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과 의공학협동과정에서 수중음향과 의료용초음파를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부터 해외장기연수로 1년동안 미국 남가주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의공학과와 Doheny Eye Institute에서 40 MHz 이상의 고주파 초음파를 이용해서 안과관련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해양공학과(Ocean Engineering)로 유학을 와서 수중음향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으로 옮겨서 2002년에 의료용 초음파 분야로 음향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남가주 대학에서 1년동안 research associate으로 있다가 2003년 제주대학에 임용되었습니다. 저는 유학생활동안1998년을 제외하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2004년을 제외하고는, 감사하게도 1996년부터 올해까지 계속해서 미국 코스타를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조원과 조장, 그리고 간사와 강사로 코스타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여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충청북도 괴산의 샛골이라는 그 당시 16가구밖에 없었고 교회도 없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11살까지 그곳에서 자라면서, 외지에서 우리마을로 이사온 한 아주머니가 옆 마을에 있는 교회로 매일 십리 정도를 걸어서 새벽기도회를 다닌다는 얘기(그래서 미친사람 같다고 하는 부정적인 얘기)를 들었던 것이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대해 접했던 사실입니다. 5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가까이 살던 친척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느날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가는 날 이름을 적고 출석 체크를 해서 그 후로 계속해서 나가야 되는 줄 알고 계속 다니다 보니 아직까지 다니고 있지요^^. 중고등학교 시절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마냥 즐거웠던 기억들 뿐입니다. 탁구, 배구,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과 성가대와 문학의 밤을 통해서 음악과 문학과 연극 등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거의 교회에서만 가능했었던 모든 예술 문화 활동을 교회 학생부 중심으로 접하며 누리며 즐길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주로 들었고, 수양회를 통해서 나름대로 신앙이 싹트고 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책을 읽었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한 두번 성경책을 읽으려고 했다가 너무 어렵고 이해도 안 되어서 포기했던 기억만이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고2 겨울방학 동안에 교회에서 예수전도단의 영향을 받은 한 집사님이 제자훈련을 하셨고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한 성경공부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얄팍하게 쌓아왔던 신앙적 가치관으로 대학에 와서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파도처럼 몰려들어오는 사회부정과 부패와 독재와 광주항쟁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굉장히 많은 갈등을 하다가 88년 방위를 하면서 현대인의 성경을 사서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때 읽던 성경을 통해서 내가 그때까지 설교를 통해서 들었던 말씀과는 사뭇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알수 있게 되었고, 지역교회에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던 문제로 인해 괴로워 하다가 찾은 교회가 남서울 교회였습니다. 주일예배를 혼자서 몇 개월 다니다가 1999년 12월 31일에 청년부 겨울 수련회에 아는 사람 없이 처음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저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1년 가을 어느날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2003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부흥’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내게는 나름대로 심각했었던 대학시절 이후부터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얻으며, 하나님의 폭포수 같이 쏟아부어 주시는 은혜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던 기도의 영은 10분 이상을 기도하지 못했던 제가 수련회 이후에1시간 이상씩 하나님 나라와 ‘부흥’에 대한 기도를 거의 매일 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드셨는데, 몇 일로 끝난 것이 아닌 몇년동안 지속되는 그러한 특별한 은혜의 수련회 였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에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또 다른 단계의 신앙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KOSTA를 알고 involve하게 되셨는지요?


코스타는 1990년부터 홍정길 목사님을 통해서 거의 매년 얘기를 들었었는데, 나와 상관이 없는 얘기인줄 알았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해 95년도에 유학을 오면서 많이 들어왔던 그래서 꼭 가보고 싶었던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계속해서 ‘부흥’에 대해서 기도하던 때였는데 마침 그 해의 주제가 ‘부흥의 불길을 온 땅위에’라는 주제였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걸 제쳐두고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4월 중순경에 등록을 했었는데 조장으로 섬겨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두려웠고 부족함을 많이 느껴 금식하며 준비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그렇게 참석했던 코스타는 말로만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풍성했던,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풍성한 영적 잔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로 다할 수 없었던 은혜의 시간이었고 코스타 이후, 개인적으로는 닫혀 있었던 연구조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결과가 있었고, 교회적으로는 한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영적으로 회복을 경험했던 그런 한 해였습니다. 일년 뒤에 그 교회에서 코스타에 참석한 수가 50명이 훨씬 넘어 단일교회에서는 가장 많이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고 그 이후 코스타 보이스를 그 교회 사람들 중심으로 맡게 되는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고 보니 거의 매년 코스타를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는 한 코스타를 가보자는 생각으로 한해 한해 가다보니 유학생활 8년동안 98년 아내가 임신 초기라서 12시간을 운전해서 갈 수가 없었기에 한 해 빠진 것을 빼놓고는 계속해서 코스타를 가게 되었습니다. 99년 쌍둥이 딸아이들이 태어난지 4개월이 갖 지났을때 12시간을 운전해서 코스타를 2년만에 가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시카고 근처까지 가니 그때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한 2년정도 조원으로 있다가 2001년부터 코스타 보이스에서 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2004년을 빼 놓고는 계속해서 연구와 맞물려 코스타를 참석하게 해 주셨고, 2006년부터는 강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계시는데 어떻게 세상의 교수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사시려고 하시는지요?


참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제가 대학생때 주위에 크리스찬 교수님이 몇 분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학생들한테 친절은 하나 강의도 잘 못하고 실력도 없으셨던 분들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들어내지 않는 분들이셨던 기억이 있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균형잡힌 크리스챤 교수가 되려면 마땅히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실력도 갖추고,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하며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주님의 향기가 퍼져 나가도록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는 말씀을 못 드리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저의 삶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는 제 자신이 스스로 평가할 단계는 아직 아닌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열매들이 열리는 것을 보면 조금씩 알게 되겠지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목표를 세상의 교수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직업을 청지기적 삶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의면에서는 학생들이 잘 못 따라올때 학생들을 탓하기 보다는 제 자신의 전달 방법에 문제점이 있거나 제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기 반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개선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서 좋은 강의를 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따라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격려하고 동기 부여를 충분히 하는 것은 많은 경우 교수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대학교 해양대학은 상대적으로 기초실력이 매우 약한 학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이 답답하고 학생들 탓을 하기가 쉬운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 패배감에 젖기가 참 쉽습니다. 그럴때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한 기대와 계획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 같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시각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보면서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바라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빠지는 유혹 중에 한 가지가 수업을 따라오는 학생들만을 바라보고 나머지 학생들은 포기를 하거나,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비인격적으로 아무렇게나 대하고 싶어질 때가 많아집니다. 개인의 엄청난 실력차가 있음에도 주어진 시간에 진도를 고려하며 여러 그룹의 학생들을 만족하게 하는 강의를 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최선을 다해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이끌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고 또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에 최소한 3과목, 많게는 5 6 과목을 가르쳐야 될 때 특별히 그런 태도를 견지하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저는 가르칠 때 퀴즈를 보거나 숙제를 내 주고 시험을 비교적 자주 보는 편인데, 이것은 학생들이 제 강의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각 학생들의 약한 부분이 어떤 점인지를 파악하기 좋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과목이 많아지거나 과목당 학생수가 많아지면 이렇게 하기가 매우 어려워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과목을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서 한 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퀴즈, 숙제, 시험을 소홀히 다루게 되면 아무래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의 자료 준비 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제 강의를 잘 신청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로 고민도 참 많습니다. 약간 얘기가 빗나가서 너무 장황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강의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청지기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연구와 학교행정에 있어서도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늘 있는것 같습니다. 연구에 있어서는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시키기만 하는 교수가 되기 보다는 함께 해 나가고 제가 모범을 보이면서 지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행정적인 문제도 제가 종으로서 섬기는 모습을 보이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인것 같습니다.


그외에 저는 매달 한영으로된 오늘의 양식과 교회에서 매달 나오는 소책자를 열심히 나눠주면서 학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신앙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들이랑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있고, 동료 교수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신앙서적을 함께 읽어나가며 함께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크리스찬임이 들어나다보니 더욱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고 실력있는 교수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좋은 교수가 되는데 제가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 훨씬 유익하게 작용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인해서 좋은 교수가 될수 있겠지만요.


KOSTA에서 간사로서도 섬기셨고 이제 강사로 섬기시는데 간사의 눈으로 바라본 KOSTA와 강사의 눈으로 바라본 KOSTA의 부족한 면과 발전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이 점점 더 어려워 지는것 같습니다….제가 코스타의 발전 방향이나 부족한 면을 잘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간사로 그리고 강사로 섬기면서 코스타에 대해서 느끼는 부분들을 좀 나누겠습니다.


간사였을때 저는 동료 간사들의 헌신과 열정 때문에 참 많은 도전과 위로를 받으면서 사역했었고, 그래서 그런 귀한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섬기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코스타를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되고, 치유받고 변화받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사용된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이 생각은 강사로 섬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간사의 자리는 그야말로 무명으로 대부분이 육체적 노동을 동반해서 (쉽게 얘기하면 노가다를 필요로 하는^^) 보이지 않게 섬기는 자리인 것 같고, 강사는 유명으로 자기 강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학생들의 사고와 결정과 상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면에서 책임감이 따르고 그래서 두려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코스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코스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보다는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인 삶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교회 혹은 그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되었는지를 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두고 코스타가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향력을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현재 진행형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선한 영향력을 미국 각 대학과 유학생 교회와 지역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국의 교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대하고 매달리면서 매년 코스타를 준비해야되는것 같습니다.


코스타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귀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느끼면 조금씩이라도 그 부족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변화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살아있는 유기체같고 하나님과 호흡하며 변화하며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주어진 현실과 여건 속에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 한계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 틀을 인정하면서 한꺼번에 전격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에 조금씩이라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96년 이후에 느꼈던 변화내용을 얘기하자면, 일회성 집회였던 코스타에서 연중 코스타로, 시카고로 모이는 코스타에서 각 주와 도시와 캠퍼스로 흩어지는 코스타로, 선교 헌신으로 부르심을 확인한 이후에 계속되는 선교 훈련과 단기선교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 중심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으로, 코스타 집회에서 코스타 ‘운동(movement)’으로, 학부생의 필요를 채우려는 코스타인 cKOSTA….


그런데 더 나아가서 대형집회 위주의 시카고 집회가 다양한 그룹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세분화 될 필요성도 느낍니다. 가령 예를 들면, 전반적인 대형 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동시에seeker그룹이거나 예수님을 갓 영접한 사람들을 따로 떼어서 한 트랙으로 분류해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보다 더 깊이 다룰수 있는 소규모의 집회를 운영해 나가기도 하고, 신앙과 학문의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데 관심이 많은 기존의 크리스찬들의 모임을 트랙으로 구분해서 따로 모임을 갖게 하고, 이제는 유학생 이후에 미국에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필요성을 돌보고 비전을 나누고 제시하는 전문가 모임 등으로 세분화 되어서, 지금처럼 한번 코스타를 갔다가 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닌, 몇 년에 걸쳐서 필요에 따라 훈련을 받고 연구하고 힘을 얻고 하는 그런 코스타 모임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참석자들의 필요를 그렇게 분류해서 그룹핑하기도 쉽지 않고 제한된 장소나 간사와 강사들의 한계로 인해서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점은 아직도 코스타에서 tmKOSTA가 활성화 되고 있지 않다는 점 같습니다. 학문과 신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모임이 너무 약해서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어도 쓸만한 자료도 쌓이지 않고 자꾸 일회적 모임으로 멈추는 것이 좀 안타까운 점입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를 받은 사람들이 학문을 크리스찬 신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과 결과들이 축적되는 그런 모임이 빨리 자리를 잡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OSTAN선배로서 후배KOSTAN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시겠습니까?


코스탄이라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을 코스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번만 코스타에 참석을 해도 코스타 스피릿을 많이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몇 번을 참석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면에서 코스탄이란 말들은 많이 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코스탄이라고 해야 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코스타를 참석했던 사람들을 통틀어서 코스탄이라고 한다면 저는 무엇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얘기는 미국에 있는 동안 가능하면 여러 번 코스타를 참석하기를 권합니다. 사실 코스타가 워낙 다양해서 한번만 참석하고 코스타를 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참석만 여러 번 하지 말고 자원 봉사로도 섬기고, 조장으로 섬겨보기도 하고, 또 간사로 섬기기도 하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다보면 거기서 참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계속될 깊은 영적 동반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같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들이 삶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령 개인과 가정에서, 섬기는 교회에서, 그리고 자기가 속한 학과나 학교, 그리고 직장등에서 나눠지는 그런 저와 여러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