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코스타 주제 – 복음, 민족, 땅끝

복음, 민족, 땅끝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이사야 60:1~3, 개역개정)

KOSTA/USA가 시작된 지 어언 25년이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 KOSTA/USA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돌이켜보면, 그 안에 있었던 소중한 만남과 추억, 그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에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무엇보다 KOSTA/USA를 이끌어왔던 ‘복음, 민족, 땅끝’이라는 모토가 한국 복음주의권에 시대적인 영향력을 끼쳤음을 감사드린다.

복음, 민족, 땅끝(삶과 신앙의 통합)은 지난 25년 전 KOSTA를 시작할 때부터 KOSTA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가치(core value)였다. KOSTA/USA가 시작되었던 1986년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당시 KOSTAN들은 유학생으로서 고된 삶 가운데 있었고, 암울했던 조국의 상황을 그저 멀리 타국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들은 “1980년대를 사는 한국인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복음이 진정으로 한국 민족에게 소망이 되고, 그 소망을 세상에 선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엄숙한 소명이었다. 복음이 삶으로부터 괴리되고 신앙이 종교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당시 기독교 현실의 이원론적인 폐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KOSTA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KOSTAN들은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단했다. 이런 고민과 결단은 지난 25년간 KOSTA/USA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복음, 민족, 땅끝’은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일까? 처음 KOSTA를 시작했던 선배들의 치열한 고민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우리는 올해 KOSTA/USA를 통해 ‘복음, 민족, 땅끝’의 주제가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먼저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25년 전 복음이 우리 선배 KOSTAN들에게 소망이었듯, 여전히 복음이 우리의 소망임은 분명하다. 복음은 창조주의 선한 창조의지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인간성이 회복될 길이 마침내 열렸다는 선포이자, 끊을 수 없는 죄의 악순환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얻었음을 알리는 선포이다. 하지만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적인 구원에 국한되지는 않으며, 자연, 사회, 문화, 학문 등 피조세계 전체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우주적 선포인 동시에, 어그러진 이 세상에 빛의 역할을 하게 될 새로운 언약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예수께서 세우셨다는 공동체적 선포이기도 하다. 즉, 복음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궁극적 목표이자, 민족과 땅끝의 기초가 되는 포괄적인 가치인 것이다.

민족이라는 가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음을 믿는다. 특별히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 가난과 독재 등의 고난 속에서 우리를 전세계에 디아스포라로 흩으신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다만 25년 전 우리 선배들은 한국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조국을 섬기는 일을 통해 발현시켰다면, 이제 우리는 자민족중심주의나 국가주의와 같은 폐쇄성에 빠지지 않고, 타국에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우리에게 부여된 탤런트와 성품을 사용해 우리 조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 유익을 끼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폐쇄적이거나 이기적이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섬김’의 정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땅끝이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민족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복음의 복(blessing)을 전 세계의 모든 이들과 나눌 것을 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땅끝은 선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가치이다. 그러나 땅끝의 의미는 단지 선교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복음은 언제나 우리가 정해놓은 경계(boundary)를 넘도록 요청한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편안한 종교행위로 신앙생활의 전부를 채우고자 하는 우리에게, 복음은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야기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적 영역에서만 우리의 주(Lord)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가정, 사회, 문화, 인간관계, 직장 등 삶의 전 영역(sphere)에서도 역시 우리의 주로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5년 전 우리 선배들의 통찰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적용된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세속화 및 혼합주의(syncretism)의 도전 또한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명목으로 세상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자칫 세속화나 혼합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삶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이원론 및 혼합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피조세계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선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2010년, KOSTA/USA 25주년을 맞는 이때에 우리는 복음, 민족, 땅끝의 세 단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또한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도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복음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 민족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이 어떤 것인지, 선교적인 의미로서의 땅끝의 가치, 또한 피조세계 각 영역의 복음으로서의 땅끝의 가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뒤틀려진 이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유대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과의 언약으로 하나님이 여전히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심과 궁극적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신실하심을 표현하셨으며, 그 언약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어그러진 세상 가운데 빛으로 부름받은 새로운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코스타 follow-up 성경 공부를 마치며

2009 코스타 follow-up 으로 진행된 하시용 목사님의 귀납적 성경 연구에 참여하신 방혜지 자매님의 간증문입니다.

귀납적 성경연구 온라인
follow-up을 한 주 남기고 있다.

이번 주일까지 마지막 
숙제를 하면 끝. 지금이 최고로 바쁠 때여서
끝나면 홀가분 하고 여유가 생기겠지 하면서도, 매주
열정에 넘치고 우리를 다독이고 격려하기에 여념이
없으신 목사님 메일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이번에 처음 간 
코스타. 처음인데도 조장으로 섬기면 더 큰 은혜를 받는다는
말에 머뭇거림 없이 조장으로 신청했다. 우리 조는
서로가 마음이 잘 맞고, 모두가 다 배려심이 깊어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많이 친해졌다. 우리 조가 코스타
기간 중 가장 포커스를 많이 둔 것은,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오후에 진행되는 선택 강의 중 연애
관련 강의는 최소한 하나씩은 들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에 관심이 많은 우리 형제, 자매님들은 
연애 강의를 어찌나 재밌게 듣고 왔는지,
식사 때 줄을 서면서, 식사하면서, 강의 때 들은 내용을
다 그대로 재현해주었다. 어찌 들으면 유치할 수 있는
남녀 관련 유머에 우리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목요일에
강의를 듣기로 되어 있는 나는 그때를 기다렸다.   
 

화요일 점심에 우리는 
식당 앞에서 우연찮게 하시용 목사님을 발견하고는,
목요일 자유 시간으로 초대 약속을 잡았다. 목요일에
뵌 목사님은 따뜻하고, 인자하고, 부담이 없어 보이시는 첫
인상이셨고, 이번 코스타 주제 특강에 대해서, 그리고
목사님께서 강의하시는 귀납적 성경공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주셨다. 성경과 청년들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많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과의 만남 시간이 
끝나가면서, 목사님은 수업 준비하러 가야 
된다고 하셨고, 나는 그 때, 그 중요하고도 중요한,
코스타 오기 전부터 많은 사람으로부터 듣고 제일 우선
순위에 두고 신청했던, 00 목사님의 연애특강 수업을
포기하고, 이름 조차도 절대 확 구미가 당기지 않는
귀납적 성경연구 강의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 들은
우리 조 형제님과 비가 많이 내리는 교정을 지나 수업이
있는 빌리그레함 빌딩으로 향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목사님의
강의를 듣는데, 이전엔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었던
귀한 비밀을 발견한 듯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마음이
꽉 찼다. 코스타 이후 3개월 과정으로 온라인으로 강의해주시고,
과제도 첨삭해주신다는 말을 듣고는, 실전으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여기서 그 기대되고
흥분되는 마음을 설명하기는 힘든 것 같다. 수업 내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탄과 놀라움이 계속 되었다.
아마도 내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갈망이, 내가 모르는 갈급함이 있었는데, 성령님이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이 곳으로 나를 이끄신 것 같다.
 
 

코스타 끝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목사님의 반가운 첫 번째 메일이
왔다.

무언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시작단계에 있다는 사실에, 백미터
달리기 하기 전의 그 떨리고 설레임 같은 마음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고 과제 내고 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매주 열정과 열심을 다해서 보내주시는
강의 내용들과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다독이는 격려와
칭찬 메일, 그리고 간사님들의 과제에 달아주시는 칭찬이
가득 섞인 코멘트들을 생각하면, 내가 일주일에 한번
내는 과제는, 우리를 하나님 말씀연구로 어떻게든 잘
이끄시려는 목사님과 간사님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귀납적 성경연구는 
크게 말씀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3단계로 나뉘는데, 이 단계를 더 자세히
세분화해서 매주 배우게 되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목사님이 정리하신 내용을
프린트해서 회사 오가는 지하철에서 읽고, 집에 일찍
오는 날이나 주말에 숙제를 해서 냈다. 10월은 실전
단계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본문 말씀으로 하여, 분석,
해석, 적용을 한다. 숙제에 보통 3시간이 소요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2단계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도 전
후 문맥 나누고, 반복된 단어, 문법적 사용, 본문 읽고
궁금한 질문들, 그 질문들 답을 찾는 과정들을 거치면,
예전에 읽고 들었던 성경구절 안에 또 다른 숨겨진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귀납적 성경연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적용에 있었다.
이성적인 접근으로 말씀을 쪼개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때까지는 나에게 어떻게 
개인적으로 적용이 될 것인가가 바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다 마치고,
조용히 내 마음 속에 있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깊숙한 것까지,
내가 몰랐던 죄들,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교회에서
리더를 하면서,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넘쳐났던
처음과는 달리, 매일매일 조원들을 놓고 기도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이전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왔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의 삶을 살지 못한 내 모습을 다시
보고, 하나님 앞에 더욱더 거룩함으로 나아가겠노라는
결단을 하게 하였다. 묵상 부분에 들어오면, 나도 예상치
모르게 보여주시는 많은 것에 매주 많이 울게 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어서 3중이 될 쌍꺼풀 걱정과 함께,
목사님과 간사님께 숙제 메일을 보내곤 한다.  
 

요즘은 뉴욕에 와서
job을 잡고 일을 한 이래로, 최고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8시가 다 되어서 회사에서
나오고, 일이 많아 토요일 오후는 회사에서 보낸다.
그래도 감사하고 일하는 것이 즐겁다. 부족한 나를
이곳에 보내주셔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기쁘게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일을 즐겨 하고 많이 좋아하는
내가 이전 회사에서 힘들 때, 하나님을 새벽에 만나지
않고서는 회사로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가 싫어서,
매일 매일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회로 향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를 이끄시고,
거기에 기쁨이 있게 해주시고, 하루를 지탱해 나갈 힘을
주셨다. 그리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셨고,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께 쓰임만 받는다면 가장
기쁘겠노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 곳,
현재 직장을 주셨다.   
 

현재에는 또 다른 기도제목이
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가 세상에 포커스가 
너무 맞춰있지 않도록, 세상 기준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구하지 않도록,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새벽기도가 그렇고, 큐티가 그렇고,
교회의 찬양팀, 그리고 지금의 귀납적 성경연구가 그렇다.

예전 같으면 몇 개는
내려놓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으면
내가 무너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지
방향성을 읽을 것 같아서다.
 

“때로는 지쳐서 비틀거리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 기도, 입술만 달짝 거린다고 자책하거나
비난하는 바로 그 간구가 사실은 연약하고, 지치고,
내면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충직한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드리는
기도” 라는 큐티의 묵상 에세이로 하나님은 또 나를
다독이신다. 예전보다 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마음의 무거움과 죄송한
마음에, 지금의 모습 또한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주
아버지의 말씀. 
 

하나님의 이끄심은 
놀랍다. 코스타 기간, 누가, 나조차도, 연애 강의를
달갑게 포기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들을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이렇게 온라인 수업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했겠는가.
앞으로 여기서 배운 성경 연구가 어떻게 나의 삶을
더 말씀으로 풍성하게 할까 그것도 기대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끄심이 내 삶에, 내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나를 이끌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고 박준석 형제의 간증문


2009 코스타에서 진솔한 간증으로 많은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박준석 형제님이 2009년 9월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박준석님의 삶을 기리며 형제님의 간증문을 싣습니다. 모든 코스탄들에게 형제의 믿음의 유산으로 남기를 바라며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코스타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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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석 형제의 간증문 


안녕하십니까? 박준석입니다. 저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Tourism Management로 석사학위를 마쳤고 같은 전공으로 텍사스 A&M에서 박사과정을 이번 가을학기부턱 시작합니다. 3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결혼생활은 이제 만 2년을 조금 넘기고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유학생활을 영위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학생 가정들이 겪는 학업과 생계의 문제를 저희 가정 또한 겪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들 또한 저희 가정만을 비켜지나쳐가지 않습니다. 누구가 똑같은 통과의례를 지나쳐가기에 제가 여러분 앞에서 저의 유학생활을 자랑스럽게 물건들을 펼쳐보이는 보따리장수처럼 펼쳐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 유학생활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저만의 독특한 경험이기에 감히 여러분앞에서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우선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여러분께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박준석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Tourism Management를 전공했다지만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을학기에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한들 그래도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겨우 2년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아닌 저를 위해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오기만을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셨는데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서있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한 때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2년 전 이맘때쯤인 것 같습니다. 2006년 가을, 인디애나 대학으로 유학을 올 때만 하더라도 저는 기독교, 혹은 신앙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꽤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중적인 가치와 행동들이 너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대형 교회들의 집회는 대형 백화점의 바겐세일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교인들을 늘리기 위해 다른 이들의 시선과 편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은 실적이 인격이라고 믿는 여느 영업사원들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주일마다 짜증나는 교통체증을 유발하면서도 주중 주차난에 허덕이는 주민들에게 텅텅 비어있는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지 않는 교회의 오만방자함도 싫었습니다. 매 주마다 교회 증축을 광고하면서 건축헌금을 들먹거리는 목사는 자신의 3억 원짜리 차는 절대 팔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교회의 병폐와 부조리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교회의 모습은 세금을 면제받는 대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점점 굳어져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것 같습니다. 제 평생에 교회 땅은 절대 밟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서 저에게는 실로 놀랍고 또한 소중한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 때 저는 그 분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저와 함께 유학길에 오른 친구 아버님의 친구분이시고 또 제가 다니게 될 학부에서 교수직을 가지시고 계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 분 댁에서 하루를 신세 질 것이라는 것이 제가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저 원님덕에 나발부는 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서 블루밍턴까지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서, 말을 건네고 받는 동안 교수님이 참 따뜻한 분인 것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교수님 댁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거실에서 잠시 쉬는 동안 교수님께서 저에게 교회에 다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지만, 저의 대답은 “저는 기독교를 증오합니다.” 였습니다. 제가 의도한 답변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머리로 생각도 하기도 전에 이미 저는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그 분이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지켜오고 계신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독교가 싫었으면 처음보는 교수님 앞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헌데, 더욱 놀랐던 것은 교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근데, 준석이는 기독교를 왜 증오하니?” 이렇게 물어보시는 그 분의 표정에는 여유로움과 인자함이 묻어나왔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미국식 teaching방법인가라는 생각도 잠깐 들기도 했지만, 이내 저는 제가 기독교에 가지고 있던 제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저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교수님의 말씀을 정리하자면, 제가 가진 생각들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한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시며, 마지막으로 제가 하나님을 영접할 것을 확신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흠….글쎄요….’ 


저는 참 고집이 셉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사람들 말은 경청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이미 저의 생각은 서있기 때문이죠. 제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제가 판단하기에 옳던가 아니면 저의 생각과 같던가 둘 중의 하나일겁니다. 물론, 교수님 말씀은 경청했습니다. 하지만,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을 통해 제가 느꼈던 것은 ‘이 분 내공이 보통은 아닌 걸’ 그리고 ‘기독교가 제가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이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이후로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교수님을 뵐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종반으로 향할 무렵 교수님과 또 다시 운명처럼 재회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짐은 혼자 짊어진 상태로 말입니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는 정말 혹독했습니다. 영어란 것이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그저 언어의 한 종류일 뿐이지만, 미국에서 영어를 언어로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 그 이상이었습니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며느리 냉가슴 앓듯,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Syllabus에서 제시된 과제를 제출하기에도 버거운데, 수업시간에 주어지는 과제는 왜 그리 많은지…..하지만, 문제는 과제의 양이 아니라, 언제 교수가 과제를 내주었는지 한 번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수업시간에 미국 친구들은 어김없이 과제를 제출했지만, 저는 혼자 멀뚱히 바닥만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저의 due date은 항상 그 다음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이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됩니다.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서 수업시간 동안 group discussion을 하고 그 날 오후 도서관에서 모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는 낮 잠을 자다 약속시간에 9분을 늦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도서관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서관을 뒤져볼까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를 놓고서 한 참을 망설이다 저는 결국 혼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도서관을 이 잡듯이라도 뒤지던가 그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을테지만, 그 때 저의 상태는 중증 영어 장애로 학교에서 장애인 퍼밋을 받기 직전이었습니다 또 그로 인한 자심감 상실 및 대인기피증(물론 미국인에 한해서 입니다만)은 점점 더 저를 위축시켰습니다. 다음날 수업시간은 발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앞의 그룹들이 발표를 다 마치고 저의 조가 발표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위에 적힌 저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조원들이 모두 앞으로 걸어나가는 동안 저는 오히려 뒤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조원으로서 기여한 바가 없으니 점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짧은 영어로 또 직설적으로 내뱉은 저의 영어는 그 할머니 교수님을 자극하기에 딱이었던 것 같습니다. 돋보기 안경을 코 끝에 걸치고 그 너머로 저를 쳐다보던 그 차가운 눈빛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저는 혼자 거울을 보고 삭발을 감행합니다. 제가 너무 바보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또 결심합니다. 영어가 될 때까지는 시리얼만 먹겠다고…… 


한 달 무렵이 지날 즈음, 도서관에서 우연히 교회 소그룹 성경공부를 같이하던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다녔지만 한국 유학생 사회의 특성상 참여하는 사회활동 일환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 형이 저의 머리를 보고 놀라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저는 행간의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 형님이 교수님을 한 번 뵙고 상의 드리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형과의 대화가 다 끝난 후 저는 약속도 없이 교수님 연구실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교수님도 제 머리에 흠칫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또 다시 교수님께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의 첫 말씀은 “준석아!, 우선 밥부터 먹어라.” 였습니다. “밥을 먹고 힘을 내야 공부도 하는 거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마주하면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로 눈물을 훔치지는 말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오늘 여기에서 또 한 참을 울겠구나……’라는 생각말입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는데 정말 하염없이 나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석이 너를 참 사랑하시는가보다!” 어금니를 악다물고서 참으려고 했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더군요. 서러웠는지, 답답했는지, 혹은 억울했는지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터지는 눈물을 의지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또 여러분앞에 서있다고 해서 억지로 하나님을 끼워맞추기는 싫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기는 더욱 싫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그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고 생각하지 못했고, 또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려야 할 것은 유학생활 시작 후 그런 평안함은 처음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수님과의 만남은 종종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도움으로 첫 학기를 마친 후 두 번째 학기를 보내는 동안 저는 또 한 분과의 귀한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학업 이외에 집안문제로 고민하던 와중에 같은 교회에 계시던 집사님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지만 그 때는 그저 스처지나는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서 저의 문제를 들어주신 집사님께서는 저와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제안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서야 모든 일이 원만해질 것이라는 집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주 토요일 늦은 저녁 4시간을 성경공부에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께서 내시는 그 시간은 훨씬 더 귀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박사과정 논문 proposal을 앞두고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시고 계셨는데, 선뜻 4시간을 내어주신 집사님께 예의를 지킨다는 생각에라도 성경책을 펴고 예습을 했습니다. 본문이 4과를 지날 무렵, 질문 중 “당신은 하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4주를 지체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그 때 느껴본 듯 합니다. 4 주가 지난후에서야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크게 변한 것이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한 확신같은 것을 느껴보기를 원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짧은 대답 이후로 제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관점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답이후에도 기독교에 대한 저돌적이고 냉소적인 저의 질문들에 항상 성실히 또 시원하게 답변해 주시는 집사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반기 방학이 끝날때까지 성경공부는 계속되었고, 성경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본인의 경험을 나누며 같이 고민해주시던 집사님의 모습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공부가 끝나갈 무렵부터 가지게 된 생각 ‘내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기독교를 혹은 기독교인들을 판단할 자격이 없구나’라는 것이없습니다. 철옹성 같던 저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단 1년 사이에 단 2명에 의해서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무렵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결혼 후 미국에 오게되면, 같이 교회에 다닐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여름 방학동안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면서 저는 다시 성경과 교회에서 멀어지게됩니다. 교회를 나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불현듯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내 외면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또 지금의 아내와 결혼 준비에 몰두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미국에 돌아온 후 저는 저로서는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하게됩니다. 블루밍턴에는 매주 목요일 찬양 모임이 있는데, 계속 나와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대놓고 무시하며,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있었습니다. 새 학기가 3분의 1선을 지나갈 무렵,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갑자기 목요 찬양 모임에 나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공부가 따분해서였는지 계속 모임의 참석을 권유하던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전혀 종잡지도 못했지만, 그저 그곳에 가봐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찬양 모임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울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일어나 찬양을 드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흐느껴 울기만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또 죄로 가득찬 저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에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 그때까지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며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계획하신 시간표중 일부임을 느끼며 저는 제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보낸 지난 세월은 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삶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였으며, 저의 고집불통 자존심은 손에서 놓을 수없는 저만의 성경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을 것이란 죄송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함에 또 이제껏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신 그 끊없는 인내함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3년간의 유학생활을 뒤돌아보면 인내와 겸손을 배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시간이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교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준석이 너를 참 사랑하시나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영어의 문제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영어를 못해서 답답합니다. 돈의 문제로 힘이 듭니다. 통장의 잔고가 하나도 없어서 아내와 16년 된 중고차를 팔아야 할지를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자만심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나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다음 수업에 제출해야 할 숙제도 알아듣지 못해서 또 Incomplete을 받으면서 힘이 들었습니다. 저의 고집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만 밀어붙이면서 깨지고 박살이 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들은 하나님안에서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축복이고 주님의 은혜이고 주님의 계획임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제가 저를 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또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주님과 함께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할 따름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더 느끼려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고 한 번도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준석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박준석 형제님을 기리는 글을 이영길 교수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코스탄들에게는 믿음의 유산이, 유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코스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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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2시 30분 준석이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나도 몰래, 말없이… 늘 그러듯 “교수님, 먼저 갈께요!”라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괘씸한 녀석! 녀석이 나보다 먼저 천국 갔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인사도 안하고 가는 녀석이 어디 있어. 천국에서 만나면 혼내준다고 속으로 되뇌이며 한없이 울었다. 천국서 만나면 허그 (Hug) 하기전 굴밤부터 한방 먹여줄거다. 이 버릇없는 준석이를 생각하다가 바로 정란자매에게 전화 했다. 어제도 오늘도 수없이 전화 했지만 첫번째 통화 되었을때는 함께 말없이 울기만 했다. “정란자매, 그냥 같이 울자!” 오열하듯 울어 대는 정란 자매와 전화 통화하면서 나는 길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다. 준석이가 너무 그리웠다. 옆에 손을 잡아 주지 못해 미안하였다. 
준석이를 만난 것이 벌써 2년도 넘었다. 한국에서 내가 아주 잘 아는 어느 교수님의 아들과 함께 인디애나대학으로 유학 온다고 하여 사실 그 교수님 아들을 공항으로 라이드 갔다가 함께 동행하고 있던 준석이를 만난것이었다. 유난이 몸이 커 보였지먄, 인상이 아주 착한 곰 같이 생겼다. 팬더 곰 같이 귀엽기도 하였다. 두 학생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약 이틀 정도를 함께지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던차에 준석이가 예수님을 믿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알려주려고 입을 열자 거의 방어적으로 “내게는 복음 전할 생각조차도 마십시오!”라는 녀석의 허풍에 어깨 두드려 주며 “너는 곧 예수 믿게 될거야!”라고 되 받아 답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 보았고, 하다 못해 유학생 신분의 청와대경호실 출신의 공무원도 만나 복음을 전했지만 준석이처럼 딱딱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준석이는 드물게 착했다. 공손하였다. 모든것이 깔끔하였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달리 태도를 취하는 아이였다.
그러던 준석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여 교회도 나가고, 같은 교회의 어느 집사님과, 그리고 나의 미국인 친구 Darwin과 성경공부도 하며 이 아이는 그리스도인으로 되어져 가고 있었다. 보통 열심이 아니면 나가기 어려운 목요모임에도 나왔다. 앞에서 말씀을 전할때면 이 아이의 눈에서 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하나님이 만져가심을 자주 확인하곤 했다. 사무실에서나, 복도에서나, 혹 캠퍼스 어느곳에서 만나든 함께 이야기 할땐 준석이는 예외없이 운다. “준석아, 내가 너 때렸냐?”라고 물으면, “그냥 교수님보면 눈물 나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말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아내가 가게 할때 조그만 도움이 필요하여 부탁하면 두팔 걷어 올리고 굵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도왔던 준석이다. 가게를 띁어서 모든 가구와 기구들을 미시간에 가져 올때 돈을 주고 일을 시킨적 있다. 돈을 줄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준석이를 고용하였다. 그냥 일을 부탁하면 돈을 안받으니까 고용해 버린것이다. 준석이는 무섭게 일한다. 남의 일도 자기일 같이 한다.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의 큰 아들 상민은 그냥 놀라기만 하였다. 정성껏, 몸을 아끼지 않고, 땀을 흘리며, 즐겁게, 그리고 정열을 가지고 일한다. 
공부도 그렇게 정열적으로 하였다. 참으로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 들며 공부하는 성실한 학도였다. 그러나 준석이는 자신의 이기적 성공만을 추구하려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학도가 아니였다. 내 눈에 보인 준석이는 아주 진지한 크리스쳔 학도 였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준석이의 고민은 자신의 학문과 신앙을 통합하는 문제였다. 미시건에 있는 내게 여러번 전화도 하였고, 또 집으로 방문하여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으며 준석이는 크리스쳔 학도의 진지한 면모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래의 글은 지난해 9월 14일 준석이가 내게 보낸 미멜중 하나이다. 
“… 앞부분 생략… 저는 대학에서도 관광개발을 전공하였고 이곳 인디애나에서도 역시 Toruism Management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학업의 관심분야를 이제서야 조금씩 찾아가는듯 합니다. 관광이라는것이 관광객과 관광자원,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해 주는 제반 모든 요소들을 다루고 있지만, 저의 관심분야는관광자원입니다. 또, 자원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임펙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속가능한 관광 (sustainable tourism), 대안관광(eco-tourism, green tourism, rural tourism…), 자원의 경제적 가치 및  문화적, 사회적 영향 평가, 관광객의 태도 및 그에 따른 관광지의 선택, 자원해설(interpretation)의 영향 등이 주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교수님! 코스타를 전후로 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다시 말해 기독교인으로서 저의 학업의 목적과 여정을 어디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구세주로 믿기전에는 미국에서의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좋은 학자가 되는 것이 그저 저의 목적이었는데요, 지금은 제가 살아서 숨쉬는 것도, 또한 이곳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주신 학업의 기회이기에 설사 제가 박사 진학에 다시 한 번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해도, 그저 저의 부족함을 돌아볼 뿐 개인적인 자조나 타인에 대한 원망은 없기를 소망합니다.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혹시라도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주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크리스챤 Scholar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학문을 하고싶습니다. 요새Leisure and Aging이란 과목을 들으며 한국인 이민 노인들의 여가 만족도와 social support에 대한 페이퍼를 쓰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전혀 관심밖이었 leisure나 recreation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요, 또 minority, ethnicity, and nationality, 또 사회적 약자 (노인,장애인, 경제적 소외계층 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전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솔직히 제가 이제껏 가지고 있었던 관심분야들은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관광자원분야와 행복, 다소 쌩뚱맞은 …어쩌면 전혀 관련이 없어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또 솔직히, 어떻게 연관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그룹에서 뵙게된 노령의 권사님 내외분을 보면서 점점 더 제가 해야 할 공부가, 또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위 주제의 페이퍼을 쓰면서, 또 이러한 생각 중에 권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저 주님이 원하시는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교수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경제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이 어떻게 파이를 크게 만들고 또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하는가에 촛점을 맞춘, 오로지 일만을 생각하는 음울한(dismal) 학문이라면, 관광학이라는 학문은 일이 아닌 여가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사람들을 잘 놀게, 잘 쉬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행복한 학문이라고 합니다..굳이 leisure나 recreation이 아니더라도, 제가 이제까지 공부했던 관광이라는 학문과지식을 통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만 정작 배운 지식이란 것이 너무도 얇아 깊은 생각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다만, 관광을 통해서 사람들을 성장, 성숙시키고 또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만 도달했을 뿐입니다. 평생의 연구주제를 행복으로 삼고자하는 석사생을 과연 어느 누가 받아 줄지 불안함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행복한 확신도참 오래간만인듯 합니다..^^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 뒷부분 생략…”
그뒤 준석이의 생각은 많이 발전하여 크리스쳔 학도로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하나마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듣는 나로서도 그 그림이 많은 생각, 고민 및 기도가 있었음을 눈치챌만치 잘 그려져 가고 있었다. 학자로서 자신의 성공보다 자신의 공부로 이 세상을 섬기고 싶은 그의 뜨거움을 대화때마다 감지 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가 마쳐지면서 박사과정 진학에 어려움이 많았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박사과정을 추진하는 준석이를 위해 쓴 추천서가 제법 된다. 낙방의 소식이 계속적으로 날라왔지만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기다렸다. 그리고 돈이 없어 박사과정진학을 심각히 고민되어 장학금을 위해 또한 함께 기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미시간에 와 있었기에 전화할때면 의례히 전화로 기도 하곤 했다.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Texas A & M (준석이가 하던 전공 분야에서는 제일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으로 부터 입학허가서가 왔다고 전화를 받았다. 함께 기뻐하며 전화로 아우성치며 축하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후 장학금까지 받았다고 말을 하여 함께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였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준석이가 바로 엇그제 같다. 
텍사스로 이사 가기전 코스타에도 참석하여 많은 코스탄들 앞에서 자신의 간증을 진솔하게 한적이 있었다. 간증이 있기 하루 전날 저녁, 집회가 있던 휘튼대학의 Alumni Gym에서 함께 손을 붙들고 기도 하였다. “하나님, 준석이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드러내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라고.. 많은 간증들이 혹 하나님 보다 자신을 높이는 자기자랑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였다. 다음날 준석이는 강단에 섰고,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채 하나님을 높이는 간증을 하였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 냈다. 얼마나 감사하였던지. 그리고 준석이의 간증은 많은 코스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이토록 준석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에 용감하다. 그리고 하나님 믿은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 높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그 간증을 들으며 녀석 보다 내가 먼저 울었고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준석이가 유별나게 선하고 좋은 아이라서 하나님을 그렇게 높인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어려움 뒤에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 그리스도를 주저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준석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토록 높이는 것임을 가까이 있었던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본인이 가고 싶었던 대학으로 얼마되지 않은 짐을 싫은 트럭을 몰고 가며 전화 하였다. “교수님, 저 지금 칼리지 스테이션을 향해 가고 있어요! 가면 또 전화 할께요!”라고 말하던 준석이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 그제 같다. 떠나면서도 자신의 아픔 보다 내 관절염의 아픔을 더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던 준석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건강보험이 없어서 머리가 아픈데도 꾹 참고 보험 살때 까지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이 시작되는 그제 병원에를 찾아 갔었고, 준석이는 그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흐르는 피를 막을 수 없었던 의사는 절망을 선언하였고, 가족들이 산소호흡기를 뺄것을 제안하였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준석이는 새벽 2시 반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준석이가 하늘나라 가기전 늦음밤까지 이아이를 위해 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많은 대화들을 기억하였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 울먹거리며 나의 건강을 묻던 그 입술, 웃을때는 유난히 밝았던 눈가의 눈웃음… 그리고 준석이가 전에 내게 보냈던 이멜도 다시 열어 보며 이이를 그리워해 보았다. 
“교수님!  참 보고 싶습니다… 잘지내시는지…안부를 묻는 인사보다 보고싶다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되네요…^^ … 준형이 형을 통해서 교수님 가정의 평안함을 들으면서 제가 왜그리 기쁜던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성정에 앞으로 얼마나 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실지 짐작은 합니다만, 건강 유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교수님을 뵈면 주책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했는데요,,, 요새는 교수님 생각에 짠~~ 하고는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던 교수님 손이 참 따뜻했었는데요..”
텍사스 갈때처럼 “교수님, 나 지금 천국 가요! 가서 전화 할께요!”라고 하면 안되었나? 나쁜 녀석! 네 손을 잡고 밤새 기도 하고 싶구나. 너를 이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너무 크지만, 너를 그 누구 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신 그곳에 갔으니 오히려 네가 부럽다. 준석아, 돌아 보니까 네게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진것 같구나. 준석아, 네게 사랑의 빛을 진 많은 이들가운데 회개의 운동이 일어 나고 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함이다. 네가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갔던것을 알지 못했던 나였고, 또 이웃이었기에 과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이었는가를 되묻게 되는구나. 네 아픔을 감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다오. 뿐만 아니다. 우리들은 영혼구원을 뒷전에 쳐박아 둔것을 통회하며 무릎꿇고 있다. 네 삶이 구원의 기쁨으로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산 삶이 었기게 우리에게 더욱 큰 도전이었다. 우리들이 더 영혼을 사랑하며 너 처럼 구원의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도록 우리들이 주안에서 애를 쓰마. 준석아, 잘 가거라.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 See you later!

KOSTA/USA-2009 집회를 기대하며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동민이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저 군대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군대 이야기를 처음 해 주었던 동네 아저씨에게서 들은 군대는 사람이 지낼 만한 곳이 아니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낄만한 고된 훈련, 아주 열악한 생활환경, 끊임없는 구타 등이 군 생활의 일상이었다. 그 허풍쟁이 아저씨가 해준 무용담은, 높은 절벽에서 병사들을 무작위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사람만 제대하게 했다든가, 정기적으로 산에 가서 곰이나 호랑이와 같은 야생짐승을 맨손으로 잡은 사람들이 진급하게 된다든가, 맨손으로 독사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날로 먹도록 훈련을 받는 다든가 하는 살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아저씨는 큰 악의 없이 8살짜리 꼬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꽤 나이가 들어서까지 군 복무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은 동민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현재 상황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당장 매우 급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두려움이 그저 8살짜리 꼬마의, 군 복무에 대하여 잘못된 두려움과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8살 꼬마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없을까. 그 아이가 가진 두려움이 ‘실체’ 혹은 ‘진실’을 잘못 파악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영적 실체’에 대한 바른 지식이 그들을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만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지한 질문들을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된다.


“우리에게 과연 안정(security)을 가져다주는 궁극적 실체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질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얼마나 다를까? 


KOSTA-2009의 주제문의 일부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그를 통한 ‘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움과 두려움이, 허풍에 속은 8살짜리 꼬마가 가지는 수준의, 가벼운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 없는 소망이 외부로부터 (extra nos) 주어져 있다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과 땅이 만났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Shalom)를 주셨고, 그 평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00여 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조가 바로 그 평화와 용기로 세상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지 않았던가. 


이런 맥락에서, 이번 KOSTA/USA-2009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소망한다. 


첫째, 참된 평화(Shalom)을 만들어낼 근거가 우리 안에 없음을 가슴 시리도록 깨닫게 되기 원한다.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어떤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우리가 노력해서 세상의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없음을 발견하기 원한다. 우리 안에 소망의 근거가 없다는 간절한 목마름 속에서, 그 평화의 근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오게 되기 원한다. 


둘째, 예수의 평화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있기 원한다. 이 세상이 잃어버렸던, 그러나 예수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우리가 그 안에 거할 수 있게 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원한다. 마치 참된 보석 앞에서 모조품이 빛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참된 예수의 평화를 보게 될 때, 우리가 의지하고자 했던 거짓 평안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 평화의 감격에 흠뻑 적시길 원한다. 세상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평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화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깊이 깨닫고 그 안에서 함께 모여 우리 모든 힘을 다해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 있기 원한다. 그 큰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 흘리며 감사하길 원한다. 우리가 흘리는 감사의 눈물과 함께, 우리가 기대고자 했던 거짓된 안정에 대한 환상도 함께 씻겨져 나가게 될 것이다. 


넷째, 내 삶, 내 가정, 내 결혼, 내 진로, 내 꿈, 내 소유, 내 직업 등에 매달려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있던 천박한 모습에서 벗어나, 세상에 주신 예수의 평화라는 거대담론(Meta-Narrative)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게 되길 원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의 이야기에 생명력이 없음을 발견하고, 이제는 예수의 평화라는 새로운 이야기전개(Storyline)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길 원한다. 그런 과정을 거칠 때에야 비로소 세상을 향한 참된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한 놀라운 용기를 가질 근거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음을 발견하고 그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로 헌신하게 되기 원한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수준의 삶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도 목말라하는 평화와 용기가 바로 예수 안에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밝히 드러내겠노라고 함께 목청 높여 선언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24년간 KOSTA/USA를 통해서 일하셨던 주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가 선포되고 선언될 천국 잔치를 기대해본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2009년 코스타 주제 –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Shalom of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복음 16:33, 표준새번역)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걷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그 길이 가치 있고 소중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는 일은 우리를 쉽게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밝은 결과가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더욱이 그 밝은 미래를 현재의 삶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면, 지금 가는 그 길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는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으로 사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있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기는커녕 바로 그 로마의 손에 잡혀 매 맞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일, 세상의 가치로 볼 때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서 친구가 되는 일,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일, 한 사람의 가치를 효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원수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 그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 등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델이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선뜻 들어서기에 두렵고 좁은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두렵고 좁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고, 우리에게도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가신 그 길에 담대하게 들어서라고 초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 끝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 어둡고 험한 길을 가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길이 승리의 길이라는 것,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명백한 증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바로 그 육체를 입고 다시 이 땅에서 부활하셨다.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만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 위에 사셨다. 동시에, 예수를 왕으로 모신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몸을 입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할 모든 육체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있는 밝은 결과, 그때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하나님의 평화(Shalom)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기대하시던, 하나님, 인간, 모든 만물 간에 창조질서가 완성된 모습이다. 평화(Shalom)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미래에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그 완성된 하나님의 평화(Shalom)를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속에서 어그러진 질서와 그릇된 세계관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절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혹시 있을 수 있는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또 우리가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태초로부터 의도하셨던 완성된 평화’(Shalom)에 거할 것을 믿기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삶을 사는 가운데, 완성된 평화(Shalom)를 경험해 갈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그러진 질서에 거스르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그릇된 가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하다고, 또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그릇된 사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며, 효율을 위해 덜 중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속삭이는 유혹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긍정하고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어졌기에, 그를 통한 ‘ 평화(Shalom)가 현실화되었기에 할 수 있다.


KOSTA-2009 운동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를 알기 원한다. 세상이 비웃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셔서 이 땅을 사신, 또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한다. 결국에는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평화(Shalom)를 이루실 것이며,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 완성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를 경험하기 원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추스르고자 한다.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큰 불안으로,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또 다른 불안감으로 사람들을 노예 삼는 어그러진 풍조를 향해 진정하고도 유일한 대안을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기 원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꿈을 잃어버린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Shalom)안에서 우리는 다시 꿈과 이상과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