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KOSTA 추천도서] 냅킨전도,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냅킨전도’제임스 정, IVP, 2009

엄연히 ‘냅킨전도’라는 번역제목이 있지만, 이 책의 원제목인 ‘True story’로 소개하는 편이 더 적당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분명 안티 기독교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인간은 어떻게 그 샬롬을 파괴했으며, 또 하나님은 어떻게 이 어그러진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사는 젊은이들은 ‘이야기(story, narrative)’로 소통한다. 더우기 성경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사랑과 계획을 말씀하신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 다름아닌 ‘true story’를 말한다.

한국인 2세로 MIT 출신의 미국 IVF 간사인 제임스 정은, 자신이 고등학교까지 성장했던 시애틀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정리된 여러가지 갈등을 그들의 멘토인 존스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선을 위해 창조되다’ – ‘악으로 손상되다’ – ‘더 나은 모습으로 회복되다’ – ‘치유를 위해 함께 보냄받다’는 메타 내러티브를 간략한 그림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에게 머무는 한계를 넘어서게 돕는 좋은 책이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장 바니에 & 스탠리 하우어워스, IVP, 2009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려면 먼저 모범이 되는 사례가 나타나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델을 제시하고 기존 전제들에 도전하며 새 패러다임이 실제로 가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줄 사람들과 집단이 필요하다. 라르쉬는 정확히 그러한 모범이 된다. 장 바니에는 1964년에 라르쉬 공동체를 설립했는데, 처음에는 중증 지적 장애인 두 사람과 공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후로 라르쉬 공동체는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라는 근본적 정신을 견지하며 지적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더불어 사는 국제적 공동체로 확대되었다. 그들은 돌보고 돌봄받는 관계가 아니라 책임과 필요를 공유하는 동료 인간으로서 함께 생활한다. 라르쉬 공동체는 심오한 카톨릭적 영성과 신학에 근거한 특별한 포용의 모델을 제공해 준다.

그들은 사회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믿는 바를 거부한다. 참으로 이상한 공동체다” (서문 중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대형화하고 상업화하는 현대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을 인격이 아닌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어그러진 상황 가운데,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그 대안으로 라르쉬 공동체를 소개한다. 중증 지적 장애우들과 그저 함께 있어 줌으로써 이 땅에서의 샬롬을 살아가는 라르쉬의 모습을, 창립자인 장 바니에가 이야기하고, 신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라르쉬의 모습을 교회의 모범으로 삼아 이론적인 해석하고 있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온유함의 영성 라르쉬를 말하다’ – 교회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는 소중한 책이다.


스크랜튼 코스타가 만난 사람(1) 김상수 형제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지 못하고, 부모님 또한 나를 부르지 못하신다. 부모님은 선천적 청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셨고, 아버지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목회를 하신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온전치 못하고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고,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나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 속의 쓴 뿌리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심한 열등감을 자주 느꼈고, 누군가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전혀 오고 싶지 않았던 미국에 오고 나서 나의 고통은 더 깊어졌다. 고난은 각자에게 그 크기 이상의 절대 값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 하필이면 이런 집안의 아이로 태어났을까? 나는 왜 미국에 왔을까?” 그때 당시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항의했고, 분노와 원망을 쏟아냈다.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도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봐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다. 결국에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었고, 더 좋은 것을 찾아 나섰고, 성공을 향해 방황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거라 착각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왜 사는지도 모른 체 상처만 더 깊어져 가고 있을 때,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 코스타에서만큼은 그토록 내가 원했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고, 참석하기 전부터 기도로 준비했다. 코스타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특별히 저녁집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교만함을 보이셨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릎 꿇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안아주시는 것 같은 마음의 평화를 느꼈고, 그 동안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아파할 때 하나님도 나와 함께 아파하셨고, 내가 울고 있을 때 하나님도 나와 함께 울고 계셨기에 그분은 침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르짖음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와 항상 함께 계심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이제 내 삶의 의문은 하나님이 어디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디에 있는가로 바뀌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의 한인 이민자로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관점으로 다른 이웃의 심정을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모두와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소망을 가졌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른 이웃은 단지 같은 민족인 한국인으로 국한되어있지 않고 다른 모든 민족을 포함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나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존재하고 생존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녀와 선한 이웃으로서 존재하고, 이 세상과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생존하는 것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실패하셨지만 진정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에게 성공과 실패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성공이 실패가 될 수도 있고, 실패가 성공이 될 수가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좇는 인생을 꿈꾼다. 물론 앞으로의 길에도 고난과 아픔이 많겠지만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승리를 기대하고 기뻐하련다.



* 김상수 형제는 7월 말부터 아프리카의 G국으로 missionKOSTA 를 통해 선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 그리고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채영광] Healthcare as a Mission – 1

KOSTA/USA-2010 Chicago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tmKOSTA 세미나 중 의료분야 리포트 입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서 리포트를 실고자 합니다.

 

채영광

 youngkwang.chae@gmail.com

초록

의료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주님이 하셨듯이 병든 자들을 치료함은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의료 사역의 본질이다의료 공급자로서의 실력을 갖춘다면  사역은어렵지 않게 행할  있다그러나 육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역은 힘들다눈물의 기도 없이는 이루어질  없다.  환자들    명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영육 통합적 의료 사역은시작된다세상의 의료 공급자와 Christian 의료 공급자의 차이가 무엇인가 생각해볼 때이다우리는 의료 분야에서 어떻게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의료를 단순한 직업 아닌 사역으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섬에서
3년간 공중보건의사로 일했다.
아내의 도움으로 선데이 크리스천에서  벗어날 있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하나님께서 새벽기도와 소그룹 공동체 속의 나눔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셨다.
미국 볼티모어 존스홉킨스 대학교
(Johns Hopkins University) 에서 공중보건학, 의료경영학, 기초의학(종양학) 등을 연구하다가 지금은
필라델피아 알버트 아인쉬타인 병원
(Albert Einstein Medical Center) 내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다. 내년에는 전공 전임의로 휴스톤의 엠디 엔더슨 암센터
(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근무하게 예정이다. 매일매일 환자와 보호자,
동료 의사들,
간호사들과 만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크리스천 의료인으로 살아갈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의료인이란

크리스천 의료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환자를
돌봄에 있어서 비크리스천 의료인과 어떤 점이 본질적으로 다를까?
경과에 차도가 없는 중환자와 보호자와의 대화를 통해 궁극적인 치료 방침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앙의 유무가 치료의 경과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환자를 단지 잘못된 의료 전달 체계의 희생양으로 볼지,
보호자를 가망 없는 몰상식한 사람들로 몰아세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상황을 파악하는 의료인의 눈이다.
소위 짱돌
보호자 때문에 응급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없이 계속 해야 하는 피곤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도 의료인 가치관이다.

신앙은 의료인에게 있어서 모든 상황을
정의하는 렌즈이자 프리즘이다.  모든 상황에서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할 있는 능력이다.
또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하는 소망이다.
환자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라고 생각하기에 앞서서,
  환자는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가?’ 생각할
있는 힘이다.
보호자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생각하기 전에 보호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손과 발이 있을까?’ 고민할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신앙은 내가 처한 피곤한
상황 묵상하기보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를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품으려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길 원하는가?’
묵상하는 지혜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 의료인에게는 세상의 의료인에게는 없는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그리고 나의 숨은 동기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인내와 착한 행실을 통해 영광 돌리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는다.
하나는 모든 중요한 일을 기도로써 시작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우리 일에 개입시키는 것이 가장 훌륭한 해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생리식염수 (Normal Saline
Solution)


생리식염수는 크리스천 의료인을 상징한다.  멸균 생리식염수는 우리 혈관에
직접 주입 가능하다.
물론 먹을 수도 있고,
소금의 원래 특성인 맛과 부패 방지 기능이 있다.
수액이므로 갈증을 해소하고 탈수를 방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속에 녹아 없어진 소금이 삼투압현상 (Osmotic
Phenomenon) 통해 혈관 내에서 부피를 그대로 유지하여서 출혈이나 패혈성 쇼크로 혈압이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에서 혈압을 다시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리 식염수
공급은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소생술
(volume resuscitation)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탈수로
우리 삶의 혈압이 급강하할 ,
크리스천 의료인은 생명을 살리는 생리식염수가 되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금이라면,
썩어 없어진 밀알이 생명의 싹을 만들어 내듯이,
수액에 녹아 없어진 소금으로 삼투압의 에너지를 창출해내어 생명을 살려야 한다. 

소금이 소금으로 존재하지 않고 녹아 없어질
에너지가 창출됨은 의미심장하다.
과학의 법칙 모두 우리 주님의 작품임을 생각할 더욱 그렇다.
이는 빛의 물리학을 상기시킨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외곽을 도는 전자가 안쪽 궤도의 낮은 에너지를 갖는 위치로 떨어질 빛이라는 형태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가장 높은 하나님의 우편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골고다 언덕 저주의 십자가로 친히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가장 강력한 구원의 빛을 본다.
자신의 육체를 썩어지는 밀알처럼 십자가에,
로마 군병의 창칼에 내어 친히 사망의 상태에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소금이 생명을 살려내는 기적을 우리는 목격한다.

 

은혜의 혈관 
(Vessel of Grace)


크리스천 의료인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환자, 보호자, 동료 의료인들에게 모두 전달하는 은혜의 혈관이다. 요한복음 15 5절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의학적으로 의역하면 주님은 골수요,
혈액이요, 심장이며, 우리는
혈관이라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크리스천 의료인들을 통해 역사한다.
피가 많이 역동적으로 흐를수록 혈관이 튼튼하듯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를 통해 넘치도록 흐를 우리 역시 건강할 있다.
많이 베풀고 나눌 생명의 ,
보혈의 피가 환자,
보호자, 동료에게 전해질 것이다.
혈류가 멈추면,
혈관은 퇴화되어 이상 생명이 전해지지 않는다.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의 침착,
혈관 석회화 진행으로 혈관이 망가지듯이,  영적 노폐물이 우리들
혈관에 축적될 이상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 혈관에 흐를 없게 된다.
혈관은 막히고 우리 스스로 영적으로 사망에 이를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수많은 환자,
보호자, 동료 의료인들에게도 동일한 영적 사망을 전염시키게 된다.

최근 내가 입원시킨 환자 중에 심내막염 환자가 다시 중풍으로 내원했다.
패혈성 색전증(septic
embolism) 중풍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심장 판막에 있던 박테리아가 뇌혈관 곳곳으로 날아가 혈관을 막아 중풍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가 심장 판막에 박테리아를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로 인해 오히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심각한 영적 색전증으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혈관은 영어로 vessel인데 성경에서 그릇 역시
vessel 번역되어 사용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으로 보시지 않고 깨끗한 그릇,
더러운 그릇으로만 보신다.
더러운 그릇은 사용하시지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혈관이 얼마나 깨끗한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깨끗한 혈관이면,
주님은 자신의 생명의 보혈을 우리 크리스천 의료인 혈관을 통해 마음껏 흘려 보내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 자신이
퇴화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있을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흔적만 있는 퇴화된 혈관,
배꼽 동맥처럼 무늬만
크리스천 의료인으로 전혀 은혜의
혈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