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0 Chicago 코스타 보이스에 실렸던 황병구 편집장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코스탄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전 올해로는 네 번째 시카고 코스타에 왔습니다. 지역교회 예배 사역에 대해서 두 번 강의했었고, 시간경영에 대한 강의는 2007년에 이어서 이번이 두번째네요. 현재 제가 하고있는 일은 비영리 컨설팅입니다. 조직, 경영, 재무 이런 일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고, The Bright Foundation (한빛누리) 선교 재단의 실무책임자로 있습니다. 하나 추가하자면, 월간 복음과 상황의 편집 위원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제어계측 공학을 전공하시고, 공연 연출, 컨퍼런스 운영, 이벤트 기획, 글쓰기, 노래 짓기, 프로듀서 일, 컨설팅 등 정말 많은 일을 해 오셨고, 흔히 말하는 career를 여러 번 바꾸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결정들을 하셨는지요?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코스탄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진로문제로 상담요청하는 분이 꽤 있었어요. 제가 롤모델이 되기에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고 심지어는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진로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 자기가 충분히 기도하고 계획한 대로 성실하게 하나님 뜻을 따라가는 케이스가 있는 반면, 저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할 것 같습니다. 전공과는 관계없는 첫 직업을 가졌었고, 코보의 사전조사에는 빠졌었지만, 한때는 노동조합 사무국장으로도 일했었는데요, 기독교인으로서 노동조합 사무국장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요? 제가 택했던 진로들은 대부분 저의 본성과 반하는 선택이었는데, 그것은 마음에 약간의 부담을 주신 바를 어떤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선택지를 주셨을 때, 이를테면 나의 본성에 반하는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하는 부담으로 쉽지 않은 선택들을 반복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의 케이스를 따라 하지는 마시고 그 정신을 존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주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고 긴 호흡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분들도 있어야겠고 나의 원함보다는 나의 본성에 이끌리기보다는 그 반대의 선택을 고려해서 기도해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 혹은 일과 신앙의 통합은 크리스천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제이고, 매일 당면하는 문제입니다. 본부장님의 이력을 보면,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기독교 서클안에 계시다가 점점 비기독교 서클과의 접점을 넓혀 나가고 계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코스탄들의 대부분은,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career를 시작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일과 신앙의 통합” 을 미리 고민하셨던 신앙의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합니다.
우리들의 일과 신앙을 통합하는 문제는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하는 부분인데 그것은 마치 우리의 성화의 과정과 비슷하게 ‘늘 이루어가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 정직한 답변이 아닐까 합니다. 도성과 도성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때, 인위적인 통합보다는 통역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에 대해 다른 도성에 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하나님의 도성에 거하기만 한 사람들도 다른 도성에서 일하는 이들에 비해 언어체계, 사고체계, 인적관계망이 서로 달라서, 그 가교를 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bilingual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그들의 언어로 설명해주면 좋겠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궁금증들을 우리의 언어로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이를테면 교회생활을 하더라도 우리는 형제, 자매와 같은 우리만의 언어체계가 있는데, 비단 그런 것뿐만 아니라 인문학, 철학, 과학, 경영학적인 모든 언어에 있어서 우리의 가치를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신앙서적, 성경을 비롯한 인문학, 철학, 과학 서적 등 여러 서적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도킨스가 하는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반박하기 위해 자연과학과 사회적 진화론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처럼요. 기독교인이면서 철학자이신 한 교수님의 증언 속에서도, 어떤 이슈를 놓고 자신의 학생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질 때면 은근히 크리스천들의 논리가 빈약한데 특히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통하는 언어로 논쟁을 벌일 때 안쓰러웠다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감격과 선포가 있어야 하지만 전략적인 bilingual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시간관리에 대한 세미나를 맡으셨습니다. 90년대에 크리스천 사이에서, 시간관리라는 주제가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세대가 바뀌었으니, 시간 관리를 말하는 context도 달라졌을 텐데요. 혹 차이가 있다면 시간관리의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세미나를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세미나 소개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세미나를 처음 시작할 때 늘 참석자들에게 일종의 양해를 구합니다. 세미나 제목만 보고 낚여서 오신 분들은 힘드실지 모른다고요. ‘그리스도인들의 시간관리’라는 타이틀을 보고 ‘난 공부도 하고 신앙생활도 해야 하는데 한정된 시간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다 낚였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난 왜 이렇게 형제, 자매 돌보는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내 앞가림도 잘 못하나’ 또는 ‘남들처럼 꼼꼼하게 플래너를 정리하고 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닌데’ 오히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은 약간의 해방감을 얻으실 수 있는 강의입니다. 90년대 이전 ‘7 habits’가 모든 사람의 표준이 될 때 우리에게는 일종의 자성이 필요했었습니다. ‘7 habits’는 귀한 가르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의 동기는 바로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앞서 갈까였는데 남들보다 앞서 가는 또 하나의 동기는 일종의 승리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겨야 한다, 승진해야 한다, 학위를 따도 좀 먼저 따자, 취업해도 고액연봉이 좋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목적과 동기에 있어서 약간의 윤색만 됐을 뿐 동일함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의 패러다임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동기의 문제를 다룹니다. 왜 시간을 다루려고 하느냐는 거지요. 제 강의는 시간강의의 탈을 쓴 ‘제자도 강의’이고 자기계발을 빙자한 ‘자기 부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가 관계중심 시간경영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시간관리는 나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도 나홀로 인생살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시간관리에 있어서 인격적인 부분에 좋은 기록을 남기고,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내용을 책과 강의에서 다루고 있습니다.기꺼이 낚이실 분들만 오시길 바랍니다.
코스타의 지난 24년간의 동력을 꼽자면, 복음, 민족, 선교, 삶과 신앙의 통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대에 코스타가 잃어서는 안 될 것과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질문을 주셨네요.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자면, 코스타의 귀한 전통 중 하나가 대단히 자발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자발성이 신앙 선각자들의 기여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는 유학생들의 자각과 젊은이들의 자기인식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끌고 온 동력이나 에너지도 학생들의 자발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코스타가, 우리가 가서 은혜 받고 공급을 받는 곳, 가서 기댈 곳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코스타 참석하시는 분들이, 코스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라는 인식과 우리가 일구어나가야 할 다음 과제를 바로 우리가 직접 여쭈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영양가 있는 연합수련회로 안착할 가능성이 있어서 조금 더 ‘젊은 세대들의 자발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40-50대 리더쉽들이 대외방향성 있는 정신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20-30대의 목소리 또한 반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잃어서는 안 될 것은 ‘빚진 마음’입니다. 유학할 수 있는 지적능력도 주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먼저 맛볼 수 있는 여건과 기회도 허락하시고 TOP까지는 아니더라도 저희가 적어도 중간리더쉽까지는 할 수 있는 목표와 능력을 주셨잖아요. 빚진 마음을 잃지 말고 혹 리더가 된다면 홍정길 목사님 말씀처럼 섬기는 리더쉽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두번째 세번째 포지션에 머물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우리가 상위 2-5%권에 들지 않고 다른 95%의 삶과 비슷해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빚진 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유일하게 이어 줄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빚진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