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설교 듣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던 대학시절, 주일날 설교 직전에 예배당에 들어가서 축도 끝나기 전에 살짝 도망쳐 나오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면서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예배의 다른 순서들은 설교를 위한 장식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는 목적은 설교 들으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설교만 놓치지 않으면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옛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옵니다.


설교가 예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의 결과입니다. 로마 카톨릭 예배에서는 예식과 성례가 예배의 전부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도들이 말씀에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말씀에 관한 성도들의 무지를 깨려다보니 말씀 선포가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교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설교와 더불어 기도, 찬송, 찬양, 헌금 등이 다 중요합니다. 설교만이 아니라 모든 순서가 다 예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외의 다른 순서들은 설교에서 은혜를 받기 위한 준비나 액세서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에는 예배 순서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담아야합니다. 찬송할 때에는 진심으로 해야하고, 기도할 때에는 믿음으로 해야하며, 헌금할 때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해야합니다.


저는 주일 새벽이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광고를 포함한 예배 순서 하나 하나를 꼽아가며 기도합니다. 예배 순서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임재하심이 같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는 약 50명의 기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배 10-20분전에 본당에 나와서 예배 순서를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예배가 은혜롭다고 평가해 주십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받기 원하면 교회당에 일찍 나와서 마음 준비를 하고 임해야합니다. 이때에 예배 순서를 꼽아가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기도가 예배를 은혜롭게 만들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이 예배에 은혜를 받게 만들어줍니다.



[최영기] 성경책을 선물할 때

안 믿는 분들에게 성경책을 사서 선물하는 것이 좋은 전도 방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선물할 때에는 어떤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지 설명해 주어야합니다. 설명이 없으면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선물 받고 질려서 서가에 처박아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물 준 분의 성의를 생각하여 읽기 시작하는 분이 있다 할지라도 끝내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책을 읽듯이 성경 맨 앞에 실려있는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면 신앙적인 해답이 얻어지기보다는 의문이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창세기를 끝낸다 할지라도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달하면 낯선 용어, 낯선 풍습과 규례들에 질려서 더 이상 읽는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선물할 때에 구약부터 말고 신약부터 읽으라고 권합니다. 신약도 마태복음부터 말고 요한복음부터 읽으시라고 권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시작하면 책을 펼치자마자 예수님의 족보가 등장하기 때문에 질려서 읽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먼저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주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요한복음을 끝내면 그 다음에 나오는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사도행전에는 120명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리가 아니라 사건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안 믿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끝내면 다음에 나오는 로마서를 읽을 것을 권합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여기까지 끝내고 나서 성경을 더 읽기를 원하면 예수님에 관하여 좀 더 알 수 있도록 누가복음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끝나면 로마서 다음에 나오는 편지서들을 요한 계시록 전까지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신약의 나머지 부분을 두 세 번 읽은 후에 읽으라고 권합니다. 이처럼 신약을 두세 번 읽으신 후에 비로소 구약에 도전할 것을 권합니다.


성경은 현대말로 번역된 표준 새번역 판을 선물합니다. 개역 성경은 연속 사극에서조차도 등장하지 않는 옛날 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 성경책을 열어보고는 질려서 읽을 엄두조차 못 낼테니 말입니다.

[최영기] 영적인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부자들이 들으면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부자들을 보면 측은함을 느낍니다. 신앙적인 핸디캡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부는 핸디캡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믿음이 생기기가 힘이 듭니다. 자신만만하기 때문에 비록 대상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의지한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또 돈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은 하고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복음 19장 24절)”


부자 가운데에서도 부모님이나 아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부를 축적하거나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엄청난 정신력을 쏟아야합니다. 영적인 일에 신경을 쓸만한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힘이 듭니다. 주일 설교를 듣는 목적도 대부분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쉬고 마음의 평안을 찾자는 것이지 설교를 듣고 삶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이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태 19:26). 구원받은 부자는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의 산물입니다.


신체적인 핸디캡을 가진 장애자들 가운데에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되는 노력을 쏟아야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부자는 “부”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신앙 성장을 위하여 보통 사람보다 몇 배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새벽 예배를 빠지지 않는다든지 정직한 십일조를 해서 자신을 채찍질 해야합니다.


신앙 생활의 핸디캡은 물질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지식도 핸디캡이 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서 누구의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eKOSTA 독자들 가운데에는 아마 물질적인 핸디캡보다는 지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가 순종과 섬김입니다. 신앙 선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성경에 분명히 어긋나지 않는 한 반론을 제기하는 대신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 후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말로 가르치려는 대신에 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순종과 섬김이 예수님을 닮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순종과 섬김이 예수님 삶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입니다(빌 2:5-8; 마 20:28).



[최영기] 대형 교회는 믿는 이의 유입을 막아야 합니다

저희 교회 주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미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계신 방문자들은 약한 교회에 가서 돕고 섬기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미 믿고있는 사람들의 수평 이동에 의하여 교인 숫자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10년 전 제가 휴스턴 서울 침례 교회에 담임 목사로 부임할 때부터 타 교인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면 자기 교회로 돌아가거나 다른 교회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소속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하여 그 교회 교인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음을 알렸습니다. (전화 받은 목사님들이 고마워하기보다는 불쾌해 하셔서 요즈음은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타 교회 교인들은 아예 안 받습니다. 타지에서 이주오신 분이라도 믿음이 있는 분 같으면 구두로 한번, 서면으로 한번, 다른 교회를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은 교회에 대한 배려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최하는 가정 교회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의 대부분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 중에서 대형 교회로 인한 설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껏 전도해 놓으니까 대형 교회에서 버스로 데려갔다든지, 교회 문패를 붙여놓았는데도 전도사가 굳이 찾아와서 자기 교회에 등록시켰다는 등 개척하는 목회자들 가슴에 못을 박는 에피소드를 흔히 듣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에 도움이 되어야지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회 배경이 있는 분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기독교 배경이 전혀 없는 분들을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1-2년 정성을 들여야합니다. 그래서 급속한 교회 성장을 꿈꾸는 목회자들이 불신자 전도보다는 믿는 분들을 모아들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안 됩니다. 큰 교회는 좋은 프로그램도 있고 인적 자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을 사용하여서 불신자를 교회에 오도록 하여서 예수를 믿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교인들을 작은 교회에 파송 해 주어야지 작은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 와서는 안 됩니다. 작은 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불만족스럽거나 분규가 생기면 시설이 좋고 프로그램이 많아서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대형 교회로 몰려듭니다. 대형 교회는 ‘오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말리느냐’ 식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믿는 이들의 유입을 막아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타 교회 교인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이제는 소문이 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책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싸매고 등록하는 타 교인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의 시책을 알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올 엄두를 못 냅니다.



타 교회 교인들의 유입을 막고 불신자 전도에 집중할 때에 하나님께서 두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영혼 구원의 열매가 있게 해주셨습니다. 작년에 저희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분의 숫자가 한어 장년부만 163명입니다. 매주일 3명 꼴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영어부와 중고등부 숫자까지 합치면 220명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2000년도 인구 조사에서 휴스턴의 한인 인구가 1만 3백 41명으로 집계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숫자는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현재 어린이까지 합친 전 교인 주일 출석수는 1,400-1,500인데 대부분이 새로 믿은 분들입니다.)



둘째는 교회 생활이 행복하다는 고백이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보통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의 교회 관이 있기 때문에 의견도 많고 불만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로 믿는 분들은 우리 교회밖에 모르기 때문에 잘 순종하고 따라 줍니다. 그러니까 본인도 행복하고 교회도 밝습니다.



꼭 작은 교회를 배려해서만이 아니라 밝은 교회, 행복한 교회를 만들기 원한다면 중대형 교회들은 믿는 이들의 유입을 막고 불신자 전도에 집중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최영기] 2세를 살립시다

이민 교회가 이민 2세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이민 역사가 긴 중국과 일본의 예를 볼 때에 지금 관심을 쏟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뻔합니다.
후대들을 신앙적으로 다 잃습니다. 중국과 일본 교회를 보면 2세들이 1세들의 신앙을 전승하지 못해서 1세 교회가 노인들만 남는
쇠락한 교회로 전락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부모님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2세들이 1세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해를 한다 해도 기초적인 용어나 알기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미국 교회를 나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2세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니까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교회에서는 이들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민 2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이들이 더 잘 이해하는 언어가 통용되는 교회를, “내 교회다”라는 소유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많은 한국교회들이 2세 목회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지 아니하고 부모들의 순
한국적인 문화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인하여 “나의 교회”라는 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약 6년 전에 2세들을 위하여 성인
영어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재정적으로는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금전적으로는 100 퍼센트 지원을 하되 완전 자치권을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교회 헌법도 바꾸어서 영어부가 한어부에 종속되어있지 않고 대등한 위치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침례교회라는 우산 하에
한어부와 영어부가 존재하여 둘 중에서 주일 출석 인원과 예산이 더 많은 쪽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한어부가 크니까 제가 서울침례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러나 한인 이민 숫자가 줄어들어 한어부가 성장을 멈추고 2세 교회가 1세
교회보다 더 커진다면 영어부 목사님이 담임목사가 될 것입니다.

영어부는 처음부터 다민족 교회로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도 인구 조사에서 한인이 1만 341명으로 집계된 휴스턴에서 전도 대상자를 한인 2세로 제한한다면 전도를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재 영어부원의 30퍼센트가 백인을 포함한 타민족이고 교회 리더십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영어부가 한어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영어부 주일 출석 인원이 현재 약 250명입니다. 한어부와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협력하는 체제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 학교에서는 한어부가 영어부 자녀들을 돌보아주고 있고, 중고등부
주일학교에서는 영어부가 한어부 자녀들을 지도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고려해 볼만한 모델입니다.

[최영기] 공개하여 마귀를 물리치자

행복한 교회생활


공개하여 마귀를 물리치자


한인 교회에 분열이 잦습니다. 분열로 인한 상처로 교회를 외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 분열의 원인을 사람에게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지도자간의 갈등을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악한 영의 역사 때문에 교회가 분열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고 말했습니다(엡 6:12).


마귀의 주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악령은 거짓말을 통하여 교인들의 마음에 목회자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만들고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에 쐐기를 박습니다.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 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음성적으로, 속삭임으로, 어두움 가운데에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령의 궤계를 깨기 위하여서는 노출시켜야 합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진리와 사실이 밝혀질 때에 거짓말은 힘을 잃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려면 공개해야 합니다. 중독증의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중독증이 깊어지면 악령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중독의 사실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남부끄럽다고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악령이 점점 더 역사하여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숨기기 말고 공개하여 악령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후에 주위 분들의 기도와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악령이 거짓말로 인하여 오해가 생겨서 관계가 깨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피하거나,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악령이 역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저는 담임 목사로서 가능하면 투명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코너라는 칼럼을 매주일 주보에 실어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성도님들에게 노출시킵니다. 설교 시에도 제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교회예산도 누구나 원하면 열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담임 목사의 목회 방침에 의문이 있을 때에는 직접 물을 수 있는 통로도 열어놓고 있습니다. 공개된 곳에 악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