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희] January와 Jesuary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희랍신화에 보면 야누스란 신이 나온다. 이 신은 앞과 뒤에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신체적 특성에 맞게 도시나 집의 출입구 등 문을 지키는 수문장 신이 되었다. 그런데 문은 일반적으로 시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야누스 신은 또한 출발점의 신이라 생각되었고, 신들 가운데 최고의 지위가 주어졌다. 모든 시작은 언제나 그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으로 여겨져서 12개월 가운데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래서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는 의미에서 라틴어로 ‘Januarius’라 불렸고, 여기에서 1월을 의미하는 영어 ‘January’가 나오게 된 것이다.


영어 January처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나 상표 가운데 많은 것들은 희랍신화에 그 기원을 가진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 오리온 성운 등 모든 별자리 이름들은 희랍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희야신스 등 상당수 꽃이름들도 또한 희랍신화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제품이름들도 상당수가 희랍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를들면, 박카스는 로마신화의 술의 신 박카스(희랍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에서, 무기 가운데 발칸포는 로마신화의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희랍신화에서는 헤파이스토스)에서, 타이탄 트럭은 희랍신화의 힘센 거인족 티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들이 이 희랍신화에서 그 소재를 빌어오고 있다.


오늘날 희랍과 로마의 신들은 더 이상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현대인들은 희랍신화에 대해 그다지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만 해도 이 종교는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복음전파에 큰 지장을 주었다. 행 19장에서는 아데미 여신(아르테미스)을 섬기는 에베소 지역에서 은장색 데메드리오란 사람이 자신들의 신을 경홀히 한다하여 바울을 핍박한 적이 있었다. 또 루스드라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쓰스(제우스 신)와 허메(헤르메스 신)라 하여 섬기고자 한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인들이 이 희랍신화에 대해 완전히 경계를 풀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 January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성경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바로 알파요 오메가며 처음과 나중이라고(21:6)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야누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시작의 신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1월은 야누스의 달이 아니라 예수님의 달이 되어야 한다. 즉 January가 아니라 Jesuary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만 그 언어를 이렇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적으로는 그렇게 되게 할 수 있다. 예수님과 더불어 시작하는 달이 된다면 1월은 곧 Jesuary, 즉 예수님의 달이 되는 것이다. 1년 가운데 첫 달인 1월을 맞으면서 이 달이 예수님의 달이 되도록 해보자.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시작하며, 예수님의 주신 힘으로 시작해보자.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1월은 내용적으로 예수님의 달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1년을 예수님의 달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달로 마칠 수 있도록 해보자.

[성인경]구도의 철학: 진리가 가슴에 사무칠 때까지

오늘도 배낭 한 개만 달랑 매고 심산유곡을 헤매거나 유명하다고 하는 사찰이나 공동체를 순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유(LIBERTAS)’와 ‘진리(VERITAS)’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길을 떠난 사람은 많으나 자유와 진리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대부분은 길을 잘못 접어들었거나 가던 길을 멈추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오늘, 구도의 길에 오른 모든 순례자들을 위해 남겨놓으신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는 말씀이며, 저는 이 말씀의 함축적 의미를 세 가지만 풀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알기 전에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마음껏 추상적 세계를 날아다니지만 자기 논리와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습니다. 유명하다는 종교인들은 과거의 짐은 훌훌 벗어 던졌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관습과 전통의 쇠사슬에 꽁꽁 얽매여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진리가 없어도 자유롭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치지만 진리없는 자유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아직 깨닫?못하고 있습니다. 탈 현대주의湄湧?“진리는 일종의 장난이야.”라고 냉소를 보내지만 게임이나 장난 같은 세상에서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맛볼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자유라는 것은 인간에게 필수적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일 먹어야 하는 밥만큼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스토에프스키는 그의 [카라마조프 형제]에서 “우리를 마음대로 일 시켜도 좋소.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오.”라고 호소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적, 정치적 부자유(不自由)는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모든 인간은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간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매몰되어 시류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온갖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도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올가미와 같은 법의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법이 있는 한 불법과 형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육체로부터의 자유도 없습니다. 아무도 육신의 정욕과 질병,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찾다가 종종 깊은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찾아 세상을 정처 없이 유랑해 보기도 하고, 자유를 찾아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해 보기도 하며, 자유를 찾아 세상을 멀리하고 염세적으로 살아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찾아 “될 대로 되라.”며 세상의 법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보거나 제멋대로 신나게 초법적으로 살아봅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찾아 엄동설한에 거죽 떼기 하나만 걸치고 움막 속에서 몸을 학대하며 금욕적으로 살아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자유를 향한 다양한 몸부림들입니다.


오늘날 영성이 뛰어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유가 수도사적인 고행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쾌락을 단절하고 자기 몸을 학대해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옛 영지주의자들처럼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Do not handle! Do not taste! Do not touch!).”는 모토를 외치며 사는 것과 같은 금욕주의입니다. 요즘 이런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불교의 수행 방법이나 요가, 단학 등과 맞아 떨어져서 신비주의로 통하는 첩경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런 방법으로는 죄를 어느 정도 억누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죄를 이기지는 못하며, 오히려 자기숭배의 교만에 빠져 자학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으로 떨어지기 쉽습니다.(골로새서 2:16-22) 잘못된 자유, 가짜 자유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참된 자유는 ‘진리’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자유의 출처는 진리이며, 자유의 독특한 성격이 있다면 그것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자유는 수행이나 일탈이나 금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서 오는 것이며, 그것은 공짜로 그저 주어지는 선물이지 노력이나 수행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크테투스(Epictetus, 스토아철학자)가 “제우스가 나를 자유케 했다.”라고 한 말을 인용했거나 변형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치더라도 그가 말한 ‘진리’라는 것은 ‘관념적인 진리’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지나친 상상이고 억설입니다.


여기의 “진리(αληθεια, veritas)”는 문자적으로는 ‘믿을만함’, ‘신뢰할 수 있음’, ‘진실’, ‘참됨’ 등을 의미하지만, 본문이 있는 요한복음에서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찾고 찾던 “로고스(λογο??, 말씀)”로서의 예수님입니다. 그 분은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 은혜와 진리가 되신 분입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14:6) 2)그 분의 계시, 즉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17)


어느 것을 의미하던, 예수님 자신이 참 진리이시며 그 분의 계시 말씀이 진리입니다. 참 진리는 관념적인데 머물지 않습니다. 참 진리는 상대적이지도 않습니다. 참 진리는 인격적이며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를 얻는 길은 육체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진리와 권력을 해체하거나 진리를 일종의 게임으로 치부하는 일탈 행위도 결코 아닙니다. 참 자유의 출처는 오직 성경 계시의 핵심이시고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그 자유는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일방적인 선물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며,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진리는 세상을 다 뒤져도 찾을 수 없는 참 진리요 자유요 생명입니다. 자유와 진리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발을 멈추어 서야 하는 곳이 바로 예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진리를 “안다.”고 하는 것은 인격적으로 진리를 깨닫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의 “안다(Υνωσεσθε)”는 것은 경험적이고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는 처녀 총각이 아무리 서로를 잘 안다고 하더라도 결혼해서 성생활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안다”는 것은 부부간에 서로를 전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그런 앎을 말합니다.


이런 앎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이성에 의한 궁극적 실체에 대한 관념적 발견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앎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경지 혹은 대각(大覺)이나 신유학에서 말하는 마음을 비우므로 깨닫는 것과도 다릅니다. 그리고 이런 앎은 느낌과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경험적으로만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앎은 합리적으로 진리의 내용과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인격적으로 믿고 감정적인 결단과 행동이 동반되는 앎을 의미합니다. 즉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시의 말씀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을 전 인격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진리는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 진리는 지적 자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참 진리는 대부분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하는 중에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토론과 논쟁 중에 깨달아지기도 합니다. 혹은 직장이나 부엌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진리는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한 번 진리가 깨달아질 때는 마치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이 꼬였던 모든 문제들이 술술 풀리는 전 인격적인 변화의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앎은, 부처님이 열반 한 후에 도를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으로 불렀던 [마하박가]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고 외친 것과 다릅니다. 이런 앎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을 발견하고는 “휴레카((ευρηκα, 찾았다, 이거다)”라고 함성을 질렀던 것보다 더 감격적이고 가슴에 사무치는 변화입니다.


이런 앎은 옛날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가에서 빛 가운데서 들려오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인생을 바꾼 바울과 예수님의 전인격적인 만남이며, 빌립보 성의 루디아가 전도자 바울의 말을 듣고 “마음이 열려”, 즉 세계관이 바뀌어 인생의 참 주인을 만난 참된 앎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 안팎에서 진리를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더 중시하는 실존주의적이고 탈현대적인 경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그 위험이 우려할 만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내가 느끼는 것이 곧 진리이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신앙은 지성이면서도 동시에 체험적이기 때문에 실존적인 느낌을 도외시해서는 곤란합니다. 기독교는 지성적이며 동시에 체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어느 날 우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에 대한 신앙이 진리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인지 찾고 두드리다가 그것이 진리의 기준에 맞고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인격적으로 믿고 맡겨야 합니다. 믿되 단지 지식적으로나 감정적으로만 신뢰할 것이 아니라 전 인격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고통을 다 아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므로 당신이 전 인격적으로 반응하시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이 글은 2004년 KOSTA/USA에서 양희송 실장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를 편집부에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 복음주의 개관


(1) 복음주의 용어정리


흔히 사용되는 복음주의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부터 정리해 보자. 우선 evangelicalism과 evangelism의 사용이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각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자.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 evangelize에는 두 가지 명사형이 있는데, 각각을 살펴보면,
-  Evangelism : 이것은 ‘주의(-ism)’이라가 보다는 그냥 evangelize(복음을 전하다)의 명사형이다.
-  Evangelization: 복음화. 단순한 개인전도의 의미를 넘어서 복음의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두 단어의 구분은 74년도 로잔언약에서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는데, John Stott는 로잔대회 기조연설에서 “Mission에는 evangelism(개인전도)과 sociopolitical engagement(사회참여)가 있다.”라는 말로 두 단어를 분리해서 사용하였다. 또한 evangelize의 형용사형에도 두 가지가 있다.
-  Evangelical: 복음주의적
-  Evangelistic: 복음 전도적 (개인전도에 관련되어서)


예를 들어, evangelistic preaching은 전도설교라 할 수 있고, evangelical preaching은 복음주의에 근거한 설교를 뜻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복음주의를 evangelism으로 오해하면, 그저 ‘전도하자’는 정도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복음주의는 evangelicalism으로 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이다.


(2)역사적 기원


복음주의라는 말은, 70 80년대의 Billy Graham과 Christian Today라는 잡지의 등장, 그리고 미국 Jimmy Carter 대통령이 자신이 스스로 거듭난 기독교인임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보편화되었다. 복음주의는 미국적인 특수한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며, 또한 20세기 초반의 Christian fundamentalism과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복음주의는 7 80년대의 미국적 상황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복음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1. 지리적 분포: 복음주의는 영어권 지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비영어권에서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사용되는 evangelish라는 용어는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자를 지칭한다. 즉 독일에서 복음주의하면 ‘개신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에 루터교도 점차 자유주의로 흐르게 되면서, evangelical이라는 용어가 영어에서 역수입되어 사용되게 되었고, 결국 개신교를 전체적으로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evangelical이라고 하면, 카리스마틱 교회를 지칭한다. 또한 영국에서 evangelical이라고 하면, ‘나는 카리스마틱이 아니고, 또한 자유주의도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복음주의라는 말은 일관성 있게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영어권 기독교를 주 배경으로 하고 사용되는 용어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럽의 영어권과 북미의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복음주의라는 의미도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에 알려진 복음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유일한 복음주의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그 특성에 맞게 복음주의를 받아들였듯이 한국도 우리의 정황에 맞추어 받아 들여야 한다.


2. 현상적 특징: 영국의 데이빗 베딩턴이라는 역사학자가 언급한 복음주의의 특징을 크게 4가지로 요약했다.

-  Activisim: 전체적으로 활동적으로 움직인다.
-  Biblicalism: 성경을 강조
-  Conversionism: 교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심해야 한다.
-  Cross-centralism: 십자가를 강조


또한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인 John Stott는 복음주의자들의 특징으로 ”Bible people and gospel People”이라는 두 가지로 설명했다. 또 영국의 Allister McGrath는 복음주의를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 공동체, 복음전도”라는 크게 6가지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복음주의에 대한 언급들은 특성을 묘사한 것 뿐이지, 본질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복음주의가 운동인가 신학인가?” 하는 부분인데, 점은 John Stott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언급되고 있다. 즉,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런 현상에서 ‘무엇을 믿는가’하는 신학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복음주의 학자인 버나드 램이 스위스에 있는 칼 바르트의 밑에 있으면서, ‘나는 복음주의의 겉만 만졌던 것이지 실제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복음주의가 전략과 운동은 있지만 신학이 부재하다고 통탄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주의를 신학적으로 정리할 필요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2. 역사 속에 살펴본 복음주의


복음주의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베딩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복음주의의 특성을 activism, biblicalism, conversionism, cross-centralism으로 크게 볼 수 있다면, 복음주의를1970 80년대의 미국적 상황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복음주의가 20세기의 일이 아니라면, 보통 18C 부흥운동이나 16C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John Stott는 복음주의의 근원을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4세기의 니케아신조에서 이야기하는 삼위일체를 믿는 믿음이 바로 복음주의 전통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기독교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삼위일체의 신앙으로 부터 시작한다. 사실 니케아 신조가 처음 만들어 질 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누어 졌다. 동방교회는 세 분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성령님을 더욱 강조했고, 반면 서방교회는 하나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도 성령에 대한 좋은 연구들이 동방교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4세기에 “그리스도 중심적 (cross-centalism)” 이라는 개념이 정리된다는 면에서 복음주의의 뿌리를 거기서 찾는다.


종교개혁의 흐름에 “성경중심 (biblicalism)”의 사상이 나타났고, 더불어 루터가 벼락 맞아 죽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서를 통해 회심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에 “회심 (conversionism)”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다. 이런 복음주의의 흐름은 18 19세기의 영미의 부흥운동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잔 웨슬리, 조지 휫필드나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데, 그 특징 중의 하나가 “회심운동”이다. 예를 들어, 웨슬리같은 경우 옥스포드에서 방법주의(Methodist)라고 불리 울 만큼 경건 훈련을 강조하는 Holy club에 열심이었지만, 구원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 Holy club에서 아메리칸 인디안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 되어 미국으로 가던 배 안에서 폭풍을 만나게 되었다. 웨슬리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던 반면, 모라비안들은 놀랄 만큼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 후 웨슬리는 미국에서의 선교에 실패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모라비안과의 교제를 가지게 되는데, 그 때 모라비안의 한 집회에 참석해서 로마서 강의를 듣는 중에 회심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일기를 보면, ‘나의 마음이 이상스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서, 부흥운동에서는 “행동주의 (activism)”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책만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웨슬리같은 경우는 1년에 1000번, 즉 적어도 하루에 3번 이상씩 설교를 할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웨슬리와 휫필드가 주로 했던 사역방법은 순회전도였다. 웨슬리의 경우 말 안장 위에서 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순회전도를 다녔다. 이런 일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영국 성공회의 경우 목사들이 담당 지역의 교구를 맡아서 정착 사역을 했었지만, 웨슬리와 휫필드는 광부들을 좇아 다니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선교에 대한 강조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윌리암 케리, 허드슨 테일러, 캠브리지 세븐, 건초더미 기도회, 학생자원자 운동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들이 강조한 것 역시 회심중심, 십자가중심, 성경중심이며 상당히 활동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도 복음주의의 흐름이 존재했슴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복음주의는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이 발달하게 되고, 그에 대항해서 근본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사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미국적인 현상이었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분리주의적이고 상호 비판적인 문제점에 반대해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이 등장하게 된다. 반면 영국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복음주의를 준비해 오게 된다. 신정통주의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말하는데, 그는 정통적인 신학의 모습을 많이 회복시키기는 하지만 방법론은 성경 비판 등에 열려 있어서 신정통주의 (Neo-Orthodoxy)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미국에서는 배척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학생 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거, 마이클 그린 등이었다. 그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지적이지 못하다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육 받은 지성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복음주의의 흐름이다. 특히 마이클 그린의 경우는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었는데, 그의 전도를 받았던 사람 중에 현재 영국 복음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알리스터 맥글래스와 같은 사람이 있다. 맥글래스는 한 때 막스즘에 심취해 있던 사람이었다.


반면, 미국의 복음주의는 빌리그래함과 크리스챤 투데이, 그리고 풀러신학교로 대표된다고 하겠다. 이런 흐름 가운데, 늘 소수에 머물렀던 복음주의가 7 80년대에 이르러 기독교의 주류가 되고, 다수파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를 두고 복음주의 르네상스라고도 부른다.


20세기의 복음주의는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면, 앞으로 21세기 복음주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이제는 수적으로도 많아졌고, 훌륭한 학자도 가지게 되었으며, 재정적으로도 풍부해서 해외에 선교사도 파송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복음주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 관해 현재 복음주의권에서 크게 이슈가 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복음주의 통합?
복음주의는 계속 통합되어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작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갈 것인가?


(2) 복음주의의 성공 이후에 생기게 된 파생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Post-evangelicalism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주의를 계승하면서도 단절하는 행태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주로 복음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은 보면, 복음주의가 물량주의적이고, 대사회적으로 소극적이며,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비일관적이라는 점을 비난한다. 한편 미국의 impowered evangelical은 post-evangelical과 같은 복음주의에 대항하는 흐름은 아니지만, 비슷한 성향을 띤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Vineyard church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으로 제삼의 성령운동으로 불린다. 첫번째 성령운동은 오순절 운동으로 ‘방언은 곧 구원이며 구원 받으려면 자신에게 와야 한다’는 분리적 성향이 강했다. 두번째 성령운동인 카리스마틱 운동은 분리주의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뚜렷한 신학 없이 성령을 많이 강조했다. 그에 반해서 Vineyard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제3의 성령운동은 그 신학적 기반을 복음주의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카리스마틱에 반하는 개념으로 impowered evangelical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Vineyard church에서 impowered evangelical에 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제임스 패커가 그 서문을 썼다는 것이다.


(3) 복음주의 신학의 구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경계 밖으로 나가려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중심 지향적 접근), 다른 사람들은 복음주의의 중심을 두고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경계지향적 접근)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3. 복음주의권의 쟁점들


(1) 성경관:
“성경의 무오성 vs. 성경의 권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는 반면,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말씀을 삶의 최종권위를 더 강조한다.


(2) 성경해석의 방법론과 전제:
“성서비평을 수용하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성경해석이 최종적(final)인 것이냐 아니면 잠정적(provisional) 것이냐에 대한 논쟁도 있다. 이런 문제는 동성애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해석하는데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3) 복음전도와 사회개혁: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사회참여와 개인구원이라는 낭만적인 대립구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19 20세기에 유행했던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복음주의를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반대하는 모습으로 연상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를 더 이상 대립구조로 보지는 않는다. 당연히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는 함께 가야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 구조에 대해 지나친 논쟁을 겪어 오지 않女?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신학적 방법론과 전제들:

-  기존의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고백과 이해들에 대해 수정을 가하는 입장들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지옥관 – 다시 말해 영혼 멸절설에 대해 John Stott같은 학자는 지옥이 영원히 불타는 곳에서 영원히 형벌 받는 곳이 아닐 수 있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  또 하나의 예는 예정론이다.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하나님은 다 아신다’라는 입장에 대해, ‘하나님 스스로도 미래에 대해 열어 놓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또 하나는 신정론 –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 는 점인데, 만일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다스리시는 분 이시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의와 고통의 궁극적인 책임도 하나님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고통 받지 않으신다’는 기존에 입장에 대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자신도 고통 받으셨다’는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  토대주의(foundationalism): 사실(fact)이 있고 그에 대응해서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라면, 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포스트 모더니즘에 근거해서 복음주의적 신학을 해보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실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우리는 상징들을 가지고 말할 수 있고 가치를 창출해 내면서, 실제의 유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포스트 모던니즘에 기초해서 복음주의 신학을 해보려는 흐름들이 있다. 그들은 복음주의 좌파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4.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한국 복음주의는 이런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 제기와 고민을 스스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살펴보면, 사실 서로가 잘 알지 못해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상, 전체적인 신학적인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한국의 진보적인 기독교는 보수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990년대에 들어서 민중신학 자체가 사라졌슴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민중교회에는 신학자만 있고, 실제 민중은 존재하지 않게 된 현실이다. 또한 사회 부패에 대해 대항하던 세력들이 이제는 정부로 대거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캠퍼스의 진보운동도 거의 사그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 한국 기독교에는 사회참여를 등한시했던 보수적인 세력만이 남게 되어서, 복음 전도를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모임으로 비춰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남아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사회 참여적 혹은 대사회적인 임무에 대해 등한시하게 되다면, 한국 기독교는 사회에 무관심한 세력으로 취급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정치적으로는 우파”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는 한국사회가 청산하고자 하는 바로 그 가치라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만일 한국교회가 2 3년 내에 의미 있는 몸짓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런 청산의 흐름에 휩쓸려서 아무도 관심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는 입장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실제 한국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과 청년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의견이 실제적인 교인들이 가진 생각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이제 복음주의에 대한 많은 자원들을 모아서, 누군가는 모든 기독교가 현재 사회에서 비판 받은 바로 그 모습만은 아님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런 노력들이 건강한 복음주의권에 있는 사람들이 애써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역사와 비전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본 글은 2000년 KOSTA/USA 김경수 총무의 세미나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복음주의’, ‘학생운동’, ‘한국사회’라는 무거운 주제를 복음주의라는 연결고리 가운데 다루고자 한다.


대학의 위기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한 사회가 건강한가는 “학교”, “교회”, “법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을 돌아보면, 이 세가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학의 상황은 더욱 문제가 있는데, 그 예로 서울대의 위상이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들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의 현 상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3가지를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   대학생 스스로의 정체성 인식의 변화이다: 과거에 대학생들은 적으나마 스스로 엘리트라는 의식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에는 교육부에서 평생교육이라는 기치 하에 대학교육을 보편화 시키고자 했던 정책이 있었다고 하겠다.
-   대학 문화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이념이 대학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현재 대학은 스스로 상업화하고 있고, 경쟁 중심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   이단 단체와 민족 종교의 침투이다: 과거 대학 신입생들 중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일 종교를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가지기를 원하는가?’는 설문 조사를 하면, 기독교와 천주교가 다수를 이루었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를 보면 민족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했슴을 알 수 있고, 더욱이 대학 내 기독교는 이단들에 의해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세가지가 한국 대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학생운동’하면 주로 정치적인 데모를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학생운동’은 정치적 운동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첫째, 학생운동은 주체가 학생 스스로이어야 하며, 또한 그 대상도 학생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학생운동은 정치, 문화, 종교의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 대학의 경우에는 정치적 학생운동은 더할 나위없이 활발했고, 문화 학생운동도 한 때 ‘탈춤반’이나 ‘샹송반’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그리고 종교적 학생운동은 CCC, IVF, YWAM과 같은 선교단체로 대표되어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세가지 형태의 학생운동은 90년대 들어 상호의 영역을 넘나 들면서, 그 특징을 구분 짓기 어려워졌다. 그 예로 ‘기독 총학’을 들 수 있는데, ‘기독 총학’이란 각 대학의 기독 연합회에서 총학생회장의 후보를 배출함으로써 정치적인 영역에 참여하려는 시도이다. 비록 이런 시도는 성공 사례와 더불어 많은 비난도 받으므로, 시도 자체에 대해 회의을 남기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학생운동’이란 ‘학생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운동’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의문이 떠오르는데, ‘현재의 간사중심의 선교 단체들은 간사들이 주로 최종 결정권이 가지지 않는가?’하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선교 단체들의 운동을 학생운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간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간사운동 혹은 조직운동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영국 옥스포드 신학부 교수인 Alister McGrath가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복음주의의 특징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다음 여섯 가지에 우선점을 두는 특징을 지닌다.
-   성경의 절대권위
-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   성령의 주권
-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   복음전도의 우선성
-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복음주의란 어떤 하나의 교파나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특정한 믿음의 관점’이라 하겠다. 그 예로 천주교나 자유주의 신학 가운데서도 복음주의자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주의에 대한 용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evangelism은 ‘복음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 그리고 evangelicalism을 ‘복음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evangelicalism이라 불리는 ‘복음주의’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화’와는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복음주의의 역사
복음주의의 역사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제 1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지 뮬러가 다녔던 학교가 할레 대학이라는 곳인데, 이 학교는 프랑케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할레 대학을 다녔던 사람 중에 진센도르프 백작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겨자씨 모임을 통해 선교사들이 파송되었고, 그 겨자씨 모임으로 모라비안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에 많이 행해지는 선교방식이 ‘전문인 선교’인데,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벌써 자신의 전문 직업을 가지고 선교지로 나가는 전문인 선교를 행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학생운동의 역사는 영국이다. 영국의 학생운동에서 요한 웨슬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감리교를 웨슬레가 창립한 것은 아니고, 후에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실 영국의 학생운동을 살펴 볼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챨스 시므온(1759 1836)이다. 이 분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나 강해 설교의 방법을 처음 사용했다는 점이다. 챨스 시므온은 대학 졸업 후에 약 30년을 대학에 남아 교목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후, 영국에는 캠브리지 세븐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885년에 캠브리지 대학에서 7명의 선교사가 배로 한 달이 넘은 거리인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일곱명의 선교자 중에 CT 스터드(Stude)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터드는 당대 크로켓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스포츠 스타였기에 영국 전체가 그들의 선교사 파송을 크게 다룰 수 밖에 없었다. 캠브리지 세븐의 배경을 살펴보면, D L 무디 (Moody)가 있었다. 1882년에 캠브리지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일주일간 열렸는데, 별 반응이 없던 집회는 마지막 날 열기가 오르게 되었고, 무디가 초청을 하였다. 그 날 D L 무디의 집회에 캠브리지 학부 학생의 약 절반이 참석했고, 그 중에서 200명 이상이 회심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C T 스터드가 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캠브리지 세븐이 파송된 이후 1886년 마운트 헐몬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열렸었다. 그 집회에 89대학에서 251명이 참석을 하는데, 그 중에 100명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사실 이 무디의 집회는 로버트 와일러가 총무로써 주관을 하게 되는데, 와일러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1945년까지 각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로 초청하는 일을 하게 된다. 1886년부터 1945년까지 대학생 중에서 무려 20500명이 해외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이 기간은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시기이고,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바로 이 20500명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1886년부터 약 2년간 와일러가 방문한 대학은 약 162개에 이르는데, 그 방문 기간 중에 챨스 스터드가 선교보고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스터드가 방문한 학교는 코넬(Cornell) 대학이었는데, 그 집회 가운데 존 모트 (John R. Mott)가 있었다. 존 모트는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존 모트는 SVM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단체가 아이러니 하게도 WCC이다. 존 모트가 1895년 WSCF (국제 기독학생회)를 창설하는데, 그 후 1990년도 초 WSCF와 현재의 복음주의 계열이 분열을 겪게 된다. 그 분열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의 하나가 자유주의의 침투였다. 존 모트는 감리교 평신도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학생 집회를 열어, 선교사를 헌신케 하는 탁월한 mission mobilizer였다. 존 모트의 집회는 일본에서도 열렸었는데, 그 집회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 사람이 윤치호였고, 그 집회의 영향이 한국에도 미치게 된다. 1945년에 SVM은 막을 내리지만, 곧 이어 1946년에 Urbana 대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 얼바나 집회를 모방해서 한국에서 열린 집회가 다름 아닌 ‘선교한국’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적인 학생운동은 ‘선교’와 관계하면서 진행되어 왔슴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제 1세계의 학생운동의 특징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전통 복음주의 신앙을 대학 안에서 발견하고 계승시켰다.
-  세계 선교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  성경공부와 기도운동이었다.
-  사회 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요한 웨슬러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지 뮬러보다 고아원을 더 많이 설립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제 3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나게 된다. 일본의 경우는 개화가 일찍 되는 까닭에 다소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에서 윌리암 클락의 영향으로 1878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우찌무라 간조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로는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 전에 북경대학의 IVF에 소속된 학생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활발했다. 다시 말해,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접목되고 이식되었다는 측면이 강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크게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5년 이전, 해방 이후, 그리고 1980년 이후가 바로 그것이다. 해방 전에는 Y운동으로 불리는 YMCA가 주도를 했고, 해방 이후에는 초교파 선교 단체들이 주도를 하게 된다. 1980년 이후에는 초교파로써 연합하고 협력하는 운동들이 많이 생겼다. 코스타도 그런 흐름 중의 하나라 하겠다. 한국 YMCA의 간사 1호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상재 선생이 60세에 YMCA의 평간사로 일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세대 운동은 민족적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2세대의 초교파 단체의 운동은 성경공부와 해외선교에 중요한 영향이 미쳐왔다. 3세대 학생운동은 네트웍 운동으로 연합과 협력을 이루어 오고 있다. 코스타도 그 예라 하겠다.


제 2세대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2가지 면에서 평가해 보자. 긍정적인 면은 경건생활, 복음 전도, 제자 훈련을 강조하고, 방법론 강조했으며, 조직 의식화된 기독교 지성을 배출하게 된다. 문서운동이 활발하였으며,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또한 선교의 붐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면은 서구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섹트화되었다 점이다. 신앙적으로도 너무 편향적이다. 즉 다소 근본주의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또한 약하거나 왜곡된 교회관을 가지고 있고, 미흡한 상황 문화 변형력이 적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정리해 보면, 해방 이전에는 김교신 이상재 선생같은 분에 의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고, 해방 이후 유신 정권까지에는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은 공명선거 위원회와 같은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전도하는 운동
-  제자를 양육하는 운동
-  기도를 강조하는 운동
-  성경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운동
-  철저한 성경연구 운동
-  효과적인 그리스도 학자들을 배출하는 운동
-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운동
-  선교하는 운동
-  생활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  창조적인 기독교 사상 문서운동
-  학생의 책임에 위탁하는 학생의 운동
-  민족적 지도력에 위탁하는 운동


위에 열거한 12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학생운동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새 시대의 복음주의
그렇다면, 새 시대에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그 첫째는 ‘선교’에 대한 역할이다.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선교는 상당히 활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합 운동이다. 존 모트의 경우도 학생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트웍킹하고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를 살펴보면, 1996년도 ‘복음 민족 역사’ 집회를 위해 작곡된 고형원씨의 ‘부흥’이란 곡이 기존 교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997년에는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했고, 한달 만에 3억 5천만원이 모이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일반 국민에게까지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이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기존의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한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 되어야 하겠다.


만일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느 곳을 다니실까? 아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은 역사에서 거름과 같아서 눈에 띠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뿌려진 씨가 결실을 맺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캠퍼스에 관심을 가지고 씨를 뿌리라고 도전하고 싶다.

[조근상] 참된 예배에 이르게 하는 찬양의 능력

이코스타 2005년 2월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 이 본질에 관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음악이 예배가 아니고 예배는 음악만이 아니다. 예배 때 음악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이는 단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만약 여러분의 성가대가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 하지만 기도한 번 하지 않고 올라선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에 관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열납하는 찬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예 배는 관계이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 원하는 한 가지는 그 분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의 우리를 창조하신 이사야서의 근본적인 뜻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어떤 기술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예배와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람에게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보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개인의 예배이다. 혼자 있을 때, 진정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혼자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는가? 우리가 만약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생활화된다면 여러분의 찬양은 능력이 생길 것이다. 찬양을 아직도 노래하는 것이나, 그 외의 몸동작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찬양이 가지고 있는 파워풀 한 것을 1퍼센트도 알고 있지 않는 것이다. 찬양은 중보의 기도 외에도 영적 전쟁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영적전쟁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찬양을 드릴 때 온전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믿음의 발걸음이 한 단계 도약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무기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원하시고 그 믿음이 밖으로 드러나길 원하신다. 능력이 있는 찬양은 믿음의 무기가 되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강원도에 있는 홍천에서 예수제자 훈련학교를 인도하고 있을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 40여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DTS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을 때, 내적 치유 에 관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의 분위기는 너무나 거룩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해서 한 사람씩, 자기가 지은 죄들을 고백하고 있을 때였다. 모임도중 갑자기 한 형제가 뒤로 자빠지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형제는 성공회 신학교에 다니던 형제였는데, 훈련을 받는 동안 행동이 좋지 않아서 간사들 사이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늘 자매들을 터치하면서 접근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통했었다. 그런데 이 형제가 내적 치유 프로그램 도중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면서 다른 사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즉 형제 안에 귀신이 들렸던 것이었다. 같이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을 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오히려 너희들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 형제의 입을 통해 귀신은 우리를 조롱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찬양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즉시 기타를 잡고 ‘예수 우리 왕이여’ 라는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함께 한 학생들이 같이 찬양을 부르는 즉시 형제 안에 있던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 버렸다. 내가 그때 느꼈었던 찬양의 능력?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 함께 한 모든 학생들은 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때 나는 인도자이기 때문에 인도를 한 것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을 한 결과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찬양 소리를 통해 주님께서 사단의 권세와 싸울 힘을 주신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 능력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4장의 비밀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를 전파하는 예배자가 된 것이다. 예배를 장소라는 한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 속의 예배가 늘 이루어질 때 찬양은 능력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생각을 해 보라. 매일 운동하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 나와서 운동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건강한가를. 여러분의 찬양에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나의 생활가운데 드리는 예배의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를 체크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앞에 경건한 시간을 갖도록 하라.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은 우리의 연약함보다 강하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여러분안에 진정한 찬양의 능력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