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KOSTA/USA 참석자 좌담회 – 서정석, 서혜진, 최자영, 한동호

이코스타 2008년 8월호

eKOST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서혜진: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남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번 코스타에서는 기혼조 조장으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코디로 섬겼고, 조장은 이번이 번째였습니다.

한동호: 네브래스카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에 있고, 미국에 지는 3, 그리고  코스타에 참가했습니다. 조장 참가했고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최자영: 시애틀에 살고 있고, 코스타 참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원이었구요.

서정석: 뉴욕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이번이 처음 참석입니다. 기혼자 신학생 그룹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전체를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주시고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 건설적인 비판을 해보겠습니다.

KOSTA/USA 2008 주제가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이었습니다. 주제가 시대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청년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라면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동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고, 코스타 참석하면서 아주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맘에 들었습니다.

eKOSTA:작년 코스타의 주제와 연결이 되었습니까?

한동호: 작년에는 주제가 시대를 본받지 말고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차별화된 삶이었는데 올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란 느낌입니다. 비슷한 주제가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최자영: 한인 청년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고, 시대에 적절하며, universal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석: 보통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얘기하면 추상적이라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것 같은데 이번에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있었습니다. 청년 학생들로서, 다른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중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혜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굉장히 관심이 많은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제 때문에 가기로 하신 분들도 있었고, 작년 주제와도 아주 연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주제 찬양도 계속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 주제에 대한 열망이나 관심과 비교하면 주제가 아주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스탄들 마다 주제를 묵상하고 이해한 정도가 다른 같았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주제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의 이중 구조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한 코스탄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설명이 되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니 좀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말씀과 세미나도 주제가 들어맞았지만, 강사님들께서모두들 그런 기초가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들어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김도현 교수님의 특강이 주제를 잡아 주었던 것처럼 많은 코스탄들이 맥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주제 세미나가이재천 목사님의그런 역할을 하긴 했는데 보다 많은 코스탄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주제를 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주제 세미나가 주제 세미나인지 몰랐던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을 통해서 제공된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제 자체는 아주 적절하고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적인 바탕뿐만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 나라까지도 다뤄져서 좋았습니다.

eKOSTA: 그러면 개별 프로그램을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 집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전달되었습니까?

최자영: 저도 서혜진 자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살아야 주제를 갖고 나왔는데, 그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eKOSTA: 코스타에서 주제의 역활이 아주 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자영: ‘주제’라는 자체가 모든 것을 꿰뚫어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든지 계속해서 생각해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위해 기도가운데 그런 주제를 들고 나오신 아닙니까?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서, 주제를 놓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주제를 전달하려면 어떤 부분들이 필요할까요?

최자영: 개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충분히 답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의 전달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방법상의 문제인지, 코스타의 정체성 문제인지, 어쩌면 일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메시지 전달에 앞서서 코스타 운동의 정체성이 확실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이 새로운 phase 로의 발돋움 하기 위한 과도기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메시지를 전달 받고 싶었던 사람으로 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를 위주로 참자가 운영체계가 편의상 유용하긴 하지만 조장들에게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낼 있도록 주어진 자원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조장들조차 코스타의 핵심 가치에 대해 온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장도, 조원도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의 기본 주제와 사이가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아닌지 합니다. 그러므로 조장의 인도로 코스타의 핵심정신이나 이번 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 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일도 있어 사실, 수련회 기간에 코스타가 이야기 하려는 주제에 거의 접근이 힘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빡빡한 일정 가운데 강의를 소화하거나 주제에 대해 생각해 시간은 모두 조와 함께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조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서로 알아가면서 함께 나누게 은혜와 기쁨 또한 컸습니다. 하지만, 코스타가 정말로 부르짖고자 하는 메시지가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는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자꾸 빠진다면 여느 청년 수련회와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조금 강하게 말씀드린다면, 조를 없애던지, 아니면 조장 훈련을 강화하고, 자원을 제공해서, 코스타의 주제를 이해할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문제를 파격적으로 개혁하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정석: 어떤 집회의 영향이 개인의 삶에 영원히 남을 수는 없을 같습니다. 항상 집회가 가져다준 영향을 되짚어보고 새기는 것이 각자의 과제입니다.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있어서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소그룹에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학적인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 이해를 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좋았습니다. 내년 코스타의 주제와도 연결이 거라 생각합니다. 비판을 하자면 있지만, 주제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동호:   전체집회에서 전달할 있는 부분과, 소그룹에서 대화하면서 받는 메시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집회에서는 주제를 선포하면서 메세지를 전달한다면 조에서는 주제를 나와 연결하도록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조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장의 역량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장의 관심사가 이성교제라면 많은 부분에서 이성 교제로 가는 것을 봅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최자영 자매님 말씀대로 전체적인 주제가 선포되는 가운데 주제에 대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구체적인 대화가 없었던 같습니다. 결국은 나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eKOSTA: 오후에는 주로 세미나로 채워졌는데요, 세미나 운영이나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주십시오.

서혜진: 제가 택한 세미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고 알차고 도전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지 아쉬운 점은 올해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세미나가 없어진 것도 보았고, 한정된 인원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TM 세션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TM 참석을 못했지만, 올해는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 연구에 관한 TM 세션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고 이런 것이 TM 정신에 맞는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참가자 수가 , 정도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분은 쉽게 해결할 있는, 활성화 시킬 방법이 있는 같습니다. TM 내용이 홍보되었으면 쉽게 많이 왔을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분들이 오시고 유익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전에 TM 선택하신 분들과  코디, 그리고 강사들이 서로 먼저 연락을 있어서 토론의 이슈도 먼저 모으면 좋을 같고,  세미나 TM 경우에는 내용이 먼저 알려졌으면 좋았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한동호: 번째 참석했는데 동안은 이성교제와 같이 사람들이 추천하는 세미나를 많이 들었었는데, 올해는 선교라는 주제를 나름대로 정하고 선교에 대한 세미나를 들어봤습니다. 대부분은 세미나 강사로 오신 선교사님들의 경험과 가져 오신 주제에 따라 세미나의 성격이 많이 다른 같습니다. 굳이 코스타 세미나라고 하지 않아도 정도로 개성들이 강했습니다. 세미나에서 이론적인 내용보다도 실제적인 내용을 전달할 도움이 되었습니다. TM 세미나는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는데, 강사님이 놀랄 정도로 많은 참석자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오셨는데, 이유가 정치학 세미나 제목에 ‘세계화’라는 시사적인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의견들을 한두 마디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서정석: 세미나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제와의 연결이 우선순위인지 아니면 다른 면으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세미나가 주제와는 거리가 있었던 같습니다. 세미나를 인터넷으로 사전 등록을 했지만, 의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특정 세미나에는 인원이 너무 많았고, 시리즈 강의에 대한 혼동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체 시리즈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시리즈인 것을 나중에 알고 신청하지 않은 세션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님들과의 소통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의 선택했을 받았던 쿠폰이 거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그룹을 담당하다 보니 저녁 11시에 유명 목사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모임이 급조된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주제가 없었고, 인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방향 없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먼저 주던지, 아니면 참석 가능자에게 미리 의견을 들어봐서 어떤 부분에서 듣고 싶은지, 주제나 방향을 정했으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있었을 같습니다.

최자영: 세미나는 전체 주제 아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지를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주제로 하나로 묶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많은 참가자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결혼 문제에 그런 주제를 하나님의 나라로 풀이하기보다는 굉장히 방법적인 면으로 치우쳐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바라고 오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다급한 필요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보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는가입니다. 또한 미혼이고 결혼이라는 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실제로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코스타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삶이 무엇이고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가 얘기하는 가운데 이런 결혼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쉽습니다.  참가자들의 필요와 원함에 따라 여러 가지 토픽을 두루두루 갖추며 제공하기보다는, 무슨 토픽이든 하나님의 나라로 또는 그해의 주제로 연결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M 아주 좋은 시도인 같았습니다. 저도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었는데, 많은 인원이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려니까 시간적, 현실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토론 주제를 좁게 잡아서 이야기하면 결국 주제로 연결되고 원래 의도였던 토론도 이루어 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KOSTA: 일주일 내내 조원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조활동이 이루어졌나요? 어떤 점이 좋으셨고 어떤 점이 아쉬우셨는지요?

서혜진: 제가 기혼 조장으로 섬기는 동안, 사람을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었던 가장 좋았던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같은 길을 가는 자체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혼 조가 염려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사역의 대상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기혼 조의 비율이 앞으로도 점점 높아질 같은데, 이제는 기혼 조를 전체적인 운영에서 특수한 그룹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체로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혼 조와 강사들의 만남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는 장평훈, 이민자 선생님께서 하시는 Q&A 들어갔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부부가 함께할 있는 세미나가 많이 개발될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 시너지를 있는데, 그것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스타가 부분을 앞으로도 개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동호: 저는 미혼 조에 3 참석했고 앞의 2년간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석하면서, 조원으로 많이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선 운영에서 조장의 역량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J에서 해의 주제와 코스타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침 큐티 시간이 조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조장들에게 큐티 본문에 대한 훈련뿐만 아니라 소그룹 인도에 관한 훈련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코스타의 활동이 의미와 적실성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최자영:  조장으로 섬기시는 분의 헌신된 마음을 생각할 조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섬김을 위해 조장에게 제공되는 자원이 부족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장 훈련이 어떠한지 들어보면, 같아도 마음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정도로의 훈련으로는 시행착오가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장들이 미리미리, 또는 내내 교육이 되고 훈련 받으면 조장에게도 유익이 있고, 그들이 코스타에 밀착되어 운동할 있게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조원들에게 유익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구요.  조장들 훈련이 단기간, 훈련과 섬김의 일회성에서 벗어나서 정말 삶의 현장에서 코스타수련회까지 이어지도록, 코스타 운동의 일원이 되도록 훈련받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서정석: 우선 조장들이 미리 큐티를 준비하는데,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큐티 본문에 대한 의도를 얘기해주는 메시지가 있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무언가 억지로 맞추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얘기들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조는 큐티 나눔에서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같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나눔 이전에 큐티 질문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코스타가 생각하는 주제가 조장에게 주어지고 조장이 큐티를 만들어 가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가지는, 기혼자 그룹은 활동이 많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족이 같이 모이는 시간이나 배우자들과 모이는 시간을 확실히 프로그램화해서 각각에서 모두 유익을 얻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eKOSTA: 찬양이나 금식 기도회, 엑스포, 그리고 상담 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외에 운영에 관해서 코스탄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한동호: 금식 기도회 끝나고 조금 기도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코스타에 참석자의 70%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인데, 그들에게코스타란 무엇인가하는 점을 집회 처음 부분에 소개해 준다면, 참석자들이 빨리 적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 전체에게 짧게나마 코스타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주제에 대해 안내할 있다면 처음 참석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겠네요.

 한동호: 해가 지나가면서 코스타의 분위기도 다소 달라지는 같습니다. 예전에는 민족을 비롯한 공동체를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는 같습니다. 제가 아는 코스타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모임이거든요. 예를 들어, 작년은 정진호 교수님의 세미나와 같이 조국과 민족을 생각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비하여 올해는 특히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점들이 다소 약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일 코스타에서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강조가 약해진다면, 개인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소비자 기독교적 행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정석: 엑스포를 홍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경우 자리를 지키시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뉴욕에서는 선교단체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엑스포에 가서도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코스탄들이 엑스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코스탄들에게 엑스포가 무엇인지, 어떤 단체가 참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같습니다.

 eKOSTA: 엑스포에 관한 정보가 교재에 실리기는 하는데,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같네요.

 서혜진: 저는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이 좋았습니다. 이번 찬양시간이 말씀과 예배에 들어가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같습니다. 상담은 저는 받지 못했지만, 조원들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어보면, 상담이 도움이 되었던 같습니다. 운영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있다가 보니, 저녁 집회를 2층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경우 이번이 코스타 번째 참석임에도, 언제 다시 1층으로 내려갈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일터의 현장 마치고 내려갔던 같아, 내려가 보면, 어느 날은 통제되고 있었고, 안내하시는 분들도 곤혹스러워 하셨고요. 차라리, 간사님 분이 2층에 계시면서  언제 내려오실 있다고 정확하게 안내를 해주시면 좋을 같습니다.

 최자영: 저도 찬양 시간은 매우 좋았습니다.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기도회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다는 점이었습니다. 2/3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조모임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들이 미리 나가셔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조원들을 기다리며 잠깐 기도회의 처음을 있었는데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준비하고 기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가기가 아쉬웠습니다. 

eKOSTA: KOSTA 감격을 안고 열방으로 흩어진 코스탄들이 각지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특히 gpKOSTA, ekOSTA, jjKOSTA같은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기대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자영: 지역에서의 성경공부를 통해 지속적인 말씀 묵상과 공부로 제자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현재 가장 필요가 크고, 핵심적이며, 활성화되어야 코스타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반복된다고 해도 코스타의 일회성적인 면이 부정될 없을 같습니다. 그런 한계는지역 성경공부 운동 gpKOSTA 통해 충분히 극복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회를 시작/마무리로 해서 일년내내 지역에서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코스탄들이 계속 복음화되고 그것이 지역공동체로 연결될 비로소 코스타의 열매가 맺힌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코스타의 이름으로가 아니어도, 지역에서 적게는 두셋이 모여 성경공부를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자원을 제공하여 지역교회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누구나 참가할 있는 자율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성경공부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조장 , 코스타를 섬기려 하는 분들이 훈련을 받는다면, 앞에 이야기했던 조운영체계의 문제점이 많이 보완되는 것은 물론 굳이 수련회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일년내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는 삶을 사는 훈련으로서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공부를 해가면서 변해가는 가운데 지역교회를 섬기는 코스탄들이 교회와 동역 하면서 끼치게 선한 영향력은 어떻겠습니까? 말씀으로 변화된 삶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능력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나님의 딸과 아들들이 일어나 신음하는 세상으로 향할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벅찹니다.

한동호: 일상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코스탄들의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과정에서 성공의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gpKOSTA, eKOSTA, jjKOSTA 모든 프로그램들이 크리스천으로서 함께 나가는 좋은 동역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만 고민하기보다는 주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혜진: 코스타에서 부어주신 은혜가 온전히 삶으로 살아지려면,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진실하게 겸손하게 있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같고, 같은 길을 가는 지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주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제가 있는 지역 (San Francisco/Bay area) 이번 코스타 전에 gpKOSTA 열려서 같은 지역에 몸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발견하고 힘을 얻는 귀한 기회가 되었을 아니라  jjKOSTA 그리고 코스타까지 이어지는 선한 기운/동력의 출발점이 같아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gpKOSTA 내용도 지역 리더들에게 필요한 알찬 훈련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gpKOSTA 사역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jjKOSTA 해가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코스타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의 하나가 jjKOSTA 였습니다. 강사님의 말씀이 서로 상호보완되면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아니라 코스타 말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조장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조장님들이 말씀으로 먼저 orient 되고 은혜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운영 tip 다른 부분은 온라인 여러 다른 방법으로도 훈련되니까요.)

eKOSTA: 내년 코스타의 주제가 ‘Shalom in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발표되었는데요, 내년 주제를 보시면서 떠오르시는 것들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그냥 이미지도 좋고, 신학주제도 좋습니다.

한동호: 내년 주제를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세상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맞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코스타에 참석하는 이유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내년에도 그런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서혜진: 내년 코스타의 주제는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 코스타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phrase 표현하면 내년 코스타 주제가 되는 같습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이 흔들 없는 평안을 가진 . 그러나 세상을 향해서는 세상을 거스르는 참된 용기를 가진 . 모습이 연결될 밖에 없는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eKOSTA: 개인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 코스타에 참석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시려는지, 혹시 아니라면 꺼려지시는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정석: 저는 주제 때문에 다음에도 가고 싶습니다. 다음 주제가 이번 주제를 구체화 면이 있는 같습니다.

최자영: 코스타 참석 전에도 코스타를 귀하게 여긴 사람으로서 코스타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코스타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에 집중하고 겉도는 느낌을 없앤다면 더할 나위 없을 같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지지하겠습니다.

한동호: 코스타가 저를 항상 긴장하게 하고 년에 번씩 코스타에 가면 항상 많은 도전을 받기 때문에 내년에도 가고 싶습니다.

서혜진: 저도 개인적인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에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코스타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돕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코스타 참석 때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계신 분들 보는 도움이 되고, 그게 코스타에서 받는 은혜의 많은 부분인 같습니다. 도전이 많이 되기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권오승] KOSTA/USA-2008 연차 수양회를 기대하며

KOSTA/USA-2008 연차 수양회를 기대하며

 

권오승

 

그렇다면,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초월해서
영원을 갈망하며 살고
, 한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비복음적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그 길을 찾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해답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거시적 관점에서의
헌신은 옛날 얘기
?

 

한 달 남짓 전에 미국 서부의 어느 지역에 사는 한 동역자가 직장일로 필자가 있는 동네를
찾았다
. 함께 식사를 나누고 저녁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요즘 젊은 학생 세대에게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 서정적인 신앙만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의 추세 속에서 신앙도, 헌신도 모두 개인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함께 그러한 현실에 깊이 동의하며
안타까워했다
.

 

그 저녁의 대화 이후 필자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이제 그러한 세대는 지나갔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대는 함께 부를 노래도, 함께 외칠 구호도, 함께
흔들 깃발도 잃어버린 그런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인가
. 그리고 이제는 다시 이 세대를 움직일 그 무엇은 개인적,
서정적 신앙 이외에 대안이 없는가.

 

미래의 꿈은 정규직?

 

얼마 전 본 한국의 어느 TV 드라마에서 본,
대학을 가기 싫어하는 어떤 고등학생과 그 학생에게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부모의 대화가 생각난다.
학생이 대학을 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모는 대학을 가서 네 꿈을 펼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느닷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취업 준비생으로 있는, 옆에
있던 삼촌에게 미래의 원대한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그러자 그 취업 준비생 삼촌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자신의 꿈은
정규직이라고 답했다. 그 고등학생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더러 대학졸업 후 장래 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

 

대화를 더 극적으로 그리고자 과장을 사용했다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캠퍼스와 지역교회에서 만나는 학생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꿈도 이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직장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 하는 것.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꿈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결국은 그 꿈이 정규직인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일
,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일들은 따지고 보면 장래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약간 세련된
표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물론 정규직이 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얻고자 하느냐, 그것을 얻고자 하는 뒤에 숨어
있는 동인
(motivation)과 세계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잃어버릴 수 없는 꿈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대가 정말 되었다고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럼 이제는 그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언급하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 하나님과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을 서정적, 개인적 영역에만 제한시킨 채 그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만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 절대 그럴 수 없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자 했을 때 처음 이야기했던 것
,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선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 아닌가
. 그 핵심가치를 위해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헌신, 희생하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붙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삶과 신앙의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에게서, 바로 그들의 삶 전체를 꿰뚫어 통합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을 여전히 볼 수 있지 않은가. 20세기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인생을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있지 않은가
. 하나님 나라는,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우리 모두의 궁극적 꿈이자 희망이 아닌가
. 문제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나라와 같은 핵심 가치가 더는 이야기되지 않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대해 본다
.

 

첫째,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통합하여 살아갈
가치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음을 깊이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 우리가 이미 가진 삶의 길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심하게 비뚤어져 있는가 하는 내용을 보며 함께 애통해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

 

둘째,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길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한다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 안의 거짓되고 어그러진 가치관들이
상대적으로 더 초라하게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된 궁극적 삶의 가치들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목마름이 우리 안에 생길 것이다
.

 

셋째,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되는 삶의 길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 아직 그 가치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궁극적 삶의 길을 내 것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 이미 그 가치를 알고 있으나 삶 속에서 통합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새롭게 정리하고 결단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 유일한 삶의 바른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변화가 있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서 유일한 삶의 바른길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들에 많은 이들이 함께 헌신하기 원한다
. 세상이 그토록 목말라
보고 싶어 하는 올바른 삶의 길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고
, 이제 우리에게 함께 부를 노래가,
함께 외칠 구호가, 함께 흔들 깃발이 있음을 선언하기를 원한다.

 

KOSTA/USA-2008 집회를 통해 큰 감동을 하고, 집회가 성황리에 마쳐지는 것은 분명히 이 집회를 준비하고 참석하는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집회를 통해 부어주실 큰 은혜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 KOSTA/USA-2008 집회 이후 하나님께서 미국
내 한인 청년 학생 디아스포라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 그로 말미암아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선포되고 확장될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흥분시킨다
.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허락하시며, 그 길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좌담회 –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적용” – 김동록, 윤여재, 최인석

eKOSTA: 이렇게 좌담회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히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저는 김동록입니다. 코스타와 관계를 맺게 된 지는 약 6년째인데 코스타에서 서북미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씨애틀 근교에 살면서 조그만한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윤여재: 안녕하세요. 저는 윤여재라고 합니다. 코스타는 2003년에서부터 참석하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튼, 오하이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인석: 안녕하세요, 저는 최인석 입니다. 코스타는 2006년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동부 DC부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반갑습니다.


eKOSTA: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본인이나 혹은 함께 교제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보통 어떤 모습으로 연결하시나요?


윤여재: 지난 성경공부의 도입부분에서 세가지 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첫째 하늘은 우리가 땅의 딛고 있는 이 세상이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치 첫째 하늘과 셋째 하늘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곳처럼 묘사하면서, 물론 교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물리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마치 먼 하늘나라 저 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 또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눈과 귀로 쉽게 접하게 되는 세상의 삶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땅이 아니라 통치권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통치권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적인 영역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내 하루 생활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QT), 기도, 또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내가  결정해야할 것들 등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실때, 이런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나라”라는 말 자체가 집단이라는 성격이 들어가 있는 단어이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통치권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보다는 “통치하시는 집단적 영역”이라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을때 같은 그룹에서 당황해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기자기한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있었구요.


최인석: 저는 요즘에 마태복음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에 초점을 맞추는 세미나가 여러번 있어서 대부분 현재적 의미의 천국도 많이 고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제가 변화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에서의 충만함, 그리고 왠지모를 자유감 등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천국의 속성 혹은 맛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통해 천국에 대한 모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되고 또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고 자주 나눕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확장되어 나갈 천국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eKOSTA: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는 숨겨져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즉 하나님 나라의 은닉성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생각나시는 비유라든지, 혹은 성경 내용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더 와 닿았던 내용이 있으신가요?


윤여재: 오늘 아침 저의 큐티 본문이 요한복음 18장 후반부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끌여오게 되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저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의 한 면을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즉 하나님의 뜻, 계획하심 아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내가 왕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말씀에서 저는 다시 한번 내가 섬기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김동록: 비유는 아니지만, 최근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광야에서 사단이 돌더러 떡이 되게하라고 유혹한 그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니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해 기대되는 정치적 인기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시더군요. 이로 인해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 버렸다고 나오고요. 또 이 일 이후로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로 향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사회경제적 정치적 성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이시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인생의 방향성이 다시한번 크게 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실패한 듯 보이는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중심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심으로 인해 그분이 그렇게 원하고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또 하나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만드신 제자공동체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임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실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최인석: 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보물이 숨겨진 밭에 대한 비유가 와 닿았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귀함을 알 수 없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eKOSTA: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지만, 또한 숨겨져 있다는 이러한 속성이 본인의 삶의 방식이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시나요? 예가 있으시면 함께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성경에서는 권속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도전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저와 제 주위에 있고 임하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격려를 주고받으며, 함께 영원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중요한 것 같고 교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공동체와 교회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때론 상처를 받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재적 삶 속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저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김동록: 제가 언급한 현재적 소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강의를 하고 나서도 너무 현재적인 면만 강조를 했나 싶은 의아심과 함께 신앙의 열린 미래성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히브리서를 공부하다가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고, 또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관점은 저 자신의 궁금점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라는 의미도 깨닫고 나니 더욱 심각해지더군요. 제자들의 공동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미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최인석: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때문에 전도를 할 때에 천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때론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곤 해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eKOSTA: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 나라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시고 비밀스럽게, 다른 표현으로는 신비롭게 (mysteriously)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그 의도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여재: 원죄 이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예수 이전에는 아주 제한되었고, 예수님이 오심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임하고 있으며 오실 하나님 나라의 연속성을 나타내지만, 그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그렇고 밭에 숨겨진 보물이 그러한 예인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어느 한 두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하나님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실 경우 오히려 명문화된 하나님 나라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기보다는 제한해 버리고, 또한 사람들이 율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최인석: 김동록 멘토님과 윤여재 형제님께서 잘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식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도 이유가 될 것 같구요. 또한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그 속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청중에게 익숙한 삶의 특정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직관력과 연결시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고수의 방법 아닌가 합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이미 임하였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조금 옮겨가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 특히 산상수훈과 같은 가르침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윤리가 발견되는데요. 그런 가르침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요?


윤여재: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 하나 따라가기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것에 따라 가려고 하면 때론 억울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즉, 내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속옷까지 주라, 십리까지 가라,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을 절단해 버리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말씀이 절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고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심령이 가난하게 될 것이고 박해를 받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이 복있다고 말씀하시며 천국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청량제와 같이 제 마음을 확 씻겨 내립니다.


김동록: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왼뺨까지 내어준다든지, 겉옷까지 준다든지, 원수를 용서한다든지) 실천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혼자서 하기는 힘이 드는데, 같이하면 좀 나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철저한 이해와 믿음이 있을때 적용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공동체에서 같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면 성령님께서 아주 큰 능력으로 그 공동체에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인석: 이런 어려움이 있는 데에는 지금 죄가 들어오고 왜곡된 상황에서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에서의 모습이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변화를 받아서 회복되어져 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천국의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천국에 대한 경험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쳐서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또 그와 함께 내 의가 높아지고 자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체화해나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등을 통해서 또한 더 많이 변화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강조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다’ 혹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라는 표현을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이 표현을 사용하실 때 혹은 들으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시나요?


최인석: 복음이 더 많이 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천국을 알게 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들이 이 지상에서도 부분이나마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확장이 아닐까요?


윤여재: 저는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부분과 사도행전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저희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지요. “가라”, “이르러”, ‘제자를 삼고 증인이 되라’하신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눌리고 억눌린 자의 고난에 함께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구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성령 안에서 온전하게 거듭남이 있어야 겠지요.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함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깐요.


김동록: 질적 양적 팽창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질적인 변화를 통해 양적인 확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 개인의 이해가 깊어지고 삶이 깊어질 때, 즉 우리가 변화될 때, 우리 주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누룩의 비유가 그렇다고 할까요. 질적 변화가 있을 때 전염성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의 관계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현재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일텐데요. 지난해 주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와 연결시켜볼 때에, 이러한 모습은 세상의 삶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최인석: 저는 공부하는 학생이다 보니, 다른 문화와 믿음 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래 학생들과 그 동기에서 다른 부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과 다시 말해 부와 명예를 위해서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치닫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저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생각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갈수록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해야 하고, 이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여재: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기독인과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비기독인의 삶의 차이는 비기독인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야한다고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깐요. 세상이 나를 기이히 여기지 않고 잘 섞여 살아간다면 그것을 이상히 여기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의 삶이 세상과 아무런 마찰없이 잘 지낼 때에 더욱 두렵습니다.


김동록: 우리가 전공이나 직장을 정할때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순수한 학문적인 또는 인문적인 관심만으로 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위대한 학자”, 성실하고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꿈꾸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다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꿈꿀때 생각하는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허용해 주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음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려는 태도라면 성공적인 사회인을 목표로 하지는 않겠지요. 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분들도 많은데 설사 실패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믿고 나갈 소망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소위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낮은 자리로 가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eKOSTA: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의 균형이 깨어질 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나요? 혹시 생각나시는 예가 있으시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미래적으로 극단인 예인 것 같은데, 밀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다들 느끼셨겠지만, 교인들이 너무 착실하다는 것입니다. 착실하다 못해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또는 전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섬뜩한 것은 교인들과 제 모습에서 별 차이를 못느끼고 답답해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또 현재적으로의 극단이라면 마치 고지론이라고 알려져 왔던 그런 신앙의 태도가 생각이 나는군요.


윤여재: 하나님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예수님도 처음에 말씀하실 때, 천국이 가까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꼭 미래에 올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긴장감은 좋은, 유익한 긴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깨어질 때는 좀 극단적인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예를 드러,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 시대의 열심당원들과 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는 봐와 같이 이 땅에서 물리적인 무엇을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구요.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안에 기복적인 성향을 강화시키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여 그쪽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많은 들어 왔던 극단적인 이단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가 싶습니다. 즉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벗어나기 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 둘의 긴장이 중요하지 않는 가 생각합니다.


최인석: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묘사나 속성에 대한 설명 혹은 상상등이 치우쳤다고 발전시키신 형제님들의 말씀에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처음 입교식을 할 때였습니다. 전도사님께 솔직히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전도사님께서는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천국은 너~~~무 좋은 곳이예요”라는 말씀만 반복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의미로서의 천국보다 다가올 천국에 대한 것만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렇게 공감하기 힘든 천국의 이미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KOSTA: 2008년 코스타의 주제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를 통해 기대하시는 바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코스타 주제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이 시대, 이 세대의 가치관을 휘어잡고 있는 물질주의적, 자기 중심적, 이기적 세계관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화평의 세계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푯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원하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코스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이, 사도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김동록: 2007년도 주제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였었는데, 어느정도 부정에 의한 진리찾기라면, 올해는 더 발전해서, 이 시대에 가야할 진리의 길이 저희들에게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주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개념이 참석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서 좋은 신앙갖기를 넘어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인석: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코스타의 주제문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작년에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라는 주제로 이 세대의 가치과 세계관 등과 성경적인 가치와 세계관에 대한 구분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과 생각등을 남겼다면, 올해는 그렇다면 “바른 길”은 무엇인지 조금더 나아간 적용을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08년 코스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코스타 주제 – 이 시대에 바른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시대에 바른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10, 개역개정판)


이 세대는 세계화, 포스트 모더니즘, 뉴에이지 등의 영향 아래서 절대적인 기준점을 잃어버린 채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극단적으로 상대화시킨 이 세상은 개인의 욕망을 무한대로 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였지만, 우리는 오히려 불안과 욕망의 노예로 우리 자신들을 전락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신주의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집결시켜 마치 바벨탑을 쌓았던 시대처럼 모든 사람들을 그 영향 아래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이제 돈과 물질은 삶의 안정을 약속하는 신앙이 되어버렸다. 돈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여져서 그 자체가 선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은 쉽게 정당화되었다. 조국의 현실도, 디아스포라의 삶의 현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육은 안정된 직장을 갖으려는 방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피교육자의 인격도, 인간, 사회, 자연, 역사에 대한 책임도, 서로 함께 살아가는 삶도, 그에 따른 삶의 의미도, 또한 영원한 것에 대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돈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로운 삶을 쟁취하고 지키는 것이 ‘그 길(The Way to Live)’이 되어버렸다. 성공과 생존을 위한 모든 노력이 정당화되고 칭송되었고, 현실을 극복해내는 이상과 물질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숭고한 가치,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조롱거리가 되어 버리고 있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고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참된 길을 가지 못하는 세대가 지금 이 세대가 아닐까?


이러한 세속화와는 반대로, 이원론(dualism)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기독교를 생명력을 잃어버린 종교로 변질시켜 버리는 일들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종교활동을 제외한 세상 속에서의 모든 활동을 ‘속된 것’으로 규정하며 세상과 분리된 종교활동을 더 고상한 것으로 여기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명을 망각하며 사는 모습은 우리 안에 발견되는 또 다른 극단의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을 따라 이러한 이원론적인 삶을 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현실의 도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러한 삶의 자세를 이용하기도 한다. 경건함과 거룩함을 내세우며 종교생활에 매달리지만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그 길’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에 실패하고 그저 격리와 회피의 삶을 사는 비복음적 삶의 자세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로부터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세대는 목말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세대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면 갈수록 진정한 ‘그 길’을 갈망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세계적인 추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영혼 내부의 외침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현실은 목말라 하는 이 세대가 자신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그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를 기대했던 기독교로부터 받은 ‘배신감’의 표현이다. 목마른 이 세대의 갈증을 채워주기에 대부분 기독교인은 너무나 무기력해 보인다. 이원론적 사고에 빠져 현실을 등지고 예배당 안에서 자신들만의 천국을 구축하느라 바쁜 나머지 예배당 밖에서의 능력을 상실했거나, 세상의 모습을 본받아 신앙을 정서적인 영역에만 제한시킨 채 성공과 정복의 이념으로 삶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세속화와 이원론, 이 두 가지 극단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서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보다 더 효과적으로 세상의 길을 추구하는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돌을 던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초월해서 영원을 갈망하며 살고, 한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복음적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그 길’을 찾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해답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보여 주시고 또 ‘그 길’을 살아내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삶이었다. 그 안에서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통합이 있었고 그의 삶에는 이 세상과 앞으로 올 세상의 통합이 있었다. 오직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었다. ‘하나님 나라 (Kingdom of God)’는 생명 없이 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새로움 패러다임이었다. 세속화나 세상과의 분리가 아닌, 초월적 가치와 치열한 삶을 통합시키는 가치였다. 예수의 삶은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또 그런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다.


우리는 KOSTA 2008을 통하여 바르게 삶을 살아갈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음을 선언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삶,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이 아니고는 ‘그 길’을 추구할 기초가 우리에게 없음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성령의 일하심으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그 성령의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함을 보게 되기를 원한다. 또한, 소망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이 땅에 살면서도 영원을 추구하고, 초월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 땅의 삶에 충실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가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그리고 세상이 목말라 하는 ‘그 길’임을 깨닫기 원한다. 이 세상과 대적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는 눈이 열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자 이 세상을 거슬러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들로 말미암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그 길’이 전해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허락하시며, ‘그 길’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김진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해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표현이지만, 막상 하나님 나라 대하여 설명하고자 하면 그다지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하나님 나라라는 짧은 표현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너무 커서, 오히려 짧은 글로써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도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eKOSTA에서 앞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게 하나님 나라 내용 기초라고 있는 부분을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원과 개념

하나님 나라는 신약성경에서 100 이상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념을 알지 못하고는 복음서를 이해할 없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다른 유대교 문학에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 예수께서 제시한 개념은 당시의 선지자나 교사들이 강조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었던 같습니다.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의 다른 책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가 비교적 적게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그들의 가르침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는 Βασιλεία το Θεο – Basileia tou Theou 입니다. 중에서 나라에 해당하는 Basileia라는 단어는 당시 유대인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있었을까요? 많은 성경학자는 단어가 영역, 영토와 같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치, 왕권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도 비슷합니다. 바실레이아의 어원인 히브리어 단어 말쿠트 (malkuth) 구약성경에서 200 이상 등장하는데, 역시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왕과 관련하여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통치권, 왕권, 지배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예수의 가르침의 일차적 대상이었던 유대인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왕권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 특히 한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죽음 이후에 가게 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마 그것은 마태복음에서 하나님 나라가 하늘 나라로 완곡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어에서 나라라는 단어가 주는 영역적 개념이 하늘이라는 공간과 결합되어서 원어와는 다른 개념이 형성된 같습니다. 하지만 마태가 하늘 나라라는 표현을 선호했던 이유는 마태복음의 주된 독자층이었던 유대인이 하나님을 직접 호칭하는 것을 꺼리고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던 데에 있습니다. 하늘 나라라는 표현으로써 마태가 하나님 나라를 의도했다는 사실은 공관복음서를 대조해 보면 쉽게 있습니다. (아래에 예를 하나 첨부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에 공간적인 개념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통치 혹은 왕권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9:14 –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늘 나라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마가복음 10:14 –그러나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누가복음 18:16 –그러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 이런 사람의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그리고 긴장관계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를 미래에 가게 공간적 개념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사실은 조금 전에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오해가 빚어진 또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실제로 미래적인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적잖은 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겨자씨 비유 ( 13:31-33) 에서는 미래에 더욱 강력하게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추수 관련 비유 ( 13:24-30, 36-43) 에서는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벌어질 심판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비슷하게 처녀의 비유 ( 25:1-13) 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날이 미래의 알지 못하는 시점임을 보여주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미래의 때를 준비하는 삶이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미래적인 개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땅에 첫번째로 오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현재적인 개념 역시 존재합니다. 예수 자신의 가르침 다수가 이러한 개념을 직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 17:20, 12:28). 또한 현재 과거 시제로 각각 표현된 보화와 진주의 비유 ( 13:44-46)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얻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잔치 비유 ( 14:15-24) 잔치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펼쳐졌음을 암시합니다. 예수께서 펼치신 기적 역시도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탄의 통치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선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때로는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많은 신학자들이 가지 중에 하나만을 인정하였습니다. Albert Schweitzer, Johannes Weiss, Rudolph Bultmann, Norman Perrin 등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비록 매우 임박했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미래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주장하였고, 반대로 C. H. Dodd 등의 신학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 가운데에서 완전히 드러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가지의 개념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통합될 있다는 견해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문구로서 가지의 긴장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진영에는 Joachim Jeremias, Oscar Cullmann, H. N. Ridderbos, G. E. Ladd 등의 학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Cullmann 경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예로 들면서, 예수의 초림을 D-Day, 재림을 V-Day 비유합니다. 예수의 초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그러했듯이 결과적으로 이미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온 사건이고, 예수의 재림은 전쟁을 비로소 결정짓는 종전 선포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도래하는 사건이라고 비교적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예수의 초림이 승리 자체가 아닌 가능성 정도로 남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이유로 Ridderbos Ladd 같은 학자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관계가 아주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고 역동적으로 발견되어야 함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관계는 가지를 이원론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한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는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지 성격을 돌아보고 관계를 묵상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같습니다. 이유는 우리 각자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견해가 결국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삶의 터전 가운데 임하게 하는 삶을 것인지,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사이의 조화를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질문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비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가지는 하나님 나라가 직접적으로 정의된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관념적이거나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상의 단어와 현상을 이용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이해할 있도록 선포되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대부분은 비유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전체의 ¼ 정도가 비유였고, 마태복음 안에 무려 50개가 넘는 비유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의도를 따라서 비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있습니다. 실제로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앞으로 쓰여질 또다른 글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다만 가지 질문을 던진다면, 예수는 논리적인 접근이 아닌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신 것일까요? 아마도  예수께서는 특정한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복음 13:10-17 –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가진 사람은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한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귀는 듣지 못하고, 눈은 감겼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그들이 다시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말씀을 통하여 보면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으며, 반대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만은 공개되어 있음을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은닉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밀이 공개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음 단락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어보도록 합시다.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

예수 그의 제자들의 사역의 일차적인 대상은 유대인이었던 같습니다. 10:5-6에는 열두 제자를 파송하면서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팽배해 있던 유대인의 분파주의적 운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차별없이 부르고 있으시다는 사실입니다. 산상수훈의 도입부를 형성하는 4:23-25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다른 운동과는 달리 지역적 차별 없이 모든 유대인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초청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사역대상이 이스라엘만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에는 이방인을 향한 사역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 28:19, 8:10-12), 또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결국 예수의 가르침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대한 특권을 스스로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자기를 거부하는 유대인 대신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부르시는데, 백성들은 열두 제자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가 너무나 은혜임을 깨닫고, 자기의 소유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두 제자가 특별히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두 지파로 구성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초가 열두 지파였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기초는 열두 제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 명이었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18-19 –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반석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