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길] 당신의 전공은 무엇인가?

누구를 만나면 흔히 받는 질문이 직업에 관한 것이다. 어떤일에 종사하냐는 질문에 나는 흔히 대학 교수라고 짦게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대학교수라는 대답과 함께 금방 되돌아오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전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역시 주저치 않고 “치료
레크리에이션” 혹은 “레크리에이션 치료”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지내면서 나의 대답은 적어도 이랬다. 그리고
그같은 대답은 나의 삶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 하고 있었다. 나를 나로 정의 지을 수 있었던것도 바로 전문 분야와 그 분야에
종사하는 교수라는것으로 나를 철저히 국한 시켰던 것이다. 내가 예배자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하는 귀한 사명은 교회나
성경공부에서나 고백해야하는 그런 악세사리로 여긴것이다. 

누구든 이제 내게 전공을 묻는 다면 나의 대답은 전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나의 대답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은 레크리에이션 치료와 예배 입니다!” 예배라는 새로운 전공이 내 삶에 따라 붙으면서 사실상 요즘 전공에 못지 않게
예배를 많이 생각하고 묵상하며 삶의 실천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전공 과목을 파헤치고 연구할때 나는 나의 다른
전공인 예배에 대한 지식과 태도를 가지고 학문에 임하게 된다. 글을 쓸때도 그렇고 강의실에서 강의 할때, 학생들과 상담할때에도,
교수회의 에서도, 학술지 논문심사중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그분께 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흠뿍 받는 일이다.
이같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고 가는 친밀한 사랑으로 인해 예배는 기쁨과 감동이 반드시 따른다. 그리고 나의 죄와 이땅에 만연한
죄의 흔적들로 인하여 눈물 흘리며 회개도 한다. 무엇보다도 예배는 나를 최대한 낮추고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나는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만큼 나를 더 알아 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해질 수록 내가
공부 하는 대상인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진다.

또 다른 나의 전공이 예배 인지라 나는 “레크리에이션 치료”와 관련된 제반 활동영역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예배가 전공인
나로서 대충 강의 준비를 하고 들어 갈 수 없다. 예배가 전공인 나는 나의 다른 전공인 레크리에이션 치료에 관한 글을 쓸때 대충
끄적거려 낼 수 없고, 남의 생각을 이리 저리 조각지어 살짝 새롭게 하는 치졸한 글을 쓸 수도 없다.
학생들 상담 하고 만날때도, 전화 받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높아 지려고 강의 할 수도 없고, 내 이름 높이려고 글을
쓰려고 할 수도 없다. 이로 인해 인간 중심의 사로로 만들어진 지식체계안에서 죄의 흔적들을 들추어 내고 이를 하나님중심의 사고로
다시 비판하고 묵상하려 애쓰게 된다.

그래서인지 삶 자체가 너무 재미 있다. 교수생활에 신명이 난다는 말이다. 전문직의 삶이 예배임에 그곳에는 은혜가 넘친다. 은혜란
나의 공로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바, 공부를 하면서, 전공분야로 세상을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통찰과 지혜가
그때 그때 주어져 흥분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것이 쉽지는 않다. 많은 싸움이 있다. 예배의 태도를 잃고, 예배의 대상이
세상 혹은 내가 될때도 있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회개를 늘 동반하는 치열한 싸움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삶의 전환을 매우 감사히 여긴다. 노파심에 한가지 더 설명해야할것이 있다. 내가 말하는 예배라는
전공은 “예배학”이라는 전공을 칭하는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예배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예배학이라는 전공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예배의 삶을 사는 우수한 예배자로 살고 싶고, 영원한 예배가 있을 천국에서의 삶을 이곳에서 연습하며 더
누리며 살고 싶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배가 학문 분야 보다 앞선 주 전공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 하시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의 전공의 분야를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도구로 쓰라고 부여하신
것이기에 그것이 예배의 뒤에 물러 서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 둘은 분리 될 수 없는 하나되야 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하나이듯), 다시 말해 통합되어져야할 과제인 것이다. 이는 또한 이 세상에서 학문을 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이루어 내는 가장 근본이 바로 이원론의
삶 (삶과 예배, 전공과 예배)을 떠나, 신앙과 전공이 (또 신앙과 매일의 삶이) 일원화 되는 삶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학문과
삶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영위되어 지는것 이기 때문이다.

혹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전공과 예배가, 삶과 예배가, 주일과 주중의 삶, 교회 안과 밖의 삶이 다른 이중적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이영길] 날마다 더 작아 지고 싶다

어릴땐 더 크고 싶었다. 나보다 좀 더 크다고 뽐내는 이들의 머리를 주어 박고 싶어 서였다. 좀더 커지니, 그것 보다 더 크고 싶었던 것이 나보다 더 큰 이들이 있어서 였다. 

1984년 겨울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어릴때 처럼 몸이 더 크고 싶어 서가 아니 였다. 사회적으로 크고 싶었고,
영향력의 힘을 키우고 싶어서 였다. 그래서 학교 선정할때도 내게 능력의 키를 더해 줄, 영향력의 힘을 더해 줄 그런 학교를
찾았다. 지도 교수도 그렇게 힘있고 능력의 키가 큰 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대학 교수가 되어 서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로 가게
되었다. 별로 알려 지지 않은곳이였다. 하바드 대학이나 MIT, UCLA, 예일 등 좋은 브랜드 네임의 학교가 아니여서 어느
학교 교수냐고 누가 물으면 플로리다의 조그만 주립대학이라고 말을 했다. 어느 후배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 이름을 물어서 알려 주자
“선배님, 그것은 서울에 있는 국제대학* 같은 학교 아니예요?” 라는 질문에 내가 있는 대학이 모국의 서울대, 연세대, 및
고려대학 같이 유명세가 없어서 “서울에만 국제 대학이 있냐? 플로리다에도 있다!”고 대답하며 내심 시큰둥 했다 (* 나는
국제대학의 가치를 폄하하는것이 아니고, 나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고백을 하는것이다). Ohio University에서
교수할때도 모국의 선.후배들이 학교 이름 물을때 마다 꼭 토를 다는것이 있었다. Ohio Stat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Ohio University는 어디에???? 더 크고,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학교에 있다는 것으로
나의 교수 직분을 그냥 그렇게 가격을 싸게 정해 버린것이다.
이후 인디애나 대학에 왔다. 내깐에는 더 이상 올라갈곳이 없다고 여기던 그런 학교였다. 그러나 그 대학 역시 모국에서
잘 알려진 대학이 아닌지라 나의 어머니 조차도 별 입맛이 없는듯 아들이 일하는 대학에 대해 더 알려 하지 않았다. 공대출신의
어느 친구는 Purdu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Indiana University라는 대학은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붙여 주는 브랜드 네임으로 나를 저울질 하려 했다. 어디 까지가야 만족이 있을까? 얼마 만큼 더
올라 가야 마음에 진정한 기쁨이 있을까?
이제 칼빈 대학에 왔다. Calvin Klein이라는 브랜드는 알아도 Calvin College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것은 아주 보잘것 없는 학교로 보인다. 길에서 지나가다가도 학교 건물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아담한 학교이다. 우리어머니
표현을 잠시 빌려 표현해 보면 “학교도 작고 건물도 작아 보여서 손을 조금만 올리면 지붕을 만질 만한 조그만 학교”에 지금 와
있다.

그런데 달라 진게 있다. 전에는 더 크고, 더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 있는 대학을 동경하여 “상향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가치를 화장실에 flush시켜 버린지라 남의 반응에 관심이 없어 졌다. 하나님 부르신곳에 내가
서 있으면 그곳이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그곳이 내게 제일 가치 있는 곳이다. 내가 더 올라 가려고 하기 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
보다 그리스도가 더 높아질 일이 무엇일까를 순간 순간 생각하며 바라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를 부르신이가 너무 크기에 그
분이 가라고 하는 그곳은 내가 어떤 이름을 붙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그런곳임을 안다. 그래서 그곳이 내게 가장 적합하고
귀한 곳임을 은혜로 알게 되었다.

전에는 속아서 나의 성취를 위해 목숨걸고 애썼다. 많은 노력을 통해 나를 크게 하려고 애썼고, 그럼에도 커 보이지
않아서 나보다 더 큰 대학의 이름을 나와 동일시 시킴으로 나의 성공을 표현해 보려 애쓰기도 했다. 내 분야에서도 나의 이름을 돋
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명칭들을 추구 했다. 유명 학술지의 편집장, 연구소의 디렉터… 그같은 것으로 영향역의 범위가 큼을
표현하고 또 성공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달콤하게 즐겼던 것이다. 

내가 작아 지면 작아 질 수록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 커지고 위대해 지는 그 비밀을 이제는 기쁘게 여기며 살게 된다.
그리스도는 가난과 낮은 지위로 일생을 보내신 후에 거기서도 더 낮은 곳인 골고다로 가셨고, 너무나도 잔인한 곳에서 누워서
돌아가시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세워지신채 돌아 가셨다. 전에는 내 입에서 얕은 입술로 부르짖던것을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아멘하며
받아 들이는 진리가 있다. 다음의 말씀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
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 5-8).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곳, 비단 그곳이 남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런 곳이라도,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커지지 않으려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더 높아 지는 삶을 산다면 그것 역시 매일 작아 지는 삶일 것이다. 칼빈대학은 내가 몸
담고 있기에도 과분한 곳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한다. 그리고 그분만이 높아 지도록 오늘도
더 작아 지고 싶다. 나의 섬김의 목적은 내가 작아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아지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섬김의 능력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작아 질때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데 있음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다.

내 눈과 마음이 죄로 인해 이그러진 세상의 왜곡된 진리로 더 이상 속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더 작아 짐으로 그리스도가 삶속에서 더 커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 하루가 기쁘고 감사가 넘친다.

[이영길] 어떤 포기

1997
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오하이오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쿼터 (Quarter)제도 였기에 모든것이 빨리 돌아가 사실상 강의하기에
몹시 바빴다. 한 쿼터에 4개의 과목을 가르쳤다. 어떤 강의는 50분 강의 였기에 일주일에 세번 들어가야 하는데 그같은 강의가
두개, 또 일주일에 두번 들어가는 강의 두개. 이같은 스케쥴에 의하면 출근하고 부터는 점심식사 및 한.두개의 회의 참석을
제외하고는 강의실에서 살아야 하는 몹시 바쁜 하루 하루의 일정이었다.



조교수 였기에 테뉴어 (Tenure)도 생각해야 했고, 또 열심히 공부해서 내 분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으로 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도 또 지금도 연구활동과 글 쓰는것에 대해서는 각별한 생각과 야심이 있었다. 그같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매년
3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제 하였으니 얼마나 열심히 공부 했는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을것이다. 참으로 바빴고, 힘들었다.


그때 나는 귀한 목사님을 만났다. 지금도 나의 멘토이신 이근상 목사님이다. 그분은 매주 두번씩 콜럼버스로 부터 내려와 금요일은
성경공부 가르치시고, 주일에는 콜럼버스예배 마치고 얼른 내려 오셔서 설교하시고 떠나시곤 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다).
성경공부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때는 학업도 중요했지만 제자훈련 제대로 받고 싶은 생각이 컷다. 그래서인지 금요일이 기다려
졌고, 또 매번 성경공부를 통해 받는 은혜는 너무 컷다. 주의 말씀이 어찌 그렇게 달콤했던지… 어떤 질문이든 너무 명료하게
가르쳐 주신 이근상 목사님의 성경공부를 몹시 좋아 했다. 


뿐만 아니라 주일 예배 마치고 그냥 가지 않으시고 또 성경공부를 하시자고 하며 조금이라도 더 훈련시키시는 목사님의 인도함을
철저히 따랐다. 나는 그를 그래서 유격훈련장의 조교 같이 무자비하고 지독한 목사님이라고 속으로 부르곤했다. 몸이 힘들어도 죽어라
제자훈련 시키고 콜럼버스로 올라가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1년반을 바쁘게 보내고 있을때 Indiana University로 부터 교수 포지션이 하나 났으니 혹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편지가 날아왔다. 내 이력서를 들여다 보아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내 분야의 교수들의 이력을 보아도
내것이 우월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학술지에 제법 글을 많이 낸 편이었다. 그래서 한번 응모해 볼까 생각했다. 한 쿼터에
4과목하여 1년에 12과목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떠나 1년에 4과목 (매학기 2과목) 가르쳐도 되는 대학으로 가는것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인디애나 대학은 나의 전공분야에서는 제일 좋은 대학으로 여겨 졌기에 객관적으로 학자로서의 나의 성공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곳 교수가 되는것을 몽상으로 그리며 잠시 환호에 젖기도 했다.
그리고 내심 하나님께 졸라내어 그곳으로 꼭 가야지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고 기도하면 할 수록 내 마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당시 새벽기도를 인도하며 은혜받고 있었는데 나의
기도는 허공을 치고 있었다. 인디애나 대학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될것이라는
마음의 부담을 주시는것 같았다. 특히 당시 구약과 신약을 개관하는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1년만에 구약이 끝난
상태였고, 신약의 초반부분에 있었다. 기도할 수록 그 성경공부가 아직 마쳐지지 않았음을 하나님께서는 내게 상기시켜 주시는것
같았다. “너 그것을 끝까지 마칠 수 없겠니?”라고 물으시는것 같기도 했다. 너무 슬펐다. 그냥 응모 하라. 그 뒤는 내가
책임지겠다. 너는 그곳으로 반드시 가리라… 뭐 이런 메세지를 주면 눈물 콧물 흘리며 감사해 할텐데… 그리고 그렇게
보내시면 하나님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서원도 하며 용기를 낼 텐데… 하나님은 내가 오하이오 대학에 남으시기를 원하시는것
같았다.


그같은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자 내 마음에는 포기의 마음이 생겼다. 내가 갈길이 아니구나. 나는 이곳 오하이오 대학을 잘 지키고 있어야 되나 보다. 뭐 이렇게 생각하며 포기했다.  


응모 마감이 훨씬 지나 몇달후 매해 열리는 내분야의 학회를 참석했다. 참석해서 바로 들은 이야기가 옛날 오레건대학에서 박사 할때
그곳에서 석사를 했고, 또 조지야대학에서 포닥할때 박사과정학생이었던 어떤 여자아이가 내가 가고싶었던 대학의 교수로 새로
부임했다는 것이다. 그아이는 연구 실적으로 보면 나와 비교도 안될 만치 뒤지는 아이였다. 또 나는 오하이오대학에서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가장 줗은 교수중 하나였기에 강의능력 면에서도 그 아이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또 우리분야에서 좋은
저널의 Associate Editor뿐 아니라 다른 서어비스도 제법 하여 여러가기 면에서 뒤질것이 없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날
호텔방에 들어가 혼자 눈물흘리며 궁상맞게 밤을 새우며 슬퍼했다. 많이 울었던것 같았다. 


이제 인디애나 대학의 교수로 가려면 기존의 교수들이 은퇴하기전에는 자리가 없을것이고, 그들이 은퇴를 하려면 최소한 10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뛰어난 다른 대학의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교수채용 공고가 없었던 터이라 나는 참으로 암담했다.
차라리 하나님께 묻지 말고 그냥 응모할것을… 하나님께서 찬성하지 않으셔도 그곳 가서도 신앙생활 잘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을하며 식사도 제끼고 슬픔으로 그 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어짜피 오하이오에 있는 몸이니 그냥 성경공부 열심히 하며, 그곳의 학생들 죽어라 섬기고, 부지런히 전도하며 보내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니 시간이 빨리 갔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분야에서 주는 최고의 연구상도 그 다음해에 받았다. 내가 학술대회를 가지
않았기에 학회의 학회장이 직접 오하이오대학으로 방문하여 상을 전해 주었다. 부족한 사람에게 그같은 상을 주는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일하심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의 포기는 적었는데 너무나도 큰 상을 받아서
어쩔줄 몰랐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이제 구약과 신약을 살펴보는 그 성경공부가 마쳐진 것이다. 성경의 전체 그림이 머리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나의 믿음도 더 확고해 지며, 주님의 음성에 더 민감한 삶을 살게 된것이 내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바로 그때 인디애나 대학으로 부터 편지가 왔다. 그전 해에 오기로 했던 교수가 오지 않아서 다시 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혹
응모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이곳도 좋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원치 아니 하시면 이곳에서 학생들 섬기며 감사히 지내겠습니다… 뭐 이렇게 기도했던것 같다. 하나님의
응답은 분명치 않았다. 그래서 계속 기도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에 불편함 보다는 하나님의 숨은 사역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며 응모해 보는것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물론 응모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에 초대 받았다. 인터뷰하면서 내가 꼭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이 모두 내가 이미 그 대학의
교수인양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청빙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데이브는 “월급 흥정할때 담대하게 가격을 불러도 되니까 흥정에
shy하지 말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보통 반응이 이렇게 되면 인터뷰가 잘되었다는 사인이 된다. 그날 저녁 내가 지냈던
Indiana Memorial Union안의 호텔에서 밤을 꼬박 세웠다. 너무 신이나서였다. 


집에 돌아온 이후 약 1주가 지났던것 같았다. 학교에서 Offer가 왔다. 내가 제시한 연봉에 아주 가깝게 응해 주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학교에서는 1주일 이내로 답을 달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하나님께서 가라는 음성을 듣지 못해 그것을 듣고
계약서에 사인하고 싶었다. 문제는 1주가 다 되는 데도 하나님의 침묵 깨어지지가 않았다. 그냥 사인해서 보내버려하지! 하며 마음
먹었다가도 곧 그럴 수 없다고 여겨서 금식하며 마지막날의 기도를 드렸다. 그날 오후 아내와 아이들이 집을 비운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여쭈었다. 하나님의 침묵이 깨어졌다. 여호수아 1장를 열어서 읽어 보라고 하시는것 같았다. 나는 쭉 읽어 가며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허락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이후 나는 그곳에서 9년을 교수생활 했다. 그곳에서 2004년도에 테뉴어를 받았다. 학과의 50년 역사에 모든 교수가 강의
(teaching)으로 테뉴어를 받았을뿐 연구로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학과 역사상 처음으로 연구업적으로 테뉴어를
받았다. 모든 커미티로 부터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만장일치로 테뉴어를 얻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였다. 포기로 얻어진 직장이었고, 포기로 얻어진 은혜였다. 


반드시 좋은 학교로 가는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것 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고, 그 마음 때문에 기뻐 하신다. 나는 지금 칼빈대학에 와 있다. 연봉은 몇만불이 더 적다. 강의는
전 인대애나 대학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인디애나대학을 포기하라고 했을때 그 순중 자체가 내게는 축복이었다. 주안에서의
포기는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동반하는 귀한 축복이 따른다. 할렐루야! 

[이영길] 영어로 고생하는 흩어진 나그네들이여

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방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교수에게 달려간적이 있었다. 휴강을 하려면 칠판이나 강의실 문에 휴강사인을 붙이기라도 할것이지
남의 귀한 시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나온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뭐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화가나서 항의한적도 있었다. 교수가 웃으면서 결석을 하려면 미리 교수에게 통지하는것이 예의 인데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나의 논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친절하게 앞으로의 강의가 다른 빌딩 103호에서
있을것이라고 하며 쪽지에 적어주며 나를 돌려 보냈다.

다시 삭발한
형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형제는 영어를 잘할때 까지 삭발은 물론 앞으로 시리얼 (cereal)만 먹고 지낼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리얼 (cereal)만 먹다가 유학와서 객사할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며
진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밥하고 김치먹고 힘을 내라고 권유했다. 왜냐면 영어가 잘되려면 몇년이 걸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유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강의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외에는 외로우니 한국학생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면 놀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가고, 일요일은 한인교회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강의실 벙어리에다가, 도서관에서 책빌릴때 2-3분 사서와
대화하는것,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때 몇마디 하는것을 제외하면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전혀 없다. 

삭발한
형제뿐 아니라 이렇게 영어로 고생하는 유학생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이나 장애인들이 있는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곳에 가서 잘 하던지 못하던지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야 한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서 한국이야기도 하고, 전공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도 감사히 서툰영어를 들어 준다. 짜증내지도 않는다. 워낙 외로운 분들이 많다보니 자신과 있어주는것 만도
감사해 한다. 

양로원에
있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다. 유학생때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교육학과에서 연구방법론과 통계를 가르친
은퇴교수였다. 책도 몇권 썻다고 한다. 통계로 고생하던 나는 할아버지께 기본 개념을 배워 아주 잘 사용한적이 있다. 

나는 미국에
온지 2년 반만에 전공필수과목을 가르친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강의도 준비했지만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을때 도무지 잘 알아들은것 같지 않고 불쌍해서
강의를 들어주는것 같은 생각만 지배했었다. 그러나 다음학기에 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한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탓이 더 컷을 게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메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원봉사경력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는 일주일에 10시간정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떤날은 그들과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가는 것이기에 교통편의, 음식, 침낭 등 모든것을 그곳에서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때 사귄 미국친구 (장애담당 디렉터)의 소개로 그
아이의 부모집에서 약 2년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줄때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영어도 배우고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삭발보다는 더 기가 막힌 영어
공부 방법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의 발과 손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사회에서 그 가족 조차도 찾지 않은 소외된 많은 이들이 있다. 집이 없는 Homeless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도 있고, 집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Habitat of Humanity (
http://www.habitat.org/)도 아주 좋은 기관이다.

엉어는 말을
배우기위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질때 바른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칼빈대학의 동료인 바바라 카빌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epares students for two related callings: to be a
blessing as strangers in a foreign land, and to be hospitable to
strangers in their own homeland.”

[이영길] 시간을 보는 시각

예로 부터
지금까지 시간이라는 주제는 많은이들로 부터 뜨거운 관심을 가져 왔다. 시간과 관련된 주제로 출판된 수없이 많은 책들과 논문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은 산업혁명이후부터 계속적으로 효율성, 생산성 및 속도에 대한 개념과 그
틀을 같이 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로 부터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하는것은 한 인간에게는 남다른 능력이고 성공을 가늠해주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한다. 누구누구는 박사학위를 
3년 만에 했다더라. 그런데 누구 누구는 9년이 지나도 마치지 못하고 있다. 분명 3년내에 마친 박사는 능력이 있는자이며 성공한
자로 얼른 구별 될 수 있다. 반면 9년동안 학위가 마쳐지지 않은 학생은 무능한자로 보여질 수 있다. 사실 게을음으나 자포자기로
미루어지는 공부가 있기도 하다. 주변을 바라 보았을때 늦게 마친자가 빨리 마친자보다 더 탄탄한 지식체계를 쌓아가고 또 자신의
학문분야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를 자주 보았다.

개인을 떠나
집단의 차원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교회는 개척한지 2년 밖에 안되었는데 교인수가 벌써 1만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어느 어느
교회는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교인수가 약 500여명 밖에 안된다. 2년에 1만명 가진 교회는 분명 성공한 교회이고 많은
교회가 닮아 가고 싶어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을것이다. 반면 10년간 500명의 교인을 갖춘 교회는 얼핏 다른 교회가 닮고 싶지
않은 모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교회가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칭찬 받고 책망 받는 교회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계시록에서 칭찬 받은 교회는 그 크기와 빠른 성장 때문에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뭏든
시간에대한 관점은 어떤 잣대 (Yard Stick)을 가지고 인생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을 많이 살면 70-80년 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속도와 생산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아서 숨쉬는 제한된 시간내에 더 많은것 보아야 하고,
해야하고, 경험해야 하고, 소유해야 하며, 또 맛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자기몰입적인 달음질을
하는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허무를 위한 달음질”이 될 수 있다. “조금 더”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루었지만, 나 보다
조금 더 이룬 삶 앞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어 질 수 있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생의 주기가 영원이라는 차원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시간의 속도와 생산량의 문제는 별로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니다. 중생한 (born-again)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의 방향성
더욱 관심을 갖는다. 나의 삶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느냐가, 방향과 관계없이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 보다 더 중요 하다. 그리고
불필요한것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빨리 (How much and how fast)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
무엇” (What)을 “어떻게” (How)  생산하는냐
더 중요시 여긴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확장보다, 천국의 확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천국확장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한다. 이들은 또한 자신을 평가해줄 절대평가자가 누군지를 확실히 안다. 현세에서 사람들로 부터 받은
찬사 대신, 그리스도의 재림시 주님앞에 섰을때 주님의 평가에 더 관심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Formular를 제안해 본다: 

      1. 삶 = 생산량 (업적) ÷ 속도 (속도가 빠를 수록 삶의 숫자가 많고 그것이 삶을 결정한다)

      2. 삶 = 방향 x 믿음 (삶의 올바른 방향과 믿음의 충돌이 삶을 결정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공식은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후회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두가지 공식을 놓고 생각해볼
일이다. 첫번째 공식으로 살때 나의 삶과, 가정, 이웃은 어떤 모습일까?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돈 벌어 더 많이 빨리 쓰고,
더 빨리 인생을 마칠것인가? 더 빨리 인생을 마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같은 삶이 사회에 기여하는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그리고
빠른 생산을 통해 더 빠른 그리고 많은 소비를 조장하지 않는가?

가야할길이 분명하고 그 길을 믿음으로 걷는자에게는 샬롬의 삶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을 망하리로다” (시편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