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영적 지도자와 의사 소통 (Effective Communication)

최근에 한국인 1세로 미국의 큰 회사에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 경험이 있으시고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 최광철 박사님의 지도력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이 강의에서 “지도력은 결국 의사소통”이라고 강조하시면서 미국 사회에서 우리 한인들이 높은 자리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영향력 있는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또 중요한 영향력의 자리에 이를수록 중요한 것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은 지도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미국에서 결국 영어의 한계로 인하여 결국 좋은 지도자가 될수가 없다는 것일까요? 최광철 교수님은 연구에 의하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결정하는 요소가 Expression/Body Language가 44%, Tone이 46%, 그리고 Word는 단지 10%만큼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강조하기를 영어를 못한다고 의사 소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 살면서 우리 한인 1세들이 언어로 인하여 의사소통에 자신이 없어하는데 실╂岵막?말 그 자체는 의사소통에서 10% 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하면 되고 손과 발을 써가면서라도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 그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 한인들이 많은 실력이 있으면서도 의사소통문제로 지도력에 한계를 느끼는데 의사소통 자체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번은 경험이 많은 한국의 홍명보 선수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정착하려고 노력하던 박지성 선수에게 선배로써 조언한 말이 있다. “라커룸에서 신발이라도 집어 던져라.” 영국에서 프로선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던지 의사소통을 하면서 적응해야 하는데 영어가 부족하여서 많은 경우에 의사소통에 한계를 느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소외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말이 안되면 행동으로라도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적응해 가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이야기였다. 우리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이된다. 말이안도면 몸으로라도 표현할때에 우리가 이 미국사회속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오늘은 평소에 느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한 몇가지 기본적인 원리들을 살펴보겠다.


첫째, 시간을 지키라. 주어진 시간이 짧던 길던 그 시간에 적절히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주어진 주제에 관하여 3분에도 이야기 할 수 있고 같은 주제에 대하서도 3시간 짜리 세미나도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표현에 Stump Speech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대중 매체가 발달하기 이전에 정치가들이 캠패인을 할 때에 여러 후보들이 연설할 기회를 말뚝 위에 올라가 정해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정견 발표를 할 기회가 주어진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긴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소신과 비젼을 표현할 수 있어야 정치가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있던 것이었다. 자신이 할 말을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둘째,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하여 이야기를 사용하라.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메세지를 전하는데 효과적이고 오래 남는다. 사람들이 대화 가운데 단순히 이성과 논리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상상력을 사용할 때에 더욱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욱 더 깊은 의사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이야기로 하면은 말하는 사람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좋은 이야기들을 가지기 위하여 늘 기록하는 습관과 더불어 삶의 평범한 사건속에서도 의미를 끌어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는 자신은 설교의 한 예화를 얻기 위하여 10리를 가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 만큼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라. 먼저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이야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라. 처음에 관심을 잡아야 커뮤니케이션 내내 상대방의 관심을 잡고 갈 수가 있다. 오늘날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온갖 영상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이 듣는 소리에 관심을 잘 갖지를 않는다. 요사이 사람들 앞에서 긴 시간 동안 강의나 설교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드는 일이다. 현대인들의 관심도 즉 Attention Span 이 짧아져서 사람들의 관심을 잡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던지 처음에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것이다.


넷째,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을 습관화하라. 주제 문장이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산발적이 되기 싶다. 이야기 할 때에 하나의 주제에 충실하라. 예를 들어 설교를 할 때에 많은 경우에 하나의 설교에서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하나의 주제에 촞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도리어 주제가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의사소통에서 자기 자신이 되라. 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들을 때 배운 원리이다. 그 때에 설교에 관한 여러 가지 원리들을 배웠지만 가장 나에게 영형을 많이 준 원리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되라는 것이다. 어떤 외적인 틀에 갖추어진 형식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설교를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편리해야듣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를 바꾸려고 노력 하지도 말고 누구를 닮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원고를 꼭 위우거나 보지 않으려고 할 필요도 없고 가장 편리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에서 중요한 원리가 되었고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신선묵]지도자와 적응력

물론 고난 자체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고난에 대한 바른 반응을 한다. 바른 자세로 임할 때에 고난도 유익이 될 수 있다. 반응이 중요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도자들은 고난을 통과하였고 지도자를 만드는 차이는 그들의 자세에 있다. 그는 강조하기를 “리더들은 다른 사람들을 좌절케 하는 사건과 관계로부터 도리어 의미를 창출한다. 심지어 혹독한 시련에 휘둘릴 때에도 리더들은 자신을 무기력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능력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황과 마주쳐도 그것을 뭔가 유용한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워렌 베니스는 그의 책에서 인생의 단련기를 거친 좋은 사례로 시드니 리튼버그의 사례를 들고 있다. 리튼버그는 1949년 모택동 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예전의 친구들에 의하여 스파이 혐의를 받고 수감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총 16년을 보내었다. 첫 1년에는 심문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어둠뿐인 독방에서 나머지 15년은 하루종일 환하게 전등이 켜져있는 곳에서 생활했다. 그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그의 마음 속에는 불현듯 어린 시절에 읽었던 네 줄의 시가 떠 올랐다고 한다.


“그들은 나를 가두는 원을 그렸다. 이교도, 반역자, 경멸할 자식이라 소리치며, 그러나 나는 사랑과 승리의 정신을 가졌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원을 그렸다.”


이 시 구절이 리튼 버그에게 생존의 열쇄였다. 고난이 주어졌을 때에 그것에 의하여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통하여 의미를 창출해 내는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다. 리튼 버그는 고난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도리어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미국 기업인들이 중국의 비즈니스에 도움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 (리튼버그 어소시에이트)를 창립하고 운영하였다. 마치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도리어 그 원수들을 더 큰 사랑으로 품어버리는 일을 한 것이다. 그들은 리튼 버그를 구속하기 위하여 원을 그었지만 리튼 버그는 그들을 다 포함하고 사랑하기 위한 큰 원을 그린 것이다.


풀러 신학교의 지도자학 교수인 로버트 클린톤 교수도 지도자들이 겪는 고난의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고있다. 그는 지도자들이 겪게 되는 이런 시간을 “깊이있는 과정(Deep Processing)”이라고 이름하였다. 지도자들이 이런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시험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깊이 있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두 가지의 반응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그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종류는 그런 경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지도자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깊은 과정을 지나가면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깊이 나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진정한 비젼을 품게되는 시간으로 삼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오늘 어떤 깊이있는 가정을 지나고 있는가? 인간 관계에서의 갈등, 질병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서 오는 두려움, 삶의 위기, 사업과 인생에서의 실패,… 이런 모든 시련들을 통하여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 지고 한 지도자로써 역량이 커지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베니스는 “지도자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로운 단련기”를 보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고난이란 지도자가 되기위한 필수 과목인지 모른다.



[신선묵]하나님과의 친밀감과 시간관리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만 크게 나누면 두가지 종류의 시간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시간을 사용하지만 그 시간을 통하여 힘과 에너지를 얻고 회복하는 시간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사용함으로서 에너지가 소비되는 시간이 있다. 우리 삶 가운데서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종류의 시간은 좋고 다른 종류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시간 사이에 건강한 균형이 필요하다. 자신을 회복하고 자신에게 에너지가 주어지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통하여 축척된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두번째 종류의 시간들 즉 힘을 들이고 에너지를 써가면서 해야하는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에너지가 축척되는 시간을 갖기 보다는 에너지가 소비되는 종류의 시간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만 첫번째 종류의 에너지가 축척되는 시간이 없이는 결국 지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쓰는 시간 중에서 에너지가 회복되고 힘을 도리어 얻게 되는 시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주로 운동하는 시간, 사람들과 순수하게 교제하면서 즐기는 시간, 홀로 조용히 휴식하는 시간,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것에 시간을 적절히 쓰고 있는가? 아니면 에너지를 소진만 하고 살아가는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야베스의 기도”의 저자인 부르스 윌킨스가 쓴 책 “포도나무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예수님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가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 첫째, 죄의 가지를 치고 둘째, 욕심을 제어하고 셋째,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제의 책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 안에 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으로 “친밀감”이라는 주제에 좋은 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내 삶의 첫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지도자로서의 나의 진정한 역할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전문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일에는 어쩐 일인지 풋내기로 남아 있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많은 기독교 사역자들에게 동감을 불어 일으키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는 곧잘 그의 표현처럼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행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그분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단순히 즐거워하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갖고 계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우리와의 교제라는 것을 곧 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데 제일 힘드는 것이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구별된 시간을 드리는데 가장 힘든 이유가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문제가 특별히 없으면 그냥 그 시간을 넘어 뛰려는 경향이있다. 왜냐하면 바쁘고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런 식으로는 깊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가 없다. 그리고 문제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가 있던 없던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나아가는 것을 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친밀감 나의 문제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중심의 깊은 관계를 쌓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탈벗 신학교의 기독교 교육학 교수인 클라우스 이슬러는 “Wasting Time with God”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시간의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는데 있어서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좋습니다. 아니 사실상 그편이 더욱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꾸준히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감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친밀감이란 이유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서 생겨난다. 사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것이 느껴진다. 사실상 나는 하루에 종종 이론적으로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나는 대화가 늘 이슈 중심이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내에게 전화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냥 전화해서 이얘기 저얘기하는 것이 친밀감을 쌓아나가는데 좋을텐데 그게 잘 안된다. 일이 있어야 전화하고 또 일이 있을 때에는 그말만 하면 그냥 수다(???)를 떨지를 못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남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부부관계도 문제 중심이 아니라 친밀감을 쌓아나가려면 (설사 내 생각는 이유가 없어도) 대화를 자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부부 관계에서도 이유없이 전화해도 괜찮다. 아니 차라리 더 좋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시간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활력을 주고 능력을 주는 은혜의 시간이다. 우리 삶이 무척 바쁘지만 생명의 원천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깊은 은혜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를 회복하고 늘 승리롭고 열매맺는 삶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특별히 이슈가 없어도 그냥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다.

[신선묵]하나님과의 교제 시간 (Fellowship with God)

우리 학교 계간지에 변명혜 교수님께서 “서두르지 맙시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실으셨다. 우리 신앙 생활에서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적하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시간을 쓰는데 너무나 실용적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우리의 시간 스케쥴에 당장의 결과와는 상관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넣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삶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고독(solitude)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에 관하여 평소에 느낀 것들을 몇 자 적어본다.


첫째,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쁘고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하나님께 시간을 드린다고 멍청히(?) 앉아서 귀한 시간을 보내기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탈벗 신학교의 클라우스 이슬러교수는 “하나님과의 시간이 마치 시간의 낭비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론 그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되는 때는 보람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과 시간을 갖으려고 할 때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고 상당히 건조하게 보내게 되게 되는데 그럴 때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삶의 제일 순위인줄 알지만 이렇게 효과적이지 않게 보내느니 다른 일들을 하면 어떨까 유혹이 다가온다. 그러나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과정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향하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닿게 된다. 하루하루를 보면 쌓이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런 낭비된 것과 같은 시간들이 축척되어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다. 친밀감은 어쩌면 낭비된 것과 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통하여 성장해 가는 것이다.


요사이 아내와의 친밀감을 위하여 함께 데이트하는 시간을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부부가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할일이 태산 같이 밀려있는데 이 귀한 시간에 둘이 한가하게 논다(?)는 것이 잘 받아 들여지지가 않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동안 밀린 일들을 하고 싶은 유혹이 많다. 한번은 내가 아내에게 “이 데이트 시간에는 물건 샤핑하는 데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데이트하는데 왜 이렇게 율법적이냐고 반문하였다. 우리가 친밀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율법적인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한번은 그냥 커피솝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대화를 하였다. 한가하게 이야기하다보니 요사이 걱정하는 문제 앞으로 우리 가정, 또 자녀를 어떻게 키워가는가의 문제 등등 비교적 심각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였다. 상당히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 한가하게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좋은 이야기도 하게되는 것 같다. 앞으로 시간을 지속적으로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때로 다른 일들이 발생할 때도 있을 것이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따로 한가히 데이트하는 시간을 갖기가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 어떤 때는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도 더 친밀해 지지 않고 거리감을 도리어 더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루 하루를 생각해 보면 필요없고 낭비처럼 느껴질 수가 있을 테지만 결국은 그런 시간을 통하여 부부간의 친밀감이 개발되고 발전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도 당장의 결과에 상관없이 구별된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운다. 헨리 나우엔은 “고독의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면서 사실은 맡기지 못하고 우리가 걱정하고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든다. 그래서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배우고 실행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하나님께 헌신된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알짜와 같은 귀한 시간을 드림으로써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나의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당신이 제 삶을 책임지십니다. 내가 열심히 뛰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당신께 드립니다.” 이럴 때에 그 곳에서 안식과 지혜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안식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안식과 열매맺는 삶의 비결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수영을 하면서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수영을 배우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수영 코치한테서 팔을 젖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법, 숨쉬기 위하여 머리를 돌리는 법 등을 배웠다. 그렇지만 수영 하면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숨쉬기이고 그 숨쉬기를 하기 위해서 내 몸을 물에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결국은 같은 법칙이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볼려고 발버둥친다.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결국 이런 것들을 통하여 안식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노력으로는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 그것보다 우선 되어야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힘은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지 않고 내가 힘쓰지 않으면 망할 것 같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치 수영해서 나의 어떤 움직임의 노력보다 물에 내 몸을 맡길 때에 내 몸이 뜨고 쉼쉬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릴 때 숨쉬기와 같은 인생의 안식이 발견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는 구체적인 표현이 시간을 드리는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시간을 드릴 때에 그곳에서 안식이 발견되고 그 힘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열매 맺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친밀감을 쌓아 나가고 그 속에서 안식과 평안을 발견하여 열매맺는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의 가정(Family)

지난 주에 운전 중에 복음방송을 듣다가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한 분의 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들었다. 선교사님이 사역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여 좌절감에 빠져 있는데 라디오에 나온 그 분이 그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선교사님은 선교 사역에 실패한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왜냐하면 선교사님이 사모님과 좋은 부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사역인 가정 사역을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고 우리의 선교는 우리의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이 중요하다.


영적인 지도자가 건강한 가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풀러 신학교의 클린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도자들이 잘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을 살펴보면 많은 것이 지도자의 가정에 관련된 이슈라는 것이다. 치유되지 않고 용서되지 않는 상처, 가정의 경제 문제, 건강하지 않은 성관계, 부모의 권위주의, 자녀 문제 등의 이유로 인하여 많은 지도자들이 중도에 하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역은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정을 통하여서 채우고 살아갈 기본적인 필요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네 가지 필요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가정 속에서 건강하게 채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정서적인 필요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동감해주고 함께 희로애락을 가치할 동료가 필요하다. 힘들 때에 위로가 되어주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그것들이 정죄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필요를 가지고 있다. 주로 여성들이 많은 정서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의 경우도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정서적인 요구가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경제적인 필요이다. 우리가 생활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필요를 건강하게 채우고 사치는 아니더라도 휴가와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취미생활 등을 하기 위한 경제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남성들이 이 분야를 감당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경제적인 요구가 커감에 따라서 부부가 함께 경제적인 요구를 위하여 일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셋째는 육체적인 필요가 있다. 집안 청소, 빨래, 밥하기, 설거지 하기, 애들 돌보기 등등의 많은 일거리를 감당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여성의 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경제적인 필요를 위하여 함께 일하면서 남성도 함께 이 일들을 나누어 하고 있는 경향이 많다. 육체적인 필요에는 이외에도 사랑스러운 접촉과 성적인 필요 등을 가지고 있다. 넷째로 전략적인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장기적인 자아 실현과 자아 발전을 위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분야 역시 전통적으로는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들도 자신의 삶에 전략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지 위해서는 서로에게 이런 필요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채워주기 위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갖추고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자신의 필요들이 얼마나 채워지고 있는지 또 배우자의 필요가 어떤 부분에서 절실하며 또 얼마만큼 채워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채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앞에서 말한 네 가지 필요들이 모든 필요를 완전하게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가지고있는 기본적인 필요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가정 사역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가정 사역에 우선 순위를 두고 이를 위하여 실제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상담 전문가 쟈수아 박 교수님과 가끔씩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갖고 있다. 가끔 만나서 시간을 갖지만 만날 때마다 상담 전문가여서인지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에 만나서도 부부간의 대화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를 위하여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많이 배웠다. 여러가지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었지만 그 중에서 “부부간에 구별된 시간을 가져라. 하나님께 주일날 예배를 정해놓고 드리지 않냐? 학교에서도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지않느냐? 부부간에도 친밀감을 위하여 정해진 시간을 드려라. 정기적으로 헌신된 시간을 통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가 생겨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헌신된 시간을 통하여 대화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의 기쁨을 위하여 데이트를 많이 하면서도 결혼하고 나서는 실제적으로 상대방과 함께 기쁨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부부도 데이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가정마다 다른 상황과 환경 속에 있기에 어떤 시간과 방식을 율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를 위하여 헌신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가정 사역을 위한 좋은 책들과 세미나들이 많이 있다.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고 개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우리의 가정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데 헌신된 사역과 상담가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에 가장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사역의 출발인 가정 사역에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사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와 은혜 (Grace-Driven Leadership)

풀러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할 때에 설교학 과목을 이완 왙슨이라는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다. 아주 좋은 강의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분이 설교에 관하여 가르쳐준 기억에 남는 교훈 중에 하나는 설교 내용을 구성할 때에 “복음”과 “적용”을 7:3의 비율로 하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설교의 내용 중에 성도들이 실제 삶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적용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져야하는데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선포하는데 70%를 먼저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설교의 메세지 뿐만 아니라 기독인의 삶의 전 분야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아갈 능력과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된다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라고 더 깊은 은혜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일반적인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영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중요하다. 영적인 지도력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지도력이란 섬김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잘 섬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잘 섬기기 위하여 능력도 갖추고 잘 섬기기위하여 여러가지 지술과 지식도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보면 많은 지도자들이 도중에 탈진하고 탈락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냐하면 섬기다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는 것이다. 힘이 바닥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에게 있어서 특별히 효과적인 섬김의 사역을 위해서 무엇 보다 우선되는 과제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아가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 속에서 얻은 힘으로 사역을 감당할 때에 지속적으로 섬김의 사역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지도력의 또 다른 이름을 “은혜로 추진되는 지도력(Grace-Driven Leadership)” 이라고 하고 싶다.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바닥이 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바닥이 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지도자는 결국에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샘솟는 힘을 공급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속에서 자라는데 힘을 써야 한다.


지도자들에게 늘 부담이 되고 압력이 되는 것은 결과를 산출해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의하여 자신의 지도력이 판가름 나기 때문에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늘 노력을 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외부로부터는 압력을 또 내부로부터는 더 많은 일을 위한 유혹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결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경험하면서 능력이 솓아나고 그 힘으로 여러가지 일들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당장에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능력이 고갈되고 만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는 일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서는 그가 허락하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가 없다. 특별히 영적인 훈련으로 자발적으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그 형식과 틀은 다르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하나님께 퀄러티 있는 헌신된 시간을 드리고 그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발견하고 체험해 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에 결과를 산출해 내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시간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시간이라도 더 뛰어야지 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시간을 온전히 드릴 때에 당장에 무엇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모든 고난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절대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앞에서 그 문제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원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럼으로 인하여 더 깊은 고난과 문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문제를 대할 때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며 그 모든 것을 계기로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인생에서 하나님 그 분을 목적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또 그 분과 함께 함, 그 분께 순종함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임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고난은 우리를 깊은 친밀감으로 인도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진정 기뻐하기를 배우게 된다.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고 더욱 큰 은혜를 받고 또 은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은혜 속에서 자라라”고 하셨고 야고보도 그의 서신 가운데 “더욱 더 큰 은혜를 사모하라”고 권면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영적 지도력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 적극적인 의미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친밀감 훈련을 통하여 부정적으로는 고난이라는 인생의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을 직면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