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경] 미시간 앤아버의 토요 성경공부 이야기

이코스타 2001년 5월호

유학온 지 5개월 된 박정은양, 오늘 룸메이트로부터 사소한 일이었지만 섭섭한 소리를 듣고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수연 언니를 찾아갔다. “수연 언니, 글쎄 오늘 룸메이트가요 ….” 감정이 섞였는지 전후 과정 설명에 과장이 섞이더니 룸메이트의 험담이 더해진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따져서 잘잘못을 가려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위로의 말, 이해와 수긍의 반응을 얻고자 찾아 갔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수연 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정은아, 전후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룸메이트 없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내가 듣기엔 룸메이트가 정은이한테 평소에 좀 섭섭했던 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은양은 유학와서짧은 기간이지만 매주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삶을 나눠왔기에 무척이나 친했다고 생각했던 수연언니의 예기치 못한 반응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정은이 지난주에 성경공부하면서 ‘평소 매일매일 삶에서 죄짓는 것에 대해 잘 못느끼겠다’고 했지? 그래서 앞으로 죄에 민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 하나님께서 이번일을 통해 정은이가 그동안 룸메이트한테 좀 섭섭하게 했거나 잘못한거 되돌아 보라고 하시는건지도 모르겠네.”


혹떼러 왔다가 혹붙이는 기분이라고 표현을 해야하나? 정은양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주 성경공부?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이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그건 성경공부고 이건 그냥 내 일상 생활인데 그렇게 연결을 시키다니…’


교회를 다닌지 11년, 그러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깊이가 지극히 얕았던 정은양은 유학와서 우연히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수연언니를 알게되었고 성경공부를 함께하자는 제의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호기심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후 말씀을 배우는 재미와 힘든 유학생활을 나누는 즐거움에 계속 성경공부를 나가게 되었고 ‘배운 말씀의 삶으로의 적용’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을 받으면서 수연언니와 다른 조원들의 도움으로 결국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말씀을 깨닫는것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이야기는 1997년 가을 미시간 앤아버에서 생겼던 토요성경공부(이하 SBS:Saturday Bible Study)의 일원었던 박정은양의 예화이다. SBS는 개인적으로 적합한 성경공부 모임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유학 생활을 유지해 나갈 때 영적으로 많은 갈급함이 있었던, 그래서 이런 영적 상태를 채워줄 수 있는 성경공부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오던 몇몇 유학생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생겨난 모임이다. 우연히 유학오기전 한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몇몇 학생들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그냥 사사로이 교제하던 중 우연히 다들 영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서 마음을 모아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6명이 모여서 인도자 없이 서로의 묵상을 나누며 진행되었으나 차츰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또 처음 같이 시작했던 연장자들이 졸업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자연스럽게 인도자의 역할을 하게된 김수연. 김요섭 부부(현재 북방 A국 선교사)를 만나보았다. 앞서 언급한 박정은 양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조원들이 SBS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거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개인적 차원으로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열매들이 맺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김 선교사 부부의 사랑의 섬김과 헌신이라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의 조원들이 동의하는데 대해, 정작 본인들은 그들이 성경공부를 인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 교회에서 리더를 한 경험이 있었고, 또 부부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기에 싱글로 와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섬길 수 있는 여유 혹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다며 인도자가 아닌 도우미로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들이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성경공부를 인도했는지를 물었다.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은 각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삶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을 나타내어서 힘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 이었습니다. 즉, 성경 공부 하는 것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이지만 각자 개인의 생활을 해 나아갈 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또한 타국 땅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각자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지식과 경험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타국 땅에서 생활하는 특수 상황이 성경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겪었던 ‘광야’ 생활 같은 기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기에 하나님과 더 가까와 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실제적인 차원에서, 성경공부는 반드시 주중에 시간을 내어서 미리 해 가지고 오고, 모여서 나눌 때에는 삶에서의 적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진솔하고 또 열린 마음을 가지고 각자의 경험이나 상황을 나누었으며, 또 같이 모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일별로 기도해야 할 사람들을 정해놓고 중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단 매주 모이는 시간뿐 만이 아니라 살아 가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함께 공부한 내용에 있는 원리들을 적용시켜서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어느 한 사람이 특별히 인도자라고 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간 성경 공부였고 때마다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을 함께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운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성경공부, 그리고 삶으로의 적용을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SBS를 통해 맺어진 많은 열매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쁜 유학생활중에 조원들을 향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섬김는 것이 쉬운일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짐작하며, 성경공부를 도우면서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 물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사람의 인도 보다는 모두가 참여하는 성경 공부 모임 이었기 때문에 도우미로서 역할을 하기에 크게 힘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 되었던 성경공부 모임이 10명이 넘게 모이는 모임으로 되어지면서 각 구성원의 필요도 더 다양해 졌고 구성원 중에는 정기적인 성경 공부 외에 신앙의 기초부터 함께 1대 1 양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는데 나 자신도 유학생이어서 시간을 내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에 순종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더 순종했어야 했는데 라는 많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또 구성원이 바뀔 때 유동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6명남짓한 모임안에서 김선교사 부부외에 모임을 섬기던 연장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후 새로 모임에 동참한 대부분의 조원들이 기초적인 양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선교사 부부에대한 섬김의 요구는 증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영적 성장이 지역교회이 성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김선교사 부부는 그동안 SBS를 통해 양육받은 형제, 자매들에게 지역교회로 파송(?)되어 그곳에서 섬기는 것을 권유하였고 현재 Ann Arbor내의 여러 교회들 뿐 아니라 D.C., California, 한국등으로 이동한 조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섬기는 이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한 두사람의 헌신을 통해 60배, 100배로 열매 맺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실감하게 되었다. 1999년 김선교사 부부가 북방 A국으로 파송됨을 계기로, 조원들은 각 지역교회로 흩어져 청년부등을 통해 섬기고 양육받고 있으며 SBS라는 이름으로의 모임은 중단되게 되었다. 이를 인도자의 부재로 인한 모임의 와해가 아닌, 적정기간동안 훈련시키시고, 때가차매 흩으셔서 또다른 양육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인도자로서, 자신 또한 공급 받고 양육되어져야 하는 영적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켰는지가 궁금했다.


” 우선은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기본이 되었고, 두번째로는 우리 성경공부는 인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도자요, 모두가 적극적인 참가자 였기 때문에 서로 나누고 기도하고 응답 받고 변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 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많은 도전과 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가끔 있는 KOSTA, 교회 부흥회 등도 때때에 맞게 적절한 공급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BS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너무나 값진 보배와 같습니다. 이런 경험을 갖게 된 것은 노하우나 이전의 경험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이며 저도 이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많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였고 열매맺었음을 강조하는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지금 이시각에도 북방 A국에서 함께하는 영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힘있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있을 김선교사 부부를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신을 얼마나 기쁘게 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헌신된 한 명의 인도자를 찾고 계실 하나님을 생각하니, 김수연 선교사의 귀한 조언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섬기는 이로서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촛점을 맞출 수 있는 눈과 동시에 나와 함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함께 있어야 하며 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성호] 답달기 성경 공부는 이제 그만

이코스타 2001년 5월호

답달기 성경 공부는 이제 그만
– 균형 잡힌 성경 공부 모임을 찾아서 –


요즘 우리는 (아마도 40대 이하의)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해야 할” 필수적인 요건으로 흔히 성경 공부와 QT를 꼽는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해야 할”(doing) 어떤 요소가 아니라 “되어져야 할”(being) 요소임에 틀림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 공부나 QT를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만” 하는 어떤 필수 사항으로 꼽곤 한다. 이같은 우리의 인식은 늘 강조하는 대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깊이 배어 있는 ‘업적 중심’의 신앙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 하다. “이번 주도 나는 성경 공부를 갔다” “QT를 오늘도 어김 없이 했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어디엔가 “가서” 무엇을 “해야만” 만족할 수 있는 업적 중심의 신앙이 잘 드러나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각종 선교 단체, 대학부, 청년부, 제자 훈련팀을 통해서 심령 대부흥회와 철야 기도회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서서히 새로운 영적 방향의 흐름을 인도해 나갔던 성경공부 모임. 이제 30여 년이 지난 현재, 부흥회와 기도회에서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감으로써 한국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성숙과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 그리고 공유된 리더십의 필요성을 잔잔히 일깨웠던 성경 공부 모임과 교재들의 현 모습을 지켜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는 CCC의 ‘십 단계 성경공부’나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 연구’ 등, 선교 단체에서 발행한 성경 공부 시리즈가 한국 교회에 끼쳤던 신선한 영향력을 기억할 수 있다. 교단에서 발행하는 구역 예배나 속회 등을 위한 – 주일학교 공과교육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 ‘공과’ 수준의 성경 공부 교재에서, 이제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단계 별로 개인의 영적 성숙도를 점검해 나가면서 또 꼼꼼한 말씀 암송을 겸비한 짜임새 있는 교재들이 등장했을 때 젊은 지성인들은 놀라운 속도로 반응했다. 이제는 어느 덧 중년이 되어 버린 당시 젊은 대학 청년들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 그와 같은 교재들로 주님을 만나고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갔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교재들 대부분이 ‘질문하고 성경에서 답 찾아 달기’ (Fill in the blank)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성경 공부 모임에 참여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머리만 커진 교인을 만들어 냈던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에 80년대 들어 제자 훈련이 물꼬를 트기 시작하고 귀납법적 성경 연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성경 공부 교재에 새로운 전환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특별히 IVP에서 간행되었던 ‘말씀과 삶 성경공부 시리즈’ ‘IVP 기초 성경 공부 시리즈’ 등의 교재 등이 80년대 후반 이래로 청년 대학부와 캠퍼스 모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기존의 계단식 교육 과정을 띤 시리즈 성경 공부 교재가 단계 별로 체계적으로 빈틈 없이 필요한 요소들을 가르칠 수 있었음에도 ‘답 달기’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러한 성경 공부 교재들은 그러한 단점들을 보완하면서도 성경 연구의 귀납법적 접근을 통해 개인적인 적용을 요구하고 나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IVP 성경공부 교재의 경우 ‘지성 사회의 복음화’라는 단체의 모토에 맞게 상대적으로 높은 문제의 난이도로 인하여 지나친 지적 접근을 꺼리는 많은 층에게 거부감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일부 중장년층 교인들은 지금도 성경 공부 하면, 넥타이 맨 목사님이 앞에 서서 공과 공부 교재에 딸린 빈 칸에 답을 메꾸어 주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들에게는 아직도 예닐곱 둘러 앉아 마음 속 깊은 고민을 나누며 정답도 보이지 않는 질문에 대해 이런 저런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방법으로 성경책을 뒤지며 답을 찾는 성경 공부는 부담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균형 잡힌 성경 공부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최근에는 한국 교회에도 미국에서 시작된 ‘세렌디피티(Serendipity) 성경 공부’라든지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성경 공부 시리즈’ 혹은 ‘프리셉트(Precept) 귀납적 성경 연구 시리즈’등이 90년대 들어 소개되면서 성경 공부 교재의 다양화를 가져 왔다. 이러한 대안적(alternative) 교재들이 적용 중심의 귀납적 성경 연구를 크게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 공부를 통해 단계 별로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양육되어야 하는 사명을 되돌아 볼 때 우리에겐 여전한 걱정 거리가 남는다. 어떤 교재들은 지나친 나눔(sharing) 위주의 진행으로 우리가 정말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나누면서 성숙해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늘도 조원들과의 깊은 나눔을 – 나쁘게 말하면 정처 없이 흘러만 가는 돛단배같은 성경 공부를 – 통해 한 주일 동안 막혔던 한을 풀어주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들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균형 잡인 소그룹 성경 공부와 교과 과정을 세워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코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먼저 성경 공부의 목적은 그리스도인 혹은 비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신자의 삶 속에 합당한 단계로까지 성숙해 나가며 열매를 맺는 이들을 보기 위한 것임을 확인해야 하겠다. 성경 공부 모임에는 기본적으로 공부(study)가 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존재하지만, 이와 아울러 함께 자리한 이들과의 깊은 나눔과 교제를 통해 따뜻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천국의 작은 대리점(branch)을 맛보게 하는 다른 요소가 함께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각자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서 숨 쉬며 삶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이 있음을 함께 경험하고 맛 보아야 할 것이다. 공허한 답 달기는 이제 그만 두자. 주제 없는 만담 같기만 한 나눔 시간도 이제는 접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찔러 쪼개려고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기에.

[장평훈] 삶을 변화시키는 그룹 성경공부

이코스타 2001년 5월호


삶을 변화시키는 그룹 성경공부


1. 여는 말


최상의 기쁨과 보람 —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그것을 약속하고 있다. 누군가 구체적인 사례를 원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룹 성경 공부(GBS)를 들고 싶다. 영광스런 말씀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이’마다 그 영혼을 채우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 앞에 ‘함께’ 설 때, 참 교제의 순수함과 기쁨을 맛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달려 갈 푯대도 그 곳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GBS를 인도하기 시작하게 된 때는 1981년 봄이었다.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만 20년이 되는 셈이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시행 착오와 실수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을 넘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꾸준한 열매와 풍성함을 체험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로 형제자매들이 더 많은 열매와 풍성함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바람직한 그룹 성경공부는 어떤 것인가?


MIT의 Gate Bible Study가 첫 모임을 가지던 저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성경 공부 인도를 부탁 받고 밤 잠을 설쳐 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깨알 같이 적혀진 내용을 나누는데, 인도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 설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자그마치 90여 분 계속된 설교로 멤버들의 온 몸을 뒤틀게 만들었던 사건은 지금도 악몽 같이 생생하다. ‘돌아가며 말하기’의 중요성을 절감한 나머지, 그 뒤부터 문답식 교재를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번에는 답 맞추기 contest 같은 분위기를 자아 낸다. 경건 서적, 주석으로 보강된 지식을 견주고 뽐내는 자리였다. 때로는 사회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거의 방담 수준의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한 때지만, 멤버들의 불화와 갈등으로 긴장되고 냉냉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 와 중에서 자리를 뜨신 분은 성령님이셨으며, 옆으로 밀린 것은 성경 본문이었고, 뒷 전으로 처진 것은 속을 턴 나눔과 치유였다.


그 뒤에, 여러 다른 GBS들을 보면서 우리의 실수와 착오가 우리 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삶을 파고 드는 수준의 GBS가 너무나 소수인 것을 발견하였다. 약점 많던 Gate Bible Study가 오히려 돋 보일 정도였다. 그러면 GBS는 고학력자들의 지적 유희를 위한 모임인가? 아니면, 힘 깨나 있는 사람들이 옷 로비나 하는 고상한 사교장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GBS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람직한 GBS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GBS가 바람직한 GBS인지’ 분명하고 확실히 해야 겠다. 앞에서 말한 것을 바탕으로 세 가지를 열거한다.


첫째, 바람직한 GBS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붙들고 그 분의 말씀에 조건 없이 순종하려는 자세가 확실한 모임이다. 소위 영성에 관한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GBS에 갔더니 조용한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 GBS가 바로 이런 모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둘째는, 바람직한 GBS는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에 대해 성실하게 귀 기울이는 모임이다. 끈기와 집념을 가지고 본문을 파고 드는 모임이다. ‘성경에 관한 의견’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문맥 안에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 책 별 성경 공부가 주제 별 성경 공부보다 유리한 것이 이런 면일 것이다. 반대 편 방향은, 본문과는 별로 관계 없는(신앙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부분을 다루거나, 심하면 세상적인 이야기로 일관하는 경우가 된다.


셋째, 바람직한 GBS는 인도자가 설교하기 보다, 모두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 낼 수 있는 모임이다. 본문의 관찰과 해석에 관해서 뿐 아니라, 삶에의 적용에 관해서 너도 나도 편하게 참여하는 모임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고 배우며 사역하는 모임이다. 전혀 엉뚱한 질문이나 의견도 마음 놓고 내어 놓을 수 있고, 이성을 보고 흑심을 품었던 실수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모임이다. 이런 모임에서 우리는 진정한 코이노니아와 영적인 치유를 체험하게된다.


3. 바람직한 그룹 성경공부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


위의 세 가지를 갖춘 바람직한 GBS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원들 모두의 합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차적인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게 된다. 왜냐면 조원의 합심과 노력마저도 지도자의 리더십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두 가지 면이 요구되는데, 첫째는 내적인 자세이고 둘째는 기술적인 준비이다. 각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내면적인 자세


바람직한 GBS를 이루고 싶어할 때, 흔히들 기술적인 면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내적인 자세는, 이른바 영적 지도력(spiritual leadership)에 관한 많은 책들에서 취급된다. 여기서는 ‘GBS 인도자로서’ 중요한 세 가지를 들겠다.


첫째는 인도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 앞에 정직하게 서고자 하는 자세이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제 멋대로 살다가,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듯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인도자의 위치다. 하나님과 일 주일을 어떻게 보냈는 지가 속 사람을 결정하고, 속 사람의 강함이 메시지의 무게를 결정한다. 평소의 QT 없는 GBS 인도는 만용에 가깝다. 그 주의 공부할 내용을 미리 실천하고, GBS에 와서 체험담을 나눈다면 얼마나 생생한 공부가 되겠는가?


둘째는 ‘섬기는 leadership’에 충실한 자세다. 주위에서 듣기에는 흔하지만 보기에는 힘든 것이 ‘섬김의 자세’다. 그러나 섬김 없는 영적인 영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섬김은 기도로, 시간, 노력, 물질로 나타난다. 때로는 자존심의 포기로 나타난다. 예컨대, 한 주 한 번의 중보 기도 없이 조원들이 성장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중보 기도 하려면 그들의 필요를 알아야 하는데, 당연히 전화하고 만나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사랑을 말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원에게 물질을 아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도자의 섬김이 있을 때 GBS는 참된 영성을 갖추게 된다.


셋째는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는 자세다. 리더에 대한 허상을 버리고 조원들이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직함과 순결함의 발로다. 그래서 자존심의 포기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리더가 열지(open) 않으면 조원들도 열기 힘들다. 주인이 윗도리를 벗어야 손님들이 편하게 벗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리더가 이 세 가지 자세를 가질 때, 그 자세는 조원들에게 전파되어 GBS의 성격과 분위기를 결정하고, GBS의 주된 활동 (성경 공부, 예배, 교제, 전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영광의 보좌 앞에 다 함께 둘러 앉아 가식 없이 주님을 즐기고 나누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술적인 준비


바람직한 GBS를 이루기 위해서, 내면적인 자세와 함께 적절한 기술적 준비가 필요하다. 기술적인 준비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 본문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질문으로 바꾸어 대화로 이끄는 능력’이다. GBS의 깊이가 인도자의 본문 이해 수준에 달린 것을 고려하면 전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본문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더라도, 후자가 없으면 일방적인 설교로 끝나기 십상이다. 이 두 가지를 각각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첫째, 본문의 이해는 그 문맥 안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주제(main ideas)를 찾아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하면 된다. 이 간단한 것이 그렇게 힘든 까닭은 무엇일까? 본문이 심오해서 힘든 것도 있지만, 그 보다 번역(특히 개역 성경)이 난해하고 독해력이 빈약해서 힘든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 그간의 관찰과 경험이다. 현대어로 씌어진 번역을 택하기 바라고, 영어가 편하면 NIV 등을 권하고 싶다. 독해력은 주어진 본문 전체를 의미 있는 단락으로 나누어 요약하고, 각 단락의 주제들(main ideas)을 찾아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하여 메시지를 붙잡는 능력이다. 지면상 자세한 방법을 소개하기보다는, M.J. Adler와 C.V. Doren의 ‘How to Read a Book’을 추천한다. 본문이 이해되면, 먼저 주제들(main ideas)을 중심으로 적용한다. 자신을 본문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잘못하는 것은 회개와 함께 원인을 분석하고, 순종의 결단과 함께 실천의 방법을 찾고 기도로 구한다.


둘째로, 본문을 이해하고 적용한 것을 토대로 질문을 준비한다. 잘 준비된 질문은 조원들을 본문 앞에 서게 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적용하게 돕는다. 좋은 질문은 활발한 대화를 가져온다. 초점이 잘 맞춰진 대화는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선사할 뿐 아니라, 조원들의 체험을 모아서 각자가 공유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질문을 만드는가? 간단히 말하면, 인도자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다듬어서 만든다. 즉, 주제를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질문과 적용으로 유도하는 질문을 만들면 된다. 이미 있는 교재를 선택해서, 그 그룹의 상황에 맞도록 수정하여 활용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이 경우 교재를 선별하는 안목이 필요한데, 그 안목은 질문 만드는 방법을 이해할 때 얻어진다. 교재를 제대로 수정하는 것도 질문 만드는 방법을 알 때 가능하다. 질문 만드는 방법이 잘 소개된 소책자로서 IVP에서 발간된 ‘효과적인 성경 공부’와 ‘Leading Bible Discussions’를 권한다.


대화를 이끌 때, 한 조원의 대답에 다른 조원의 의견을 물으면서, 조원들 사이의 대화를 활성화시킨다. 인도자는 교통을 정리하는 중재자(moderator)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원의 대답이 좀 부족하다 싶어도, 좋은 면을 찾아주는 자세를 가질 때, 조원들도 본 받게 되고 서로가 편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게 된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 GBS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이루는지 살펴 봤다. 지면의 제약도 있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하며 그 열매가 뚜렷했던 것 위주로 정리하였다. 바람직한 GBS를 이루는 내면적인 자세와 기술적인 준비는 인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인도자의 일차적인 책임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도자가 지칠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헌신된 조원들이다. 더구나 조원들이 인도자와 함께 내적인 자세를 갖추고 기술적인 면까지 이해할 때, 그 GBS에 끼치는 영향은 자명하다. 바람직한 GBS를 이루는 데 있어 조원들이 기여할 몫이다. 소위 함께 공유하는 지도력(shared leadership)이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GBS 인도자로서 누린 영적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한다. 인도자의 내면적인 자세 — 하나님과 사람을 진실 되게 섬기는 자세 –는 인도자가 아니면 필요 없는 자세인가? 물론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살아야할 것이다. 인도자인 만큼 더 마음을 가다듬고 살아온 것, 놀라운 축복이다. 또, GBS를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 우리에게는 보상이며 기쁨이었다.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는 것, 최상의 특권이었다. 오늘도 인도자로 수고하는 손길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셔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모임들이 곳곳에 생겨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