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인 / 박지연

이코스타 2003년 2월호


eKOSTA 이대에서 특수 교육학 학부 과정을 공부 하시고 교편 생활을 하셨는데, 학교 생활 후의 여정과 장애 아이들과 함께 한 삶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지연 정신지체, 정서장애, 자폐성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 유아들을 가르쳤는데요, 재미있고도 고민스런 시간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겠지요. 대학 다니는 중에도 많은 자원봉사나 실습을 했지만, 그렇게 full-time으로 현장에서만 있어보게 된 것이 참 좋았어요. 아이들과 구르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신났고요. 장애라는 특징을 가졌다 해도, 그 이전에 모두 “어린이”들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아이들이 자라가는 것을 보는 게 참 좋았습니다.


“고민스런” 시간이었다고 말한 의미는, 그런 와중에도 ‘과연 내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끊임없는 자문의 시간이었다는 뜻입니다. 아이마다 워낙 다양한 장애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학습특성도 달라서 아무리 좋은 교재나 방법도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니었고, 더구나 우리 아이들은 교육의 결과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는 조바심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좀 더 오랜 시간 현장에서 배웠어도 좋았겠다 는 생각을 합니다. 길지 않은 교직생활기간을 가지고 이런 지면에서 길게 이야기 하는 것이, 오랜 기간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KOSTA 교직 생활을 하시다가 미국 유학을 결정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특수 교육의 여러 분야 중에서 어떤 분야에 대해 학위를 받으셨는지요?


박지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공부를 더 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꼭 외국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특수교육 쪽의 학위를 국내에서 하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게 된 거였습니다. 제가 공부한 분야는 장애인 가족지원과 장애아동 행동 지원입니다.


eKOSTA 한국에서 교직 생활을 하시다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박 교수님께서 미국의 특수 교육과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서 느끼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박지연 일단 일반인들의 인식이 무척 다르다 는 게 피부로 느껴졌지요. 한국에선 현장학습 갈 때 아이들 데리고 전철을 타거나 길을 걸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쳐다봐 주거든요. 혀를 차는 소리도 많이 들리 구요. 미국에선 참 다정하게 인사하고 지나가요. 장애아들이라서 특별히 더 친절하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아이들을 예뻐 하며 아는 척 하는 그 정도만큼만요. 그런 사회분위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미국의 정책과 교육방법을 단시일 내에 급히 도입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부러운 부분이었지요. 특수교육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특수학교를 찾아보기가 무척 힘들고, 대부분의 장애 아동들이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그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협력하고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 등이 놀라웠지요. 공교육이 끝난 후의 직업재활, 독립 주거 등에 있어서도 아직 국내에서는 생각도 못해본 형태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KOSTA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에 특별히 돌아가신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지금 이대에서 특수 교육학의 어떤 분야들을 가르치세요?


박지연 저는 바울의 “빚진 자” 개념에 많이 동감합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구원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에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울처럼, 저도 저를 장애인을 가르치고 돌보는(즉,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장애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교육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제 삶이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빚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빚을 갚을 대상이 꼭 한국의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고, 국제기구나 제 3세계의 장애인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2001년 겨울 이대에 지원을 하면서 이 결과를 통해 어디서 일할지 알려주시기를 기도하고 그 결과에 따르기로 한 것 뿐입니다.


현재 이대에서 가르치는 분야는 무척 많습니다(아직 막내니까요^^). 하지만 주된 분야는 정서 및 행동 장애입니다. 그 외에 응용행동분석, 특수교육연구, 특수교육과 컴퓨터, 현장실습, 특수교육의 이해 등도 강의하지요.


eKOSTA 미국 유학을 마치고 처음 이대에서 강의하시면서 미래의 특수 교사들을 양성하시고 계신데요, 미국에 비해 한국 대학의 특수 교육학과 프로그램과 특수교사 채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지연 두 체제가 무척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를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 우리나라의 특수교사는 주로 학부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임용고사를 통해 공립학교에 임용되거나 또는 소정의 과정(면접 등)을 통해 사립학교나 기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반해, 미국에서는(물론 미국에서도 학부부터 특수교육을 하여 특수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만) 많은 학생들이 일반교육학 계통을 학부에서 하고 5년차 과정 또는 대학원 과정으로 특수교육을 공부해서 특수교사가 되기 때문에 일반아동의 발달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장애아동을 가르치게 되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일반학급에 통합되어 있는 장애아동을 위해 일반교사를 지원함에 있어서도 특수교사가 더 많은 교육연수와 현장경험을 가지고 있음이 인정되니까 일반학급 교사들이 그 점을 존중하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갓 졸업해서 임용고사를 마친 젊은 특수 교사들이 자신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일반 교사들에게 통합지원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거든요.


eKOSTA 코스타 사역 중에 전공 및 관심별 모임에 장애인 사역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역시 똑 같이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어 졌기 때문에 복음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국 교회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 선교의 문제점이 있다면?


박지연 장애인 선교는 무척 광범위한 개념이라 제 수준에서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긴 어려울 것 같고요(게다가 아직 귀국한지 1년이 안된 처지에서, 국내 장애인 선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장애아동에 대한 선교에 국한해서 이야기 해볼까 해요. 10년 전 제가 주일학교를 할 때는 장애아동을 위한 예배가 있는 것만해도 매우 대단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교회들이 장애아동 부서를 가지고 있어요. 양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을 한 셈이지요. 이제 질적으로 변화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분리된 장애아동 주일학교가 아니라 일반 주일학교에 통합을 해야 한다는 거죠. 이미 있는 장애아동 부서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부서는 장애아동이 비 장애아동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교사도 1:1로 배정해서 사전교육을 시키고, 공과책도 장애아동의 특성에 맞게 수정하고, 주일학교 예배실 내에 장애인 편의시설도 설치하고 하는 등의 일들을 맡는 거지요. 최근에는 한국에서 실험적으로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 교회들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계속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KOSTA 코스타가 소외된 이웃인 장애인들을 섬기는 일을 돕는데 있는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박지연 유학생의 처지에서 소외된 이웃이라든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당장 action을 취하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코스타에서 매일 또는 매주 front page를 update할 때마다 한국이나 미국의 일간지에 나온 장애 또는 장애인 관련기사 중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 하나씩을 실어서 (토론 방을 개설할 수도 있겠지요) 이코스타를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장애와 관련된 이슈를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까 합니다. 직접 몸으로 나가서 부딪히는 적극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결국 한국사회로 돌아오든 미국에서 활동하게 되든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코스타 형제 자매들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정립하고 있다면 그 무엇으로도 얻기 어려운 “사회인식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을 테니까요.


eKOSTA 마지막으로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지금 현재 남편 되시는 김 두식 교수님과 주말 부부로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이 떨어져 지내시는데 자녀 교육 및 가정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박지연 주말부부라고 해도 목요일 저녁이면 포항에서 서울로 오고요, 주일 저녁에 다시 내려 가기 때문에 크게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화, 이메일, 핸드폰문자 등으로 늘 이야기를 주고 받으니까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날그날 알 수 있고 집안 일도 그 때 그 때 의논합니다. 물론 서울이 되든 포항이 되든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희 부부는 이대와 한동대 모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맡기신 사역지라 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나흘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나 차비와 전화 비를 다른 가정보다 좀 더 많이 쓰는 것 정도는 별로 큰 어려움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있는 황금어장에 보내주신 것으로 무척 감사하니까요^^

[이시훈]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난 사람

이코스타 2003년 2월호

크리스마스를 앞둔 며칠 전부터 일기 예보에서 비가 내릴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하늘에서 아름답고 탐스런 눈꽃송이를 뜻밖의 선물처럼 듬뿍 내려주어, 마음을 무척 들뜨게 만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마저 갖게 하는 오후에 손님이 한 분 찾아 오셨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P부인이었는데 기쁨이 가득 찬 밝은 얼굴로 들어오자마자 저를 다정히 안아 주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가 지난 저녁 그녀와 그 가족들이 경험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좀더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그녀가 제게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아들네 집에 갔었다우. 우리 큰아들 말이야, 얼마 전 목사 안수 받고 다음달부터 켄터키의 작은 도시에서 목회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전에 말했죠? 그래서 이곳의 집과 모든 일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온 가족이 기도로 준비를 하고 있지. 그 아인 참 신실해요. 며느리도 그렇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이 진실한 아이들이지. 그 애가 소명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신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 모두는 기뻐하며 언젠가는 이루어질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두손들어 환영했었다우.


아무튼 그 집에서 어제 작은 파티를 열었다우. 동네 이웃들을 몇 가정 불러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며 미리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거였지. 그런데 바로 이웃의 두 집은 전혀 믿지 않는 가정들이라 우린 특별히 기도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들을 맞았지요.


한 가정은 남편은 오지 않았고 부인과 세 명의 아이들이 왔는데, 초저녁인데도 그 여자는 술에 취해 있는 거 같았다우. 머리와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고 산만한 태도와 말할 때마다 술 냄새마저 풍기고 있었으니까. 나와 남편은 좀 당황했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아주 다정하게 그녀와 아이들을 대하더구만. 아이들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처럼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에 버릇없는 행동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어.


그 여자의 이름은 수전이었는데 아이들 이 식탁에서 예의 없이 구는 것을 보면서 좀 부끄러워하며 “ 이 동네에서 십 년이 넘게 살았지만 우리 가족이 초대받은 건 처음이에요. 우린 남들과 어울리는데 익숙하지 못하답니다.” 라고 말하더군. 다섯 가정의 이웃과 우리 부부, 아들네 가족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어요.


참, 내 손녀 알죠? 한나 말이유. 올해 다섯 살이 되었는데 그 앤 정말 특별하다우. 맑은 두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사를 만나고 있는 것 같지. 게다가 그 어린것이 두 손을 꼭 쥐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하나님도 그 애의 기도는 다 들어주실 것 같아. 그 아인 정말 축복이야, 암 하나님의 선물이고 말고. 아,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흐를 뻔했네. 한나 이야기만 나오면… 호호.. 늙으면 다 이런다우.


식사를 마치고 케잌을 돌리고 있는데 수전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더군. 멀리 가는 것 같진 않아서 그냥 모른 척 하고 다른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 아이들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장난감과 놀이 기구들을 가지고 서로 잘 어울리며 놀고 있었구. 얼마 후 수전이 들어왔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 앉는 거야. 우리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해서 모두 그녀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지. 수전은 한 동안 울음을 억제하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우.


“ 방금 전에 저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마당에 나갔었답니다. 여기서 몇 시간씩이나 참아서 담배를 여러 개 계속해서 피고 있었는데 한나가 저를 빤히 쳐다보는 거예요. 하도 열심히 쳐다보기에 왜냐고 물었죠. 한나가 뭐라는 줄 아세요? 오, 세상에…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면 아줌마가 아프게 되지 않냐고 물으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거였어요. 정말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이죠.“ 그녀는 다시 울먹이느냐고 목이 메인 것 같았다우.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게도 사랑 받아본 적이 없었답니다. 남편은 거의 매일 때리고 욕을 퍼붓곤 해요. 몸에서 피가 나고 다쳐도 우리 아이들은 저를 걱정하기는 커녕 더러운 욕을 하거나 웃으며 놀리기만 해요. 그 아이들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겠죠. 다 내 탓이겠지만….


난 늘 술에 취해 살아요. 그렇지 않으면 한 시도 견딜 수가 없거든요. 이웃들도 모두 다 저를 무시하고 경멸해요. 아무도 저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하지요. 상점에서도 제가 지나가면 의심스런 눈으로 제 뒤를 보는 걸 느낀답니다. 아무도, 아무도 절 사! 랑하지 않아요. 전 그냥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거구요. 그런데 한나가 저를 보고 사랑한다는 거예요. 저 예쁘고 귀한 아이가 저처럼 냄새나고 지저분한 사람을 말이지요. 오, 세상에.. 저를 사랑한다구요!!“ 수전은 기쁨과 슬픔이 겹쳐서 소리내어 울었고 방에 있던 모두가 훌쩍이기 시작했다우.


누군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우린 다 따라서 찬송을 시작했지. 이웃 집 부인이 수전을 끌어안고 낮게 기도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수전, 사랑해요”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우. 어제 우린 정말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우. 난 믿어요.
수전이 머지않아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깨달을 거라는 걸.



이야기를 마친 P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커다란 선물을 듬뿍 받은 것 같습니다. 가슴 가득 즐거움이 차 오르는 것을 느끼며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얗게 눈 덮인 저녁이 너무나 환하고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위해 한 밤에 몰래 다가올 것 같은 저녁입니다.

[차문희] I have a dream

이코스타 2003년 2월호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by Martin Luther King Jr


해마다 1월이 되면 저는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Martin Luther King 목사님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1월 달에 그 분을 기념하는 날 즉 1월의 세 번째 월요일이 되기 전 주에는 항상 이 분에 대한 전기문을 읽고 그 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인권 운동 (Civil rights movement) 과 인종 갈등 (racism)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데 이 때 장애 (disability)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는 시간들을 갖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남부 지방은 아직도 보수적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솔직히 믿기는 어렵겠지만 인종 갈등이 아직도 역사의 흔적을 감추지 못 한 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들을 지켜 보아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어린이들과 함께 뛰어 노는 경우가 드물고 수업 시간에 그룹 프로잭트 할 때도 백인 어린이와 흑인 어린이가 함께 파트너가 되는 일 역시 아주 드문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야 동양 사람이고 원래 이 사람 저 사람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여러 동료 교사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만 흑인 교사들과 백인 교사들이 학교의 일 이외에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경우 또한 찾아 보기 힘들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가 똑 같은 자녀라고 이야기 하는 기독교인들도 예배의 형식이 달라서 그런가 흑인 교회와 백인 교회가 나누어 져 있다는 사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Martin Luther King목사님은 제가 살고 있는 조지아 주에서 태어나셨고 직접 몸으로 인종 차별의 아픔과 서러움들을 체험, “인간의 평등성” 을 강조 하신 분으로 유명하며 오늘날 흑인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손 꼽히는 분의 한 사람입니다. 이 분이 생존하셨을 때 당시 미국의 상황은 흑인들과 백인들은 분리된 생활을 하였고, 즉 흑인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으며 사회의 천대와 명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상처를 입고 돌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정부의 특별한 해택과 배려가 없었다고 합니다. 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의 인권 운동은 인종 갈등해소에만 그치지 않고 베트남 전쟁이나 심지어 한국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상이 용사들의 인권 문제,, 즉 전쟁터에서 얻은 장애가 생겨서 돌아온 이들을 위한 사회 복지 문제로 바뀌게 된 것 입니다. 이 사회 복지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 참여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73년 Vocational Rehabilitation Act 라고 하는 법이 미국에 정해 지면서 상이 용사들이나 모든 장애인들도 한 인간으로써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과 같이 똑 같은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규정하고 1975 Education for all handicapped Act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그들의 장애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맞는 공 교육 (public education)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1990년 American Disability Act가 정해 지면서 미국의 공공 장소에 장애인들의 편의 시설을 제공했으며 1997년 Individual with Disability Act를 통해서 특수 교육 프로그햄이 체계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역시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이 발달 된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올 해도 역시 아이들과 Martin Luther King목사님과 인권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과연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토론의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D라는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 합니다. “Ms. Cha도 우리와는 다른 피부색을 가졌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자라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사가 되어서 우리들을 가르치는데요, 저는 아직도 미국에 특히 제가 사는 지역에 인종 차별 뿐만 아니라 다른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시 질문 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니? 또 다른 차별이라니?” 그 학생은 다시 이야기 합니다. “우리들에 대한 차별이요, Ms. Cha의 학생들에 대한 일반 교사들과 일반 학생들에게서 받는 따돌림, 그거 알아요?”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니 미국의 특수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다른 나라들 보다는 좀 나은 것 같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다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특수 학급에 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우리를 약간 모자라거나 좀 바보로 알고 있어요. 우리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 – — – 그냥 특수 학급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들을 “dummy”라고 하는데요, 뭐, 사실, 그래서 공부 하는 그 자체가 너무 싫어요.”


아이들에게도 선입견, 편견의식은 상처와 좌절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단지 “흑인”, “히스패닉”, “장애인” 이라고 붙여진 이름 (label)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인격과 능력 보다는 그 사람의 피부 색깔, 또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의 역사와 불행했던 환경 때문에. 몸이 불편하고 학습 적인 능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 진다는 그릇된 생각들 때문에 아직도 소외된 이웃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Martin Luther King목사님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아이들은 또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그 사람의 피부 색이나 어떤 장애에 관계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믿고 있으나 단지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 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편견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즉 아이들의 눈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이 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말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 노인, 장애인, 여성 복지, 소수 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를 부르짖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은 아직도 알게 모르게 인종 갈등과 빈부 격차, 그리고 편견의식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문화란, 각 나라의 생활 습관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각자가 지니고 있는 다른 생활 문화를 의미 합니다.)


우리들이 각 자 서로가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우리 삶에 받아들이며 그들의 아픔을 우리와 함께 할 때, 또한 소외도어 있는 이웃들 역시 그들의 아픔을 고난의 순간들로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꿈과 희망을 갖고 은혜의 통로로 바라보게 될 때 “더불어 사는 사회” 는 이루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더불어 사는 사회 건설”은 소외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Martin Luther King 목사님의 말씀에 담겨져 있는 미래에 대한 꿈 (dream)을 꾸며 만들어 가는 밝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