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2017 – 새내기 강사] 이태후 목사

[Kosta 2017 – 새내기 강사] 이태후 목사

 이태후 목사님은 미국 코스타의 완전 ‘새내기’는 아니시지요? 유쓰 코스타에서 두번 가량 섬기신 경험이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유쓰 코스타에서 섬기셨던 학생들를 이번 집회에서 보시면 무척 반가우시겠어요.
본인 소개와 미국 코스탄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이태 입니다. 94년에 신학공부하러 미국에 왔다가 부르심을 받고 2003년부터 필라델피아 북부 흑인 빈민가에서 동네 목사로 그들의 이웃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몇가지를 나누어 주세요.  
첫째, 이 땅의 삶이 나그네 삶이라는 걸 인식하는 겁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영원한 그 나라이지요. 그걸 분명히 인식하면 이 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학위, 직장, 결혼, 가정….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해하고 그 분의 뜻을 알도록 이끌어주는 과정일 뿐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때로 이 부수적인 것들이 신앙생활의 목적인것처럼 살아가는 분들을 봅니다.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목적지를 향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둘째, 우리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중 하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역지로 인식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부터 시작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는 곳 마다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자로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존재가 이 땅에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 미국 코스탄들에게 도전하고 추천하고픈 삶의 자세, 활동 등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세요.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해야합니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자신을 백인 중산층과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처럼 사는 게 목표이고, 그들 거주지 근처로 이사가는게 한인 이민 사회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민자. 유색인종입니다. 백인 중산층의 눈에는 African American, Hispanic 보다 존재감이 없고, 같은 아시안 이민그룹 중에서 인도, 중국, 베트남 보다 영향력이 없는 집단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백인 중산층에 러브콜을 보내지만, 그들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색인종, 이민자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해관계는 사실이지 유색인종, 이민자들과 더 일치합니다.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직접 연관되지 않는 한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BLM 에 참여하는 한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코스탄들은 자신의 선택, 선호 여부와 상관없이 이 땅에 있는 한, 자신이 사는 도시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자세 – Seek the shalom of the city – 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인 사회가 갖는 배타성을 벗어나 인종과 종교의 담을 넘어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 코스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한인 기독교인들 가운데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세계 경제를 이끈다고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의 국력을 획득하기 위해 이 땅의 원주민들 – Native American –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미국 역사를 공부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잔혹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그리스도인된 우리의 역할이 좀 더 분명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갈등하는 주류 백인 사회와 비주류 유색인종 사이에서 갈등을 해소하며 화해를 이루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닫혀있는 주류사회에 들어가려는 안스러운 노력보다는 그 바깥에서 주변인의 신분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들이 못보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진단하며 복음의 능력으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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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러분의 강사님께서 미국 코스타에 처음 오셨습니다. 그분들 중 몇분들을 모시고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 일환으로 준비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Kosta 2017 Day 3] 책 책!

[Kosta 2017 Day 3] 책 책!

두번째 책소기는 박영호 목사님께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스의 ‘한나의 아이’를 비롯해 ‘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 (by Rodney Stark)), ‘조선의 작은 예수 – 서서평’ (백춘성), ‘눈뜬 자들의 영성’ (크리스토프 휴어츠), 그리고 ‘기도해 보라는 뻔한 대답 말고’ (로버트 N. 웬버그) 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의 발흥’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초창기 아무도 기독교가 몇백년이 지나지 않아 서구세계의 가장 지배적인 종교가 되리라 예상을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은 ‘나환자의 어머니’라 불릴정도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과 자신의 가진 것을 바쳤다고 합니다. ‘기도해 보라는 뻔한 대답 말고’에서 저자는 “마더 테레사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 C. S. 루이스와 한 주를 보낼 것인가?”라고 질문하며 신앙의 열정이 논리적 해명과 이해에서 회복될 지 아니면 섬기고 사랑하는데서 회복될지 독자가 답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집회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로비에서는 풍성한 책의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추천도서 및 많은 양서들이 자신들을 읽어 줄 (엄밀히 말하면 구입해 줄)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osta 2017 D3] 성경강해 2

[Kosta 2017 D3] 성경강해 2

뜨거운 찬양으로 오전 전체집회를 시작합니다. 전체집회 장소를 꽉 메운 참가자들의 찬양이 뜨겁습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으로 오전 성경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설교의 일부를 기록합니다.

베드로전서 2:11-12 (새번역)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 리하십시오. 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 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저는 하나님과 대치상태에 있는 이 시대의 풍조로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세상의 길, 그것을 저는 높음을 향해 끊임없이 오르려고 하는 “상향주의”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중심을 향해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가는 것, 그것이 성공이고, 우리가 사는 목적이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 교육, 스포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올라가는 것을 숭배하는 분위기 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철저히 “하향주의”입니다. 빌립보서 2:5-11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성경을 보면서 전율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동을 움직인 동력이 되었던 그 마음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아니하시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이라는 당신의 기득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그 마음을 비우셨습니다. 그건 예수님께 억지로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을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 그 마음이 예수님을 이 땅에 나그네로 오시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도 나그네처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좋은 것들도 다 누리고 싶고, 그리스도인으로 누리게 되는 혜택도 다 누리고 싶다는데 있는 거겠지요. 그저 취미생활로 하는게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

낮은 곳을 향한 나그네로 오신 그 분은 이 땅에서 철저히 주변인으로 사셨습니다. 벌거벗은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본 어머니가 이제는 마지막 보는 앞에서 생의 마지막을 또 다시 벌거벗기운채 죽음을 맞이하는, 생의 입장과 퇴장 모두 소외되고, 주변인이 된 그런 모습으로 우리 주님은 사셨습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신 그 분이 한모금의 호흡이 절박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 거리 는 사형수의 모습으로 그 분은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하향성으로 인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변인Marginality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지향하 며 살까의 문제입니다.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을 마음에 품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규정하는 사회적 주변인이 되고자 일부러 애쓸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주류사회에서 영향력 있고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이 규정한 주류/비주류, 중심/주변의 구별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주변인이 된다는 것 그 자체는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로 할 때 주변인이 되는 것 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틈 사이에서 Tension을 느끼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이익과 삐걱거림을 경험하며 삽니다. 주변부는 결코 수치스럽거나 패배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세상에 역으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처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그러나 아직 임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때가 되면 온전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나그네 여정은 “이미”에서 출발해서 “아직”까지 가는 여정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상향주의는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목회자로 살았습니다. 목수가 되기로 마음 먹은 몇몇 계기가 있는데 나누고 싶어요. 목회를 할 때 심방을 가면 한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한손에는 툴박스를 들고 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목사님 그 때 오셔서 말씀 감사했어요, 인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목사님이 그 때 오셔서 고쳐주신 식 탁 아직도 잘 쓰고 있어요. 하시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합니다. 또 한번은 멕시코 Tecate라는 곳에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거기 산동네에 참 열악한 환경에 사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보니 부 모님은 일 가시고 두 남매가 집에 있었는데 14살 누나는 이름이 크리스티나인데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마비여서 휠체어에 앉아 있고, 11살 남동생은 이름이 살바도르인데 뇌성마비였습니다. 나무를 가지고 현관 앞에 작은 벤치와 페티오를 만들었습니다. 다 만들고 나니 크리스티나가 패티오 위로 휠체어를 끌고 나와서 벤치에 앉았습니다. 지금까지 앞마당이 자갈 밭이어서 휠체어를 끌고 현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늘 캄캄한 집 안에만 있다가 휠체어를 끌고 현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국 국경 철조망이 바라보이는 산꼭대기 집앞 나무 벤치에 앉아서 눈을 감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아 저렇게 행복해 하는 걸, 평생 목수로 살아도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지막 장면에 물이 언제 포도주가 되냐면 정결예식 항아리에 담겨 있던 물이 혼인 잔치 자리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물이 포도주 로 변화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만 갖혀서 우리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만 고 여 있다면 결코 아무 맛도 없는 맹물일 수 밖에 없다고요. 항아리에서 물이 떠져서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있는 삶의 일상적인 현 장으로 옮겨질 때 상향주의, 경쟁에 시달려 흥을 잃어가고 있는 세상을 다시 축제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포도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길지 않은 이 땅에서의 나그네 여정 동안 물이 아닌 포도주로 살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2장 때문에 공방 이름을 가나 공방이라고 지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꿈을 꿉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목회 안하고 목수하니까 행복하냐고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내 마음 속에 뿌듯함이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으로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향주의의 신비를 아는 사람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빛이 맑고 깊습니다. 같이 있으면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있는 자리가 그리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변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그리 멋있거나 매력 있는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초대교회 때처럼 목숨을 걸고, 핍박당하며 고 난당하며 가는 길도 아닙니다.

담담하게 비와 바람과 햇빛을 받으며 믿음 속에 걸어가는 삶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돌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목적지가 있지만 과정은 흔들리며 가는 길,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길이기도 하고, 효율성이 아닌 꾸준함을 요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나그네 여정 가운데 삼위 하나님의 동행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Kosta 2017 D3] 오전 스케치

[Kosta 2017 D3] 오전 스케치

코스타 세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식당 앞에서 조원을 기다리며 큐티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식당 건물이 좀 작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첫날에는 식당에 혼잡이 심했습니다. 자매님들이 앉아있는 곳을 넘어서 긴 줄을 섰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당 안에서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나가시는 강사님들과 인증샷이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중그룹 성경공부 이틀째입니다. 어제 보았던 익숙한 얼굴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강의실에 익숙해져서 지각하는 사람들 숫자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이틀째가 되니 소그룹별 토론이 아주 활발해졌습니다. 그룹별 토론이 너무 뜨거워서, 몇번을 얘기하고서야 주의를 끌 수 있었습니다. 일방적인 전체 집회와 상호적인 중그룹 성경공부가 섞여있는 것이 변화와 신선함을 준다고 참가자들이 즐거워합니다.

중그룹 성경공부를 마치고 전체집회 장소로 향하는 참가자들의 환한 표정이 아름답습니다. 내일 한번 더 중그룹 성경공부로 만납니다. 이제 코스타가 중반으로 달려갑니다. 다들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Kosta 2017 새내기 강사] 이일 변호사

[Kosta 2017 새내기 강사] 이일 변호사

 
코스탄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있는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인권변호사로서 주로 난민과 구금된 이주민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코스타 참여는 이번이 처음인데요. 선택강의 중 “난민, 우리 곁에 찾아온 상처입은 주님의 얼굴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난민과 난민옹호활동의 실제 및 신학적 의미를 나누는 것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공익변호활동은 신앙적 고백과 맞닿아 있습니다. 대학시절 Intervarsity 활동을 통해 하나님과 복음을 새롭게 경험하고 만나게 된 후,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제 인생의 목적과 진로를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저의 배움의 이력, 그리고 평화와 정의,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옹호하는 것에 흥미와 의미를 느끼게 저를 창조하신 것을 알게 된 후, 실제로 실무진입을 준비하다가 공익법센터 어필이라는  멋진 단체를 만나 여기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난민들이 이미 있지만 난민들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분위기가 경직되어 있고, 제도적으로도 벌써 난민제도를 도입한지 23년 이상 지났지만 심각하게 낮은 난민인정률과 난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열악한 제도들로 인해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난민신청자들을 도와 난민의 지위를 받아 한국에 살아갈 수 있게 하거나, 부당하게 구금되어 있는 난민들을 보호소에서 풀려나게 하거나, 부당하게 입국하지 못하는 난민들의 입국을 돕거나, 가족들이 헤어져 있어 만날 수 없는 난민들을 돕는 일과 같은 개별 사건들을 돕고, 제도적인 개선과 사회적 인식제고를 위해서도 입법활동, 네트워크 연대활동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가, 미국에 계신 코스탄 여러분들께 직접 권유해드리는 것이 아주 적절하진 않지만 나누자면, 미국은 여러 제도적 문제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제1의 재정착 난민 수용국가이며, 그래서 미국 사회 역시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난민들이 사회 곳곳에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회입니다. 코스탄 여러분들 스스로도 이주자로서 여러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 살고 계실텐데요. 자발적인 이주가 아닌  강제/비자발적 이주(Forced /Involuntary migration)자로서 본국으로 갈수도 없지만, 정착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경계속에 떠돌고 있는 취약한 외국인들인 난민들, 잘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 곁에 있는 난민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시대적인 아픔을 껴안고, 난민들과 실제 삶을 공유하며 이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발견하여 환대의 삶을 사는 것은 코스탄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신앙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참석하는 코스타에 대해 기대가 크고, 실제로 준비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께서 마음담아 코스타를 겸손히 준비해가고 계신지를 배웠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가 깊이 담긴 준비로 이뤄질 코스타를 통해 저도 여러분들께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고, 한편 여러분들께, 그리고 코스타 모든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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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러분의 강사님께서 미국 코스타에 처음 오셨습니다. 그분들 중 몇분들을 모시고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이 기사는 그 일환으로 준비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