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이 달의 소개할 책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고든 맥도날드, 윤종석 옮김, IVP) 이다.


복이란 단어는 우리의 신앙 단계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초신자일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축복으로 알았다.
우리의 요구를 세심하게 들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한심한 요구 조차도 맘씨좋게 들어주시던 하나님이 언젠가 부터
바뀌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No”를 경험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원망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보낸 뒤,
하나님의 “No”가 그의”Yes” 보다 훨씬 나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 더 많은 축복을 쟁취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원망과 혼돈의 시간들-고난으로
변장된 순간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축복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자는 말한다. “폭풍은 다가온다. 영혼이 시험받는 힘겨운 순간들은 떠오르는 해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운 순간들을 허락 하시는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지길 원하신다. 위기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것에서 우리의 내면(영혼)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주길 원하신다. 그러면, 영성을 추구
할때 무엇이 따르는가? 자기 발견의 고통과 굴욕이다.(p1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바울의 고백에서도 보듯이 많은 영적 스승들은 욕망, 정욕, 분노로 가득찬 우리 영혼의 하수구까지 내려와 본
사람들이다.

주님은 우리가 먼저 비우길 기대하신다.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비운뒤, 그 다음에는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집요한 열망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분의 본질, 그분의
능하신 행사, 그분의 뜻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계획 등을 알아 가는 것이다. 실은 이런 연습이 바로
신학이다”(P221).


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화학을 통해 ‘신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말미에
‘엄청난’ 신학을 했던 한 중국인 목사님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다소 길지만 꼭 인용하고 싶다). 이 목사님은 신앙때문에
18년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지낸 경험을 말해 주었다.


제 친구들은 제가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일을 했길래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너무 고된 것이었다고 대답 합니다. 수용소 당국자들은 제게 인분 구덩이를 치우는 일을 시켰습니다…간수들과 모든
수감원들은 악취 때문에 가까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혼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보통 모든 수감원이 엄격한 감시하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혼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구덩이에서 일했기에 혼자 있을 수도 있었고 주님께 큰소리로 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이 바로 내가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입니다…


시 내가 제일 즐겨 부르던 찬송 중 하나가 ‘저 장미꽃 위의 이슬’입니다. 그것은 체포되기 전에도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였지만
그때는 그 찬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치 못했습니다.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 주님과의 놀라운 교재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 구덩이 안에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주님의 임재를 맛보았습니다. 그분은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게 되었고 그 인분 구덩이는 나의 은밀한 동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삶에 복 주시기로 택하신 한 평범한 사람의 고백이다. 결국,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우리의 삶을 통해 쌓아가는 주님과의 관계가 축복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이진석] 모듬 비빔밥으로 하나되다


국인의 하나 되는 정서는 한 솥 밥을 먹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구한말 보부상들이 다닐 때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더라도 솥만큼은
따로 가지고 다녔고, 손님은 따로 솥에 밥을 지어주었던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빔밥, 그것도 모듬 비빔밥은 이런
하나됨을 한 차원 더 올리게 한다. 어릴 적 자랐던 교회에서는 여름마다 산 집회를 갔었다. 일주일간 천막을 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각 천막 별로 공동식사가 이루어진다. 야외인지라 식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여분의 숟가락만 있으면 걱정하지 않았다.
깊숙하게 파진 큰 양푼 그릇에 남은 밥과 반찬을 넣고 휘 젓 거리면 훌륭한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킬킬거리며 머리들을 맞대고 입
속에 무엇이 들어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즉흥 모듬 비빔밥이었다. 이런 모듬 비빔밥이 한 솥 밥을
먹는 식구의 의미를 피부로 미각으로 체감하게 한다. 현란하게 오가던 스텐 숟가락의 공중곡예들, 먹으랴, 말하랴, 튀기던 침과
다시 양푼 속으로 낙하하던 밥알들, 그리고 흔들거리는 머리칼에서 반짝거리며 떨어지던 하얀 가루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 먹고
소화시켜야 했었다. 한 식구(食口)가 될 때 비로소 한 가족(家族)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란 모름지기 식구여야 하는 것이다.
요즘 생각하면 B형 간염의 주요 감염경로라고 펄쩍 뛰겠지만, 위생의 이해 득실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 때 이루어
졌다. 물론 디즈니의 만화영화 건달과 숙녀(Lady and Tramp)에도 두 마리의 남녀 개가 달빛과 아코디언의 생음악을
배경으로, 한 가닥의 스파게티를 나누는 진한(?)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과 스파게티 국수 한 가닥과는 그
농도와 풍성함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분명 한 그릇에서 너와 내가 같이 떠서 먹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은 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무엇이 건져질 지 모른다. 바다에서 낚시하듯, 다양한 종류가 걸려서 올라온다. 친구의 침 속에 무엇이 섞여 있을까
걱정하면 절대로 못 먹을 밥이다. 신뢰의 농도가 진한 만치 다양한 반찬이 섞인 모듬 비빔밥을 먹게 된다. 흩어졌던 다양함이
신뢰로 모일 때, 우리네 삶이 당장 풍성하여 지는 것이 한국인의 잠재적인 비빔밥 파워다. 오늘도 한 양푼에 재료를 넣고 친구끼리
먹는 모듬 비빔밥은 서울의 한 복판에서 버젓이 팔린다.

조화로 먹는 비빔밥; 융화를 부추기는 비빔밥


왕 비빔밥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더 우리의 먹거리 이야기를 하여보자. 서양의 먹거리는, 쪼개고 구별해서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선택을
통해서 음식의 맛을 찾는다. 한국인의 음식은 다른 음식과 융합과 조화의 맛을 느끼게 조리한다. 내친 김에 한식 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비빔밥이 문헌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18세기 말엽 시의 전서라고 하며, 골동반(汨董飯)으로도 불린다. 어지러울
골(汨)자에 비빌 동(董)자가 아우러져서 나온 음식이다. 주식에 곁들여 먹는 서양의 샐러드와는 달리, 비빔밥은 주식이다. 그리고
각 재료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반찬이다. 그렇지만 각각으로 섭취하면 온전한 미각의 기준에 아쉬운 감이 드는 음식이기는 밥과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함께 섞어지면 모두의 맛이 살아난다. 이런 비빔밥의 유래는 다양하게 설명된다. 임금의 가벼운
점심상으로, 또는 섣달 그믐날 새날을 맞기 전 묵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하며, 그릇이 여의치 못한 야외에서,
편리하게 식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분주한 농번기에 농부들의 식탁에서, 성묘 시 차례를 마치고 제물을
골고루 음복하기 위한 신인공식(神人共食)에서, 심지어는 동학 혁명군의 야전 음식에서,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한국인에게
통일된 미각과 음식을 공유하게 하는 길이 비빔밥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 자리 지키고 열심히 제 도시락 파먹는 얌전
파와 도시락을 들고 교실 안팎을 방황하는 배회 파가 있었다. 무말랭이 같은 메마른 짠지 종류를 반찬으로 싸오던 급우들도, 교실
한 바퀴 돌면 각 양 고급(?)반찬으로 도시락 통이 채워지고, 그 양철 도시락 통을 들고, 김치 국물 배어 나오기까지 한참
흔들고 나면, 비빔 도시락이 만들어졌다. 당장은 어지럽게 보여도 비비고 부대끼다 보면 함께 어울리는 상생의 길이 열린다.
한국인은 비빔밥으로 이 진리를 체득한다.

찜 닭 속에 계셨던 예수님


와 유사한 음식문화는 중동인 들에게서도 보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공부할 때였다. 이란 유학생들의 초대를 받아서 여러 나라
유학생들, 그리고 지도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통상적인 식탁은 아예 치워놓았고, 아파트의 거실 중앙에 큰
신문지들이 겹겹이 펼쳐 져있었고, 가운데 큰 대접을 놓은 것이 영 판 소풍 가서 점심 시간 먹는 모양새였다. 향긋하게 찐 쌀밥과
짭짤한 배추절이가 수북하니 담겨져서 나왔다. 그리고 금방 돌아가신 듯, 아직도 눈을 지그시 감은 요염한(?) 자태의 발가벗은
치킨들이 가지런히 대접의 원을 따라서 누워있었다. 우리는 먼저 오른 손을 씻었고, 둥그렇게 앉아서 손바닥에 고기와 야채와 밥을
오므려 싸서 먹었다. 한국인은 그래도 숟가락이라도 쓰지만, 원색적 손가락들! 힘껏 쭉쭉 빨던 그 손가락으로 덥석 고기도 밥도
주물럭거렸다. 미국인 교수들이 엉거주춤하니 당황해 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왼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먹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손으로 직접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역겨울 정도로 버거운 요구이었음에 분명하다. 대부분이 곧 포크를
요청해서 식사를 마쳤다. 그들은 포크를 사용함으로 자기 침을 남들에게 줄 기회는 놓치고, 남의 침 튀긴 쌀과 고기, 반찬을 먹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제 3세계 국가에 속한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비빔밥에서 화목 제물로


래서 중동의 식사 문화는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한 집단에 소속함을 의미한다.
손을 씻는 결례 (潔禮)의 전통에 무지한 무례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타 그룹을 제외하는 용도로 쓰였던 식탁이 예수를 통해서 포용의 자리로 변화되었다. 각 양의 사람들이
초청되고 포용되었다. 예수가 그 당시 기득권자들에게 드러나게 눈 밖에 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식사와 관련된 이슈였음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마태 9:10-11). 그 분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셨다면 아마도 천민들과 함께 모듬 비빔밥에 숟가락 꽂고
잡수시다가 양반들에게 심한 핀잔과 질책을 받다가 가문의 호적 명부에서 이름이 파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성경의 화목제물을
먹는 장면도 이와 흡사하게 실용적인 의도를 참석자에게 유도한다. 기름은 제단에 불태우고, 갈비 살과 오른쪽 넓적 다리는 성전에
남겨두고, 나머지 고기들은 집으로 가지고 와서 식구들과 친지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 (레위기 3장). 굳이 신학적 이유를 몰라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손에 침 발라가며 같은 밥그릇을 주물럭거리며 먹는 것은 급체의 원인이 될 것이다. 화목제의 밥상
위로 오가던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이웃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화목제의 온전한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레위기의
혁명적 시도는 이런 밀접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디자인 된 의식이다. 출애굽의 가장 드라마틱 한 모습은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라암셋에서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시작하는 해방의 장면이다. 보행하는 장정만 60만, 무수한 무리 들 가운데, 중대한 잡족이 함께
섞여서 출발한다 (출애굽기 12:37).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들을 출애굽의 신민으로 묶어준 상징적인 식사가
유월절 식사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 솥 밥을 먹는 식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출애굽기 12: 48-9). 예수님의
유월절 식사도 음식 정서 상은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성찬은 중동식 레위기 비빔밥의 완성이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 손가락
빨아가며 양고기와 반찬을 무교병에 상추 쌈 먹듯이 그렇게 먹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침을 사람이 먹고, 사람의 침을 하나님이
먹었다. 침 한 방울에 우리의 모든 유전자를 다 추적해 낼 수 있는데, B형 간염 같은 죄성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우리로 인해서 거룩하게 망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초(超)인이 아니라 초(初)인이다


상이 목말라 기다리는 사람들, 세상이 기대하는 사람은 여기에 있다. 이 육사가 목말라하던 초인은 백마를 타고 인간을 건너뛰는
초(超)인이 아니라 인간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주느라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고 사는 초(初)인이어야 한다. 천년 후에 오실
기약 없는 바람만 주는 분이 아니라 과거에도 오셨고 현재도 오시면 미래에도 오시는 분이어야 한다. 이 분이 오시면 과거의 원한과
상처로 눈을 흘기고 부라리며 살기가 등등한 얼은 밥상이 한 솥 밥으로 묶어주고 먹게 하는 모듬 비빔밥으로 바꾸어진다.
출신학교도, 소속 교회도, 지방과 풍속도, 억양과 사투리도, 집 평수와 학군도, 세대차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애찬을 먹는
사람은 천국에 사는 사람이다. 꼭 청포를 입고 오지 않아도 된다. 예수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비빔밥이 가진 복음적 가능성을
경험하며 살게 한다. 그래서 세상을 예수께로 이끄는 화평의 한국인은 예수 만난 한국인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을 예수인이 먹을 때 산나물도 고추장도 화목제물 성찬이 된다. 세상의 화평과 인류의 평화는 구호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요란한 선전무대 위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평화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평화가 곧 길이다. 젖은
청포도 몇 알만 있어도 즙 묻은 손 닦을 하얀 모시 수건 준비하는 육사의 정성이라면 예수는 우리 가운데서 섬김을 받는다. 사람과
사람이 살갑게 꾸밈없이 만나는 먹거리의 현장에서부터 예수 보듯이 사람과 만물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김보경]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이코스타 2003년 11월호

첫 학기



처음 미국에 유학 와서 짧은 여름방학동안 랭귀지 코스를 듣고 토플을 본뒤 가을학기에 파트타임으로 대학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첫 학기 첫 수업…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영어를 많이 안써도 되는 물리와 수학을 신청했는데 물리 첫 수업을 듣고 나오면서 근심에 쌓였습니다. 교수의 강의가 거의 안 들렸기 때문입니다.  더운 여름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대학에 들어왔는데 첫 수업을 받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이 “F 받게 생겼군… 첫 학기부터 쫒겨날 것 같은데… 만약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다면 정말 그건 하나님이 내게 기적을 베푸신 때문일거야” 였습니다.



그 때 저보다 유학 2년 먼저 온 선배와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 선배는 2년 먼저 왔으니까 수업이 잘 들렸겠지… 저 선배랑 그룹스터디라도 해야지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선배에게 찾아가 학생회관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녁에 학생회관에 온 선배는 책가방을 열더니 교과서가 아닌 성경책을 꺼냈습니다. 그 때까지 성경은 교회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저에겐 책가방에서 나오는 성경책이 참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예배가 있었나보지?’ 라고 생각하면서 “왠 성경책이에요?” 라고 묻는 제게 선배는 “같이 보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라면서 갈라디아서 2장을 폈습니다. 18절 부터 20절까지 한 절씩 돌아가면서 읽자고 하는 선배의 말에 어색해 하면서 한절 한절 읽어 내려갔습니다. 



마지막 구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를 읽고 나서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지난 2년 동안 유학생활을 해보니까 참 힘들고 특히 주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많이 방탕한 길로 빠지더라. 너는 이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아직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말씀처럼 믿음 안에서 유학생활 잘 시작하라고 이 말씀을 주고 싶었어”



산 앞에서



그렇게 시작한 저의 유학생활은 선배의 말처럼 한 학기도 맘 편히 시작한 적이 없던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매 학기 시작할 때마다 시편 121편을 떠올리며 “산처럼 느껴지는 이번 학기지만 또 그 산을 향해 눈을 듭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라고 금식기도로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갈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공부의 어려움도 그랬지만 한창 청년의 때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느끼는 외로움도 컸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고등학교 동창들이 ‘미팅했다, 엠티갔다, 축제 기간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재밌다, 남자친구 생겼다, 남자친구 군대갔다, 남자친구랑 헤어졌다’ 는 평범한 한국 대학생의 삶을 전해올 때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말 그대로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았는데 언어의 벽 앞에 처절히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김치 냄새가 나니까 주 중에는 김치 먹으면 안된다는 것도 처음엔 “왜 남의 나라 음식을 가지고 뭐라고 그러지” 라며 기분이 나빴지만 어느 날 부턴인가 수업을 받으러 갈 때 향수를 뿌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왜 내가 이 곳 남의 나라까지 와서 공부해야 하는가… 왜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주눅들어야 하는가.” 어쩌다 제가 이 곳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때면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이 안나오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귀에 들리게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은데 아무리 때를 쓰고 졸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성경공부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성경을 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습관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막상 말씀을 보고 싶어도 어디를 봐야할 지 몰라 대강 중간을 폈습니다. 그러면 늘 이사야나 시편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한 두 절 읽다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하시는지 느껴지지 않아 그냥 덮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씀인데도 그 말씀을 또 보고 싶고, 더 알고 싶은 갈급함을 주셨습니다. 얼마 후에는 아무렇게나 편 말씀이 별 감동이 없으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 12:2>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생길 때 마다 손으로 직접 적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단어를 외우는데 쓰려고 구입했던 3×5 인덱스 카드에 한절 한절 적어나갔습니다.  처음엔 한 두장 되던 것이 시간이 갈 수록 고무줄로 묶어야 할 정도로 많이 쌓여갔습니다. 말씀이 조금씩 달게 느껴졌고 나중엔 성경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절 또는 한 장씩만 보던 말씀이 성경 한권 한권 보게 되고 나중엔 성경 전체를 읽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보며 제가 왜 이 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 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원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들을 통해, 예수님이 문둥병자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들을 통해, 바울이 교회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 그리고 요한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쓴 것을 통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것처럼, 그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던 것처럼 저도 본토 친척 아비의 집, 너무나 익숙하고 편해서 하나님 없이 살아도 별 불편을 모르던 곳을 떠나 이 먼 미국까지 와서야 이 세상은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 속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다 문득 문득 느끼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저는 나그네요, 이방인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느낀 것처럼 제가 할 줄 알고 익숙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고 저는 아무에게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발견한 저의 정체성은 은혜 없이는 못사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자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인치신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였습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지 않으면 끊임없이 나를 짓누르는 외로움과 열등감과 무기력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공허만이 가득한 세상의 것을 향해 허덕이며 달려갈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자였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이제는 제가 선배가 되었습니다. 이제 막 유학생활을 시작한 교회 후배가 어느 날 전화를 했습니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후배가 전화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청년회 월례회에 못가서 죄송하다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보였나?’ 싶어서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괜찮아, 사정이 있으면 못 올 수도 있지” 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의외로 부드럽게 받아줘서 마음이 놓였는지 “언니, 고마워요” 라면서 조금 마음을 열고 고민을 얘기합니다.



“언니, 저는 사실요, 빨리 마치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학기에 19학점 듣거든요. 3년 만에 마칠려고요. 저는 여기가 너무 싫어요. 교회봉사는 해도 청년회 활동 같은 것 하기 싫고요. 시간 낭비 같아서요.”



솔직하게 말을 해주니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웠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그저 통과해야 할 관문, 필요악으로 여기는 것이… 빨리 해치우려는 그 3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영혼의 변화되고 훈련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기 때문에…



후배에게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학생활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또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복된 시간인지 얘기했습니다.



마치 첫 학기에 어떻게 하면 성적을 잘 받을까 생각하며 그룹스터디를 제안한 제게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 “그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유학생활을 하라고 했던 그 선배의 그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통화 이후 제 말 때문이 아니라 그 후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후배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했었습니다.



복 있는 자



복 있는 사람, 성경에서 말하는 복된 자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자도 아니요, 외모가 출중한 자도 아니요, 재주가 뛰어난 자도 아니요, 머리가 좋은 자도 아니요, 부유한 자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송이 꿀보다 말씀이 더 달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며 혼자서는 세상을 살 수 없다고 부르짖는 자,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라 나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고 나그네의 삶을 고백하는 자,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라”며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유학생활은 내 삶의 성공을 위해, 남들도 다하니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치뤄야 할 관문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복되고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가 안 되서 열등감에 쌓인다 해도, 견딜 수 없는 외로움으로 눈물이 난다 해도, 보이지 않는 미래로 인해 불안에 휩싸여 있다 해도, 물 위에 기름처럼 겉도는 이방인의 삶이 서럽게 느껴진다 해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1-39). 우리는 그 분의 것이기 때문에…



조금 무시당하고, 아파하고, 좌절하고, 실패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또 왜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내가 처한 고난의 자리는 사실 놀라운 복이 넘치는 감사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생활은 복된 것이고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나는 복된 자입니다.



젊음을 주께 바치라



힘들고 지치는 유학생활



언어도 생활방식도 다른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하는 것만도 벅찬데 학업이라는 무거운 짐과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큰 벽이 우리 앞에서 우리를 짓누르며 힘들게 합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삶의 목적조차 불투명해져 방향을 잃고 헤메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힘겨워 하며 아파할 때 우리 마음 한 켠에서 애타게 우릴 부르시는 분이 계십니다.



당신과 저를 사랑한다고 애타게 외치시는 예수님



이제 귀를 열어 그 분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이제 눈을 들어 그 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해 당신의 삶의 목적과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재 확인해 보십시오.



당신을 이 분과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대학 3학년 때 섬기는 교회에서 유학생을 위한 집회 “젊음을 주께 바치라”를 준비할 때 쓴 초대의 글입니다.)



[최영기] 성경책을 선물할 때

안 믿는 분들에게 성경책을 사서 선물하는 것이 좋은 전도 방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선물할 때에는 어떤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지 설명해 주어야합니다. 설명이 없으면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선물 받고 질려서 서가에 처박아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물 준 분의 성의를 생각하여 읽기 시작하는 분이 있다 할지라도 끝내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책을 읽듯이 성경 맨 앞에 실려있는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면 신앙적인 해답이 얻어지기보다는 의문이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창세기를 끝낸다 할지라도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달하면 낯선 용어, 낯선 풍습과 규례들에 질려서 더 이상 읽는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선물할 때에 구약부터 말고 신약부터 읽으라고 권합니다. 신약도 마태복음부터 말고 요한복음부터 읽으시라고 권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시작하면 책을 펼치자마자 예수님의 족보가 등장하기 때문에 질려서 읽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먼저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주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요한복음을 끝내면 그 다음에 나오는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사도행전에는 120명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리가 아니라 사건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안 믿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끝내면 다음에 나오는 로마서를 읽을 것을 권합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여기까지 끝내고 나서 성경을 더 읽기를 원하면 예수님에 관하여 좀 더 알 수 있도록 누가복음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끝나면 로마서 다음에 나오는 편지서들을 요한 계시록 전까지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신약의 나머지 부분을 두 세 번 읽은 후에 읽으라고 권합니다. 이처럼 신약을 두세 번 읽으신 후에 비로소 구약에 도전할 것을 권합니다.


성경은 현대말로 번역된 표준 새번역 판을 선물합니다. 개역 성경은 연속 사극에서조차도 등장하지 않는 옛날 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 성경책을 열어보고는 질려서 읽을 엄두조차 못 낼테니 말입니다.

[김동록] Professional Student

이코스타 2003년 11월

<font size=”2″>Professional 이란 말은 전문성이 있는 직종을 가리켜서 쓰는 말인데 학생을 가리켜 professional 이라고 하면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학생이 정말 연구와 공부를 잘해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전문 직장인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완벽할 정도의 실력과 솜씨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하도 그 학생의 학업이 늦게 진행되다 보니 그저 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전문 직업인인 것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입니다.


제가  이 두 번째 경우에 속하였습니다. 학위 과정이 길어지면서 학생이란 신분은 왠일인지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를 아주 당당하게 변명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비단 저 자신 뿐 아니라 저의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 양가 부모나 가족들도 저희의 그러한 경제적 의존성을 당연히 여기며 공부가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마 밑빠진 독은 아니겠지라는 심정으로 보조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특별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저의 삶을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던 제 실패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저축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축할 수 있는 상황이었슴에도 불구하고 늘 모자란 듯 살았습니다. 그리고 졸업만 하면 남들이 사는 것 처럼 모든 경제적인 문제가 풍성하게 되고 떵떵거리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학생의 신분으로 있는 동안은 아직 돈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학생이었기에 당연히 학위가 저의 최우선의 목표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으로 “35세까지는 저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일에 나서리라”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유학을 결심한 이후 오로지 저 자신의 학위와 또 그 학위 이후의 career를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 우연히 씨애틀에서 제가 다니던 (정말이지 저는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청년부를 섬기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은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섬김을 통해 저 자신의 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딱한 모습은 “나는 이런 일 하기 위해 여기 온 것 아니야”라며 헌신하기를 주저하는 청년부의 학생들에게서 비추어 졌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왔었는데, 그 지난 10년이 알고 보니 미래를 핑계로 삼아 현재를 사는 삶을 미루고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긴 살았지만 왜곡된 열심, 균형을 읽어버린 열심으로 살았기에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현재 내게 닥치는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미국땅에 살면서 항상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니까, 작게는 학과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지역사회에서, 또는 자녀들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주인의식이 전혀 없이 붕 뜬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과연 성인이 된 (심지어 가족을 거느린)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하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 면책이 되는가 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유학생이라면 이민 사회에서는 열외로 취급하니까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서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앙생활은 지극히 소극적으로, 헌신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졌었고 당연하게도 10년동안 전혀 성장되지 않고 위축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이 쓰이는 용어를 빌자면 고지론을 빙자한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저축도 하지 않고 또 돈을 굴리는 일에 문외한이 되어 있다가 놓쳐버린 아까운 기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코스코, 등 소위 뜨는 회사들의 주식, 치솟아 오른 서북미 지역의 부동산 가격, 일찍 졸업하여 실리콘 밸리의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생겼을 막대한 수익, 그나마 졸업 후에 취직하여 드디어 왕창 부어넣었던 401k 의 반액에 가까운 마이너스 손실, 저축했던 돈이 없어서 아깝게 놓치고 때를 잘 못 맞춘 모기지 loan, 등등 돈이 희한하고 섭섭하게도 저와 제 가족들만 피해서 비껴지나 간다고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이제 무엇보다도 가슴아프게 아쉬운 것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서 그것으로 현재를 대치해 버렸기에 놓쳐버린 그 10년의 세월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라는 구절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라만큼 현실적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음흉하게 숨은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미래를 지레 앞당겨서 현재를 대치해 버린 삶은 뿌리가 없는 삶입니다. 저축을 하든지 돈을 굴리는 방법을 일찍부터 궁리하든지, 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궁리속에서 미래를 생각하다가 또 현재를 놓칠 까 두렵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 눅12:21 ). 그러나 현재를 충실하고 건강하게 (예를 들자면 직장, 지역사회와 교회에 대한 봉사와 베품, 그리고 개인의 영적성장) 열심히 살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이모저모로 재정에 대한 회계장부까지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관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눅12:31).


유학은 특히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환경에 처한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삶에 대한 면책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에 유학생의 삶의 최대 약점이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이민자가 되는 과정에 있기도 하지만, 제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유학생이나 이민자나 다 한가지로 내가 여기에서 사는 동안은 마치 평생 살 것 같이 충성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 나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temp (임시직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곧 떠날 것 같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는, 전인격적으로 현재에 헌신하는 삶, 즉 full time의 삶 이라는 것을 제 인생의 고개에서야 깨달았습니다. Professional student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전인격적으로 현재의 삶에 헌신하는 학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