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영] 난 신입생이다!!!

이코스타 2006년 10월호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쩌다가 시애틀로 오게 되셨어요?”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도 못하고, 은근슬쩍 넘어간 기억이 있다. 바로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하며 외로움과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나였기에, 쉽사리 그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학부 때부터 항상 미국유학의 막연한 꿈을 꿔오곤 했었다. 4남매 중 큰딸인 내가 공부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신 부모님께서는 미국유학을 쉽게 허락해 주셨고, 나는 2005년 1월에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 동안의 시험준비 끝에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으로부터 입학승인을 받았고, 그 기쁨과 설렘, 큰 기대를 갖고 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쿼터가 시작되기 한달 전부터 연구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어색했다. 미국인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미국인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색했다. 가벼운 영어회화는 가능했지만, 그들과 농담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내 영어에도, 내 소심한 마음가짐에도 문제가 있었다. 같은 연구실에 나보다 1년 먼저 입학한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연구실에서 한국말을 쓰지 말라는 교수님의 경고 이메일을 받았다. 연구실 나간 지 하루 만에 그런 이메일을 받아서, 난 몹시 당황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본 미국인 여학생이 교수님께 울면서 얘기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영어를 써야 했겠지만, 어떻게 한국사람 둘이서 서로에게 영어로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참 야속했다. 그 사건 이후로 오히려 그 선배와 나와의 관계가 더 어색해졌다. 둘이 얘기하다가도 다른 동료가 연구실에 들어오면, 하던 얘기를 서로 멈추는가 하면, 같이 점심을 먹는 것도, 외출을 하는 것도, 너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없는 연구실이 더 맘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유학생활……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의 하루가 시작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교수님보다 일찍 나와서 연구에 몰입하고 있는 아시아계 학생들, 하나 둘씩 나타나는 미국인 학생들, 물론 외국학생들이나, 내국학생들이나 서로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이다. 커피타임을 한 시간 이상씩 가지며 온갖 얘깃거리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실험실은 두 그룹으로 나눠진다. 학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고 내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할 따름이다.


언제까지나 영어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영어개인교습을 받기로 했다. 시간당 $20이란 거금을 들이면서 미국인들과 어울리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만나 한 시간 동안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다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International student’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며 실험실 동료들과 맘껏 대화할 수 있는, 그들과 맘을 터놓고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영어만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과 친구가 되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쿼터가 시작한지 열흘이 지났다. 건물의 이름들이 낯설어 아직도 캠퍼스 지도를 가지고 다니며, 외국인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영어를 할 때마다 겁부터 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난.. 신입생이다!!!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면…… 이때를 또 그리워하겠지.


지금은 너무 힘들고, 하루에도 백만 번씩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이 그립고, 당장이라도 관두고 싶지만, 항상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보려 한다. 지금 포기하면, 내가 어디 가서, 또 무슨 일을 잘 할 수가 있겠는가…… 이겨내고 싶다. 견뎌내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기도한다. 지치지 말게 해달라고, 현재를 즐기게 해달라고 말이다.

[정대석] 새내기들에게

이코스타 2006년 10월호

매년 코스타에 참석하다보면 참석인원에 대해 분류하게 되는데 이제는 유학생이 없는 주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나와 있다. 미국에 머무르는 기간; 평균 어학연수를 위해 최소 육개월에서, 석사과정을 위해 이, 삼년을, 혹은 박사과정을 위해 오, 륙년을, 머무르게 되는 그 시간들은 익숙하지 않은 타문화권에서 언어장벽의 핸티캡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든 자신과 주위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교회를 가게 되고 동시에 무한히 허용된 자유라는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속에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나 또한 지난 팔년간 한인 유학생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봤고 또 청년부 안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청년들과 삶을 나누어 왔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들이 들었던 청년들의 여러가지 생각들과 자세들이 있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번째 나에게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던 생각은 미국에 와서 처음 교회를 다니던지 아니면 예전부터 교회를 다녔던지 상관없이 유학생들이 흔히 가지는 ‘난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니까 대충 예배나 드리고 사람들이나 사귀다가 돌아가야겠다’라는 것이다. 잘못된 나그네의 개념이 주인의식의 결여와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산물이다. 그 정체성의 시작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가운데 살게 하신다는 두가지 사실의 인식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자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올바른 나그네의 개념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안주하고 머무르려는 모습을 거부하는 것이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책임있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가운데 이러한 문제에 정답을 보여주는 인물은 요셉이다. 이집트에 팔려가 군대장관 보디발의 가정총무로, 그리고 감옥에 갇힌 감옥수로 자유가 없이 타인을 섬기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과 공간속에서 원망과 반항의 모습을 보인다던지 대충대충 주어진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 삶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종의 모습과 함께 맡겨진 삶에 충실하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두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교회안과 밖에서 이중적 삶의 모습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한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는 공부로서 사회적, 개인적인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하지만 다른 문화와 관습속에 평범하다 못해, 평균이하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유학생으로서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고 하나님과 타인들에게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을 나누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중심의 깊은 곳까지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과 아픔을 위로해주시고 도와주시길 원한다는 사실들을 가려놓는 마귀들의 방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위해서는 그분 앞에 진실되고 투명한 모습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을 바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으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얻게 된다. 성도들과의 관계속에서도 불완전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성도들에게 깊이 나누지 못하는 피상적인 교제만이 이루어 진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이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속으로 나아가게 된다.


유학생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계획을 학문을 통해 세상속에 실천해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 나그네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과 그 정체성위에 우리가 가진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또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투명성을 유지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어려움과 아픔을 회복하고 세상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