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 “영적 지도자의 저널링”

 

 

기록의 힘은 참 크다. 한번은 학생 한 분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였다. 3년전 쯤에 단기 선교를 함께 갔다가 왔는데 그 날짜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혹시 아는가 하고 물었다. 내일 학교에 가서 서류를 살펴서 알려 주겠다고 하였더니 내일 아침 이른 시간에 관공서에 그 기록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급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나의 소식통이 생각이 났다. 한 달에 한 두번씩 지도력에 관한 글을 적고 나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과 기도 제목을 적어서 사람들에게 이 메일로 보낸 것이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3년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그때 갔던 단기 선교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었다. 이런 기능으로 사용할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는데 기록해 둔 것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였다.

 

클린톤 교수는 성경 속에서 느혜미아를 관찰하면서 느혜미아서가 하가랴의 아들 느혜미아의 말이라라고 시작되는 데에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성경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예언자에게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느혜미아는 선지자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적어놓고 있는데 그것들이 성경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클린톤 교수는 저널링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삶에 발생하는 일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또 하나님의 관점 속에서 모든 일들을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클린톤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저널링의 중요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저널링을 날짜를 기록해두면 하나의 벤치 마크가 될 수가 있다. 삶에서의 중요한 성장 혹은 쇠퇴 등을 볼 수 있다. 둘째는 기록을 해두면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기억할 수가 있다. 저널을 가끔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하나님을 새로이 찬양할 수 있게도 하고 그가 이전에 하신 것들을 되돌아서 기억할 수도 있게 해 준다. 세째는 저널링을 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우리가 배운 것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네째는 저널링은 우리로 하여금 갱신하고 회복하게 도움을 준다. 우리 신앙 생활이 점점 더 나태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에 저널링이 우리를 일 깨운다. 우리가 자라나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수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저널링은 다른 이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우연한 기회부터 저널링을 시작하여 지난 5-6년에 걸쳐서 저널링을 하고 있다. 나는 저널링의 여러가지 형태 중에서 주로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 그리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적는 편이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운동, 아내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그 외의 식구들과의 관계, 강의, 멘터링, 행정, 배움, 글쓰기,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도력에 관하여 글을 보내는 소식통 등의 저널을 하고 있다. 이런 저널링을 통하여 내가 배운 또 하나의 진리는 저널링을 하면서 관찰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수영을 배우면서 저널링을 하고 있는데 매일 몇 가지씩 깨달은 점을 적는다. 그런데 저널링을 하면서 그 날의 배운 것을 되돌아보고 복습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배울 때에도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개념화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냥 놓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소식통을 적으면서 지도력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주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글을 쓰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모아진 글들이 지도력에 관한 나의 글의 많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글도 그런 관찰들이 모아져서 된 글이다.

 

내가 하는 저널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저널링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쌓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을 드린다는 것과 저널링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하나님께 드린 구별된 시간 만큼 쌓인다면 동시에 기록해 둔만큼 쌓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글로 적으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스타일이다. 기도하다가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없을 때에도 글로 나의 마음을 쏟아내다 보면은 어느샌가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느껴지고 또 하나님의 뜻이 하나씩 실타래 플리듯 구별되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도 나의 확신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는데 물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하였으면 얼른 바꾸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의 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확신을 흔들릴 때에는 이전에 기록한 기도를 보면서 재확신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 영적 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틀 중에 하나는 저널링이 아닌가 싶다. 저널링을 통하여 나는 더욱 나 자신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지난 학기에 학생들에게 교수법을 가르키면서 이론적으로 공부한 뒤에 학습 토론을 위하여 “Freedom Writor” 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한 백인 젊은 교사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Inner city 에 있는 학교에 부임하여 아이들을 교육하는 이야기이다. 폭력과 인종간의 갈등으로 물들고 교육가들조차 포기해 보린 아이들 속에서 학생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게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고 듣게 해줌으로써 소망이 없던 아이들에게 그들의 버려진 삶을 회복하고 서로간에 참을성을 배우고 세상을 변화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 속에서 교사 Erin Gruwell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저널을 쓰게 한다. 교사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나아가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영성 생활 속에서도 때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쉬운 때가 많다. 그러나 저널링을 통하여 나 자신의 참 소리, 갈등, 내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 http://lead2serve.tistory.com/

[최주희] 성 내 과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직업 혹은 어떤 위치의 사람이건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년 전만 해도 어려운 사람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택시 기사 분들이고 다른 부류는 의사선생님이었다. 

  택시 기사 분들이 어려운 이유는 교통법규와 상관없이 속력을 내거나 빨간 불에도 마구 지나가는 담대함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백미러로 보이는 기사님의 무섭고 짜증나는 눈빛이 나의 입을 막고 숨을 죽이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시다.  의사선생님들도 어려웠다.  흰 가운을 입은 최고의 전문가를 코앞에서 일대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주눅
들었다.  또한 과묵한 얼굴과 많은 사람들을 대하느라 지쳐있는 표정을 보는 것은 마치 질병을 가진 내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도, 그것이 무식한 질문이 되어 의사선생님의 피곤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머뭇거리며 눈치 봐야 했다.  물론 의사선생님들 역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작은 병원이라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마인드와 서비스 정신이 필수이고, 행여 병원에 대한 입소문이 부정적으로 나기라도 한다면 하루아침에 환자가 급격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택시 기사 분들도 의사선생님들도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의사선생님에 대해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거기에 영향을 미친 병원이 바로 성 내과이다.  성 내과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유성구에 위치하고 있다.  성 내과에서 진료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두 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지루하다.  하지만 진료를
받고 나올 때는 기다림의 불편함은 간곳없고 만족과 감사의 표정이 사람들 얼굴에 역력하다.  바쁜 일상에서 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 병원으로 굳이 사람들이 오는 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겸손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여의사 성원장님에 대한 표현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늘 환자를 환한 웃음으로
맞는다.’  ‘진료하시는 동안 환자들은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느끼며 감격한다.’  ‘한 사람을
진료하는 시간이 길다.  그리고 절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하신다.’  ‘궁금한 것 마음 편히 물어봐도 되고, 의사선생님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상하게 설명하신다.’  ‘질병에 대한 다방면의 질문과 접근으로 큰 병을 미리 예방케 하는 명의(名醫)
이시다.’  ‘환자로 하여금 염려보다는 소망을 가지게 한다.’…

  성
원장님은 특별히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따뜻하게 대하신다.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근처 과기대(KAIST)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 가족, 외국인 근로자, 선교사, 그리고 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바위이기도 하다.  그들을 진료하시는 동안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때문에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 마음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훈훈함은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에 들었던 일화이다.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김 집사는 직장 일로 인해 아내와 어린 자녀보다 조금 일찍 한국에
귀국하였다.  아내는 집과 여러 짐 정리를 하고 귀국하려 하였는데, 그 사이 갑자기 어린 자녀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한국에
있던 김 집사는 놀란 가슴으로 성 내과에 가서 상담을 하였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그 증상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며 처방한
약을 먹이면 괜찮을 것이라 안심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며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전화 걸라고 하셨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 마음 헤아려 주시고
함께 염려해 주시는 의사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했다며 김 집사가 자랑하였다.  성원장님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사랑과 섬김을
다 하신다.  희귀병을 앓는 어린 아이 위해 좋은 약을 찾아 먼 나라 마다 않고 친히 방문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성 내과를
찾는 사람들은 그분을 ‘유성의 슈바이처’라 부른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평범한 하루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상생활이다.  이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가장 쉬운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