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변화를 두려워말라

이코스타 2005년 12월


해마다 8월 중순이면 저는 뉴욕뉴저지 찬예사(찬양과 예배사역 연합모임, 대표 박규태 목사)가 주최하는 예배 컨퍼런스를 다녀옵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는 주일 오후 5시 경, 아내가 섬기고 있는 God’s Image 아이들과 스텝 60여 명을 태운 대형 버스, 그리고 미니 밴과 Jeep 한 대가 함께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는 뉴욕에서 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로잔데일이라는 소도시의 산중턱에 있는 수양관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운전기사의 착오로 1시간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한 시 즈음 겨우 위치를 찾았습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비좁은 산길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은 눈앞의 진흙길에 버스 앞바퀴가 빠져버렸습니다. 최근의 홍수로 인해 도로가 진흙 밭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1톤이 넘는 대형 버스의 앞바퀴는 진흙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아직도 1마일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칠흑 같은 밤중에 지쳐있는 60명의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 가방까지 들고 걸어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미국인 기사는 더 이상 나아가면 버스가 그 진흙 속에 가라앉는다고 난리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에서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진퇴양란입니다. 마침 진흙길 위쪽에는 차를 돌릴 만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새 벽 두 시, 겨우 연락이 되어 급하게 불려나온 미니 밴들이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진창이 되어 깊게 파인 진흙길을 걸어 올라가 미니 밴에 올라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의외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8시간 넘게 버스 안에서 지쳐있어야 할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짜증도 없었고 불평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생동감과 흥분된 미소를 보았습니다. 새벽 2시 반, 수양관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도 여전히 밝았습니다. 의문점을 갖고 있다가 나중에 제 딸에게 그 당시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물었습니다. 대답인즉슨 아이들은 너무 오래 버스 안에 있어서 오히려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비록 불편했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오히려 활기를 준 모양입니다.


아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변화를 즐깁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변화를 불편해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싫어합니다. 이미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해 온 신자들도 신앙의 타성에 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도전보다는 현재에 만족하여 안주하는 경향이 커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적인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때로는 마치 개벽과 같은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자라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변화의 시작입니다. 고후 5:17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고 했습니다.


예 배사역에도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현대 예배라 해도 구태의연한 자세는 또 다른 구세대적 전통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래서 예배사역에는 평가가 필요합니다. 사역 평가를 포기하는 것은 예배갱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미 드린 예배를 평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예배를 위해 어떻게 하면 더욱 정련된 사역이 가능할지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한 번 드린 예배를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드린 예배는 정죄해서도 그 자체를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받으신 예배를 우리가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 사역은 반드시 평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욱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을지 프로그램과 시스템적인 접근, 즉 사역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포기하면 우리의 예배사역은 생명을 잃습니다. 더 나은 예배 사역을 위해 변화를 기대합시다. 그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에도 구체적인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대하면서…….

[이정희] 바람직한 정치/교회 관계 – 교회의 정치화 vs 정교분리


이코스타 2005년 12월호

1. 서론

-  교회와 정치의 적정한 관계 유지의 문제는 적절한 언론 영역과 정치, 학문 공동체와 정치의 관계 수립 문제와 유사하고 할 수 있다.
-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영역과 정치, 학문영역과 정치는 상화 적극적인 관여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는 사실은 적절한 종교/정치 관계의 수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이나 학문공동체가 정치적 가치판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정치가 미디어나 학문 영역에 직접 개입하게 되면 상호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사회의 기초질서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만약 교회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기업활동을 하거나 사업을 한다면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  교회가 보편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가치를 앞세워 정치 영역에 개입하는 행태를 어떻게 평가해야할 것인가
-  이 세미나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정교분리의 원칙을 바탕으로 교회의 정치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교회의 정치참여의 최소한의 요건을 제시한 후, 한국교회의 정치참여를 평가해 본다.


2. 정교분리의 원칙
2.1 용어의 정의 – 정치/교회의 정의
-   용어의 모호성이 토론 과정에 혼란을 낳는다. 가령, 정치를 모든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권력에 대한 추구(pursuit of power)로 정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동이 포섭되어 의미있는 경계를 확정하는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정치적 참여의 문제를 촉발한 교회 지도자들의 정치적 행동도 이 이상의 것이므로 논의의 진전을 위해 정치를 좁은 의미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국한한다.
-  교회도 개교회, 교단 혹은 교단 간의 협의체, 우주적 교회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와 교회 관계라는 관점에서 현재 한국에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개교회들과 교단으로 의미를 한정한다.


2.2 역사적 배경: 종교개혁과 칼빈주의 vs. 카톨릭의 종교정치 (The Conflict between Rome and Reformation)

-  종교개혁자들의 역사적 전통인 정교분리의 원칙
-  종교권력의 무분별한 정치 활동의 역사적 경험을 한 종교개혁자들은 두 권력 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였음


3. 국가(혹은 정치공동체)와 교회의 바람직한 관계
3.1 국가와 교회 관계의 4가지 유형

-  Wogaman Philip, Christian Perspectives on Politics, 1988, pp.185-208
4가지 유형 (1) Theocracy (2) Erastianism (3)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 Friendly (4)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 Unfriendly

-   신정정치의 환상(The illusions of Theocracy), 우상숭배적인 종교예속(The idolatries of Eratianism), 완전한 분리의 불가능성(The impossibility of total Separation)
-  일상적인 정치상황에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상호 간섭을 최소화하고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함


3.2 Politicization of Church의 문제점
3.2.1 권력추구라는 정치의 속성과 교회의 목적이 합치하는가?
교회의 존재목적과 정치의 존재목적이 일치하는가?
3.2.2 교회가 정치 공동체가 갖고 있는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3.2.3 세속 권력이/국가가 교회를 이용하는 속성으로부터 교회의 독자성을 지킬 수 있는가?


3.3 교회는 언제 정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가 혹은 언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  정치와 종교의 완전분리가 불가능할 때 상호 간섭을 해야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
3.3.1 정치가 종교의 근본적인 가치를 침해할 때
정치가 근본적인 종교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어길 경우 저항 필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가능한 경우 교회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

-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

-  방법론 – 선지자적 지적 vs. 직접적인 정치참여(정치운동)
3.3.2 민주적 정치체제 하에서 윤리적 문제에 대한 agenda setting
3.3.3 소결 – 국가/정치 공동체와 비판적 거리, 창조적 긴장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관련 이슈:

-  “시민적 참여와 교회의 정치적 중립”의 원칙에 대하여
-  한국의 상황, 교회 지도자의 정치참여와 교회의 정치화 자연인으로서 개인과 교회의 대표자의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함 교회지도자들은 강화된 제한을 받을 필요가 있음


4. 근래 한국교회와 정교분리, 평가와 전망
4.1 부정적인 역사/긍정적인 역사
정치 권력에 대한 비일관적인 자기이익 추구
4.2 자기애적인 이익 추구가 아닌 공동선과 절대선을 추구하는 목자상으로 회귀
자기희생적인 교회상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음
4.3 교회의 공동체성과 민주성 회복: 교회의 견해가 교회의 대표자의 사적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만들 필요


추천도서
Kuitert, H. M., Everything is Politics but Politics is not Everything: A theoretical Perspective on Faith and Politics, 1986
개혁주의 입장에서 WCC등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신학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음


Wogaman, J. Philip, Christian Perspectives on Politics, 1988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 교과서적으로 정리

[심성은] 나에게 하나님은…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소그룹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난 항상 ‘글쎄.. 모르겠어..‘ 아니면 교과서 적인 깨달음 들을 털어 놓았던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그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왕’이시다. 


모태 신앙 덕에 배운 그분의 존재 명칭은 내가 느끼는 하나님을 ‘왕’이라는 언어로 격하지 않으면서도 내 심정을 고스란히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 분은 머리를 조아려서 보이지 않는 왕처럼 나에게는 멀고 또 거리가 있는 분이었다. 세상에는 네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믿어져서 믿는 사람, 믿어져도 안 믿는 사람, 안 믿어 져서 안 믿는 사람, 그리고 안 믿어 져도 믿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 나는 그 네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라고 하는 것과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서 허공에 대고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를 향해 기도하는 것은 장단 없는 음악에 춤추라는 것처럼, 참으로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더 구나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고 나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셔서 아버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로는 정답을 컨닝 하는 수험생 마냥 그렇게 다른 사람의 믿음을 곁눈질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저 그분의 존재만으로도 무조건의 믿음을 내어 놓은 크리스찬들이 내 눈에는 그저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심성은’이라는 인간의 항변


세 상 만물이 보여주는 섭리와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면, 그분은 정말 살아계시고 대단한 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고단할 때가 많다. 내 삶에 대체로 만족하며 감사하기는 하지만, 아담이 저지른 죄 때문에 땀 흘리고 종신토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 있는 현실 말고도, 아픔과 고통, 贊?허무가 가득 찬 이 세상이 고단한 것은 (모든 것을 이 지면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난 내 삶을 통해 고스란히 겪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고, 혹은 고통의 내용가운데 평안을 달라고,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은 전능하고 뱀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니까, 떡덩이 대신 돌을 주는 분이 아니니까 구하라고, 두드리라고 그러면 내 아버지가 주신다고, 나는 다른 기독인들과 같이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많은 경우 기도를 통해 일어났다고 간증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 거짓말처럼 불행이 전화위복이 되어 감사한 것 아니면 그 내용은 고스란히 떠 않았지만, 위로의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내용이 전부이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는(또는 어떤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누구에게는 (또는 어떤 때는) 그저 위로하는 나약한 하나님으로써, 세상에서 벌어지는 형통한 일에 대해서는 그 전능과 선하심에 대해 찬양을 받으시면서,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때는 그저 거기서 위로하셨다는 내용으로, 혹은 인간의 죄나 세상에 관영 하는 사탄의 행패로 그 책임과는 관계없다는 설명을 들을 때 나는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을 넘어 이해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나는 내가 기도한 대로 그분이 들어주시지 않은 사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혹은 시간이 흘러 내가 죽을 것처럼 여겼던 문제들이 적절한 시기에 해결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믿으려 해도, 도대체 일관성이라고는 구약 내에서 (전능하신)혹은 신약 내에서(위로하시고 함께하시는)도 찾기 힘든데 하물며 내 삶을 통해서는 더욱 알 수 없는 그분의 섭리 기준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런 분이 창조 섭리아래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하나님을 온전히 감각할 수 없는 죄의 유전자를 타고난 나에게 사랑과 신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분을 독재하시는 왕으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역사와 수천의 증인들의 말을 믿고 인간으로 지음 받은 존재 목적에 충실 하라고, 로보트가 아닌 존재로 창조했다면서.. 사랑과 신뢰라는 것이 일방적 일 수 없는 것 아닌가..


많 은 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싫어도 떨쳐낼 수 없는 모태신앙인들의 책임감- ‘믿어야 하느니라’ 에 나는 정말 노력했었다. (물론 내 기준에서) 나의 멘토분과 이야기도 해보고, 또 다른 기독인들과도 상담을 해보았다. 세뇌 적 진단- 기도와 말씀으로 모든 현실의 문제 해결책을 내어놓는 교육에 의해 나를 자책해 보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는 뭔가.. 심지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있었던 것 같다. 교회를 내 집처럼 드나들고 소위 영빨이 센 집회에 가도 내 종교적 감흥의 유통기한은 짧기만 하고, 어떻게 해서든 ‘믿어 보려는’ 의지조차 방전되어가고 있었고 냉소적인 나의 마음은 그분에게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미국여행 그리고 KOSTA


그 즈음 스스로의 자질에 실망한 8년여의 직장생활에서도, 내 어깨에 얹어진 책임감, 의무감에서도 벗어나 쉬고 싶었다. 그래서 홀로의 미국여행을 무작정 계획했다. 우습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여행 간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이 민망해서라도 가야했다.


여 건과 환경이 순조롭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고 서른 넘은 딸이 갑자기 미국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하니(그것도 6개월이나) 가족들의 질타는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친척들의 잔소리까지 들어야했다. (뻔한 시집이나 갈 것이지..의 종류와 신변의 걱정) 이 문제를 놓고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의 응답 같은 건 들을 수 없었고 환경의 인도하심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환경이 만들어져갔다.
건강도 안 좋아졌고 계획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가 구체적인 여행계획도 공부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허락을 겨우 받고 전화로만 만났을 뿐 한번 도 만난일 없는 Atlanta에 계신 목사님과 Iowa에 친한 선배가 ‘오라’ 는 말에 대책 없이 무조건 티켓을 끊었고, 하루전날 짐을 꾸역꾸역 꾸려서 공항으로 갔다.


정신없는 몸과 맘을 이끌고 미국에 온지 한 2개월이 지났을 때.. NW gpKOSTA 준비위원 이었던 선배의 무조건적인 등록과 협박(?)에 NW gpKOSTA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선배 때문에 참석한 NW gpKOSTA에서 처음에는 자비량으로 사역하시는 강사 분들의 헌신과 구체적인 강의내용에 조금 놀랐었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배낭에 침낭을 둘러메고 하나둘씩 모여드는 유학생들의 모습에 더 놀랐다.


KOSTA의 어떤 내용이 좋았노라고 나는 딱히 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허공에 대고 태어남을 저주했던 욥에게 그가 항변한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시면서 감동을 주시던 그 모습처럼, 하나님은 나에게도 그렇게 다가오셨다.
NW gpKOSTA가 끝나고 한 이틀쯤 지난날 밤에 한 강사님과 하루에 성경을 3장씩 읽기로 약속한 것이 생각나 성경을 읽던 중.. 어떤 가시적인 현현도, 청각을 통한 음성도 아니었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는 뭔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 모든 것은 전적인 그분에 은혜라는 사실이다. 그분이 주신 은혜가 아니면 나는 그분을 고민할 수도 하나님을 부를 수도 없고 성경의 인쇄된 글자 하나라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셨다.
내게 작게나마 믿음이라는 것이 생겼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분에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인 거다! 노력하는 마음도 그분의 은혜라는 것.


그 은혜의 흔적이 더욱더 분명해질까 하는 기대로 WA gpKOSTA를 참석하려는 마음을 주심으로 교과서적인 깨달음에 지쳐있던 오랜 내 갈망과 답답함에 하나님은 그렇게 응답하셨다. 


그 리고 KOSTA와 여행을 하며 만난 많은 좋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홀로 다닐 때 마다 일용할 양식이상으로 나를 축복하시는 그분을 느끼게 해주셨다. 수만 가지 의심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게 하시며 결국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를 담은 어떤 칩 같은걸 마치 마음속에 심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에베소서 2장 8절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면..


솔 직히 그 깨달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얻고 싶은 대답들이 있고, 사람의 죄도 하나님의 선이나 악으로 판단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 대한 회의는 남아있다. 아직도 먼듯하지만, 나를 다듬어 가실 그분을 믿는다. 이 글에 대해 내게 회자되어 돌아올 사람들의 반응들이 눈에 선하다. 나의 신앙에 대한 답보에 대해 불같은 성령의 힘으로 인생을 180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언젠가는 너도 하나님의 감격에 겨워 살 거다”라는 등의 아래를 쳐다 보는듯한 태도- 확언컨대, 그러한 태도는 받아 볼 만큼 받아봤다. 정말이지 왜 울음에 묻혀 겨우 새어 나온 ‘하나님’ 한마디가 그 어느 분들의 유창한 백 마디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신앙적 충고를 듣지 않으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밀어내는 저항이 아니라, 믿음이나 은혜가 같은 돌이라도 누구에게는 반석이고, 누구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여겨지는 그 천차만별의 다름을 이해 받기를 바라는 소망을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켠 이 글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그러한 동정 아닌 동정이나, 어떤 집회가 나에게 좋았으니 당신들도 가보라는 상업성 멘트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 동일한 고민과, 같이 힘겹게 답을 얻고자 수고하고 애쓰고 그리고 돌아서서 울고 있는 그 어떤 이들에게 나도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노라고, 같이 걸어가자고 내어놓고 싶은 마음에 답하고자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동행 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나와 함께 걸어갈 어깨 쳐진 형제자매들 뒤에서 함께 해 주시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마음과 함께….


내가 알기로 구원의 길은 믿음이다. 끈질기게 기다리되 너무 많은 회의로서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야 말로 구원으로 통하는 믿음의 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중에서-

정민영 선교사와의 만남




지난 2005년 7월에 시카고에서 ‘흩어진 나그네,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주제하에 열렸던 KOSTA에서 강사로 섬기셨던 위클리프 선경 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의 정 민영 선교사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eKosta:안녕하세요. 정 민영 선교사님.
우선 선교사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정민영:제 가 속한 단체는 Wycliffe Bible Translators라는 단체인데, 처음으로 종교 개혁 전에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John Wycliffe의 이름을 딴 단체입니다. 70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했고 전세계에 약 50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사명은 7000 종족의 약 3분의 1 정도 되는 2644 미전도 종족들에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없으면 전도나 토착교회 설립이 불가능하죠. 비서구가 동등한 차원에서 한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구 주도적인 단체가 아니라 비서구의 좋은 선교적인 인력들이 함께 일을 하도록 동역화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3년 전부터 맡고 있는 Asian Diaspora Initiatives 라는 사역이 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성경 번역하는 일을 했었고 그것을 마친 후에 이 일을 하면서 전세계 흩어져 있는 아시아 교회들을 선교적으로 일으키고 참여시키고 훈련하고 동참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Kosta:위클리프 선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언제부터 그 단체에서 동역을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하구요. 그 당시로서는 위클리프 선교회가 생소했을 텐데 어떤 계기로 참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정민영:하 나님이 부르신 최초의 동기는 71년인 대학 1학년일 때 입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 교회에는 성경 공부가 없었습니다. 저는 소위 모태 신앙이었지만 말씀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 없이 문화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71년도에 대학생 선교회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성경공부 반에 들어가서 제 손으로 성경을 열어 공부하고 묵상하는 일을 경험했고 그 과정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죠. 그것이 제 인생을 바꾸었죠. 그 이후로 말씀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고 말씀을 뿌리 내려주는 일은 제 삶의 한 패턴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말씀을 혼자서 능동적으로 읽고 건강하게 해석하고,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을 길어내는 일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학생 선교회에서 배우는 10단계 성경교재가 끝나면 밑천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씀을 개인적으로 독립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싶다는 소원이 생기고 강해지면서 제가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죠. 어떤 특별한 사역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소원 때문이었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내가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어요.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목회를 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목회는 아니라는 생각을 주셨고 저한테 주신 달란트가 어쩌면 문서 사역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 신학교 2학년 때인 79년도입니다. 저는 막연하게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성경은 있지만, 하나님 믿는 것을 거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그 당시 통계로 3500 개 언어가 하나님 말씀 없는 미전도 종족이라는 사실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주님이 지상 명령을 주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런 상태라는 것이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다가와서 그 일에 헌신했죠. 79년 이후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이 일을 행하게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후로 훈련을 받고 83년도에 위클리프의 공식 선교사로 허입을 받고 인도네시아에서 성경 번역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은 똑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연장선 상에서, 선교사를 일으키는 일을 하는데 꼭 성경번역 선교사를 일으키는 일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Kingdom Worker를 일으키는데 있어 이 일을 전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과업의 최소한 3분의 1은 이 일이니까 줄잡아서 선교사의 3분의 1은 이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Kosta:성경 번역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 많이 틀려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의 동역과 함께 번역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번역을 할 때, 한 사람이 나가서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어떤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정민영:성 경을 번역하는 것은 다른 일반 서적이나 신앙 서적을 번역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죠. 일단 성경이 번역되면 그 성경을 쓰는 신앙 공동체의 100년이 결정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여건이 있지만 교계나 교단에서 굉장히 까다롭게 하면서 쉽게 받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이 사역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에요. 해봐야 다 필요 없어요. 공동체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적인 접근을 하면서 객관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검증이 된 여건을 받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위클리프 안에서 70년 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와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성경 번역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받습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하나의 인프라를 구축해서 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보통 신약 성경을 번역하는데 평균적으로 약 15년 정도 걸리는데요. 혼자 하면 1-2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알기로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특별히 우리 한국의 선교사님들이)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성경이 필요하다. 그럼 내가 번역해야 하겠다’고 하면서 번역을 하는데, 그 정도의 실력과 Quality를 가지고 번역하는 것은 헛일이 되는 것이죠.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니까 이런 시스템 안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시스템은 위클리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공회라든지 현장에 있는 단체나 현지 교회의 네트워크 안에서 합의가 도출된 상태에서 성경 번역의 권위가 위임되고, 그렇게 허용된 권위 안에서 하나의 동역을 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그 안에는 컨설턴트 들이 있어서 개인이 함부로 번역하지 못하게 하는 보안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판되고 공인되고 보급되는 모든 과정도 있습니다. 성경이 번역만 되면 안되고 읽혀야 하니까, 토착교회와 보급단체와 번역단체가 가정적인 협약에 의해서 굉장히 유기적으로 동역이 일어나는, 그래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형태로 가죠. 선교라는 것이 이제는 개인들이 구멍가게처럼 해서는 남은 과업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선교의 제 2기라고 쓰고 싶습니다. 지난 25년은 막 저지르고 대부분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개인적으로 구멍가게를 하는 식으로 했다면, (물론 그런 선교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남은 과업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구멍가게가 많이 모이면 종합상사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종합상사는 처음부터 전혀 다른 차원의 노하우를 가지고 출발해야 하는 조금 더 발전적 형태의 선교 시대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스타에 소망을 두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분들이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잘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한민족 선교의 제 2기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과 연관해서 장황하게 말씀 드렸는데, 그런 큰 틀 안에서 일을 한다는 것, 그래서 직접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실제 저희 단체에서도 활용하고 있는 사역의 유형별로 Job Title이 350개가 넘습니다. 그만큼 성경 번역을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전공 분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Kosta:제가 준비한 질문들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는 답변을 해주셨는데요.
문서번역 현황에 대해서는 잠깐 말씀을 하셨는데,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선교사님들이 성경 번역을 위해 나가 계신가요?


정민영:저 희 가정이 이 사역을 위해 81년에 나갈 때만 해도 한국에 공식적인 기관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제본부에 편지를 보내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코스타를 세우신 목사님들이 같은 해에 이 위클리프 코리아에 해당하는 GBT를 세우셨습니다. 사실 이 단체는 코스타와 정신이 상당히 많이 맞물려 있습니다. 홍 정길, 옥 한흠, 이 동원, 하 용조 목사님이 코스타를 시작하던 전 해에 한국에 위클리프 코리아를 세우셨습니다. 코스타가 말씀 안에 건강한, 균형있는, 치우침이 없는 크리스챤 리더십이 키워지는 그런 장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씀을 주는 일에 대한 가치 때문에 그분들이 의기투합해서 GBT라는 단체를 구상하게 되죠. 작년에 20주년 행사를 했는데 현재 약 150명의 선교사가 성경 번역 선교회의 회원 선교사로 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10번째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참여해서 번역을 끝낸 성경이 벌써 10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있는 일이고 축하할 만한 일이고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다라고 생각해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하게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고 기도하고 동역해 온 한국 교회들을 초청해서 의미있는 이벤트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로서 우리도 성경을 전해 받아서 한국교회가 이만큼 부흥을 누렸으니까 받은 성경의 축복과 함께 전할 성경에 대한 사명을 다짐하는 그런 자리였죠. 2644 개 언어로 된 성경이 남아 있기 때문에 수천 명이 참여해야 하고 일군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eKosta:2644 개의 언어로 된 성경 번역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거기에서 선교사님들이 가셔서 번역을 하고 있는 것과 아닌 것에 대한 통계 조사가 되어 있나요?


정민영:전혀 선교사가 가지 않은 것이 2644 개 이구요. 번역 중에 있는 것은 약 1000여 개가 입니다. 누군가가 그 언어를 선택해서 번역을 시작해야죠. 그래서 현지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그런 일이 시작되는 것이죠.


eKosta:소개하실 때 말씀하셨듯이, 위클리프 선교회의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입장에서 보면, 올 해 코스타 주제와 연관이 많아서 코스타에 바라는 것들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정민영:왜 위클리프 인터네셔날 단체가 아시안 디아스포라 동원 사역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프로젝트를 실행시켰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선교는 그 자체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갇혀있는 사람이 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지죠. 베드로와 야고보는 디아스포라가 아니고 전형적인 1세 목회자들이죠. 하지만 그분들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죠. 그분들이 선교에 참여하지만 그분들이 본격적인 사도행전의 드라마를 펼쳐내기에는 역부족이죠. 그들의 언어 문화적인 한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면에 바울과 바나바처럼 디아스포라 출신을 쓰십니다. 사도행전의 그야말로 주인공들이 그분들이잖아요. 그런 성경적인 관점에서도 그렇고, 임상적으로 실제로 디아스포라로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는 일이 몸에 붙은 사람들이 선교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낸거죠. 즉 1세들은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우리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여기 디아스포라들은 자연스럽게 몸에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효과가 있죠. 언어 문화적으로도 이미 몇 개의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제 3의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것은 훨씬 자연스럽고 용이하고 효과적이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선교에 좋은 자원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 거죠.


그 래서 코스탄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중요한 한 그룹인데, 금년에 우리가 이 주제를 가지고 디아스포라를 향한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이고 방향성에 있어서도 미래 지향적으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필연적으로 코스타 운동이 선교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교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왕국의 완성을 향해서, 결국은 이분들이 다 해외 현장으로 갈 필요는 없지만 선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이제는 온 세계가 서로 섞여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다른 곳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선교적으로 우리 이웃에게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와 있습니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코스타 운동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운동으로 선교 지향적인 운동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디아스포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제가 갖는 기대죠. 이번에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코스타 공동체에게 이런 주제를 선정하도록 영감을 주셨다고 생각을 해요. 굉장히 시의 적절한 주제이고 이것이 지난 20년 코스타 역사에서도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eKosta:정 선교사님의 코스타와의 인연이 궁금한데요. 코스타와의 인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정민영:코 스타가 시작되었을 때는 제가 이미 선교사로 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스타에 대해서 소문은 들었어요. 저를 파송한 교회가 홍 정길 목사님이 담임 목회를 하셨던 남서울 교회였기 때문에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도 유학생활을 5년이나 했는데, 그때 시작하시지 왜 내가 있을 때는 안 하시고 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흥분되었고 귀한 운동이다라고 생각을 했죠. 또 코스타를 처음 시작하신 분들의 면면을 볼 때 충분히 기대할 만 하고 그래서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첫 안식년인 91년에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선교를 위해 같이 중보하시고 후원해주시는 교회들이 미국에도 있기 때문에 그 교회들에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그때가 마침 코스타 기간과 겹쳤어요. 그래서 그 당시 LA 바이올라에서 열렸던 91년 코스타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선교사 강사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선교 특강을 부탁하셔서 선교적인 비전을 나누면서 코스타 현장의 열기를 느끼고 너무너무 흥분을 했죠.


그 후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요. 회교 근본주의가 득세를 하면서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선교사들을 다 내쫓았거든요. 한국 위클리프의 대표 사역을 했기 때문에 해마다 코스타에 올 수는 없었지만, 국제 본부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가끔 북미주나 유렵에 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 코스타도 종종 참여하게 되었고, 지난 3년 전부터는 위클리프에서 선교동원 사역을 책임 맡게 되면서 여러 나라의 코스타를 참석하면서 선교 동원 하는 일을 해왔죠.


eKosta:약간 주제를 바꿔서 아까 말씀하셨던 것들에 대해 살펴보고 싶은데요. 위클리프에서도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이 있고 이번 코스타의 주제도 디아스포라인데, 다른 선교회에서는 어떻게 디아스포라에 대한 입장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민영:재 미있는 것은 제 기억에, 위클리프 선교회가 디아스포라 사역에 눈을 가장 먼저 뜬 단체일 거에요. 디아스포라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그룹은 한국인들이었죠. 위클리프 USA가 한 12년 전에 코리안 사역을 담당하는 오피스를 열었어요. 대부분이 백인들 위주로 된 단체였지만 앞으로 아시안이나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북미 지역의 한인 교회의 잠재성을 보면서 전적으로 코리안을 조직하는 일을 시작했죠. 그 일이 적절한 일이었습니다. 열매들도 있었고 그것을 보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국제 단체들이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알기로는 위클리프가 효시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SIM, OM, OMF 등 여러 단체들이 아시안을 공략하는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10년 사이에요. 요즘에는 아시안을 겨냥하는 동원 사역을 갖고 있는 단체들이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추세입니다. 고무적인 일이죠. 펜실베이나 주립대학에 있는 필립 젠킨스라는 역사학 및 종교학 교수의 ‘The Next Christianity’라는 책에서 시사하는 기독교 선교계의 흐름과도 맞물려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죠.


eKosta:말씀하셨듯이, 코스타 이후의 방향성은 선교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선교의 제 2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정민영:한 때는 코스타 안에도 이런 갈등이 없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코스타가 유익하게 독특하게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그냥 대중 운동은 분명 아닐 거에요. 대중 운동은 코스타가 아니더라도 한국 교회가 잘 하니까. 단순히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정도의 그러한 운동은 아닌 것이 분명하죠.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여의 방향은 역시 ‘Quantity’보다는 ‘Quality’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Quality’를 얘기할 때 이분적인 사고에 우리가 많이 빠져있는 것 같아요. ‘Quality’를 높이기 위해 ‘Quantity’를 자동적으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건 좀 이분적인 사고라 생각하구요. ‘Quality’도 중요하고 ‘Quantity’도 중요하죠. 또 ‘Quality’ 때문에 선교를 일단 제쳐 놓는 일은 굉장히 모순이고 자가당착이죠. 왜냐하면 큰 그림을 놓친 상태에서 분석적인 사고만 하는 위험과 비슷해요. 그래서 ‘Quality’를 얘기하고 제자화를 얘기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선교를 기피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굉장히 슬프게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Quality’는 무엇을 위한 ‘Quality’인가를 질문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근본적으로 ‘Quality’를 높여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Quality’자체가 구호는 아닐 것입니다. ‘Quality’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Quality’가 없으면 세계 복음화를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 궁극적인 지향점을 놓쳐버리는 그런 위기가 코스타 안에도 지난 20년 동안 있었다고 봅니다. 이번에 20주년을 맞아서 한 번 쯤은 코스타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 코스타라는 또 하나의 운동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냥 우리가 많이 모이니까 좋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Quality’의 강점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쪽으로 수렴되는 양면을 다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가 조금 사변적인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질문으로 되돌아와서, 제 2기라고 했을 때, 제 1기에는 대중 운동적인 선교 운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도 축복이 많이 있었다고 봅니다. 적어도 선교사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선교사를 내보내는 정신으로의 전환은 대단하죠. 성령이 아니면 못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Quality’적인 부분은 굉장히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훌륭한 분들은 있지만 선교 공동체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우리 한민족 선교에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단순히 외형이 커지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코스타의 정신이 아니죠. 그럼 제 2기라고 했을 때는, 그 동안은 선교의 감격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선교를 했느냐를 생각했을 때는 부끄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외형을 키우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마치 우리가 IMF 구제 금융시대를 맞으면서 단순히 부채도 자산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무조건 외형을 키우면 되는 줄 알았던 잘못에서 깨달은 것은, 외형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고 건강한 것이 문제다라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의 이슈도 건강한 선교를 향해서 가야 하는 의미에서의 2기를 말한 것입니다. 제 2기라고 하는 건강한 선교, 다른 말로 하면 전략적이고 청지기적이고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내실이 있는 선교, 사람들끼리 자화자찬하는 그런 모래성을 쌓는 선교가 아닌 철옹성과 같은 사탄이 넘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생동력이 있는 토착교회가 세워질려면 선교 자체가 품질 향상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죠. 그것이 제 2기의 과제인데 그걸 누가 풀 수 있겠는가를 생각했을 때, 코스타 운동에 기대를 겁니다. 왜냐하면 코스타 운동이 처음부터 그걸 지향해왔기 때문이죠. 그것이 코스타의 정신이고 지금까지 코스타에 강사로 오신 분들이 다 그런 부담을 가지고 있고 ‘우리 한민족 교회가 규모가 크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다 부끄럽다’ 그런 건강한 부끄러움을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승부수를 걸만한 분들이 (코스탄들 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은 분들이 여기 있다고 봅니다. 이분들이 그런 양질의 순수한 복음을 회복한다면, 한반도 교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한민족 교회의 품질향상 그야말로 개혁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같은 연장선 상에서 한민족 선교의 개혁, 품질향상, 업그레이드, Quality Control에 기여할 수 있는 기대할 만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 선교의 제 2기를 정말 일궈낼 수 있는 사람들이 코스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운동에서 그 실타래를 풀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합니다.


eKosta:마지막 질문이 그것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코스탄들에게 하시고 싶은 점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정민영:제 가 한 마디를 더 한다면, 이원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복음에 Quality를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선교를 배제하는 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 분들의 발언 배경을 이해해요. 너무 선교가 하나의 Sensationalism, 대중 운동처럼 가는 쪽에 저도 탄식을 해요. 저는 그렇게 안 가기를 바래요. 사람들이 선교를 너무 가볍게 다루면서 대중 운동으로 끌고가는 풍조에 대해서, Quality, 제자도를 중시하는 분들의 어떤 반감내지 우려는 심정적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제자도를 위해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개인적인 선호와 무관하게 선교는 주님이 주신 궁극적인 그림이고 기독교 역사관의 종점이죠. 절정에 이르러서는 결국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고 끝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라도 이 큰 그림에서 자기 역할을 유기적으로 정의하고 그 컨텍스트 내에서 말을 해야 하고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탄식하는 것은 이런 컨텍스트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사람은 행동주의에 빠져서 그냥 천박한 선교 운동을 하고 있고, 또 정말 뭔가 의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큰 그림을 놓치고 편협하고 교리적인 그래서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일이 있습니다. 코스타는 그렇게 나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에 바란다면, 코스타가 지향하는 몇 개의 포인트가 있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분명히 최종적으로 세계 선교에 기여하는 운동이에요. 그것이 빠진 Mission Statement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복음을 이야기할 때는 말이죠. 코스타에 바란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선교 현장에 가거나 신학교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선교적인 부르심 앞에서 예외는 없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쪽으로 우리의 역할이 유기적으로 사용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놓지 않는 코스타의 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eKosta:코스타 기간의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민영 선교사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코스타와 코스탄들에게 선교에 대한 도전과 방향성에 대한 좋은 영향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