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간입니다. 양혜원 박사님께서 아래의 책들을 추천해주셨습니다.

  1. C.S.Lewis “스크루테이프 편지”
  2.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3. 헨리 나우엔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안지영 목사님이 창세기의 아브라함으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설교의 일부를 아래에 올립니다.)

흔히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을 많이 떠올립니다. 우리와 달리 매순간 믿음으로 순종한 것 같은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 아브라함은 딱히 신중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사라를 두번이나 넘기는 등 본인의 생각과 방법을 찾으며 실수하고 넘어지는 와중에 얼떨결에 순종해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20:11-13 여호와가 다른 신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본인의 방법을 강구하는 모습, 창 12:4-5에서 이땅을 네게 주겠다 말씀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제사는 드리지만 현실과 타협해 그 땅을 떠나는 모습 등 감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우리와 비슷한 모습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떠한 인간도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기가 스스로 튼튼히 서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찌질한 행동을 우리가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비롯한 그 속사정 들을 참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자격 없는 우리를 붙들고 그 속사정까지 해결하사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속사정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다시 실수하고 넘어지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나의 선지자”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기에 사라를 두 번 이나 파는 같은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너는 나의 입이라” 말씀하시며 그 속사정을 다 아시고 그에 맞게 고쳐주시되 더 단단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은혜를 오해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처럼 자비 없으시고 소심하시고 그렇게 빡빡한, 우리의 생각대로 제한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 사정을 다 아시고 우리가 온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이미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나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 12:1-3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큰 민족을 세상에서 말하는 강한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민족, 즉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살아가는 과정을 보면 얼떨결에 움직이며 실수하고 넘어지나 하나님이 개입하심이 장막 밖의 사람들에게 명확히 보이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그 삶을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서툴고 넘어지지만 치열하게 하나님을 향해 가는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드러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알게되면 주변이 보이고 자연스레 선교적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같은 사람도 “그리스도 인”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재고 따지는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이런 밑바닥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여기 서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살아가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과정, 그 일상속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삶은 하나님 안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가는 유학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까요? 오늘 날 흔히들 착각하는 것은 좋은 커리큘럼의 교회가 영적인 엘리트는 만들 것이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좋은 프로그램은 영적인 성장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작은 교회를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 작은 교회에 함께 어우러져 섬기는 것, 필요한 곳에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선교지입니다.

이후 금식 기도회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