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2017 D4] 코스탄의 ‘삶의 현장’ 3

[Kosta 2017 D4] 코스탄의 ‘삶의 현장’ 3

목요일 저녁 코스탄의 ‘삶의 현장’에서는 필라델피아에서 사역하시는 이태후 목사님께서 흑인 이웃들과 함께 살고 계신 삶의 현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life On the uber street and his kingdom

주님과 함께 하는 나그네삶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4:18)

우리가 소망하는 삶은 좋은집에 좋은 차를 타고 안전한 동네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지역교회에서 우아하게 섬기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구제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가진채로. 하지만 그 모습은 예수님 생애에 하셨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포로된자, 눈먼자, 고아, 과부 그리고 세상의 모든 눌린자를 위해서 예수님 스스로 한없이 낮아 지셔서 십자가를 감당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처럼 세상이 말하는 주변인 이라는 곳으로 스스로 들어 가셔서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것이 나에게 한것이다 라고 말씀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실천 하시며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시는 이태후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교수가 되고자 하는 부푼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셨지만 주님은 그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약단속으로 하루에 백명이 넘는 사람이 채포될 만큼 위험한 필라델피아 동네에서 거주 하시며 그들의 이웃이 되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그는 순종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그의 순종은 우선 빈민가의 쓰레기를 치우고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아주 작은 마음의 배려 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또 치우기를 반복하며 마치 이삭의 우물처럼 그는 자기를 낮추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 빈민가 거리에 화초를 나누어 주며 회복 시키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셨고 열린 이웃의 마음은 함께 아이들과 캠프를 진행 할수 있는 기회로 이어져 사회에서 가정에서 소외되어 자신을 주변인 이라고 여기는 아이들에게 또 인종의 주변인이 다가와 베푸는 사랑은 예수님 이라는 공통분모로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갈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GUN point의 생명의 위협이 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에 더 분명하게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은 이땅에 속한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에 대한 소망 이었습니다.

스스로 먼저 이 땅의 주변인 으로써 정체성을 인정하고 깨닫고 그 주변인의 정체성이 다른 세상의 소외된 주변인 에게 다가가가 하는 약점이 아닌 강점임을 인정하며 주변인과 어울리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주변인은 바로 우리였고 이제 우리가 또다른 주변인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그러셨던 것처럼. [기사제공: 박세희 간사]

 

[Kosta 2017] 어린이 코스타 스케치 (유치/유년)

[Kosta 2017] 어린이 코스타 스케치 (유치/유년)

    

발랄하게 율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입니다. 코스타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님들이 하나님께 더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서, 또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집회 기간동안 많은 시간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아 줍니다.

이러한 사역 뒤에는 수많은 선생님들의 수고와 땀이 있습니다. 반응없는 아이들을 위해 에어콘도 잘 되지 않은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연신 마셔가며  과장되게 ‘망가지는’ 선생님들의 수고에 갈채를 보냅니다. 이 아이들에게 코스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수님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경험하는 축복의 자리가 됨을 믿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상급이라고 믿습니다.

 

[Kosta 2017 – 새내기 강사] 박흥식 교수

[Kosta 2017 – 새내기 강사] 박흥식 교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게 된 박흥식입니다. 저는 1990년부터 독일에서 유학했는데, 당시 미주 코스타 소식을 종종 들으며 참 부러웠습니다. 유럽에도 비슷한 조직이 생겼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늦게라도 코스타에 참석하여 젊은 시절의 아쉬움을 달래고, 또 여러분들과 함께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박흥식 교수님 부부이십니다.)

저는 대학시절 이동원 목사님께서 시무하셨던 서울침례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며, 대학과 학문세계가 복음의 사각지대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학문을 통해 주님을 섬기는 길을 걷고자 학부 졸업 후 독일로 유학했으며, 괴팅엔 대학교에서 중세 상인길드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신라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세 말기 유럽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인데, 중세 상인길드, 도시, 흑사병, 중세와 근대 초기 교회 등에 대한 논문들을 써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100주년기념교회에 출석하며,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양화진연구원 및 문화원 원장으로 섬겼습니다. 여러 해 청년부 구역장으로 섬겼고, 청년학교라는 것도 만들어 2년간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며 밀도 높게 삶과 비전을 나누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2017년에는 연구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에 머물며 기독교세계관대학원대학교(VIEW)에서 강의와 저술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 이번에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남긴 것: 500주년의 성찰” 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하시는데요, 그 주제에서 나누고 싶은 신앙의 메세지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뵙는 분들에게 거창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를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신교회가 2017년을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 기념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의 상황은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현재 교회와 사회에서 많은 비판과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질적으로 새로워질수 있는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500주년 기념일은 루터의 개혁을 중심으로 제정한 것이기에 그 기념일을 계기로 루터가 이룬 성취를 높이 평가하고 찬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소위 ‘성공한’ 종교개혁운동에만 시선을 고정하기때문이기도 합니다. 루터를 영웅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시 교회와 개혁가들을 통해 무엇을 하셨는지 주목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믹한 글에서야 하나님을 주어로 둘 수 없지만, 신앙의 눈으로는 늘 하나님을 주어로 삼으려는 태도가 절실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루터의 성공에 도취되기보다는 종교개혁이라는 긴 여정을 균형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루터 이전에 발데스, 위클리프, 후스 등 선구자들이 교회를 비판하며 개혁의 길을 개척해 왔던 점에도 함께 주목해야 합니다. 또 앞선 ‘실패자’들과 달리 루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인쇄술과 세속제후의 보호라는 두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개혁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루터 개인의 업적으로 찬양할 일이 아닙니다.

루터는 1) 신앙에 있어서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이다, 2) 선행이나 공로 같은 종교적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는다, 3) 세례받은 모든 자가 사제이며, 평신도도 성경을 해석하는 자유를 누린다고 강조하는 등 중세적인 교권주의를 부정하고, 결국 유럽의 개혁세력 모두가 수용하게 된 개신교의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그 절정은 평민들이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여 종교개혁 정신을 구현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루터의 이런 업적은 충분히 강조하고 평가하되, 그가 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범했던 실수들도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루터는 당시 개혁세력의 실질적인 좌장이었지만, 칼슈타트를 비롯한 여러 개혁가들을 포용하지 못했습니다. 성찬에 있어서 그와 해석을 달리하는 스위스 개혁가들과 연대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했습니다. 농민전쟁이 발생했을 때, 루터는 농민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고, 정의와 공의의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그 후 종교개혁운동이 세속권력의 보호에 의존하게 되어 불철저하게 진행된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가장 열악한 삶의 조건 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그가 보여주었던 반유대주의적 태도와 행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개신교회의 출발을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일종의 거울이지만, 무비판적으로 따를 전범이 아닙니다. 그는 실수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종교개혁은 복음을 재발견하여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계기였지만, 루터의 개혁은 미완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1520년대 중반 이후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루터파가 새로운 종파로 인정받는 것 자체를 종교개혁의 목표인양 추구했지만, 그것은 종교개혁의 바른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분열이 민족적, 국가적 분열을 강화시켰고, 나아가 신구교 사이의 종교전쟁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도 반성해야 합니다. 개신교회는 지난 500년간 홀로서기를 해 왔고, 한국교회도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갖게 되었는데, 과연 그 여정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내부에서 종교개혁의 중요한 사상으로 강조되었던 만인사제론이 실질적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목회자 중심의 교회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이라는 다종교사회에서 개신교회가 마땅히 종교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개교회성장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등의 산적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 코스탄들이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으로 이 시대에 가져야 할 고민과 삶의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교수님의 생각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제가 미국 코스탄들의 삶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해 피부에 와 닿는 조언을 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청년들에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두 가지 정도 드리고 싶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께서 “우리는 이중적 귀기울임이라는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과업으로 부름받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을 성경과 더불어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이 경건의 전부는 아니며, 세상 속에 거하며 하나님과 이 시대의 필요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이며, 보편적인 문제를 늘 후순위로 미루면서 개인의 신앙이라는 것을 좁은 범주에 가두려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공공의 문제로까지 확장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는 혼자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향점이 같은 다른 이들과 네트워킹하면서 함께 협력하여 일하는 방식을 익히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런 조언들은 사실 제 스스로의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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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러분의 강사님께서 미국 코스타에 처음 오셨습니다. 그분들 중 몇분들을 모시고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 일환으로 준비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