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2

옛날에 중국의 황제가 한 아름다운 새를 보고 그것을 그려서 갖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수 많은 화가들을 시켜서 그림을 그리게 하였으나 그 어떤 화가도 그 아름다운 새를 그림으로 옮겨 놓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어떤 위대한 화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불러서 그 새를 그리도록 하였다. 그 화가는 황제에게 일년의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일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황제는 기대를 가지고 그 새의 그림을 보러 갔다. 그런데 황제가 가보니 그 화가는 아직 그림을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황제가 분노하여 어찌된 일이냐고 호통을 치니까 그 화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황제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10분 만에 그 새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정말로 위대한 것이었다. 황제는 더욱 화가 났다. 그렇게 쉽게 그릴 수 있으면서 왜 1년이나 나를 기다리게 했느냐고 하였다.


그 때에 그 화가는 황제에게 “잠시 저를 따라오시죠”하면서 황제를 모시고 한 창고로 갔다. 그 문을 열자 그 창고 안에서는 수많은 그림 종이조각이 나왔다. “이것이 제가 일년동안 한 일입니다” 라면서 종이 조각들을 보여주는데 그것들은 화가가 그 한 새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하여 새의 부분 부분들을 습작한 종이들이었다. 새의 발톱, 새의 날개, 새의 부리, 새의 눈 하나 하나를 철저히 일 년 동안 연습한 것이다. 그런 오랜 시간의 준비를 걸쳐서 그는 황제 앞에서 그 새의 그림을 10분만에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분야의 대가들을 보면 그 결과만을 부러워하지 그들이 대가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땀들과 훈련을 보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분야이던지 자기의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우리가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살기 위해서 첫째는 인격이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력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몸이 아파서 생명을 좌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인격이 좋지만 실력은 없는 의사와 인격은 훌륭하지 않지만 실력이 있는 의사 중에 어떤 의사에게 치료를 받겠는가? 인격이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의사에게서 전문적인 의술에 있어서의 실력을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의 몸을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던지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 정신을 가지고 기술을 닦고 연마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세상의 일을 논할 때는 실력을 강조하면서도 영적인 일들을 말할 때에는 실력을 상대적으로 과소 평가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인격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실력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적인 분야에서도 우리는 실력이 필요하다.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교육가는 교육가로서 행정가는 행정가로서 철저한 전문성과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도 자기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바른 인격을 먼저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인격이 실력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면 사회 속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인정 받기 보다 아직 미성숙한 세상을 모르는 단순한 이상주의자로만 여기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필요한 실력과 기술들을 갖추기 위하여 남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교육가로서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는 모르지만 사람을 가르치는 분야에서는 철저한 실력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학위 공부를 할 때에 지도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교수법에 관하여 멘터를 해주셨다. 자신이 끊임없이 효과적인 교수법을 위하여 노력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효과적인 교수법을 전수해 주시는 분이셨다. 그러면서 우리 제자들에게 늘 “가르침의 장인(Master Teacher)이 되라”고 도전하셨다. 물론 지금의 나는 가르침의 장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마치 앞의 이야기 속의 화가가 새의 부분 부분을 그리는 습작을 하듯이 나도 가르침의 사역에 임하고 있다.


우리가 좋은 실력과 기술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정말로 필요한 기술이 그러면서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또 자신의 은사에 맞는 기술을 찾아야 하며 그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일생에 걸쳐서 배우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효과적인 배움을 위하여 좋은 자료와 책을 만나야 하고 동시에 좋은 모델이 되는 스승을 찾아야 한다. 좋은 스승과 책은 우리의 배움의 시간을 훨씬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는 어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전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패를 과정으로 여기고 전진해 나아갈 때에 남이 아직 이루지 못한 경지에까지 실력과 전문성을 개발해 갈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칼을 안전하게 가지고 다니기 위하여 칼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칼집에 담겨진 칼의 날이 날카로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격이라는 칼집이 필요하지만 그 칼집에 넣어진 칼의 날이 날카롭게 다듬어져야 즉 실력과 기술이 있어야 우리에게 맡겨진 과업들을 잘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의 칼은 무엇인가? 그 칼이 얼마나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는가?

[김재석] 유학기간: 선교적 사명을 준비하는 기간

이코스타 2005년 4월호

유학기간: 선교적 사명을 준비하는 기간
– 몽골국제대학에서의 강의를 준비하면서

지난번 글에서 나는 유학 기간 동안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중요함을 언급하였고, 특히 이것이 차후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게 되는 귀한 준비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문화적, 직업적 사명과 더불어 일생 동안 선교적 사명에 대해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은 부활후 승천하시기 전에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을 통해, 바른 소명 인식을 깨달은 주님의 제자들은 온 민족에게 나아가 그들을 새로이 제자 삼는 사역에 동참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동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소명임을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후, 신앙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선교에 대한 사명을 깊이있게 깨닫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하였었다. 그때 우리를 지도하시던 옥한흠 강도사(지금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께서 “앞으로는 선교사라는 신분보다 평신도로서 자신의 직업을 통해 선교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또 선교에 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해 주셨다. 이 조언으로 인해, 나는 평신도 특히 나의 은사로 여기던 가르침의 직업을 통해 이 사회도 섬기고, 또 기회가 되면 선교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유학 생활을 하는 중에 섬기던 교회에서 선교의 중요성을 역설 함으로서 교회가 해외 선교를 지원하게 하였고, 이때 성경번역 선교회 (위크리프 선교회) 소속 선교사를 한 가정 지원하게 되었다. 지원 선교사와 소식지를 주고 받으며 선교 현장의 어려움과 더불어 오랜 준비의 기간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귀국하여 섬기던 교회에서도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목사님과 함께 선교사 지원사역(재정적 및 기도의 후원)에 열심히 동참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또한 옛적 직장 동료가 선교사로 나가게 되어 개인 후원자로 자청하여 섬기고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 가졌던 결심처럼 내 자신이 선교지에서 얼마간이나마 직접 섬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1년전, 학교로 부임한 후 처음 갖는 연구년(안식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선교적 사명에 동참할 기회를 찾던 중, 한국 교회들이 몽골에 선교적 차원에서 대학을 세우고 여기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 요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 단기적 기간밖에 되지 않지만, 해당 학교들(몽골 국제대학과 후레 정보통신 대학)에서는 너무나 반기는 상황이다. 이제 4월 한 달 동안 주당 15시간 이상을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서 학생들에게 비젼을 심어주고, 또한 저녁시간에는 영어 성경 공부반을 통해 몇 명이라도 가난한 심령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유학생들이 차후에 이러한 상황을 위해 준비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로, 유학중에 섬기는 미주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들리게 되는데, 이런 기회를 선교지의 현장 상황을 좀 더 상세히 접하는 기회로 삼아보도록 권하고 싶다. 선교가 단순히 열정과 기도로 준비하는 것 외에 선교지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기간이 필요하고, 유학기간은 이것을 위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나도 이 기간 중에 태국 선교사님, 성경번역 선교사님, 인도네시아 선교사님,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님 등 여러 곳의 선교적 상황을 많이 듣고, 실제적 환경에 대한 좋은 이해의 기간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에 대해 막연한 형태의 상상적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를 보면서, 실제 사람들의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형태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둘째로, 유학 기간은 나의 직업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영어로 복음도 전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라 생각한다. 사실 내 자신은 이 면에서 부족함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유학을 마치고 뉴욕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 한국 대학생 CCC 모임에 특강 세미나로 몇번 초청을 받았었다. 그런데, 한국말이 편한 유학생 중심모임에서 신앙 특강을 하면 나름대로 상당한(?) 반응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5세 대학생들을 위해 영어로 특강을 해달라고 해서 오래고 힘든 준비과정을 거쳐 전했지만, 전하는 나도 언어적인 제약으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함을 느꼈고, 듣는 학생들에게도 별 감흥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이 부분에서 준비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지난 년도에는 학교가 학부 강의를 영어로 가르치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기회에 용기를 내서 영어 강의를 진행하였다. 이는 이번에 몽골에 가서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 좋은 준비의 시간이 된 것이다. 또한 저녁시간에는 영어 성경공부 그룹을 만들어 복음을 위해 준비된 자들을 만나 마음 문을 열어주고자 하는데,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자세로 영어로 전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셋째, 유학 생활중에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조리있게 전하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전도 훈련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보면, 교회생활을 오래했거나 훈련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도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 준비되지 못한 측면으로 인해 오히려 복음에 거부감만 심어주는 경우가 꽤나 많다. 복음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싸구려 물건 팔듯이 전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각 사람의 상황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담대함이란 명목하에 거부감만 전달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마10:16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의 핵심을 전하되, 뱀이 하와에게 접근하는 방식처럼 지혜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지혜롭고 조리있게 잘 준비하여 증거하여야 함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선교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선교를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나 사명으로 여기는데, 이것만으로 선교를 하기보다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나를 선교의 현장으로 이끌어 가야 지속적이고 쇠하지 않는 선교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가 마침 고난 주간이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시 새겨보는 귀한 기회인데, 내 마음도 이전 같지 못함이 부끄러워진다. 유학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리가 경험했던 주님과의 첫 사랑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이 감격이 선교의 터를 준비하는데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좌담회 “기독 유학생의 어제와 오늘”: 박상춘, 유남호, 손호준

이코스타 2005년 4월호

eKOSTA: 안녕하세요? 자신의 소개를 간략히 해 주시겠습니까?


박상춘: 저는 유학생으로 18년 전에 미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주님을 영접했고,유학생으로써 캠퍼스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미시간 앤아버에서 교회안의 유학생을 섬겼고, 지금은 미시간 티트로이트 트로이 연합 감리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지난 5년 동안 섬겨왔습니다.


유남호: 저는 미국에 온지 9년 정도 되었고요, 약 8년간 Korean Bible Studies라는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에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 모임의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살고 있고, 버지니아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습니다.


손호준: 저는 미국에는 2000년에 왔고, 처음에는 Texas지역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2002년부터 자체적으로 저와 비슷한 처지인 대학원 유학생 캠퍼스 성경공부를 시작해서 섬겨왔고, 2003년 코스타를 계기로 Korean Bible Studies 라는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어서, 현재 Virginia에서 학부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캠퍼스 성경공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첫번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어떤 유학생들이 오고 있나요? 어떤 면이 변화되었나요?


박상춘: 제가 13년 전에 앤아버에서 섬길 때는, 그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환경 속에 있었고 갓 결혼해서 아직은 자녀가 없는 대학원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인것같고, 유학생신분으로 공부에 대한 부담과 문화적인 차이로 오는 갈등들로 인해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잘 설정하지 못하는 어려움들이 적지않은 듯합니다.


유남호: 전체적으로 볼 때, 유학을 나오는 학생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학부로 유학을 나오는 비율이 높아지는 건 사실인 것 같고요. 예전에 비해서는 공부 이외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회사 및 정부나 연구기관에서 재정 지원을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그 비율이 많이 준 것 같습니다.


손호준: 저도 동감인데요, IMF사태 이전에 많았던 유학생 수가 IMF이후로 해서 급격히 감소했다가,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어학연수를 나오는 학생의 수가 줄어들고, 그 인원이 정규 유학으로 돌아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부와 동부를 비교해 보면,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중부 지역에는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많이 오는 반면에, 동부 지역에는 학부 유학,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면 양극화 현상이 또한 두드러진다는 느낌입니다.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유학생들의 삶이 나름의 고민거리들을 안고서 치열하고 피곤하고 갈등이 있는 것은 예전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eKOSTA: 말씀을 종합해 보면, 유학생의 연령도 낮아지고, 학부 유학이 늘고, 유학생들의 경제 상황도 좋아졌고, 또 유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씀인데, 그렇다면 유학 자체가 예전과 같이 엘리트들의 특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졌다는 말씀인가요?


박상춘: 예. 제 생각에도 유학생들이 많이 평준화된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 중에 60 70%정도는 공부에 대한 중압감를 심하고 받고 있으니까요. 또한 문화에 적응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제는 유학을 나오는 학생들이 한국에서 하던 학업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나온다기 보다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라던가 아니면 유학을 계기로 다른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는 않은듯 싶습니다. 그래서 학업으로 인한 어려움과 진학문제로 인하여 다른 학교로 옮겨가게 되고, 전공을 바꾸게되므로 유학기간이 지체되면서 911 이후 더 까다로와진 비자Status 에 문제가 되고, 그로 인해 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국에 남기도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남호: 학문적 성취를 위해 유학을 나오는 사람은 아직 꾸준히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부 자체의 목적보다는 미국에 정착을 목적으로 유학을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생각되고요. 미국에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온다기 보다는, 한국에서 부딪힌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하는 돌파구로써 유학을 택하는 경우에는, 전공에 대한 갈등, 경제적 상황에 대한 갈등, 언어에 대한 갈등들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학부 유학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한 것으로 보이고요.


손호준: 학부 유학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때 조기 유학을 나오는 경우도 꽤 많아 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문화적인 갈등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나름대로의 자신들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면서 이미 정착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전통적 유학생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디아스포라’가 이미 형성되고 있다고 할까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와 대응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eKOSTA: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비해 최근의 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특히 신앙적인 고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박상춘: 사실 유학생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제권을 교회 밖 캠퍼스에서 흔히 형성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교회 밖의 society가 교회 안으로 들어 오는 형국을 띠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역교회들은 그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상태인것 같구요.또한 제자양육의 훈련이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보니, 교회 안에서 그들이 형성한 문화는 친교 중심의 문화가 될 수 밖에 없고, activity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호준: 학부생들같은 경우는 문화적 충격에 의한 정체성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진로에 대해 너무 일찍부터 고민하지만, 복음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도전도 부족하고, 다른 부분들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경향기에, 그에 대한 분명한 대안도 찾지 못하는 상황인거죠. 그 원인을 보자면, 이미 그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던 선배들이 role model이 되어 주고 함께 고민하고 했어야 하는데, 그런 선배를 찾기가 쉽지 않고, 있다 해도 그들과의 교류가 너무 적다는데 있습니다.
또 대학원생이 가지는 문제는 세가지의 유형이 있는 듯 합니다. 한국에서 훈련을 받고 제자로서의 삶에 관심이 있던 유학생의 경우는, 유학 생활을 선교의 사명지로 바라보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학문과 신앙의 분리를 경험하면서 갈등하고 있는 것 같고요. 또 한 부류는 유학생활을 인생에 있어 잠시 지나가는 중간 단계로만 여기고, 빨리 학위를 마치고 목표만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아주 신앙 생활에 관심이 없거나요. 물론 유학 생활을 통해 처음으로 복음을 접하고 거듭나는 비율 역시 상당히 높은 거 같습니다.


유남호: 동의합니다. 대학원 유학생들의 경우는 유학 생활 자체가 너무 자기 중심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특히 기혼자들의 경우는 자신의 공부와 가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교회나 소그룹 공동체에 자신을 노출시키기를 많이 꺼려하는 듯 하고요. 이런 문제는 가정 중심의 생활을 강조하는 전반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더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네요.


eKOSTA: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학생들의 현재 교회 생활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나요?


박상춘: 우선 이민교회가 유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학생들은 우선 유동성이 강하고 localized된 층이기 때문에, 지역교회에서 이들이 교회의 주류에 들어가기는 용이치 못한 형편입니다. 대학원생들 같은 경우는 가정이 있고, 또 나이도 비슷해서 지역교회의 멤버로 적응하기가 그래도 쉬운 반면, 학부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교제권을 교회에 요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교회를 쉽게 떠나기도 합니다. 더구나 신앙의 기초가 연약한 학부 유학생들을 지역교회에서는 봉사와 교회활동에 참가함으로 때로는 그 일들로 말미암아 실족되고 교회의 모는 일들이 그들에겐 노동으로 느껴지므로 결국 그들이 지역교회에서 멀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손호준: 저도 동의합니다. 지역교회는 유학생들은 봉사와 섬김을 위한 가용자원 정도로 간주하는 듯 싶습니다. 예들들면, 성가대원이라던지 주일학교 교사, 교회의 각종 행사, 그리고 더 나가서는 단기선교를 나갈 수 있는 인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섬김이 왜 의미가 있는지 깨닫는 양육이 먼저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 나름대로 교회 공동체 내에서 독특한 소그룹을 형성하지만, 분명한 목적과 훈련 대신, 그 모임의 성격이 친교 위주가 되어버리게 되는거죠. 그러니, 이 곳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같은 경우는 그들이 갈증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 적절히 공급받지 못하는 현실인 거 같습니다.


유남호: 제가 바라보는 최근에 중대형교회를 보면, 각 지역 교회를 넘어서서 학생들 간의 연합 모임을 갖으려는 노력이 꽤 있습니다. 그 모임들은 보통 찬양집회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다 보니 그 모임이 일시적인 자극제 역할은 하지만, 지속적인 영향력은 많이 결여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에서 양육을 받는다고 해도, 교육내용이 교회에서 짜 놓은 프로그램을 따르게 되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유학생 중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양육을 한다기 보다는 서로 다소 피상적인 sharing 중심에 머무는 약한 모습을 많이 띠고 있다는 거죠.


박상춘: 제가 보기에는, 각 교회들이 연합을 시도하지만, 사실 연합이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역교회 자체가 청년을 바라보는 눈이 청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해가 아직도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훈련받고 깨어있는 평신도 리더가 청년사역에 헌신하고 애쓴다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훈련된 평신도 사역을 통해 성장한 사람이 교회에서 성장하며 지역교회의 리더쉽과 함께 적극적으로 청년사역에 동참해야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학생들이 중심이 된 모임을 형성하고, 그 문화가 지역교회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교회 내에서 제자 훈련을 하게 한다던가, 학교로 reach-out하는 것들이 있겠죠.


eKOSTA: 그럼 그런 유학생들을 위한 평신도 사역이 교회 밖에서 이루어져서 교회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박상춘: 그것이 교회 밖이건 교회 안이건 별 상관은 없습니다. 사실 20년 전에 제가 유학을 나왔을 때만해도 캠퍼스 내에 자발적인 모임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유학생들 중에 선교단체 출신들이 많이 있거나, 캠퍼스 복음화에 관심 있던 분들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eKOSTA: 그런데 그런 모임이 왜 사라지게 되었나요?


박상춘: 제 생각엔, 유학생들 중에 훈련을 받고 나온 사람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제 주위를 보더라도, 현재 유학을 나오는 교회 참석 인원 중에 약 30%만이 기본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수준이니까요.


손호준: 평신도 리더와 지역교회 리더십들 간에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공유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유남호: 훈련받은 유학생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 점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많은 유학생들이 자신이 있는 학업의 현장인 캠퍼스와 부름받은 자로서의 선교적 삶을 무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학업은 학업이고, 선교는 자신의 공부를 마치고 어딘가로 멀리 떠나야 한다던가, 혹은 힘든 지역에 단기선교라도 나갔다 와야 하는 걸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죠.


eKOSTA: 그렇다면, 학업과 선교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문제가 20년 전에 비해서 지금이 더 심해졌다는 말씀인가요?


유남호: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캠퍼스로 reach-out하지 않고, 학업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지 않는 문제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원인을 한국에서 90년 후반부터 불었던 해외 선교 열풍의 왜곡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이런 면은 선교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찬양 사역 중심이 되면 미국 이민교회의 젊은층 도 그 영향을 쉽게 받게 되는 등 여러 면에서 나타나겠죠.


박상춘: 최근들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주의적인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개인주의의 문제는 크리스찬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상식적인 차원에도 심각한 정도입니다. 이런 개인주인는 전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지나친 이기주의로 나타나서 공동체성을 상당히 약화시키게 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 전체적인 문화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유남호: 예전에는 시대적 상황중에서 이데올로기나 실존같은 문제를 고민하던 세대가 유학을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들이 사라지고 보다 개인 중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단순화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때,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고민 없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실제로 의지적인 신앙의 모습을 약화시키고, 감정적인 신앙을 선호하게 된다는 점도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eKOSTA: 최근 유학생들은 졸업 후에 어떤 진로를 택하고 있나요?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는지요?


손호준: 주위를 둘러보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들은 점점 줄어들고, 세계화하고 다양화하는 추세에 발맞추어서 가능하면 미국에 남기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유학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하는 사람의 비율도 비록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숫자라는 점입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던 미국에 정착하게 되는 사람이던 간에, 졸업 후 각자의 자리에서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섬기며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유학생들 중에 졸업 후엔 ‘이제 누려보자’는 생각이 다수가 된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매일 내가 머무는 현장이 곧 선교지라는 선교적 인식 아래에, 그에 합당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구체적인 훈련들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박상춘: 대부분의 경우, 훈련이 잘되고 신앙이 바로 서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던 진로를 바르게 선택하는 반면, 신앙이 바로 서 있지 못하면 그 갈등이 훨씬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학 나와 있는 사람들을 바른 신앙으로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거죠. 우리는 방황하는 그들은 빨리 제자로서의 삶으로 인도해야만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미국에 정착할 수도 없고, 또 그 상황 속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없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경우가 꽤 발생하게 되니까요.


유남호: 제가 알기로는 유학을 나와있는 외국인 숫자로 한국이 인도 중국에 이어 3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2003년 말 통계로 본다면, 미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유학생의 증가와 더불어 미국에 그냥 정착하고자 하는 인원도 더 많아진 것 같고요. 911 사태 이후에 IT산업의 쇠퇴과 맞물려 미국에 잔류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가, 최근에 다시 늘어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슈는 유학생들이 졸업 후에, 한국에 돌아가든, 미국에 남아 있든지 간에,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직분을 잘 감당하느냐겠고, 그 일을 위해 학업의 현장에 있을 때 많은 신앙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eKOSTA: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유학생들이 English ministry나 international ministry에 참여하는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보시는지요?


박상춘: 사실 학부 유학생같은 경우는 이민 1세대 예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이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이민교회의 ‘낀 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떤 교회의 경우는 열린예배같은 형식으로 청년들을 위한 예배를 제공하는데, 그런 경우만 해도 많이 오픈되었다고 해야 하고, 사실 학부 유학생들이 설 예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부 유학생들은 소그룹 모임은 한국어권을 나오지만, 예배는 영어예배로 가는 비율이 60%는 된다고 봐야 하니까요.


손호준: 전도사님의 말씀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하나의 대안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된 ‘모델’을 말씀에 근거하여 제시하고, 공동체의 한 일원 중에 대학원 유학생이나 학부 Senior 급의 훈련된 지체들이 멘토링을 통해 믿음의 선배로서의 역할을 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재생산과 양육 이라고 할까요.


eKOSTA: 미국의 각 대형교회들이 조직 내에 한국어 community를 구성하고 나름대로의 모임을 가지도록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참석하는 유학생들도 많지 않은지요?


박상춘: 그런 한국어 소모임을 지원하는 교회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 교회에서도 역시 유학생들이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남호: 한국 지역교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경우에 미국교회에서 잘 적응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 늘 주변을 맴돌게 되겠죠. 그뿐 아니라, 유학생들에게는 한국 지역교회내에 KM이 아닌 EM에 적응하는 것 역시 잠깐 주일 예배만 참석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소그룹 공동체에 소속해서 잘 적응하며 양육받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eKOSTA: 오랜시간 좌담회에 임해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KOSTA/USA가 20주년을 맞아, 앞으로 20년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유학생들의 실태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근상]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이코스타 2005년 4월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 성경을 자세히 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친밀함(intimacy)이란 단어는 내가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친해질 때 서로의 눈만 봐도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과 친밀함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예배와 찬양 사역팀안에도 같이 오래 사역을 하다 보면 서로의 얼굴을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친밀함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시계를 좋아한다. 손목시계든 벽걸이 시계든 어딜 가든지 시계를 보면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 없다. 교회에 처음 부임해서 사무실 물품을 사러 갈 때도 시계를 제일 먼저 살 정도로 나는 시계를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시계가 좋다. 하여간 그래서 우리 집에는 쓰지 않는 시계가 몇 개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내에게 선물을 한 것들이다. 생일선물이다, 결혼기념일이다 해서 선물을 한 것들인데, 하지만 문제는 나의 아내는 시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한 다음, 처음으로 아내의 생일이었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시계를 사 가지고 집에 갔었을 때 아내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아내는 시계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것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아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사 주어야 한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면 우리 안에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동적으로 가져오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 축복을 구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예배란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배하면서 우리는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많이 들어 온 ‘프로스퀘네오’라는 예배를 뜻하는 단어는 ‘키스하다, 입을 맞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이 입맞춤을 해보셔서 아시지만, 입맞춤을 한다는 것을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가끔 딸에게 입맞춤을 할 때 나는 딸에게 얼굴을 보면서 하지만 딸은 딴 짓을 하고 입맞춤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얼굴은 다른 것을 보고 입맞춤을 하면 제대로 입맞춤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방문해서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대충 함께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분은 우리와 보내는 그 시간을 정말 귀하게 여기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께 사로잡힌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광적인 종교집단의 예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만을 묵상하며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심령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바로 무엇보다도 우리들 안의 생각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리의 계획, 필요, 행동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


세 번째로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 ‘예배’라는 단어에는 내가 존경하는 대상에게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다, 그 가치를 인정하다, 무릎을 끊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배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러 온다면 그것은 잘못된 동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한가?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의 참된 의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은 그저 좋은 예배, 좋은 찬양, 좋은 설교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예배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강조하는 것은 예배드리는 방법보다 예배드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차문희] 장애 사역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지난 3월 26일과 27일에는 조이 장애 선교 센터 (Joy Center)가 주관하고 남가주 사랑의 교회가 주최한 장애 사역 컨펀스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이 센터 (Joy center)는 장애 전문 연구 기관으로 매주 토요 학교를 운영하고 장애인과 가족을 돕고 사회 계몽 사역을 비롯해서 장애 선교 사역 및 사역자 양성, 장애 사역을 위한 전략 계발을 위한 연구 사역을 하고 있다. 해마다 조이센터에서는 컨퍼런스를 주관해서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주고 전문 지식을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는데 올해로 4번째 컨퍼런스를 주관하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장애인들을 위한 예배 어떻게 진행 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주제 강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택식 세미나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랑의 교회 사랑부의 예배와 분반공부를 참관하여 실질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예년과 달리 타주에서도 많은 참석자들이 눈에 뜨이게 있었고 강사진들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있어서 미국내의 장애 사역 실태와 현황을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들은 장애 사역의 문제점과 실태, 효과적인 예배 인도 및 성경 공부를 비롯한 올바른 장애 사역의 준비 과정과 운영에 대해 다양한 전문 지식들을 얻고 사역의 비전과 도전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다루어 졌던 장애 사역 관련 이슈들을 몇 차례에 걸쳐서 이코스타 독자들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오늘은 장애 사역의 문제점과 실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 장애 사역의 문제점을 말하기전에 우선 과연 우리에게 왜 이 사역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통계 자료에 의하면 14% 미만의 장애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10%미만의 미국 교회들만이 통합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 가족의 80%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거나 타종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장애를 가진 이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그 분의 계획안에서 창조 되었고 이들도 다른 사람들만큼 상하고 회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디 그를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 부터 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경은 각 사람을 편애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 샛째, 교회는 가난한 자, 궁핍한 자 , 빈궁한 자 그리고 상한 자를 돌보아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장애인들이 교회로부터 소외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장애인들과 가족들을 받아 드리는 교회의 분위기가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남들보다 예민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상처가 많다는 것을 알고 더욱 따뜻하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장애의 올바른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그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모르다 보니 교회로써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장애인 사역이 잘 되어 있는 교회로 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은 또 한번 아품을 겪어야 한다. 샛째, 장애인 사역이 불쌍한 사람들 돕는 동정 사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역의 참 의甄?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장애인들의 독립심을 키우고 올바른 사회참여를 돕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교인들과의 대화 내용이 장애에 대한 문제로 제한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하다가 장애인이 되었는가?” “사고의 이유는?” , “장애의 원인은 무엇인가?” 등등 , 너무나 사적인 이야기들로 대화를 하다 보니 이미 상처가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아픔을 재연장 시키게 되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다.


(Reference: 장애 사역 컨퍼런스 교재 중에서—)


다음 달에는 장애인을 위한 예베와 성경 공부 과정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