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_row][vc_column width=”1/1″][vc_single_image image=”5407″ align=”center” img_size=”full”][vc_column_text]1. 목사님 소개와 인사를 해주세요.

IMF가 있던 97년 미국에 유학을 왔습니다. 당시 800원 대였던 환율이 2000원까지 올라가는 충격을 첫 학기 때 겪으며 고생을 많이 했죠. 99년 시카고 대학 인문학부에서 박사공부를 시작했는데, 2012년에 마쳤으니까 13년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했던 과정이 보통 10년 정도 걸리기는 하지만, 공부하는 중에 교회를 개척하기도 해서 좀 더 오래 걸렸습니다. 아내도 박사과정을 공부했기 때문에 아이도결혼한지 13년 반 만에 낳았습니다. 여러모로 특별히 유학생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는 스펙이 아닐까 합니다. ^^
유학생활 중 감사하는 것은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뿐 아니라, 미국인들 통틀어도 신학생 중에 저처럼 선생님 복이 많은 경우는 드물거라 생각됩니다. 저의 미국 생활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이사야 30: 20)” 입니다. 이런 점에서 코스타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에도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젊은이들이 여기서 좋은 스승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할 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자라서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것이 코스타에 참석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축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세미나에서 <총체적 복음>에 대해서 강의하시는데 소개를 해주신다면

복음은 코스타의 강의 목록에서도 첫 번째를 차지하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총체적’이라는 말이 붙는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음이 온전하지 못한 단편적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유진 피터슨이 말하기를 “형용사는 명사가 타락할 때 필요해진다. 예를 들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인으로 충분한데 이 명사가 타락하니까 ‘신실한’이라는 형용사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총체적 복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이유입니다. 원래는 “복음”이라는 말로 충분하지요.”
강의에서는 성경에서 본래 복음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에 철저히 집중할 것입니다. 본래 복음은 그것 자체로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목숨을 걸만한 거였잖아요. 삶 자체가 신나게 되는 거였죠. “나는 이제 죽어도 천국 간다”는 것을 확보해 놓고 그것과 관계없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보는 시각 전체가 바뀌는 즉, 삶의 목적과 의미 자체가 바뀌는 것이었지요. 그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3. 올해 코스타 주제가 신학적으로 어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신다면?

어떤 말이든 구체적인 맥락에서 의미가 결정되지요.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사회의 상층부에 진출하는 것을 비전으로 합리화하는 그런 욕망들을 신학적으로 포장해 온 거짓 복음에 속아 왔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 사회 상층부에 기독교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는데 사회는 더 혼탁해지고, 교회는 더 어려워졌지요.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의 맥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의 약함과 주님의 능력,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쉽고 자명하게 이 둘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거짓 복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에 절망할겨를도 없이 그냥 주님의 능력을 가져다 쓰고 싶은 마음에 거쳐야 하는 단계로 약함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주님의 능력을 쓰고 싶은데 그 방법으로 “우리의 약함”이라는 카드를 내 놓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이름을 빈 주술이지요. 내려놓음이라는 주제가 지나치게 유행할 때, 가만히 보니까 이게 “아, 내려 놓으면 더 주실 거야” 하는 기대가 그 뒤에 있더라 하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려 놓는 게 아니라, 내려 놓는 척 하는 것이지요.

 

4.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와 직면하게 될 때 스스로를 약자라고 느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와 고용주/ 실업자와 사회구조/ 빈부의 차이 등) 이런 문제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고민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신앙과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사회 전체에 대한 대안적 지혜와 내가 처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헌신, 이 둘의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위해서 끊임없는 공부, 성찰, 네트워크, 자신의 시각을 넓히는 도전과 자극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후자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 옆에 한 사람, 즉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내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해야하는 실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때로 내가 손해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강도 만난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를 도우려면 내 일정이 헝클어 진다든지, 재정적으로 출혈이 있다든지, 혹은 안전에 위협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런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냥 가도 되지만 만약 만났다면 그 만남 자체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신앙고백적 상황”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그 순간에 결정된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봤는데 그냥 지나치고 길을 간다면, 이제 나는 그를 만나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곤란에 빠진 이를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 순간에 나의 전 존재를 걸고 대답해야 하는 겁니다.

 

5.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는 적지 잖은 숫자의 유학생들은 미국에 와서 사회,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서 처음 서보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참석자들이 미래에는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강자의 위치에 설 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이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를 추가로 해 주신다면

유학생들 중에 상당수는 어릴 때 부터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나는 천재일지도 몰라”하고 생각하는데, 미국에 와서 그 부분이 깨어지는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지요. 뒤집으면 이 시기가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축복된 시기라는 겁니다. “앞으로 높은 자리에 가면 이런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은 사실 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결국은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어떻게 사는가만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최종 비전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였는데, “로마를”이 아니라, “로마도” 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금 에베소에서 이 말을 하는데, 로마가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지금 에베소에서 하고 있는 이 일을 로마에 가서도 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비전입니다. 선교사로 가고 싶다는 젊은이가 생활 속에서 옆 집 사람 전도하는 일에 관심 없다면, 선교지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교수가 되어서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싶다면, 지금 무엇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시간도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같은 일이 없다면 비슷한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비전은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6. 유학생/청년 사역을 오랫동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느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의 경제 사정을 비롯한 환경 변화로 젊은이들에게 여유가 없어진 듯 합니다. 공부하고, 연구실에서 일하고, 직장을 구하는 모든 환경이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훨씬 더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급함과 건강한 공동체의 필요성은 더 깊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외로워서 교회에 나오고 그러다 보면 은혜도 받고, 헌신도 하고 그랬는데 요즈음은 facebook에서 “야, 우리 밥 먹자” 라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으니까요.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놀아주고, 돌봐주고, 재미있게 해주고 이런 것 보다 더 본질에 즉, 복음과 말씀으로 가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목사님이 코스타를 통해서 기대하는 것과 코스타에 참석하는 한인 청년 디아스포라들에게 도전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청년들을 KOSTA에 모이게 하는가? 저는 “목마름”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멀리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올 수가 없겠지요. 모두 목마름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데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는 걸음이지요. 여기에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목마른 사람 시냇물을 찾아 헤메는” 간절함,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열정이 있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길은 많이 있습니다. 방법이나 길, 자리 같은 걱정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과감하게 헌신하고 철저히 준비한 후 주님께 요구하세요. 나를 써 달라고!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데 “저 아직 준비 안됐는데요” 라고 대답해야 하는 일은 내 인생에 없어야 겠다는 결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