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학생활, ‘미래를 위한 투자’만으로 충분한가 / 안병기

이코스타 2003년 1월호

eKOSTA 이렇게 저희 eKOSTA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eKOSTA 독자들에게 인사 겸 스스로 소개를 조금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병기 1990년에 미국에 왔고 지금까지 12년 반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Virginia Tech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를 했고, 그 후에 postdoc을 2년 반 하다가 Washington주에 있는 에너지부 산하 국립 연구소에서 2년 가량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Connecticut주 Hartford 근교의 UTC Fuel Cells 라는 연료전지 개발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교회활동에 대해 말씀드리면, 91년에 Virginia Tech의 대학원생으로 있을 때부터 성경공부 인도를 했었습니다. 처음엔 대학원생 미혼 그룹을 섬기다가 학부 학생을 섬기게 되어서 KCCC(Korea Campus Crusade for Christ) 협동간사로 2000년까지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거의 전원이 학생이었는데요, 그런 이유로 제가 섬겼던 대상들은 대부분 학부생과 대학원생 혹은 postdoc이나 교환교수님들이었지요. 그리고 Washington 주로 간 후에는 제가 살고 있던 곳으로부터 두시간 반 정도 떨어진 Washington 주립대학 지역에 격주로 가서 하룻밤 머물면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성경공부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는 Connecticut의 하트포드 제일장로교회에서 ‘코람데오’라는 이름의 한어권 청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별로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시키셨던 이유는 저와 배경이 비슷한 석사학위 혹은 박사학위 등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일차적 직업을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이차적 직업을 엔지니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eKOSTA 그럼 시간과 마음을 쓰시는 것도 복음을 나누는 사역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하시는지요?


안병기 솔직히 두 개를 놓고 보면, 사역 쪽에 더 애착이 많이 가지요. 물론 신앙생활과 일반생활을 조화시켜서 사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 사역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서로 다른 삶의 두 영역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엔지니어로서의 제 일상생활이 신앙생활에 비해 덜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매일의 삶 속에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 직업현장이 바로 선교지라는 생각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eKOSTA Virginia Tech에서의 사역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를 해 주세요.


안병기 제가 박사과정으로 있었던 기간이 약 6년 반, post doc으로 있었던 기간이 2년 반 정도 였는데요, 그 지역이 대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직장을 잡고 정착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몇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학부생 사역에 가장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학부생 사역은 이미 그 지역의 지역교회에서 모임이 만들어져 진행되고 있었고, 저는 이미 만들어진 모임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금요일 성경공부, 주일모임, 토요일 오전 조장 훈련 모임, 주중에 한번 저녁 기도모임, 그 외에도 캠퍼스 안에서 자주 만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제가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다기 보다는, 학생들과 같이 생활을 하며 오히려 그들로부터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공급받았습니다. 이건 제가 학생들에게 지금까지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요.


어떤 학생들은 모임을 하고 있는 도중에 새로 예수님을 믿게되고 성숙해서 큰 기쁨을 서로 나누게 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학생들은 많은 노력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서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후에 저희가 함께 했던 모임을 생각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아주 많은 감동이 있습니다. 그럴 때 생각하게 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이지요.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당장 효과와 열매를 얻게되지 못하게 경우가 많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참고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열매를 맺으시길 기대하고 믿으면서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학생들을 섬기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은, 제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도 저를 자신의 삶의 모범(role model)으로 삼는 학생들이 생길 때였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유학생활 초기에 제게 큰 영향을 주신 분들 가운데 말씀으로 후배들을 양육하고 섬기던 평신도 사역자 선배님이 계셨고, 언제나 그분을 보면서 ‘바로 저런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부족하지만 제가 그런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eKOSTA 그러니까 그 선배님으로부터 삶을 통해 제자도를 전달받고, 그리고 다시 후배들에게 삶을 통해 전달해주는 연결이 만들어진 셈이군요.


안병기 그렇습니다.


eKOSTA 공부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안병기 사실 유학생활은 매우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기간이지요. 그 목표가 단순한 만큼 그 목표를 향해서 잘 진행이 될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자격 시험(qualifying test)도 한 과목을 낙제해서 이 다음 학기에 다시 치렀고, 남들은 4-5년이면 끝내는 박사학위를 6년 반, 다른 학교에서 보낸 한 학기를 포함하면 7년이 걸렸지요. 제 경우 박사과정 기간이 길어졌던 큰 이유는 제가 지도교수로 택했던 분들 처음 두 분이 모두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 번째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를 해서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교수님이 떠날 때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더군요. 하나님께서 정말 제가 학위를 마치시기를 원하시는가. 만일 그때 제게 신앙이 없었다면 그만 두었을 가능성이 참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나름대로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공부하게 하셨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요, 제 학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공부가 제게 가장 큰 목표였다면 제게 그러한 어려움들은 큰 좌절이 되었을 테지만, 한편으로 제가 하는 공부는 신앙생활(하나님과의 관계)의 한가지 도구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시련들이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이 되는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제가 정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아픔에 깊이 공감하기 참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게 그런 아픔이 있다 보니까 비슷한 아픔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 위로와 격려는 더 큰 힘이 실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 기도가 그냥 겉도는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건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몸소 내려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몸소 겪으셨던 바로 그 원리지요. 이렇게 제 개인적인 어려움을 가지고서도 하나님께선 선으로 사용하셨습니다.


eKOSTA 그 어려움을 이겨내신 또 다른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안병기 학위가 거의 끝날 때쯤 되어서 갑자기 연구가 꽉 막힌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 참 막막한 느낌이 들었었는데요, 그때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차피 제 힘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공부시키신 게 분명하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께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대학원생 사역을 하나 더 개척하겠습니다. 그 이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주십시오’ 그리고 대학원생 부부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하나님께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참 감사합니다. 제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순종해서 갔던 경험이 있었다는 것에 지금도 감사한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바쁘고 힘들 때, 일주일에 서너 번을 성경공부 하느라 시간을 빼앗겼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학기에 큰 어려움 없이 학위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최종 논문 발표는 25분만에 어려운 질문 하나 없이 끝났습니다.


eKOSTA 학업을 하는 자세에 대해 좀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은 어떤 말씀이 있으신지요?


안병기 ‘훌륭한 연구를 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이 된다’는 유혹을 참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분들은 아주 드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일이 잘 안 되는 것을 견뎌내는 것을 보이면서 다른 분들에게 유익을 드리게 된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니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실 것을 믿고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는 것이 참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겪는 이 힘든 경험이 단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도 있고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값진 일이겠지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비전을 크게 갖는 것은 좋지만, 때로 우리가 너무 우리의 능력 밖의 것을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세상의 큰 꿈을 따라가는 것은 주의해야겠지요.


eKOSTA 워싱턴주 쪽에서의 사역에 대해서도 좀 소개를 해 주세요.


안병기 위싱턴 쪽에서의 사역은 영혼의 귀중함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차로 두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버지니아에서처럼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요, 그러다 보니 더 애틋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두시간 반을 운전해 가는 길이 아주 시골길이어서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운전해서 가는 동안 기도 이외에는 할 것이 없더라구요. 제가 두시간 넘게 그렇게 한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할 기회를 주셔서, 운전하고 오가는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참 우습게 보였겠지요.


그렇게 가서 학생들을 대하면 아무 얘기도 안하고 그냥 성경책을 들고 서도 이미 모두들 마음이 다 준비가 되어서 누가 말씀을 전해도 은혜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자리가 되었죠. 다른 분들도 참 기도로 많이 지원해 주셨고요. 한번 가면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내니까 거의 밤을 새워 학생들과 성경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일상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eKOSTA 가정도 있으시고요 직장생활도 하시고 그리고 이렇게 사역을 하시려면 참 시간이 많이 부족하실 것 같은데,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안병기 전 시간관리라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한번 어떤 일에 빠지면 잘 헤어나지 못하거든요. 저는 늘 가정에 충실하게 해 왔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언젠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 안타까워했던 일이 있습니다. 재작년에 아내가 결혼생활 7년 동안 주말에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제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스스로 들여다 보면, 많은 경우 돈도 시간도 사역 쪽에 더 쓰게되는 것 같아요. 아내도 그걸 알죠. 그런 면에서 아내에겐 참 미안한 점이 많고, 참 고맙지요.


eKOSTA 그런 면에서 부인과 정말 동역하신 것이군요.


안병기 네, 제 경우는 아내가 참 많이 도와줬어요. 저는 제 아내의 도움 없이는 이렇게 사역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내는 제가 말씀을 전할 때 교정을 봐주는 역할도 해 줍니다. 늘 학생들에게 밥 해 먹이는 것도 그렇고요. 저희 집에는 아주 큰 밥그릇 국그릇이 있었지요. 많은 학생들을 한꺼번에 불러서 밥을 먹고 그랬으니까요.


eKOSTA 사역을 하시다보면 사역이 하나님 것이 아니고 내 것이 되어버리는 유혹도 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안병기 그런 유혹이 참 많이 있지요. 사실 그런 것을 깊이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쪽에서 사역을 마무리 짓고 떠날 때, 제가 뒤로 물러나 있고 후임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일종의 인수인계 기간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학생들이 늘 저와 이야기하고 상의하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후임자하고만 이야기하고 도움을 얻는 것을 보면서 참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때, ‘아, 내가 이 사역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특별히 그런 면에서 주의를 합니다. 특별히 사역이 아주 잘 되어가면 스스로 물러날 때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eKOSTA 사역지를 옮기시거나 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도 참 중요하겠네요.


안병기 한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요, 제가 워싱턴 주로 갈 즈음에 한국의 어느 대학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박사공부를 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한국에 교수로 가는 것을 꿈꾸지요. 저도 역시 한국에 교수로 가서 학생사역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참 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라고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시면 좋은데 웬만해서는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결국 고민 끝에 한국에 가지 않고 워싱턴 주 쪽으로 갈 것을 결심을 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래의 갈 길을 놓고 새벽기도를 하던 중에 워싱턴주 쪽에서 제안(job offer)을 받았다는 사실이었고요, 또 하나는 그쪽의 사역 환경이었어요. 제가 버지니아에 있을 때는 이미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어떻게 사역하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기술(skill)을 경험을 통해 배웠잖아요. 그래서 마음 속으로 성경공부 모임을 처음부터 개척해서 스스로 서는 상태까지 성장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워싱턴주 쪽에서는 그게 가능했지요. 제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다섯 명 정도로 시작했던 모임이 제가 떠날 무렵엔 30여명, 그리고 후배 간사님의 섬김으로 그 모임이 다시 50여명까지 모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eKOSTA 유학생활을 흔히들 거쳐가는 기간으로만 생각하고 그 기간 자체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에 담지 않는 유학생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지금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유학생활 자체를 정말 사역의 기간으로 삼으신 것이 참 인상적이네요.


안병기 선배 유학생으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의 이야기라고 들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유학기간을 미래를 위한 투자 기간으로만 바라보는데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기간인 것 같아요. 20대에서 30대 초반에 해당하는 가장 의미 있고 황금 같은 시기지요. 게다가 학위준비라는 그 투자가 반드시 열매를 얻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박사과정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박사까지 이르는 분들이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박사학위를 마쳤다고 해도 그 이후의 어떤 목표까지 가는 분들은 더 적고요. 그리고 겪은 분들이 다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학위의 목표를 세상적인 것으로 잡으면 그것을 이룬 후에도 정말 허탈해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있는 기간 동안 갖게 되는 신앙적인 훈련이 정말 소중한 것 같습니다.


학생에서 postdoc이 되면 월급이 두 배가 되고, 직장을 잡으면 다시 월급이 두 배가 되지요. 하지만 생활의 규모가 그렇게 커지지 않을 뿐더러, 생활의 만족도가 그렇게 두 배, 네 배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어떤 쪽으로 그것이 두 배, 네 배가 될 수 있느냐 하면요, 학생 때에 마음 속에 품었던 비전들을 이루어 갈 때 그것이 월급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두 배도 되고 백 배도 되는 거지요. 언제든 크리스천으로서의 자부심(pride)을 잃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보다 교회 밖에서 더 힘있는 크리스천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이런 면에서 실패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젊었을 때 신앙적으로 훈련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참 큰 것 같아요. 정말 순수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 학생 때에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확실하게 다지고 졸업 후에 그 흔들리지 않는 비전을 붙들고 사는 우리 후배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eKOSTA 이런 이야기들을 쭉 접하시는 독자들이요, ‘이렇게 섬기실 거면 왜 신학교 안 가세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


안병기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아마 많은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그런 고민을 다 한번씩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엔 평신도 사역에의 부르심이 너무 뚜렷해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신학적 훈련을 위해서 필요한 신학교 강의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사가 될 생각은 적어도 현재로선 없습니다.


1991년 여름에 농촌선교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 후에 한국의 농촌에 대해 너무 가슴아프게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90년대 초에 이단들이 농촌지역에 너무 창궐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요. 그때 ‘만일 박사 공부를 하는 사람이 박사를 그만두고 농촌 목회에 뛰어들면 얼마나 다른 사람 보기에 충격적으로 보이고 효과적일까’ 하는 마음을 가졌었어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은 누구든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지가 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사공부 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농촌 목회 시킬 순 있지만, 농부 한사람 불러다가 박사 시켜서 박사들에게 복음 전하게 하긴 어렵다 라는 것이었지요. 또 하나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 제가 농촌 목회를 신중히 생각했던 이유는 그 지역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가진 게 많고 배운 게 많아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불쌍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그게 제 모습이었고요. 정말 그 사람들의 언어로 그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기 위해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바울처럼 그런 효과적인 작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지요.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제가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강권적으로 시키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목회자가 이야기할 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평신도가 이야기 할 때 신선하게 다가가는 경우가 참 많아요. 엔지니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과 공감대가 있으니까 접근하는데 유리한 점도 있고요. 지구 전체에 99%가 평신도인데요, 목회자가 그분들에게 접근할 때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지만, 어떤 경우엔 공감대를 가진 평신도가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경우가 분명히 있지요. 저는 그런 평신도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같습니다. 또 제가 목회자를 하기엔 어떤 면에선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고요.


eKOSTA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안병기 제가 사역을 놓고 기도할 때 10년씩 기간을 나누어 짰던 계획이 있었어요. 30대에는 학생 사역을 하고, 40대에는 부부 사역을 하고, 50대에는 자녀교육 사역을 하자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지금보다 더 잘 해야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텐데’ 하는 갈등과 고민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섬기는 우선적인 사역은 캠퍼스 사역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든 제 감정이 아주 메말라 있을 때에도, ‘예수님’ 이라는 단어와 ‘청년’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 지거든요. 청년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든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고요. 이런 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디에 제 관심과 사랑이 있는지 하는 것을 스스로 다시 보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그만 하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지금처럼 이렇게 청년들을 섬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귀한 시간 나누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안병기 두서 없는 말씀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시훈]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고

이코스타 2003년 1월호

2002년 한 해 동안 매달 집계되는 도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지속적으로 높은 순위에 오르는 책 중에 탁닛한 스님의 ‘화( anger )’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해 동안 그렇게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보니,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부제가 눈을 끕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내적 감정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인생에 아주 커다란 장애로 삼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첫 장의 소제목 ” 눈을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라는 문장은 매일 매일 일상 속에서 퍽이나 공감이 가는 말인 것도 같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들의 어긋남에서 오는 짜증에서부터 삶 자체를 흔들 정도의 분노를 느끼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화나는 마음을 품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살펴보면 우리의 생활 반경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삶의 도전을 요구하며 극복해야할 벽으로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달콤한 아침잠을 방해하는 밖의 소음, 출근길의 정체된 차량, 일터에서 받는 온갖 스트레스, 가족 간의 갈등, 세대 차, 사회에서 느끼는 불평등, 범죄에 대한 불안, 경제적 압박감, 불투명한 미래, 환경 오염, 건강의 악화, 신문을 가득 채운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비리….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우리를 화나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 투성이인 것 같아 특정한 대상도 없이 증오심과 적개심을 마음 한 구석에 키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탁닛한 스님은 시기, 절망, 미움, 두려움은 모두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며 이 모든 것들을 합친 것이 ‘화’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화를 마음에서 제거하기 위해 호흡법, 보행법, 내면과의 대화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이것을 폭발하기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걸으면서 분을 삭히는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원인을 살피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점검하는 실제적인 방법이 무척 효과적이고 유용할 것 같다는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화를 참고 삭히면 마음의 병으로 남고 그 상처는 육체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진심으로 화해하지 않은 분노는 마음의 가시로 남아 자신과 남을 날카롭게 상처 입히고 마는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언젠가 더 심하게 곪게 마련이니까요.


저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화를 이끌어 안고 제거하는 훌륭한 방법들과 그것으로 인해 인격의 변화와 관계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서 화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가 성내고 분노하는 많은 이유가 인간의 권력의지와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타인의 행동이나 의식, 내 뜻 때로 순종하고 따라주지 않는 하급자나 자녀, 세상이 나를 인정하고 내 위주로 변화되어지면 좋으련만 세상은 나를 보고 변하라하니 화가 나는 것이지요. 동료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강한 의지만이 내게 중요하게 느껴지고 나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세상은 정말 짜증나고 답답한 곳이 되어 버립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의 유익을 빼앗으려는 적인 것만 같이 느껴지지요.


현대 영화들을 보면 많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편협한 가치관을 가지고 논리적인 개연성이 없이 행동하는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계획이나 감정을 건드리는 자들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나의 존재만이 절대 가치라는 듯한 유아독존의 주인공이 가혹하게 화를 발산할수록,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지경이니 비판적인 반성의 여지가 없겠지요. 타인의 인격과 존재에 대한 관심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게 스러지는 엑스트라에 대한 기억만큼 미미한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포함된 아주 작은 범주 외의 타인들을 마치 정물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까지 분석되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왠지 서글픈 느낌마저 드는군요.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까 염려하거나 폐를 끼칠까 조심하는 등의 배려심은 훈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촌이 잘되니 기뻐서 미소가 번지는 마음이라면 질투에서 시작된 미움과 화를 염려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타인의 갖고 있는 관심사나 목적이 나와 상반되는 것일지라도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면, 나와 다르다는 것, 나의 유익이나 편리에 장애가 된다는 것 때문에 불쾌하고 좌절을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녀가 갖고 있는 장래 희망이 내가 꿈꾸는 것과 너무 다르다거나, 지금 보여주는 성과가 나의 기대와 너무 동떨어진다는 것 때문에 저 자신 얼마나 자주 분개하고 성을 내는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소박한 꿈을 귀하게 여기며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 범위에 눈 높이를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할 때만 그 일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화를 내거나 품는 일은 우리의 욕망, 권력의지,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힘과 질서가 있으며 어떤 목적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당장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서 조급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기다리며 지혜를 구하는 자세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무질서와 오염으로 뒤덮인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곳임을 발견하는 순간 이곳은 아름다움 정원이 되는 것이지요. 나의 시각과 행동과 마음이 어떤 수행으로 변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깊숙한 곳에라도 뛰어들고 싶습니다. 타인을 위해 내 유익을 포기하고 마음이 더 아플 수 있다면, 하루라도 분을 내지 않고 공감과 연민의 감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


주님께서 내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불 속에 던지라고 하신 말씀은 거짓되고 상한 부분을 완전히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나와 너와 그리고 그들이 세상보다 더 소중한 존재임을 발견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성스러운 속성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형상인 사랑의 능력을 깨달을 때 내가 변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저는 경험하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모든 것을 치유하고 감싸며 모든 것을 이루며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무한한 힘인 것입니다.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린도 전서 13 : 4,5 )


이미 우리 손에 모든 해답이 주어진 것 같군요. 서로 사랑합시다.!!

[차문희] 교직생활 첫해를 돌아보며

이코스타 2003년 1월호



언젠가 이코스타 에 “다양성에 대한 이해”라는 글을 투고 한 적이 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갖는 편견 의식과 이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다루었다. 우리 사회에 소외 되는 이웃들이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한국 사람들의 삶에 뿌리 내린 유교 적인 문화와 전통 때문에 서양 사람들 보다 그 이해가 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다고 본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가정 형편이 넉넉하고 학업에 열중하다 보니 흔히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일에 게을러 지기가 쉬울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소외 된 이웃들을 주제로 한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학교 졸업 후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어느덧 5 년 째,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교육학에서 배운 내용만을 가지고 현실에 뛰어든 나의 교사 생활 첫 해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공부 하는 동안 여러 가지 교생 실습을 통해서 미국의 공립 학교가 어떠한 곳이고 또 장애 아이들이 있는 특수 학급이 어떤 곳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내가 실습을 나가면 언제나 담당 교사가 함께 나와 있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는 없었고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졸업 하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처음 내가 맡은 학급은 주로 4 학년과 5 학년의 학습, 정서, 그리고 정신 지체를 가진 학생들이었다. 서양의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비록 4, 5 학년 아이들이지만 키도 나 보다 크고 덩치도 크며 장애가 있는 지라 성격들도 일반 4, 5 학년 아이들에 비해 많이 달랐다. 더군다나 동양인 교사이기 때문에 얼른 아이들과 친해지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아이들을 처음 만나서 수업을 하는데, 세상에! 혼자서 그 아이들을 다루는 데는 내가 너무 부족했다. 첫째,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로 써는 문화와 관습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들은 자기 주장이 강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이에 상관 없이 이야기 했으며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좋고 나쁜 행동을 해서라도 행동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우리 한국 어린이들은 아니 요즘은 많이 달라 졌다고는 하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유교적인 사상 때문에 어른 공경이 우선 인지라 자기 주장을 내세우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때와 장소를 가렸으며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줄로 알았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렇지 못 했다.


학부 과정에서 특수 교육의 정신 지체를 공부한 나는 학습 및 정서 장애에 대한 기본 적인 지식 외에 전문 지식이 부족 했기 때문에 그들을 지도할 때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특히 그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교육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수업이나 부모님들과의 상담이 이루어 질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정신 지체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 방법이 학습 장애나 정서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적용 했을 때 아무리 특수 교육의 일부라도 효과적이지 못 할 때가 많이 있었다. 자기의 능력에 맞게 효과적인 교육 효과를 보지 못 한 아이들은 학습 능률이 오르지 않았고 집중력이 약해서 딴 짓만 했으며 다른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심지어는 수업 까지 방해를 놓을 정도 일 때도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의욕 보다는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기를 좋아했으며 노력 보다는 공짜로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곤 했다. 그래서 학습 장애와 정서 장에에 대한 공부를 해서 다시 라이센스를 받았다. (참고: 조지아에서 교사 자격증 취득 시 자기가 전공하지 않는 분야를 가르치게 될 경우 3년 안에 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다시 라이센스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장애가 다르듯이 그들의 학부모님들 역시 한국 부모님들에 비해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한 번도 가정 문제나 불화를 겪어 보지 않고 자란 나로 써는 나의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그들의 가정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 극심해 져가는 미국의 가정 문제들을 배우고자 Family service (family therapy)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이 학문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성장 및 발달 과정을 비롯해서 현대 가정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책,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무조건 공부만 마치면 내가 일 하고 있는 분야에서 잘 할 것이라고 착각에만 빠져서 헤 메이고 있던 나에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나의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보여 주셨고 그 현실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결책까지 가르쳐 주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심리적, 정서적으로나 힘든 순간들이 많았던 쳣 해는 그렇게 지나갔고 해가 갈수록 일은 수월해 졌고 요령도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생겼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침으로 특히 소외된 이웃들을 섬긴다는 사실에 마음 한 구석에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되었다. 비록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그 부족함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더욱 더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얻고 결국 소외된 이웃들을 섬긴다는 그 자체가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행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