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멘토님들과의 만남 – 좌담회 (권강현, 김동록, 윤국진)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코스타 집회 기간, 조장을 섬기며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조장들이 있다. 하지만, 조장님들의 뒤에는 조장님들과 조원들의 영적인 상태를 살피고 끝없이 기도하시며, 또 그들과 만나 상담해 주시는 멘토님들이 계시다. 멘토라는 말이 너무도 익숙한 이 때, 진정한 멘토란 무엇이며, 코스타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무엇인지, 권강현 김동록 윤국진 – 세 분의 멘토님들과 전화 좌담회를 가져 보았다.


1. eKOSTA: 간단한 자기 소개와 jjKOSTA와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제 이름은 권강현이고요, 결혼한 지 19년 되었고, 현재 아내와 세 아이과 함께 메릴랜드 주에 있는 엘리콧 시티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코스타는 3년 째 참석하고 있고, jjKOSTA 멘토로 역시 3년 째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부터 미국에서 있었고요, 89년에UIUC를 졸업 했습니다.


김동록: 89년에 미국에 유학생으로 왔고요, 지금은 시애틀 근교에 있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코스타는 4년째이고, 현재 Northwest지역인 2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역으로는 제일 넓지만, 참석 인원은 적은 지역이지요.


윤국진: 89년에 미국에 유학생으로 왔고요, 현재 목회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아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어버나 샴페인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예수사랑 감리교회를 11년째 섬기고 있고요. 이 교회는 처음부터 학원선교를 목표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코스타는 미국에 온 바로 다음 해인 90년에 전도사로써 청년부 학생들과 함께 참석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것 같네요. jjKOSTA는 4년째 멘토로 섬기고 있는데, 섬겼던 지역은 다양 했었습니다. 올해는 6지역 멘토로 섬기게 되었고요.


2. eKOSTA: 이제는 ‘멘토’라는 단어가 상당히 익숙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시는 ‘멘토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사실 저는 멘토링이라는 단어보다는 제자도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제자 삼는 사역이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전 인격을 감당하고 성숙하도록 섬기는 것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최근에는, 제자도는 다소 지식적이고 훈련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멘토링은 좀 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루어 지는 것으로 나누어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자도가 불신자나 초심자가 성숙에 이르는 단계까지를 목표로 한다면, 멘토링은 특정 인간관계를 통한 리더 양성 과정을 목표로 하는 것 같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제자도와 멘토링을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보자면, 리더 자체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때문이겠지요. 멘토링과 제자도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윤국진: 제가 뜻하지 않게, 작년에 멘토링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인도했었기 때문에, 책을 좀 더 접하고, 사람들에게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멘토, 교사, 제자 양육자 – 각각 조금씩은 다른 것 같습니다. 멘토링은 시간적으로 볼 때 평생에 걸칠 정도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인간관계가 양육이나 친교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의 연속성과 확장을 위해 어떤 한 분야의 전문적인 것을 이미 알고 경험한 사람이, 다음 세대나 후임자에게 그 전문적인 것을 평생에 걸쳐 이끌고 전수해 주고, 결국에는 자기보다 더 확장된 사역의 단계로 세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멘토링은 하나님 나라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서양 기독교에서는 멘토링이 활발하게 존재하고 있는 반면, 한국 교회는 멘토링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약한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멘토링이 한국교회에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를 본다면, 학생 중심의 목회자로써의 노하우를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목회자로써의 경력이나 나름대로의 교단에서 축적된 노하우, 혹은 아직까지 맺었던 인간 관계 같은 것들을 적재 적소에 알려주고 폭이 넓어지도록 도와 주는 것이 되겠죠.


eKOSTA: 그렇다면, 관심분야가 다를 경우에는, 멘토링이 좀 어려워 지게 되나요?


윤국진: 다른 면에서의 멘토링은 가능 하겠지요. 하지만,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서 좀 더 전문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멘토이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 멘티가 되겠지요.


권강현: 멘토는 좋은 친구로써 하나님을 함께 알아가며 경험해 가게 하는 길잡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삶을 공유하기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길잡이가 멘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멘토님들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신앙의 틀을 잡는 것을 도와 주셨고, 말씀에 씨를 뿌리고 심는 자로 자라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 또 물주고 추수하는 자로 세워 지는 데 도와 주시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충실하도록 도와 주시기도 하고, 다른 영혼을 섬기는 목자로 자라게 도와 주시기도 하고, 내가 못 보는 나의 약점을 보여 주시기도 하며, 나의 삶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공유해 주시고, 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의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멘토링이기 때문에, 한 분의 멘토님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한다 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여정에서 시간과 장소에 맞게 보내주시는 분들과 관계를 가져 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멘토링인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멘토링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멘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멘토가 자기의 사람을 키워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요. 굳이 제자훈련과 구분한다면, 멘토링이 더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윤국진: 멘토링은 많은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10명 이내의 사람과 정말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3. eKOSTA: 멘토님들은 청년시절에 신앙의 멘토님들이 있으셨는지요? 있으셨다면 그 분과의 만남이 지금의 멘토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혹은, 멘토님들께서 직접 멘토의 역할을 감당하셨거나, 현재 감당하고 계신 경험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국진: 20년 전 ‘멘토’라는 말조차 없을 때, 고등학생으로 대전의 중간 규모의 교회를 다닐 시절, 참 좋으신 선배 겸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지금 워싱턴 디씨에 계신 김영봉 목사님 이십니다. 그 당시 제가 고등학생이었고, 김영봉 목사님께서는 대학생이셨는데, 제가 신학교 갈 때, 또 미국 유학을 올 때까지 그 분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같은 교단의 목사님으로써 정말 크게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또 미국에 와서 만난 멘토는, 1995년에 어바나 샴페인에 와서 교회를 개척할 당시, 저희가 건물을 빌려 쓰던 교회의 Davison목사님이십니다. 저와 20년 차이가 나시지만, 기꺼이 제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의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고, 또 지금도 주시고 계십니다. 현재는, 저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 중에서, 사역에 전문성이 가진 분들과 2 3년 정도 교제를 하고 저와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약 4명 정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으로 들어갔고, 또 미국의 다른 주로 옮겨 가기도 했지만, 꾸준히 연락하며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그 분들을 통해 그 지역으로 옮겨 가는 사람들과 연결 시켜 드리고, 더 나아가서, 그 분들과 함께 세계 선교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멘토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강현: 제게도 멘토님이 계십니다. 저는 UIUC를 학부부터 다니면서 미국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때 University of Kansas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church planting을 위해 그 곳으로 오신 Dennis 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학교촌이라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구하기 못하고, 대신Dennis는 건물 청소를 하셨습니다. 건물청소는 주로 저녁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학생들과 만나 교제를 하기 위함이었죠.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일주일에 한번씩 따로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 금식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 노방전도 하는 것 등 말씀을 통해서 또 실제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으로 재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시면서, 이 분이 제 신앙의 근본적인 틀을 세워주신 분이 되어 주셨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멘토링은 제가 섬기고 있는 빌립보 교회의 ‘만나며 사랑하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멘토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대일이나 일대이 정도로 하는 프로그램인데 하시는 분들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은 프로그램 후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올 1월부터 만나며 사랑하며를 통해 한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오래 전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갈등하며 살다가 작년 말에 메릴랜드로 이사오셨습니다. 만나며 사랑하며를 하는 중 3월 초에 텍사스에서 원하던 job offer가 와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하나님께서 이 교회로 보내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제 겨우 영적으로 삶을 정돈하고 잘 자라가고 있는데 이사가면 어떻게 하나’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그냥 이곳에 남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형제가 지난 몇 달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현직장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지난 주에 인도해 주셨습니다. 현제는 이 형제의 삶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동록: 저는 조금 반대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의 말씀과 달리. 청년 시절, 너무도 좋은 선배님들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멘토의 역할을 해 주시는 실질적인 관계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일대일 제자 양육 받고 하면서, 관계를 갖고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제가 직접 멘토링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못하고 있고, 차라리 그 분들과 동역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4. eKOSTA: 각자 섬기시는 캠퍼스, 교회, 직장 등에서, 청년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멘토는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나름대로 생각하시는 jjKOSTA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점이 현장 사역에서의 멘토링와 같거나 또 다른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사실 이 문제를 보면서, 청년들이 어떤 멘토를 원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역으로, ‘나라면 어떤 멘토를 원할까?’라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내게 멘토를 선택할 여지가 주어진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난다면, 또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미리 겪어 갔고, 또 삶의 고난과 아픔을 통행 훈련되고 성숙한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을 제가 멘토로 섬기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jjKOSTA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기 어렵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코스타에서의 멘토른, 집회 기간 동안에 멘토로써 필요에 따라 시간을 내어드리면서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조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기도 하고, 따로 만나서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해 드리는 것이겠지요. 코스타 집회 이후에도 함께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좀 더 개인적으로 지속적으로 멘토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동록: 이 곳에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다 보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상상하는 인격적인 멘토를 원한다기 보다는, 가시적인 현상들을 기대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것이 청년들만의 잘못이 라기 보다는, 그 동안 청년들이 받아온 교육으로 인해 신앙 스타일이 수동적이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반면, jjKOSTA의 경우는 실제로 멘토라기 보다는, 도우미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관계성이 다소 우겨 넣어지는 듯한 인상이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jjKOSTA에서 처음 멘토를 제안 받았을 때, ‘멘토는 무슨 멘토’하면서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조장님들이 각 지역별로 모였을 때, 중재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해 주는 것도 멘토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락 했었습니다. 또한 집회 기간에 상담을 통해, 조장님들 뿐 아니라, 일반 참석자들을 섬기는 것도 멘토의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윤국진: 학생 사역을 하면서 보면, 권위주의에 사로 잡혀서 명령하거나 자기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지시하는 사람은 멘토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멋지다고 말하는 멘토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JjKOSTA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실질적인 멘토링이라기 보다는, ‘나도 저런 사람하고 멘토링의 관계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기대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코스타를 통해, 같은 분야에 신앙의 선배 분들과 만나고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멘토링 관계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KOSTA: 코스타 참석자들의 경우는, 코스타에서 많은 강의를 듣지만, 그렇게 실제로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jjKOSTA의 멘토님들께서 그런 역할을 해 주시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KOSTA: 각자 생각하시는 멘토의 역할을 실제로 코스타 집회 전, 중, 후에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멘토님들의 경험담이나 노하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코스타 집회 전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1. eKOSTA: 코스타 집회 전 조장님들과의 교제와 조장 훈련은 주로 온라인 상에서 이뤄집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조장님들을 섬기실 때 인격적으로 조장님들과 교제하고 나누기 위해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나요? 혹시 온라인 (이메일 포함)으로 조장님들을 도우신 경험이 있으셨으면 나눠주세요.


김동록: 코스타의 인터넷 훈련은 생각보다 상당해 템포가 빨라서, 사실 좇아 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장님들의 글은 모두 읽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씩 이라도 글을 접하면, 코스타에서 직접 만나게 될 때,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윤국진: 저의 경우는, jjKOSTA의 코디들을 미리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코디들과 미리 교제하고 갈 수 있어서 그런지, 코스타 집회 중에 조장님들과 좀 더 빨리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계속 캠퍼스 사역을 하다 보니, 이성교제, 학업, 직업 선택과 같은 평소에 접하는 질문들이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정도를 인터넷 훈련을 통해서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권강현: 저는 온라인으로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익숙치가 않습니다. 올해에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을 섬기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요. 한번 정도 코디님들 또 조장님들과 코스타전에 모이려고 합니다. 친교도 하고 교제도 하고 말씀도 나누려고 합니다. 서로 미리 만나보면 온라인으로 훈련 받으면서도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작년에는 타주를 섬겨서 코스타 전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eKOSTA: 참석자들은 어떤 멘토링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기대하는 점과 현재의 모습이 잘 맞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윤국진: 조장님이나 코디님들에게 멘토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온라인에서도 인사정도만 나누지, 깊은 질문이 오가지 못하거든요. 코스타 측에서 참석자들에게 ‘멘토에게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고 신앙적인 의문이 있다면 멘토를 찾으십시오’ 라고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동록: 코스타 집회 이전의 멘토의 역할하면, 질문이 있고 멘토가 대답해주는 관계를 생각하는데요, 사실 질문이 있더라도 멘토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질문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윤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role model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KOSTA: 3주간 교육이 진행되는데 그 방식으로 도움을 주신 경우는 있으신가요?


윤국진: 읽는 정도로 지나온 것같아요. 시간이 많이 들더라고요.


김동록: 답변 잘 올리시는 조장님들 존경스럽죠. 순발력을 가지고 하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권강현: 한번도 못 만난 분들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국진: jjKOSTA수양회 때 멘토링에 대한 광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장님들은 한국교회의 중요한 리더로 세워질 분들이잖아요. 건강한 멘토링에 대한 도전을 주어서 조장으로서 축복을 받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2. eKOSTA: 제이제이 코스타 수양회와 코스타 집회 기간 중 조장님들이 섬기시는 조별모임을 어떻게 도우셨는지요? 집회기간 중 조장님들을 섬기시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이고,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윤국진: 금년에 제게 좋은 것은, 제가 세미나를 담당하지 않고 멘토만 하게 되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밤 늦게까지 대화를 길게 하는 것을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코스타 집회 기간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조원들과의 만남을 가지기 전에, 조장들에게 부탁해서 공통된 질문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을 만나면서, 한 분이 질문을 독점하기 보다는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질문을 모아놓고 이야기 하니까 나름대로 효율적이더라고요. 그리고는 개인적인 시간을 더 가져가면서 멘토 관계가 맺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권강현: 워낙 큰 모임이기 때문에 배운 것을 내면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을 위해서 멘토들이 조장이나 조원들에게 그런 시간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섬기면서 좋았던 점은 작년 집회 때의 한 예를 들겠습니다. 펜실베니아 지역의 조장님 중 한 분이 삶에 너무 지쳐서 얼굴이 너무 어두웠던 것을 보았어요. 조원들도 다들 그렇구요. 주일 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그랬지만, 목요일 저녁 집회가 끝나고 다시 만났을 때는 다들 얼굴이 얼마나 밝아졌던지 몰라요. 결국 그 조원 중에서, 두 분이 선교에 헌신하셨고, 또 한 분은 재헌신 하셨습니다. 그렇게 영성이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 참 보람 있었습니다.


김동록: jjKOSTA수양회에 총 4개의 강의가 있는 등 빡빡한 일정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나마 조장님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을 뿐 아니라, 코스타 집회 기간에도 조장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두 번에 걸친 아침 모임 뿐이고요. 사실은, 결국 시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농도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농도 깊은 만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코스타에 오신 분들은 주로 ‘앞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을 봅니다. 만날 때마다 ‘내가 무엇을 할까’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에 관심을 갖기를 계속 권면하고 있고요. 코스타 기간 중에도 그런 메시지가 계속 전달되어야 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는, 조장님께서 조원들을 미리 소개해서 주셔서, 일반 참석자들과 상담하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시간이 오래 되면서 졸면서 이야기 했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준 형제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윤국진: 제가 보기엔 조장님들이 너무 부담과 일이 많아요. 육신적으로 지쳐있는 조장님들을 위로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3. eKOSTA: 코스타 이후 조장님들을 활로우업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있으셨다면 주로 어떤 측면에서 활로우업 (성경공부, 큐티, 상담 등등)을 하셨는지요? 코스타 후 활로우업하시기 어려우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동록: 코스타집회 이후,11월 정도까지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에 점차 멀어지게 되는데요. 다른 조장님들도 그런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극복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윤국진: 학원 사역을 하는 저로써는, 신학기가 되면 시간이 부족하지만요, 그래도 가능성을 보는 것은 멘토링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두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면 되면 성공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관계가 유지가 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권강현: 저도 코스타 후에 팔로우업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작년 8월에 펜실베니아 지역의 조장님들과 코디님이 저희 집에서 함께 모인 적이 있어요. 코스타의 뜨거운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다는 장점을 살린 경우를 한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작년 코스타에서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학부 때 예수님을 믿었는 데, 졸업 후에 신앙 생활 거의 등한시했던 분이었습니다. 코스타 중에 일대일로 상담하며 말씀을 나누는 중 하나님께서 이 형제의 마음을 깊이 만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저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대일로 팔로우업 해 드렸습니다. 그런 중에, 이 부부가 하나님을 경험해 가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어요. 경제적으로 한치도 틀림없이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또 진로를 정하는 문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한대로 어떤 경우는 기도한것보다 더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 었습니다.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으면 이런 일들이 가능하겠죠.


김동록: 거리에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코스타 이후에 멘토링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요. ‘멘토들’이라는 리소스를 잘 활용 해야겠습니다. 한 분의 멘토가 아닌 여러 분이 계시니까, 멘토 보드 등으로 공유 공간을 만들어서 함께 계속 교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윤국진: 멘티들이 먼저 필요를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멘티가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코스타가, 그저 만나는 장소뿐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공간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면 좋겠어요.


4. eKOSTA: 마지막으로 올해 제이제이 코스타를 섬기실 때, 자신이 어떤 모습의 멘토가 되기를 기대하시는 지 간략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상처받고 지친 조장님들 계시면 격려받고 치유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보람 있겠지요.


김동록: 그저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조장님들과 많은 시간을 갖고 싶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안타깝기는 한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멘토 역할을 해 주시는 분께서 ‘멘토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멘토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을 보게끔 하고, 결국 자신은 사라지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윤국진: 학원 사역만 하다보니 힘든 점도 많았는데요, 경험이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네요.


eKOSTA: 장시간 좋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세분 멘토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최원영] 하늘과 땅을 이어라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배철수씨는 1980년대에 활주로란 그룹으로 대학가요제로 등장한 뒤에 그룹 송골매의 리더로 활약했었습니다. 저의 어렴풋한 기억속에 그가 불렀던 ‘새’라는 곡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멜로디는 이제 잊었지만 가사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라”


이 곡의 작사자는 ‘새’라는 존재를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하늘과 땅. 그 닿을 수 없는 두 지점을 잇는 존재라.. 저는 예전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셨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올해의 주제인 Entrusted Reconciler 와 주제 구절 에베소서 2장 14절의 말씀을 보면서 저는 제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이 노래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라”


올해 코스타 주제 취지문에 나타난 세상의 적나라한 현실을 바라보면 우울해 집니다. 화석화 된 신앙, 몰이해, 편견, 이기적, 배타적 갈등, 분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모습에 분노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때로 우리가 속한 교회 안에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청년부 지체 가운데서 발견되기도 하고 교회의 어른들의 스치는 모습속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정말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암울한 것들이 내 안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는 느낌이랄까..


2000년전에 오셔서 온전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을 이으셨던 예수님 처럼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이 일들을 할 만한 능력과 지혜가 있다면 세상이 지금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우리에게 한가지 나쁜 버릇이 있다고 합시다. 예를들어, 인터넷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영화 다운 받기, 한국드라마보기, 한국신문 종류대로 보기-을 바꾸고 싶은 습관이라 합시다. 하지만 이 한가지 버릇을 바꾸는 것조차도 만만한 싸움이 아닙니다. 말로는 간단한 ‘아침에 한시간 일찍 일어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내가 세상을 바꾼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미 하늘과 땅을 이으신 예수님이 나의 삶을 주관 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했지만 내 안에 들어와 계신 주님을 우리가 얼마나 구박하는 지 모릅니다.


“주님, 나 바쁘거든요. 좀 구석에 가 계시죠.”
“주님, 나 잠깐 놀고 옵니다. 집 잘 보고 계세요”
“주님, 나 건드리지 마요. 건드리면 터집니다”
최악의 경우는 다음의 경우입니다.
“…………..”
주님과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나 자신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자는 주님이셔야 합니다. 내 고집이 승리를 거둔다면 나에게 성장은 없습니다.


월드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한국 축구의 사령탑이 바뀐 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회택씨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감독 하나 바뀌었는데 팀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가?”
저도 한국 축구를 보면서 정말 팀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바뀌면 팀이 바뀝니다. 내 인생의 감독이었던 ‘나’를 경질시켜야 합니다.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야 합니다. 그 감독님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선수(나)의 플레이가 얼마나 달라 질까요.


그 다음에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셨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과 하늘을 동시에 붙잡는 일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라.. 우선 나는 열외해야지..
내 발등에 떨어 진 불 부터 끄고..
이번 시험 붙고 나면..
직장 잡고 나서..
우리 애가 좀 크면..
주변에 Role model이 없는 관계로..


몇 가지 excuse를 적어 봤지만 아마도 우리가 댈 수 있는 excuse는 더 많으리라 생각 합니다. 한마디로 십자가는 세상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가진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의 상징이었고 처참한 처형도구 였지만, “하나님의 영적전쟁”이란 반전드라마에 사용될 복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밭에 묻힌 보화’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보화를 밭에서 발견한 사람이 전 재산을 이 밭에 투자합니다. 모르는 세상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한 일입니다.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람은 실실 웃으며 아렇게 말할듯 싶습니다. “바보는 내가 아녀, 느그들이 바보여”


보화를 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식 표현을 빌자면 이 일에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 신비를 아는 사람들은 십자가만을 따라 다닙니다.


21세기는 세상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자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그 사명을 감당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품은 자만이 감당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키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 시키십니다. 내가 당하는 이 어려움들을 통해 주님께서 메세지를 주십니다. 내가 황무지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이 장미꽃밭이었다는 깨달음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자에게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일,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일생를 통해 정말 몇가닥이라도 이을 수 있다면 주께서 기뻐 하실 겁니다.

[권오승] 2006 KOSTA/USA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시대정신이 더욱 절망적으로 되어 가는 이 때에,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편견, 편가름, 이기주의, 개인주의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 갈 수록 참 소망과 화해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간절해지는데, 우리가 이러한 수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일에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막힌 담들을 헐어버리신 주님의 모습에서 가슴벅찬 소망을 발견한다. (KOSTA/USA-2006 주제문에서)


작년 20주년을 맞았던 KOSTA/USA는 “Korean Student Diaspora” 라는 새로운 파라다임(paradigm)을제시한바 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지난 20년동안 KOSTA/USA는 복음, 민족,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세가지 핵심 가치(core value)로 미국내 한국 학생들을 섬겨왔다. 이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면서 하나님께서 KOSTA/USA를 통해서, 미국내의 한국 학생들을 통해서 어떠한 일들을 하기시 원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자 고민하며 도출해 낸, 새로운 화두였다.


2005년 KOSTA/USA에서는 시카고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두개의 연례 수양회 (annual conference) 뿐 아니라, 코스타 집회의 조장 훈련 프로그램인 jjKOSTA, 웹진(webzine) eKOSTA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그 내용들을 나누고 선포하고 고민하였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보여주셨던 것들은 참 가슴 벅찬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와서, 학업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 교회와 사회를 섬긴다는 기존의 섬김의 凋응?뛰어넘어, 현재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Korean Student Diaspora 들이 조국과 미국, 선교지 혹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어느 곳이든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내는 나그네 (sojourner)로서 살아간다는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사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부르심을 향하여 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부르심을 성취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일까. 어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러한 질문들이 다시 던져졌고, KOSTA/USA를 섬기는 사람들은 그것이 화목케 하는 것 (reconciliation) 이라는 생각을 구체화 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았을때 우리의 모습은 결코 건강하지만은 않았다. 이기적 배타적 본성에 빠져 타민족에 대한 멸시와 배척, 이데올로기적 편가름, 관용과 사랑을 상실한채 화석화되어버린 우리의 신앙, 기득권에 안주하는 혹은 기득권만을 추구하는 성공주의등은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며 우리고자 했던 화목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번 KOSTA/USA-2006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길 소망한다.


첫째, 우리에게 화목의 근원이 될만한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음을 발견하고 애통해하는 눈물이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성공주의 배금주의적 가치관에 오염되어 있는, 철저하게 이기적이 되어버린 우리의 신앙의 천박함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망가진 모습을 보며 함께 가슴을 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 이 일은, 우리의 적나라한 현재의 모습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면서까지 그리스도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화목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조명할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복하게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치루셔야 했던 값(cost)가 얼마나 큰 것이었나 하는 것, 얼마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목을 이루기 간절히 원하셨던가/원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둘째, 우리가 화목케하는 사람(reconciler)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전제되어야함을 실제적, 구체적으로 깨닫기 원한다. 우리안에 존재하지 않는 화목의 근거를 찾아 헤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신 그 위대한 사역앞에 철저히 우리 자신이 엎드려져야 할 것이다. 혹시 아직 그 화목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성취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바로 그 화목의 장으로 나아올 수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매년 수많은 귀한 청년-학생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오는데 하나님께서 이 집회를 사용해 오셨듯이, 금년에도 바로 그런 은혜를 부어주시길 기도한다. 단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수 많은 자원과 물자를 사용해서 그 사람을 위해 이 사랑의 메시지를 외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셋째, 우리가 화목하지 못하고 쌓아왔던 많은 벽들을 발견하기 바란다. 작게는 우리 가족, 친구등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된 벽들로 부터 크게는 우리가 타민족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 다른 정치적 사상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죄등에 이르기 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벽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길 소망한다. 특별히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우리 유학생들과 이민청년-학생들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벽들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를 타문화에 흩으신 하나님의 뜻이 이러한 벽들을 허물기 위함이 아닌지를 묻는 시간이 되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화목에의 사명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임을 깨닫고 그 앞에 헌신하는 일들이 있기 기도한다. 아직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모임이 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이 집회를 통해서 발견하게 하신 우리 안의 벽들을 가슴아파하며, 그것들을 허물기로 결심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그리고 이 화목의 메시지를 듣지 못한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화목의 메시지를 전하기위한 헌신이 있기를 원한다.


우리의 준비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이 집회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21년간 신실하게 코스타를 통해서 청년-학생들을 불러모으시고 일깨워오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금년에 또다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 앞에 순종하는 또 한번의 축복의 잔치를 기대하며 나아가자.

[이유정] 영적충전에 집중하라

이코스타 2006년 6월


작년 여름, LA 근교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능력 있고 헌신적인 젊은이들이 교회 봉사를 하다가 오래 버티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아주 유능한 청년 한 명이 있었는데 너무 지쳐서 섬기던 교회를 나와서 지금은 조그마한 교회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고 합니다.


얼 마 전 타 교회 평신도 한 분과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사역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 집사님은 교회에서 성가대 총무와 구역장을 맞고 있었습니다. 성가대 악보 복사까지 혼자 다 하셔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려해도 일이 너무 많아서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자 훈련 받는 일까지 겹쳐서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일의 분량이 너무 많아 좀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년도에는 그만 두려고 마음먹고 담당 목회자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봉사를 그만 두면 신앙 성숙이 멈춰버리니 그만 두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John Stanko는 “Life is a Gold Mine”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1985년 John Stanko라는 청년이 교회에서 풀타임 스태프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혼자서 너무나 많은 일을 감당했어야 했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문제는 일은 산더미 같이 많은데 이 일에 헌신하는 교인들이 너무 부족했던 것입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자 한 청년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제 가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인가 교회 봉사를 해야 한다고 부르신 것 같긴 한데 솔직히 고민이 됩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결국 volunteer를 포기 했지요”


좀 다른 경우를 봅시다. 윌로우크릭 교회는 발런티어가 많기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해마다 6-7가지의 거대한 컨퍼런스가 이 교회에서 열리는데 각각의 컨퍼런스마다 수 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섬깁니다. 올 여름에 다녀온 아트 컨퍼런스에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록했는데 여기에도 700명 정도의 발런티어들이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많은 발런티어들의 얼굴빛입니다. 단 한명도 불평과 불만에 찬 어두운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기쁨과 밝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 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나중에 Bill Hybels가 쓴 책인 “The volunteer Revolution”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윌로우크릭 교회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에게 그 교회의 새로운 스텝이 질문을 했답니다. “목사님은 이미 많은 일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발런티어로 교회 사역하라고 권면하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나요?” 빌 하이벨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아니오! 저는 사람들을 우리교회의 자원봉사자로 초청하는데 단 한번도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왜냐하면 빌은 그들이 발런티어 사역을 통해 엄청난 축복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자원봉사는 영적인 특권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빌 하이벨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 리는 평신도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초청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은사를 발견하게 되고, 우리는 이를 개발시켜서 자라가도록 돕습니다. 이를 통해 저들이 용기를 내어 하나님 나라에서 한 단계 높은 책임의식을 갖게 되며, 이것은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넘쳐나는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을 touch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봉사자들이 양 극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 신앙을 따라가는 것과 신앙을 통해 봉사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경우입니다.


전 자의 특징은 과중한 부담, 피곤, 바쁨, 지침, 탈진, burn out, 영적 침체 등으로 헉헉댑니다. 후자의 특징은 균형감, 기쁨, 열정, 감격, 쉼, 열매, 변화, 성장 등으로 보람 있는 사역을 해냅니다. 물론 바람직한 봉사는 후자의 경우이죠. 이것은 사역의 우선순위, 또는 사역 철학에 따라 좌우됩니다. 한 교회가 추구하는 사역의 핵심이 교회 봉사에 있느냐 생명을 낳는 일에 있느냐에 따라 결국 커다란 차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 셀 사역, 가정교회, 소그룹, 전도, 양육 등과 같은 사역은 생명을 직접적으로 낳는 사역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핵심(core) 사역입니다. 교육, 예배, 지원, 섬김, 나눔 등은 생명을 낳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예 배사역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입니다. 무대위에 서는 예배사역자들은 항상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에 늘 긴장감이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고, 퍼주는 사역입니다. 자신이 준비되지 않으면 고갈되는 사역입니다. 무대 밑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은 뒤에 있지만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을 위해 최상의 테크니컬 퀄리티를 유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긴장이 늘 존재합니다.


양 쪽 모두 영적인 생명의 충전이 없이는 탈진하고 맙니다. 물론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영적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소 일상적인 크리스천 라이프 속에서의 영적 충전이 항상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주 일 예배를 통한 영적 충전이 1주일에 한번의 특별 외식이라면, 평상시 셀이나 소그룹을 통해 받는 영적 충전은 하루 3끼 식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사역자들이 지역교회에서 균형 있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양육 받고 양육하는 몸에 반드시 동참해야 합니다. 생명을 낳는 일에 우선순위에 둠으로써 사역 때문에 탈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