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의 힘: 상호책임의식(Accountability)
“담배 한 대 피우게 5분만 쉬었다 합시다!”
한창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는데 새로 온 자매 한 분이 큰소리로 휴식시간을 요청했다. 거미가 줄을 뽑아내듯 웬 말들이 그리 많으냐며 쉴 시간도 안 준다고 따지는 그분 앞에서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는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러죠. 10분 쉴 테니 모두 담배를 피우도록 하시지요.”
짐짓 담담한 듯 이렇게 말했더니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뒤로 우리 소그룹은 모일 때마다 10분씩 휴식을 했다.
3개월이 지나고 그 자매님이 소그룹 기도 시간에 담배를 끊고 싶다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도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스스로 깨닫고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신 듯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10년 넘게 피워 오던 담배를 끊고 금단현상을 극복하기까지 우리 소그룹 식구들은 그분과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조금씩 참는 날수가 늘 때마다 함께 손뼉을 쳐주고, 열흘간 금연에 성공하실 때마다 다같이 나가서 외식을 했다. 한국 식당이 하나밖에 없는 마을에서 열흘에 한 번 다같이 한국식당에 가서 몇 안 되는 메뉴 중에서 한 가지씩 골라서 먹던 행복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힘들게 노력하다가 실패하면 진심으로 위로해 드렸다. 물론 함께 외식할 수 없어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며 은근히 부담을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그분이 온전히 오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소그룹 식구들이 모두 함께 도왔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에서 벗어나신 후, 그분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교회 여러 사역에 헌신하며 새로운 삶을 여시게 되었다.
많은 분이 평신도인 내가 지금의 위치에 서서 사역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공부를 했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묻곤 하신다. 그분들께는 매우 실망스러운 대답이 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시키시기 전에 15년 동안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사이로 나를 보내셔서 그분들과 함께 서로의 변화를 책임질 수 있는, 소그룹을 인도하는 일을 맡겨주셨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어서 속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곳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 준 배움의 터전이었다. 말과 글만으로는 사역이 불가능한 소그룹 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소그룹 사역에 대해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셨다. 깨어지고 상처 입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아를 내려놓고, 일의 성취와 관계없이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서로의 변화를 돕고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소그룹 인도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첫째는 각자 변화하기로 결심한 것을 실제 삶에서 스스로 훈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한다.
십여 년 전, 내가 섬기던 교회는 여덟 개의 소그룹 목장으로 나뉜, 교인이 모두 백여 명도 안 되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그때 그 목자모임을 잊을 수가 없다. 훈련되지 못한 평신도들이 소그룹을 인도해야 하는 위치에 서야 했지만, 열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각자 변화되고 개발되어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목자모임의 리더이신 담임 목사님은 목자들에게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시고, 명확한 기준과 기대치를 가지고 자신을 훈련하도록 인도하셨다. 말씀을 대강 읽지 않고 깊이 묵상하기를 원하는 목자들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요약한 것을 목사님께 제출했다. 나같이 사람들 앞에 서기를 꺼려하는 목자들을 위해 돌아가며 설교할 기회를 주시고 서로를 건설적으로 평가해 주는 시간도 있었다. 그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씀을 전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목자님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각지를 다니며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이들을 낳고 내 자신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일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아가던 내게 그 목자모임은 엄청난 도전과 훈련이었다. 사랑으로 격려해 주고 건설적으로 평가해 준 소그룹모임 덕분에 익숙해져 버린 게으름에서 나와 포기해 버린 자기 개발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새 신자들로 구성된, 내가 인도하던 소그룹에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맨 처음 하는 일이 서로에게 전화 걸어 수다 떨다가 점심 때 모여서 같이 식사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시간으로 하루를 여는 훈련을 시작했다. 먼저 함께 시간을 정하고 스스로 큐티를 한 후에 서로 점검해 주고 점심 때 만나면 다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본 말씀을 나누는 훈련을 하면서 싸움도 줄어들고 새로운 삶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를 위해서는 소그룹원들의 격려와 서로를 검토해 주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개발해 옛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변화를 결심하고 그 과정 속에 함께하는 소그룹은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훈련과 후원을 주어 함께 변화하는 공동체가 된다.
둘째는 힘을 뺀 대화법과 실패를 안아주는 넓은 가슴이 필요하다.
후원과 소속감을 주는 소그룹에서 언급했듯이, 서로를 깊이 후원하는 소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힘빼기가 가장 우선이다. 리더가 소그룹원들을 위치나 나이로 지배하려 하면 후원하는 환경을 조성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를 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I language를 쓰는 방법이 있는데, “너는 앞으로 이런 것들을 고치는 게 좋겠어’’, “당신도 그러지 마”라는 말투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면 상대를 지배하려는 자세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면 내 생각을 먼저 말해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하게 하는 대화법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훈련해야 함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효과를 준다.
서로를 후원하는 소그룹이 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서로의 실패를 용납하고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지만, 의지도 약하고 유혹도 많아 오래된 습관에서 단번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이런 때에 정죄와 비난이 용납과 격려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면 변화를 시도하려던 용기는 반으로 쑥 줄어버린다. 서로의 실패를 용납하는 것도 소그룹이 함께 배워야 할 진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 계속 그들을 측정하고, 실패의 시간에 정죄와 자극적인 말들을 던지면,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일어날 기회를 점점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배신과 실패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내하시고 용서하시며 늘 새로운 기회를 주시며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는 부탁이시다. 이 말씀이 마음과 손과 눈빛으로 실천되는 곳이 바로 서로를 깊이 후원하는 소그룹일 것이다. 실패를 나누었을 때 더 큰 관심과 돌봄이 주어지는 소그룹은 어린 영혼들이 쑥쑥 자라날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요람이 될 것이다.
셋째로 서로의 변화를 책임질 수 있는 소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수많은 불신자와 어린 신자들이 기독교인의 진실하지 못한 이중적인 모습에 상처를 받고 교회에서 발길을 돌린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삶의 관객이 오로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 있을 때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특히 소그룹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진실이 아닌 말과 행동을 하면, 언젠가는 본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늘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누면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 분인지 저절로 자랑하게 된다. 그런 리더와 소그룹원들이 있는 곳은 연약한 사람들이 편안히 모여들 수 있는 공동체가 되고,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고 변화 받기를 소원하는 결단이 일어나는 공간이 된다.
예전에 초등학생 예배를 인도할 때의 일이다. 한창 설교를 하는데 졸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아이들을 깨울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그날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아이들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애들아, 사실 나 오늘 교회 오기 정말 싫었어. 여러 가지로 준비도 안 되었고, 그래서 집에서 그냥 쉬고 싶었어.” 거기까지 말하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졸던 눈을 크게 뜨고 공감 어린 눈빛으로 내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힘주시기를 기도하고 이렇게 왔더니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승리의 기쁨을 주셨어. 너희들과 이렇게 함께 예배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그 다음부터 그저 멀리서 인사나 하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나만 보면 뛰어왔다. 그리고 큰 비밀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저 오늘 교회 오기 싫었는데 왔어요.” 비록 그 아이들과 교회 오기 싫은데 오는 사람이라는 참으로 민망한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지만, 아이들과 아주 가까워져서 얼마나 큰 수확이었는지 모른다.
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라는 말씀으로 주신 주님의 뜻을 헤아려보면, 우리의 가치기준으로 도무지 내게 유익함을 줄 조건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대접한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난하고 마음과 몸이 지친 사람들이 소그룹을 찾게 되었을 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환영과 후원을 베풀어준다면, 그들이 아픔과 고통을 주저함 없이 나누고 그 소그룹을 피난처와 안식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교회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미혼모를 위한 주차장이 있는,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님이 사역하고 계시는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교회에 가서 다른 교회에서는 보지 못한 이혼하신 분을 위한 라운지와 장애인을 위한 특별시설을 보고, 어려운 분을 위해 무료로 차를 정비해 주는 그룹을 만난 적이 있다. 누가 내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줄 때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희생할 때, 심장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따뜻해지게 된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요일 3:18)”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에 대해서도 사역을 해갈수록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누군가를 위해 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역을 해갈수록 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운 희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소유를 희생한다는 것은 그 부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인데, 십일조를 드리고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면서도 감정까지 내어드리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것을 드리지 못해 잘 참고 사역하다가도 불끈 화를 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의 고정관념과 남보다 더 말하고 싶은 욕심, 또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대접받고 싶은 마음, 다스리고자 하는 욕심 등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려놓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임을 갈수록 깨닫게 된다.
힘든 변화를 가능케 하고, 새로운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소그룹에서 투명하게 자신을 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비밀이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려운 마음이 들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편안한 소그룹이 될 수 없으므로 커피 브레이크 소그룹 인도자 훈련 워크숍에서는 소그룹 사역자들에게 소그룹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많은 목사님과 소그룹 리더들이 이 규칙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 규칙을 잘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소그룹을 시작하는 교회들도 많다. 이런 규칙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인 이유는, 모두가 규칙을 알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어려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규칙 아시죠?”라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리더들이 훨씬 편하고, 또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어서다. 특히 개인적으로 나눈 비밀을 지키는 규칙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언급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 규칙 때문에 새 가족들이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나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을 함께하며 격려하고 어려움을 함께 책임져 주는 소그룹은 순한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햇볕을 가려주는 그늘 많은 나무가 되고 장대비를 받아주는 우산이 된다.