입 소문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거든요. 그런 의식이 시민 사회에 있으면 우리나라의 문화를 조금 더 건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의식을 쌓으면 좋겠다는 자극을 주기위한 책이에요.


어려운 책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차원에서 대중화되기는 좀 어려운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를 위한 책일 수 있어요. 저는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고 되도록이면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무거운 주제라서 모든 분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하는 이유는 일단 이론이 필요하니까 하고, 이론이 현실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에 이론이 필요한 것인데 이론이 없으면 시행착오가 너무 많고 시행착오를 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공동적인 작업을 통해서 제 자신이 점검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구상 중입니다만 기독교 세계관 책이 같이 나갈 것이거든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 7-8개 정도의 영화 장르별로 이 책에서 말했던 이론으로 점검해보는 후속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다 음 질문은 다시 원론적으로 돌아가려는데요. 기독교 세계관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접근은 어렵거든요. 그리고 이게 과연 이런 특정성이 들어간 것인가하는 의문도 듭니다. 인간의 타락 이전에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이라는 관점을 생각해볼 때, 타락 이후인 지금도 그 명령이 유효한가? 그리고 그 명령이 타락 이후에도 존재하는가? 만약 타락 이후에 그 영역이 홀드가 된 상태라면 신앙과 학문의 통합도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기 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은 결국에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로 보는 관점의 회복이거든요. 죄로 인해서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눈을 다시 뜨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생이죠.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본문이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는 안목의 재조명이란 말이죠. 세계관은 안경이라고 봐요. 누구나 다 안경을 쓰고 있는데, 창조의 진리, 타락의 진리, 구속의 진리라는 3중 안경이라고 생각해요. 렌즈가 세 개가 있는 세 개의 망원경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창조의 진리, 타락의 진리만 가지고 기독교 세계관이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타락의 안경만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기독교인도 더러 있어요. ‘죄 많은 세상 내 집 아니다’라는 입장은 타락이 강조된 입장이고요. 구속만 강조하면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생기죠. ‘왜 구속하셨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는데 그건 좋은 신앙 고백이 아니에요. 적어도 예수 믿고 거듭났으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구속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10년쯤 지나면 알아야 하죠.


기 독교 세계관은 싹트는 비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완성하십니다. 그 사이가 역사인데, 이 역사가 빠진 사람들은 불행스럽게도 타락이 있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창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창조한 것을 인간에게 맡기시지 않습니까. 창세기 1장, 2장과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을 보면 상당히 대칭적입니다. 한쪽은 정원이고 자연의 모습이고 한쪽은 거룩한 성으로 문명이 있는 도시적인 분위기잖아요. 이처럼 갈등이 있는데 갈등 가운데에 낀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락입니다. 위임 맡은 자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자기의 뜻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이 생깁니다. 타락은 단순히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거역뿐만 아니라 긴 함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경향으로의 문화가 생기게 됩니다. 결국에 그렇게 되면 인간의 문화는 파괴가 되요.


타 락 이후에 가장 진노하시고 심판하신 큰 사건이 노아 시대의 홍수인데요. 노아 시대의 홍수 끝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에 살인하는 자를 엄벌하신다고 말씀하세요. 살인의 핵심 즉, 그 안의 잘못, 악은 하나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벌하신다는 것이구요. 왜곡되고 뒤틀렸지만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증이구요. 이 말은 타락 후에도 문화 사역자로서의 가능성을 어떤 면에서 여전히 말해주죠. 그 다음에 창세기 9장에 홍수가 끝난 다음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데요. 크리스찬들의 잘못이 있는데, 이것을 창조 명령, 문화 명령이라고 하는데 이것과 상충하는 부딪히는 것으로 지상 명령을 들고, 우선 순위에 있어서 충돌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 명령은 한가롭고 여유로울 때 하는 것이고 제자 삼고 회개하고 천국 가는 지상 명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몰라요. 삶이라는 영역이 문화인데요. 한 사람이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활동을 통해서 다음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결국에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고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회복이에요. 구속이라는 것은 창조의 온전한 회복입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신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키워드는 하나님 나라죠.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포함하는, 교회를 전초 기지로 삼는 훈련소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비전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 하나님의 문화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초를 포함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세상을 말한다고 볼 수 있나요?


그 렇죠,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느냐 하는 데에 있지 카테고리는 아니죠.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죠. 하나님 나라 속에 교회가 있는 거죠. 흔히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교회는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없거나, 교회는 많아지고 커져가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적어져 가는 현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집니다. 신약 성경에 교회는 두 번 나오지만 하나님 나라는 백 번 이상 언급되고 있는데, 그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로 나가는 것이, 사실 문화에서 중요한 열쇠는 지성입니다. 학문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를 여는 도구이에요. 무엇을 해도 생각없이 하는 사람이 없고 문화는 생각의 산물인데 그 중에 가장 첨예화되고 고도화되고 조직화된 것이 학문 아닙니까? 코스타 같은 경우에 지성의 제자도는 필요하고, 물론 그것은 신앙 고백에 입각한 지성의 제자도죠. 신앙이 중요하죠. 그것이 기초이고요. 그럼 그래서 뭘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질문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야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코스탄들에게 당부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여 기 오시는 분들은 다 갈급한 마음이 있고 준비하시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오시는데, 중요한것은 지성인에 부합한 책임감 같아요. 하나님께서 나만 위해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모든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 선물은 항상 하나님의 소명과 함께 온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코스탄들이 은혜를 받으면 소명도 같이 생각하는.. 우리 함께 성숙한 기독교인이 됩시다! 라고 같이 나누고 싶네요.


코스타 기간 동안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오래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