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규]지도자의 자기 관리와 성장 (2)

첫째, 리더는 자기관리 계획을 통해 성장하라.


21세기에 사회와 교회에 요청되는 리더십의 대표적인 유형은 섬기는 리더 (servant leadership) 이다. 아마도 근대 시대에 공동체와 리더, 권위 중심의 시대에서 근대 후기의 개인, 서비스 중심의 시대로 사회와 문화의 흐름이 변화된데 그 연유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십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0년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시고 실로 본을 보여주신 성경적 리더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가르치셨고,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 10:45) 라고 말씀 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도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까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삶을 사셨다 (요 13장):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요13:15)


예수님은 이미 이 시대를 향해 무엇이 참된 리더십이고, 무엇이 우리의 형제자매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2000년 전부터 가르쳐 주셨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이미 2000년 전부터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가르쳐 주어 왔다. 물론 기독교 리더십에 있어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같은 부끄러운 부분의 굴곡의 역사가 있기도 하였지만 그런 가운데도 끊임없이 기독교 내에서의 리더십 갱신과 섬기는 종의 리더십 정신 회복의 노력은 이 역사를 주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이든, 단체장이든 누구든지 선거에 나갈 땐 이 예수님의 리더십 원리를 적용시키지 않으면 나올 수도 당선될 수도 없는 역사 이지 않은가!! 물론 당선 후 왜곡되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또 다시 선거에 나오려면 그 후보의 섬김의 리더십이 그 후보의 재출마에 있어 유권자 판단의 큰 잣대가 되는 이유를 보아도 이 역사의 리더십은 여전히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에 의하여 인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서에 나타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성서에서 ‘섬기는 삶’을 뜻하는 단어는 ‘아바드(abad)’ 라는 히브리어 단어로 , 그 뜻은 “섬기다 (serve)” “복종하다 (obey God: 아람어에서 주로 사용)” “노동하다(do work for others)” “예배하다(worship)” 등등의 뜻이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의 역할과 모습가운데 공통되는 분명한 기초 두 가지는 첫째, 성서에 나타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은 ‘ 남을 높이고 세우기 위해 내가 도와주는 삶’ 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초점 하나는 이 섬긴다는 성서의 단어 뜻 속에 ‘섬김을 통해 내 것을 챙긴다’ ‘보상 받는다’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섬기는 이의 자세는 내가 이것을 하면 저 사람이 이것을 주겠지 라는 보상 심리 (give and take)의 원리를 가져지는 것은 잘못된 섬김의 자세인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리더를 지치게 만들고 오히려 영적 시험에 빠지게 하는 바이러스가 된다. 나를 통해 다른 형제자매가 살아나고 그의 필요가 채워지고 회복되는 것 자체를 위해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성서에서 의미하는 섬기는 리더의 자세인 것이다. 둘째는, “남을 높이고 세우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지혜, 의지, 능력, 재물 ― 등등의 것을 ‘ 나누는 삶’ 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초점 하나는 섬기는 리더의 자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이 주신 은사(gift)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 것은 놓아두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은 주로 내 것을 재생산 해 내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지도록 도와주고 내 것을 나누는 삶, ‘퍼 주는 삶’ 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퍼 주다 보니 어느 순간 리더에게 더 이상 퍼 줄 것이 없어지면서 리더십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는 지치게 만들고, 섬기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리더가 섬김을 위해 더 이상 퍼 줄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 하나님은 인간을 성장하도록 만드셨다. 이것은 육체적인 면에서, 심리적인 면에서,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모두 똑같이 성장하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이 시간이 가면서 이 세 가지 모두 성장하지 않으면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린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의 육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육체적 나이가 든다고 성장이 멈추었다고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깊은 삶의 연륜이 자녀를 양육하고, 이 시대의 삶의 지혜를, 그리고 원숙한 미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면에서도 육체가 자라면서 더욱 안정되고 성숙해지게 되어 있다.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차원도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모습에서 장성한 어른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사도는 에베소에 있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여러분들이 더욱 하나님의 부르신 소망이 무엇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될 하나님 나라의 유산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이(the eyes of your heart) 열려 지기를 기도한다고 (빌 1: 15-19) 편지를 쓰고 있다.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영적으로 눈을 뜨고, 성장(spiritual growth)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셨다. 이 성장이 늘 인간을 새롭게 하고 새 힘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그룹 리더가 섬김을 위해 더 이상 퍼 줄 것이 없다는 것은 그의 삶에 무엇인가 재생산의 작업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공급하는 사람이 재생산해 내지 못하면 공급할 수 없고 기업이 파업 되듯이 리더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 창조의 영역에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리더십에 이상 신호가 오고, 공급이 중단되며, 섬김이 지치고, 고역스러워지며, 결국에는 파산 신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리더의 재생산을 위한 관리와 공급은 섬김의 필수적 요소요, 리더의 지침을 방지하는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리더의 지침을 방지하고 지속적 섬김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재생산 공급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리더의 자기 관리 계획을 통해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장이규]지도자의 자기 관리와 성장(1)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 교회의 목회자와 목회 위원회, 혹은 당회는 내년도 교회 사역을 위한 리더 세우기에 많은 시간과 정열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 이유는 세워지는 리더들이 내년도 교회의 사역이 얼마만큼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그루터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게 일꾼을 찾아다니는 부서 중 하나는 교육부이다. 내년도 교회학교 교사들을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지만 현실은 의외로 쉽지 않다. 교사로 자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의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교회학교를 섬기면 좋을 텐데 1-2년을 섬기다 보면 대다수가 지쳐 쉬고 싶어 한다. 교회학교 교사 지원자도 부족한데 기존 섬기던 선생님들까지 내년도 섬김에 대한 사양이 매년 교육부로 하여금 어려움과 큰 고민가운데에 빠지게 만든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은 소그룹 (속회/구역/ 셀/ 목장 등등) 리더 세우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소그룹 리더를 세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새로운 리더십의 발굴이 잘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제껏 섬겨오던 리더십들이 교회학교 교사들처럼 역시 지쳐서 소그룹 리더십 사역을 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교회의 거룩한 사역에 기존의 리더들이 지쳐 더 이상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하기를 주저하는가? 기본적으로 그 이유 3가지를 들어 본다면


첫째, 한 개인이 너무 많은 사역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코스타(KOSTA)에서 기드온 프로젝트(gpKOSTA)라 하여 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은 지도자를 양육하는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이 인디아나(IN)에서 열렸다. 이때 시카고, 미네소타, 인디아나, 미시간 등지에서 학생/청년 리더들이 약 96명 정도 참석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설문지의 질문 중 한 가지가 교회에서 섬기는 개인의 사역에 관한 물음이었다. 그 질문의 응답은 놀랍게도 이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사역이 대다수 최소 3가지-4가지였고 많게는 5- 6가지 사역에 적지 않은 숫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혹시 목회자들이 참여한 것 아닌가 하는 물음까지 가질 정도였다. 제한된 시간의 테두리에서 사는 인간이기에 시간의 안배와 체력의 조절이 무너지면 건강의 소진과 함께 스트레스를 가지기 마련이다. 직장/ 학업 과 가정, 교회 생활의 그 어느 하나 균형을 잃게 되면 그 결과는 다른 쪽에도 균형을 잃게 한다. 균형의 상실은 육체적, 심리적, 영적 바이러스를 가져와 건강을 잃게 하고, 결국은 쓰러지게 만들기 마련이다. 너무 많은 교회의 사역이 리더들로 하여금 지치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이다.


둘째, 장기적인 섬김의 비전이 외부에서 공급이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이 사역에 헌신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새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음식을 먹어도 금방 본능적으로 변화를 좆아 간다. 이것은 물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이에 대해서도 변화를 가져보려 한다. 그래서 자리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 닦아 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붙여 보기도 한다. 새로운 기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선함을 분명 우리들에게 가져다주어 새로운 의욕(motivation) 을 공급하게 되고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걷게 한다.


맞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모든 것을 장기적으로 유지시키는 (sustaining) 원리의 기초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사역의 헌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현재적 사역에 대해 새로운 비전들이 외부에서 공급되어지지 않으면 그 일은 익숙하게 된다. 일이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사역의 새로움을 위한 도구들(training/equipping)이 외부에서 공급되어지지 않으면, 이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더 이상 총을 쏠 수 있는 탄알들이 없어 무력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결국 무능력에 대한 자책감속에 지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리더의 자기 영적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섬김에 있어서 리더 자신의 영적 관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외부적인 조건이 좋지 않아도 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불편한 것뿐이지 불행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외부적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내적으로 건강하지 않는 사람은 늘 불평이 많고, 얼굴에 근심이 많으며,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앞에서 언급한 리더를 지치게 하는 두 이유 1) 많은 사 역 2) 외부적 공급의 결핍 가운데서도 리더 자신이 영적으로 건강하다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다. 목회자와 상의하여 시간을 조절하거나 사역을 조절하거나, 혹은 본인이 외부적 공급을 요청하거나, 자신이 제공하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역자들을 붙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 자신의 영적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는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고, 섬김의 책임성 보다는 회의적인 신앙의 자리에 서게 되며, 사역의 거절 뿐 아니라 그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 하게 된다. 심한 경우는 삶의 안정을 잃어 늘 불안하고 떠 있는 것과 같은 알맹이 없는 껍질의 모습으로 교회 존재자체의 무가치성까지도 느끼게도 된다.


물론 이러한 기본적 3가지 이유 외에도 리더의 가정, 직장, 혹은 리더의 인간 관계성 문제라든지, 리더십에 대한 그룹 원들의 문제 제기, 혹은 교회의 불안정한 여러 요소들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리더들로 하여금 사역의 지속성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리더를 지치게 하여 사역을 멈추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더가 지쳐 쓰러지는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에서 제기한 3가지 기본 요인들과 어느 정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더 깊이 관찰해 보면 이 지침(burn-out)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리더의 자기 영적 관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은 리더가 영적으로 지쳐 더 이상의 거룩한 사역의 사양(reject)을 가져오게 된 세 번째 이유, 리더의 자기 영적 관리 실패에 그 초점을 두고 어떻게 이를 방지할 수 있는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리더가 지친 상태에서 어떻게 회복(build-up)할 수 있는지 그 도구들(tools)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별히 내용을 소그룹 리더로 제한시키려 한다. 물론 내용 자체는 다른 리더십에서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세밀하게 어느 한 초점이 있어야 다른 경우도 적용할 수 있기에 그 내용의 범위는 소그룹 리더의 경우로 초점을 둔다.

[장이규]지도력에 대한 반발 이렇게 해결하라

리더가 소그룹을 섬기면서 자신의 리더십에 위기를 경험하게 될 때, 그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리더의 자기 관리와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리더가 그 위기의 파도를 잘 타면 그 위기의 파도는 오히려 리더가 영적, 정서적으로 더욱 상승하는 기회가 되지만, 그 위기의 파도를 리더가 타지 못하면 파도에 휘 감기고 결국은 물에 빠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리더는 앞으로 그의 리더십에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소그룹 리더의 리더십의 위기는 어디서 주로 오는가? 그것은 리더의 지도력에 대한 반발에서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리더의 지도력에 대한 반발의 경우를 본다면, 첫 번째로 그룹 내에 있는 그룹 원들로부터 오는 내부적인 부정적 반응이다. 리더의 의견이나 방향에 사람들이 동의를 하지 않고, 다른 의견과 마음, 다른 비전을 가지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리더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는 경우이다. 이때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 권위의 신뢰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에 심적으로 부담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의 경우는 그룹 원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동조하는 다른 동료 지도자의 부정적 반응을 알 때 이다. 상황도 잘 모르면서, 그리고 리더 자신의 참된 의도도 잘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그룹 원들의 의견만을 들어주고, 이에 동조하고, 상대적으로 나를 경계하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동료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혼자라는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향한 의견이나 리더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 공동체를 섬기는 리더는 섬김에 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때 소그룹 리더는 그의 섬김에 있어서 마음에 충격을 가지게 되고, 내면적, 외면적 갈등을 가지게 된다. 더 나아가 리더는 사역에 대한 위축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지도력에 대한 반발의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주로 리더와 그룹 원들 간의 혹은 리더와 동료 리더간의 의사소통 (communication)의 결핍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충분하게 나누지 못하고, 이럴 것이라고 생각(assume) 하는 오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혹은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다름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다양하게 창조하셨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를 이루는 공동체는 각기 다른 은사들을 통하여서 세워진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단지 이론이고 실제적으로는 리더십을 나눔에 있어서 적용이 잘 안되어 리더는 이러한 상황을 자신에 대한 리더십에 대한 반발로 착각을 하고 오히려 이것이 위기가 되고 사역의 위축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리더는 그룹 섬김에 있어서 리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다르게 창조하셨기에 소그룹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는 각기 다르게 좋아하는 방법과 스타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별히 스타일이 다른 것, 그들의 선호가 다른 것, 그들 나름대로의 요구와 기대가 리더와 다른 것은 잘못(wrong)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룹 내의 서로 다름(different)을 예측해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 가운데 서로의 다름이 오히려 창조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리더십에 대한 반발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리더는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첫째, 리더는 무엇 보다고 자신의 지도력에 대한 반발하는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무엇을 내 의견과 달리하고 있는지, 무엇은 동의하고 있는지를 정리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되어지는 상황을 리더가 단순한 감정적인 차원에서 처리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 상황에서 리더는 이 문제에 무엇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서 반발이 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 리더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 문제가 리더와 그룹 원의 누구와의 감정적이 차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가 않아서 문제가 된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온 부정적 응답이라고 하면, 리더는 그룹 원들과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감정의 순화를 위한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논리적인 차원에서 타당성의 문제에서 왔다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지를 생각하고 또 의논해야 한다. 때로는 리더와 그룹 원들 간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나아가는 방식의 문제인 만큼, 서로가 조금씩 양해를 하면서 하나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리더십에 대한 반발은 오히려 리더의 성장의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그룹 원들의 영적, 심리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둘째, 지도력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리더는 섬기는 사역 목표 대상이 누구인지를 다시 점검 하는 것을 통하여 성장하라. 사람이 섬김의 초점이다. 소그룹 사역에 있어서 섬김의 목적은 사람에 있지 사역에 있지 않음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섬김은 사람을 위함인데 섬기면서 보면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늘 그 과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리더는 섬김의 효율성에 그 초점을 두게 되고, 사람에 초점 두는 것을 소홀히 하는 실수를 종종 범하게 된다. 이 경우 리더는 관계성(relationship)을 다시 세우도록 시간을 창조해야 한다. 만남의 시간을 창조하라. 좋은 만남은 문제 해결의 키가 된다. 친교의 시간을 창조하라. 이를 통해 리더는 그룹 원의 반발을 이해 할 수 있게 되고, 그룹 원 역시 리더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또 다른 차원에서의 리더십을 창조하게 된다.


셋째, 지도력에 반발이 생길 때 리더는 그룹 원들과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가지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길로 인도한다.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일정시간 기도의 시간을 창조하라. 그리고 중보기도 팀에게 기도 부탁을 하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룹 기도 수련회를 가지라. 이렇게 기도의 시간을 가질 때, 적절한 기도를 위한 정보를 알려 주라. 그리고 기도를 위한 방법을 알려주라.


넷째, 지도력에 반발이 생길 때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이 종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 모델 이 이었는지를 점검하라. 좋은 리더는 항상 섬기는 이들의 필요성(needs)을 분별하려 노력한다. 사람들은 모임 가운데 무엇인가 늘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필요성에 대한 응답을 기다린다. 그런 면에서 리더는 이들의 필요한 그것이 자신의 그룹에서 충족되어지고 있는지, 혹은 그들의 갈급함에 응답되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는지 자신의 리더십을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였다면 자신의 리더십이 그룹 원들에 적절하게 전달되지 못했음을 발견하고, 이에 리더로서의 태도 전환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리더는 성장의 계기를 창조하게 된다.


다섯째, 지도력에 반발이 생길 때, 리더는 자신이 어떠한 일을 결정하여 일을 추진할 때, 이로 인해 누가 도움을 얻고 누가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이제껏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혹은 사역을 시작함에 있어서 누가 이 일로 인해 가장 큰 도움을 얻게 되는가 혹은 누가 가장 큰 소외를 가지게 될 것인가? 이 일에 대한 부작용은 생각해 보았나? 충분하게 의논을 하고 이 일을 추진하는 것인가? 이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소외를 혹은 부작용을 가장 작게 만드는 길은 무엇인가? 누가 또 이 일을 알아야 하나? 등등의 질문이 있었는가를 점검 해 보아야 한다. 리더가 어떠한 사역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소외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소외되는 부분에서 리더의 리더십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이 반발이 자신의 지도력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에서 소외되었던 상처 부분에서 나오는 음성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속에서 리더는 새로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여섯째, 리더는 지도력의 반발이 생길 때, 이 문제가 리더 자신에 대한 신뢰의 부족에서 온 것이 아닌가를 점검해야 한다. 지도력의 반발은 리더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오기 때문이다. 소그룹 리더에 대한 신뢰 기초는 무엇보다도 소그룹을 인도하는 능력에 있다. 사람들을 인도하는 기술이나, 리더의 확신 있는 믿음, 혹은 리더의 성실성 혹은 도덕성, 리더의 진실성과 개방성, 때로는 리더가 말한 것을 이행하고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통하여서 그룹 원들은 리더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에 있어서 하나 씩, 하나 씩,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리더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지도력에 반발이 생기게 된다. 이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리더는 자신의 자존심의 싸움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리더의 반응은 ‘겸손’ 이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함과 동시에 리더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소그룹 내에서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리더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성숙화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때 그룹 원들은 반발 보다는 오히려 리더의 연약한 점을 인정하면서 그 부족한 부분을 자신이 채워 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그 부분에 관한 섬김의 자리를 찾게 된다. 동시에 리더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전환의 계기가 열리게 된다. 이를 통해 리더는 새로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리더는 지도력의 반발이 생길 때, 이 문제가 그룹 원들의 헌신에 대한 리더의 감사 표현과 격려의 부족에서 온 것이 아닌가를 점검해야 한다. 흔히 지도력에 대한 반발은 새로 참여한 그룹 원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랫동안 리더와 함께 섬겨온 동역 자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리더에게 있어서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되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 상심을 가져온다. 때로는 리더에게 무력감까지도 가져오는 결과를 준다. 이때 리더는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섬겼던 동역 자들 마저 주저앉게 된다. 오히려 리더는 함께 사역한 이들의 반발이 있을 때, 그 동안 그룹 원들이 시간의 압박 속에서도 섬겨온 충성에 대해, 리더 자신의 돌아봄과 격려가 부족하지 않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들을 향한 자신의 태도가 너무 일 지향적(work-oriented)이지 않았는가? 이들의 섬김을 향한 자신의 태도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았는가? 를 생각하라. 그로 인해 그 동안 리더는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진 감사와 격려의 표현을 회복시켜야 한다. 때로는 리더 개인의 시간을 나눔으로, 때로는 작지만 정성스런 마음의 나눔 등등을 통해, 리더의 감사와 격려가 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해야 한다. 이를 통해, 리더의 지도력에 대한 반발은 리더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리더는 공동체 내에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도력 반발에 직면할 때 리더가 풀어가야 하는 것은 문제요, 살려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장이규]지도자의 자기 관리와 성장

리더가 탈진 하는 이유 3 가지를 감시하라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 교회의 목회자와 목회 위원회, 혹은 당회는 내년도 교회 사역을 위한 리더 세우기에 많은 시간과 정열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 이유는 세워지는 리더들이 내년도 교회의 사역이 얼마만큼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그루터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게 일꾼을 찾아다니는 부서 중 하나는 교육부이다. 내년도 교회학교 교사들을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지만 현실은 의외로 쉽지 않다. 교사로 자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의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교회학교를 섬기면 좋을 텐데 1-2년을 섬기다 보면 대다수가 지쳐 쉬고 싶어 한다. 교회학교 교사 지원자도 부족한데 기존 섬기던 선생님들까지 내년도 섬김에 대한 사양이 매년 교육부로 하여금 어려움과 큰 고민가운데에 빠지게 만든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은 소그룹 (속회/구역/ 셀/ 목장 등등) 리더 세우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소그룹 리더를 세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새로운 리더십의 발굴이 잘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제껏 섬겨오던 리더십들이 교회학교 교사들처럼 역시 지쳐서 소그룹 리더십 사역을 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교회의 거룩한 사역에 기존의 리더들이 지쳐 더 이상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하기를 주저하는가? 기본적으로 그 이유 3가지를 들어 본다면


첫째, 한 개인이 너무 많은 사역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코스타(KOSTA)에서 기드온 프로젝(gpKOSTA)이라 하여 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은 지도자를 양육하는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이 인디아나(IN)에서 열렸다. 이때 시카고, 미네소타, 인디아나, 미시간 등지에서 학생/청년 리더들이 약 96명 정도 참석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설문지의 질문 중 한 가지가 교회에서 섬기는 개인의 사역에 관한 물음이었다. 그 질문의 응답은 놀랍게도 이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사역이 대다수 최소 3가지-4가지였고 많게는 5- 6가지 사역에 적지 않은 숫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혹시 목회자들이 참여한 것 아닌가 하는 물음까지 가질 정도였다. 제한된 시간의 테두리에서 사는 인간이기에 시간의 안배와 체력의 조절이 무너지면 건강의 소진과 함께 스트레스를 가지기 마련이다. 직장/ 학업 과 가정, 교회 생활의 그 어느 하나 균형을 잃게 되면 그 결과는 다른 쪽에도 균형을 잃게 한다. 균형의 상실은 육체적, 심리적, 영적 바이러스를 가져와 건강성을 잃게 하고, 결국은 쓰러지게 만들기 마련이다. 너무 많은 교회의 사역이 리더들로 하여금 지치게 하는 주요인 중 하나이다.


둘째, 장기적인 섬김의 비전이 외부에서 공급이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이 사역에 헌신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새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음식을 먹어도 금방 본능적으로 변화를 좆아 간다. 이것은 물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이에 대해서도 변화를 가져보려 한다. 그래서 자리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 닦아 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붙여 보기도 한다. 새로운 기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선함을 분명 우리들에게 가져다주어 새로운 의욕(motivation) 을 공급하게 되고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걷게 한다.


맞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모든 것을 장기적으로 유지시키는 (sustaining) 원리의 기초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사역의 헌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현재적 사역에 대해 새로운 비전들이 외부에서 공급되어지지 않으면 그 일은 익숙하게 된다. 일이 익숙해지면 타성에 젖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사역의 새로움을 위한 도구들(training/equipping)이 외부에서 공급되어 지지 않으면, 이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군인이 더 이상 총을 쏠 수 있는 탄알들이 없어 무력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결국 무능력에 대한 자책감속에 지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셋째, 리더의 자기 영적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섬김에 있어서 리더 자신의 영적 관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외부적인 조건이 좋지 않아도 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불편한 것뿐이지 불행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외부적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내적으로 건강하지 않는 사람은 늘 불평이 많고, 얼굴에 근심이 많으며,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앞에서 언급한 리더를 지치게 하는 두 이유 1) 많은 사 역 2) 외부적 공급의 결핍 가운데 서도 리더 자신이 영적으로 건강하다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다. 목회자와 상의하여 시간을 조절하거나 사역을 조절하거나, 혹은 본인이 외부적 공급을 요청하거나, 자신이 제공하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역자들을 붙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 자신의 영적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는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고, 섬김의 책임성 보다는 회의적인 신앙의 자리게 서게 되며, 사역의 거절 뿐 아니라 그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 하게 된다. 심한 경우는 삶의 안정을 잃어 늘 불안하고 떠 있는 것과 같은 알맹이 없는 껍질의 모습으로 교회 존재자체의 무가치 성까지도 느끼게도 된다.


물론 이러한 기본적 3가지 이유 외에도 리더의 가정, 직장, 혹은 리더의 인간 관계성 문제라든지, 리더십에 대한 그룹원들의 문제 제기, 혹은 교회의 불안정한 여러 요소들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리더들로 하여금 사역의 지속성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리더를 지치게 하여 사역을 멈추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리더가 지쳐 쓰러지는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에서 제기한 3가지 기본 요인들과 어느 정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더 깊이 관찰해 보면 이 지침(burn-out)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리더의 자기 영적 관리에 그 원인이 매우 밀접하게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리더는 무엇보다 먼저 평상시 영적인 탈진의 원인이 되는 위의 3가지 영역을 늘 염두에 두면서 자기 영적 관리를 해야 한다. 만일 영적으로 지쳐 더 이상의 거룩한 사역의 사양(reject)을 가져오고 싶을 때가 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지속적으로 개인적으로 영적 측면에서도 공동체적인 섬김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영적 관리를 통해, 리더는 섬김 가운데에서 다가오는 위기를 방지할 뿐 아니라, 순간순간의 섬김의 위기들을 오히려 영적 성숙의 변화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이규]변증을 위한 소그룹 운영을 계획하라 (3)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소그룹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 변증 능력의 개발은 다음의 4가지 전략적인 의도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의도적인 변증 능력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예를 들면 올해 상반기, 혹은 올해 한 해는 특별히 변증의 능력을 개발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라.


둘째는 의도적인 변증의 능력 개발 차원에서 설교와 말씀들을 듣게 하라
오랜 세월동안 믿음의 경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이유는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설교말씀을 객관적으로 듣기만 해서이다. 말씀이 구체적으로 내 삶에 부딪히는 사건(event)으로의 전환(transforming) 없이 단지 오늘 설교가 좋았다, 찔렸다, 은혜 받았다 등등의 객관적인 감정의 차원 (emotional dimension) 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 차원의 경험은 시간의 문제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감정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건이 정말 있었는?없었는지 지어낸 것인지 분별이 잘 안되는데, 하물며 단순한 감정적 차원에서의 이해는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원래 그 자리에 또 있는 것 같이 느끼면서 복음의 변증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 없어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집중하여 말씀을 들으라. 은혜 받은 바를 느낌에 머물게 하지 말고 이해의 차원으로 끌어 올려 정리를 하게하라.


셋째, 의도적으로 변증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 하게 하라.
이야기 되어 지고, 설명되어진 모든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나의 생각과 언어의 표현으로 정리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객관적으로 주어진 모든 정보들이 나의 것으로 소화(transforming)되고 체계화(systemizing) 되기 때문이다. 별도의 노트에 혹은 컴퓨터에 메모를 하라. 그리고 이 메모에 맞는 질문을 만들어 놓으라. 그리고 꼬리를 물고 생기는 질문들을 메모해 놓으라.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라. 이러한 경우는 변증에 관한 책들이 많이 도움이 된다. 변증에 관한 책은 2-3권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내 영적 성숙도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반면에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의 대답이 의외로 나의 영성과 성숙도에 맞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참고도서: Help Me Believe, Direct Answers to Real Question by Cliffe Knechtle 혹은Just the FAQ’S about Jesus, Frequently Asked Questions by Max Anders)


넷째,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 을 제공하라


개인의 변증 능력의 개발을 위한 4가지 전략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네 번째는,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믿음의 능력을 개발(equipping) 하고 믿음의 능력을 나누도록(empowering) 하는 귀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훈련을 통하여 혹자는 성경의 지식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증 훈련의 유익은 그러한 차원이 아니다. 한번 해 보라. 변증의 훈련은 3가지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유익을 공급하는데,


1. 변증의 훈련을 통해 단순한 정보의 정리의 차원에서의 도움이 아니라, 그동안 지나쳐 오던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무엇을 믿지 않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의 의문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하면서 이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동시에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변증의 훈련 자체는 믿음의 능력을 개발하는 (equipping)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기본적인 예들이다.


Q: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A: 회개 와 구원 (마가 1:14-15/ 요3:2-3, 16-18)
Q: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A: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38)
Q: 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나?
A: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을 사람들이 믿도록 돕고, 기적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증거하시기위해서 입니다. (막2:5-12/ 눅 7:11-17). 기적 자체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Q: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 무엇을 이루셨나?
A: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 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심(롬 4:2-3; 5:1,9; 8:1,)
Q: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죠?
A: 첫째는 그를 믿고, 둘째는 그를 우리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며, 셋째는 우리의 옛 삶을 회개하고, 넷째는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요3:16-21, 6:44; 요1 6:4)
Q: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A: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단지 성경이 기록하는 말씀에 익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시고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히 알게 됩니다.(롬6:17)


2. 더 나아가 변증의 훈련은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자신을 부여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가 생기듯, 변증의 훈련은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적으로 믿음의 용기와 안정을 가져오면서 생명력 있는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 한다. 왜냐하면 변증의 능력은 문제를 다루도록 준비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윌 로우 크릭에서 변증의 시간에 묻고 응답되어진 훈련의 내용이다.


Can we really know what’s true about God?
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Do all paths to God?
What does God think of homosexuality?
Will People really not be in a Hell?
Is Christianity oppressive to women?
Is life predestined or are we free to choose?
What does God want from me?


3. 또 한편으로 변증의 훈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생명력 있게 나눌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신앙의 내적 경험을 외적으로 표현 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있었던 표면 측면의 지식적 걸림돌이 제거 되면서, 신앙의 내적 경험이 외적인 체계화된 외적 지식의 비행기를 타고 생명력 있는 능력으로 전달되어지게 된다. 이는 마치 음악 발표회 때 악보를 보면서 노래하는 사람과, 악보를 외우고 관객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호소력 있게 노래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 있는 전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복음의 생명력 (power)에 자신을 노출하도록 감화력을 갖는 것이다. 변증의 훈련 자체가 믿음의 능력을 나누게 하는 (empowering) 단계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훈련을 의도적으로 계획하라. 변증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두려움의 장애물들을 넘게 하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단순하게 지식으로 정리가 되지 않고 나의 믿음에 믿음의 능력이 개발되고, 믿음을 나누게 하는 생명력 있는 힘을 얻게 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윌로우 크릭 교회는 아래와 같은 훈련을 정기적으로 매번 내용을 달리하여 제공하고 있다.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훈련의 내용을 적어 본다.


Jesus as the ultimate “how to” model
Geared to reach a our changing culture
Using questions to discover truth
Others centered vs. information centered
Spiritual Discovery as a process, not a project.


Date: 03/22, 29, 04/05 – 2005
Time: 7:00-9:00 p. m.


기타 참고 도서


티 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정성욱)
순전한 기독 교(c.s. lEWIS)
Just the FAQ’S about JESUS by Max Anders(IVP:2002)
Help me Believe by Cliffe Knechtle(Nelson, 2000)


훈련된 1분 표현의 변증능력의 개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장이규]변증을 위한 소그룹 운영을 계획하라

소그룹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각 그룹의 종류만큼 그 초점도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a. 돌봄(care) – counseling/ mentoring/shepherding/intensive care 그룹 등

b. 친교 (fellowship) – cooking/hospitality/ decorating/ activities 그룹 등
c. 집중적인 영성 훈련– prayer, QT, serving 그룹 등
d. 리더 양육(discipleship) 그룹 등


그러한 다양한 소그룹의 종류 중 특별히 새로운 리더 양육을 위해 빼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그룹 중 하나는, 변증의 능력을 공급해 주는 (equipping) 의도된 변증 소그룹이다.


이 변증 소그룹은 소그룹을 통한 재 생산 그리스도인 양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소그룹 중 하나로,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는 반드시 이 그룹의 양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그룹이다. 왜냐하면 오늘 날 영향력 있는 크리스챤의 리더쉽의 하나는 복음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1분 응답의 변증(Christian Apologetics)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이 약화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2월 11-12에 시카고 외곽에 위치해 있는 윌로우 크릭 컴뮤니티 교회에서는 Cosmic Fingerprint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신앙과 과학의 대화를 위한 4주 변증 씨리즈 중 첫 시간으로 ” New Discoveries of Design in the Universe” 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주 강사로 초빙된 문리 학자이자 천문학자인 Hugh Ross 박사는 자신은 본래 전혀 신앙이 없던 자 (religious ground zero)로서 우주의 생성과 그 디자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7살부터 가지고 있었고, 이 관심이 그의 전공으로 이어져, 우주의 생성과 그 디자인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종교에 기록되고 있는 우주의 생성과 기원의 내용들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성서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이 이 역사의 창조자시고, 오늘도 살아 우리의 우주와 지구, 그리고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 참 하나님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그러한 확신은 그에게 신앙의 첫걸음을 걷게 하였고 그 이후 하루 2시간씩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성서, 우주와 인간의 삶, 그리고 성서 안에 계시된 하나님과 인간의 삶에 대해서 연구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그의 연구의 결과들에 대해서 설명을 덧 붙이고 공개 질의 토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62명의 과학자들과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원근각처에서 약 3200명에 몰려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휴 박사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휴 박사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과학적인 논리를 가지고 성서에 나타난 우주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디자인을 설명해 냈다. 그 이튼 날 이어진 구체적인 웍샾에도 과학자들과 우주 과학에 관심있는 520명의 사람들이 등록을 하여 과학적인 논리 안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해 함께 연구하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www.willowcreek.org 를 참조하라.)


놀랍지 않은가? 한 과학자의 지식과 신앙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과 과학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신앙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세미나를 듣고 태도가 변화된 한 중국인 무신론자의 반응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늘 말해 왔다. 그런데 이 강연 후 이 강연이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참 좋았다고 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되어진다는 믿음의 열린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강연 이후 한 사람이 예수 믿기로 결정을 해 수요예배에서 한 사람이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실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맞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각각 다른 신앙의 여정을 주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먼저 감정이 움직여야 믿음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성격이 삐뚫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 놓으신 질서 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창조 하실 때 우리 삶 가운데 감성적인 차원(emotional dimension)과 지적인 (intelectual Dimension)차원을 동시에 주셨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들의 감성적인 차원이 먼저 채워지면 그 다음은 지적인 차원의 필요를 느끼도록 만드셨고, 반대로 우리들의 지적인 차원이 먼저 채워지면 감성적인 차원의 필요를 목말라 하도록 우리를 질서지워 놓으셨다. 따라서 이 둘의 차원은 서로 떨어져 있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차원인 것이다. 그러기에 먼저 이성적으로 지적으로 이해가 되어져야 믿음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그 중국인 무신론자도 그렇고 이 강연을 들은 후 믿음의 자리에 나온 분도 그 가운데 한 명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그리스도인의 1분 응답 능력은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부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의 신앙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감성적인 측면의 신앙적 토대는 강하지만 체계적인 이론적 신앙(solid foundation of Christianity)이라든지, 설명을 통한 다른 사람의 설득면에서는 매우 약하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변명의 응답은 ‘뭐, 신앙이라는 것이 말로 해서 아나요? 그냥 삶으로 보여 주어야 되는 것이지요.!’ 하고 이야기 한다. 맞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삶이 병행되지 않은 신앙은 능력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이 제기하는 신앙적 문제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주부는 주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가는 사업 측면에서, 천문학자는 천문학자대로, 문리 학자는 문리학자대로, 신학자는 신학자 대로, 경제학자는 경제학자대로, 의학자는 의학자 대로—각자의 영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 우리의 사업, 우리의 연구 영역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이분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증거할 수 있어야 복음이 영향력 있게 전하여 지는 것이다. 물론 감성적 차원에서의 믿음이 잘못된 신앙은 아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섬기는 데에 있어서, 변증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증이라 하면 매우 어렵게 생각하지만, 다른 쉬운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이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이론적 정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 그러면 그 성경이 어떤 책인지. 등등 우리가 믿는 바를 요약하는 것이 변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변증은 나의 신앙의 기초를 분명히 그리고 튼튼히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수없이 많이 제기되는 질문들 가운데 서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꼭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구원을 얻게 되나요? 믿음은 개인의 신념 아닌가요? 꼭 교회 나아가야만 구원을 얻나요? 술과 담배를 하면은 죄를 짓는 것인가요? 이러한 질문들은 신앙 공동체에는 속해 있으나 믿음의 혼돈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제기하는 질문들 중 하나이다. 혹은 믿음의 상처로 신앙 공동체를 떠나 있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교회가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요? 한 동네에 하나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죄인가요? 왜 그렇게 잘 믿은 사람에게 그런일이 생길 수 있지요? 목회자가 그럴 수 있나요? 등등—


어떤면에서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주어지는 설교, 그리고 성경공부, 상담도 변증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령이 어떤분인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혹은 위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하나 하나 응답이 주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변증의 한 분분으로 사실상 우리들의 믿음을 분명하게 가지도록 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들 스스로는 늘 변증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가? 오랜 세월의 믿음의 연륜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에 스스로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 보자. 주로 어떠한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변증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자신이 없어지는가? 언제 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증의 능력의 부족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첫째,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이다. 둘째, 하나님 존재에 의심을 품거나 신앙생활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이다. 셋째,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논리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교회 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 이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접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들은 무엇인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은데 그 분명한 근거에 대한 설명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 보여야 할지 모를 때 당황하게 됨을 경험한다. 이 당황하는 경험의 이유의 기초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우리들이 알고 있는 복음의 말씀이 분명하게 체계가 잡혀져 있지 않고, 안개처럼 뿌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응답은 주로 개인적인 신앙적 경험담으로 대치된다. 많은 경우는 신앙에대한 이성적 논쟁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의 신비한 신앙적 경험으로 대처하지 못해,그냥 침묵하기가 일수이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 스스로도 이에 답답해한다.


왜 그렇게 우리에게 신앙의 내용 자체가 안개속에 서 있는 것처럼 뿌연가? 왜 이성적인 질문도 신앙적 경험의 응답으로만 그 대답이 주어지는 것인가? 그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신앙에 대한 체계 (solid foundation of Christianity)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자신의 신앙이 약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복음의 변증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변증의 능력이 부족한 중요한 이유 중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복음을 체계화하려는 의도적인 환경의 부족 (lack of intention)이다. 변증의 능력은 의도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얻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능력은 의도성을 가지고 집중 개발하지 않으면 이 능력은 자연스럽게 개발되지 않는 부분에 속하기 때문이다. 에스 칼레이터는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래 층(lower level)에서 다음 층(high level)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믿음의 성숙에 있어서도 믿음의 시간적 길이를 통해서 성숙해 가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의 시간적 길이와는 상관없이, 의도적인 노력 없이는 아래층에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신앙의 성숙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변증의 능력인 것이다. 이는 집중적인 관심과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에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변증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인 차원에서의 준비된 환경에 대한 리더의 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