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서 회사 업무를 하던 어느 날, eKosta에 기고할 글 한편을 써달라는 email을 받았다. Kosta라는 이름만 봐도 반가운 마음이 앞서긴 하지만, 막상 내가 다른 Kostan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지 난감했다. 많은 Kostan들보다 오히려 짧은 유학 생활을 보냈고 단 한번 Kosta에 참석했던 나를 OB Kostan이라고 부르는 게 좀 멋 적기도 할 뿐더러, 본래 글쓰기와 거리가 먼 이공계 출신인 탓도 있을 것이다.


결 국 글쓰기를 차일 피일 미뤄오다가 내린 결론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유학생 출신 사회인인 나의 삶과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나누기로 했다. 이외엔, 달리 뾰족이 더 좋은 contents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으시면 이런 글도 어떤 Kostan에겐 유익할 수도 있으리라고 담대히 믿으며 말이다.


2002 년 봄, 미국에서 2년간의 석사 과정을 마칠 즈음, 박사과정으로의 진학과 취업이라는 진로 선택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기회를 통해, 취업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진로를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받아둔 Job Offer가 있었기에 취업으로 마음을 굳힌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처 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 답답했던 언어 문제로부터의 해방감, 모든 환경들이 익숙한 데서 오는 편안함으로 인해, 한동안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푸근함을 만끽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의 경우, 낯선 업무와 동료들과의 관계 등으로 스트레스가 있긴 했지만, 이런 어려움들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문제라고 여겼었다.


그 러나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즐기며 시간이 차차 흐를수록, 유학을 가기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불편함도 느껴졌다. 예를 들어, 유학시절이 광야같이 적막하고 외로운 생활로 힘들었다면,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은 따뜻하고 언제나 대화가 넘치는 삶인 반면 나만의 개인적인 영역은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미국식 기준으로 본다면 굳이 가족에게 알릴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문제들, 또는 성인인 나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들인지라 나 혼자 처리하려고 해도, 한국의 부모님은 여전히 한국식 기준을 가지고 주도적 권한을 행사하기 원하셨고 그렇지 못할 때는 매우 섭섭해 하셨다. 또한, 미국에서는 몇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반면,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주말에 마음먹고 조용히 책 몇 권을 집중해서 읽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혹시 지금 이 순간, 홀로 하는 유학 생활이 너무나 외롭고 황량해서 힘든 형제, 자매가 있다면, 그런 광야 환경조차도 학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상황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한 국의 직장인이 된 이후, 생활의 차이점을 한가지 더 들자면, 학생 때에 비해서 숙제와 시험이라는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24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학교에 비해, 직장인이 되면서부터 조직의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출,퇴근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더라도 미국에 비해서 교통시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드니 말이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살다 보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충만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매일 경험한다. 유학시절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전에 QT부터 하면서 말씀에 감격할 수 있었고, 주중에도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성경 공부 모임을 갖거나 식사하면서 교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한국의 사회인으로서 그런 영적인 행복(?)을 누리려면, 학생 때보다 더 많은 commitment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마 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며 가장 심각하게 느낀 건, 현대인들이 미래를 굉장히 불안해 한다는 것이었다. IMF이후 우리나라에도 이제 더 이상 평생 직장 개념은 사리진지 오래 이기에, 언제 있을지 모르는 구조 조정에서 과연 나의 고용상태(employment)은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지.. 만약 실업자가 된다면 뭘해서 먹고 살 것인지…사람들은 지극히 불안해 보이고 관심은 온통 나 혼자 잘 먹고 사는 문제에 맞춰져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나 역시 주변 사람들과 분위기에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할 때면,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 사랑을 다시 한번 묵상하며 내 삶을 돌아보곤 한다.


한 국에 돌아온지도 어언 2년 3개월이 지났다. 이젠, 미국에서의 유학시절이 꽤 아득하게 느껴지고 우리나라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많이 길들여진 느낌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삶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하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 방향에 대한 고민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문득 깨어나서 새로워지기를 다시 한번 소망할 수 있는 가장 큰 Motivation은 주님의 청지기라는 소명의식이라고 믿는다.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이, 세상에 속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충성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그런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말이다.


지 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유학 생활은 참 힘든 고난과 시험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학시절 동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기에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었으며, 내 삶의 폭과 뿌리가 깊어지는 축복의 시간이었다고도 확신한다. 혹시라도 지금 힘든 유학 생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 자매가 있다면 그 고난마저도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에게만 허락하신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격려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