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희]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하고 논하려고 한다면 아마 밤을 새워도 다 정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성도에서 목회자나 신학교 교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와 문화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할 때 찬송가 가사처럼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의 한계를 넘는 깊음과 넓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한국기독교를 바라볼 때 한 가지 염려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한 면으로만 치우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용납과 용서, 필요를 채우시고 보호해 주심, 장래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심 등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한다.
이로 인한 결과로 사람들은 큰 부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유익에만 마음을 두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 날에는 다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부지런히 죄 짓지 않는 거룩한 삶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에 대해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한국교회 안에서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설교는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고 목회자들은 이런
교인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라(고후7:1), 죄와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라(히12:4),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마10:26),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다(눅 12:3),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다(고후5:9-10),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 마지막 심판
날에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준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그들의 필요를 외면한 사람들은 영벌에 들어갈
것이다(마25:31-46)…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구절들이 성경 곳곳에서 마지막 심판 날에 대비하여 우리들의 거룩과
사랑의 삶을 위해 경고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사랑에 대해서는 슬며시 눈감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성 상실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2008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가톨릭과 불교에 대한 신뢰도
35.2%, 31.1% 인 것에 반해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18%로 나타났다. 더욱이 종교가 없다는 응답자들 중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7.6%에 그쳤는데 이는 가톨릭 37.9%, 불교 29%에 비하면 너무나 낮은 수치이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조사 뿐 아니라 좀 더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개개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보자. 우리의 눈은 그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우리 교회에만 머무르고 있고, 기도제목은 돈과 성공과 건강에 갇혀있다. 도덕적인
측면을 보자면 더 놀랍다. 굳이 통계수치를 내밀지 않더라도 혼전 성관계(이것은 간음이다. 간음은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모든
성관계를 의미한다.)를 즐기고 있는 교회 다니는 젊은이들, 외도와 폭력으로 멍들고 있는 교인 가정, 절제를 모르고 원하는 대로
충동적으로 돈을 사용하다 채무관계에 놓인 성도들을 우리 주변에서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하나님의 사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경고’이다. 이제는 이 말씀에 귀 기울이자. 그러면 우리를 향해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큰 외침’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제 가던 길을 빨리 멈추고, 좁지만 진리의 길로 돌이키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다.

[코스타 보이스 2009 – 코스타 상담실] 진로 및 직장생활

코스타 상담실에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가상의 코스탄과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실린 의견은 멘토님 개인의 의견이며 코스타와 소식기관의 의견은 아닙니다.

진로 및 직장생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너무 제 적성과 맞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그만둘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제대로된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같은데,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신앙적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로에 대해서 상담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선택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습니다. 일을 시작한 이후 너무 적성에 안 맞아서 괴롭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게 뭘 의미할까요. 직장을 적성에 맞추어 찾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이겠지만,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을 여유가 없는 냉혹한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낭만적인 관념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일(노동)은 하나님이 창조세계가운데 저희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죄로 인해 왜곡된 세상속에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제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노동이 생존에 위협을 주는 현장이 되어버릴 때 저희는 당황하고 불안하게 되며 또 세상에 편승하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노동 그 자체가 신성하고 또 소명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노동의 현장에는 정작 저희 영혼을 병들게 하고 가치관을 비트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한 힘이 또아리를 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성에 맞는다 안 맞는다하는 조금은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직장은 왜곡된 이 세상에서 여전히 신음하는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또한  예수님을 닮아 새로 태어난 저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 탄식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그루터기 씨가 그런 탄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곳이 되기를 도모하는 신실함으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땅입니다. 여기에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용기가 필요한데요, 이 용기,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는 세상권세를 세상권세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거스리고 이기신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즉 샬롬에서 온다고 봅니다. 이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샬롬이 저희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용기를 줄 것을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평화, 세상을 이기신 용기의 가시적인 결과는 십자가 처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평화, 세상을 이기는 힘, 여기에 신앙인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적인 적성때문에 하는 고민이 심각하실 때, 또는 직장에서 여러가지 옳지 않아 보이는 일들을 인해 어려우실때,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한 일군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직업/진로의 선택에 적성을 고려하는 것은 상식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난 왜 적성이 맞지 않는 직장을 택해서 이고생일까 라는 고민은 어떻게 보면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과 무관한 직장에서 견뎌내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적인 능력부족의 문제는 정말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전 인생을 걸쳐 능력을 극대화 하고 탁월해야만 성공이라는 인생관을 주입받아 왔거든요. 성경에 ‘크게 되어라’ ‘큰 꿈을 꾸어라’라는 명령이 없는데도 청년들을 위한 많은 조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청년들을 선동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크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약속이지 명령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무슨 약속인가 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사는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직업/진로/배우자 선택이 저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A냐 B 냐 하는 것보다는 A 나 B 를 선택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직업/진로 선택 (심지어 배우자 선택까지도 포함해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성경적 가치관이거든요. 마치 아이가 성숙한 성인이 되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그 선택을 하도록 허락해 주시며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읽은 책에 공감이 되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믿음이 모든 문제를 분명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믿음은 확실성이 아닌 신뢰의 문제이다.” 세상적인 능력의 탁월함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부산물로 보아야 능력과 그 결과만 원하는 무리함으로 인한 인생의 어려움과 갈등되는 마음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동록 박사, 2지역 멘토

[코스타 보이스 2009 – 코스타 세미나] 김수지 총장

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김수지 총장 – Christian Professional Woman

1. 김수지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수지 교수입니다. 연세대간호대학/이화여대간호대학 교수, 학장 여러 보직을 거쳐 원래 전공인 정신과환자의 재활간호를 위해 서울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 서울사이버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2.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신앙간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믿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순전한 어렸을 아이들 노랫소리가 나는데 가보니 교회더라구요. 당시 놀이할 공간이 없었는데, 그럴때 교회 노래 배우고, 성경 배우고, 교회가 신앙 아니라 삶의 제공터였습니다. 교회에서 자라다가 2 거듭났습니다. 이전에는 착하게 살면 하늘 나라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요한 복음 3 니고데모에 관한 말씀을 듣고 굉장히 도전을 받았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가르쳐주신대로 매일 하나님과 대화. “good morning” 하고 말씀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도하고 적고, 저녁에 뒤돌아 보며 대화하고 기도했는데. 좋았습니다. 남편도내가 만난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았는데, 당신은 그렇까?’  하는 궁금증으로 말씀을 보다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없이 없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은 기독교가 진리다라는 것을 한번 가정하고,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이 초등학문임을, 인간은 부족하고 죄인이라는 ,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자녀로 누리는 감사와 기쁨, 어떤 일을 하라고 알려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시고, 보내주시고.. 그렇게 삶의 현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이번 코스타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강의를 맡으셨습니다.강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더십이라는게 조직원들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도록 이끄는 지도력 또는 통솔력, 성과를 창출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여성이 영향력을 행사할 있는 위치/직위에 있어야 하며, 현재 여성들이 확실한 소명감과 뚜렷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의 가치가 점점 증가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급속한 변화 (유비쿼터스, 전문가시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확산) 가운데서 크리스천으로, 여성으로서 그리고 전문직업인(전문가)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어떻게 있는가를 소개하고 토론합니다.

4. 여성들이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기독교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특별히 계발해야 점들이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섬김, 사랑, 멘토링, 제자화 등을 기독교 리더십이라고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려 자신의 은사를 발휘할 있는 전문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봅니다인간사이의 친화력, 선천적인 돌봄 능력을 키우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있을 것입니다.

5. 코스타를 포함해서 기독교 공동체 안에 여성이 지도적인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어느 모임이든 의사결정 하는 역할에서 여성이 적은 것이 사실인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있을까요?

다른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문명 이전에는 모성사회에서 부성사회로, 그리고 부성사회에서 여성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권력 이양이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여성 목사나 장로와 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직위가 여성에게 주어지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이며, 실제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 리더십을 가진 분들이 사회의 변화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성리더십을 주셨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뤄나갈 있도록 해주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시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시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여전히 전통적인 것에 얾매이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에게 유치부 교사 같은 자리는 주어지고 있지만 여성의 리더십이 최대한 발휘될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경직되고, 어려운 것도 남성중심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은사를 계발하여 리더십을 발휘할 있는 위치에 있으면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평화롭게 해결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은 다른데 크리스천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여성이라는 ,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직업인의 세가지 역할을 있도록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그리스도인인 남편과 함께 살더라도 남편과 동등한 자유와 시간을 누리지 않습니다. 너무 일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역할이 분담되고, 남편이 아내를 많이 도와 주고 사회 생활에서도 여성과 조화를 맞추어 있도록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노사 문제에도 너무나 남성의 강함이 문제입니다. 이는 감정의 문제인데, 이런것들은 여성이 리더십을 가지면 좋아질 있을 것입니다.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리더십이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데, 권력을 이양하고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역할을 분담하여야 합니다.

6. 코스타에 참석하는 많은 기혼부부들에게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는데 필요한 점에 대해서 조언 말씀 해주시죠.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결혼은 부족한 배우자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라는 . 결혼생활은 세상의 어떤 (부모형제, 직장, 교회, 국가…) 보다. 우선적인 관계적 삶의 근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없는 중요한 역할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역할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우리 부부는 죽음 외에 어떠한 경우에서도 헤어질 없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일심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셋째아내와 남편의 기둥이 서야 아이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편하다. 서야 한다. 특히 한국 남자는 .. 아내는 남편이 세워진 만큼 선다. 기둥이 같이 서야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적이라는 점입니다.

7. 지금 서울 사이버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어떤 비젼을 갖고 일하고 계신지, 그리고 진로를 위해 고민하는 코스탄들이 어떤 비젼을 갖고 결정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바람직할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세기를 유비쿼터스, 전문가 시대입니다흩어져 있는 선교사나 선교사가 아니라도 시공간을 초월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지식을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지식 사회를 따라갈 없습니다인터넷으로 수업할 있기에 지식을 언제나,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있습니다. 사이버 교육은 글로벌 시대의 로운 교육방법입니다. 우리의 집회도 오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들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수요자의 필요를 채우고, 선교자들, 크리스천 사업가, 전문인에게 지식을 공급하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진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전공 분야에서 하나님의 부름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조건에 따라 맞지 않는 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야를 본인이 좋아해야 하고, competent해야 하고, 하나님이 특정 직장에서 나를 부르시는가, 직장이 나의 기독교 세계관과 맞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맞지 않아도 선교사적인 사명으로 있지만, 그런데 만큼 강하지 못하면 중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곳에서 구체적인 미션이 무었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월급으로 정하는데, 월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다.

한편, 하나님은 전문직을 통해서 전도하기를 원하시는데, 전문직도 해야 합니다. 엉망으로하고 전도 없다. 학교에 그런 분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는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전도를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띕니다. 학교가 offilne이라 국내에 방문하는 외국에 있는 분이 오시는데, 이분을 찾고 싶다고 합니다. 너무 성실하게 도움을 주시고, 분은 틀림없이 기독교인인구나 생각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얼마나 기쁘시겠습니다. 코스탄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코스타 보이스 2009 – 기획기사] 주제서평

Brueggemann, Walter, Peace (Understanding Biblical Themes), Chalice Press, 2001


 


기독교의 핵심어를 선택하라고 평화 제시하는 신학자의 설명을 듣고 싶다면 Brueggemann Peace (Understanding Biblical Themes) 권한다. 그에 따르면 샬롬은 창조의 의도, 질서이며,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이며, 메시아의 통치의 핵심이며, 교회의 메세지,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새로움 (newness)이다. 그리고, 샬롬은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세계의 깨어진 관계가 원상태로 회복되는 근본 질서를 핵심적으로 정의하는 단어이다. 성서적인 평화는 인간의 내적인 평안을 넘어 모든 관계에서 화평케 하는 의도적인 과정인 것이다.


 


평화에 대한 설명은 신약성경에서 다양하게 발견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이땅에 회복되는 , 평화가목적으로서 아니라 자체가 과정으로, 수단으로서도, 그리고 목적으로서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평화를 이뤄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고 평화의 태도를 유지해나갈 것을 강조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Shalom Church 구약의 비젼, 예수님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 구약의 선지자들이 제시하는 비젼을 평화의 방법으로 이땅에 적극적으로 구현해가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비젼을 갖고 산다. 기독교인들의 비젼의 핵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주로 고백하는 예수님이 가졌던 샬롬의 비젼, 성경이 증거하는 샬롬의 질서, 비젼을 향해 사는 (Living Toward A Vision, 책의 원제목)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어야 하겠다. 삶을 결정한 사람들, 비젼의 의미를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삶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한다


 


Swartley, Willard, Covenant Of Peace: The Missing Peace In New Testament Theology And Ethics, Wm Edermans, 2006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 윤리에서 평화라는 주제가 중요성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학문적 주제로서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규범으로서도, 의미의 깊이와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경시되어왔다. 그러나 주제는 4복음서뿐 아니라, 바울의 서신들, 요한의 서신들, 그리고 일반서신들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어오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이다.


 


복음서와 서신, 계시록 각권을 샬롬 (Shalom) 에이레네(eirene)라는 관점에서 개괄한 , 저자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신학(Theology Of Peace) 의미를 탐구한다. 평화의 윤리를 실천한 예수님을 본받는 , 그리고 도덕적 기준의 근본으로서 윤리적 의미를 제시한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에 대한 신약 전체의 통일된 관점에 관심이 있는 경우 책의 전반부를, 근래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평화주의 전통의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경우 책의 후반부를 추천한다.


 


N. T. Wright, Surprised by Hope, 2008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IVP, 2009


 


Surprise by Hope 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부활, 교회의 미션에 대한 설명이자, 새로운 접근이 제시해주는 신약성서의 전체에 대한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전통적인 입장의 기독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지만, 좀더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신학적인 논증으로 설득력이 더해진 설명을 제시한다.  Part 2 6장부터 11장은 저자의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설명이고, Part 3 12장부터 15장은 결론이자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함의에 대한 설명이다. 기존의 기독교 변증에 비해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한 기독교에 대한 설명은 역사적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이원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있고, 교회의 역할도 기존의 이원론적인 태도와 활동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미션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개인주의적 구원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교회에 대해서 거시적인 전창조질서 차원의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전인류적인 교회의 미션을 제시한다


 


이런 설명은 그리스도인의 용기의 근거 전통적인 신앙의 근거, 삶과 죽음의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 삶의 무의미성에서 벗어날 있는 근거가 된다. 한편 책의 내용이 코스타의 핵심가치와 공명하고 있다는 점을 금방 확인할 있다. 코스타가 강조하는 삶의 현장에서의 예배, 신앙의 요체로서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역사적인, 신학적인 연구로서 근거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깊이 알수록, 우리의 전체를 그리스도인으로, 통합적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점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해주며, 목회적으로 방향을 지도해준다.


 


Dawn, Marva, Powers, Weakness, And The Tabernacling Of God, Wm Edermans, 2001 마르바 ,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교회, 복있는사람, 2008


 


마르바 던은 성경의 연구를 통해 현실 윤리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룬 “예수의 정치학”의 하워드 요더의 제자이며, 프랑스의 개혁주의자인 자크 엘룰을 사상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권세들에 대항하기 위해 교회가 약함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권세를 십자가와 부활로 이기신 그리스도의 약함의 자리가 약함 위에 하나님의 권세가 내주(tabernacling)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눈으로 약해 보이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에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순종할수록 약해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에 회의와 절망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의 질서 속에서 나약한 모습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시며 (tabernacling), 약함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진전시키신다는 성경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그런 절망을 버릴 있게 한다. 오히려,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약함이 죽음의 표시가 아닌 부활의 예증임을 알고 용기를 가질 있다.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진리의 약함에 회의를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한다.


 


Stackhouse, John G., Jr., Can God Be Trusted: Faith And The Challenge Of Evil, IVP, 2009


 


세상의 무질서 속에, 악이 선을 이기는 모습 속에, 선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쉽다. 그리고 신뢰에 바탕을 용기를 잃기 쉽다.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evil) 고통(suffering) 존재 앞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용기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전지전능하시며,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동시에 악의 승리를 내버려두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악의 문제 (problem of evil) 또는 신정론 (theodicy)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답이 주어져왔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대한 회의도 제기되어왔다. 이런 생각의 프레임 속에서 대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시각을 돌려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가라는 질문을예수님이 악을 어떻게 이기셨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직접적으로 신정론에 대해 대답을 하기 보다 악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지 직접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의 , 죽음, 그리고 부활은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악을 이길 하나님의 승리 속에서 현재의 무질서와 악의 승리, 고통에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