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운] 가정 속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3

이코스타 2003년 11월




글을 시작하면서


아 내가 아이를 가진 지 8개월이 되면서 아내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야한다고 마음이 많이 바빠지고 분주해졌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무얼 사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저기 아기 용품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 출산한 친구에게서 천 기저귀, 요람, 젖병, 속옷 등을 받아 오더니, 얼마 전에는 예비 아빠를 통해 처형 네가 쓰던 아기 이불, 목욕통 등을 가져오게 했다. 오래 쓰지 않을 물건이니까 그런다고 하면서….


아 내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유학하던 필라델피아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생각났다. 필자가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살던 집은 학교와 주변 지역의 경계에 있었는데 학생들을 제외하면 주민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었다. 유학 초기에 집 근처 분위기도 익힐 겸해서 걸어서 (미국의 대도시 지역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흑인가에 걸어 다니는 것을 좀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주변 상점과 주택가를 돌아 본 적이 있다. 조금은 경계도 하면서 이곳 저곳 살펴보는 것이 꽤 재미가 있었다. 길가에 피어있던 무궁화 꽃을 보니 갑자기 한국이 생각나기도 하고 높지 않은 집들이 줄지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한 군데 Second -Mile Center라는 간판에 눈이 끌려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면서 진열해 놓은 물건들이 대부분 집에서 쓰던 물건들이거나 입던 옷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많이 낡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쓸만한 것들도 있었다. 가구를 비롯해서 집안 잡동사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도 상당히 많이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 사곤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필자의 경험 상 한국에서는 쓰던 물건을 내어다 파는 경우를 잘 못 본 터라 좀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게에 있는 손님들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손님 중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가끔 씩 동양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주변에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은 아니라서 기대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우 리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까운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빌려주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는 흔치 않은 탓에 필라델피아에서의 첫 중고가게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츰 그곳을 스스럼없이 애용 (?)하고 주위에 소개도 하면서 그 곳의 이름이 산상수훈의 5장 41절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과 그 곳의 수익의 대부분을 선교헌금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건값이 아주 싸고 물건들도 쓸만할 뿐만 아니라 가게의 운영목적이 마음에 들어 유학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이곳을 이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흔 히 쓸 것은 쓰고 남은 것을 이용하여 재활용을 하면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쓰면서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은 것 같지 같다. 특히 생활용품이나 옷 종류는 안 쓰거나 안 입는 한이 있어도 남이 쓰던 것을 다시 쓰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잠깐 쓸 것들을 제외하면. 이러한 경우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한 것 같다. 아마도 위생을 고려하면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체면을 따지는 경향에서 생긴 것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쓰기의 효과들


가 정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환경보호 대안 중에서 줄이기가 에너지 사용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라면 다시 쓰기는 원천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자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쓰기를 생활화하게 될 경우 필요한 물건을 새롭게 생산하거나 다시 만들어 쓰지 않아도 되므로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리 할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다시 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환경보호의 효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째로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될 것이다. 즉 쓰고 나서 버리게 될 물건들이 쓰레기더미에 쌓이는 양이 줄어들어서 다양한 환경보호의 효과를 얻게 된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할 경우 나오게 되는 유독가스나 침출수 등으로부터 지하수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매립비용이나 소각비용을 줄이게 되어 결국 납세자의 부담이 한결 가볍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둘 째로, 자원보호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시 쓰기는 그 자체로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거나 재활용하는 것보다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쓴다. 미국의 예를 들면, 유리병을 다시 쓰면 새로운 병을 만들어 내는 데 드는 것보다 93 퍼센트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1991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비즈니스 업계에서만 매년 2천 1백만 톤의 종이를 사용하는 데 이는 나무의 양으로 약 3억 5천만 그루에 해당한다고 한다. 만일 복사하는 데 종이를 양면으로 사용하는 비율을 26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높이면 약 1천 5백만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다.


셋 째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하나의 물건에 들어 있는 에너지는 그것을 처음에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쓰기는 이렇게 물건에 들어있는 에너지의 양을 보존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의 바닥을 갈아붙이는 것이나, 건축 폐 자재를 이용해서 건물을 짓는 것이나, 자동차 부품, 복사기, 프린터 카트리지 등을 비롯한 여러 제품을 재 가공하는 것을 통해 상당히 높은 효율의 에너지 보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넷 째로,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다시 쓰기를 통하면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하면서 생겨나는 대기오염 및 수질 오염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생산을 할 경우 매년 수백만 파운드의 유독성 화학물질을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게 되는 데 이때 수질이 악화되면서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대기 중으로 이산화 황, 아세톤, 메탄올 등을 비롯한 각종 연기들을 내뿜게 되면서 공기오염은 물론 산성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재활용 종이를 생산하는 경우에는 종이를 처음 생산하는 것보다 환경에 적은 부담을 주지만 그래도 잉크를 제거하면서 생겨나는 슬러지를 처리하기 위해 매립을 하거나 소각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공기나 수질을 오염시키게 된다. 종이를 다시 쓰면 이러한 환경부담을 줄이게 된다. 종이를 이용해서 만든 기저귀나 쇼핑백, 공기필터, 커피필터 등을 사용하기보다는 천으로 만들어서 물로 빨아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있어 종이 사용을 현저히 줄이게 되며 아울러 나무 사용이 줄게 될 것이다.


다 섯 째로, 다시 쓰기를 실천하게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다. 즉 다시 쓰기를 통해 많은 직업과 경제활동이 생겨날 잠재력이 있다. 만일 다시 쓰기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면 버려질 물건을 다시 쓰는 데 비즈니스와 고용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가령 위에서 예로 든 중고 가게 전문점이 특정분야마다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전문 대여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 소비자로서 개인은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사용할 수 있어서 필자처럼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나아가 국가 전체로 보면 상당한 경제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시 쓰기를 위한 방법들


그렇다면 가정에서 다시 쓰기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 다음에 몇 가지의 원칙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살펴본다.


1. 제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지 생각한다.
어떤 제품이든지 한 번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잘 돌이켜 보면 흔히 일회 용품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몇 번 씩 쓸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일회용품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품을 살 때 다시 쓸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을 위한 용기를 다시 사용할 때는 적절한 위생을 확보해야만 한다.


 a. 사기나 유리로 만들어진 컵은 다시 씻어서 오래 쓸 수 있으므로 일할 때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실 경우 자기 자신의 컵을 사용한다.
 b. 집에서나 일할 때, 파티를 하거나 소풍 또는 여행을 갈 때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견고한 주방용품 즉, 포크나 수저, 접시, 그릇 등을 사용한다.
 d. 일할 때나 집에서 레이저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스 기계 등의 카트리지가 재충전 가능한 지 확인 후 구입한다.
 e. 종이가 아닌 천으로 된 냅킨, 스펀지, 행주 등을 사용한다.
 f. 음료수나 세제 등을 구입할 때 다시 담을 수 있는 용기에 들어 있는 제품을 고른다. 어떤 제품은 소비자가 직접 다시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다.
 g. 가능하다면 건전지를 살 때 재충전 가능한 것을 고른다. 그렇지 않다면 유해 물질이 적게 든 건전지를 고른다.
i. 만일 어쩔 수 없이 일회용을 쓰게 될 경우 필요한 것을 딱 한 번만 쓴다. 예를 들면 일회용 케첩 봉투나 냅킨의 경우 하나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단 하나만 쓴다. 맥도널드에 갔을 경우 하나의 케첩을 달라고 한다.


2.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쓴다.
오래 쓸 수 있는 옷과 타이어와 가구들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쓰면 잘 닳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서 자주 바꾸지 않고 버리지 않아도 된다. 비록 제품 값이 처음에는 좀 나가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그 비용이 상쇄되거나 훨씬 경제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을 어떻게 구매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j. 오랜 기간 동안 품질을 보증하는 오래 가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한다. 소비자들의 제품 평가보고서를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제품을 쉽게 고칠 수 있는 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k.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제품 설명서를 따라 적절히 사용하고 관리한다.
l. 차나 자전거 등의 타이어를 살 때 질 좋고 오래 가는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타이어를 자주 갈거나 버리는 경우를 줄인다. 타이어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타이어의 압력을 한 달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타이어를 정기적으로 바꿔 끼운다. 가능하다면 재생 타이어나 재 가공한 타이어를 사용한다.
m. 옷이나 구두, 핸드백이나 서류 가방 등을 가능한 대로 고쳐서 쓴다.
n. 가구나 스포츠 용품, 장난감이나 연장 등을 살 경우 제품을 오래 사용할 경우를 고려하여 견고한 제품을 산다.
o. 전구를 살 경우 백열등보다는 에너지가 적게 드는 형광등을 산다. 형광등은 백열등보다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전구를 자주 갈아 끼지 않아도 된다.


3. 봉지와 저장 용기를 다시 쓴다.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의 대부분은 한 번 이상 사용 가능한 것들이다. 가방이나 저장 용기들을 버리기 전에 위생적으로 실제적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을 다시 사용하면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아울러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얻게 된다. 각 개인의 특수성에 맞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공동체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p. 종이봉지나 플라스틱 봉지를 다시 쓴다. 잘 살펴보아서 그 봉지들이 쓸만하면 다음 번에 장을 보러 갈 때 다시 사용한다. 또는 끈으로 만들거나 천으로 만든 봉지를 가져간다. 만일 재사용 봉지가 없고 한 두 가지의 물품을 구입할 경우 정말로 봉지가 필요한 지 재고해 본다.
 r. 한 번 쓴 종이나 봉투를 다시 사용한다. 복사하거나 쓴 종이의 다른 쪽 면도 사용한 후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 선물 상자, 리본, 포장지 등을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한다. 집안에 모아둔 것들 중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검사하고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 사용한다.
 s. 신문지나 상자, 포장용 땅콩 등을 모아 두었다가 물건을 싸서 부칠 때 다시 사용한다. 또한 신문지는 유리창을 닦을 때 쓰면 효과가 좋다.
t. 빈 병, 플라스틱 병, 우유 잔, 커피 캔 등의 저장 용기를 버리지 않고 씻어서 다시 사용한다. 이러한 용기들은 단추나 못, 압정 등을 보관하는 데 제격이다. 그리고 필자의 작은 경험이지만 커피 캔이나 큰 플라스틱 우윳병을 위 부분을 잘라내고 흙을 부어넣으면 꽃이나 작은 식물을 키울 수 있다.
 w. 자동차 기름이나 제초제 등이 들었던 병은 다시 쓰지 말고 분리해서 모아 두었다가 따로 처리한다. 이를 위해 지역자치단체에서 가정용 위험쓰레기 수집센타를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위험한 저장물들은 표시를 해서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4. 자주 쓰지 않는 물품은 빌리거나 나누어 쓴다.
자주 쓰지 않는 물품들은 집안에 있으면 공간을 차지하거나 먼지를 끌어 모으다가 결국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러한 제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비정기적으로 쓰이는 물품들은 이웃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누어 쓰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연자원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


x. 혹시 파티를 할 경우에는 파티용품을 사지 않고 전문회사에서 빌리도록 한다. 즉 장식이나 파티에 필요한 용품들을 빌려쓰고 돌려주도록 한다.
bb. 집관리 필요한 물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쓰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구입한 후 필요할 때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cc. 오래 쓰던 도구들이나 카메라 장비 등의 물건들을 버릴 때 친구나 이웃 등에게 필요한지 물어본 연후에 정말 아무도 필요하지 않을 때 버린다.
dd. 신문이나 잡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본다.


5. 중고제품을 사거나 물건을 버리기보다는 팔거나 기부한다.
한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다. 불필요한 가전제품, 연장, 옷을 버리기 전에 그것들을 팔거나 기부하도록 하면 좋겠다. 또한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 중고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이를 통해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새 제품을 살 때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e. 필요하지 않는 물품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거나 중고제품 판매점에 다시 판다. 기부를 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면세혜택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팔 경우 현금을 받기도 한다. 기부를 받는 기관들은 주로 옷과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받는다. 단 기부하는 물품들은 깨끗하고 품질이 양호해야만 한다.
ff. 쓰던 물품들을 바자회나 벼룩시장이나 집 마당에 놓고 팔 수 있다.
gg.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쓸 수 있는 제품들을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또는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누어주기 전에 제품의 질을 확인하여야 한다. 가령 옷의 경우 세탁을 하고 얼룩이나 구멍이 없어야 한다.
hh. 지역 공동체가 함께 격려하여서 옷이나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사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웃끼리 옷과 음식을 모으거나 근처의 상인들에게 흠이 났지만 먹을 만한 음식이나 아직 쓸만한 제품들을 기부 받아서 직접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거나 그들을 돌보는 기관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ii. 필요한 책이나 전자제품, 가구, 그림 등을 중고 제품이 있을 경우 중고제품으로 구매한다.


글을 맺으면서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주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예배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주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이웃에 대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쓰기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일이다. 어쩌면 다음 호에서 살펴 볼 재활용 (Recycle)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으로서 그 경제적, 환경 적인 효과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해도 각 개인의 실행 의지가 굳건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먼저는 각 개인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책임 있는 개인의 역할을 다 해내고, 공동체가 의지를 모아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 다시 쓰기는 개인만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는 이면에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가정의 일원으로서 개인은 각 가정에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생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 개인과 가정은 이웃과 함께 그 중요성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앞장서서 아파트나 지역의 반상회 모임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면 좋겠다.


요 한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선한 일을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여기의 선한 일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겠지만) (엡 2:8-10) 분명히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위한 노력 또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다시 쓰기를 통해 주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적극적인 사명을 조용히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반영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II: 줄이기 (Reduce)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들어가는 말

‘환경보호’ 또는 ‘생태적인 삶 살기’를 위해 가정은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되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해 주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구원을 얻어서, 주어진 생명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는 기독교를 가정의 주된 중심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말 그대로 사회의 소금과 빛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책임 중에서 가장 중심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과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그 섬김과 사랑이 전도, 즉 영혼구원이라고 말할 지 모르나 이는 좀 치우친 표현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흔히 전도는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도록 하는 영혼구원을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세주’라는 고백 속에 들어 있는 전 우주적인 내용을 간과한 채…

그리스도인 가정은 바로 구원의 전우주적인 보편성과 각 개인의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유기적인 인격적 관계의 총화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그리스도 예수로 인한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각 가정마다 구체적으로 구원받음에 합당한 모습을 요구하시고 계신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요구한 적은 없으나 성경의 정신에 비추어 본 상식적인 의미에서 자연을 (환경을) 돌보아야 할 이웃으로서, 우리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하고 그에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제일 먼저 가정에서 식구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인간에게 관리를 부탁하신 하나뿐인 지구’라는 인식이 함께 생겨나길 바란다. 그리스도인 가정에 오만이 아닌 사랑과 섬김에서 출발한 ‘환경보호’에 대한 동기부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호에서 제안한 대로 정기적인 가정예배에서는 판에 박힌 예배형태를 지양하고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변화를 주어 성경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주제를 소화해 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가족회의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도 하면서 구체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토론과 그에 대한 가족 단위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가족회의를 통하면 온 가족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단합심도 키우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해결책을 모색할 때도 온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부모들이 신앙을 빙자하여 자녀들에게 무분별한 순종을 요구하기 전에 모든 가족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서 살펴 본대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의 대안 중에서 먼저 ‘줄이기 (Reduce)’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줄이기는 안 쓰기와는 좀 차이가 있다. 필요한 것을 사용하되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꼭 필요한 것을 필요한 양만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줄이기는 쓰레기 양과 독성을 줄인다든지, 자원 절약 등을 포함한다.

쓰레기의 양과 독성 줄이기

쓰레기란 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문명사회로부터 배출되는 폐물질(廢物質) 중에서 고체 형태로 버려지는 것으로서, 쓰레기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사람의 생활공간을 더럽히고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보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쓰레기는 생활폐기물과 각종 슬러지(sludge:汚泥)와·산업폐기물 등으로 분류한다. 이 중에서 가정과 연결된 폐기물은 생활폐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폐기물은 한국의 경우, 연탄재, 부엌찌꺼기, 일반쓰레기 등으로 구성되며, 도시의 규모와 계절에 따라서 다르다. 부엌 찌꺼기는 음식물의 준비과정에서 생기는 것과 식사 후 버려지는 것으로 플라스틱, 헝겊, 나무, 고무, 가죽, 유리, 금속 및 기타 물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도시 주변 등지에서는 쓰레기 종말처리 후 매립하여야 할 매립지의 확보 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천연 매립지인 난지도가 1993년 2월 28일 폐쇄되고 김포 매립지로 이전하였지만, 매립지 확보가 새로운 도시문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소각장 설치 및 운영 등, 쓰레기 처리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각 사회 이익집단 간에 심각해지고 있다. 이로인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고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나 환경보호와 공중보건의 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한 후 각 가정마다 생활 쓰레기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로 소비의 행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원천적인 의미에서 쓰레기를 적게 소비하고 적게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쓰레기 양은 각 가정에서 소비한 물품의 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의사를 결정하여 쓰레기의 양을 줄여갈 수 있다.

–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을 결정하므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물건을 구매하여 쓰레기 양을 줄인다. o 물건을 구매하기 전에 물건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해 보고, 필요한 물건일 경우 그 양을 결정함에 있어 경제성을 고려하면서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양을 구매한다. o 오래가고 견고한 물품을 산다. o 물건을 구매할 때 산 물건을 담아 올 바구니를 미리 준비한다. o 과도한 포장이 되어있는 제품의 구매를 삼간다. o 재활용한 물품을 이용한 제품을 구매한다. o 사용 후 버리도록 되어 있는 일회용 물품의 구매를 삼간다. o 음식물을 살 때 포장을 줄이기 위해 대량으로 구매한다. o 구매 후 같은 용기를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o 원 자재를 덜 사용하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o 음식물을 살 때 편리하게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오는 제품을 피하고 가능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o 음식물에 포장을 적게 사용하는 물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o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선물이나 카드를 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본다. o 가능한 만큼 필요한 채소를 재배해서 먹도록 시도해 본다 (주말 농장 이용).

–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o 음식은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고 반찬 가지 수를 줄인다. o 양도 꼭 먹을만큼만 만들어 먹고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o 냉동실, 냉장고만 믿고 식품을 방치하여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o 쓰레기는 반드시 분리수거를 한다. 젖은 쓰레기와 마른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와 불가능한 쓰레기 등. o 주방 싱크대에서 걸러진 음식물쓰레기는 체 등에서 담아 1차로 물기를 제거한 후 꼭 짜서 버린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헌 신문지에 짜서 물기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한다.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베란다나 정원에 펴 말린 다음 배출하거나, 과일껍질 등은 실내에서 어느 정도 말린 후 배출한다. 태울 수 있는 것은 소각장에서 태운다. o 썩는 쓰레기는 구덩이를 파고 모아 퇴비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나 사료로 이용하는 것도 환경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다. 가정에서 가정용 퇴비화 발효용기에 음식물쓰레기와 미생물 발효제를 넣어 퇴비원료를 만든다. 가정에서 퇴비화 발효용기를 사용하면 썩는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음식물쓰레기를 매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만들어진 퇴비는 주말농장이나 텃밭, 정원에 유용한 거름으로 사용 가능하다. 가정에서 배출된 퇴비원료는 공동 수거용기로 수집. 운반하여 퇴비로 이용할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에 수분 조절제 (톱밥 등)와 발효제를 투입하여 하루 정도 혼합 발효한 후 부숙시키면 퇴비가 생산된다. 발효된 음식물쓰레기를 밭갈이할 때 혼합하여 1주일간 썩히면 토양에 유용한 거름이 된다.

둘째로 집안의 독성을 줄여야 한다. 집안의 독성을 줄이려면 먼저 유해 제품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제언을 따르면 독성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고 가정에서 사용되는 유해한 물질을 줄일 수 있다.

– 물건을 구매할 때 가능하면 독성이 없는 포장과 물건을 사도록 해야 한다. 독성이 있는 포장에는 제조과정이나 분배과정에서 간혹 납, 카드뮴, 수은이나 6가 크로뮴 같은 독성물질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포장지의 사용을 줄이거나 포장되어 있지 않은 제품을 구매할 필요가 있다. – 페인트를 사용할 때 유성페인트 보다는 수성페인트를 사용하여 페인트 세척제의 필요를 없앨 수 있다. – 수명이 다 된 수은 건전지는 반드시 따로 모아 두었다가 지정된 장소에 버린다. –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다.

o 쓰고 남은 기름류는 절대로 하수구로 흘려 보내지 말고 모아서 비누를 만들어 쓴다. o 음식 찌꺼기는 반드시 걸러서 내보낸다. o 정화조는 1년에 1회 이상 보수 점검하고 청소한다. o 합성세제의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고 천연세제를 사용한다. 가정용 화학 세척제 대신에 베이킹 소다 (baking soda)나 식초, 쌀뜨물, 비누 등을 이용하여 독성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물의 오염도 원천적으로 낮출 수 있다. o 쌀 뜨물이나 국수 삶은 물 등은 정원수로 사용한다.

자원 (Resources) 절약

사전적으로 자원이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자연계의 일부라고 정의되는데 기초자원과 천연자원을 가공한 것을 1차 자원, 이것을 가공한 것을 2차 또는 3차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 자원에는 지하자원, 토지자원, 수자원 등이 포함되며 천연자원에는 산림자원, 동물자원, 수산자원 등이 포함된다. 식량자원과 공업원료 자원과 에너지 자원은 관계되는 기초자원과 천연자원을 가공하여서 얻게 되는 1차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자원 절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취사용 연료 및 전기, 수돗물, 종이, 금속 등의 에너지 자원의 절약이 단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취사용 연료 절약 취사용 연료, 즉 전기와 도시가스를 절약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과 조리기의 불꽃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과, 열 흡수가 잘되는 밑바닥이 넓은 조리기를 사용하거나 압력밥솥 (냄비)을 사용하는 경우로 할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위와 같이 함으로써 상당한 양의 전기와 도시가스를 절약할 수 있다. 가스용 압력솥은 전기용 압력솥보다 열 효율 면에서 훨씬 우수하므로 밥을 지을 때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한다.

– 수돗물 절약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씻고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한데 수돗물을 아껴쓰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물부족 현상을 다소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의하여 점검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o 물이 흐르고 있는 수도꼭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반드시 잠그는 습관을 기른다. o 매번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기보다는 가능한 짧은 시간 동안 샤워를 한다. o 한 번 쓴 물은 다시 이용하는 습관을 기른다. 쌀뜨물을 국을 끓일 때 이용한다든지 기름제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한 번 세탁한 물이나 세수한 물 등은 바닥 청소용이나 화장실 변기 세척용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o 물을 틀어놓은 채로 음식이나 그릇을 씻지 않도록 한다. o 세차는 호스로 하지 말고 물을 받아서 사용한다. o 화장실 물탱크에 벽돌을 넣는다. o 지붕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지하탱크나 기타 용기에 모아 두었다가 화장실 변기 세정 용수나 공조용 냉각수나 나무 물주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관리 사무소에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도록 건의할 수 있으며 개인 주택의 경우에도 큰 통을 몇 개 준비하면 시도해 볼 수 있다.

– 종이 절약 가정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그 양이 많지 않지만 포장용지의 사용이나 가정으로 배달되는 불필요한 광고지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이 된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가정에서의 종이 절약을 실천해 보면 좋겠다.

o 선물할 때나 물건을 구매할 때 가급적 포장용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o 불필요한 광고지나 메일이 배달되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가령 문 앞에 ‘광고지 사절’이라든지 인터넷이나 회사를 통해 물품을 구입할 때 불필요한 뉴스나 광고지의 배달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o 컴퓨터나 여타의 인쇄, 복사기를 이용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만 인쇄하거나 복사한다.

나오는 말

지금까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중에서 ‘줄이기’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그런데 위에서 제시된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반적인 환경보호 방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인간의 이성에 맞는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과 인간세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을 활용하여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든지 각종 학문을 하는 행위도 다 이러한 이성을 이용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환경보호를 위한 방법 중 ‘줄이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절제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인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환경 파괴는 인간의 소비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에 인간의 소비를 줄이면 소비와 연결된 각종 환경문제가 줄어들게 된다. 자연의 정화능력 또는 지지력 (Carrying Capacity)를 고려한 소비 조절이 환경보호의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환경보호 노력은 곧 바로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자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의 실천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단 하나뿐인 하나님의 걸작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과 자연은 서로 사랑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숙명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 책임을 하나님은 인간에게 맡기셨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니 감사한 마음으로,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이 책임을 감당하길 소망해 본다. 나 한 사람부터, 그리고 가정에서부터…


[반영운] 성서적 입장에서 본 환경정의

이코스타 2003년 5월호

환경과 환경문제


일반적으로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인문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환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환경이란 말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 속에서 등장한 말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환경을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람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환경’보다는 ‘생태’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위치가 생태계의 일부라는 면을 강조함으로 인간의 오만을 지적하고 결과적으로 조화로운 삶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이라는 말을 쓰든 생태라는 말을 쓰든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마지막 여섯 째 날 만드셨고 인간에게 당신이 지으신 만물을 관리하고 돌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환경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부여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은 인간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고 결국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환경문제 란 산업화에 따라 자연이 파괴된 현상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연 (환경)을 오로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주인과 객체의 관계로만 생각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존재 자체가 환경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환경문제 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질서가 인간으로 인해 파괴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워 두신 인간의 역할을 넘어서서 인간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관계와 질서와는 정반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파괴되자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착취하는 관계가 되었으며 (창세기 4장 이후의 인간의 역사)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또한 착취 및 지배의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섬김과 사랑이 아닌 이윤추구와 욕심에 기반을 두고 자연 및 과학기술을 오용한 것이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정의 (Environmental Justice)


‘환경’과 ‘정의’를 붙여서 ‘환경정의’라는 말이 미국에서 생겨났다. 이는 원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만물이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 권리와, 어떤 오염원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을 권리가 공평하게 있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즉 사람이 자연을 착취하면서 대책 없이 오염시키고, 사람들 사이에도 어떤 사람들은 보다 좋은 환경 (덜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오염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수반하는 생산활동에서 이익은 자본가나 경영자에게 많이 돌아가는 반면 피해는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많이 분배되는 현상이 생겼다. 여기서 생물적 약자란 태아를 포함한 아이들, 노인 등 환경오염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말하며, 사회적 약자란 저소득층, 노동자, 농민, 어민 등을 말한다. 생물적 약자의 범위에는 인간만이 아닌 자연 생태계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 가에서부터 모든 의사결정에 노동자나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경영자나 전문가 및 공무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전자의 것을 분배의 부정의라고 하면 후자는 절차의 부정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둘을 합하여 환경부정의라고 하고 이러한 부정의가 해결된 상태를 ‘환경정의’라고 한다.


미국에서의 환경정의


미국에서 환경정의에 대한 논란이 심화된 것은 1980년대 초의 일이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나오는 유해 폐기물의 처리를 둘러싸고 1960년대부터 문제가 되었다. 환경오염의 문제에 눈을 떴던 중산층의 백인들은 자신들의 주위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유해 폐기물 처리장은 조용히 저소득 아프리카 흑인과 미국 원주민이 사는 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워런 카운티 (Warren County)에서 처음으로 유해 폐기물 매립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즉, PCB (Polychlorinated Biphenyl)를 담은 6천 톤의 흙을 매립하려고 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약 5 백 명의 사회 운동가들이 투옥되었다. 또한 1983년에는 Robert Bullard라는 흑인 학자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고형폐기물 처리장의 위치가 저소득층이면서 흑인계층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1987년에는 그리스도 연합교회 (United Church of Christ, UCC)의 인종과 정의 위원회 (Commission for Race and Justice)에서 미국 최초로 전국을 대상으로 유해 폐기물 처리장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조사했는데 바로 Robert Bullard의 연구 결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뒷받침 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 기화로 하여 미국에서는 환경정의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고 이후 약 10여 년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연구의 결과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실제조사를 곁들인 상당수의 연구가 환경부정의의 사례들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 문제가 미국의 특수한 상황 중에 하나인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 문제와 맞물리면서 환경문제의 뜨거운 감자로서 부상하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환경정의


일본에서도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각종 공해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공해의 피해가 대부분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음이 미야모또 겡이찌 (宮本憲一)에 의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의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일본의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던 미나마따 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영세 어민들이었다. 식품공해 또한 그 중의 하나로서 어육 햄, 소시지, 두부 등의 살균제로 쓰여지고 있는 식품 첨가물 AF2가 간암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음식은 주로 저소득 층이 많이 먹고 있었다.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긴 하나 무 농약, 무 첨가 식품의 값이 농약을 치거나 방부제 등의 식품첨가물을 넣은 것보다 좀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미나마따의 경우 생물적 약자의 범위에 인간만이 아닌 자연 생태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나마따에서 유기수은에 중독된 것은 사람이 먼저 가 아니라 어패류나 고양이였으며, PCB 중독증으로 알려진 카네미유증을 알린 것은 닭들의 집단 폐사였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면에서 환경정의 구현


환경오염으로부터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환경권을 보호하려면 법에 근거를 둔 실제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 장치들은 곧 각종 산업, 개발, 의료, 에너지, 환경관리 등의 분야에 환경정의의 개념을 반영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정책 개발을 말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환경정의에 대한 요구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어나고 환경부정의의 사례가 인종차별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급기야 1994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환경정의 특별 행정명령 (Executive 12898)”에 사인하게 되었다. 이로써 환경정의의 개념이 법제화되고 각종 국가 정책에 환경정의의 개념이 실현되게 되었다. 즉, 모든 정책을 수행할 때는 반드시 환경정의를 고려하여 절차적인 면에서 공평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오염의 분배의 면에서 형평성을 찾도록 정책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클린턴의 행정명령 12898에는 생물적 약자로서 생태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아래 글 참조).

“To the greatest extent practicable and permitted by law, and consistent with the principles set forth in the report on the National Performance Review, each Federal agency shall make achieving environmental justice part of its mission by identifying and addressing, as appropriate, disproportionately high and adverse human health or environmental effects of its programs, policies, and activities on minority populations and low-income popul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its territories and possessions, the District of Columbia, the Commonwealth of Puerto Rico, and the Commonwealth of the Mariana Islands” (Executive Order 12898, Section 1 1-101 Agency Responsibilities).

그저 문제가 되고 있는 소수 인종과 저소득 층에게 분배면에서 공정하고, 절차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라도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환경부정의의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의 진일보한 면을 읽을 수 있으나 역시 인간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본질적인 환경정의를 실현하려면 말 그대로 ‘생물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가 불공평하게 취급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지역적이고 국부적인 경우도 있지만 나라를 넘어서 발생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환경정의의 논의는 이제 한 나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세대 간, 내부 사회 간, 종간의 정의를 생각하여 국내법이나 국제법을 만들고 각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하고 실행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환경 기본법에 환경정의의 개념을 넣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환경정의의 개념도 미국의 것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만일 환경기본법이 환경정의의 정신에 의해 개편되면, 많은 부분에서 각종 개발 정책이나 환경관리 정책, 기타 인간의 복지와 관계된 정책들의 입안 과정에서부터 실행계획까지 검토를 받도록 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 국민과 다른 나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 간에 필요한 조약을 체결하고 유해폐기물을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도록 하며 물이나 공기를 통해 타 국가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둘째로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자원이나 에너지를 고려해서 현세대의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야 하며, 다음세대에게 현 세대의 오염이 계승되지 않도록 하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셋째로 사회 내부적으로 어느 한 계층이나 집단이 편파적으로 특별한 이익이나 피해를 보거나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로 생태계의 조화를 고려하여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계획을 하지 않고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모든 정책과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멸종위험이 있는 동물과 식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가능한 한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서적 입장에서의 환경정의 구현


이제까지 환경정의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이루어 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다분히 인간적인 지혜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인간이 이러한 원칙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실천할 의지가 없으면 이러한 논의는 거의 필요 없게 된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생각과 입으로 내뱉는 것과 실제 행동이 많이 다름을 볼 때 인간적인 시도의 절망을 느낀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경정의를 성경적으로 이뤄내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인 입장에서 환경정의를 이루기 위한 정책적인 대안 뿐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성경에 환경정의 문제에 대한 세세한 대안이 있지는 않지만 어떠한 정신으로 환경정의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로, 총체적인 구원의 정신이 필요하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열어 놓으신 하나님과의 회복과 화평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며, 믿는 순간에 이뤄지는 것만이 아닌 지금 이 순간부터 연결된 영원의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흔히 영적인 구원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과 우주가 함께 구원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기적이거나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구원 관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깨는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도 식물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하늘도 땅도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구원을 이뤄가도록 하는 중책을 우리 사람,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 주신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정신이 우리에게 소화되고 생활화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환경 지킴이가 되고 서로를 참 이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자연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만일 우리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 관이 그렇게 깊어진다면 우리는 감히 경제적인 불가피성을 이유로 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피해를 전가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이웃을 위해 우리가 대신 피해를 당하고 예수님처럼 죽음까지도 기쁘게 맞게 되지 않을까?


둘째로, 청지기적인 정신이 있어야 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대로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청지기적인 직분을 허락하고 있다. 구약에서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직분이 그것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우리가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는 에덴은 어디일까? 바로 우리가 사는 주위와 사회, 국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 구석구석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따라서 자녀가 된 우리는 아버지이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땅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주께서 주신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적인 부담이 생겨날 경우에는 그 책임을 이웃에게 떠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지는 것은 정말 무리한 일일까? 점점 더 거세어 지고 있는 지역 이기주의 움직임에 교회공동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들도 대거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셋째로 종말론적 정신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대한 심판자로서 또 어그러진 세상의 완성자로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는 정신이다. 그 사상이 있어야 세상 속에서 헛되이 키워오는 욕심의 굴레를 벗을 수 있고 자연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즉 나그네의 자세로 있어야만 참으로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을 등지는 무관심으로서의 종말사상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욕심을 포기하고 참을 추구하는 정신이 너무나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구원의 완성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8장 19 – 23절에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구원을 고대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요한 계시록 21장 1-7절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세상을 새롭게 하시면서 고난을 받아 온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주께서 오실 때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환경정의를 이루도록 부탁하시는 것은 아닐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결코 이루지 못하는 궁극적인 절망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환경정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루어 가야 할 사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넷째로, 환경정의를 이루려면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웃사랑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웃사랑은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사람뿐만 아니라 환경도 포함한다. 사회의 아픔과 사회의 불평등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듯이.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할 제사장이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롬 12장 1-2절). 우리가 사회의 아픔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는 제사장의 입장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다. 일부 영웅적인 운동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상사람은 희생의 제사를 드릴 근거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웅이 되지 않더라도, 돈이 생기지 않아도 중요한 것을 소리 없이 할 수 있는 충분한 성경적인 근거와 존재적인 근거가 있다.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산 제물로 바쳐도 좋을 만큼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이 우리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될 때 환경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란 인간이 자연 속에서 노동을 통해 삶의 양식을 얻고, 한 편 자연이 인간의 노동을 통한 섬김으로 풍요로워지도록 하는 조화로운 삶임을 우리는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에 국한되지 않고 눈을 넓혀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게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웃 사랑의 정신에 비추어서 대안을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맺으며


환경문제가 점점 국가간 세대간의 문제가 되어가듯이 환경부정의의 문제도 우리 이웃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지혜를 다 해서 환경을 해치지 않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예민한 감시는 물론 현안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현재 환경분야에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공공참여 (Public Participation)이다. 이제까지의 환경정책이나 각종 개발정책에 공공의 의견을 듣지않고 전문가들이나 정치가들이 자신들에 맞게 의사결정을 해 옴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따라서 계획의 시작부터 실행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 공공이 참여함으로써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 좋은 대안을 찾아가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 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연과 사람을 해치지 않고 환경적인 부담과 짐을 함께 나누어 가지면서 우리의 미래 세대들의 권한을 빼앗지 않는 대안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마련하는 데에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일은 환경 전문가들의 몫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사람 혼자서 살 수 없고 사람과 자연이 서로 사랑해야만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근본적인 책임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만이 총체적인 구원 관과 종말적인 정신에 입각하여 청지기적인 삶과 이웃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칭찬과 멸시에도 요동치 않고 그리스도로 인한 평화와 구원의 기쁨에 만족하면서 자발적인 가난과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자신과 사람과 자연과 우주를 사랑하면서…

[반영운] 환경과 지대조세제

이코스타 2003년 4월호

땅과 환경문제


전 세계가 환경위기를 절감하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시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영역에 쏠려 있다. 그러나 정작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 근본적으로 환경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눈을 뜨고 있는 단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계획적인 시각도 정치적인 싸움에 밀려서 단편적이고 지엽적으로 되어 문제의 근본을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경제와 직결되어 있고 모든 경제행위는 땅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허공 위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는 없기 때문이다. 땅 위에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속에서 자연의 에너지와 자원을 가지고 물건을 만들고, 만든 물건을 일정한 건물 안에서 팔고, 팔고 산 물건은 일정한 장소에서 사용되고 폐기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행위의 과정에 땅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성경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예견한 듯 땅과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에 대한 주권이 창조 주 하나님께 있고 인간은 단지 관리자에 해당한다는 근본적인 관계 설정을 하고 있다 (창 1: 26-27, 창 2:14-15). 성경의 전체적인 정신에 따르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과 만물의 정복자와 지배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돌볼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성경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허락하신 역사서가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경제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해서도성경에서 보다 분명한 가르침을 얻어야 하고 얻을 수 있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낸 성경 구절은 레위기 25장 23-28절로서 다음과 같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 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 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이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미쳐 돌아올지니 그가 곧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본 성경구절은 토지의 주권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므로 한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고 인간은 땅을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땅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50년마다 지켜야 할 희년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의미를 희년에 비교하고 있다. 모든 것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종교적인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근거인 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의 근거인 땅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난과 기근과 환경파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헨리 조지 (Henry George)가 성경을 토대로 제안한 지대 조세제도의 도입을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살펴 보기로 한다.


지대 조세제


지대 조세제는 100여 년 전 헨리조지가 ‘진보와 빈곤 (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책을 통해 제시한 것으로서 토지의 공공성을 토대로 사유화 된 토지의 이익이 사회로 환원되지 않아서 생겨나는 많은 정치 경제적인 문제를 세제를 통해 토지의 지대 (Rent)를 100퍼센트 환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좀 더 개략적으로 지대조세제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건물에서 나오는 이익과 개인과 회사의 수입 등 인간의 노동의 결과에는 세금을 없애고 땅에만 매년 땅의 임대 가격에 세금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주위의 땅을 기존의 상태에서 고려하면서 각 단위의 땅을 개선되지 않은 지가 (unimproved site value)로 평가한다.


셋째, 공지나 농지를 포함한 모든 땅에 세금이 부과되며 토지의 가치 모든 허가와 규제가 고려된 상태에서 가장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평가된다.


넷째, 실제로 지대조세제는 현재 운용되고 있는 세금제도와 흡사하나 다만 모든 땅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빌딩과 다른 시설에는 세금을 적게 부과하는 것이 다르다.


다섯째, 만일 토지 임대 가의 100 퍼센트가 세금으로 부과된다면 토지는 더 이상 현금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토지의 매매 가는 임대 수입을 현금화할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를 인류에게 공동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토지의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똑같이 토지를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각 토지의 생산성과 위치에 따라 각 토지의 가치가 다를 뿐 아니라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로부터 나오는 수익, 즉 지대를 공유함으로써 공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대란?


지대는 생산물 중 토지의 소유자에게 그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귀속되는 부분을 말한다. 즉 조지에 의하면 지대는 토지를 이용한 생산의 결과 중 일부분을 얻을 수 힘을 말한다. 따라서 일정한 토지 위에 세워진 주택, 공장, 상가를 사용한 대가 중에서 토지 사용에 해당되는 대가만이 바로 지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지불하는 액수를 자본사용의 대가, 즉 자본 수익으로 본다. 그런데 헨리조지는 이 지대를 토지 소유자 개인이 독점하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대란 인적노력으로는 생산하거나 증가시킬 수 없는 자연요소 (특히 토지)를 개인의 소유로 할 때 생겨나는 독점가격이기 때문이다.


헨리조지의 이러한 사상은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이 주장하고 있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독점적 주권’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설령 현실적으로 누군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토지를 창조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으며 단지 먼저 점령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대수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한다.


지대 공유 이유


앞에서 살펴 본대로 지대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발전과 정비례의 관계가 있다. 즉 인구가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토지 수요를 일으켜서 지대소득은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점점 생산성이 낮은 한계지를 이용하게 되면서 지대가 증가된다.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아무런 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높은 지대를 얻게 하는 힘이 인구증가와 기술발전 등의 사회적인 힘에 근거하는 한 사회적으로 창출된 지대가 토지 소유자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지역에 도로가 뚫리고, 기차 역이 생기고, 공원과 학교와 관공서가 들어서면 자연히 그 지역의 지대는 상승한다. 이렇게 상승된 지대를 사회가 공유한다는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지대 공유화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Fred Harri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대의 공유화를 통해 완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Harrison, 1983). 지대를 사회 (공공)로 모두 환수하게 될 경우 생겨나는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투기적인 목적으로 땅을 놀리지 못하고 땅을 최적의 용도에 사용하여서 그 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대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하게 한다. 둘째로 지대를 사회에 환수함으로써 토지의 이용률을 높이고 투기적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땅이 토지 시장에 나오게 함으로써 토지 시장에 토지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며 그로 인해 지가의 하락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세째로 토지 실수요자들이 시장에 나온 값싼 토지를 최적의 용도로 사용하게 된다.


지대 공유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권 중 처분권과 이용권은 인정하되 수익권은 부정하고 있다. 즉 토지로부터 나오는 지대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사회가 가질 것을 천명하고 있다. 지대 공유 개념이 기초하고 있는 재화의 소유권은 노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해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노동을 통해 생산과 소비와 교환과 보유의 권리를 갖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소유는 반드시 노동을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부여 받게 된다는 면에서 토지는 인간 노동의 산물이 아니므로 어떤 특정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지대 공유의 개념은 바로 토지에 대한 공평하지 못한 소유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 즉, 토지투기, 빈부격차 심화, 경제위기, 환경파괴 등을 해결하는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지대 조세제를 통해 본 개발과 환경문제


제임스 쿤슬러 (James Howard Kunstler)는Geography of Nowhere에서 현재의 재산세제가 야기시키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Our system of property taxes punishes anyone who puts up a decent building made of durable materials. It rewards those who let existing buildings go to hell. It favors speculators who sit on vacant or underutilized land in the hearts of our cities and towns. In doing so it creates an artificial scarcity of land on the free market, which drives up the price of land in general and encourages even more scattered development, i.e., suburban sprawl…”

현재의 재산세제는 실제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세금을 부여하고 오히려 땅을 소유하고 땅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땅을 투기의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건재하게 되고 도회지의 많은 땅들이 사용되지 않고 땅값은 치솟게 된다. 따라서 실제 땅이 필요한 사람들은 값싸고 적당한 땅을 찾아서 교외로 교외로 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균형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자연이 파괴되며 교외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무분별한 개발을 동반한 환경파괴는 토지 소유제도와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과 산업은 정상적인 속도로 적당한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도심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쓰레기 문제나 자연을 준비 없이 파괴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를 통하면 현재 교외화에서 빚어지고 있는 도시 인구과밀 또는 도시와의 단절과 같은 문제와는 달리 도시 사람들은 시내 가까운 곳에 있는 땅을 보다 싼 값에 얻게 되면서 도시 문화의 이점과 자연과의 친숙함을 동시에 누리게 될 수 있다.


브라질의 열대림이 파괴되어 가는 것의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토지가 일부 계층에 의해 독점적으로 소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바로 농업에 이용돼야 할 절대 농지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음으로 인해서 도회지로 몰려 들었던 사람들이 농지를 찾아 열대림으로 들어가서 농지로 쓸 수 없는 열대림에 불을 놓고 땅을 개간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대 조세제를 도입하면 쓸 수 있는 양질의 많은 땅이 시장에 나오게 되고 필요한 사람들이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해 열대림의 파괴도 급속히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에서도 토지의 독점으로 인해 비롯되는 동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종종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면서 많은 규제와 법을 만들고 있지만 모니터링의 어려움을 실상 환경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제를 실행하려면 지속적인 감시와 규제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대 조세제를 통하게 되면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규제 대신에 시장경제의 시스템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자발적인 규제 준수를 통해 양질의 환경기준을 설정할 수도 있고 설정된 기준을 지켜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환경위기를 에너지 위기라고 할 만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 즉 석유나 석탄 등의 탄화 에너지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많은 환경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 한창이다. 지대조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의 세금 제도에서는 땅 (지하)에서 나오는 자원인 석탄과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본 집약적인 기술 개발에서 나오는 대체 에너지 산업인 태양열을 이용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Ground Tax를 부여하고 자본과 노동 집약적인 에너지인 태양열, 조력, 풍력 등의 산업에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세금제도를 도입하면 좀 더 대체 에너지 산업의 입지를 견고하게 함으로써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 산업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체 에너지의 기술이 더 개발되고 경쟁력이 높아지게 되면 에너지로 인한 환경문제는 조금씩 개선되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는 산지나 보존지역의 보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100퍼센트의 세율을 적용할 경우 지대를 통한 땅의 경제적인 가치를 잃기 때문에 세금 부담 없이 보존지역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많은 보존 단체들이 몇몇 보존지역을 구입하느라 수많은 돈을 모금해 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모금된 돈들로 전보다 더 넓은 지역을 보존하게 되거나 오염된 곳을 복구하거나 관리하는 데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투자는 오염산업 보다는 오염복구산업이나 연구 및 관리를 활성화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대조세제 하에서는 쓰지 않고 놀려 두는 땅이 낮은 가치로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땅의 소유주는 정부와 관리계약을 통해 땅에 식재를 한다든지 하는 대체 이용을 하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대조세제는 토지의 효과적인 이용을 장려하고 결과적으로 자연을 보호해 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다.


글을 맺으면서


하나님이 주인인 땅을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여 모든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대한 죄악의 행위이다. 중세 시대를 비롯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 공동체가 소유하고 누려온 많은 토지의 소유와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회개의 제목이 될 만하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병들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현대의 교회는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퍼부으신 그 통렬한 꾸짖음의 죄목들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회칠한 무덤같이 이제는 자신의 부패함 마저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책에 대해 깨어서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솔직하게 자신에게 던지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하나로 지대조세제의 실현을 그려본다. 자신을 포함한 이웃과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 삶의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 실현되는 꿈을…

[반영운] 깔리만딴의 불타는 열대림

이코스타 2002년 11월

지난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프로젝트 수행 차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방문했었다. 자카르타에서 머무는 동안 신문과 방송매체를 통해 깔리만딴의 열대림이 몇 주 동안 꺼지지 않고 불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기가 인근 말레이지아까지 덮여서 한 낮에도 햇빛이 비치지 않고 있으며 비가 오지 않으면 상당량의 열대림이 손실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벌써 깔리만딴의 열대림은 60-70% 정도 유실되고 있다고 보고 되고 있다. 이 현상은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림 유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열대림 화재는 벌채와 함께 흔히 rainforest deforestation (열대림 유실)의 주요한 이유들로 알려져 있다. 열대림 화재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한 것과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적인 현상은 거센 바람에 의해 나무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번개에 의해 발화되는 것을 말한다. 인위적인 현상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방화하여서 화전을 일으키거나 방목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벌채는 상업적인 목적에 의한 합법적인 벌채와 불법적인 벌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합법적인 벌채는 그 용량을 정하여 한계에 맞게 벌채를 하는 반 면 불법적인 벌채는 아무러한 대책도 없이 시간과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나무를 베어서 파는 것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의 열대림 유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깔리만딴에서 불타고 있는 열대림은 단지 인도네시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깔리만딴의 원목은 벌써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남미에서 펄프나 가구용으로 수입하고 있다.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화전을 일으키는 것 또한 현재 인도네시아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 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빚어낸 결과로서 아마존 열대림에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국적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제 3세계로 몰려들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마존 열대림에서 소를 방목하기 위해 벌채 또는 방화하여 없어지는 면적이 하루에 축구장 정도라고 한다. 거기서 생산된 소고기는 전세계 맥도날드와 같은 일품 음식점이나 식당과 식료품점에서 소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마존에서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삶의 근거지인 열대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 열대림 화재로 인해서 지구 온실가스 중의 하나인 이산화탄소 량이 증가하고 산소 공급 및 생물 종의 다양성이 손실되고 있다.


일견 인도네시아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보여질 수 있으나 조금만 넓게 생각하면 이 문제는 우리 전 세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연루된 공동 범죄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면서 지구 상의 어느 국가도 이 도도한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개인 간, 국가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빚어 낸 결과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국부적으로는 인도네시아의 공무원이 부패하고 화전민이나 소 방목업자나 벌채업자들과 서로 공모해서 생겨난 문제이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방화 당사자에게만 있지 않고 방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세계 신 자유주의 경제와 그 경제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UN을 비롯한 국제 기구에서는 열대림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거나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례로 전 지구적인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회의가 얼마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한네스버그에서 열렸다. 미래세대와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회의인데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직 역부족인 듯 하다. 왜냐하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각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자유 경제 시스템의 도움으로 사실상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발 도상국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치르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담보로 하여 현재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한 대가 중에 개발도상국의 환경적인 희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것이다. 단기적으로 얻는 경제적인 대가는 장기적으로 빚어지는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폐해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인데도 늘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제일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인식의 전환이다. 깔리만딴에서 타고 있는 열대림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지, 아니 정말 나의 일처럼 여겨져서 우리 집이 타고 있는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우리가 이제껏 훈련 받아 온 영적인 일은 소위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세심하신 인도하심을 보게 된다. 어떨 때는 우리도 이해 할 수 없을 만큼 역사의 중요한 순간 순간에 소위 비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시고 계신 것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영적인 일의 범위를 넓혀서 속칭 세상의 일 (모두 하나님의 일이지만)까지 우리의 섬김의 영역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 분야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무도 관심 쓰지 않는 영역의 일일 수 있다. 만인 제사장의 정신이 보다 충일해 질 때 각자의 소명에 대한 눈도 더욱 넓어 지리라 확신하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열대림 파괴에 우리 크리스챤의 자세와 행동강령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먼저 나무를 이용한 제품들을 사용하는 소비 주체로서 보다 건강하고 바른 소비행위를 해야 한다. 즉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사지 않아야 하며,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다시 쓰고, 버릴 때는 보다 주의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나 열대림에서 나오는 소고기를 이용한 일품 요리를 먹는 것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 더욱 열대림을 무분별하게 개발해야만 얻어지는 제품들을 소비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이러한 환경문제와 연결된 연구 주제를 찾아서 공동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물학, 동물학, 경제학, 생명공학, 환경학, 지리학, 국제 정치학 등 관련 분야의 통합적인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 크리스챤 개인은 연합을 통해 각 지역 단체의 Opinion Leader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즉 교회를 중심으로 또는 각 각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연합하여서 신앙적인 동지로서의 일도 할 뿐만 아니라 지역 환경문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 할 수 있다. 또한 국가 및 세계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사회학적인 용어로 Social Capital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한 사회가 어느 정도의 자원적인 단체와 조직을 가지고 공동의 선을 위해 집단적으로 그에 참여하는가를 진단하여 한 사회의 신뢰수준을 평가한다. 사실상 우리 한국의 Social Capital은 매우 낮은 것 같다. 크리스챤들의 종교행사 참여를 Social Capital의 일부로 본다면 아마도 그 수준은 매우 높겠지만 우리 국민의 도덕성과 공동의 선을 위한 참여 수준으로 본다면 크리스챤들의 종교행사는 궤를 달리하는 면이 없지 않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안심입명적인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빌립보서 2장 5-9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십자가의 정신이 전도의 현장에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 하나하나에 구체적으로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노력에 있어서도 개인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들이 연합하여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성경에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이 세상의 풍속을 두고 한 것이지 물리적인 세상 자체를 무시한 데서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좋으셨다는 세상을 지키고 가꿀 책임을 인간에게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책임을 주셨을까? 두 말할 나위 없이 창세기에서 인간에게 주셨던 동일한 책임과 권한을 주셨으리라 확신한다. 에덴을 돌보고 가꿀 책임을…


우주가 열려가고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 이 시기를 살고 있는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크리챤들이 진정으로 가꾸고 돌보아야 할 에덴은 정말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