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제는 초등학생 두 아들이 있다. 그는 두 아들과 함께 가끔 성경을 펴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선 아이들에게 성경본문을 읽고 ‘본문에서 하나님을 누구라고 하나?’,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 그리고 ‘본문은 우리 자신들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나?’ 등의 질문에 미리 답하게 하고, 그 후에 함께 앉아 본문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주부터 로마서를 보기 시작했다. 로마서 1장 5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이방 사람으로 하여금 믿어서 순종하게 하려고, 그를 통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 구절을 설명하면서 ‘이거 어디서 보던 구절 아니니?’라고 물었지만, 아이들은 두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이사야에 나오는 구절과 비슷하지 않니?’ 그리고는 이사야 60장 3절을 펴서 읽어 주었다. –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찾아오고, 뭇 왕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보고, 너에게로 올 것이다.’ – 아이들의 반응은, 아니나 다를까 ‘정말 비슷하네’였다. ‘근데 아빠. 유대인들이 그렇게 특별해요?’ 큰 아이가 A형제에게 물었다.

유대인들이 정말 그렇게 특별할까? 특별하다면 어떤 면에서 그럴까? 구약의 유대인들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신약시대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민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보면,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동료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할례를 강요하고 정결의식을 치룰 것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정말로 할례 등의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의에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애굽 땅에서 벽돌을 구우며 바로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찾아오셔서,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그들의 왕이 되셨음을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셨다.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 오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땅을 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의 모습이 어떠함을 알리시려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인가? 자신들의 공로와 관계없이, 그들을 먼저 찾아와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도 잘 아는 유대인들이기에, 그들이 몇가지 율법의 조항을 준수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고 했다고 결론짓기는 다소 성급해 보인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시고,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율법’을 차라리 ‘은혜’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그렇게 은혜로 이르게 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아니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켜 나갔을는지 모르겠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이방인에 대해 철저하게 배타적인 본문들이 있는가 하면, 요나서나 이사야같이, 유대인들의 존재 목적이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이방인에게 빛이 되어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는 본문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관점이 공통적으로 견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언약백성인 유대인을 통해 이 세상을 회복하신다’는 점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유대인들은 자기 유대민족만이 회복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반면, 다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도 “유대인이 됨”으로써 회복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신약의 유대인들, 그 중에서도 적어도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후자의 의견, 즉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는데, 단 그 조건은 그들이 유대인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믿은 듯 하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왕이심을 고백하면서도,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인 유대인이 되라고 권유할 수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되는 길이 할례요 정결의식이기에, 초대교회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지만, 그 길에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바울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불러 백성 삼으신 이유는 다름아닌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그들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통로가 되기를 기대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첫 내용도 ‘너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창조 세계 전체를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증표였다. 좀 쉽게 풀어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은 내가 회복할 땅이야’라고 약속하시면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심으로써 ‘찜’하신 것이다. “지금은 비록 어그러져 있지만, 난 반드시 이 세상을 회복 시킬꺼야”라는 증거로 유대인들을 자신의 백성삼으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오해하고, 이방인에게 유대인으로의 개종을 요구했던 것이 참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톰 라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제 해결을 위해 불러낸 유대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문제 자체가 되어 버린’ 형국인 셈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 인류와 맺은 언약에 끝까지 신실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그 약속을 완성하신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완전한 순종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창조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알리셨다. 바로 유대인들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셨던 그 약속을 친히 성취하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유대민족에게 하신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겠다’는 약속이 이제는 교회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라고 하심으로써,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하신 약속을 갱신하신 것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청년학생인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가지가 있다면, 우리를 어그러진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된 교회를 세우신 이유일 것이다. 한민족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다와지는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한민족 교회의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청년 학생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 땅에 진정한 교회를 세우시고, 어두운 이 땅에 빛이되라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KOSTA/USA-2010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