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OSTA 간증


‘연변총각’ K 형제


오늘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어렵게 생각 하던 대로 부터 믿게 되었는지에 거기에 대해서 잠깐 얘기 드리도록 할께요.


저는 사실 대학 가기 전에도 저보고 뭐 하느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저보고 교회에 가자는 사람도 없었어요. 주위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전혀 나하고 관계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다니는가 했어요. 그랬댔는데…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저희 학교에 대해서 잠깐 소개 하겠어요. 제가 다니는 연변 과학기술대학은요 미국에 원래 계시던 김 진경 총장님께서 중국에 있던 조선족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그런 대학 이예요. 그래서 대부분은 한국이나 혹은 미국에 계시던 교수님들이고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중국에 있는 조선족 학생들 한 80%와 한족들 20%로 그래서 한 1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 이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대학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 모르고 갔는데 대학가서 그런걸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대학을 거기 지원하게 된 것은 사실 그 학교에 가면 영어 잘 배울 수 있대서 그래서 지원했습니다.(웃음)


제일처음 대학가서 학부에서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교수님이 식사전에 기도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 교수님 예수 믿나 보다 하고 저녁에 침실에 와서 침실에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했댔어요. “이재용 교수님은 예수 믿나봐요.”그랬더니 선배가 막 웃더니만 “예수 안믿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더라구요.(웃음) 그래서 너무 당연한걸 물었나 싶어서 ‘ 아 한국사람은 다 예수 믿나부다’ 그래 생각했댔어요 (웃음).


그런데 첨 지내면서 알고보니까 교수님들이 학생들한테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요. 다 큰 학생들이 학교와서 다니는데 어린애들처럼 돌보고 너무 극진하게, 전에 받지 못했던 그런 관심들을 주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학교는요 총장님을 비롯해서 모든 교수님들이 학생들하고 한식당에서 줄서서 함께 식사를 해요. 그게 참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참 너무 그분들이 전에 있었던 그런 학생과 교수관계를 뛰어 넘어서 너무 친한 사이로 그렇게 지내게 되었어요. 모든 교수님들이 다 따뜻하게 대해줬고요, 그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원래 남을 위해서 봉사하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분들이 왔나부다 하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학교에서 학생들 중에서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주위에 안 믿던 사람들도 교수님한테 전도받아서 가게 되는데 참 너무 이상하게 생각했댔어요. 그분들이 미국이나 한국 혹은 더 좋은 환경 속에서 돈 잘벌고 잘 살 수 있는데, 여기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좋은 것 다 버리고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너무 우러러 보이구요. 그렇지만 그분들처럼 그렇게 예수믿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예수 믿으면 돈도 많이 못 버는가 했어요 그분들이 너무 소박하게 살기때문에(웃음). 돈도 많이 못벌고 뭐 나쁜짓 조금만해도 자꾸 가슴이 찔리고(웃음), 좋은 것이라고는 모르겠더라고요. 뭐 옷도 좋은거 입으면 남들 자꾸 눈치 보이고 ‘예수믿는 사람이 뭐 옷도 저래 사치하게 하고 다니는가’ 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친구들도 가끔 교회 나가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하고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나도 한번 교회 가봐야 겠어” 하더라고요. “뭐 교회가 니 가는데냐. 그런델 왜가”했는데, 그 친구는 아침에 못 일어나면 저녁에도 가고 뭐 하여튼 예배는 다니더라고요. 건달처럼 그렇게 다니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들도 차츰 지나면서 한 1년쯤 지나면서 교수님들하고 만나서 얘기도 하는 중에 자꾸 하나님 얘기가 나와요. 얘기하다 보면 마지막으로 가면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해. 사람이 믿음이 없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하는 얘기를, 좀처럼 저한텐 이해되지 않는 그런 말씀을 자꾸 하시더라구요. 첨엔 왠지 그게 되게 싫었어요. 그래도 교수님 얘기하는데 딴 대꾸는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어요. 듣고 말끝나면 돌아오곤 했는데 그런 과정 중에 저와 친한 친구들도 교수님 그렇게 말하니까 “교회 한번 안 가볼래 한번 가보자” 하는데 딱히 가기가 싫었어요. 그런 데를 왜가나 싶었어요. 이상한 사람들이 가나 싶었어요. 뭐가 그분들이 잘못 착각하고 있지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런 생각 하면서 있었는데 한 2학년 땐지 학교 다닌 지 한 1년쯤 되었어요. 침실 선배가 ‘대학부 모임이 있는 데 같이 한번 안 갈래?” 그러더라구요. 친한 선배가 하도 얘기 하길래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번 가봤어요. 대학부 모임이었는데 뭐 찬송 부르고 그런 모임이었어요. 저는 뭐 그런것도 모르고 갔댔는데요. 근데 딱 시작했는데 막 난리가 났어요. 기도하는데 뭐 울고 불고, 학교에서 말도 조용하게 하는 그런 친구들이 정신 나간 것 처럼 막 그러더라구요.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한 절반 하다 나왔어요(웃음). 뭐 이상한 사람 다 버리는 곳이라고 해서. 그래서 선배도 따라 나오고, 원래 제 성격을 원래 아니까 뭐 딴 얘기는 안하고 그저 웃더라고요. 첨 이니까 혹시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러고 나서는, 그담부터는 누가 교회 가자고 해도 안 갔어요. 이상하더라구요. 저는 저는 교수님들이 너무 이상하게 생각 되었드랬어요. 성경에 대해서, 뭐 딴거는 모르지만 그래도 공부 적게 하신분은 아니잖아요. 다 박사까지 공부하시고 했는데 아니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훅 부니까 생기가 들어가서 사람이 됐대요. 아니 그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요. 너무 이상하게 생각 되었어요. 뭐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를 따라간다고 그러지만, 그분들이 모르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렇다보니 너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 했댔는데…


그런과정에 제가 금년 4월에 몸이 자꾸 아프던 차 병원에 가서 진단을 했는데요 대장암이라는 그런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은 제가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되게 힘들었거든요 그때요. 제가 사는 집에 갔다가 집에서 수술 받고 북경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댔어요. 항암치료 받으러 북경 가서 제가 교수님한테 알렸어요. ‘결장암이라는 진단 나왔습니다. 잠시는 학교 못가게 될 것 같으니까 교수님 그렇게 알고 계십시요.’ 하고 간단하게 메일 보냈어요. 그러고 한 멏시간 지나니까 제가 집에 있는데 교수님한테 전화가 왔더라구요. 교수님께서 메일을 받아봤더라고 그러시면서 교수님도 아주 괴로워 하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뭐 위안하는 말로 “뭐 거기 어디 교회 없냐”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교회 있으면 교회나가봐라 하시더라구요.” 남은 막 아파서 속이 불편한데 막 그런 얘기를 하니까 왠 얘기냐고 아픈데 교회가서 뭐 병이 나아요 그런 얘기 하고 싶었지마는 그런 얘기는 못하고 전화 끊었어요. 그날이 수요일인지 그랬는데요 주말에 절 보러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연길에 학교하고 제가 있는 북경하고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예요. 그런데 교수님이 오셨어요. 전 교수님이 오기전에 대략 교수님이 왜 오시는 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교수님하고 저하고 이틀동안 호텔에 같이 묵었덨거든요. 오시자 마자 성경책을 꺼내 드시더니만 거의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 놓고 밤늦게까지 계속 성경 얘기만 하시는 거예요. 요한복음에는 무슨말이 있고, 하나님이 너네 아버지고, 하나님이 너한테 뜻이 있길래 너한테 병을 주고 … 그게 무슨 말인지 당체 이해가 안갔어요. “하나님이 너에 대한 귀한 뜻이 있기 때문에 너한테 병을 주는거다. 그러니까 하나님 영접하면 꼭 낫고..” 이런 얘길 하더라구요. 저는 그게 되게 싫었지만 참 너무 멀리서 오신 분한테 뭐라고 얘기는 못하고요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이틀동안 꼬박 저한테 전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실컷 설명하시다가 하나님이 나를 만든 아버지래요, 저보고 영접기도 하라고 하는데 저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저희 아버지 성함이 김**이거든요 한참 얘기 하시다가 “너는 김**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아들이야 하면서 저보고 승인하래요. 그래서 한참 얘기하시다가 “그래도 너 김** 아들이야?” 하면 저는 “예” 라고밖에 대답 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거 도저히 승인하기가 싫었어요. 무슨 얘긴지도 몰랐고요. 그래서 이틀만에 주일날 교수님이 돌아 가시게 되었어요 학교에 일도 있고 하시니까 해서 왔댔거든요. 그런데 그때까지 제가 뭐 돌아가는 교수님한테 미안하긴 했지만 하는 수 없었어요. 안믿어 지는 거 믿어진다고 거짓말 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가는 교수님한테 “교수님 제가 생각이 못 바뀌어서 그런지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교수님도. 그렇겠지요 기분 되게 서운해 하시고 성나신 것 같아서 “그건 의지로 하는게 아니야” 하시면서 되게 안타까워 하시면서 가시더라구요.


그런 후 한 며칠 지나서 우리 선밴데, 원래 저하고 한 침실에서 지냈고 3학년 위 선배지만 거의 친구처럼 친하게 지낸 선배가 있었어요. 그분도 학교 와서 예수믿었고 북경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그래 제가 아프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자고 해서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뭐 그분도 제성격 아니까요 곧바로 대놓고 교회가자 그런 얘긴 안했지만 와서는 이런 얘길 하더라구요. 그때 막 제 얼굴 보니까 힘들어 하는 거 보이겠지요. 그래서 저보고 “니가 지금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좋다면 뭔들 못하겠느냐. 너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데 왜 너는 믿어 보지도 않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반대를 하느냐. 한번 믿기나 해 보고 안 믿어지면 그만둬라.” 그래서 생각한 결과 한번 나가보기로 했어요. 한번 나가보기는 나가보자. 근데 뭐 교회 가서도 뭐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목사님 앞에서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하는데 그게 무슨말인지 뭐.. 그래서 형식적으로 그저.. 정말 가기가 싫었어요. 믿는사람들이 하나도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뭐 친구들 절 전도 했지만 전 “넌 뭐 예수 믿어 봤자 나보다 좋은게 뭐가 있느냐”라고 얘기해 가면서 정말 쪼금 만치도 거기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랬댔는데 제가 북경에서 교회 두 번 가보고 셋째주에 여기 미국 오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감리교회 원 박사님(원종수 박사님)께서는 우리 학교에 한번 방문 하시고 교수님들하고 연락이 되어서, 교수님들의 도움받아서 여기서 치료 받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여기 오기 전부터 아마 대략 교회 다니는 분들하고 만날 거라고 생각 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웬걸.. 만나는 사람들이라고는 다 교회 다니는 분들이더라고요. 그러고 보 금방와서 저한테 너는 교회 다니나 뭐 그런 얘기 묻지도 않고 “주일날이니까 교회 나와, 마중갈께” 뭐 이러고 해서 교회를 가기 시작 했어요. 그렇지요 뭐, 저는 아는 사람도 한사람도 없고 그저 이런 사람 있다는 주소만 들고 왔거든요. 그래 거절하기가 딱해서 교회 나왔어요. 뭐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할수없이 나왔어요. 그런데 두주째 지나도 뭐 교회가서도 들리는 말도 없었고 그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참말 가기 싫었지만 그저 겨우 따라 다녔어요.


그랬댔는데. 두주 지나서 제가 코스타를 가게 되었어요. 여러분의 도움으로 또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 등록비도 안내고 등록도 안했는데도 그저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코스타 가서 여러 교수님들 세미나도 듣고 이러는 과정에 제가 이런말을 한마디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교수님들이 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했잖아요? 근데 어느목사님이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안해서 그렇지 하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최선을 다 해 본 사람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안다”는 그런 말씀을 들었어요. 저는 그 얘기가 정말 제 머릿속에 와 닿는 것 같았어요. 사흘날 저녁에 김동호 목사님 저녁설교에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온 자가 있다면 일어서라고 했어요. 일어 서면 당신께서 영접기도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한마디 턱 하고 나니까 드문 드문 일어서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저는 다 믿는 사람만 코스타를 가는 줄 알았는데 저같은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세번 이야기 하셨어요. 세 번 이야기 하실 때 제가 마지막에 일어 났어요. 저는 전에도 그랬다 시피 안 믿어지는 걸, 뭐 어떤 사람들은 안 믿어 지는데 친구가 가자고 해서 일단 믿어 보자고 했다는데 저는 그런게 도무지 이해가 안갔어요. 생각이 없지 않으면, 왜 남이 일단 믿어 보란다고 믿자고 가는지 몰랐어요. 안믿어 져도 억지로 영접기도 해서 믿는다 하는데 그렇게 믿기는 싫었어요. 제가 일단 교회다니는 것도 아파서 다니잖아요. 그저 바라는게 있으니까 교회 가는거잖아요. 저는 시작은 일단 그렇게 했지만 아픈것을 고치는 그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신앙은 가지기가 싫었어요, 그런 신앙으로 기도해봐야 하나님이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코스타가서 제가 일어 났을때 이런 결단이 생겼어요. 이제부터 좀 주인다운 그런 태도로 한번 믿어 보자구요. 그래서 일어나서 하느님 앞에 이렇게 기도 했어요. “하느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하느님 믿고 따르겠습니다.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요”라고 기도 했어요. 그런데 기도하고 나니까 한가지 발견되는게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 봤어요. 저는 뭐 하나님 아버지, 형제 자매, 그런게 되게 싫었거든요.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학교에 가면 막 등쳐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되게 싫어했거든요, 사람들 유혹할라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 했거든요(웃음).


제가 막 전에 한번 대학부 모임을 갔었드랬는데 모 어느 선배가 와서 ‘네가 드디어 나왔구나, 내가 니를 위해 얼마나 기도 했는데’ 하는데 ‘아 난 안믿어요, 안믿는데 그저 한번 나와 봤어요’ 그러면 ‘니가 지금은 싫어 하지만 이담에는 꼭 믿게 될거라’고 모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다’니 뭐 이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그게 되게 싫었댔어요 그런게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 봤어요 그때. 그리고 예배끝나고 나오니까 밖에서 막 뭐 ‘born again’ 했느니 ‘happy birthday’니 하면서 막 축하한다고 사람들이 막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영접기도 하고 나왔지만 별 다른게 없었어요. 우리 교수님은 뭐 예수님 영접하고 막 실컷 울고 나왔더니 풀이 파릇파릇 하고 하늘이 파랗고 막 그렇다는데 저는 그런것도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이제 태도만 하나 고치고 한번 믿어보자는 그런마음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교회 다니는 과정에 성경공부도 참가하고 앤아버에 있는 한인교회의 모임이란 모임은 다 갔어요. 뭐 다 여러분들이 막 저한테 열심히 잘 알려주고 그랬어요. 그러는 과정중에 차츰 정말 뭐라고 말을 못하는 그런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뭐 성경도 가끔씩 한번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그런 과정에 9월달에 제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CT scan했거든요. 그래서 첨에는 병 증세가 되게 안 좋았댔어요. 그런데 9월달에 scan해 보고 난 결과가 아주 좋아서 원래 퍼져 있던 암세포도 하나도 안보이고, 원 박사님도 아주 기적이라면 기적이라는 그런 현상이라면서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사랑해서 그러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그러면서 참 딱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참 감사했어요 하나님한테요. 저는 교수님들이 전한테 하나님이 널 써주시려고 너에게 병을 주신다 하는 얘기가 너무 이해 안갔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쓰면 고이 쓰지 병은 왜 줘요. 병도 주면 왜 암 같은거 줘요. 그랬댔는데 제가 여기 와서 얼마 안되서 한국에 있던 같은과 친구한테 이런 메일을 받았어요. ‘…전에도 교수님들이 너무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였지만 너(김 *)를 통해서 정말 그렇게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는 그 교수님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 도대체 무슨힘이 그분들로 하여금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게 하는지, 성경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싶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저는 그 메일을 보고 참 많은 걸 느꼈어요.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통해서 많은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참 저는 전에도 그랬다시피 내 머리속에 기적이 안 일어나고 난 절대로 그걸 믿을 수 없다고 생각 했었어요. 그걸 어떻게 믿을수가 있어요? 그랬댔는데 차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그러던 데로부터 설마 그럴까, 아 정말 그럴수가 있을까, 설마 그럴수도 있겠다 하는 데로 부터. (웃음) 지금은 아.. 맞아 딱 맞았어. 내가 승인해 이렇게 되었어요. 저는 결코 그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정말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가운데 많은 치료 받는 가운데서 정말 진전도 너무 빨리 됐고요, 병치료도 너무 빨리 회복 되었어요. 그래서 치료해주신 의사님도 아주 기뻐 하셨고요,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도다 하시면서 참 기뻐 해 주셨어요. 그럴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참 감사했어요. 아직 뭐 채 믿어지지 않았지만 정말 확실히 하나님이 제게 뭐가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그래서 그때부터 한 몇 달 지나서 이제 원래 계획했던대로 치료 곧 끝나가게 되거든요.


참 그동안… 너무… 저는 원래 참 예수믿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왜냐면 아 한번 사는 인생에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도대체 몰랐어요. 있는걸 다 즐기고 살아야지 저는 항상 사람은 즐겁게 살아야지 하면서 학교 다닐때 술담배 적지 않게 하고 다녔어요. 공부도 별로 열심히 안했고요. 저는 예수믿는 것이 금욕주의라고 생각했어요. 예수 믿으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런게 너무 싫었거든요. 그랬댔는데, 저는 기도 하면서 저한테 있는 병치료 해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깨끗하게 씻음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제가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정말 마음속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정말 전에 그런 유혹을 가졌던…제가 그렇게 완고하게 고집하던 것으로부터, 정말 마치 기도하다가 눈물흘려 본적있고요, 찬송가 부르다가 기뻐서 웃어본 적도 있어요. 아까전에 우리 불렀지만 ‘형제의 모습속에’ 라는 노래 제가 되게 좋아 하거든요. 왜냐면 제가 언제 8월달인지 언제 한번 성경공부 하는데 그 찬송가를 보게 되었어요. 찬송가 가사가 이렇잖아요.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저는 그 찬송가 가사를 볼 때 우리 학교 교수님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참 그분들 속에 보이는 하나님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몇 달 6개월째 지나는 가운데 이제는 그렇게 가기 싫던 교회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이젠 주일 되면 ‘아 주일날 원래 교회 가는 가보다’ 그렇게 생각되고 가끔은 주중에 주일이 기다려 지기도 해요. 가서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고, 예배도 보고 싶고, 찬송가도 같이 부르고 싶고 그런 마음도 생기곤 해요. 그래서 그동안 하나님 믿는 가운데서 치료받으면서 참 마음속에 많은 평안함도 얻었고요, 하나님이 꼭 고쳐 주실 거라는 그런 확신도 가졌어요. 참 요즘은요 ‘내가 왜 암에 걸렸지’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이유가 딱 하나라고 생각되요. 암이 아니고서는 저하고 하나님하고 붙여놓을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확신이 들어요. 이제는 여기서 단련도 받고, 제가 중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하나님께서 미국에 이런 환경속에 하나님 믿는 사람만 만나게 해주시고 이런 환경속에서 억지로라도 끌어 주시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는 가기 싫던 교회도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하나님 절 단련시켜서 돌아가서 영적으로도 굶지 않게끔 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 원래 간증을 해 달라고 했을때 되게 주저 했댔거든요. 왜냐면 저는 간증을 안해본것도 있지만 예전에 누가 저한테 와서 하나님 얘기를 하면 되게 싫어 했댔어요. 그런데 내가 그런 얘길 한다니까 감이 안왔어요. 그래서 주저 했댔는데요, 집에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느님 자랑해야 될 것 같아요,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자랑해야 기도도 잘 들어 주실 것 같고, 기뻐 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어떻게 자랑 잘 했는지 모르지만 들어 주셔서 감사하고요, 여기 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K 형제
연변 과학 기술대학 3학년 K모군이 직장암 판정을 받은 후 미국에 치료차 체류하면서 그 기간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치료 후 중국으로 돌아 가기 전(12/16/01)에 나눈 간증문 입니다. 인터뷰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거의 수정 없이 녹음 내용을 글로 옮겼습니다. 본인의 간곡한 요청에의해 본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