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1-12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 리하십시오.
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강해 마지막 시간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 한국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지나왔습니다. 그러한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회피하고 싶은데 교회 다니며 종교 생활을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자 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한국인들의 믿음이 현실도피적인 면이 많습니다. 어떻게 믿을까,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까, 어떻게 교회 행사를 세련되게 치를까의 고민은 많았지만 어떻게 일상을 살 것인가의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행위, 행실, 실천… 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말하는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대로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지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세상은 말로 변하지 아니하고, 묵묵한 행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그네 백성으로서 무엇을 행동할까요? 세가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1.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이 되자.
2. 짐을 가볍게가자
3. 경계를 가로짓는 자로살자

 

1.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으로 사는 나그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본 환상이 나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잡아먹어라.”

베드로에게 이방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거룩함을 오염시킬 수 있는 배척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원의 대상에 포함시키라 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용납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언어의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나그네로 이 땅을 사는데 우리는 언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 합시다. 그리고 영어공부 열심히 합시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공부하고 정치/경제/문화/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환대하기 위함입니다.

주변인이 되는 경험은 낮은 자들과 연대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되고, 설 자리가 없이 소외된 자들에게 설자리가 되어줍시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연약한 이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줍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건 아니건, 힘든 일이 있을 때 외로울 때 쉼이 되줄 것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눔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재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감사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나누는 것입니다.

 

2. 가볍게 사는 나그네

짐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가 물건을 소유하지만 그 물건이 우리를 소유하기도 합니다. 많이 가지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적게 가지고도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나공방을 하는 목적 중에 하나는 나무라는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가지고 사람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튼튼하고, 아름 답고, 저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버려지는 많은 소재들을 이용해서 업사이클링도 합니다. 지금 제가 착용하고 있는 벨트도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것입니다.

나그네는 남겨놓고 가는 것이 많으면 안됩니다. 떠난 뒷자리가 깔끔해야 합니다.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흔적을 적게 남기고 갑 시다.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대신 많이 나누며 사는 그런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강림하고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성도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필요한대로 나누었다고합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해 어떤 마 음을 가져야 할까요? 나누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아킬레스 건은 무상으로 나누는데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능, 지식, 물질, 하나님께서 모두 청지기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나의 이익을 위해 움켜쥐어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세상과 나 누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도구로 여러분의 재능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저는 9학년 7학년 두 딸아이들을 가을부터 홈스쿨링을 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고, 값비싼 학군에 묶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3. 화해하게 하는 직분의 나그네

첫날,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듯, 우리의 정체성이 제사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 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 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본질적으로 이쪽 저쪽 망가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나그네요, 거류민으로 산다는 것, 우리가 이 땅에 제사장의 정체성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화해케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이 세상이 규정해 놓은 경계를 가로지르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이 십자가는 고린도후서 5:17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화목의 십자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하는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고, 남한과 북한일 수도 있고요, 백인과 흑인일 수도 있 고, 부모와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망가진 관계를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로 화해시키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의지해 망가진 관 계들을 화해시키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저는 몇해 전 부터 북한 신의주에서 한국 부산까지 판문점을 통과해서 자전거를 타는 꿈을 꾸어왔습니다. 이번 9월에 저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 북한에 갑니다. 2017 코스타 오전 성경 강해 (셋째날) 페이지 8 / 10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는 아니고,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자전거를 탈 예정입니다. 판문점에서 길이 막히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 판문점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탈 예정입니다.

누군가가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고린도후서 5:17을 말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쟁과 다툼이 있는 이 세상에서 화해시키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며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그네, 거류민이 된다는 것은 그저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 뒤돌아보면 평화와 생명이 꽃 피워져야 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실천해 나갑시다. 세상을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제사장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모였지만 이제 내일이면 각자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입니다. 돌아가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며 갈등 가운데 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제사장 나그네로 살아갑시다.

사람이 간다는 것은 더욱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이제 이 자리에 잠시 모였던 제사장들이 삶의 현장으로 파송되어 흩어질 때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가 때로는 믿음 때문에 불이익 이 있고 고난과 갈등도 있지만, 평화와 생명, 사랑이 풍성하게 그리고 늘 행복한 길은 아니지만 흔들리면서, 그렇게 묵묵히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나라에 흘러 들어오게 하는 통로로 사십시다. 마치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틈 사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흘러들어오도록 통로가 되는 그런 존재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가 있는 자리가 그리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변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여러분의 여정 가운데 삼위 하나님의 동행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