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국] 코스타 이후 경험한 지역교회의 회복

시작하며


별한 은혜가 넘쳤던 2003년 코스타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풍성했던 천국잔치에 참석한 후에 아직도 그
생생하던 코스타 때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매일 매일 코스타 때처럼 승리하며 살아가는 코스탄 들이 있을 것이고, 또
코스타 기간동안에 은혜를 받으면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며칠 내지 몇 주는 잘 지키다가 지금쯤 지치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어쩌면 자포자기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지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면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금은 post KOSTA라 하여 코스타 이후에도 tmKOSTA, eKOSTA, jjKOSTA, gpKOSTA,
missionKosta 등의 프로그램과 각 조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신저를 통해 매일매일 코스타
때처럼 교제를 계속해 나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96년 당시만 해도 일년 연중 코스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미리 이것을 밝히는 것은 지금 같이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번에 계속되는 제 간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호에 실패한 코스타(?)에 대한 선언 후에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을 보여주신 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분적으로 포스트 코스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교회 청년부 공동체와 한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96년 코스타 이후 경험한 한 지역 교회의 회복


가 다녔던 보스턴 근교의 한 한국 교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코스타 이후 8월 즈음에 청년부의 위기 상황 가운데 세 명의
임원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자매는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믿은 지 3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당시 청년부 회장한테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황당해 하면서도 자매는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주후에
그 자매가 공식적으로 청년부에서 개인적 간증을 할 때를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청년부 임원과 조장으로 섬기고 있던
자매가 청년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이제야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던 조원 들과 청년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기는 원래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인데 속으로 기도하던 중에 자기의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던 일- 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기도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마침 목사이신 아버지께 상담하던 중에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주시며, 자기같이 차갑고 이성적이고 성령과 은사에 대해서 무지하고 냉랭했던 자에게 심지어 소리 없는 방언을 주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는 분임을 알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고집스러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청년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세
명만이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기도회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석해서 15인 승 교회 밴을 운행하고 그 밴이 매일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차가웠고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인지라, 새벽기도에는 기껏해야 예닐곱 명 정도가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대와 비전들이
청년부 사람들 가운데 번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간증을 나눈 뒤 한 달여가 지난 후에는 승용차 한대로 충분했던 서너 명의
청년들이 한두 사람 불어나면서, 비전과 기대를 갖고 기도한대로 15인 승 교회 밴을 운영 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이 밴이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서 매일 아침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밴도 모자라 몇 대의 승용차로 카 풀을 하면서 이삼십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거의 매일 새벽마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밴을 운전하던 형제는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었음에도 거의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케줄에 따라 보스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 명 한 명의 집으로 라이드를 주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몇 명의 헌신자들이 더
생겨 순번을 정해서 그 새벽에 청년들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변화된 청년부 모습의
한 결과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개인적인 회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청년부 모임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4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그 불길이 어른들로 번지게 되었고, 그 다음해 초부터 계속
늘어나는 새벽기도의 참석자들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에는 7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200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교인 3분의 1 정도가 매일 새벽 5시
45분에 있는 새벽기도에 참석한 셈입니다. 그 중에는 소문을 듣고 주위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는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태도와 언어가 바뀌며 그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청년 학생들에게조차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변화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죽어있던 교회와 청년부가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소망하고 기대하던 참된 ‘부흥’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한 교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변화된 청년들과 교인들이 계속해서 그 지역과 나라와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인 큰 ‘부흥’을 기대하고 갈망하며 열정으로 기도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큰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큰 변화의 또 하나의 결과로는 전해에 열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코스타에 참석했었는데 그 다음해 그 한 교회에서만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밴을 빌려 20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면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단일
교회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코스타 참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코스타가 열리는 가까운 지역의 교회가 아닌 1000 마일
이나 떨어진 보스턴의 한 작은 지역교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의 변화

96
년 코스타 이후에 그렇게 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경험한 후에 97년 코스타에 다시 참석하게 되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조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사람들이 간증하는 바,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타 이후 받은 은혜들을
지역 교회에 가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 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몇몇
지역 교회에서 그 전년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경험한 그런 역사가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중 한 지역에서는 코스타 이후에 그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사랑하며 그
지역 한인 유학생들과 이민 사회를 함께 돕는 사역을 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집회에서 일회적으로 큰 역사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각
지역교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간사도 아니 였고, 전체적인
코스타의 진행이나 준비나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단 두 번 그것도 처음으로 참석했던 한 개인이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진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관적으로 한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만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제게 주어진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제가 느끼게 된 점을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매년 일어나는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특별했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지역교회 회복의 현장 한 가운데 서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나눔의 기회가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몇몇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


회의 회복을 통해 받은 복을 누리던 그 때는 저에겐 개인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연구 조교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에,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못 찾으면 당장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그 때에 코스타에서 만났던
조원 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저는 극적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저희
코스타 조원 들을 비롯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때 조원 들의 계속적인 기도 외에, 다니던
미국 교회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세 분의 교수가 있었는데, 한 분은
정년퇴직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았고, 또 한 분은 큰 병으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교수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박사과정 말년에 있던 미국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편지 수정도 봐 주고, 박사과정으로 연구조교 신청을 하면 거의
불가능하니 석사를 일단 하기로 하고 석사 기간 동안만 연구조교를 하게 해 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권고도 해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연구 조교 자리를 얻는 데 유용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런 접근 없이는 사실 제가 연구 조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 석사 과정 연구 테마까지도 제공 해주고 무능력하고 실력 없는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년 후에 석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이 연구조교가 확정된 이후로 유학생활 일년 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때라 쉬고 싶기도 하고, 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2주 동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치도 않게 친한 교회 선배의 소개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어있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인 그 다음해 2월초에 결혼을 하고, 97년 코스타에는 함께 부부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2003
년 코스타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에도 저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항별로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았던 시간이나 사건이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조금 늦게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제 또 다시 일년을 살면서 코스타 때에 감동하면서 받았던 그 은혜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특별히 저의 삶의 영역이 될 제주도 지역에서, ‘순결’하게 살기위해 씨름하며 얻을 축복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류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받은 은혜 자체를 나누며 풍성해지는 기쁨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웬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러고 싶어집니다. 지금 96년의 코스타와 그 이후 일년 동안 경험한 변화들을 기억하며 간증하듯이, 나중에 이번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와 코스타 이후에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이제는 매일 매일을
코스타처럼 살아가는 daily KOSTA, 즉 dKOSTA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96년 이후에 있었던 그런
지역 교회들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 계속되어지고, 더 나아가 ‘순결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 즉 ‘먼저
자기 집 앞을 청소하는’ 그런 선교사적 삶을 통해 적극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저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KOSTA2003 참석자 좌담회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eKOSTA 이렇게 eKOSTA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 드립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 자신의 소개를 짧게 좀 부탁 드릴까요?

조한상 저는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고요, 시애틀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주로 유학생 부부들로 구성된 순을 섬기고 있습니다. Vancouver KOSTA는 참석해 보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KOSTA/USA에 참석했습니다.


윤여재 99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재료공학으로 유학을 와서 이제 만 4년차 끝 나가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한인침례교회를 섬기고 있고, 기혼자 성경공부 모임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IVF, GSF 활동을 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KOSTA 참석했습니다.


이성욱 저는 미시간의 트로이(Troy) 라고 디트로이트 근교에 살고 있고 Wayne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한인연합감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99년에 처음 유학을 왔습니다. KOSTA는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었습니다.


eKOSTA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이번 KOSTA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KOSTA의 주제가 유학생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는지, 그 주제가 KOSTA의 프로그램에 정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하는 문제를 좀 짚어 볼까요?


이성욱 이번의 주제는 아주 시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일상 생활에서 ‘그 믿음이 어떻게 반영되느냐’ 하는 것이 때로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요, 이번 주제와 그것을 담은 KOSTA 프로그램에서 그 문제를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삶의 기본적인 ‘정직’ 등을 강조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조한상 이성욱 형제님 말씀에 대부분 많이 동의를 합니다. 주제가 실제 프로그램에 잘 반영되었느냐 하는 것에는 조금 생각을 달리합니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이라는 이슈가 도덕적 특히 성적 순결에 지나치게 집중되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순결’이라고 이야기 할 때 상식적으로 다가오는 의미를 넘어선 더 깊은 부분을 터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jjKOSTA에서 이일형 박사님께서 언급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이란 오염되지 않음(uncontaminated)라는 것이라는 개념, 즉 혼합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는 것이라는 개념이 전체집회에서는 별로 다루어 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삶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순결함의 영역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약간의 불균형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KOSTA에 참석하기 전에 금년의 주제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스스로 순결하지 못한 제 삶을 스스로 돌아보면서요. 그런데 이 주제는 매우 일반적인(general) 주제이기 때문에 또한 모든 강의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 다 걸치는 주제이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번 KOSTA가 끝난 이후에도 QT를 하면서, 또 기도하고 생각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고민과 생각의 시발점이 이번 KOSTA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한상 저도 역시 동의합니다. 저도 역시 KOSTA 이후 그 단어가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고, 제 삶에 깊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체집회보다는 jjKOSTA에서 다루어진 강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전체집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에 대해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강의가 적어도 한번 정도는 있었어야 하는 것이 계속 아쉽게 느껴집니다.


eKOSTA 그렇다면 그런 내용이 어디에서 다루어 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조한상 저는 월요 특강 같이 처음 시작할 때 나누어진 강의에서 이 문제가 더 자세히 다루어 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Tony Campolo의 강의가 조금 보강이 되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깊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할 경험이 없었던 분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의 순결’이란 성적, 도덕적 순결이다 라는 개념을 가지고 가셨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해 봤습니다. 그리고 아침 성경 강해 등에서 이 이슈를 더 다루어 주셨더라면 좋았겠다 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윤여재 저는 제가 선택했던 세미나들이나 기타 다른 프로그램들을 놓고 보면, 많은 분들의 삶의 구체적인 차원에서 나누어주셨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가 각 강의 들에 나름대로 잘 녹아 들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순결이라는 주제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eKOSTA 그러면요, KOSTA 전체 집회 이외에도 혹시 더 다루어 졌어야 하는데 제대로 다루어 지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으셨는지 좀 더 말씀을 해 주시 겠는지요? KOSTA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생각을 나누어 주신 이성욱 형제님께서 먼저 좀 말씀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이성욱 세미나에 대해 제가 게시판에 썼습니다. 아마도 유학생 참석자들은 다양한 영역과 관심분야에서 성경적 시각을 알아보고 싶어하는 필요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 KOSTA에서는 지나치게 기본 영성 쪽의 강의에 집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가령 작년에 있었던 창조론 강의도 없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던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요. KOSTA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어주지 않으면 유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공급 받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 면이 좀 아쉬웠습니다.


조한상 저는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감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영성에 치우친 것 같은 현재의 세미나 커리큘럼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균형 잡힌 성경적 관점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어설프게 편향되고 주관적인 시각을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라면 아주 좋겠지만, 이런 문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성 등에 대한 기초 강의가 탄탄하게 제공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런 문제들을 유학생들이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윤여재 저도 조한상 형제님과 참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야의 구체적인 해석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모든 것들을 다 해석을 해내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OSTA가 직접적으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그러한 일꾼을 키워내기 위한 밑거름을 대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한상 그런 면에서 KOSTA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필수과목’을 제공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KOSTA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야만 이성욱 형제님께서 지적하신 이슈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비로소 가능해 질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럼 지금 현재 짜여진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비롯한 기초적인 훈련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고 보시는 지요?


조한상 공급이 부족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령) 기독교 세계관의 경우, 기독교 세계관을 아는 사람들만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선택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 강의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강의를 선택하지 않는 거지요.


eKOSTA 그렇다면 공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부족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군요.


조한상 그렇지요.


윤여재 세미나에 관해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들어보면 녹음 상태나 복사 상태가 나쁜 것들이 많더군요.


eKOSTA 감사합니다. 아주 세미나에 대해 좋은 말씀들을 많이 나누어 주셨군요. 그럼 세미나 이외에도 다른 KOSTA 진행에 대해 지적하시고 싶으신 부분들이 더 있으신가요?


조한상 이건 꼭 한번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tmKOSTA 입니다. 현지에서 각 그룹 코디를 구한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고 봅니다. 사전 준비가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어떤 그룹의 경우에는 전혀 바람직한 방향과는 거리가 먼 토론이 오가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조장들을 위해 조장 KOSTA를 열고, 조장 코디들의 경우에는 3개월 전부터 온라인에서 서로 만나는 일을 시작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것은 아주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tmKOSTA 코디를 맡기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 여태껏 어떤 내용들이 나누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tmKOSTA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tmKOSTA를 한다면 과연 이런 tmKOSTA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구심 마저 들었습니다.


윤여재 저 자신이 공학 일반 분야의 코디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생깁니다. KOSTA 2주 전에 tmKOSTA 담당 간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 분야 코디로 섬기겠노라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막막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가 한번 모여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하지만 지금 저희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같은 전공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통해서 관심사들을 점차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높이를 너무 높게 두기 보다는 서로 만남의 시작을 같은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은 간단한 고민을 나누어 보고, 서로 위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eKOSTA tmKOSTA에 대하여 아주 열띤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tmKOSTA이외에도 다른 KOSTA 진행에 관해 하시고 싶은 말씀들을 좀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성욱 작년 KOSTA 후에 KOSTA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제가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때로 강사님들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 같은데, 과도하게 유머를 쓰시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쫓기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좋은 분위기에서 강의나 설교가 이루어 지는 것은 좋을 일이겠지만, 참석자들이 유머나 사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러 KOSTA에 참석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부분을 강사님들께서 좀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여재 제가 듣기에는 작년 KOSTA와 금년 KOSTA가 가장 달랐던 것은 아침 새벽기도가 없어지고 아침 조별 모임이 강조된 것이라고 하던데요, 아침에 QT를 나누고 조별 모임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다만 기혼 조의 경우 아이들이 있고 하면 시간에 쫓기고 제대로 모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아침 조별 모임 시간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조한상 조별 모임과 관련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요, 아마도 이미 많은 말씀들이 나누어 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QT 본문이 너무 길고 문제가 많아서 시간 내에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특히 기혼 조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윤여재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책 소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아주 좋은 책들을 효과적으로 소개해 주셔서 KOSTA가 끝난 지금 까지도 계속해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자꾸 잘못한 점들만 지적하는 것 같아 좋은 점도 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조한상 저는 개인적으로 소개해 주신 책을 포함해서 스물 두 권을 샀습니다. 재정적인 타격이 좀 있었습니다. (웃음) 벌써 한달 만에 여섯 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가장 큰 유익을 얻었던 것은 이일형 박사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하도 깊이가 있어서 그 비결이 무언가 하고 알아봤더니 20년 이상 하루 두시간 이상 성경 묵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성욱 한가지 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찬양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마도 제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찬양을 따라 하는데 좀 힘이 들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분들이 아마도 참석자의 주류일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참석자들이 따라 하기엔 좀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영어 찬양의 경우도 전혀 처음 접하는 찬양을 어디에서 끊어 읽을지도 몰라 가사를 음미할 여유도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찬양의 진행이 다소 분위기를 강요하는 요소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한상 저는 뒷자리 쪽에 주로 앉았었는데요, 뒤에서 보면 앞쪽에 앉은 분들과 뒤쪽에 계신 분들이 찬양을 하면서 보이는 반응이 아주 달랐습니다. 앞쪽에선 매우 열광적으로 뛰기도 하고 손뼉도 치고 하는데 반해 뒤에 계신 분들(기혼자들 인 것 같은데요)은 인도자의 의도에 별로 부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찬양 시간이 참 좋았지만요, 이성욱 형제님 말씀대로 찬양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고려가 조금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윤여재 저는 그런 찬양을 별로 접하지 못 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첫 느낌이 ‘아, 나와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우리가 여러 모습으로 찬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찬양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가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문화도 문화 자체는 시간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좋겠습니다.


eKOSTA 그럼 KOSTA 이후 후속 조치 (follow up)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좀 광범위한 이슈이긴 하지만 생각들을 나누어 주시죠.


윤여재 제 개인적으로 조장으로 섬겼기 때문에 이 후속 조치들에 대한 부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수련회 이후의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 하는 것에 대한 경험도 있었고요. 그래서 조원 들과 연락을 해보기 위해서 이 메일을 나누었는데 단 한 분만 답장을 하시더라 구요. 그리고 나서 KOSTA 조장 매뉴얼을 보니, 특히 기혼자의 경우에는 이 메일을 보내도 답을 못 받는 경우가 많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내용의 조언이 있더라 구요. 이런 부분들이 현실로 드러나더군요. KOSTA 기간 중에는 각자 집에 가서도 서로 연락하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gpKOSTA가 될 수도 있고, KOSTA의 이름을 걸지 않은 그냥 지역 모임이 될 수도 있고요. 물론 그 자체의 모임을 위한 모임이 아니고, 그 모임에서 격려와 힘을 얻고 각자의 지역교회와 캠퍼스에서 섬기도록 흩어지는 그런 모임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KOSTA 본부에서 그런 모임에 강사를 연결시켜주시는 등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한상 저는 약간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섬기던 좀 큰 교회의 청년부에서도 수련회가 끝날 때마다 이 후속조치 이야기들이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잘되지 않았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으로 계속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닌 이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얼굴을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KOSTA가 할 수 있는 일은요, 윤여재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각 지역에서 열심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 사람들을 돕고 그 지역에서 좋은 모임들이 서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봅니다.


eKOSTA 조금 다른 분위기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KOSTA에서 요셉이 가정에 일어난 일을 들으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윤여재 제가 처음 그 뉴스를 접했을 때 놀라우면서도 두려웠었습니다. 결국 요셉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갔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조원 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랬는데, 그 좋은 목적을 가지고 오시는 그 가정에 하나님께선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중에 요셉이 아버지의 모습이 참 제 마음 깊이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 어려운 중에서도 중보 할 수 있는 믿음이 참 놀라워 보였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다는 믿음이 참 귀했습니다.


조한상 지금 윤여재 형제님 하신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저도 참 깊이 감동을 받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었습니다. 모두 동의 하는 것 위에 한가지만 아쉬웠던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윤여재 형제님 말씀대로 과연 이런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때도 다 몰랐고, 지금도 그렇고, 어쩌면 앞으로도요. 그런데 이 일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KOSTA 쪽에서는 처음엔 ‘사탄의 방해이다’ 라도 했다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라고 했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라고 했다가 하면서 어떤 자의적 해석들이 계속 가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점들은 조금 조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욱 요셉이 가정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마음이 아픕니다. 코스타 기간 동안에도 울면서 기도했는데, (참고로 제가 눈물을 흘려 본 게 정말이지 오랜만입니다.) 요셉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코스타에 연결해서 요셉이 가정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게 제겐 좀 벅찬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서요. 어쨌거나 꼭 이 일과 연결짓지 않더라도 코스타를 방해하려는 악한 영의 세력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코스타를 위해서 그리고 코스타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조직 및 준비 위원회도 보다 좀 더 조직화되고 치밀해 져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KOSTA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외에도 KOSTA에 참석하시면서 더 기억에 남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윤여재 솔직히 말씀 드려서 저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까지 과연 한국 사람들만의 모임을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막상 KOSTA에 참석하면서 미국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목마른 부분들이 많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깊은 도전을 받았구요. 아마도 미국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문화적인 장벽이 있을 것 같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4년 만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을 본 것은 처음 이었거든요. 그저 이렇게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었습니다. 특별히 조장으로 섬기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는데 첫날 저녁부터 조원 들과의 나눔에서 크게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조한상 저도 참 비슷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참 어려운 부분도 많고, 특별히 한국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다들 함께 섬기던 사람들은 왜 하나도 유학도 안 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외롭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KOSTA에 가서, 아 이렇게 다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너무나도 인상적이 였던 것은 저녁집회 3일 설교가 모두 복음의 핵심만이 전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피묻은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KOSTA의 파워가 여기에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jjKOSTA와 기타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따라 배우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도 참 좋았구요.


이성욱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웬 지 코스타가 시간이 지날 수록 뭐랄까 다소 쓸쓸해 진다 랄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코스타를 아끼고 지원해 주시는 교회 및 선교단체 그리고 목회자분 들의 열의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도 미국 지역에 유학생 숫자는 더 늘었는데, 이들의 영성 개발을 도와주는 코스타에 대한 열의가 오히려 식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eKOSTA 여러 가지 좋은 나눔에 참 깊이 감사 드립니다.

[팽동국] 코스타 이후 경험한 지역교회의 회복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시작하며


특별한 은혜가 넘쳤던 2003년 코스타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풍성했던 천국잔치에 참석한 후에 아직도 그 생생하던 코스타 때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매일 매일 코스타 때처럼 승리하며 살아가는 코스탄 들이 있을 것이고, 또 코스타 기간동안에 은혜를 받으면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며칠 내지 몇 주는 잘 지키다가 지금쯤 지치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어쩌면 자포자기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지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면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은 post KOSTA라 하여 코스타 이후에도 tmKOSTA, eKOSTA, jjKOSTA, gpKOSTA, missionKosta 등의 프로그램과 각 조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신저를 통해 매일매일 코스타 때처럼 교제를 계속해 나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96년 당시만 해도 일년 연중 코스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미리 이것을 밝히는 것은 지금 같이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번에 계속되는 제 간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호에 실패한 코스타(?)에 대한 선언 후에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을 보여주신 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분적으로 포스트 코스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교회 청년부 공동체와 한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96년 코스타 이후 경험한 한 지역 교회의 회복


제가 다녔던 보스턴 근교의 한 한국 교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코스타 이후 8월 즈음에 청년부의 위기 상황 가운데 세 명의 임원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자매는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믿은 지 3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당시 청년부 회장한테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황당해 하면서도 자매는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주후에 그 자매가 공식적으로 청년부에서 개인적 간증을 할 때를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청년부 임원과 조장으로 섬기고 있던 자매가 청년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이제야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던 조원 들과 청년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기는 원래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인데 속으로 기도하던 중에 자기의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던 일- 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기도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마침 목사이신 아버지께 상담하던 중에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주시며, 자기같이 차갑고 이성적이고 성령과 은사에 대해서 무지하고 냉랭했던 자에게 심지어 소리 없는 방언을 주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는 분임을 알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고집스러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청년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세 명만이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기도회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석해서 15인 승 교회 밴을 운행하고 그 밴이 매일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차가웠고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인지라, 새벽기도에는 기껏해야 예닐곱 명 정도가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대와 비전들이 청년부 사람들 가운데 번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간증을 나눈 뒤 한 달여가 지난 후에는 승용차 한대로 충분했던 서너 명의 청년들이 한두 사람 불어나면서, 비전과 기대를 갖고 기도한대로 15인 승 교회 밴을 운영 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이 밴이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서 매일 아침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밴도 모자라 몇 대의 승용차로 카 풀을 하면서 이삼십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거의 매일 새벽마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밴을 운전하던 형제는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었음에도 거의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케줄에 따라 보스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 명 한 명의 집으로 라이드를 주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몇 명의 헌신자들이 더 생겨 순번을 정해서 그 새벽에 청년들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변화된 청년부 모습의 한 결과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개인적인 회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청년부 모임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4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그 불길이 어른들로 번지게 되었고, 그 다음해 초부터 계속 늘어나는 새벽기도의 참석자들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에는 7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200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교인 3분의 1 정도가 매일 새벽 5시 45분에 있는 새벽기도에 참석한 셈입니다. 그 중에는 소문을 듣고 주위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는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태도와 언어가 바뀌며 그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청년 학생들에게조차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변화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죽어있던 교회와 청년부가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소망하고 기대하던 참된 ‘부흥’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한 교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변화된 청년들과 교인들이 계속해서 그 지역과 나라와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인 큰 ‘부흥’을 기대하고 갈망하며 열정으로 기도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큰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큰 변화의 또 하나의 결과로는 전해에 열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코스타에 참석했었는데 그 다음해 그 한 교회에서만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밴을 빌려 20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면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단일 교회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코스타 참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코스타가 열리는 가까운 지역의 교회가 아닌 1000 마일 이나 떨어진 보스턴의 한 작은 지역교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의 변화


96년 코스타 이후에 그렇게 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경험한 후에 97년 코스타에 다시 참석하게 되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조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사람들이 간증하는 바,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타 이후 받은 은혜들을 지역 교회에 가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 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몇몇 지역 교회에서 그 전년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경험한 그런 역사가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중 한 지역에서는 코스타 이후에 그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사랑하며 그 지역 한인 유학생들과 이민 사회를 함께 돕는 사역을 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집회에서 일회적으로 큰 역사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각 지역교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간사도 아니 였고, 전체적인 코스타의 진행이나 준비나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단 두 번 그것도 처음으로 참석했던 한 개인이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진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관적으로 한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만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제게 주어진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제가 느끼게 된 점을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매년 일어나는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특별했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지역교회 회복의 현장 한 가운데 서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나눔의 기회가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몇몇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


교회의 회복을 통해 받은 복을 누리던 그 때는 저에겐 개인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연구 조교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에,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못 찾으면 당장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그 때에 코스타에서 만났던 조원 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저는 극적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저희 코스타 조원 들을 비롯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때 조원 들의 계속적인 기도 외에, 다니던 미국 교회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세 분의 교수가 있었는데, 한 분은 정년퇴직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았고, 또 한 분은 큰 병으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교수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박사과정 말년에 있던 미국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편지 수정도 봐 주고, 박사과정으로 연구조교 신청을 하면 거의 불가능하니 석사를 일단 하기로 하고 석사 기간 동안만 연구조교를 하게 해 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권고도 해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연구 조교 자리를 얻는 데 유용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런 접근 없이는 사실 제가 연구 조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 석사 과정 연구 테마까지도 제공 해주고 무능력하고 실력 없는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년 후에 석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이 연구조교가 확정된 이후로 유학생활 일년 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때라 쉬고 싶기도 하고, 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2주 동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치도 않게 친한 교회 선배의 소개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어있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인 그 다음해 2월초에 결혼을 하고, 97년 코스타에는 함께 부부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2003년 코스타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에도 저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항별로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았던 시간이나 사건이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조금 늦게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제 또 다시 일년을 살면서 코스타 때에 감동하면서 받았던 그 은혜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특별히 저의 삶의 영역이 될 제주도 지역에서, ‘순결’하게 살기위해 씨름하며 얻을 축복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류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받은 은혜 자체를 나누며 풍성해지는 기쁨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웬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러고 싶어집니다. 지금 96년의 코스타와 그 이후 일년 동안 경험한 변화들을 기억하며 간증하듯이, 나중에 이번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와 코스타 이후에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이제는 매일 매일을 코스타처럼 살아가는 daily KOSTA, 즉 dKOSTA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96년 이후에 있었던 그런 지역 교회들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 계속되어지고, 더 나아가 ‘순결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 즉 ‘먼저 자기 집 앞을 청소하는’ 그런 선교사적 삶을 통해 적극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저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황지성] 요셉이 가정 이야기 그리고 그 후기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2003년 7월 12일에쓴 간증서신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 그리고 요셉이 가정에 대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미국 코스타 황지성 간사가 존경하는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께 올리는 감사의 편지.


코스타집회를 통하여 많은 헌신과 수고로 함께 해주셨고 요셉이 가정,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의 가정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여러 믿음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서신을 올리면서도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지난 일년동안 코스타를 섬기는 간사님들 가정가운데 두 가정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천국으로 보내야 하셨던 일에 대하여 또 캔사스에서 코스타에 등록했던 한 자매가 교통사고로 소천한 사건에 저 자신 마음을 다해 같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저 자신 사랑으로 그 어려움들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제 마음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자신 형제님 가정에 사고가 난 후 벌써 두 주가 지났지만 몇 개월이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큰 그림의 조그만 퍼즐조각들이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 엄청난 고통가운데에서도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신 구자신 형제님의 믿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깊은 감동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속에서 구 자신형제님 가족은 이제 영육간에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황윤희 자매 (요셉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글로 자기 의사표현을 할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직은 몇주동안 더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7월 15일 화요일 12시에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그리고 둘째 아이 송아는 인디아나 Elkhart General Hospital에서 Washington DC의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ospital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제 그 주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간단한 보고를 드립니다.


6월 30일 월요일


사고는 6월 30일 월요일 정오경에 Indiana Toll Road에 일차선으로 주행하던 자동차에는 운전하시던 황윤희자매, 앞자리에 구자신 형제, 뒷자리에는 본겸이 (14살) 요셉이 (5살) 그리고 세번째, 맨 뒷자리에는 송아(8살) 그렇게 타고 있었습니다. 코스타 장소로부터 거리가 약 3시간 정도 떨어져있어 긴장이 약간은 풀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92번 Exit근처에서 2차선으로 달리던 트레일러 한 대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일차선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는 급히 핸들을 중앙선 쪽으로 틀고 그 순간 자동차는 중앙분리대 지역을 넘어 건너편 하이웨이로 치솟아 떨어지면서 수 차례 회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 때에 충격으로 몸이 비교적 작은 요셉이는 차 안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구르는 차 안에 갇혀있었고 다행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들이 없어서 더 큰 사고를 모면했습니다. 큰 아들 본겸이는 순간적으로 차에서 나와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을 수신호로 막은 후에 가족들을 아버지와 송아를 차 안에서 끄집어 내었고 엄마는 너무 심하게 다쳐있어 운전석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는 먼 발치에 튕겨져 나가있는 요셉이를 찾아내었습니다.


볼티모어 갈보리교회 노진준 목사님께서 불과 몇분 사이로 사고 현장을 포착하셨고 그래서 병원까지 가셔서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세심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우선 본겸이는 검사결과, 하나도 다친 부분이 없이 불과 몇시간 후에 노진준 목사님께서 코스타로 데리고 오실 수 있었습니다. 김만풍 목사님과 제가 코스타로부터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약 5시였습니다. 가족들 모두 수술중에 있었고 윤희자매는 큰 수술중이어서 그날 저녁 늦게 되어서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기도로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에 중환자실에서본 황윤희자매는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풍선과 같이 크게 부어오른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의식도 없는듯 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는 오른쪽 발뼈들이 흩어져서 뼈를 맞추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송아는 허벅지 뼈가 부러져 여섯개의 금속핀을 허벅지 뼈에 박는 대 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아들 요셉이는 병원으로 왔다가 상태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Elkhart에서 약 두시간 떨어진 Fort Wayne으로 헬리콥터로 옮겨져야 했습니다.


화요일


초조한 몇 시간이 지난 후, 화요일 새벽 1시경에 Fort Wayne 중환자 실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 기능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소식이었고 만일 심장박동이 멎을 경우 CPR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아버지인 구자신형제님께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구형제님과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녘에는 절망적인 전화가 다시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사가 임박했으니 마음의 준비와 그리고 기계에 의지해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인공호흡기를 만일의 경우 계속 유지시킬 지 아니면 떼어낼 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Elkhart병원의 Chaplin David Hudson목사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고 분명 하나님께서 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저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님께서 요셉이의 출생에 관해 숨기셨던 사실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셉이는 너무도 특별한 아이라서 하나님께서 꼭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 아이는 원래 제 아이가 아닙니다. 요셉이 엄마는 이 아이를 낳다가 낳은 날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데려다가 친아들로 삼고 기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이렇게 해서 이 가정에 들어오게 된 이 아이는 반드시 살려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감출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알고 함께해야 할 일이기에 구 형제님과 어제 전화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밝혀도 좋다는 승락을 얻었습니다.)


그날 오전에, 우리 모두의 기도의 힘으로 윤희자매의 회복이 빠르게 감지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지금 의식이 있고 내가 누구인지 아시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는 말에 오른쪽 발가락끝이 약간 움직였습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간호사들 모두 같이 기뻐해주었습니다. 구형제님도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오후 한시경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이의 뇌사판정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심장은 인공호흡기에 의해 뛰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병원측에서는 한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비록 뇌의 기능은 온전히 정지되어있지만 장기의 기능들은 아직 살아있으니 장기기증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은 한동안 기도하시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장기기증을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요셉이를 회생시켜주실 기적을 기대하고 더 버티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장기를 이식하면 살 수 있는 두 세명의 아이(사람)들을 살리느냐 하는 정말 숨가쁜 결정이었습니다. 장기기증을 수락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번 보고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의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에 Case Manager는 강력히 반대를 했습니다. 아마도 환자의 liability문제가 심각한 우려로 대두되었던 같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요셉이에게 전화를 걸어 귀에 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뇌사판정을 받은 아이라서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쪽 병원에서는 말했지만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스피커폰이 연결되었습니다. 구형제님의 마지막 전화내용은 이랬습니다. “요셉아 아빠가 정말 너에게 잘 대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이제 네 친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겠구나. 그리고 예수님도 만나고… 이제 하나님 앞에 가면서 이렇게 기도하자. 너를 살리려고 그렇게 애썼을 그 병원 간호사들하고 의사선생님들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이 병원과 네가 있는 그 병원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병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요셉아 잘가라. 이제 다시 곧 만나자…” 저는 이 기도를 하고 있는 구형제님 옆에서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을 축복하고 있는 구형제님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제가 그 병실에 모여있는 간호사들과 case manager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빠가 무슨 기도를 했는 줄 아느냐고, 이 어려운 순간에 당신들을 축복했노라고… 모든 사람이 다 울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복도에서 짤막한 회의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case manager가 병실로 돌아와서는, “OK. Mr. Koo, we decided to let you go.” 그리고는 앰뷸런스를 병원측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습니다. 수간호사 Bobbie는 진통제와 약들을 챙기고 앰뷸런스안에 모든 모니터 기구들을 싣게 했습니다. 구형제님을 싣고 paramedic 팀과 저와 수간호사 가 앰뷸런스 에 타고 장장 두시간 거리에 있는 Fort Wayne의 Parkview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시간에 김만풍 목사님과 민동식형제님은 그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우리는 저녁 8시경에 아직도 심장이 뛰고 체온이 따뜻한 요셉이의 얼굴과 몸들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사망판정이 난 요셉이,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면… 아직도 체온은 따뜻한데… 김만풍 목사님의 집례로, 요셉이의 손을 잡고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종예배가 끝나고 이제 장기기증을 하는 절차를 밟는 도중에 저는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의 비자문제로 병실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에 여기저기 통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요즘같이 비자가 까다로운 시절에 어떻게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게 될까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 저기 전화를 하는 도중에 그 병원 간호사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I have a good news. I found out that our deputy surgeon general’s wife and daughter are donating their organs now here at this hospital. We probably can ask him for some help…” 놀랍게도 그 분, deputy surgeon general은 한국주재 미 대사관과 워싱턴 homeland security 에 보낼 편지를 즉석에서 써주시게 되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6시간만에 10년짜리 비자를 받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혜였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은 착잡했습니다. 제 손에는 요셉이가 기증하기로 되어있는 장기의 목록을 담은 영수증이 들려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온 구형제님과 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낸것 같습니다. 수요일 새벽녘에 안구, 신장, 심장, 신장, 이자, 간등을 포함한 장기제거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요셉이가 다살지 못한 삶을 그 장기를 받은 아이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기도를 구형제님의 손을 붙잡고 같이 드렸습니다.


수요일


수요일은 요셉이 엄마 황윤희 자매에게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습니다. 요셉이의 몸을 버지니아 알링톤 funeral home으로 이송하기로 조치해 놓고 수요일 밤에 잠깐 짬을 내어 오헤어 공항에서 아내를 픽업하여 휘튼에 돌아왔습니다.


목요일


목요일 아침에 휘튼에서 다시 병원으로 떠나기 전에 몇분의 강사님들이 저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회중에 요셉이 가정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고 궁금해 하니 짤막한 리포트를 아침집회때 해달라는 요청이셨습니다. 아침 집회중간에 잠깐 나가서 하나님께서 요셉이를 불러가신 일을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를 마치고 떠나는 참에 두 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요셉이네 가족이 있는 병원근처의 은혜침례교회 나창옥목사님과 노틀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시는 천성창형제님이셨습니다. 천형제님께서는 이제 곧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묵으실 숙소로 자기 집을 내주셨습니다. 나목사님은 또한 제가 토요일 매릴랜드로 떠난 후에 요셉이 가족을 돌봐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목요일 점심때쯤 휘튼으로부터 제 아내와 구 형제님 큰아들 본겸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윤희자매를 찾았습니다. 입으로 반경 1인치 정도의 튜브를 폐까지 깊게 박아서 산소 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고 자매는 입과 목의 통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얼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정말 의식이 온전히 돌와왔는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본겸이를 침대 왼쪽에, 휠체어에 앉은 딸아이 송아를 오른쯕에 가게 하고 손을 잡게 했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가 평소에 좋아하던 찬양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곡 씨디를 틀고 구형제님과 함께 같이 모두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을 한참 하는 중에 병실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병실 구석에 서서 이를 지켜보는 간호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간호사들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있는 것을 보고 윤희자매를 바라보는 순간 그 튜브를 박은 입의 입술이 찬양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매는 찬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뛸뜻이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자매의 건강은 급격히 호전되기 작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금요일


금요일 저녁 병원을 떠날때 Bobbie를 포함한 많은 간호사들이 다가와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격적인 말들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We are so honored to have the family with us. We are seeing God’s hands through their witnessing.” 그리고 한 간호사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것은 무엇이냐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구형제님의 기도를 통해 이미 그 병원은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었음이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7월 12일 현재


어제는 구형제님이 전화에 그러시더군요. 요셉이 그놈만 아니었다면… 그러나 이번 일은 형제님 가정에 엄청난 축복이라고요… 요셉이가 우리 대신 갔다고, 마치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윤희자매는 이제 눈도 뜨고 글씨도 쓰고 한답니다. 어제밤에는 전화도 직접받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회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확실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이겠지요… 아직도 가슴아픈 것은 요셉이 엄마는 요셉이가 천국에 간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형제님이 그러시는데, 윤희자매가 정신이 좀 돌아오면서, 며칠 전에 요셉이가 요셉이 친엄마와 천국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답니다. 이 부분을 갖고 계속 기도했는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충격이 크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시켜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하튼 이 소식을 곧 알려야 하는데, 충격이 크지 않아서 자매의 회복에 지장이 없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네 가족을 위한 기도제목을 몇가지 적으며 이 서신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1. 요셉이 아빠가 기도하신대로 Elkhart General Hospital 과 Fort Wayne Parkview Hospital이 환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 치료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병원전체의 복음화와 병원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이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이 세상을 치유하는 서번트 리더들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빠 구자신 형제님과 엄마 황윤희 자매님의 소명이 확실히 확인되어지고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드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빠의 전공(microbiology)와 엄마의 전공(성악, soprano)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나 혹 이 전공과 다른 소명을 주신다면 그 소명이 확인되어지고 하나님께서 나머지 인생의 길을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나갈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큰 아들 본겸이와 딸 송아의 마음속에 상처가 남지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윤희자매가 요셉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 큰 충격없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6. 모든 재정적인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7.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있을 장례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고 이 예배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계속적인 기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황지성 드림


2003년 7월 12일에


2003년 8월 1일에 이 글에 덧붙이는 소식


여러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의 기도와 격려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알려드린 대로 지난 7월 18일 19일에 요셉이 장례를 잘 마쳤습니다. 지구촌교회 성도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코스탄들과 그리고 지역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도 많이 참석하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이 어머니께는 요셉이의 장례소식을 고별예배가 있던 금요일의 하루 전날, 목요일 오후에 조지타운 병실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고 후 모든 사실을 남김없이 알려드렸습니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덕분에, 김만풍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그 슬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몸이었지만 그래도 장례예배에 가족 모두가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요셉이 엄마아빠는 곧바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매우 연약한 육체로 참석했던 요셉이 엄마였지만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마지막 찬양으로 “주만 바라볼지라”를 이 가족을 향해 불러 드릴 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셨습니다.


토요일은 화창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이진석 목사님의 집례로 발인예배후에 곧바로 장지로 떠나 요셉이를 땅에 묻었습니다. 고상환 목사님의 집례로 하관예배가 있었고 참석한 사람들이 마지막 헌화를 하면서 장례식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는 요셉이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간단한 편지가 미국 장기 기증협회이름으로 날아왔습니다. 요셉이의 간을 이식받은 아이는 미시간에 사는 10살난 남자아이로, Frank라는 거북이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신장을 받은 사람은 인디아나에 사는 수영과 음악을 좋아하는 28세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장기들은 장기은행에 보관되어, 추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기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제 이 장기기증을 받은 위의 두 사람들이, 이름은 모르지만, 건강하게 회복되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요셉이 가족 모두가 퇴원하셔서 집에 계십니다.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가정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 가정을 향한 기름부으심이 가슴 설레도록 기대됩니다. 요셉이 어머님은 아직은 누워계시지만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계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혹 요셉이 가정에 직접 연락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주소나 이메일로 연락하시면 되겠습니다.


Jashin Koo
15608 Marathon Circle #104
Giathersburg, MD 20878
jashin1028@yahoo.co.kr


다시 한번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과 선배님들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메릴랜드에서 황지성 드림

요셉이의 하늘

요셉이의 하늘:
촬영 : 민동식 , 2003년 6월 30일 저녁 8시경
Elkhart, Indiana

[강동인] 코스타 2003을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3년 6/7월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마태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오늘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기독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약 1년 전 주제 선정을 위한 간사 모임에서 “순결”이라는 단어가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거대한 문화적 상황과 물질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상황 가운데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무릎을 꿇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코스타 2003을 통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고, 그 앞에 자신의 추하고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영적 각성이 있기를 원한다. 세상의 온갖 풍조와 교훈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진 하나님의 기준이 밝히 드러나며 그 가운데서 애통해 하기 원한다. 영혼의 깊은 애통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기 원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긴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좇아 행하는 순결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의 결단과 헌신이 일어나기 원한다.


코스타 2003 집회를 통한 기대


코스타로 보면 2003년은 컬리지 학생과 대학원 학생들의 수양회를 분리 개최하는 첫 해가 된다. 연령과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사역을 위해 새로이 시작되는 컬리지 코스타(cKOSTA)는 코스타와 같은 스피릿을 가지고 철저한 자원봉사 정신으로 한국인 학부 학생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대상은 다르지만 동일한 성령께서 이번 집회들을 통해 코스타에 참여할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대를 채워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개인적 회개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죄에 대한 회개와 죄에 대한 감수성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유일한 길임이 선포되기를 원한다. 복음을 알고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께서 미워하셨던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회개가 일어나기 원한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자신의 죄악 된 삶을 합리화시키는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는 뻔뻔함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죄에 대적하는 삶을 결단하게 되기를 원한다.


공동체적 회개


자신과 자신의 민족의 죄를 위해 하나님 앞에 통회하였던 다니엘처럼 세상에 보내어진 그리스도인 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가정, 교회, 학교, 나라, 민족 등의 공동체를 위해 중보하고 그 가운데서 순결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만을 중요시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격리된 극단적인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믿는 이들끼리 성을 쌓고 안전지대에 숨어 지내면서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려 그리스도인 임을 망각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힘겹고 경쟁적인 학문의 장에서 지식의 우상을 좇는 무리들과 동일한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점들을 너무 쉽게 지적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향기 (고후 2:15)임을 믿는다면,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향기를 내뿜는 삶을 경주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의 진지한 회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들에게 물으실 세상에 대한 책임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아성에서,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순결한 삶을 경주하기를 결단하기 원한다. 그때 비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향기가 스며져 가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의 꿈틀거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제자의 삶의 회복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자신 스스로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임과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삶이다. 그러나 삶과 선교는 너무나 오랫동안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선교는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특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개념이 만연되었고, 일상의 삶은 제자의 삶과는 별개의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선교와 전도는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특별한 훈련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과 일상의 삶은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는 잘못된 이원론적인 사고를 낳게 되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존귀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선포되고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기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결한 제자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를 전하고 제자 삼기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박차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그의 나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이웃에게 손을 내밀기 원한다.


코스타 그 이후 – 지혜롭고 순결하게 섬김


코스타 집회는 일주일이라는 단시간의 일회적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일 하심은 코스타 집회 이후에 더 강력하게 참석자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집회를 마치고 전국으로 흩어져가는 참석자들의 상황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전도하러 세상에 보내시는 상황에 비유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좀처럼 깨기 어려운 일상과 두려운 현실이다. 우리의 섬김을 기다리는 가정, 이웃, 교회, 학교, 직장, 학문의 영역, 민족, 나라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곳에 우리들은 나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지하고 “지혜롭고 순결하게” 섬기러 나아간다. 깊은 영적인 깨달음은 교만이 아닌 섬김으로 나타나기 원한다. 깊은 회개는 개인적, 공동체적인 순결한 삶으로 나타나기 원한다.


맺으며


하나님께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특별히 올해에는 코스타와 더불어 JAMA, Urbana 등 풍성한 기독 행사가 준비되어 한국인 학생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고 그들을 훈련시키게 되는 것은 참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크고 넓음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코스타라는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의 일부를 감당한다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별히 조장으로 멘토로 자원봉사자로 어린이 코스타 교사로 강사로 간사로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분들을 통해서 올해도 은혜를 부어주시고 주님의 임재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코스타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집회에서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작품이고자 한다. 지역에서 그러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동역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 함께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학문의 세계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기까지” 순결한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코스타 2003은 그런 제자들을 배출하는 영적 훈련소가 될 것이다.

[팽동국] 코스타에서 받았던 은혜들

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간증을 시작하며


제가 7년 반만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올 봄에 제주대학에 정착하기까지의 기간을 돌아볼 때, 코스타를 언급하지 않고는 저의 미국에서의 삶을 얘기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코스타가 제 삶의 가장 귀하고 큰 중심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코스타를 한번이라도 참석 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들이 단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소수라는 생각과, 그런 특권과 복의 기회가 내 인생에서 몇 년 동안이나 주어질까 하는 생각에 기회가 되는대로 참석하다 보니, 7년의 재미기간 중 한해를 빼놓고 6년 동안 코스타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한번 한번의 코스타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과 복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영적인 복 뿐만 아니라 학업과 삶에 있어서도 코스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코스타 기간동안과 코스타 이후에 받은 복들을 연도별로 간략하게 헤아려 보면, 96년 첫 코스타 이후 저는 연구 조교 자리를 거의 기적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 해 여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그 이듬해 봄에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97년 수련회에는 아내와 함께 코스타를 참석하였고, 그 이후 참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닥쳐왔었는데,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8년에는 등록까지 했었는데, 아내의 임신을 코스타 바로 직전에 알게 되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99년에는 태어난 지 4개월 된 쌍둥이 딸들과 함께 12시간동안 운전을 해서 코스타 참석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 어려웠던 교회의 문제들을 잘 지혜롭게 대처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코스타 이후에는 그 동안 안 되던 실험 장치와 방법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며 실험 결과가 좋아서 첫 논문을 쓰게 되었고, 2001년 코스타를 통해서는 오랫동안 정리가 되지 않고 답을 찾던 학문과 신앙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은혜가 있었으며, 코스타 이후에 예상치 않던 값비싼 장비를 빌릴 기회가 주어졌으며 실험결과가 잘 나와서 졸업을 할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2002년 코스타에서는 간사로 섬길 수 있는 특권과, 박사 후 과정을 위해 옮길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귀한 교회와 삶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반드시 코스타의 직접적인 결과나 코스타를 참석했기 때문에만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코스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코스타를 중심으로 일들이 전개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던 저의 유학생활 동안의 간증들을 코스타를 중심으로 몇 회에 나누어서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96년 코스타를 참석하기까지


저는 이미 유학을 가기 전에 코스타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었기에, 미국을 가기만 하면 꼭 한번은 코스타를 참석해 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유학 첫 일년을 마칠 때쯤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거의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영어실력도 안되고 기초실력도 모자라는데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게 된 유학인데다가, 전공도 바뀌었으니 수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업시간에 아무리 졸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눈이 감기고는 했던 첫 학기와, 숙제를 아무리 읽어봐도 문제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고, 심지어 선배들이 풀었던 답을 봐도 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막막해 하며 한 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으며, 더불어 연구조교 자리를 찾기는 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에서 받은 장학금과 온 가족이 모아준 돈을 합쳐도 겨우 1년을 버틸 만큼이었으며, 여름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을학기에 등록을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절망감도 절망감이거니와, 설사 어떻게 경제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무능력 감 때문에 이렇게 몇 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처럼 느껴져 밀폐 공포증까지 있었던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96년 4월초에 코스타 등록원서를 보게 되었고, 등록원서를 보자마자 눈 딱 감고 그냥 등록을 했습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상황에서 자포자기식으로, 또한 어디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등록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전에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수련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기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마음도 컸었습니다. 레위기 23장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번제나 화목제 등의 제사를 지내고, 매주 안식일을 지켰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일년에 세 번을 따로 모여 여호와 목전에서 거룩한 성회를 하라고 하셨으며, 그 중에서도 유월절과 초막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모아서, 일주일씩 여호와 앞에 함께 모여서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여름과 겨울에 수련회를 가서 몇 일씩 세상과 분리되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쉬는 거룩한 모임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정하신 절기의 원리 속에 있다는 것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런 말씀에서 깨달은 영적 원리들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어 수련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되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해의 코스타 주제였습니다. 96년의 코스타의 주제는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 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93년, 94년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차갑고 강철 같던 저와 제가 속해있던 청년부에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셨고 성령의 탄식하는 영을 저와 저희 청년부들의 심령 속에 심어주셨던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주제와 말씀도 역시 ‘부흥’ 이었고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개교회의 부흥 집회와는 구별되는, 개인이나 집단의 거룩한 회심을 통한 사회와 민족과 족속들 까지도 변화되는 미국의 1차 2차의 대각성 시기 같은 이 영광스러운 시대로의 부흥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부흥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95년에는 개인적인 여러 사정상 수련회를 못 갔었고, 이제 개인적으로는 2년 만에 맞는 수련회인 그 코스타가 역시 동일한 주제로 계속되었으니, 거기에다 코스타가 열리는 장소는 시카고 부근의 위튼 대학(Wheaton College)으로서 94년도에 미국 크리스천 대학생들의 집회 중에 집단적으로 ‘부흥의 조짐'(주:부흥과 개혁사의 <캠퍼스를 태운 하나님의 부흥을 말한다> 참조)이 있었던 것을 미국 오면서 막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두 대학생의 간증을 들으면서 시작된 저녁 집회가 그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우며 회개와 기도 찬양으로 계속 되어졌으며, 천 여명의 대학생들이 그렇게 며칠을 회심과 회개와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경험했으며 그 결과로 담배와 음란잡지, 그리고 마약 등을 자발적으로 모아 소각하게 된 양만도 엄청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주제처럼 저에게도 또한 우리 한국 유학생에게도 그러한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게 되는 소망을 더욱 크게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잔치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며 지역 교회에서 렌트해 준 미니밴에 대략 여덟 명 정도의 학생들이 1박 2일로 보스톤에서 시카고까지 20시간을 운전해서 가게 되었던 첫 코스타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잔치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예배 때 처음으로 에드만 채플로 들어가는데, 이미 시작된 찬양 팀의 찬양과 강당을 꽉 메운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을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찬양하는 천국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코스타는 순서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얼마나 그 말씀들이 저를 도전하고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던지요. 저녁시간마다 부흥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던 하용조 목사님, 오전 시간마다 다니엘서로 유학생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시던 이 승장 목사님, 그리고 코스타 출신들의 삶의 현장에서의 간증을 통한 도전과 비전들, 오후 시간마다 20여 개의 주옥 같은 선택식 강의들, 그래서 각자의 관심이나 기대, 그리고 신앙의 단계에 맞춰 이삼십 명씩 나눠서 듣는 강의 하나하나들, 그 속에서 저는 저희 앞에 차려진 큰 잔칫상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좋은 경건서적의 저자들,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만 접하거나 소문만 들었던 분들, 그 중 한 분만 오셔도 큰 은혜의 수련회가 될 법한데, 그런 분들이 이삼십 명이나 오셔서 필요한 영적 양분을 다양하게 공급해 주시는 모습 속에서(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코스타에서 이것을 ‘국력낭비’라고 하더군요), 최고의 요리들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채운 상 앞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조별로 모여서 요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경건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여서 그날 받았던 은혜들을 나누던 조별 모임, 이 모임을 통해서 대형집회에서 간과 되어질 수 있는 깊이 있는 개인적인 교제가 가능했고 기도제목 들을 나누고 함께 중보기도하며, 이미 코스타 기간 중에 응답을 받은 기도들로 인해 감사하며 함께 기뻐하며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조원 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 나는 분이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텍사스에서 오신 자매인데 코스타를 너무 오고 싶었는데 기말고사가 겹쳐서 포기할까 하다가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각 과목 교수님들께 양해를 받고 오신 분이 있었고, 또 한 분은 한국 모 대학 도서실에서 사서관련 일을 하시는 분인데, 전혀 올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셔서 캐나다를 거쳐 이 코스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분이었으니, 그 분들과 함께 받은 은혜는 더불어 클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외에도 많은 조원들이 코스타를 사모하고 준비해서 왔었고, 또 몇 분은 억지로 끌려오신 분들이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분들의 얼굴표정이 바뀌고 말과 생각이 바뀌어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던 분들도 있었으며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답니다. 너무 좋아서 그 해가 다 가기까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코스타에서 좋았던 점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좋은 양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언어의 마술사’ 이 동원 목사님의 양서 소개 시간과 한국의 여러 좋은 양서와 찬양테이프 및 CD를 할인해서 살수 있었다는 것과 그 책들을 코스타 이후에도 읽으며 영적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는 역사와 또 다른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2년 이상의 단기,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그 감격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백 명 가까이 얻은 이 때에 하늘에서 열리는 잔치의 기쁨을 생각하면 코스타가 여기서 끝나도 원 없이 좋지만,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에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 받을 때까지 코스타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던 한 간사의 말과, 자신의 바쁘고 힘든 유학생활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코스타에 자원 봉사하여 수 십일을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고 현장에서도 코스타 진행을 도우려고 바쁘게 움직이던 간사들이, 힘든 육체의 고단함에도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미소와 얼굴로 우리들을 위해 섬기시던 모습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코스타 (?)


그러나 그렇게 순서순서 마다 은혜가 가득했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렇게 기대하고 소망하던 개인적인 ‘부흥’이나 공동체 전체에게 허락하신 ‘부흥’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부흥’은 너무나 명백히 ‘아주 좋다’ 거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알고 있었던 저로서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서 금요일 점심시간에 마지막으로 모인 조 모임에서 그것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자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참된 ‘부흥’은 이것과는 명백히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주권적인 임재와 역사이며,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 분을 아는 지식과 우리의 죄인 됨의 인식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머리와 가슴과 삶과 우리의 모든 말과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인쳐지는 것이고, 그 결과는 본인이나 공동체 전체가 뚜렷이 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나 사회, 심지어 한 나라 혹은 세계 전역에 까지 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해의 코스타 주제가 바로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라는 면에서, 이번 코스타가 실패인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야 사람들이 ‘부흥’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되어 이런 것이 바로 ‘부흥’인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참된 ‘부흥’을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 조원 들만이라도 깨어서 계속해서 기도하자고 감히 주장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하나님은 일 년이나 지난 뒤에 저에게 다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계속)


마무리하면서 사족


저는 코스타만이 모든 것이고 코스타를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된다거나 누구나 다 물질적 혹은 영적 복을 받는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코스타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또한 코스타를 참석했으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이것을 꼭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매년 코스타를 참석하면서 어쩌면 이번 코스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만큼 각박한 유학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게 저는 한국으로 돌아온 올해에도 코스타를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저에게 마지막 코스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참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되 세상을 떠나거나 등지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고귀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함일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세상의 방법을 너무 쉽게 쫓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 들이 이제는 진실로 순수하고 순결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그분 앞에서 그 분만을 청중자로 두고 살아갈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에 선포되어, 주위에 거룩한 흰옷을 입은 청년들이 자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날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에 물이 가득할 그 날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번 2003년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