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변화를 이루는 3단계

2011년 새해가 벌써 3주째이다. 바뀐 것은 숫자 하나뿐이지만,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 새로움을 기대한다. 시인 겸향 이병한은 새해의 의미를 말하면서 지난해를 옛 것으로 규정하는 자에게만 새해가 된다고 했다. 옛 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옛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야서 43장 18,19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 말씀 하셨다. 숫자 하나에도 과도한 새 일을 기대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표출된 약속의 말씀 앞에 잠잠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서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몇 가지 단계를 가르쳐준다. 첫 단계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두운 기억, 슬픔, 실패, 상처, 쓴 뿌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아, 이것이 죄성을 지닌 인간의 적나라한 실체이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하나님은 아예 과거를 잊으라고 반복해서 명하신다.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새 일은 새 터전에서 해야 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 2:22) 낡은 과거에 연연하면 제 아무리 큰 비전과 새 일을 꿈꾸더라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둘째 단계는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다. “보라!” 하나님은 명령만 하지 않으셨다. 공수표를 남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한 번 말씀하시면 절대자의 무한하신 의지를 사용해 반드시 이루는 분이시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v19) 이 땅에서 새 일을 이룰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진정한 의미의 새것이 아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 1:9-10)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광야에서 길을 내시고, 사막에서 강을 내시는 분이시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다. 위대한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데 3가지 단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는 불가능한 단계, 둘째는 어려운 단계, 마지막으로 가능케 하신다.” 당신의 삶에 광야가 있는가? 하나님은 그곳에 길을 내실 수 있는 분이시다. 사막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그곳에 강이 흘러넘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누리는 단계이다. 43장 20절은 말한다.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만 누리고 즐기시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이미 모든 것에 충만하시다. 물을 내시고 강을 만드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바위에서 물이 솟는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것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구속하신 구속주이시다. 이것이 기적이다. 세상에 수많은 기적이 있지만 기적 중의 기적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 존재, 가치, 신분 모든 것이 옛 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올 한해도 광야 같은 삶에 길을 내고, 사막 같은 인생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자. 쓰라린 과거를 잊고, 새로운 변화를 풍성하게 누리는 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이유정(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이유정] 선교보다 예배가 궁극적 목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고상돈은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 출발한 지 무려 7시간 20분간의 사투 끝에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을 정복한 것이다. 등정을 마치고 본부를 향해 무전으로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이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고 했던 당시의 말이 유명하다.

인류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정복은 산을 지배하기 위한 정복이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해서 인간이 이 산을 다스릴 능력은 없다. 정상은 목표의 끝이다. 그곳에 오르면 있을 것만 같은 행복은 사실 신기루이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해보면 여전히 또 다른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무지개와 같다. 그래서 차라리 누군가가 말한 “산이란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요, 보듬고 만끽하려 찾아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훨씬 가슴에 다가온다.

존 파이퍼는 그의 책 《열방을 향해 가라》에서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가 아니라 예배라고 했다. 1장 첫 단락부터 나온 그의 주장이 섬뜩하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없기 때문에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요 개혁신학의 기수인 그가 한 말치고는 사뭇 도발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조된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파이퍼가 말한 것처럼 궁극적인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 시대가 끝나고 구속받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될 때 선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예배는 영원하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선교로 알고 뛰어왔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선교에 교회의 재정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교회로 여겼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본질인 예배를 놓치면 위험하다. 그동안 지상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지상명령이라는 높은 산봉우리의 정상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다. 영혼을 살리는 선교를 성과 지향적으로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인 지상명령을 결코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 유언을 더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선교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만끽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시 97:1)

새해가 밝았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내 삶의 이유를 발견할 때 우리 삶에 열정의 불이 타오른다. 존 파이퍼의 말처럼 “예배는 선교의 연료요, 목표다.” 올해도 많은 교회가 선교에 큰 비중을 두고 새해를 연다. 선교가 선교되기 위해서 예배를 살려야 한다. 예배의 불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강력한 사랑의 연료 되어 선교의 불길이 피어오르게 될 것이다. 결국 선교의 목표는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예배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은실] 소그룹의 힘: 문제 해결, 리더십 개발

 “교육부가 제대로 준비가 안 돼 교회가 더 부흥을 못합니다.”

 제직회에서 교육부 보고를 하던 자리에서 어느 나이 많은 집사님이 내게 던진 말씀이다. 미국의 경우, 신학교가 없는 작은 도시의 이민교회에서는 담임목사님 외에는 부교역자를 찾기 어렵다. 십여년 전 내가 섬기던 교회도 작은 도시에 터를 잡고 개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교회였다. 그런데 갑자기 교인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수도 계속 늘어나 교육부 전체를 평신도 여집사 한 사람이 유치부부터 청년부까지 각기 다른 연령의 아이들을 예배 인도부터 성경공부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고, 그것이 교인들 눈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으로 보인 듯했다. 솔직히 스스로도 교회의 부흥이 반갑기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두려웠다. 주일마다 몇 개의 예배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느라 너무 피곤한 탓에 큰 부담으로 주일을 맞이하곤 했다. 교육부 사역자의 증원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요구는 계속 커져 갔지만, 부교육자를 청빙할 형편도 안 되는 터에 평신도 리더들은 남들 눈에 띄는 성가대나 찬양팀, 안내나 어른들 사역 쪽으로는 많이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하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교육부는 영어에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동참하는 것을 꺼렸다. 그러면서도 학부모와 교회의 제직들은 모이기만 하면 피상적인 충고와 대책을 늘어놓으며, 해결을 위한 도움보다는 지금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미팅을 계속하고 있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많이 상한 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던 중, 당시 주말마다 인도하던 청년부 리더들의 소그룹 모임이 이 문제를 함께 풀어주었다. 그 주에서 가장 큰 대학을 다니는 학부 학생과 대학원 학생들이 중심이 된 청년대학부는 수가 점점 늘어 많은 학생이 성경공부에 나오고 있었다. 전체 모임은 내가 인도했지만, 성경공부 시간은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리더를 세우고, 그 리더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훈련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의논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교육부의 큰 문제를 처음 그들에게 나누고 기도를 부탁할 때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함께 기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합심하여 기도를 한 후, 그 청년들은 교회가 당면한 교육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의견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적 자원의 한계 속에서 많은 필요를 충족시킬 최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대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 다섯 명의 리더가 각기 자신의 경험과 은사에 따라 각 부서의 담당자로 자원했다. 유치부, 유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를 부서별로 맡아 책임을 지고 사역하기로 한 것이다. 각 부서를 맡은 사람이 부서에 필요한 선생님을 청년부와 대학부, 장년들 중에서 발굴하고, 내가 세미나 등을 통해 그분들에 대한 정기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맡아주면, 각 부를 책임진 담당자들이 선생님들을 돌보고 양육하면서 그 부서에 필요한 활동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렇게 하여 연령별로 필요한 행사를 통해 모든 부의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게 되었다. 나는 담당자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말씀 앞에 서로를 훈련하고, 사역을 검토하고 격려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교회의 열악한 교육상황을 얼마나 놀랍게 바꾸시는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 모든 부서에 젊고 창의적인 청년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때 세워진 청년 리더들은 지금 건강한 평신도 사역자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기둥과 같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심각한 갈등이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한 개인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그것을 헤쳐 나가는 것이 무척 난감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소그룹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의견과 각자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동원하여 문제를 대하게 되면, 탁월하고 객관적인 해석을 찾게 되고,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찾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헌신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함께 일하는 소그룹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니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나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9절-12절) 

 리더십 개발

 좋은 소그룹 인도자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룹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을 보이고, 강의하여 주입하는 학습법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자이다. 이런 인도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소그룹 사역의 성패는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도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또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늘 기도하는 사람이 좋은 소그룹 인도자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 잃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늘 복음을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인도자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다른 리더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그것은 소그룹 리더는 소그룹 안에서 가장 잘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개발은 소그룹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소그룹 사역의 생명은 소그룹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재생산과 증식을 통하여 교회가 수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그룹 사역의 성패는 유능한 인도자들을 발굴하고 양성하여 새로운 소그룹에 투입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립하는 데 있다.

 소그룹 안에서 소그룹 인도자들을 가장 잘 개발할 수 있는 이유는 소그룹 경험을 통해서, 또 이미 세워진 인도자들의 모범을 보면서 강의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단번에 몸에 익히고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먼저 세워진 인도자의 친밀한 멘토링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소그룹을 인도할 때 필요한 중요한 지침들을 반복해서 학습하는 훈련을 장기간에 걸쳐 확실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소그룹 사역을 위해 인도자들을 세워야 할 때, 목사님이 몇 번의 훈련을 하신 후 그동안의 신앙생활로 대강 평가하여 소그룹에 바로 투입하는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목사님과 준비된 사람들이 함께 소그룹 모임을 충분히 가져서 목사님이 소그룹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멘토링의 모범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소그룹을 시작하도록 돕는 한편, 그분들이 다른 리더십 개발을 위해 부인도자를 선임하여 그 사람을 멘토하고 양육하게 하여 필요시에 목사님께서 인도자로 인준하는 방법이 가장 건강하게 소그룹 인도자들을 세워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러스티 칼웰(Rusty Calwell)은 멘토링의 공식을 “내가 하면 당신은 보십시오. 그리고 도우십시오. 당신이 하면, 내가 돕습니다. 그리고 봅니다.”라고 표현했다.

 이 공식을 리더들에게 설명할 때 나는 UCLA에서 경험한, 개구리를 물에 삶는 실험과정을 설명해 주며 이해를 돕는다. 개구리를 처음부터 끓는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서 도망가기 때문에 먼저 찬물에 넣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찬물의 온도를 0.036도씩 올려서 개구리가 물의 온도에 익숙해지도록 하면, 그 물이 끓어도 개구리가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반항 없이 죽는데, 그 시간은 2시간 30분 후라고 한다.

 누구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바로 소그룹 인도자가 되라고 하면 개구리가 튀어 나가듯 거절한다. 그래서 먼저 찬물에 넣는 단계가 필요하다. ‘제가 할 때 그냥 보시기만 하시지요.’가 바로 그 단계이다. 이 단계를 통해 그들은 인도자가 어떻게 인도하고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지 관찰하게 된다. 그후 ‘제가 도움이 좀 필요한데 저를 도와주시겠어요?’라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단계는 다시 몇 단계로 나뉜다. 처음에는 머리를 안 써도 되는 가벼운 일들을 부탁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함께하며 교재를 몇 권 정도 공부하고, 또 인도자 훈련 워크숍을 받게 한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소그룹을 인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돕겠다고 하며 반드시 지시가 아니라 부탁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그 사람에게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면서 그때마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또 소그룹 인원이 너무 많아져 분가를 해야 할 때가 되면 ‘당신이 하면 내가 돕습니다. 내가 봅니다.’의 단계로 넘어가서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줄 소그룹원들을 맡기고, 기존의 리더가 조금 어려운 사람들을 맡아서 분가하도록 한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인도해 보세요. 제가 옆에서 늘 지켜보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돕겠습니다.’ 분가 후에도 지속적으로 돕고 보살펴야 하므로 멘토링의 금기사항과 권장사항을 기억하여 좋은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한다. 

멘토링의 금기사항 

1.    지배하지 않기: 자신이 선임 인도자라고 하여 자기 생각대로 따르는 것이 영적 질서를 지키는 일인 것처럼 교육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존경받는 리더십은 강요로 얻어지는 절대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투명하고 진실한 삶의 모습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켜 함께 목표를 이루어 나가게 하는 힘이다.

2.    경쟁하지 않기: 혹시 소그룹원들이 자신보다 새로 세워지는 사람을 더 좋아하거나 따르지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자신이 더 유능한 리더임을 보여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소그룹 인도자들과 양적 부흥을 놓고 서로 경쟁적인 태도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부흥은 소그룹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기: 새로 세워진 인도자가 선임 인도자인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지라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반목하고 대립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감사함으로 받고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태도야말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더한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는 겸손하고 진실한 리더의 태도다.

멘토링의 권장사항 

1.    모범 보이기: 멘토링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상대의 말보다는 행동을 보며 따라한다. 그러므로 선임 인도자들은 항상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소그룹에서 인도자로서 좋은 모범을 보이도록 하여야 한다.

2.    영적 지도력 발휘하기: 영적 지도력이란 멘토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결정하지 않고,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말씀을 떠나 외적인 환경과 상황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3.    후원하는 태도: 소그룹 안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자리에서도 양육하는 사람들을 세워주고, 긍정적인 격려와 구체적인 칭찬을 주며 후원하는 멘토는 지치고 두려운 발에 힘을 실어주고,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리더이다.

 지금 이렇게 평신도 소그룹 사역자로 감히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 나를 길러주신 많은 영적인 선생님들, 멘토들이 계셨다. 어릴적,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말 잘한다며 박수 치며 칭찬해 주시고 마음을 다해 내 생각을 경청해 주신 아버지가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영적 리더셨고, 처음 강의를 위해 길을 떠나던 날, 다니며 배고플 때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용돈을 주신 담임목사님을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던 나를 일으켜 교회에서 새벽예배나 수요예배를 인도할 수 있도록 세워주시고 자신감을 키워주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 세계적인 강사가 될 거라며 늘 비전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고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커피 브레이크 사역의 전 대표는 지금도 영적인 멘토로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늘 기도하시며 부족한 사람을 세워주시고 계신다.

 성경적 리더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과 불신자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상호 사역의 기회로 인도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자신이 주님과 친밀하고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늘 인식하며, 다른 사람을 세우려는 비전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그룹 사역은 교회 목회의 전부도, 목회의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그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의 일부를 이루는 겸손한 도구일 뿐이지만, 소그룹 환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각기 처한 삶의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전하는 소중한 사역이기도 하다. 소그룹 사역을 통해 사랑과 권면, 서로 동역함의 필요가 아름답게 나누어지고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소그룹 사역의 관건은 잘 훈련된 사역자들이므로 교회는 리더십 개발에 주력하여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건실한 소그룹 사역자들이 소그룹 안에서 많이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그래서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교회처럼 소그룹 중심의 교회들이 수없이 일어나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들이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