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 영적 지도자와 진실성 (Integrity)

최근에 함께 일하는 직원한 분과 함께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나만 든다면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Integrity라는데 동의하였다. 지도자가 진실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활동이 모래 위에 쌓은 집과 같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지도자의 진실함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 정직한 , 일관성이 있는 , 투명한 사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와 동일하게 행동하는 사람, 남이 보던 안보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진실된 사람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눈을 먼저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다. 


지도자가 진실해야 추종자들의 신뢰성을 얻고 영향력을 끼칠 있다. 창세기 19:14절의 롯의 이야기를 보면 롯이 그의 사위들에게 다가 심판을 경고했을 때에 그들이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이것은 평상시에 롯이 그의 사위들에게 신임을 얻을 만한게 진실한 태도를 가지지 못한 증거라고 있다. 그가 진실을 추구하기 보다는 타협하는 사람이었기에 위기의 순간에 진실을 이야기해 주는데도 그의 사위들이 롯의 말에 신뢰를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진실함을 포기하면 당장에는 성취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지도력의 법칙이다. 진정한 의미의 영향력은 진실함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진실성이 있는 지도자들을 사용하신다. 지도자가 많은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진실해야 한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연구한 풀러신학교의 클린톤 교수는 지도자들이 삶과 사역에서 도중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사역의 기술적인 이유나 전략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영성이 이유라고 하였다. 삶과 사역의 초반부에 진실성에 따라 사는 자세를 분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결과라는 것이다. 사역의 후반부에 오는 실패도 그 근원을 살펴보면 주로 처음부터 이런 진실성의 면에서 타협하고 넘어온 것의 산물일 뿐일 경우가 많다. 진실성을 타협할 때 즉각적으로 힘든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지도자로써 영향력을 잃게 된다.



진실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도자를 반드시 사용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진실성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과 다니엘이다. 요셉은 지도력의 중요한 자질인 꿈도 있고 또 실력도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였지만 그 보다도 그는 우선 진실된 사람이 었다. 부정한 유혹 앞에서 넘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행동을 하였다. 다니엘도 진실된 사람이었다. 자기의 신앙 양심을 쉽게 타협해 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신의 신앙 양심을 고수한 사람이었다. 다닐엘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가 진실함을 가졌을 때에 즉각적으로 구원해 주시고 그의 영향력을 넓혀주셨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에는 그가 진실되게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행동한 이 두 사람 모두를 귀하게 사용하셨다. 진실을 선택하는 순간은 힘이 들지만 또 때로는 즉각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올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신다. 우리가 진실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때에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 20-21절에서 권면하기를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라고 하였다.



내가 진실성에 있어서 경험한 하나의 좋은 예를 보여주겠다. 우리 월드미션대학교가 미국에서 기독교 대학 연합체의 회원학교이다. 이 단체에 가입하기 위하여 우리 학교가 오랜기간동안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고 특히 감사(Team Visit)를 받았다. 이 단체에서 학교의 회원학교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Integrity이다. 때로는 학교가 아직 모든 면에서 성숙하지 않았어도 앞으로 그런 부족한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 나아가는 모습이 있으면 학교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감사를 할 때에도 심판하여 떨어뜨리려고 하는 자세보다는 도와주고 세워주어 어떻게던지 회원학교가 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도와주고 부족하더라도 세워주려고 하지만 하나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Integrity을 갖지 않을 때이다. 학교가 행정을 하면서 속이던지 혹은 어떤 면으로던지 진실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절대로 회원학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학교 운영에 있어서도 Integrity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진실할 수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닐수도 있다. 진실성은 근본적으로 건강함이다. 우리 자신이 진정한 의미로 건강할 때에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 자유함 속에서 진실할 수가 있다. 진실함은 우리의 인격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춘 모습이다. 우리의 인격이 깨어지고 문드러지고 왜곡되지 않고 건강할 때에 진실함은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격의 건강함이 필수적이다. 진실함이란 어떤 문자나 글짜에 충실한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정한 의미로 자유하고 건강하고 풍성할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실되게 행동하게 된다. 결국 우리의 인격이 건강해야 한다. 우리 인격이 왜곡되지 않고 건강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죄의 저주로 부터 진정한 의미로 자유함이 있을 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힘을 발휘하지 않을 때에 우리 자신이 진정한 의미로 건강해지고 진실해 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진실함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연스런 산물이다.



진실함은 효과적인 지도력의 근원인 동시에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모습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는 하나님을 닮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함을 위하여 부르셨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 사람은 거룩함을 추구하게 된다. 우리를 부르신 자의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 가운데서 때로는 성취를 위하여 진실함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성공과 성취도 진실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워런 위어스비는 말하기를 아무리 많은 명성도 그것이 진실함을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4:16절에서 고백한다.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궁극적으로 설 것을 의식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꺼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코스타의 사명과 조직

코스타의 사명과 조직










KOSTA/USA 의 사명 (mission)



수련회 및 지속적인 사역들을 통하여 유학생 및 한어권 학생,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삶의 전 영역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게 하며, 그들이 속한 사회와 교회의 섬기는 지도자로 세운다.


첫째,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복음화한다.


둘째, 복음화된 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게 한다.


셋째, 학생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연구와 신앙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한다.


넷째,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된 학생들이 조국사회와 미국, 그리고 전 세계를 복음적이고 총체적으로 변혁하는 동시에, 주님의 지상대명령에 헌신하게 한다.


다섯째, 이를 위하여 KOSTA 는 복음주의적 교회들과 강사들, 그리고 수많은 무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헌신 그리고 자발적인 재정적 지원을 통해 학생들에게 필요한 최상의 교육과 훈련, 교제와 동역의 장을 제공한다.



KOSTA 운동의 특징


말씀 중심


KOSTA 는 말씀 중심의 운동이다. 이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말씀으로 이루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 KOSTA 운동을 통하여 학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하여 삶과 세계관을 변화시켜 다시 다른 이들을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로 서게 되는 운동이다.


자원봉사 운동


KOSTA 는 자원봉사 운동이다. 강사들을 포함한 섬기는 사람들이 보수를 받지 않고 섬기며, 함께 참여하는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섬김들로 함께 운동을 이끌어 간다. KOSTA 를 섬김으로 자신에게 유익이 되거나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고, 모든 관심과 주목이 하나님 그분께 가도록 하는 섬김의 모습을 강조한다.


평신도사역 지향, 학생운동


KOSTA 는 학생운동이다. 이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학생을 섬기는 운동을 의미한다. KOSTA 의 모든 사역과 섬김들은 이 학생운동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KOSTA 를 섬기는 강사, 목회자, 평신도 지도자들의 소중한 섬김이 KOSTA 를 움직이는 매우 중요한 힘이지만, 이 섬김들은 모두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학생을 섬기는 일을 돕기 위한 것들이다.


교회 내에서 직임으로서의 목회자들의 섬김이 중요함을 믿으나, 결국 세상을 직접적으로 섬기게될 평신도들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KOSTA 를 통해서 세워진 사람들이 섬길 장 (field) 은 교회 안을 포함한 온 세상임을 인식하여, 평신도들이 각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전 피조세계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게하는 섬김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선교 지향적


아 직 복음이 다다르지 못한 지역과 사람 , 인종집단과 국가등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들을 섬기기 위한 선교 사역을 지향한다 . KOSTA 가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단체는 아니지만, 많은 선교단체들과 동역하여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한다.


복음주의 연합운동


KOSTA 는 복음주의 운동이다. 이는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그리고 로잔언약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성경적 신앙및 신학 체계이다. KOSTA 는 복음주의의 스펙트럼의 다양한 사람들과 목소리들을 포용한다.


KOSTA 와 신앙고백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과 지역교회, 단체들과 동역하며, 성경적 신앙 안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섬김과 목소리를 존중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KOSTA 운동을 주도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KOSTA 운동의 주체가 되어 KOSTA 의 사명 (mission) 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한다.


또한 KOSTA 는 운동 (movement) 이다. 19 세기 후반과 20 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났단던 학생자원운동 (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 이 그랬던 것 처럼, KOSTA 는 집회나 조직, 모임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KOSTA 조직


국제이사회  


홍정길 목사   코스타 이사장 / 남서울 은혜교회 담임
이동원 목사   코스타 부 이사장 / 지구촌 교회 담임
김규동 목사   요한동경교회 담임
김동호 목사   높은뜻숭의교회 담임
김원기 목사   미국 워싱턴 휄로십 교회 담임
김창근 목사   무학교회 담임
박성수 회장   ( 주 ) 이랜드
방선기 목사   이랜드 직장사역연구소
오정현 목사   사랑의 교회 담임
옥한흠 목사   사랑의 교회 ( 현 ) 원로 목사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담임
이승장 목사   학원복음화 협의회
이찬수 목사   분당우리교회 담임
정민영 선교사   Wycliffe Bible Translators – Asian Diaspora 동원사역 대표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담임
황형택 목사   강북제일교회 담임

KOSTA/USA 공동대표


강동인 박사, 강준민 목사, 김형균 목사, 권준 목사, 노창수 목사, 송영선 목사, 안종혁 교수, 윤국진 목사, 이일형 박사, 채종욱 선교사, 황지성 박사


미국 상임이사


김두화 목사, 김만풍 목사, 김원기 목사, 박광철 목사, 이원상 목사


미국 후원 이사회


장범 집사 ( 후원 이사장 )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흔히 근본주의의 시조라고 불리워지는 메첸(Machen)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붙여진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호칭을 거부했다. 그는 “왜 교회의 위대한 신앙이 하나의 주의(-ism)라고 불리워져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우리는 마찬가지 이유에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칭호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칭을 선택한 이유는 복음적 정신이 곧 기독교 정신의 핵심임을 믿기 때문이다. 실로 “복음적 정신없는 기독교는 역사적 실체를 가진 운동이 될 수 없다.”(Kenneth S. Kantzer)


복음주의 신앙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시작된다. 다드(C. H. Dodd)는 복음의 케리그마에 대하여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새 시대가 도래한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그의 재림에 의하여 심판주와 구속주 되심,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성령과 구원의 선물이 수여됨“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복음의 정신은 마틴 루터(M.Luther)에 의해 점화된 종교개혁에 의하여 1) 오직 은혜 (Sola Gratia) 2) 오직 믿음(Sola Fide) 3)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4)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us)라는 고백으로 나타났다.


바울은 로마서 1:2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5:1-4에 의하면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심”의 사건을 뜻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까닭이다(롬4:25).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의 좌익은 그리스도의 인격(Person of Christ)을 강조하였고, 반면에 우익은 그리스도의 사역(Work of Christ)을 더 많이 강조하였으나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역사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신앙의 공통분모를 찾았다.


때때로 복음주의 신앙은 근대적 신앙운동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하나 복음 주의 신앙의 중요성은 현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 비역사적 신앙을 지닌 복음주의자들은 피상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버나드 램(Bernard Ramm)의 지적에 우리는 동의하며, “고대교회와 중세교회에 대한 무관심은 복음주의의 역사를 16세기 이후로 밀어 낸다”고 경고한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의 충고에 우리는 공감한다.


복음주의의 역사적 전통은 신비주의적 동방교회보다 교의주의적 서방교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은 단순한 로마 카톨릭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복음적 케리그마에로의 회복운동이었다고 믿는다. 개혁자 칼빈(Calvin)은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프랜시스 1세에게 헌납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쟁이 교부들의 권위에 의해 판명된다면 대부분의 논쟁에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된다고 천명하였다. 개혁자들은 대체로 말씀이 교회보다 선행한다고본 성서론,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한 이신득의에 근거한 구원론, 은혜의 분배자나 관리자가 아닌 은혜의 도구로써의 교회론에 근거하여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다.


20세기 초의 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에 발흥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신앙의 본질을 성서나 신앙고백에서가 아닌 신께 대한 절대의존감정에서 찾은 슐라이어마허(Frederich Schleiermacher, 1768-1834)는 ① 종교의 절대성이나 초자연성을 회의하고 ② 자연과 은총의 구별을 제거하고 ③ 기독교 계시의 유일성을 포기함으로,리출(Ritschl, 1822,1899)에 이르러서 보편구원론(혹은 만인구원론)의 길을 열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1909년에 “The Fundamentals”라는 책이 출판되어(1917년 Los Angels Bible Institute에 의하여 재판) 오늘날의 근본주의 신학운동이 출범됐는데, 이 운동은 당시에 ① 성경의 무오성 ② 신뢰성 ③ 진정성 ④ 충족성을 변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 후의 근본주의자들은 대체로 ① 성경의 무오류 ②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③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④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 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신앙고백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근본주의는 그 전투적 성격 때문에 적지 않은 문화적, 윤리적 과오를 범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① 개인 경건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② 신앙을 강조한 것에 반하여 전통을 포기한 것 등을 비판하였다. 자신이 복음주의자인 케네스 칸저(Kenneth S. Kantzer)는 ①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 ② 한사람이 구원받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식으로 기독교 윤리를 단순화한 점 ③ 종말론에 대한 좁은 해석으로 분리주의와 패배주의를 가져왔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근본주의 혹은 복음주의의 분파를 살펴 보면 ①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②세대주의적 복음주의 ③ 보수주의적 복음주의 ④ 개혁주의적 복음주의 ⑤ 오순절적 복음주의 ⑥ 웨슬리안적 복음주의 ⑦ 전통적 복음주의 ⑧ 진보적 복음주의로 대별할 수 가 있을 것이다. 1942년에 형성된 NAE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 o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 의하면 ①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신학사상의 대립을 첨예화하지 않으며 ② 종말론에 대한 교의적 입장을 이슈화하지 않고 ③ 비본질적 교리문제에 대하여 자유할 것 ④ 자유주의 신학을 거절 ⑤ 성경해석에 있어서 융통성 있는 이해를 촉구하고 ⑥ 현대학문의 결과를 적극 수용하고 ⑦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사회윤리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2차대전후 에드워드 카넬(Edward Carnell), 해롤드 오켕가(Harold Ockenga), 해롤드 린셀(Harold Lindsell), 윌버 스미스(Wilbur Smith), 칼 헨리(Carl Henry),케네스 칸저(Kenneth Kantzer) 등 신학자들은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과 함께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를 중심으로 소위 자유주의를 경계하고 근본주의를 반성하면서 신복음주의로 일컬어진 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소극적으로는 세속화를 극복하면서 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의 성숙한 사회적 표현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들이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앙의 현대적 특성으로는 ① 성경의 무오성과 복음정신의 수호 ② 비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 ③ 학문과 사회에 대한 관심 ④ 교회의 역사성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이 대표하는 가장 최근의 신앙고백은 1974년도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던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채택한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역사적 토양에서 자라난 복음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적 크리스찬(World Christian)과 한국 크리스찬(Korean Christian)의 이상을 함께 간직하며 로잔 언약에 근거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

신앙고백

1.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신적 영감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써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있어서 무오류하며,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법칙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2.우리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며 주 되신 영원한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3.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신인으로서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자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계신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이 예수의 이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다고 믿는다.

4.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께서 이 지상에 성도들의 예배와 교제, 교육과 봉사, 그리고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허락하신 우주적 교회와 지역교회의 책임과 중요성을 확인한다.

5.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이 시대에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와 뜻이 있음을 믿으며, 따라서 조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민족 복음화를 위한 사명과 우리 조국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사명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6.우리는 한국의 지식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배움의 특권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학문과 삶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여기에 부응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인간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복음전도가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우선 순위인 것을 믿으나 전도와 사회참여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가지
영역인 것을 또한 고백한다.

8.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주께서
세우신 교회지도자로서의 감독(목사)의 직임을 믿으나, 동시에 교회의 필요 불가결한 여러 지체인 평신도의 중요성을 믿는다. 우리는
성서의 만인 제사장설에 근거한 평신도의 자리와 책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9.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몸으로 볼 수 있게 권능과
영광 중에 재림하시어 그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들의 생의 전부를 지배하시는 주님의 권위에
즐겁고 기쁘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시는 일에 우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려고 한다.

코스타의 역사

코스타의 역사

출발 – 복음주의 학생운동


1980 년대, 한국의 기독학생운동의 성숙과 성장이 이루어지고, 복음주의 교회가 성장하면서 그를 통해 훈련된 복음주의 학생 운동가들과 목회자, 신학자들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들중 일부는 한국에서 복음주의 신앙운동의 영향을 깊게 받은 후 미국에 유학 혹은 이민을 와서 미국 내의 새로운 신앙운동의 발판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미국 내의 한국인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 의 비전 ) 조국사회의 복음적 변혁을 위해 섬길 사람들을 양육하며 (‘민족’ 의 비전 ) 나아가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주도할 (‘학문’ 의 비전 ) 미래의 크리스챤 지도자들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비전은 미국 한인교회와 한국교회로의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의 기도, 지원, 헌신에 힘입어 1986 년초 KOSTA(KOrean STudents in America, 북미 유학생 수양회 ) 란 이름으로 약 200 여명의 유학생들이 Washington DC 근교의 Summit Lake 에서 모여 “우리는 어디로 ” 라는 주제로 첫 복음주의 유학생운동 집회를 갖게 되면서 영광스럽게 현실화되었다.


성장과 성숙


그 후 “누가 이 때를 위하여 (87)”, “조국에서 땅끝까지 (88)”, ” 어떻게 살 것인가 (89)”, ” 이 시대를 새롭게 (90)”, ”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 (91)”, “2000 년대를 향하여 (9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93)”, “복음과 민족 (94)”, “새 시대를 향한 리더쉽 (95)”,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 (96)”, “거룩과 능력 (97)”, “예수, 신세대의 참 소망 (98)”,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99)”, ” 새 천년을 여는 믿음의 개척자들 (2000)”,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 (2001)” 그리고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 (2002)”,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2003)”,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 (2004)”, “Korean Student Diaspora (2005)”, “Entrusted Reconciler (2006)”,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Not to be conformed, But to be transformed) (2007)”,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The Way to Live – Thy Kingdom Come) (2008)” 의 주제로 미국전역에 흩어져있던 대학원생들이 주로 모여 매년 수양회를 갖게 되었다 .


이 KOSTA 운동은 하나님과 조국 앞에서 자신들의 할 일을 찾고자 고민했던 유학생들에게 복음과 구원, 조국과 민족, 학문과 신앙의 통합, 그리고 세계비전에 대한 꿈과 도전을 제공해왔을 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소명을 확인하며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한편 이 복음주의적 유학생운동의 불길은 해를 더해가면서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유학생, 청년들에게 번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범세계적 비전을 포용하면서 그 이름을 KOSTA(KOrean STudents Abroad) 로, 그리고 또 다시 Korean Students All nations 로 바꾸게 되었다. KOSTA 의 열기는 점차 확산되어, 유럽 , 영국, 일본으로 확장 되었고, 그 후 러시아, 중국, 캐나다, 호주, 남미 등 전 세계에서 KOSTA 가 개최되게 되었다.


Korean Student Diaspora


KOSTA/USA 는 2005 년 20 주년을 맞이하면서, 미국내 청년 학생의 새로운 현실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유학생과 비유학생의 구분이 불분명해졌고 미국 내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들의 섬김의 장이 더 이상 ‘ 조국 ‘ 으로 국한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이에 KOSTA/USA 는 섬겨야할 대상을 Korean Student Diaspora 로 새롭게 정의하고 시대에 맞는 섬김을 하게 되었다. 이는 21 세기에 들면서 많은 선교 전문가들이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세기말의 미완성 선교과업의 수행을 위한 중요 전략적 교두보로 인식하게 된 것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 미완성 선교과업의 영역을 타문화권 선교를 포함한 인류의 삶의 총체적인 영역으로 바라보면서, KOSTA 는 이제 조국과 지구촌의 모든 족속들과 그들의 모든 삶의 영역, 즉 문명과 문화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회심이 이루어지며 창조주 예수그리스도의 주권이 선포되어지는 그 날을 꿈꾼다. 

이에 구체적으로, KOSTA 는 우리시대에 우리를 한국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신 목적을 인식하여 한반도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복음화와 변혁을 위해 섬기는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미국 내에 흩어져있는 다른 여러 족속의 학생들을 향한 복음주의적 학생운동의 부흥을 일으키실 때에 영광스러운 도구로 쓰여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