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시카고 코스타 간증문 1

코스타 간증, 간증하신 분의 요청으로 익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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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매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가 무대공포증이 있다거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무엇을 의미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에 간증을 부탁 받았을 ,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마음속에 자리했던그거 내가 하고싶다라는 생각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서 지금 자리에 오른 순간까지도 저로 하여금 망설이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저의 간증을 이렇게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믿게된 제가 가장 확실하게 하고 있는 경험은두려움입니다. 나는 이제 죄된 본성에 따라 없는 것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에 제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쩌면 평생을 걸고 싸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거침없이 살았던 인생과 맞물려 있겠습니다.

지금은 학문을 하고 있지만, 학자의 길을 걸으리란 생각은 하질 못했습니다. 여기 유학생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어릴 적부터 성실히 공부하고 꿈을 키워서 이곳까지 나오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저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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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이 우연한 일들이 겹쳐서 이곳까지 나오게 경우라고 있겠습니다.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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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때까지 지기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공부를 잘했고 남들 웃기는 일을 좋아해서 전교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반내에서는 인기가 많았던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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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이 되면서 친구와 급격히 가까워졌다가 종국에는 절교를 하게 되는데, 시점과 사춘기가 맞물려 매우 혹독한 사춘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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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을 보내게 됩니다. 친구문제로 한참을 방황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가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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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말이었는데, 성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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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에서 6등급으로 하염없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3학년에 접어들면서 성적을 올리지 않는한 대학가기도 힘든 성적으로 떨어지게 되다보니, 대학 까짓껏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던 같습니다. 아무리 1학년 때까지 착실히 학교공부를 했다고 해도 그렇게 2년을 숫제 놀았기 때문에 사실 대학엘 있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수능으로 입시제도가 처음으로 바뀌었는데,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라 해는 특별히 1차와 2 두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복수지원이 시작된 때였습니다. 그런데, 1 시험이 고등학교 과정 기초부분이 많이 다뤄져서 예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친구들과 시험 전전날까지도 재수할까 장사할까 그런 이야기들 하고 그랬던 같은데, 점수가 제가 어울리던 친구들과 너무 차이나게 나온 것입니다. 딴에는 내가 의리를 지키마하고 지원 안하고 같이 재수하마 했는데, 엄마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막내이모가 줄기차게 쫓아다니면서 한두군데만이라도 혹시 모르니까 지원하자고 졸라대는 통에 이모가 골라주는대로 아무 성의없이 대학입시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짜 기대도 안하고 생각없이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건데, 막상 합격소식을 들으니 갑자기 재수하기가 싫어지더군요.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친구들에게 집에서 대학가라고 난리가 났다는 어정쩡한 핑계를 주고서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설프게 들어가게 되었지만 대학은 제게 바꿀 없는 소중한 수많은 경험을 주고 의식을 성장시킨 장이었음을 부정할 없습니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학업에는 전혀 뜻이 없었고 음악과 영화, 그리고 문화/사회 비평 분야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많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레 여행할 기회가 많아지고 여행을 통해서도 세상의 여러가지를 배우고 느낄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활동에 매진하는 동안 꿈같던 시간이 흘러 어느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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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어 졸업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루는 날이 좋아서 잔디밭에 앉아 신문을 펼쳤는데, 세계의 뇌과학 연구에 대한 특집 연재 기사가 있어서 관심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과선배 하나가 제가 잔디밭에 있는걸 보고 인사할 들렀습니다. 슬쩍 보더니 우리학교에도 뇌과학 센터가 생겼으니까 관심있는거면 한번 가서 알아봐라했습니다. 사실 뇌과학이라는 말도 신문보고 알았으니 관심있는 것도 아닌데뭔지도 모르면서도 뇌과학센터라는 말이 근사하게 들렸던 같습니다. 그냥 그래볼까하고 아무 생각없이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어디에 전화를 누구에게 하는지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한터라 상대쪽에서 누굴 찾으십니까 하는데 제가 글쎄요 했으니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죠. 뇌과학연구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했을 전화 받으신 분이 친절하게도 새로오신 교수님이 계신데, 학생을 마침 찾고 있으니 만나보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연락이 닿아 새로 오신 교수님을 찾아 센터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해서 신경과학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고, 실험실을 떠나 미국에 나오게 되어서도 하게된 공부의 재미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게 됩니다. 뇌기능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고 연구접근 가능한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부터 알게되는 것보다 알고싶어지는 것이 많아지니 학문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에 미쳐 그렇게 년을 지내오게 됩니다. 어떻게 미국으로 나오게 되었나, 시애틀이었나에 대한 얘기도 한참이 길지만, 결론적으로는 우연한 일들이 계기가 되어서 시애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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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공부를 하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었고, 그렇게 열정을 다바쳐 하루하루를 보낸는 것이 참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있는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제가 하는 연구들이 다음 연구들의 중요한 기초가 있고,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을 들고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후학양성에 힘을 보탤 있다면 인생에서 몇가지 쯤을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있을만큼 제게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시애틀에 와서 얼마되지 않아. 우연한 계기로 형제 분을 만나 성경공부를 소개받게 됩니다. 제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좋아 소개를 받은 것이지 사실은 형제분과 초면에 시간동안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했습니다. 그것이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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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일이라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는 기억하진 못합니다희미하게 기억하는 것은 창세기의 창조부분은  여러 신화의 내용들이 뒤섞여있는 형태라는 점에서 단순한 민족 신화에 가깝다는 내용과, 기독교가 종교로서 갖는 배타성에 대한 것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런데 논쟁 중간에 분이 자존심을 긁는 발언을 합니다. 제가 몰라도 한참 모르면서 아는 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너무 기초가 없어서 논쟁이 되질 않는다며 번만이라도 공부에 나와서 공부해보고 다시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 없겠냐고 하셨죠.
아니오했어야 하는데, 자존심이 건들어지는 바람에
그러죠라고 대답을 것을 계기로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겠다고 입밖으로 내면 해야만 하는 성격탓도 있고, 도대체 내가 모르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믿음이 없는 상태로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삼년이 넘는 시간을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성경의 말씀이 크게 마음에 남는다거나 믿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을 믿을 있다는 것인지 더욱 의문스러워지기만 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구절이 바로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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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믿을 없는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었죠.

그래도 한가지 마음속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면, 성경공부 때문에 성경을 읽게 되면 읽게 될수록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개념이 마음에 자꾸 걸리적거린다는 점이었습니다. 한번은 성경공부하는 중에 성경책만 펼치면 왠지모르게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어서 기분이 나쁘다라는 말을 했더니 형제분이 그것이 그러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말을 했을 당시에는 막연한 어떤 것이어서 어떻게 생각해봐야 하는건지도 알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뭔가가 마음에서 걸리적거림이 있는건 분명하다 정도였을 겁니다. 그것때문에 처음으로 성경공부 이외에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같습니다. 저를 성경공부로 인도하신 분이 다니시는 교회를 따라 나서게 것도 즈음, 그러니까 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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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순이었습니다. 설교는 성경공부에서 갖기 힘든 통찰이 있게 하는 같아 좋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교를 듣는 중에 목사님이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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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구절을 잠깐 읊조리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런데 순간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속에 어떤 울림, 마치 보신각 같은 종이 바로 옆에서
하고 울린 것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서 나오는데 무슨 일인지 앉았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난 같다는 느낌은 드는데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라 도무지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후부터였습니다. 무엇인가 다르다라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제일 먼저 감지한 다른 점은 성경을 읽을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려고 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마음에 망치로 내리치듯이 들어오는데 그것은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읽는다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없는 상태입니다. 모든 오감을 통해 말씀이 들어온다고 하는 것이 가장 비슷한 묘사가 아닐까 합니다. 성경을 통한 그러한 경험이 날마다 진행되면서 안에 이미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부정할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실로암에서 눈을 뜨게 소경처럼,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누가 이렇게 하게 합니까?’라고 물을 ,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부정할 없는 대답이 되어 역시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릴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에겐 완전한 치유자로서의 주님이셨고, 온전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저는 눈을 뜨면서 처음에 보기 시작한 것들은 어제까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날의 친구는, 문화는, 그리고 과학은 제가 마음을 다바쳐 사랑했던, 무엇과도 바꿀 없던 내가 섬긴 우상이었습니다. 우상들을 위해서 그토록 죽을 힘을 다해 살았던 모습은 당시엔 반짝였을지는 모르지만 영원할 없는 그런 것이었음을 보게됩니다. 그렇게 때는 분명 즐거운 삶이었고 의미있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안에서 너무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모습을 인식하게 때마다 동시에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제게 있어서 이것은 너무 놀라운 경험입니다. 저는 항상 살아 숨쉬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억지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 이상 나는 살아있다라는 생각을 해보질 못했는데,
나는 살아있다라는 인식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어제까지의 모습이라는 영상과 더불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복잡미묘한 상태를 저는 어떤 말이 형용할 있을지 아직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냥
감동이야 정말‘, 정말 감동입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신 하나님이셨고, 얼마나 오랫동안 저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셨는지에 대해 느낄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생명을, 하루하루 풍성해지는 삶을 그냥 받기만 해도 되나, 내가 뭐라고, 내가 뭔가 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이 많이 들지만, 딱히 내가 있는가 말이다 그저 이렇게 주시는 풍요함을 누리는 마리 양으로 살면서 감사할 밖에는

시카고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창문너머 풍경을 보고 있다가 주체할 없는 감동에 사로잡혀서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고생을 했습니다. 된통 했습니다. 저와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같이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그동안 나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구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추해서 내린 결론이거나 미루어 알게된 그러한 일이 아닙니다. 그냥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깨달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 주셨다라고 밖엔 저는 표현하질 못하겠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대한 분들은 기에 곧잘 눌린다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기라는 것은 힘차고 강한 좋은 기운도 있지만, 독기와 같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기운도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말하는 기운은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악에 받히거나 자존심이 상해서 열나게 되면, 스스로도 기를 다스릴 없어서 곤란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충돌 혹은 대폭발이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러한 자신의 단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기 쉽지않은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저를 경험한 우리 모임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을까요? 모습은 예쁘지 않은 모습입니다. 예쁜 사람 사랑하기야 쉽지만, 미운 사람 사랑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명백하게 제게 감동으로 알려주심은 그런 나를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구한 영혼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온전한 하나님을 만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목메어 말을 잇지 못하게 정도로 감동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곁에 두신 하나님, 그렇게 일하신 하나님을 깜냥으로 도저히 측정불능입니다. 경험을 통해 제게 보이시는 하나님은 사랑과 풍요의 하나님입니다. 저는 우리 지체들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내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정말 거저 받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받는 주체할 없는 은혜를 두고 제가 있는 일이라곤 감격에 겨워 엉엉 소리내어 우는 일이 전부입니다. 지금은 제가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하고 헤어지게 이후로 거의 울어본 일이 없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번씩 목놓아 울게 됩니다. 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심장이 터질듯한 감동 속에서 그러합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어야 일에 대해 저는 어때야 하는가가 제게 수행해야할 남은 명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때입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홍정길 목사, ‘코스타 한계 인식하고 욕심 부리지 마라’

미주뉴스앤조이의 코스타관련 기사입니다.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2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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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코스타 한계 인식하고 욕심 부리지 마라’
‘터닝 포인트 제공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2008년 07월 10일 (목) 12:02:53 [조회수 : 674]     박지호 ( simpro )      

          
 
      ▲ 홍 목사는 코스타가 “개인의 소명과 신앙을 발견하고 구도자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타의 산파 역할을 했던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그는 코스타를 향해 ‘복음 전도 집회’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라고 주문했다. 이것저것 욕심 부리지 말고, 제 역할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홍 목사는 복음주의자라 자칭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코스타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코스타가 세워지던 과정을 조곤조곤 설명하던 홍 목사는 뜻하지 않게 코스타가 세워졌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커져버렸다고 회고하며 웃었다.  

“그때는 한 번 모이고 말거라 거라 생각했지 계속 모일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첫 수련회 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부어주시더라. 그래서 다음해에 또 모이기로 했고, 그렇게 어느새 23년이 흘렀다.”

홍 목사는 “모든 사역이 자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코스타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자원봉사 운동이다. 강사비도 없고, 차비도 없다. 보수를 받지 않고 섬기며 함께 참여하는 운동이다.”

지난 20년 동안 코스타에 어떤 열매가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홍 목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을 이어갔다.

“지금 한국에 뜻 있는 단체에서 헌신하는 사람의 많은 숫자가 코스타 출신이다. 예를 들어 연변과학기술대학이나 한동대학을 일구어낸 주축들도 모두 코스타를 거쳐 갔다. 기독교 학문 연구회나 남북나눔모임 연구위원도 그렇다. 코스타 출신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요구하는데 결국 코스타 출신들이 그런 일을 해나가고 있다.”
 
한번 은혜 받고 끝나는 일회성 수련회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예 코스타의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터닝 포인터만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코스타 모임을 하자고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자기가 속한 교회나 직장으로 돌아가야지 코스타라는 곳에 메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홍 목사는 오히려 연속성을 가지고 운동으로 이어가자는 목소리에 대해서 “운동은 운동으로 끝나야 한다. 한계를 인식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홍 목사는 또 “여러 가지에 초점을 두면 신경이 분산된다. 우리는 복음주의자다. 개인의 소명과 신앙을 발견하고 구도자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복음 전도와 해외선교를 위한 코스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코스타가 일회성 수련회 한계 탈피하려면’

미주뉴스앤조이의 코스타관련 기사입니다.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0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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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가 일회성 수련회 한계 탈피하려면’
우종학 박사, “현장의 고민 담지 않으면 복음 왜곡될 수도”
2008년 07월 08일 (화) 13:10:54     박지호 ( simpro )      

” 최근 통계를 볼 때 매년 70% 정도가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풀어 말하면 70%는 코스타에 다시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코스타는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 ‘혹은 매년 똑같은 수양회’라는 것이다. 나는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으로 구성된다 하더라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을 위한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는 않겠다.”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버리는, 한 번 참석으로도 다 소화해낼 수 있는 내용의 수양회라면 말이다. 그러나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화 된 유학생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연구와 신앙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면 일주일의 수양회를 통해서 이 목표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한지 평가해야 한다.…” (우종학 박사가 2001년에 쓴 ‘내가 본 코스타’ 중에서)

          
 
      ▲ 우종학 박사는 “삶의 각 영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지지 않으면 복음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며 “비록 코스타 수양회의 초점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현장의 문제와 세계관의 훈련을 지속해서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 코스타에 처음 참석했던 우종학 박사가 코스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해내며 내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그는 수련회 직후 “다시는 코스타에 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만일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을 하는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사로 그리고 강사로 코스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생각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코스타가 변한 것일까.
 
우종학 박사는 예일대학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의 물리학과에서 거대 블랙홀을 연구하고 있다. 1999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코스타와는 2000년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해 가을부터 티엠(task-major의 약자 : 신앙과 전공의 통합의 일환으로 만든 사역) 사역을 맡아서 간사로 활동했다.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을 때 기대가 컸다. 대학원생 수련회라면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여지없이 깨졌다. 그저 대학생 선교단체 수련회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코스타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웃음) 주제가 개인 영성에 한정되어 있었고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든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기독교적 세계관에 맞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조장이었던 우 박사는 조장 평가회에 참석해 “대학원생들이 모이는 모임인데 왜 교회 부흥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느냐? 삶의 현장에서 활동할 전문인들이 모이는 코스타는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만들어 갈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코스타를 떠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 박사가 내뱉은 쓴소리가 계기가 되어 우 박사는 코스타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코스타는 우 박사에게 간사로 사역할 것을 제안했고, 우 박사는 코스타가 하나님나라 운동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스스로 고민했던 부분들을 코스타에 담아내는 시도를 했다. 실제로 우 박사가 사역을 시작한 시점부터 코스타에 몇 가지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전공 분야별로 깊은 차원의 논의와 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티엠(task-major의 약자)이라는 사역의 등장이다.
 
“코스타 사역의 초창기부터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전공과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전문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 전에도 전공별 모임이 있었지만 더 강화된 의미에서 티엠 코스타 사역이 시작되었다.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가치와 질서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유학생들을 준비시키고 돕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실패한 것 같다.(웃음)”
 
이번 2008년 프로그램에도 티엠 세미나가 한 순서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시간 할애나 참석자의 숫자를 감안해볼 때 우 박사가 소망했던 그림보다는 기능이 축소된 셈이다. 우 박사는 이를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코스타 수양회 자체가 전도와 선교 그리고 부흥 집회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코스타 수양회는 한마디로 ‘복음 전도, 선교 동원, 부흥  집회’였다. 어쩌면 그것은 유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생긴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실제로 매년 참석자의 약 10% 정도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약 10%정도가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한다. 그리고 더 많은 참석자들이 헌신을 다시 결단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그러면 각 전문 영역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에 무게를 두기가 어렵다. 작년부터 강사로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다른 강사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현장에서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강사들은 코스타가 뭔가 다른 것들을 공급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장의 문제가 더 담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를 갖고 있다. 이 한계는 코스타가 어쩔 수 없이 지고가야 하는 짐이 아닌가 싶다.”

우 박사는 코스타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위한 고민의 장으로서의 역할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지만 코스타를 통해서 많은 유학생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며 코스타의 순기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미국에서 유학생들이 처해있는 영적 지형도를 보면 코스타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인 교회들의 상황은 더없이 열악하다. 오랫동안 영적 갈급함에 굶주리던 학생들이 십여 시간씩 운전을 해서, 혹은 어려운 경제적 형편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털어 회비를 내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코스타로 모여든다. 고독과 상처의 문제로 패잔병처럼 코스타에 왔다가 복음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보는 일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코스타 참석자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볼 때 코스타의 이런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역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코스타가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안타깝지만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횡이다.”
 
코스타는 2005년에 20주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더 이상 유학생과 비유학생의 구분이 불분명해졌고,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도 전부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에 코스타는 섬겨야 할 대상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새롭게 정의하고, 시대에 맞는 섬김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코스타의 핵심가치가 희석될 순 있겠지만, 하나님나라라는 큰 흐름에서는 볼 때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20주년을 맞으면서 코스타가 추구했던 ‘민족’, ‘조국’이라는 개념이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조국과 민족을 섬기라는 측면의 강조가 의미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미국에 남게 되고 해외로 뻗어나가면서 민족과 조국이라는 영역으로 한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유학생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사역의 대상에 담게 되었다. 물론 코스타의 사역 대상이 넓어졌다는 점 때문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가치는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계층의 한인 디아스포라가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간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코스타에 대한 우 박사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증이다. 코스타에 대한 그의 애증은 무관심으로 가지 않고 대안 창출을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코스타가 직면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 박사는 코스타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 박사가 코스타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의 코스타가 일종의 신병교육대 역할을 했다면,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사역이 생겼으면 좋겠다. 부흥 집회와 복음 전도, 선교 동원 대회로 치르는 동시에 신앙과 삶의 통합을 모색하는 파생 사역이 생겨나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그리스도인을 많이 만들어냈지만 그들이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데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적 본성에 충실한 악착같은 사람들로 낙인찍혀 버렸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 하나님나라가 도래할까? 코스타도 마찬가지다. 삶의 각 영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지지 않으면 복음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비록 코스타 수양회의 초점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현장의 문제와 세계관의 훈련을 지속해서 담아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파생 사역을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 적용되는 하나님나라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켜나갈 수도 있고, 여러 전문 분야에서 좋은 롤 모델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KOSTA USA 2008’, 성과와 한계

미주 뉴스앤조이의 코스타 관련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5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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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 USA 2008’, 성과와 한계

코스타 통해섬길 대상발견할 있어야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기자

            

 

미주 한인 청년 집회인 KOSTA USA
2008’이 6 30일부터 나흘간 시카고에 있는 Wheaton
college에서 열렸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시대에 바른 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였다. 첫째•둘째 저녁집회는 갈보리교회 노진준 목사가, 셋째•넷째 저녁집회는 OMF 한국 대표인 손창남 선교사가 설교했다.

저녁집회 전에는 ‘일터의 현장’이란 순서에는 평생 노숙자 사역에 몸담아온 김진숙 목사와 서울대학교에서 ‘국제예배’를 만드는 기여한 김명문 교수, 코스타에서 5지역 멘토를 맡고 있는 김동록 박사가 나와 사역을 소개했다. 오전에는 화종부 목사가 차례에 걸쳐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해서 강의했다.

 

선택식 세미나는 42개의 주제로 펼쳐졌다. 기본 영성에 대한 부분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제자 훈련 7, 기초 신학 6, 가정 상담과 선교가 각각 5개씩 편성되어 있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서부터 영성훈련, 귀납적 성경 연구, 그리스도인의 직업과 소명, 유학 생활, 한국 타문화권 학생 선교 주제도 다양했다.

 

코스타는 1986 워싱턴DC 근교에 있던 유학생들의 연합 수련회가 모태가 되었다. 홍정길이동원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미국 내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민족’을 위한 변혁의 일꾼으로 양육하며,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주도할 그리스도인들을 세우자는 취지로 방향을 잡고 이끌었다. 코스타는 20주년을 맞으면서 사역의 대상을 유학생으로 한정하지 않고 한인 디아스포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자취 감춘 고지론…치유와 회복 기능 감당

 

올해로 23살을 맞은 코스타. 규모가 커지고 역사가 깊어지면서 코스타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도 다양하다.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 코스타를 둘러싼 일반적인 선입견 중에 하나다. 이런 의식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고지를 점령하면 하나님나라 확장에 힘을 받을 것’이라는 식의 고지론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카고 대회에서는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나 고지론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학생과 비유학생의 비율이 2:1 정도 되기 때문에 유학생만을 고려한 메시지를 전할 없는 현실적인 배경도 있지만 한국 교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복주의와 성공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부에서도 작용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이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강사들의 설교 핵심이다.

 

“교회의 능력은 주님의 자취를 따라갈 진정한 능력을 발휘한다. 교회가 세상이 말하는 힘과 세상에게 충분히 많은 것들을 보장받아서 세상을 바꾼 적은 번도 없다.(화종부),

“사단은 돌을 떡덩이 되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드러낼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대신 화려한 성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속삭임이다.(노진준),

“고지론은 2000 기독교 역사에 지속적 반복적으로 나타나 교회를 실추시킨 시행착오다. 교회가 영적 흡입력 대신 권력과 명성을 얻고 고지를 점령하면 복음 전파에 힘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과 역사는 오히려 정반대임을 증거한다.(정민영)

 

한국의 대형 교회 목회자를 데려다 강단에 세우는 대신 미주 한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현지 목회자를 주강사로 세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일부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세를 등에 없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 미국이라는 다인종, 다문화,
다세대 사회에서 살아갈 한인 디아스포라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치유와 회복의 장으로서의 코스타의 역할도 무시할 없었다. 전문 상담 사역자와 강사들명이 동원되어 4
5 동안 375건을 상담했다. 참석자
1,600 중에 550~600명이 1 이상 상담을 받았다는 통계다. 진로에 대한 문제가 105, 이성교제가
104, 신앙생활 84,
인간관계 76, 가정 상담 14 순이다. 진로와 이성교제에 대한 참석자들의 고민의 비율이 단연 높았다. 38

코스타에서 상담하고 1 넘게 상담이 지속되면서 후속 조치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진로와 이성문제와 같은 상담이 있는 반면 강사들이 “차마 상담 일지에도 쓰고 싶지도 않다”고 털어놓을 만큼 심각한 경우도 많았다.

 

코스타 통해 ‘섬김의 현장’ 발견할 있어야

 

20살을 훌쩍 넘긴 코스타가 마냥 칭찬만 듣고 있을 없는 일이다. 우종학 박사가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는 일회성 수련회’라는 비판이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다는 점은 코스타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이런 인식은 코스타 내부에서도 가지고 있다. 권오승 코스타 총무간사도 “어떻게 하면 일회성 수련회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연속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있을 것인가가 현재 코스타가 직면한 가장 고민이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권오승 총무간사는 “요즘 학생들이 피동적이기 때문에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젊은 세대가 거대 담론에 대한 관심이 없고 자발성이 약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우종학 박사는 코스타 수양회 자체가 “전도와 선교 그리고 부흥 집회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며 코스타의 방향 설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코스타의 부흥 집회적인 특성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강조점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과, 적용점이 전도와 선교로 귀결되는 것으로도 드러났다. 42 주제별 세미나 중에 절반이 넘는 세미나가 개인 영성에 관련된 주제로 편성됐던 것이나, 상담 중에 건이 이상이 진로와 이성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상담이었던 , 조별 모임 어려움이나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얻을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던 것도 이번 대회가 부흥 집회로서의 기능이 강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00

 

첫째•둘째 날에는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경험하는 삶에 대해서 강조했지만 셋째•넷째 저녁집회에서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헌신을 타문화 사역에 대한 헌신으로 연결시키면서 ‘하나님나라 헌신’은 ‘전도와 선교’라는 등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무시할 없을뿐더러, 하나님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 정도로 여기지 않고, 지금 순간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해야 하며, 그것은 전도와 선교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발현이 전도와 선교로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텍스트에 해당하는 다양한 ‘섬김의 현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개인이 진로를 선택하거나 배우자를 만나는 일에도 적용되지만, 세계에 만연한 분쟁의 현장에도, 사회적•경제적 불의로 고통 받는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은 우리의 일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있다.

 

작년 코스타에 참석했던 A 씨의 경우다. 고등학교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금융 기업에 다니는 30 중반의 직장인이다. 코스타에 참석해 왜곡된 신앙을 거두고 온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코스타에서 해외선교에 헌신했기 때문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선교지로 떠나야 하는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해외선교를 나가는 대신 ‘내 옆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부터 섬기기로 했다. 이후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장애인 선교단을 찾았고, 시간과 재정을 나누며 꾸준히 장애인들을 도왔다. 매칭 펀드(직원이 비영리단체에 일정액을 후원하면 금액 만큼 회사가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 이용해 후원을 하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위에 소개한 A 씨의 사례는 단순한 예지만 이런 작은 사례가 바로 하나님나라 운동의 출발점이며, 하나의 새로운 모델일 있어야 한다. 코스타에서 인식한 하나님나라를 미주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일상에서 느낄 있는 이슈들에서부터 선포할 있도록 돕자는 것이며, 코스타가 그런 다양한 경험을 나눌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의식이 없고 수동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나라는 이렇게도 만들어갈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면 참석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도 이끌어낼 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대한 정의를 조금만 확장하면 다양한 이슈나 모델을 한인 교회와 미국 복음주의권 내에서 얼마든지 찾을 있다. 그러면 대상은 목회자나 선교사일 수도 있지만, 세탁소나 네일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일 수도 있다. 코스타를 통해 내가 하는 (공부) 통해서 ‘섬길 대상’을 찾을 있어야 한다. 그러면 고민을 함께 엮어갈 동지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유정] 광우병사태와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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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찹찹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도,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국민적 촛불시위도, 종교계의 대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슴 시원한 해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천민 민주주의’ 등 유희적 논쟁으로 매체가 들끓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의 소리가 더 깊은 불신의 병을 낳을까 염려됩니다. 광우병을 둘러 싼 몇몇 입장에 묘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시민들과
야당, 국민대책본부가 여당과 정부,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성난 목소리, 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습니다. 플래카드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난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질책을 넘어 인격 모독입니다. 대통령을 무슨 길거리 촌부 취급합니다. 참여정권을 심판한다는 국민의 힘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뽑힌 대통령이 100일도 안 되어 그 국민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국민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될 소지가 있는 소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을 배려한 최선의 신뢰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민의 입장에서, 민초의 마음을 읽으려는 낮은 자세도 없었습니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이나 목회자가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것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비 신앙인도 인간의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성속의 이분법적 태도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최근 사회에 기독교 불신과 안티세력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반기련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에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를 한국교회 총체적
난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자정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이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며, 교육의 핵심개념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인간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존엄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형수라도 형틀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의 순간만큼은 엄숙합니다. 바로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기치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숙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입니다. 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좌파우파의 논쟁도, 물고 뜯기가 끝없는 국회의 야당과
여당도, 권력의 추가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동하는 시국현장에서도, 노동자와 사주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인간존중의 언어와 소통의 미는 없고
비난과 반목질시만 난무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취급했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쳐야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 돼요! 이 병은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합니다!” 병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말합니다.
“당신은 부정한 여인이요!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마시오.” 종교적 기준으로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가능과 절망, 비난의
소리에 갇혀 있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을 박차고 무리를 뚫고 예수께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진 순간 즉시 혈루병의 근원이
말랐고 병이 나았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12년 동안 짓밟혀 있던 이 여인의 가치는 그 짧은 순간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외형적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난, 불신, 정죄, 절망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이름 난 대형교회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술적 권위, 종교적 허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솔직한 한
생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예수 복음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신념의 근본적인 회복과 변혁을 가능케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위기가 오히려 실종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유정
/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CCM 남성듀엣 좋은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