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미나는 2003 KOSTA/USA에서 한국 라브리 성인경 목사의 세계관 강의인 ‘세계관 전쟁’을 eKOSTA 편집부에서 녹취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중입니다. 범죄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 사스와의 전쟁. 이렇게 전쟁의 연속이지만 진정한 전쟁은 영적 전쟁이고 영적전쟁의 최전선에는 세계관 전쟁이 있습니다. 이라크전쟁도 종교간의 전쟁이라고도 하고 문명간의 충돌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세계관 전쟁입니다. 미국 제국주의와 이라크의 국수주의간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관의 전쟁은 우리의 삶속에 매일 일어나는 심각한 전쟁입니다. 하지만 세계관 전쟁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와 문화 배후에는 세계관의 전쟁이 있습니다. 실제로 국가와 개인간의 전쟁을 살펴보면 그 국가과 개인의 가치관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정당성이라는 가치관 전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누가 참이냐 거짓이냐 누가 선이냐 악이냐를 구분짓는 전쟁입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3절에 보면 마지막 때가 올 때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영어로는 prepare your minds for action, 영적인 전쟁이 다가오는데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세계관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럼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이시대에 여러분은 얼마나 준비되었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왜 필요한가입니다.
아내와 시장을 보러 가는데 어떤 아줌마가 아이손을 잡고 가다가 “얘야, 너도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아저씨처럼 된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봤더니 우리 교회에서 믿음 제일 좋다고, 기도많이 한다고, 전도 제일 잘 한다는 아주머니였습니다. 믿음은 좋은지 몰라도 세계관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사고방식, 직업귀천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고 믿음이 좋은지 몰라도 아주머니는 잘못된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 모든 직업이 거룩하다는 것을 믿습니까? 청소부가 청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공부 열심했는데 나쁜짓 해서 감옥에 가있으면 어떻게 된 겁니까? 공부 잘 못했는데 지금 이웃을 도우며 훌륭한 삶을 살아가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리고 이때쯤 고려대학교 총장 홍일식 박사가 쓴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에서 한국 사람은 일상생활은 유교식으로 하고 사고방식은 불교식을 하고 신앙생활은 무당식으로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평생을 유학자였던 그가 지적한 이내용은 저에게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믿음만큼 그 사고방식이 하나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을 잘 가르쳤을지 몰라도 사고방식이 변화되고 세계관이 바꾸도록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을 보면 너희가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뜨거운 마음, 친절한 마음이 아니라 예수의 사고방식, mind,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라 라는 말입니다.


저는 라브리 선교회에서 청년대학생들을 돕고 가르치는데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고등학교때부터 성경의 이적기사에 대해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사람인데 부모나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토론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더이상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버지께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한달을 방학을 줄테니 해결하고 오라 했답니다. 어느 전도사님을 찾아갔더니 전도사님이 기도얼마나 하나하고 물었습니다. 십분도 못합니다 그랬더니 그러니까 그렇지 그러면서 더 기도하고 와라 했답니다. 그렇게 해도 의심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또 찾아갔더니 성경을 얼마나 읽어라고 물어서 하루에 한장도 못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그러면서 성경 더 읽고 와라 그랬습니다. 라브리에 와서 치밀하게 공부를 하면서 의심이 풀렸습니다. 이 청년의 문제도 앞에서 이야기한 아주머니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것과 아는 지식이 하나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청년은 세상에 자연의 법칙이 있다는 것은 학교에서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자연의 법칙과 초자연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이 세상이 Closed system, 자연의 법칙만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나 개입할수 없다는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open system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자연법칙이 멈출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비성과 합리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청년은 그렇게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합리성의 반대개념은 비합리성입니다. 신비적인 것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정리하면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무기력과 영적 혼돈 상태를 극복하고 성숙한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가치관의 혼돈을 극복할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바른 정신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혼돈을 가지기 쉬운때가 청년의 때입니다. 얼마전 동성애는 불법이라는 법률이 인권을 유린하는 위헌이라고 대법원에서 통과를 했습니다. 불법으로 내린 동성애 법안이 인권을 무시하는 법안이라고 판결이 되었기 때문에 동성애의 문제가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가치관의 혼돈, 윤리의 혼돈 이런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관 전쟁에 대처하고 전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를 할 때에 세계관을 사용하지 않다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느낌의 시대이니까 감각적으로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어느 사람이든 세계관을 가지고 접근하고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방해하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객관주의입니다(Objectivism). 성경은 성경이고 학문은 학문이다 성경은 신앙적인 문제에서는 진리다 내가 공부하는 학문분야에서는 성경이 권위가 없고 전문가가 권위를 가진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과 전공분야를 분리해내는 것입니다. 아까 아주머니처럼 신앙은 신앙이고 생활은 생활이라고 분리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믿음이 아주 좋은데 사고방식은 유교적, 불교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원론자가 됩니다.


두번째는 성경주의입니다(Biblicism). 성경을 너무 사랑해서 세상의 지식은 필요없다. 오직 성경만 공부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경건주의자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만 진리고 세상의 지식은 배설물이다라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반지성주의에 빠지게 되어 학문세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지적자살을 감행해서 공부할 필요가 없고 믿음만 좋으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주의라고도 하는데 특히나 유학생들에게는 공부가 잘 되지 않을때에, 시험에 떨어졌을 때에 더 큰 유혹이 됩니다.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할때에는 이성에 기초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초된 바른 지식까지 다 내버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번째는 혼합주의입니다(Synchretism). 세상의 지식과 성경을 적당하게 섞는 것입니다. 우리 유학생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비빔밥, 섞어찌게처럼. 로렌스 클레이드라는 사람은 야채샐래드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야채를 여러가지로 섞고 성경으로 드레싱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융합이라고 합니다(Harmonization). 혼합주의의 문제는 절대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 되는 것이고 다원주의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공부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가 무엇일까? 공부하는 방법을 이야기할때에 internal 원리라고 하는데 공부할 때에 사용되는 머리(이성)와 경험(감각)을 말합니다. External원리는 공부하는 대상을 말하는데 물리는 세상과 우주, 사회학은 사회의 현상, 체육은 인간의 몸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종합해서 자연과 세상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인 종교적인 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와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원리는 공부의 원리에 신앙의 원리를 더해야 합니다. 이성과 감각에 Internal원리인 영성과 성령이 더해져야 합니다. 자연과 세상에External원리인 하나님과 성경, 교회를 더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한쪽만 가지면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 나머지만 가지면 신비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종합을 해도 안되고 혼합을 해도 안되고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통용되는 것이 종합입니다. Synthesis 종합은 정과 반을 통해 합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 혼합은 다 섞어 놓는 것이며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세번째Integration 통합은 기준이 있느냐는 것이 관건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있어서 기준을 가지고 옳은 것은 다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통합은 성경에 나와 있는데 에베소서 4장13절을 보면 믿는것과 아는것에 하나가 되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Unity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남녀가 한몸이 되었다고 할때에 unity,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unity가 된다라고 합니다. Unity원리는 믿는 것과 학문하는 것에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는데 한국교회에서는 이 통합의 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통합한 사람을 mature한 사람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린아이라고 성경에서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사고방식, 가치관이 예수님의 것으로 바뀌어지지 않기때문에 기독교인이 한국인구의 절반이 되어도, 국회의원의 절반이 되어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원리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잘때까지 생각하는 화두들이 있습니다. 돈, 섹스, 권력. 세상사람들에게는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도이벨트라는 사람은 기독교인은 창조, 타락, 구원의 세가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프란시스 쉐퍼는 폭넓게 설명하기를 존재론적인 원리, 도덕론적인 원리, 인식론적 원리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존재론은 신이 있나? 내가 누구인가?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존재론을 다룰때 가장 기본적인 설명방법은 세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신과 인간과 우주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도 모른다 (nothing nothing). 두번째 설명방법은 비인격적인 것(impersonal)에서 세상, 신, 인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진화론이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인격적인 것(personal)에서 인격적인 것이 나왔다. 성경적인 존재론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중에 인간을 만드셨을 때는 자신의 모습대로 만드셨으나 다른 피조물들은 하나님 형상대로 만들지 않았지만 그속에 하나님의 신성과 솜씨가 나타나도록 만드셨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처럼 완전하지는 못하다. 제한적이다. 제한적이지만 사는데 문제가 없다. 자연은 자연법칙도 있지만 초자연적인 법도 있는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셨다. 이것이 Open system을 믿는 것입니다. 매트릭스는 기본적으로 closed system이지만 closed system을 깨고 open system으로 갈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영화입니다. 근대과학자들은 세상이 하나님의 이성과 합리성을 닯았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과학활동을 할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었다고 하고 오펜하이머는 근대과학의 어머니는 기독교라 했습니다. 현대과학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더 홈즈, 휘튼의 철학교수는 창조는 세가지 과학을 가능하게 했다. 첫째, 하나님이 만드신 재료, 공간, 시간은 실험과학이 가능하게 했다. 실험과학의 데이터를 가지고 합법칙성과 인간의 이성을 이용하여 두번째 이론과학의 근거를 만들었다. 세번째 이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응용과학의 근거가 되었다고 합니다.


도덕론적 원리. 인간이 창조되었지만 타락했다. 인간이 왜 고통을 받고 죽어야 하는가? 왜 죄를 짓는가? 를 묻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기에 대해 수백가지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관념론에서는 고통과 악과 죄는 환상과 관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원론에서는 세상은 처음부터 악과 선이 있었다. 처음부터 병과 고난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사회주의자의 결정론에서는 환경이나 교육방식, 경제수준에 의해서 악이 정해진다라고 합니다. 동양사상을 보면 불교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 도교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악의 근원이다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이론은 도덕적 타락은 죄에서 왔다는 범죄론입니다. 범죄론은 세상의 고통과 죄는 실체고 비정상이고 쓰라리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 병과 죽음이 없이 지음을 받았는데 죄로 인해서 타락하고 비정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도덕과 싸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인식론적 원리는 우리가 바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성의 능력을 믿던지 이성을 극단적으로 믿지 않고 체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비판적 실제론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것은 옳은 것도 있지만 틀린 것도 있다.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초인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식론적인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성경말씀입니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고 사고하면 판단오류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도움을 받아야지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교의 인식론은 이성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꽤가 많아서 이기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순수감정에 의해서 결정하라고 합니다. 합리적 인식론은 서양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성에 의해서만 결정하고 판단하고 진리가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성경과 성령의 기반하에서 이성을 사용하고 직관들을 사용할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