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우리 연변에서는

회복과 치유의 신학 – 내 아버지의 뜻


우리 연변에서는


(1)


얼마 전 MBC TV에서 탈북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방영하여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탈북 여성들이 중국 공안과 결탁한 중국인들에게 이리 저리 팔려 다니며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유린을 당하며 그 일에 일부 조선족들도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분개한 한국인들이 조선족들을 향해 질타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고, 또 그에 반박하는 조선족의 글을 함께 읽게 되었다. 문제의 사이트에 올라온 한 조선족의 글을 한번 옮겨보자. (참조: http://www.unikorean.net)



한국 사람은 한국에 있는 조선족을 어떻게 했는가? 또 지금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님 글 쓴 것을 보니 한국 사람이 분명한데 당신이 그렇게 입을 벌려 말할 자격이 있어요? <북한 사람을 구해 줘야 하는 이는 조선족>이라고 말이다. 지금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이 어떤 개고생 다하면서 살아가는 지는 알긴 하는가! 우리도 너네한테 팔려봤고 당했었다. 비록 우리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대부분의 북한형제들에 대해 감싸주고 있다. 만약 중국에 조선족이라도 없었더라면 30만 탈북자가 이보다 더 비참한 짓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고 그들을 먹여주고 탈북 동포들을 살려주느라 중국 공안에 붙들려 가는 이들 또 누구더냐? 바로 조선족이다. 북조선 사람들이 건너올 때도 그나마 한 가닥에 희망이 조선족이다. 우리들은 한국보다는 못 살지만 우리들은 우리 힘있는 대로 돕는다. …(중략)… 자기들이 그런 짓을 할 때는 모르겠더니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니까 그렇게 참혹하게 여겨지는지….. 하지만 나는 그런 짓을 한 우리 조선족도 용서 못한다. 아무튼 우리 민족은 서로를 생각해야할 자태가 필요하다.


“우리 연변에서는….” 으로 시작하는 한창 유행했던 개그 프로그램이 있다. 그로인해 상처 받은 조선족들이 한국인들에 대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는 글이 같은 사이트에 올라 와 있어 재차 인용해 본다.




한국 사람들이 이램다. 너무 기차서 한번 그대루 옴겨 봄다. 아이구 기차지…, 그럼 시작하겠슴다. 와땀다. 우리 연변에서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는 여우 축에두 못감다. 꼬리 스물이 넘어야 여우라구 부름다. 꼬리 스무 개씩 달린 여우는 그 꼬리를 빗자루로 씀다 한번은 꼬리가 팔십 개 달린 여우를 봤슴다. 궁둥이가 이만함다~~



난 그 <<봉숭아학당>>한번 보구 다신 안 본다. 한국 사람들이 개그한다구 뭐 대통령두 갖구 놀 정도긴 하지만 이건 그 사람들 내부 일이고, 우리 교포들의 가뜩이나 예민한 감정을 왜 이렇게 건드리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그 사람들은 그저 한번 가볍게 웃고 넘기지만 그게 우리들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는 생각지두 않는다.


중국에서두 한국에서두 대접받지 못하구 사는 우리 어정쩡한 위치, 중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에 와서 그 아픔과 설움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이런 설움과 아픔 때문에 여기 있는 대부분 교포들이 한국이 4강에 들었을 때에도 그 희열을 느끼지 못하고 담담하게 지나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한국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니까….한국 사람의 눈엔 동포보다도 중국사람으로 보이는 우리들이니까….


연변에서 장기간 일하면서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는 조선족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진 상처들과 그로 인한 왜곡된 심성들을 보게 될 때이다.




(2)


“우리 살아가는 날 동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스런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시작하는 용혜원 시인의 시가 있다.


지난 월드컵의 감동과 감격은 아마 우리 민족이라면 세월을 두고 그 기쁨을 반추할 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이태리와의 대 역전 드라마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짜릿한 명승부로 기록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일전이었다. 밴쿠버 코스타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그날 새벽, 경기가 끝나고 중심가로 뛰쳐나온 교민과 학생들 사이에 코스타 강사진들이 함께 섞여 환호하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만 같다.


나는 이번에 캐나다와 미국 코스타를 참석하느라 우연찮게 중국, 한국, 캐나다, 미국의 4개국을 거치면서 월드컵을 관전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한마음이 되어 목 터져라 응원하던 그 순간에…. 그러나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던 것은 그 함성에서 제외되고 소외되어 있는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과…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워야할 우리 연변 조선족들이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동포들보다 한국을 응원하는데 소원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선족들이 품은 마음은 두 갈래 마음이었다. 한국 축구에 대해 편파보도를 하는 중국 CCTV에 항의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연변대학의 모 교수처럼 더러는 목숨을 걸고 응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관심은 있으나 짐짓 외면하고픈 마음으로 멀찌감치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누구인가? 오히려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떠났던 우리 선조들의 후예들이다. 민족심과 자긍심이 누구보다도 더 강한 사람들이다. 가장 큰 소리로 소리 질러 응원해야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올해는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양국 간의 괄목할만한 경제 교류의 표면적 성장 뒤에는 지난 10년간 이곳 연변의 조선족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로부터 받아야했던 많은 수모와 상처들이 있다. 어쩌면 심중 깊은 곳에서 그리던 모국이 올림픽을 치른 잘사는 나라로 갑자기 눈앞에 부상한 이후, 그들이 가졌던 기대와 장밋빛 꿈들이 서서히 시들어가며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산이 분노로 찢겨져 버린 그런 세월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월드컵이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나는 새벽마다 옆방에서 기도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갑작스레 한국 축구를 위해 간절히 매달려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에 스포츠나 특히 축구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인지라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하루는 이상하여 “당신 요즘 왜 축구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물어보았더니 “나도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기도를 시키시는 것 같아요. 그냥 기도만 시작하면 이번 월드컵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불쌍한 우리 민족이 생각나서…”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이 있는 날이면 아내는 가슴이 떨려서 제대로 응원도 못하고 안절부절 다른 방을 오가며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게임 도중 잠시 패했을 때에는 통곡을 하고 울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던 중 내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은 이번 월드컵이 단순히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난 세기 갈가리 찢기고 나뉘어 진 우리 민족의 상처들을 싸매 주며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한 마음으로 뭉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떠올랐다. 그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아내의 기도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과의 4강전이 치러지던 날은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상잔과 분단의 뼈아픈 상처의 기억을 담고 있는 비극의 날 6.25의 기념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통일된 독일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경기의 패배는 나에게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의 커다란 상징처럼 다가왔다. 분단된 이 민족… 고통받는 저 백성들을 남겨두고… 우리가 기쁨의 환성을 지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3)


지난 코스타의 세미나 제목을 전체 주제에 맞추어 <치유와 회복의 신학>이라고 붙였더니… 내가 어느새 신학을 공부했는가 하고 묻는 분들이 있었다. <치유와 회복>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썰렁한 제목인 것 같아 단지 운율을 맞추기 위해 붙인 것이었는데… 그게 좀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과연 신학이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평신도는 신학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도 생겼다.


신학(theology)도 일종의 학문인가? 학(學)자가 붙었으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biology)이나 심리학(psychology)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대상을 신(神)으로 두고 이성적으로 반응하며 앎을 추구하는 그런 행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일 게다. 아니 그렇다면 생물이나 인간의 심리처럼, 학문적으로 연구하면 할수록 신(God)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난센스다. 만일 인간의 이성적 사유로서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신이라면 그것은 이미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독교의 신관은 철저하게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초월적 신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로마서 3장 11절에서 말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했다.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으며,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어떤 분인지 찾아갈 수도 없는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인간관이기도 하다. 오직 하나님은 당신이 스스로를 계시(啓示)할 때만 우리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즉, 신에 대해 알아낸 결과들)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학위를 주고 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타종교의 신이라면 몰라도 기독교의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학이란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는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였다.


상처받고 왜곡된 우리 인간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분이 오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으며 또 만질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예수야말로 모든 신학의 시작이다. 우리가 부서지고 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분이 오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상처들 또한 신학의 전적인 대상이요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예수… 그렇다면, 신학이란 다름 아닌 “예수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라고 정의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에겐 상처들이 너무 많다. 개인의 상처, 가정의 상처, 사회적 상처, 민족의 상처, 그리고 온 인류가 짊어진 상처와 그로 인해 피폐해진 피조계의 우주적 상처에 이르기까지…. 그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예수를 따라가는 우리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곧 신학이요 신학함이 되어야할 것이다.


갈라진 겨레의 상처를 아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마음을 표현한 연변의 한 무명 시인의 시 한 수를 소개한다.






겨레


다섯 손가락을 보니
흩어진 겨레의 모습 같다.


꽉- 으스러지게 틀어쥔다.
주먹을….


나는 이렇게 밖에
사랑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파 주먹을 쥐는데
펴보면 또 다섯 손가락이다.


몸은 서로 떨어져 멀리 있어도
마음은 하나가 되여 살아가는 사람들…


쥐면 주먹
펴면 다섯 손가락


쉼 없이 반복한다.
이 사랑의 손짓을


다섯 손가락을 보니
언제나 운명을 같이 할
겨레의 모습이다.


(최진성, 1999년 1월 연변문학)


흩어진 우리 겨레… 상처 입은 연변의 조선족들… 그리고 그들이 또 돌보아야할 죽어가는 북한의 형제들… 그러나 그들의 상처 속에서 우리는 피 흘리는 예수를 발견한다. 그리고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우리 민족의 치유와 회복의 소망을 느낀다.


“우리 연변에서는… 평신도도 신학을 함다. 일 없슴다.”


지금까지 연재된 글들

[정진호] 루카스 스토리(Lucas Story)

회복과 치유의 신학 – 내 아버지의 뜻


루카스 스토리(Lucas Story)


(1)


데이브레이크(Daybreak)의 하루를 기억하라.


아마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역에 지쳐 내 영혼이 곤고한 날이 이를 때면, 데이브레이크를 회상할 것이다. 데이브레이크에서의 하루는 내 인생에서 사역적 영성을 갱신시키며 갈증 속에서 새벽이슬을 마심과 같은 영적 각성의 기쁨을 안겨준 특별한 날이었다. 육신의 피곤함을 이끌고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시는 그 분을 직접 체험했다.


2002년 6월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민족의 마음을 한껏 달구어놓고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 코스타가 끝난 직후, 강의하랴 축구 응원하랴 지칠 대로 지친 강사진들은 하루를 같이 보내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원했다. 그 전주에 벤쿠버 코스타를 이미 치르고 도착했던 나는 토론토를 거쳐 이제 다시 시카코 코스타를 향해 떠나야할 상황이었기에 더욱 휴식이 필요했다. 청년사역을 받은 소명으로 여기는지라, 어렵게 떠난 여행길에서 한 사람의 청년이라도 더 만나고 가겠다는 영적 욕심으로 무리한 스케줄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토론토 근처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를 찾아갔다. 헨리 나우웬 신부가 장애인들을 위해 사역하여 널리 알려진 라르쉬(L’Arche) 공동체가 있는 곳이었다. 평소에 책을 통해 비교적 가깝게 느끼던 나우웬 신부의 깊고 순결한 영성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듯한 설렘을 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치던 그가 모든 학문적 명성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은 장애인들을 위해 몸을 던져 여생을 바친 일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숲 속에 한가하게 세워진 아담한 별장으로 안내를 받아 여장을 푼 우리는 바로 그 집이 나우웬 신부가 직접 장애인들과 함께 거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잠을 자던 침대와 그가 책을 읽던 서가를 둘러보며 한 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신학자의 체취와 온기가 밤의 정적을 타고 다가옴을 느꼈다. 근처의 거리에 나가 가벼운 산책과 쇼핑을 하고 돌아온 우리 일행은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은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이 있는 날이었다. 코스타 강사진들을 배려하는 친절한 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쉽지만 열심히 싸운 한국 축구팀을 향해 마음의 박수갈채를 보내며 다시 라르쉬 공동체로 돌아온 우리는 부족한 수면으로 거의 눈이 감기는 지경이 되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전에는 채플에서 헨리 나우웬 신부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세미나를 듣도록 예정되어 있었기에 일행은 마지 못해 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곳에서 나는 사역에 지쳐서 잠든 내 영혼의 안팎을 뒤흔들어 깨우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헨리 나우웬 신부의 맑고 깊은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강하고 온유한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 <루카스 스토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2)


아름답게 지어진 채플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수(Sue)라고 불리는 온화한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먼저 소개하며 그곳으로 찾아온 우리들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했다. 그녀의 자연스런 인도를 따라 자기 소개를 한 후 나우웬 신부의 육성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아름답게 재연이라도 하듯이 나우웬 신부의 온유하고 잔잔한 설교가 흘러나왔다. 둥근 빵을 하나 집어들고 축사하며 그것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그 모습에서 비록 육신은 죽어 땅에 묻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그의 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생은 본문에 나타난 4개의 동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취하시고(taken)
  • 축사하시고(blessed)
  • 쪼개시고(broken)
  • 나누어주심(given)

바로 이것입니다.


세례요한 앞에서 무릎 꿇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헌신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 손에 붙잡힌(taken) 바 되었고, 그를 기뻐하시며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성령을 비둘기 같이 내려 그의 머리 위에 머물게 하심으로 축사(blessed)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아들이라….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찢기며(broken)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을 떡으로 자신을 나누어주신(given)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도 이 네 가지 동사를 통한 삶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의 핵심입니다.”


7분짜리 간결한 그 설교가 얼마나 강렬하게 내 영혼을 때렸던지…. 그리고 그 순간 지난 8년간의 나의 중국 사역을 돌이켜보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지나온 시간들은 바로 이 네 개의 동사 안에 모두 녹아져 함축되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되어 그분의 축사하심을 받았고, 그리고 세상 속에 나아가 자신을 쪼개어 나누어주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요즈음 내가 이렇듯 힘들고 기쁨이 사라졌을까 하며 생각해 보니… 네 가지 동사 중에 한 가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 손에 붙잡힌 것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사역지에서 자신을 쪼개고 나누어주는 일에 열심을 다하기도 하였지만, 그분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내 인생을 위해 축사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을 어느덧 망각해 버렸던 것이다. 사역의 출발점… 모든 기쁨과 위로의 원천인 하나님의 축사하심(blessed)을 망각해 버린 사역자에게는 더 이상 기쁨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수(Sue)는 우리에게 1년 전에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3)


장애인 부부가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그 부부는 간절히 아기를 갖기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은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두 번에 걸친 유산은 그들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선 세 번째 아기를 두고 기도하던 중 임신 초기에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황급히 병원으로 찾아간 그들에게 의사는 아직 아기가 살아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들에게 정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들어온 의사는 침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들의 뱃 속 아이는 현재 심각한 장애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공유산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뇌가 골 밖으로 나와 있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이런 경우는 아이가 죽지 않고 세상에 나오더라도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호흡장애를 일으킬 것이기에 아마도 15분을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은 부부는 순간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나 기다리던 아이인가? 그리고 지난 몇 주간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루만지던 그 생명을 이제 죽여야한 하다니….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의사에게 아이를 계속 뱃 속에서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그 말을 냉정하게 잘랐다. 그럴 수 없노라고…. 당신들이 아이를 낳은 후 받아야 할 상처는 지금 아이를 유산시킬 때 받게 될 상처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에 의사인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부부는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의사는 마침내 화를 내었지만 결국 부부는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단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뱃 속의 그 아이의 이름을 루카스(Lucas)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겨진 몇 달간의 시간을 루카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들은 매일 루카스를 위해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었고, 루카스를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루카스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만질 수 있었으며 느낄 수 있었기에 매일 그 아들과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 루카스의 살아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그들은 감격했으며 그로 인해 감사했다. 루카스의 심장 박동을 느낄 때마다 부부의 애절한 사랑은 루카스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들 안에는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의 신비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긴장과 두려움과 그러나 감격 속에서 아이를 받았을 때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 아이의 머리 뒤에는 뇌가 삐져 나온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부부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루카스를 최대한 밀착하여 안아주었다. 부모의 피부접촉이 조금이라도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루카스가 조금이라도 더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 어린 핏덩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보물처럼 껴안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루카스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온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주어진 15분이 지나고…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루카스는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자… 의사는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집으로 루카스를 데리고 온 부부는 그날부터 루카스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 주기 시작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모아놓은 것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루카스를 위해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으며, 그를 위해 기도하며 조심스레 닦아주고 매일 선물을 안겨 주었다. 공동체의 식구들을 불러 날마다 작은 파티를 베풀었다. 모든 사람들이 루카스를 보며 기뻐하고 사랑의 말을 던졌고, 서로 위로하며 또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간 후 마침내 루카스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루카스는 17일을 살다가 그의 인생을 마쳤다.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 루카스의 임종을 아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루카스를 떠나 보내던 날, 데이브레이크 채플의 홀에서 사랑하는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장례 예배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단 위에 놓인 작디 작은 관 안에 루카스의 어여쁜 시신이 들어있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슬퍼했다. 예식이 끝나고 루카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앞으로 걸어 나와 관 앞에 선 루카스의 부모가 잠시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들이 루카스와 함께 했던 지난 9개월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과 대화를 그와 나누었는지를….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얼마나 루카스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카스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루카스로 인해 비로소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준 내 아들 루카스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4)


루카스 스토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루카스 스토리를 들은 후, 우리 일행 중 어떤 이는 받은 감동이 넘쳐서 울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깊은 묵상 속으로 잠겼으며… 어떤 이는 아버지의 품 속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휘몰아치는 감동 때문에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서니… 채플 앞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고…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채플을 둘러싼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루카스를 생각했다. 17일의 인생을 살다가 간 아이… 루카스…. 내 걸음은 신비한 사랑을 막 체험한 사람인 마냥 연못 주변을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잔잔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바로 네가 루카스다.”


내가 70년의 인생을 산다는 것과 17일을 산다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은 모두 장애인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철저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인생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태 속에서부터 알고 지명하여 이름을 불러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여 이 세상에 낳게 하신 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네가 아느냐? 갑자기 감동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죽었고 땅에 묻혔다. 그러나 그 부부의 마음 속에 루카스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루카스는 살아서 지금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