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포스트모던 예배,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코스타 2004년 5월

미 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교회의 예배 흐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어느날 한 신문 기사 하나가 눈에 쏙 들어왔다. 그 기사의 제목은 “젊은층 중심의 미국교회에서 유행하는 포스트모던식 예배.” 포스트모던 이라는 단어와 예배라는 단어가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기 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 대신 관자놀이나 가슴에 손을 갖다대는 중세의 명상적 기도를 한다. 이른바 ‘떠오르는(emerging) 교회’로 불리는 포스트모던 세대의 교회들 일각에서 전통적 방식과는 다른 명상적 형태의 기도와 예배방식이 유행하고 있다고 최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교회들은 비제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기성교회로부터 ‘젊은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찬사와 함께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 금껏 미국 교회가 윌로우 크릭 교회나 새들백 교회의 모델을 따라 교회가 주는 구세대적인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80년대 이후 계속해서 추구했던 모델, 그것을 편의상 구도자 중심의 예배(Seeker-sensitive worship)라고 한다면 이제는 그런 흐름에서 무엇인가 다른 하나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2,30대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겨우 교회에 데리고 간다고 치면 이들에게서 나오는 첫 반응은 ‘교회가 교회처럼 생기지 않았다. 무슨 교회가 마치 월마트 같다’고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세대가 형식화된 교회의 예배와 종교적인 형상들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가지고 극도로 제도화된 것(established religion)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떠오르는 새로운 세대는 오히려 종교적이고, 영적이고, 초월적인 무언가를 교회로부터 기대하고 나아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7,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세대에 비해 200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세대들이 영적인 문제, 초현실적인 문제에 관해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갤럽 조사는 이러한 현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2004년 2월25일 크리스찬 투데이에 실렸던 이 기사를 좀 더 인용해 보면 어떤 미국 교회의 예배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젊은 교회 ‘블루어’에서 열린 최근 토요예배. 대부분 20,30대인 교우들은 의자와 촛불로 채워진 공간 주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있고 한가운데는 존 뮤직 목사(37) 가 드럼세트 곁에서 3명의 음악목회팀과 함께 앉아 예배를 이끈다. 여기저기 각종 파이프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등불 아래의 벽들엔 옛 돌십자가와 석상들을 담은 슬라이드와 비디오 등이 비쳐진다. 탈색한 티셔츠와 블루진 차림에다 무스를 바른 머리 모양의 뮤직 목사는 설교 대신 회중들을 3대의 ‘임시제단’으로 초청한다. 제단 위엔 기도제목을 적은 카드뭉치가 놓여 있다… 이들의 일부는 교단에 소속돼 있고 전통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복음적이지만, 동방정교회나 중세교회, 수도원 등의 고풍을 답습, 중세기도문, 기도 미로, 렉티오 디비나, 고대 성시, 명상문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브라이언 매클러렌 목사(48세, 시 더리지 커뮤니티 처치)는 아메리카의 광대한 젊은층 인구를 겨냥한 선교적 목회를 “모국어와 모국문화를 사용하는 외국선교”에 비유한다.”

이 를테면 기존 극장 스타일에서 밝은 조명과 현란한 무대장치를 곁들여 현대식 록음악으로 가득 채워진 젊은이 예배 스타일은 더 이상 이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신에 우리는 촛불과 향내음을 풍기며 고풍스러운 기도문을 청바지 입은 목사와 함께 명상하며 교회의 주위를 돌며 기도에 열중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세대가 구세대와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하는가 묻는다면 쉽지 않은 답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 예를 들자면 구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극복하고 타도해야 할 정치적 인물의 표상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표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었다면 이 새로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허황된 패권주의로 똘똘 뭉친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상징된다고 하는 차이라고나 할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모던주의로 대표되는 모델이라고 한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포스트모던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차이 정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로 비교해 본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 그리고 록음악과 댄스뮤직에 열광하며 머리에 무스를 바른 젊은이들에서 ‘싸이질’에 열중하며 개인홈페이지 파도타기에 매우 익숙한, 그러면서도 정치인들의 모습을 희화화한 시사합성 갤러리에 들락날락 하면서 낡아빠진 정치를 개탄하는 새로운 젊은이들의 출현을 본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그 런데 과연 붉은 악마와 함께 ‘대 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의 신화를 이루어낸 이 포스트모던 세대의 모습은 한국 교회 어디에 서 있을까? 이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IT 산업의 활황으로 대단히 발달된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최고의 IT 강국 대한민국의 N세대들이지만 우리의 예배를 볼 때 아직 포스트모던 예배를 논하는 것은 좀 이른 감이 든다. 미국과 서구의 이 새로운 젊은이들처럼 촛불을 켜고 향내음을 맡으며 오래된 기도문을 따라하며 명상하는 예배를 즐기는 세대의 출현은 아직 우리의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준비하는 것은 언제나 최선의 방어책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부활주일 예배, 필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았다. 기존의 전통적인 부활주일 성가대 칸타타를 하되 젊은이 중심의 열린 예배 현실에 맞도록 예배를 디자인해서 칸타타 중간에 다양한 차원의 시도를 선보였었다. 이른바 다감각적인 예배(multi-sensory worship)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는 장면을 성가대가 부르는 사이, 영화 Jesus Film의 한 부분을 편집해서 회중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200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한다. 동시에 음악이 끝날 무렵, 피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가시관을 쓴 예수가 채찍에 맞으며 뒤에서부터 앞으로 십자가를 질질 끌고 나아간다. 살을 에이는 채찍 소리와 함께 회중들은 강렬한 피의 색깔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가슴 아파하는 경험을 한다. 조용한 배경음악과 함께 예수를 군인들에게 넘겨주던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가롯 유다의 처절한 간증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그가 들고 있는 오랏줄 하나, 그 줄을 가지고 곧이어 그는 자살하는 비운의 결말을 택하지만, 죽음을 앞둔 마지막 가롯 유다의 말 한마디에 회중은 동질감을 느끼며 눈물을 적신다. 동시에 새롭게 성가대의 찬양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뭐 그런 진행으로 예배를 구성해 보았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예배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든 감각을 통해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그런 예배의 자그마한 효시(曉示)가 되었다.



앞 으로 우리 이민 교회와 한국 교회의 예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단순히 듣는 예배에서 다양한 차원의 감각적인 예배로 변해갈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 밖으로만 나가면 이 새로운 세대들은 이러한 다양한 다감각적인 문화에 너무나도 익숙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도 사실상 냄새 맡는 것만 빼고 나머지는 다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플래시를 보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 한잔을 바라보며 조용한 피아노의 배경음악과 함께 순차적으로 아름다운 시 한줄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면서 그와 함께 나지막한 성우의 음성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종합적인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본다. 단순히 종이에 쓰여진 시 한편을 보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이 시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세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요한 일서의 말씀은 말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이 외친 세대와도 같이 우리 역시이 말씀대로 우리가 받은 복음을 세상에 전달하기를 꿈꾸는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반영운] 환경을 생각하시는 어머니

이코스타 2004년 5월


미 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스위트 홈을 꾸려 보려는 알뜰한 욕심을 주께서 아셨는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간 그렇게 닫혀있던 한국 행 문을 열어 주셨다. 그 동안 아내와 아이는 물론 부모님과도 오래 떨어져 지냈었는데,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에 직장을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도 양가 부모님도 모두 기뻐하시며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귀 국하자마자 직장에 출퇴근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직장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께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니 어머니의 강력한 엄포에 눌려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은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께서 무릎 신경통, 허리 디스크로 많이 편찮으시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살면서 주중에 들러 보살펴 드리려고 했는데, 자식의 생각과는 달리 당신께서 힘드시더라도 밥 한 끼라도 손수 차려주고 싶으시다는 사랑의 명령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약 2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직장이 있고, 오가는 길에 나무도 많이 있어 학교를 걸어 다니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로 월요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금요일까지 있다가 오후에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에 가서 주말 내내 아이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곤 한다.

주 중에 저녁 또는 아침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눈에 띄게 두 분의 기력이 쇠하신 모습을 발견한다. 건장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키가 많이 작아지셨고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셨다. 어머니께서도 발목 부분과 무릎 관절과 허리의 통증으로 많이 괴로워하신다. 25년 전 필자가 고등학생으로 식물 인간이 되어 병원을 전전하던 시절에, 누워 지내던 자식을 붙들고 하염없이 우시며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더욱 더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당신께서 그렇게 아프고 힘드시면서도 다 큰 자식이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이제 함께 살게 되니, 한 편으로는 너무나 기뻐하시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괴로워하신다. 왜냐하면 이제 당신의 몸이 힘들어서 자식에게 주고 싶고 먹이고 싶은 것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눈물짓곤 하신다. 아,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그 깊은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을까? 주께서 주신 아이를 키워가면서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이라도 만져 볼 수는 있을까?


부 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생활 속에 환경을 생각하고 아끼시는 모습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 생활, 특히 가정 생활 속에 환경을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로 외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지난 호에 고백한 적이 있는 필자에게, 어머니의 생활은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여 외람되지만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께서는 학벌이나 학식 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가정 주부이시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어머니는 늘 청결하고 근면하고 검소하신 분이셨다. 지금도 그 때나 다름없이 그 모습 그대로인 것에 놀라곤 한다. 너무 깔끔하고 단정하셔서 자랄 때는 조금만 옷을 더럽히거나 집을 어지럽히면 야단을 맞은 적이 많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도 그 깔끔함이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아 어머니의 건재하심을 느끼고 새삼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 그러나 원래 깔끔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필자로서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한 편으로 힘든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듬뿍 젖어보며 어리광도 부리곤 한다.

어 머니의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무릎과 허리가 아프셔서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하시는 관계로, 체중을 줄일 목적으로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반신욕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놓고 가슴 위는 내놓고 하반신을 물속에 담그는 목욕)을 하시면서 그 시간 동안 기도도 하신단다. 30분 정도 반신욕을 마치시면 받아놓은 물로 목욕을 하시고 그 물로 바닥과 변기를 닦으신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한 샴푸로 머리를 감으셨는데 환경을 공부하는 아들이 샴푸를 쓰면 물이 많이 오염되니 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를 약하게 물에 타서 머리를 헹구면 머리도 부드럽고 비듬도 잘 안 생기게 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꾸준히 실천해 오는 환경보호 중의 하나이기에 자신 있게 권해드린 것인데 아들보다 더 열심히 실천하고 계신다.




아침이 되어 필자가 동네 야산으로 운동을 나가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간밤에 방에 두었던 요강을 씻으신다. 필자는 그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껏 부모님께서는 밤에 요강을 이용하고 계신다. 아들이 학교에서 퇴근하던 첫 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요강을 방에 들여 놓으시면서 밤 중에 화장실에 가지 말고 요강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이 너무 일리가 있어서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소변을 볼 경우 수세식 변기의 물을 여러 번 틀게 되는데 물 낭비가 너무 심하니까 요강을 이용해서 나중에 한 번에 물을 조금 이용해서 씻자”고 하시는 말씀이 그냥 물이 아까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첫 번째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편리함’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데, 어머니는 분명 세상의 덕목과는 반대로 사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두 분께서 삼십 년이 넘게 사시던 단독 주택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옮기신 것은 물론 편리함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기력이 쇠잔해지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어머니의 그러한 자세를 통해 더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아 주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을 먹으며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기도하고 있다. 아침을 먹는 시간 동안 어머니께서는 사십이 넘은 아들에게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면서, 가끔씩 빨래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고 남은 쓰레기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폐식용유를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집 안 청소하는 것이라든지, 에너지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곤 하신다. 여쭤보지도 않은 것들이지만 자식이 밥 먹는 동안에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리라. 들은 말씀들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빨래는 아직도 손빨래를 하고 계시는데 폐식용유로 손수 만든 비누를 사용하신다. 빨래하고 남은 물은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때나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시고, 헹군 물은 화분에 주신다. 그리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짜는 힘이 부족한 탓에 짤순이를 이용하여 물만 빼신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전기도 많이 소비될 뿐만 아니라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굳이 손빨래를 고집하고 계신다.

둘 째로, 설거지 하실 때는 싱크대에서 하수구로 가는 구멍에 신문지 같은 것을 군데군데 잘라 넣고 음식 찌꺼기를 거르게 한 다음 설거지가 끝나면, 신문지를 펴서 말린 후에 쓰레기를 배출하신다. 아파트로 이사하시기 전에는 단독 주택에 사셨는데 태울 만한 쓰레기를 옥상에서 태우시다가 주위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있어 혼이 나기도 하셨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 왜 그러셨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너무 많이 내보내는 것 같아서 쓰레기 양을 줄이려는 맘에 그러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런 조치 없이 쓰레기를 태우면 공기도 오염되고 나쁜 화학 물질이 공기 중에 나와서 안 좋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머니께서 아직 부엌세제를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루나 쌀뜨물이나 비누로 만든 환경 친화적인 부엌세제를 소개해 드리고 사용을 권해 드렸더니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신다.




셋째로, 집안 청소를 할 때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비누를 사용하고 전기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걸레와 빗자루를 이용하고 계신다. 살면서 여러 집을 다녀 보았지만 어머니의 깨끗함에 견줄만한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어쩌면 괴벽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물 사용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였기에 가족의 건강을 이만큼 지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젠 무릎도 아프시고 허리도 아프시니 그만 쉬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신 청소라도 할라치면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두 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주된 이유이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높은 기준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신단다. 함께 살면서 이젠 자식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도 좋으련만 그런 것은 말도 못 꺼내게 하신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끔씩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넷 째로, 새벽에 일어나서 문안 인사를 드리면 어느새 두 분은 청소도 하시고 아침 식사 준비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을 어둠 속에서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제 함께 산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새벽이나 밤중에 거실이나 방이 환하게 밝혀진 것을 본 적이 없다. 거실에서도 형광등을 다 돌려놓으시고 한 개만 불이 들어오도록 하신다. 여쭤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 번 그 이유를 여쭤보니 먼저는 전기 세를 아끼기 위함이고 그 다음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에너지 현실을 인식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혹시라도 전열기를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코드를 뽑으시는 어머니의 삶의 지혜에서 경외감마저 들기도 한다.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작은 원칙을 실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곤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아팠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믿게 된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고쳐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의리로라도 교회에 꾸준히 다니신다. 속칭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신앙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곤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워 온 일면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뿐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맞게 잘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희생과 순종과 정의의 정신을 가지고 가정과 직장과 여러 공동체에서 구성원들과 화목하며 서로 존경하며, 수행하는 일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주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환경을 생각하며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그저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상관하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의 원칙을 꾸준히 지켜가시듯이……

어머니,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건강하게 사시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삶에서 좀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정진호] 제 8 떡 – 공동체의 제사 – “열린 우리 떡”

 

(1)


한국인만큼 공동체적인 민족이 있을까? 한국인은 홀로 있기를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내편을 끌어들여서 우리를 만들고 만다.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마누라, 우리 편, 우리 동네, 우리 가문, 우리 학교, 우리 지방, 우리민족, 우리나라, 우리 은행……. 그리고 마침내 <열린 우리당>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정당까지 생겨났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너희”를 배제시키는 배타성을 지닌 “닫힌” 개념이다. 그런데 그것을 “열린” 우리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논리적 모순이다.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희화적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닫혀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토록 목숨걸고 우리를 만들고 나서, 그 속에서 박터지게 싸운다. 더 나은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의 우리가 단단하게 닫혀있을 때만이 심리적 안정감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우리는 끝없이 깨지고 갈라진다. 그러나 갈라진 작은 우리 안에 들어가 있다보면 다시 불안해진다. 주변에 더 큰 우리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는 더 큰 우리가 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깃발을 흔들고 머리띠를 두른다. 그리고 뛰기 시작한다. 운동원이 되고 운동선수가 되고 조기축구회가 되고 응원단이 되고, 그러다가 공이 구르기 시작하면 함성을 지른다. 오 필승 코리아 그 함성이 광화문에서 시청앞으로,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강원도에서 제주도로 퍼져나간다. 아니 아예 전 세계에 퍼진 조선족들에게 파도처럼 전파된다. 그 함성이 “따당따 단딴“하는 민속 장단 안에서 어느 순간 붉은색으로 획일화 된다. 단일민족이 단색민족이 되는 것이다. 갑자기 그동안 기를 쓰고 만들었던 수많은 우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시내가 합하여 강줄기를 이루고 강물이 합하여 바다를 이루듯, 폭포수처럼 노도처럼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 나라가 하나가 되는 감격을 이루어낸다.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함성이 지나가고 나면, 연극이 끝나고 나면, 촛불이 꺼지고 나면……. 서서히 우리는 다시 작은 우리들을 만드는 그 옛 자리로 되돌아간다. 국회가 다시 열리고,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관계가 아주 없는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는 것보다는 낫다. 절대적 무관심 속에 놓이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이 광대한 무생물적 우주 안에 만일 나 홀로 존재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도 프라이데이라는 대화 상대가 있었기에 생존을 위한 용기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창조 시부터 더불어 대화하며 공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은 창조주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우주 만물은 엘로힘(Elohim)으로 표현된 창세기 1장의 복수형 하나님이 합력하여 창조한 합작품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람을 창조할 때에는 그 복수형 하나님이 서로 의논하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분명한 설계자의 의도와 계획을 나타냈다. 그것은 인간 지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지상 최대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기획자와 매니저와 실행자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일한 팀 사역(team ministry)의 결과였다.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으로 표현된 인간의 속성 속에는 하나님의 인격성(personality)과 도덕성(morality) 뿐 아니라, 반드시 영육(靈肉)의 대화를 통해 교통하도록 설계된 영적인 속성(spirituality)이 들어 있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공동체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은 반드시 대화를 통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獨處)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셨다.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다. 그 속에서 창조의 목적인 사랑을 이루게 하셨다. 사랑은 창조의 목적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사랑을 통해 유지될 뿐 아니라 재생산된다. 사랑은 창조의 시작이요 끝이다. 사랑은 공동체를 충만히 채우는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입김이요 숨결인 것이다. 그 속에서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사랑도 함께 떠났다. 사랑은 본질상 믿음을 기초로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았을 때, 그 사랑은 식기 시작했다. 사랑이 차갑게 식어가고 사라져 가자, 공동체는 서서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온갖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탐심과 배반과 폭력과 살인과 전쟁이 일어났다. 마침내 사랑이 깨지고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죽음을 향한 긴 그림자가 공동체 안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가정과 사회와 민족과 국가라는 인간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 분리의 영이 활동하며 온갖 상처와 아픔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역사였다. 우리의 아픈 역사들 

그 공동체의 상처들을 치유하며 회복하기 위해 예수가 왔다. 예수는 갈라진 모든 관계들을 다시 회복시킨다. 십자가 안에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치유된다. 그리고 나면,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너 사이의 관계, 그리고 나와 우리들 사이의 관계들이 회복된다. 마침내 그 회복은 나와 그들 사이, 나와 원수 사이, 나와 모든 피조물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대된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나와 그것(I and it)” 사이의 관계가 “나와 너(I and You)”의 관계로 회복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다시 형성되는 것이다.



(3)


갈라진 우리 민족, 남과 북, 남과 남, 조선족과 고려인, 재일동포와 사할린 동포, 재미 교포와 캐나다 교포……. 지난날의 뼈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 나뉨의 역사를 극복하고 하나됨의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왔다. 연변과기대 공동체는 13개국 이상에서 모여든 다민족 복합 공동체이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한 테이블에서도 여기저기 중국어, 한국어, 영어, 독일어, 불어, 일어가 뒤섞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 뿐이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이 함께 어울리고, 더러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바벨탑에서 갈라진 언어와 민족이 성령 강림 시에 다시 하나로 합해지기 시작했다면, 그를 방불케하는 역동적 현장이 바로 연변과기대이다. 제각기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 그리고 소속 단체들을 통한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있는데, 어떻게 이렇듯 조화를 이루고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그저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한 마디로 연변과기대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교육의 산실이다.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회복 뿐 아니라 중국을 너머 온 열방과 인류를 섬기고 감싸는 박애정신이 배출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 공동체라면……. 어쩌면 더 이상의 나뉨과 분열은 존재할 수 없을 것도 같은데? 과연 그럴까? 그들은 더 이상 갈등도 다툼도 없이 지내고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솔직히 현상 그대로를 들여다보자. 언어가 서로 다른데 왜 불편함이 없겠는가?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오해와 실수들은 매일 지속되는 일상이다. 서로 다른 문화 배경에서 오는 갈등은 어떠한가?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몰이해는 심각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특별히 한국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빨리 빨리 문화, 즉흥적인 감성중심의 의사 결정, 좌충우돌 하루가 멀게 달라지는 규정들,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쇼트 노티스(short notice)……. 이런 것들은 서양 사람들, 특히 합리적인 독일 사람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여겨질 뿐아니라 그들을 화나게 만든다. 음식 문화가 그렇게 다른데… 날마다 식당에서 2,000 여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한 가지 식단으로 자신을 죽여야 하는 그 인내심에 오히려 탄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보다도 더 힘든 것은 역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에고(ego)의 부딪힘 들이다. 게다가 이곳까지 몰려든 사람들이란 대개 개성이 “개 같은 성질”을 나타내는 특별한 종자들이다. 좋게 말해서 개성이지 달리 표현하면 한 마디로 독종들이다. 독특한 종자들이란 말이다. 좋은 환경들을 스스로 버리고 일부러 고생을 찾아서 몰려든 족속들이니 보통 사람들은 아닌 셈이다. 이들이 200여명, 아니 가족까지 합하면 500명이 넘는 대 식구가 모여 있으니 문제가 없을 리 없다. 이런 종자들의 특징은 보통 양보할 줄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모두 자기가 제일 잘난 줄로 착각한다. 그러니 자기주장이 항상 옳을 수밖에 없다. 우월감이다. 더구나 현지인들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을 항상 안고 있으니 습관적 우월감을 나타낸다. 이런 우월감들이 부딪치기 시작하면 못 말린다.



그런데, 사실은 우월감이란 열등감의 적극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사실 본질적 열등감에 빠져있다. 실낙원의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 영적 퇴화(degradation)가 발생한 그 순간부터 전 인류는 열등감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경험한, 아니 하나님의 그 완전한 형상이 담겨 있던 그 추억 속에서 걸어 나와 이제 초라한 죄인의 타락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실존은 “열등감에 귀속된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학력이 높을수록, 외모가 좋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권세를 누릴수록 그들은 더 큰 열등감 속에서 신음한다. 끝없이 자신을 더 높은 자리와 비교하며 그 비교의식 속에서 눌려서 살아간다.

이론적으로 보면, 그런 죄인들이, 아니 중증의 환자들이 200여명 모여 있는 공동체니 얼마나 문제가 많으랴? 결국 문제는 비교의식이다.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왔지만 눈앞의 현실 앞에서 고민한다. 사역지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외형적 차이와 직분들, 그리고 받은바 달란트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남과 비교하면 어쩐지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앞서서 나가는 동역자에 대한 공연한 질투심이 발동하여 힘들어지는 것이다. 온갖 석사, 박사들, 교수들이 모인 대학 공동체이니 잘난 사람이 좀 많겠는가? 거기다가 내놓고 드러내지 못하지만 M과 P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영적 우월감은 이건 세상적(?)인 우월감하고 또 다른 차원의 골치 아픈 문제다. 자기만의 도그마를 내세워 도무지 타협할 줄 모르는 족속들이 바로 이들 아닌가? 갈라지고 쪼개지는 데는 관록이 붙은 명수들이다. 그런 곳에서 훈련받은 정예부대들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경쟁심리와 높아지려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마음들을 다 내려놓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피상적인 착각일 뿐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들을 뿌리치고 가난한 삶을 스스로 택한 것은 일단은 가상한 일이지만(이 문제조차 사실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고개를 넘고 나면 더 험준한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먹음직한 유혹” 너머에는 “보암직한 유혹”이 기다리는 것이다. 명예심,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만민에게 자신을 보이고 싶은 우쭐대는 마음, 그것이 더 강한 집착으로 다가온다.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리라 하는 결단과 다짐을 하고 건너온 곳이지만, 그 결심은 홍해바다를 건너며 은혜 받을 당시 잠시 뿐이었다. 광야 생활이 시작되면 곧 불평불만이 터져나오며 갈등이 시작된다. 과거 애굽 생활의 옛 습관들이 여지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서 건너왔던 한 동역자 부부가 2년의 사역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때, 그 자매가 아내에게 찾아와서 눈물로 고백한 일이 있다. 그동안 자신이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너무 많은 죄를 짓고 떠난다는 것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음악을 통해 항상 앞자리에서 돋보일 수밖에 없는 아내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항상 걸림돌이 되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까이 대화하는 가운데 아내에 대해 바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초창기부터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아내가 자신의 우상들을 내려놓고 헌신하게 되는 지난 10년의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아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항상 사랑으로 격려해준다. 그러나 그 과정을 모르는 새로운 동역자들 가운데는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며 더러는 질투심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 아내를 정죄하며 지내었으니 그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연변과기대 교직원들의 영적 성장 곡선을 대략 시간대 별로 그려보면, 처음 도착할 시의 충만한 기쁨이 첫 1년을 지나면서 점차 하강한다. 예상치 못했던 공동체 내의 불합리한 모습과 동역자들의 단점이 보이면서 실망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더러는 강한 불만과 정죄로 표출되는 사람들도 있다. 2년을 넘기면서 그 실망은 최저로 하락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사람들은 사역지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3년차에 이르면 점차 사역의 본질을 깨닫고 외적인 환경보다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사역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영적 상태가 상승하며 안정된 사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 마음으로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연변과기대가 보여주고 있는 공동체적 연합은 다른 어떤 공동체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기적의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


광야 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성막을 짓도록 명하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제사를 드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한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수 많은 제사 중에서 특별히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드리는 제사가 소제(grain offering)이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다. 양과 소와 염소를 잡아 피를 흘려드리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소제는 곡식을 고운 가루로 갈아서 기름과 유황으로 반죽을 하여 화덕에 구어 무교병의 떡을 만들어 드린다. 소제야말로 딱딱한 곡식 알갱이와 같은 자아의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한 덩어리의 떡을 만들어 올리라는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이다. 곡식을 빻을 때, 외형적인 큰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좀처럼 알갱이가 부서지지 않는다. 맷돌로 갈든지 방아로 내리찧든지 큰 물리적 힘이 가해질 때 곡식 알갱이들은 서로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대학을 세우다보니 나타나는 여러 가지 외적 압력이 오히려 공동체를 잘게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연합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함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곡식들끼리 서로 부딪쳐 가루가 되며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나의 반죽을 이루게 한다. 그것을 뜨거운 화덕에 굽는 것이다. 광야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들의 감추어진 탐심과 교만을 드러내며 곧은 목을 연하게 하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연단의 과정이었다면, 연변과기대 공동체의 사역 역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광야로 내몰아 그곳에서 연단시키며 변화시켜서 마침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한 성화과정임을 깨닫는다.

공동체의 떡을 만들 때,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도록 레위기는 기록하고 있다.(레 2:11-3) 누룩은 공동체를 부풀리는 교만이요, 꿀은 공동체를 유혹하는 탐심이다. 아울러 처음 익은 것으로는 드리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연변과기대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처음 이 땅에 발을 내 딛을 당시의 깨끗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항상 일하라는 말이요, 자칫 매너리즘에 빠져서 스스로 선한 체 하며 외식과 위선으로 사역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반드시 소제물에는 언약의 소금을 치라고 명하고 있다. 소금처럼 변치 않는 십자가의 언약이 늘 공동체를 부패하지 않도록 지키는 방부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변과기대 공동체가 매주 드리는 예배는 대단히 특별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직접 체험해본 사람들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깊은 은혜가 예배의 시종을 통해 강물처럼 출렁임을 느끼게 된다. 예배를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하나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소년에서 청장년과 노년층이 함께 드리며, 각종 배경이 다른 사역자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가 단일 예배를 통해 기쁨을 찾고 영적 만족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러나 그것을 정성드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 성령의 하나됨이 나타난다. 헌신자들의 모임이기에 받을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외지에서 잠시 방문하는 분들도 여지없이 그 감동에 휩싸여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봉헌이 함께 어울어진 하나됨의 제사, 어쩌면 그것이 연변과기대를 지난 10여 년 동안 지탱할 수 있도록 한 내면의 힘이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는 제자들을 두고 떠나기 전에 최후의 만찬과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 공동체의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하나됨은 성삼위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됨 같이 제자들도 자신 안에서 하나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그것을 위해 중보한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도의 성패가 그들의 하나됨에서 좌우될 것임을 또한 예언한다.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이 행한 일로 인해 그들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알아볼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될 때 비로소 낱알과 같이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삶이 산제사로 드려지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다른 동역자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서로 칭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잘난 큰 아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망가진 배고픈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산산이 찢기고 피 흘렸던 예수의 몸이 다시 회복되어 “새 한 몸”이 되는 것, 그것이 교회요 그것이 예배의 본질이다. 그것을 날마다 체험하기 위하여 예수를 기념하며 우리는 성찬(Eucharist)을 드린다. 멜기세덱의 제사를 통해 나타났던 떡과 포도주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다. 눈물의 성찬을 통해 우리의 죄악은 씻겨져가고, 낱알에서 가루로 고운 가루에서 다시 한 덩어리의 떡으로 드려지는 완전한 하나됨의 공동체 “우리 떡”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떡은 우리끼리 먹고 누리기 위해 만든 떡이 아니다. 우리에 들지 못한 수많은 다른 양들이 먹어야 하는 그런 떡이다. 따라서 “열린 우리 떡”이다. 그러하기에 연변과기대의 하나 된 “우리 떡”을 품고 저 북녘의 집나간 배고픈 동생들을 찾아 나서는 평양과기대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김영봉]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일상과 예배 (1)

이코스타 2004년 5월

1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다가 다시 목회 현장으로 나오니 새롭게 느껴지는 점들이 많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목회자가 처한 입장이 진실을 바로 인식하는 데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자주 확인한다. 목회자의 입장에 오래 있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현상에 대한 바른 시각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예배에 대한 시각이다. 목회자가 볼 때 예배는 성도들의 영성 생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정성을 다해야 하고, 예배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에 이렇게 정성을 다하다 보면,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성도들에 대해 조바심이 생기는 반면,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믿음이 생긴다.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안전해. 잘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기 쉽고, 예배 참석에 부실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상, 이 느낌은 어느 정도 사실과 일치한다. 확률적으로,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들의 영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영성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될 가능성이 크다. 대단한 영적 수준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예배 참석도가 그 사람의 영적 성숙도와 비례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일반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한 사람의 영성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예배에 참석하느냐는 한 가지 기준에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 꾸준한 예배 참여가 일상생활에서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고, 예배 참여도가 일상생활의 질적인 변화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흔하지는 않지만, 사정상 예배 참여에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와 일상생활의 질은 예배 참석도가 높은 사람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반복되는 예배에 항상 정성을 다함으로 감격적인 예배 경험이 일어나도록 하는 한 편, 성도들의 삶 전체를 보고 영성 지도를 하는 폭넓은 목회적 시야를 갖추어야 한다. 오랜 만에 목회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고 있다. 문득문득, 내 눈에 자주 보이는 사람은 건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병들어 있다는 편견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 편견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목회자는 예배와 교회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고, 그 결과 성도들도 자신들의 교회 생활에 비례하여 자동적으로 영성이 성장해 간다는 오해에 빠지게 된다. 교회생활과 사회생활,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분리되고 그로 인해 성도들의 종교성은 강하지만 사회성은 갈수록 약화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오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른 이해는 바른 삶의 출발점이다. 예배를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할 때 진정한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구약의 제사 규정

태초에는 예배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태초에는 ‘형식적 예배’가 없었다. 성경의 기록으로 볼 때, 최초의 예배 혹은 제사(1)는 태초의 원형을 잃어버린 후, 즉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나온다(창 4:3-5). 그 이전 즉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분리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귐이 항상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 혹은 예배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중간 중간에 시간을 따로 내어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살아가는 동안 줄곧 사귐을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간을 따로 구별하여 특별한 형식으로 감사를 올리는 제사 형식이 창안되었다. 특별히 짐승이나 곡식을 태우는 제사 의식은 ‘멀리 계신’ 하나님께 그 물질을 직접 드릴 수 없으니 연기로라도 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가련한 몸짓이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공적 예배 혹은 제도적 예배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실존 상태를 가장 분명하게 상징하는 종교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르는 족장 시대에 제사는 사적이고 비형식적인 초보적 형태였음이 분명하다. 제사장도, 성전도 없었다. 어디서든 제단을 세우고 짐승을 잡아 바치면 그곳이 성전이 되었고 제사가 되었다. 가장(家長)이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미리 마련된 규칙이 없었으므로, 가장은 부모에게서 배운 것을 응용하여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섬기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었으나, 그분께 예(禮)를 드리는 제사 형식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이다. 이렇게 집집마다 전해져 내려온 관습대로 드리던 제사가 확고하게 제도화된 것은 모세 시대의 일로 추정된다.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까지 그리고 레위기 전체에 걸쳐 상세한 제사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공적 형태의 제사가 어느 한 순간에 완전한 모습으로 출현했을 리는 없다. 모세가 바로에게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출 5:3)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모세 시대 이전에도 공적 제사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부터 제사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사람에 의해 그리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해야만 유효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이스라엘의 제사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흠 없음’이다. 레위기를 읽어보면 ‘흠 없는’이라는 어구를 헤아릴 수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므로 모든 면에서 온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모든 규정을 지배했다. 성막의 모양과 배치가 율법 규정에 정확히 일치해야만, 제사장이 규정된 모든 조건에 합해야만, 제물이 규정된 모든 조건에 합해야만, 제사 절차가 규정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만 흠 없는 제사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은 흠이 없는 제사만을 받으신다고 믿었다. 레위기에 기록된 것은 원론적인 규정이었으므로 율법 전문가들은 성경의 규정에 바탕하여 새로운 시행 세칙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흠 없는 제사를 위한 규정들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흠 없음에 대한 이 지독한 집착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는 말씀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하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히브리어의 ‘거룩'(카도쉬)은 ‘구별됨’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됨’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부정(不淨)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야 했다. 무엇이 부정한가? 흠 있는 것이다. 무엇이 흠인가? 흠은 율법이 정한다. 율법에서 흠으로 규정한 것은 모두 부정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려면 율법을 연구하여 흠 있는 것을 철저히 가려내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켜야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율법 규정의 발전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는 흠 없는 사람들이 흠 없음에 이르기 위한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렸다. 장애인들은 육체적인 흠으로 인해 부정하게 취급되어 레위 가문에, 아론 혈통에, 사독 가문 출신(2)이 라 해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성전 본체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여성이라는 것도 흠이었다. 그래서 여성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고, 성전 본체 안에서도 여자들만을 위해 구별된 장소에만 머물러야 했다. 제물로 쓸 짐승이 병에 걸렸어도, 야위었어도, 장애가 있어도, 생김새가 좋지 않아도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그 결과, 제사 제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율법 규정에 의해 흠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그 사람은 영영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할 수 없는 ‘레 미저러블'(Les Miserables)이 되고 만다.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흠이 없는 것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흠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특권 의식으로 연결되었고,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는 조건을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들은 흠 있다고 인정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고, 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선택의식은 제사 의식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들은 흠 없는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거룩해지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다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하나님의 관심사가 그들이 드리는 제사에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는 것에만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에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그 결과 제사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는 경향에 빠지곤 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부정 타지 않기 위해 분별하고 구별하는 일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우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부정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항상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려 했고, 거룩한 영역을 따로 확보하여 그 속에 안주하려 했다. 이러한 편향된 관심은 그들로 하여금 윤리적인 차원을 소홀히 하도록 이끌었다. 윤리적 요청을 회피하고 정당화시키는 방편으로 제사에 몰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종교적인 열심은 강한데 윤리적 차원에서는 파산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들 편에서 보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위선자이거나 속아 넘어간 맹신자다. 성전 안에서의 행동과 성전 밖에서의 행동이 전혀 다른 이중 인격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은 그들에게 차별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어떤 면에서든 흠이 있다는 사실은 더 각별한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뜻이련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흠이 있다는 것을 ‘부정’ 혹은 ‘불결함’ 혹은 ‘불길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게 인식하고 나니, 흠이 있는 물건이나 짐승이나 사람은 동정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차별과 감시와 격리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인간들에게도 버림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흠이 있는 물건이나 생명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주저됨 없이 차별하고 정죄하고 멸시하고 외면하였다.




후대의 제사 신학이 드러내는 또 다른 문제점은 제사가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가인과 아벨의 첫 제사 이야기(창 4:3-5)와 노아의 제사 이야기(창 8:20-22)가 분명히 보여주듯, 제사 혹은 예배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와 복을 기억하고 감사드리기 위해 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복을 얻어내려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감사와 감격의 제사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거래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받을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런데 제사 제도는 마치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흠 없음’의 기준을 만족시키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내가 제사 의식을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제사 의식은 본래 좋은 것이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을 상실한 인간에게 있어 제사는 그 사귐을 지속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고 새로운 마음을 얻는 것은 제사의 가장 좋은 열매다. 모든 절차에 있어 흠이 없도록 요구하는 율법 규정도 본래는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하라는 요청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하는 것은 예배의 중심이요 삶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절차와 규정을 하나하나 따르면서 마음을 모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흠 없는 제물을 바치라는 것도 가장 좋은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분임을 인정하라는 뜻이니 탓할 것이 없다. 실제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이러한 태도로써 임했을 것이고, 그 결과 스스로를 속이거나 속아 넘어감으로 제사와 삶이 분리되는 잘못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제도화되고 교권화 되고 형식화되는 상황에서 이렇게 영성을 지키고 율법의 본래 정신을 지킬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절대 다수는 이 상황에서 영성을 잃어버리고 체제의 속임수에 스스로 영합하거나 속아 넘어가 거룩한 영역을 지키고 그 안에서 안주하는 데에 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2.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구약의 제사 비판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선지자들의 예언 운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조직이 지나치게 거대해지고 그 이권이 너무 커진 나머지 내부적인 비판과 견제와 정화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 조직은 타락하기 시작한다. 중세 시대의 가톨릭교회가 대표적인 예다. 이스라엘의 제사 종교가 그랬다. 모든 것이 제사장들에 의해 규정되고 집행되고 처리되다 보니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제사 종교는 더욱 타락하게 되었고, 그 타락으로 인해 일반 대중의 영성이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암흑기의 절정에서 예언 운동이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영성을 깨워 일으켰다.


예언 운동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히 밝혀진 것이 없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기원전 721년)하기 얼마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예언 운동은 제사장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던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에 새로운 정신을 제공해 주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성이 새롭게 도약했다. 기독교의 역사에 비교한다면, 예언 운동의 출현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 운동에 비유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사 종교의 거의 모든 면을 비판했지만, 특히 일상생활과 구별된 제사 행위가 가장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선지자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의 종교성을 이렇게 비판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 5:21-22). 이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명령을 주신다.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23절)! 모든 제사 행위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라는 뜻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어조로 남왕국 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책망을 전한다. 이사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 이어서 그는 더 충격적인 말씀을 전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헛된 제물’이요, 하나님은 그들이 올리는 분향을 ‘가증히’ 여기신다! 매월 첫날에 모여 예배드리고 안식일마다 모이는 것도 ‘가증히’ 보신다(13절)! 하나님은 그들의 종교 행사를 “견디지 못하겠노라”(13절)고 절규하신다. 그들이 드리는 모든 종교 행사들을 지켜보시기에 하나님은 “곤비해”(14절) 지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를 거부하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 이사야가 그 대답을 준다. 그들이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고”(13절)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15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일상생활이 죄와 악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제사에는 전심을 다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죄악을 일삼기 때문이다. 종교적 행위를 통해 영성을 키우고 그 영성을 통해 일상생활 전체를 거룩하게 만들어야 했건만, 그들은 종교적 행위를 일상생활에서의 죄악에 대한 도피 수단으로 혹은 거기서 오는 가책을 모면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랬기에 그들의 종교 행위는 날로 커지고 빈번해졌지만, 그들의 일상생활의 질은 날로 타락해갔다. 제사생활과 사회생활, 종교생활과 일상생활 사이에 높고 두터운 장벽을 쌓고는 제사생활에 몰두함으로 그 위선과 모순을 외면하려 했다.




이러한 영적 타락을 회복하는 길은 제사 생활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더 관심을 기우리는 데 있다. 아모스를 통해서 하나님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말씀하신다. 일상생활, 사회생활에서 정직하고 의롭고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릴 참된 예배라는 뜻이다.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은 더욱 명료하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호세아를 통해서 하신 말씀은 포괄적이지만 명쾌하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히브리어의 ‘알다'(야다)는 지식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앎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사귀는 것’ 혹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과의 사귐에 들어가 그분의 영으로 변화되어 그분의 뜻을 살아가는 것이다. 제사를 포함한 모든 종교적 활동들은 이러한 전일적(全一的) 영성을 키우는 데 이바지해야만 존재 의미를 가진다.

선지자들은 제사에 대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지적한다. 이 점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충격적인 말씀을 전해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했다(렘 7:22)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면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담긴 그 모든 제사 규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히브리적 어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히브리인들은 ‘반어적 병행법'(같은 내용을 한 번은 부정적으로 또 한 번은 긍정적으로 반복하여 강조하는 어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런 경우 부정적인 표현을 액면 그대로 ‘절대 부정’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부정적 표현의 의도는 그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번제나 희생 제사에 대해 명령한 바 없다”는 말씀은 “내가 강조한 것이 번제나 희생 제사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긍정문을 보자.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걸어가라’는 말은 일상생활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율법 규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은 일상생활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일상생활을 ‘비신화'(非神化)시켰다. 하나님은 이 같은 반쪽짜리 영성을 거부하셨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하시려는 메시지는 제사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이다.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다른 한 편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임을 알고, 모든 것을 거기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지 말고, 그분의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시 51:17)이며 순결한 마음이며 의로운 삶이다. 제사 종교는 바로 이 점에서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제사장이나 일반 대중이나 모두 제사와 율법에 집착한 나머지 일상의 영성을 상실한 것이다. 제사를 일상에서 분리시킴으로 일상으로부터 제사를 몰아냈다. 그 결과, 제사는 제사대로 왜곡되었고 일상의 삶은 그것대로 물화(物化)되고 속화(俗化)되었다.




이렇게 선지자들이 강도 높게 제사 신앙을 비판하고 영성의 회복을 부르짖었지만, 이미 견고한 성을 쌓은 제사 종교는 변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언제나 제도권 밖에서 외로이 외치다가 거부와 박해와 순교를 당했고, 제사 종교의 교권자들은 ‘어용’ 선지자를 고용해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했다. 하지만 예언 운동의 존재는 일반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제도권에서 나오는 ‘체제 옹호적’인 소리만 듣고 순종해야 했던 그들은 예언 운동 덕에 영적으로 깨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안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사 종교의 교권자들은 그들을 더욱 위협하고 옭아매려 했다. (계속)


(1) 구약성경에서 ‘제사’와 ‘예배’는 동의어로 쓰인다.

(2) 율법 규정에 의하면 제사장은 레위 가문 중에서도 아론 혈통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고, 아론 가문 중에서도 사독 계열에 속한 사람에게만 대제사장이 되는 특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로 오면 대제사장직이 정치적 결탁의 대상이 되었다.

[신국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스크린에서 보다 진했다

이코스타 2004년 5월


“영화 <패션>을 보셨습니까?” 지난 1월 캘리포니아 패사디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존스톤교수가 나를 만나자 마자 건네온 첫마디였다. <영화와 영성> Reel Spirituality라는 책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존스톤은 개신교 신학자 가운데는 드물게 영화를 비롯한 현대예술과 기독교를 연구해온 사람이다. 그는 영화가 영적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영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또 할리우드가 가까운 관계로 자주 영화계 사람들을 만나고 작업을 같이 하기도 했다. 물론 이 영화도 편집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 영화에 대해서 “패션” (열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내게 건넨 큼지막한 포스터를 말아 쥔 채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체 120여분 중 100분이 넘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상세하게 묘사한 것에 대한 찬사가 핵심이었다. “그것 만으로 영화가 될까요?” 그것이 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그 다음 주일 나는 LA 근교의 잘 알려진 대형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거기서도 영화 <패션>에 대한 “광고”를 10여분에 걸쳐서 들었다. 이 교회는 LA 주변의 상당 수 영화관을 빌려 이 영화를 시중 개봉 이전에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를 주최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 행사를 한 미국 전역의 교회 중에서도 선봉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목사가 권할 유일한 R등급의 영화일 겁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영화를 강력히 권하면서도 피로 얼룩진 작품임을 거듭 경고했다. 만약 그렇게도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내내 계속된다면 정말로 교회가 나서서 성도들에게 권할 만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2월에 들어 수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에 맞춘 개봉을 몇 주 앞두고 영화는 이미 많은 관심과 비판을 불러일으키며 뉴스 거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이 영화가 유태인을 비하하고 예수를 죽인 사람들로 묘사한다는 논란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반유태주의”는 그리 절대적인 관심사가 아니므로 그 논쟁에 뛰어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놓고 번민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준 것과 달리 가야바를 비롯한 제사장들을 철저한 악당으로 그린 점이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교활하고 주도 면밀한 음모자요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악마처럼 묘사되었다. 요한복음이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을 유익으로 생각했다는 점(11:50)을 밝혀 그 역시 고민이 없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시각이다. 아마도 이런 다소 치우친 관점이 “반유태주의적”이라는 지적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갔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본래가 개봉 초기부터 뛰어가 보는 것보다 기다려 평을 참고하여 볼 가치를 결정하는 버릇이 있는 터였지만 일부러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 계속되는 평들은 극히 엇갈린 것들이었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영화가 엇갈린 평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많은 경우 그렇다. 하지만 특히 종교적인 영화가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경우 거의 그래왔다. 예외가 있다면 50년대의 <왕중왕>이나 <벤허> 정도일 것이다. 마틴 스콜세이지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은 오랫동안 한국서 상영되지 못할 정도의 반대에 봉착했었다. 영화 <패션>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극찬과 혹평이 엇갈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전세계의 기독교인과 일부이지만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토론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간의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패션>이라는 주제이다. 멜 깁슨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피로 얼룩진 최후의 10여 시간에 그토록 가까이 카메라를 현미경 대듯 들이대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의도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보통 의미의 “오락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제작비를 많은 부분을 사재를 들였고 각종 논란과 비난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영화산업은 돈이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 상식이므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 제작 의도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고 과정도 상당부분 신앙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극도로 “사실적”이고자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사실성”을 더하려는 의도에서 인지 언어를 아람어와 라틴어로 했다. 비록 비교적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지만 세트나 의상, 분장도 많은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용면에서도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한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같은 영화와 달리 성경에 성실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묘사는 지금까지 그 어떤 묘사보다 자세한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은혜”나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반면 너무 “사실적”이고자 애쓴 나머지 지나쳤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채찍질 장면이 9분여 계속되는데 많은 의사들은 그런 식의 고통을 건강한 사람도 3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쇠사슬로 내리치는 등의 가해진 구타까지 더하면 지나침은 도를 넘었다고들 한다. 그 후 처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가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과장에 대한 비판은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신적인 능력으로 견디셨다고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패션>의 주제를 벗어난 것이다. 그의 수난은 철저히 인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시는 처절한 고난과 죽음을 주제로 보여주고자 한 시도 자체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관점에서 주제를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는 그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 멀티미디어요 특히 시각에 중점을 둔 영상매체인 영화의 본질이다. 특히 이 영화는 언어조차 자막으로 접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패션>은 고난을 “보여주기” 위해서 극단의 조처를 마다하지 않은 영화이다. 많은 비판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극도의 폭력이 한 시간을 훨씬 넘어서 계속되는 끔직한 영화이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시카고 선타임즈) 는 “자기가 본 영화 중 가장 폭력적인 영화”라고 했다. 뉴요커의 평론가 데이빗 덴비는 이 점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최하위 등급인 별 한 개를 주었다. 상식적인 영화 비판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 선정성과 폭력성인 점을 감안할 때 아무리 주제상 또는 특별한 의도가 있더라도 이처럼 생생하고 나아가 과장이 심할 정도로 길게 폭력적인 장면에 초점을 둔 것은 비판거리가 될 수 있다. 물론 나 자신은 폭력의 묘사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쉰들러스 리스트>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폭력적이었지만 그것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폭력을 묘사하고 “보여주는가”하는 것이다.




영화 <패션>의 의도는 이미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한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와 더불어 자라난 세대는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는 것 역시 명백한 한계를 가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고속도로 변의 목장의 송아지처럼 큰 눈망울을 굴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을 하루 종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 있다는 한 비평가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사람들이 폭력의 묘사에 익숙해져 어지간해서는 아무런 감동이나 시각적 충격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극단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자신은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수난의 장면부터 오히려 긴장을 잃기 시작했고 도가 지나친 폭력의 묘사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었다. 더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나는 그렇질 못했다. 평소에 눈물이 인색하지 않은 자신이 미안할 정도였다. 남들처럼 감동하고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을 굳이 변명하자면 바로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오가는 플래쉬 백으로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영화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피가 마리아의 얼굴에 까지 튀기는 장면으로도 고난의 의미는 살아나질 못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사고나 상상력이 훨씬 월등하여 그것을 살려내며 감동과 “은혜”를 받았을 것으로 믿는다.




일부에서 이 영화가 역시 제작자 멜 깁슨의 카톨릭적 신앙을 반영한다는 지적은 옳다고 보인다. 특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가 부각되는 여러 장면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여인이여”라고 부른 이유를 아들로서보다 메시야로서 대하신 것으로 해석해온 개신교 신학에서는 생소한 모습이 영화 전체에 상당히 있다. 가장 카톨릭적인 면은 주제인 <패션>에 대한 접근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는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하신 것이다. 이는 카톨릭과 개신교 신학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한 비참하고 참혹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카톨릭에 강하다. 중세의 성화들 중 <피에타>라고 불리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는 대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마리아를 측은히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한 구석에 등장한다. 마치 너무도 참혹하게 죽은 성자의 모습이 안쓰러워 인류의 죄를 사하신 듯한 인상을 풍긴다.

멜 깁슨이 수난과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이런 전통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남미나 필리핀 등지에서 간혹 수난절 행사에 실제로 십자가를 지는 재현행사를 포함해 각종의 고행과 고난이 강조되는 이면에는 이런 전통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신학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카톨릭의 저력은 부러웠다. 그것은 물론 멜 깁슨이라는 한 사람의 비전과 노력의 결실일 수 있다. 하지만 1920년대 영화와 정면 충돌해서 싸웠던 카톨릭은 바티칸 공의회 II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는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서는 카톨릭 안에서도 반대와 이견이 없지 않았으나 그러한 배경이 이 영화의 출현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대중문화가 일상 환경이 된 오늘날 개신교 역시 대중문화와 특히 영화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바로 보고 비판하며 나아가 변혁하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영화가 주류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고 배급되었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앞으로도 좋은 “종교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끝으로 이 영화를 과연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앞서 말한 지나친 폭력적 장면으로 인해서 이 영화는 성인등급인 R을 받았다. 하지만 로저 에버트의 말과 같이 “종교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17세 미만 절대 불가인 NC17을 주었어야만 했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따라서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어린아이들을 이 영화에 동반하는 것은 전혀 권할만한 일이 아니다. 다른 것은 접어 두더라도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는 교회에서 모든 교인을 불러 놓고 상영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 한국서 일부 교회가 불법 DVD를 상영한다고 하는데 이는 제작권 존중은 제쳐놓고라도 과연 상식적으로 타당한 일인지를 물어야 할 일이다.




<패션>외에도 모든 가족이 보아서 좋을 영화는 많다. 특히 신앙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들 가운데 많다. 예를 들어 1982년 휴 허드슨이 만든 에릭 리틀이라는 올림픽 달리기 선수의 이야기인 <불의 전차> 같은 것이 그렇다. 이 영화는 좁은 의미의 종교영화는 아니지만 정말 감동적이다. 부디 “종교영화”라는 좁은 장르에만 집착하여 “은혜”를 받으러 영화를 보러 가지 않기를 바래본다. 사실 “은혜”는 눈물만으로 입증되지 않는다. 진정한 “은혜”는 도전을 받아 삶의 변화가 일어날 때 강하게 임한다. 그리스도를 측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우리도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아니 조금이나마 그렇게 될 때 진정하게 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눈물보다 훨씬 진하다. 그것은 스크린을 피 빛으로 물들이는 것보다 훨씬 진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의 심령을 씻어 새롭게 변화시킨 진정한 은혜의 샘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