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KOSTA/USA 2009의 tmKOSTA에서 발제되었던 경제학 분야 세미나 리포트입니다.

Capitalism in Christian Perspective (1): Principles

공산주의라는 역사적인 실험이 실패로 드러난 이후, 전세계의 경제체제는자본주의 아래에서 빠르게 진화해나가고 있다. 개인의 이익극대화 추구와 시장의 기능을 통해서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있다는 신념은 학문과 실물경제 모두에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견제할 만한 새로운 이념이나 체계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효율과 혁신을 통해 더욱 살게 되는 메카니즘으로서 역사는 자본주의를 선택하였고, 세계가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고를 없이 전력질주 하고 있지만, 가운데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소외계층은 곳곳에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간, 사회계층간, 지역간, 직종간의 빈부격차 문제, 식량 문제, 그리고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한계점과 최근의 금융위기를 두고 마르크스의 예측을 다시 떠올리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하나의 경제체계를 일컫는 사회과학적 용어로서 시대의 경제구조를 규정하는 자본주의 이제 특정 학문의 subject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치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 자본으로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시대에, ‘자본’,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이나 활동은 많지 않다. 순수 자연과학, 의학, 문화 예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고려할 , 신앙과 학문, 그리고 삶을 통합하는 영적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기독교적 고찰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와 이웃에게서 이루고 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광스러운 소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걸음이 아닐 없다.

KOSTA 2009시카고 conference에서, tmKOSTA참여한 코스탄들은  성경적 경제관을 바탕으로 경제구조와 흐름을 진단해보고, 성경적 경제관을 직업과 학문에서 구체화하는 사례를 살펴보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나의 가운데서 구현가능한 형태로 발견해가고자 하였다.

다음의 글은 세미나에서 나누어진 의견들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Christianity and Economics 

참석자들은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 사회학등 사회과학분야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우리가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고 있는 이러한 활동들이 우리의 신앙, 혹은 성경적 가치관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우선 질문하였다.

하고 있는 혹은 학문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균형있는 통합을 이룬 사례도 있었지만, 전혀 관계가 없어서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고, 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좌절한 경우, 서로 연계되어야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 코스탄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유형의 교회안에서 혹은 교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활동, 개인의 묵상, 기도, 예배생활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6일동안 전심을 다하여 감당하는 학문과 직장생활은 우리의 신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 맡은 바를 감당하고 있는 분리된 인격체일 없다는 ,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내주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인격적인주님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가지 영역이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는 본질을 가졌음을 인정하게 된다. ‘ 사람이고, ‘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되었다면, ‘ 관여하는 모든 활동이 신앙의 영역에 포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 것이 우리가 드려야 영적 예배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권면(12:1)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신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문/직장생활에서 실현되어야 것인가의 질문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해답이 발견되어져야 하며, 일반론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임에 모든 참석자들이 동의하였지만, 동시에 우리의 모든 삶과 활동, 선택이 신앙을 축으로 하여 통합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우리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적으로 구현될 있도록 우리의 지성과 영성이 깨어서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의 가치관에 따라 분별하고 진단하는 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일환으로써 우선 경제학에 담겨진 기독교적 요소를 살펴보았다.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과연 성경적 가치관에 준할 어떤 장점과 문제점을 가졌는지를 고찰해보았다.

Christianity in Economics?  

경제학이 해결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경제문제는 ‘limited resources and unlimited desire’ 요약된다. 부족한 자원과 제한없는 인간의 욕망은 에덴 동산 이후의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해주고 있어 오히려 놀랍기까지 하다. 경제학이 이렇게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를 두고 타락한 인간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욕망에 비해 자원이 부족할 ,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족한 자원을 배분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최소의 투입으로 많은 자원을 생산해내야 하고(production efficiency), 자신에게 배분된 자원을 최대의 만족을 누리는 방식으로 소비하여야 하며(utility maximization under budget constraint),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욕망을 가능한 많이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자원의 사회적 분배(Pareto efficiency) 이루어져야 된다. 결국, 모든 경제적 선택과 활동은 인간의 unlimited desire 기본조건으로 하여, 어떻게 이러한 desire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충족시켜줄 것인가에 목적을 둔다. 이러한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resource limitation 극복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많은 다양한 자원의 생산을 위해서 과학기술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전체 자원의 평화로운 그리고 파레토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서 우리는 시장에 의지한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되고, 죄로 인해 더해진 이기심마저 전체의 행복과 만족에 기여하는 요소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 시장메카니즘이기에, 인간의 unlimited desire 어떤 식으로든 통제하게 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대신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맥락을 함께 하는 현대 경제학이 역사의 승자가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경제학의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성경이 말해주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오늘날의 경제학은 기독교적 경제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기독교적인 경제학은 가능할 것인가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없다.  

기독교적 경제학, 그리고 기독교적 자본주의

Christian Economics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 역사를 잠시 거슬러올라가 보자.

막스 베버가 1904 출간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의하면, 산업혁명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의 발달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청교도 정신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한다. 산업화와 함께 지주와 계급 중심의 사회구조가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기에 활동했던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평신도의 직업, 세상에서의 노동활동을 하나님께 부여받은소명이라고 생각하였다. 루터는직업노동은 이웃 사랑의 외적 표현이며노동의무를 다하는 것은 신의 이라고 하여, 평신도의 모든 활동에 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소명으로서의 노동 결과로 주어지는 , 혹은 부의 축적에도 종교적 합리성을 부여함으로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경제주체들에게 종교적 정신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직업이 소명이 요구되는 윤리는근면이었고, 결과 이루어주는 부의 축적은신의 선물이었으며, 이러한 부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맡은 , 청지기로서 주어진 부에 대하여 가질 태도는절제였다. 일하지 않고 얻은 부를 탐욕과 쾌락의 도구로 일삼던 중세 영주와 귀족계급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요한 웨슬리는 “Earn all you
can, save all you can, and give all you can”
라고 하며, 근면한 노동과 절제를 통한 부의 축적과 부를 나눔으로 풀어낼 것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의 태동과 발전은, 노동과 노동의 댓가로서의 부에 신성한 가치를 부여했던 기독교 정신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정신이란직업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정신적 태도였다. 탐욕과 무한한 이윤추구와 같은 비합리적인 목적을 위해 부를 축적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철저히 합리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돈이라야 바로 자본주의 정신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부의 축적과 사용에 대하여 근면과 절제의 원칙이 전제될 ,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뒷받침해주는 최선의 메카니즘은 시장으로 이해될 수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유명한보이지 않는 기능을 제시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인간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에 의해서 경제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인간의 만족에 대한공감 대한 욕구가 있기때문에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반균형론 개인의 최대이익추구가 시장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면서 사회전체에 최적의 자원배분과 활용, 그리고 최상의 만족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으로 아담 스미스가 철학적으로 접근했던 자본주의의 이상을 수학적으로 규명해낸 것이라 수있다.

부의 축적, 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구상했던 초기 학자들의 관점, 그리고 그에 기초한 현대 경제학에서 자본주의는 누구나 근면한 노동을 통해서 정당한 댓가로써의 부를 누릴 평등한 기회와 자유,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활용하는 합리적인 동기에 기초를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부의 축적을 이룬 자들에게 청지기 의식과 절제의 윤리가 상실되고, 부가 부를 낳는 경제구조가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의 결과물로 진화되어 감에 따라, 자본주의는탐욕 경제구조로 일그러진 형태를 갖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발견되는 수많은 문제점을 파생하게 것이다. 이는 대공황을 겪으면서 Keynes로부터 시작된 수정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을 탄생시키면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일으켰다.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구로써 어느 정도의 역할과 개입을 해야 하는가, 혹은 해도 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많으며, 경제상황에 따라 작은 정부, 혹은 정부를 지지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문제 (공공재, 비대칭적 정보, 도덕적 해이등)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나, 종종 정부가 역할에 실패함으로써 시장실패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는 또한 사실이다.

그리나 이러한 시장의 실패, 혹은 정부의 실패가 시장과 정부, 그에 기초를 자본주의의 불합리성, 대안적 경제구조에 대한 열등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3 이상적인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를 불완전한 체계로 왜곡되게 발전하게 만든 숨겨진 원인들을 온전히 밝혀내고 바로잡지 못한다면 경제체계의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기독교적 경제원칙과 함께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존중해주는 다양한 기제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 우리가 고민해야 첫번 과제는 자본주의와 시장, 그리고 정부라는 경제구조를 훼파하고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계를 구축하는 혁명적 역할이 아니라, 다소 소극적으로 생각될 지라도 자본주의를 본래의 모습으로 바로잡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근면의 노동윤리를 회복하고, 부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어떻게 일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질문앞에 성경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본질을 겸손히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공급으로부터 분리되어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 4:17-18)으로 내몰려서 살아 숨쉬는 동안 끊임없이 수고하면서도 자원의 부족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살아갈 운명에 놓인 인간, 동시에 창조질서가운데에서 누렸던 샬롬 상실한 서로 비난하고( 3:12)  세상과 벗하여 정욕으로 인한 다툼과 시기(4:1-4)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실존이 바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고, 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본질이다. 따라서,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이라는 한계적 존재성에서 비롯되는 이기심과 탐욕의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 , 인간이 구상해 어떠한 제도와 체계도, 모든 인간이 넉넉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이상적인 경제구조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혹은 어떤 형태의) 경제구조를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바로잡는 일이 학문적 제도적 접근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 것이 학문/직장의 영역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역할임에는 분명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샬롬이라는 원칙을 사람의 마음에 바로세우는 일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중요성과 의미를 우리의 소명으로 마음에 새기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